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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순간을 위한 왈츠
작가 : 수리수리
작품등록일 : 2017.10.31

그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척, 무대 위에서 보란 듯이 춤을 춘다. 너를 살리기 위한, 그리고 시작과 함께 천천히 망가져갔던 우리를 위한,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이 순간을 위한 왈츠.
죽은 첫사랑을 살리기 위해 과거로 돌아온 한 여자의 이야기.

 
10. 멀어지지도, 다가가지도
작성일 : 17-11-05 16:11     조회 : 247     추천 : 0     분량 : 4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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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낮에는 북적거리던 거리가 분위기를 타는지 조용하다. 에르베 광장에 들어서서, 나는 곳곳에 늘어선 명품 샵들을 바라보았다. 승조는 대리석 바닥이 신기한 듯 쿵쿵 찧어 보고 있다.

 

 너와 밤의 거리를 걷는 이 순간이, 어쩐지 꿈같다. 자꾸 현실 감각이 들지 않는 걸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을 놓고 너에게 안기고 싶어질 것만 같다. 나는 나를 다잡으려, 아름다운 야경에 눈을 주지 않으려 애썼다.

 

 

 시끌벅적한 외국인 관광객 일행이 지나갔다. 얼떨결에 승조와 나는 사람들에 쓸려가지 않기 위해 손을 잡았다. 정신없는 틈 사이로 외국인들 무리가 지나가며 각자의 언어로 떠들고 웃었다. 나 또한 어느새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린 얼굴로 웃고 있었다. 아주 간만에 느끼는, 편안한 기분이다.

 

 아까부터 유독 장난스러운 얼굴이던 승조가 잡고 있던 내 손에 힘을 준다. 그를 바라보자, 그가 짐짓 진지한 척 묻는다.

 

 

 "다친 덴 좀 괜찮아?"

 

 

 뜬금없는 그의 물음에, 나는 인상을 썼다.

 

 

 "일부러 그러는 거지?"

 

 "뭐가."

 

 

 장난스러운 그의 표정에 어쩐지 떨리는 기분이 들어, 나는 괜히 시선을 바닥으로 깔며, 그가 했던 것처럼 바닥을 쿵쿵 찧었다.

 

 

 "네가 더 크게 다쳤는데 내가 아프다고 울어서, 장난치는 거지."

 

 "응. 뭐, 비슷한가."

 

 

 그가 순순히 인정하고 드는 게 새삼스러워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이렇게 물으면 너도 물어봐 줄줄 알았지. 괜찮냐고."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힘들어, 괜히 다시금 바닥을 보며 중얼거렸다.

 

 

 "…짜증나."

 

 

 그 말에, 승조가 소리를 내어 웃는다.

 점점 인적이 드물어지는 광장을 돌아, 우리는 옛스러운 느낌을 풍기는 그 장소에 들어섰다.

 

 

 [casa di Giulietta]

 

 

 

 줄리엣의 집, 입구에 들어서자 벽면에 빼곡한 낙서와 반창고들이 붙어 있었다. 관광 안내서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사랑의 소원을 비는 줄리엣의 집. 그렇다면, 반창고는 뭘까. 사랑의 상처에 반창고를 붙인다는 걸까. 의미 없는 생각에 피식 웃음을 지을 때쯤, 우리는 줄리엣의 정원으로 들어섰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종이에 무언가를 적고 있다. 우리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서 있자, 편지지와 편지 봉투, 펜을 진열한 작은 판매대를 목에 건 부인이 다가와 서툰 영어로 입을 열었다.

 

 

 "사시겠어요?"

 

 "이게 뭐예요?"

 

 "줄리엣의 집에는, 사랑에 상처를 입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줄리엣에게 편지를 써요."

 

 "줄리엣에게?"

 

 "자신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죠. 그러면 줄리엣의 비서들이 그 편지에 답장을 해줘요."

 

 

 승조가 흠, 하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현실적인 사람이라, 이런 거엔 흥미가 없을 지도 모른다.

 

 

 "써 볼까."

 

 

 나는 번뜩, 눈을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승조가 부인에게 돈을 내밀고는, 편지지를 받아 펜을 흔들어 보인다.

 

 

 "뭐, 쓸 게 있어?"

 

 "당연하지. 너도 써."

 

 

 그가 내 몫의 편지지와 편지 봉투, 펜을 내밀었다. 눈썹을 들어 올리며 그를 바라 보자, 그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쓸 거 없으면, 내 얘기라도 써."

 

 

 나도 모르게 웃었던 것 같다. 네 이야기라면, 로미오와 줄리엣보다도 절절하게 쓸 수 있다. 자꾸만 긴장이 풀어지려하는, 이상한 밤이다. 그는 어느새 편지 쓰기에 열중한 듯, 종이를 벽에 대고 글씨를 적고 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펜을 들었다. 그리고 적었다. 줄리엣에게.

 

 

 당신이 내 이야기를 들어 줄까. 터무니없을지 모르는 내 소원도, 들어줄까.

 

 속으로 생각하며,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편지 쓰기에 열중했는지, 옆모습이 꽤 진지하다.

 

 

 그런 그를 한참을 바라보다, 겨우 몇 자를 적고는 편지를 접었다. 그리고 줄리엣의 우편함에 편지를 넣었다. 줄리엣에게 닿기를, 기원하며.

 

 

 

 

 * 순간을 위한 왈츠 *

 

 

 

 와인의 향이 강하게 치고 들어온다. 며칠 피곤했어서인지, 순식간에 알코올이 도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잔을 비운 나는 눈을 꿈뻑이며 승조를 올려다보았다. 픽 웃은 그가, 병을 들어 내 잔에 와인을 따랐다. 검붉은 포도주가 잔을 채운다.

 

 새벽, 호텔의 야외 수영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느지막히 호텔로 돌아온 나는 와인이라도 한 잔 하자는 그의 말을 거절하지 못했다.

 

 이탈리아에서 있는, 마지막 밤이었다. 내일이면 우리는, 서울로 돌아간다. 그러면 다시 우리의 거리는 멀어지고, 나는 너를 자주 볼 수 없게 될 것이었다. 낯선 거리, 낯선 장소에서, 우리는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근데 웃기지 않아? 줄리엣은 사랑에 실패한 여잔데, 그런 여자가 사랑의 상담을 받고 있는 게."

 

 

 지 연애나 잘하지. 발끝을 물에 담그며 중얼거린 내 말에, 승조가 픽 웃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수영장 옆의 테이블에서 마셨으나, 어느새 우리는 나란히 앉아 물에 발을 담근 채였다.

 

 

 "정사(情死)라니. 그렇게 비극적인 끝을 맞은 주제에."

 

 

 나는 아무렇지 않게 치즈를 포크에 찍으며 말했다. 와인과 같이 나온 치즈는 꽤 질이 좋았다. 거기엔 손도 대지 않은 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그가, 뜬금없이 입을 열었다.

 

 

 "뭐 물어봐도 돼?"

 

 "아니."

 

 "김도경, 관심 있어?"

 

 

 물어보지 말라니까.

 나는 눈썹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약간 짜증스럽게 나를 바라본 승조가 고민하는 듯 미간을 모았다.

 

 

 "너한테 궁금한 게 많아."

 

 "궁금해만 해. 묻진 말고."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짙은 눈썹을 구긴 승조가 약간 신경질적으로 와인 잔을 부딪혔다. 한 번에 잔에 있던 것을 넘기며 그가 잔잔한 수영장에 물결을 일으켰다.

 

 나는 와인을 입에 머금으며 다음 질문을 예상했다. 아무래도 집시에 대한 얘길 물어보려나, 생각하며 막 지그시 눈을 감았을 때였다.

 

 

 "처음 화보 촬영할 때, 왜 울었어?"

 

 

 나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천천히 포크를 내려놓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그냥, 눈물이 났어. 그 뿐이야."

 

 "우리, 전에 만난 적 있었나."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의 시선이 따가웠다.

 

 

 "넌 날 굉장히 잘 아는 사람처럼 굴어."

 

 

 내가 너에게 한 모든 것이 다시 재생되지 못할 과거에서 비롯되었기에, 대답을 할 수 없는 나는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정적이 흘렀다.

 

 

 "가볼게, 아무래도."

 

 

 나는 잔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그 때였다. 급하게 일어선 탓인지, 물기가 있는 바닥에 그대로 미끄러진 순간, 어느새 날 잡으려 일어선 그가 내 팔을 잡았다. 그리고, 우리는 같이 미끄러졌다.

 

 

 풍덩-

 

 입이며 코로 물이 밀려들어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허우적대며 그의 팔을 잡았다. 잠깐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벗어나서, 나는 겨우 승조의 팔을 붙잡은 채 두발로 딛고 섰다. 고작 허리에 차는 물 깊이였으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쫄딱 젖었다. 낭패였다.

 

 짜증과 안도가 섞인 한숨을 내쉬는데, 문득 내가 승조에게 안겨있다시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와의 거리가 새삼 가까웠다. 그에게서 떨어지려는데, 그가 내 허리를 꽉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까부터 묘하게 빠른 박자로 뛰던 심장이 점차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떨리는 눈을 감추려 시선을 떨구자, 그가 내 턱을 잡고 고개를 숙이지 못하게 끌어당겼다. 그의 머리며, 얼굴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나를 보며, 승조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넌, 이상해."

 

 "…."

 

 "나를 보면서, 항상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잖아."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술에 취한 듯, 흐려진 그의 눈빛에,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다. 나는 애써 입 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언제,"

 

 "봐, 지금도."

 

 

 승조가 하얀 손을 내뻗었다. 그의 차가운 손이, 내 눈꼬리 어딘가를 가볍게 쓸었다. 그와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눈물이 똑, 떨어져 내렸다.

 

 

 "…울잖아."

 

 

 나직하게 말을 뱉는 그의 얼굴이, 어느새 아주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천천히, 물기에 젖은 그의 입술이 짧게 맞닿았다 떨어졌다. 숨이 막힐 만큼 짙은 눈으로 나를 내려다 본 그가, 내 허리를 감아 당기며 다시금 깊게 입을 맞춰왔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부드럽고, 따뜻했다. 너와 나, 단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밤의 수영장.

 

 

 살포시 감긴 그의 눈을 바라보며, 나 또한 눈을 감고 그의 목에 팔을 두르려 했을 때였다.

 

 

 '너, 질려.'

 

 

 탁-

 그 순간, 현실로 돌아온 나는 조금 거칠다 싶게 그를 밀어냈다.

 

 

 "…미안."

 

 

 떨리는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그에게서 돌아섰을 때였다.

 

 

 "네가 마음에 들어."

 

 

 표정을 갈무리 할 자신이 없어, 나는 그에게서 돌아선 채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어쩌지. 난, 네가 별로인데."

 

 "…거짓말."

 

 

 나직한 그의 목소리를 뒤로, 나는 도망치듯 그곳을 나왔다.

 

 한숨도 잠에 들지 못했던 그 날 새벽이 끝나고, 서울 행 비행기는 날아올랐다.

 사람들 틈에서, 마찬가지로 한숨도 자지 못한 듯 충혈된 눈으로 나를 보는 너를, 나는 모르는 척 외면했다.

 

 

 그렇게 너에게서 멀어지지도, 다가가지도 못하는 내가, 이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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