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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나의 여명
작가 : 살찐감
작품등록일 : 2017.11.4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싫다더니 갑자기 이렇게 다가오는 변덕스러운 로즐리나, 이런 부담스러운 자세로 몇 분이나 서있는 건지 모를 기이한 상황이 말이다.

"비켜주세요."

"싫다고 말한 것 같은데."

"원하는 게 뭡니까."

한숨을 폭 내쉬고는 로즐리를 째렸다. 그는 기특하다는 눈빛으로 날 내려다보며 평민 주제에 눈치는 빠르네? 라며 나를 약올렸다. 그러는 자기는 내 휴식시간을 망친 악마 주제에.

"그래. 본론부터 말하지. 내 아버지를 죽여줘."

미친 소리였다.

이메일: sw3564@naver.com
트위터: 살찐감 (@My_dawn23)

[ 최강 여주 / 능글맞은 남주/ 연애에만 천연 남주 / 혐관 커플 ]

표지 일러스트: 까까 님 (@_77r77r_)
표지 타이포: 89번가 님 (@89st_design)

 
계약은 깨라고 있는 것
작성일 : 17-11-04 17:32     조회 : 178     추천 : 0     분량 : 3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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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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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양 수업만 듣는 건 오늘까지다. 다르게 말하면, 점심 때까진 잘 수 있단 얘기였다. 그러나 나는 새벽 내음이 돌 때 즈음에 강제로 기상해야 했다. 이유는 터무니 없었다. 바로 로즐리의 거친 손길 때문이었다. 무엇 때문인진 몰라도 하잘 것 없는 이유라면 꼭 그의 앞에서 손수건을 찢겠다 다짐한 채 부스스 일어났다.

 

  "하아, 영식. 뭐하시는..."

 

  "넌 누구냐. 아스는 어쨌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벙쪄있던 나는 거울로 달려갔다. 안 돼. 안 돼. 설마.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꿈이길 간절히 빌었다. 신이 있다면 나에게 이래선 안 된다. 왜 내 삶에 장애물만을 만들어 놓는가.

 

  당장이라도 타오를 듯한 붉은 머리칼과 눈동자만으로도 이미 아스라 고하긴 틀렸다 싶었다.

 

  "그, 그러니까, 저는, 아스! 언니의 동생입니다!"

 

  아무리 변명할 여지가 없다해도 이런 답을 내놓다니.

 

  "아, 그래?"

 

  나른히 수긍하는 그를 보자 어쩌면 속일 수도 있겠다는 희망에 차오른 나머지 과도하게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라고 하면서 속아줄 사람이었다면 너한텐 좋겠다마는. 난 그렇게까지 멍청하진 않아서 말이지. 넌 분명 반역죄로 처단당한 엘리제다 가의 영애가 아닌가. 배짱도 좋구나. 도망친 것도 모잘라서 아카데미에 몰래 들어오다니."

 

  오만하던 로즐리의 눈이 그 어느 것보다도 깊게 가라앉았다. 무서웠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가 황궁에 신고를 한다면 난 죽을 게 분명했다.

 

  "원하는 걸, 말하시죠."

 

  "너같이 검도 못드는 사람에게 원하는 건 없어. 아스를 어디로 빼돌렸는지나 말해."

 

  그의 표정이 더욱 차갑게 굳었다. 더이상 도망갈 길이 없었다. 내 등 뒤엔 벽이 있었고, 내 코 앞엔 로즐리가 있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몇 개되지 않았다.

 

  첫번째 방법. 쥐도새도 모르게 로즐리를 죽이고 아카데미를 빠져나간다. 두번째 방법. 그의 앞에서 마법약을 먹고 내가 아스라는 걸 증명한다.

 

  모로보나 더 좋은 선택은 당연히 후자였다. 나는 짧게 심호흡을 했다.

 

  "제대로 봐."

 

  나는 그의 앞에서 보란듯이 마법약을 들이켰다. 불꽃같은 머리칼이 은색으로 물들고, 타오를 듯한 붉은 눈은 쾌청한 하늘로 뒤덮였다. 순간적으로 로즐리의 눈이 커지는 것을 느꼈으나 정말 잠깐이었다.

 

  "...좋아, 아스. 다시 한 번 제안하지. 반역죄로 처형당해 마땅한 가문의 영애로 형장의 이슬이 되겠나, 아니면 나의 아버지를 죽이는 데에 동참하겠나."

 

  눈까지 감아 웃는 로즐리의 모습은 둘도없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한 편으론 공포감이 들 정도로 소름끼쳤다. 그제서야 떠올릴 수 있었다. 로즐리 가의 별칭은 제국의 서적이었다는 것을.

 

  모두가 전쟁에서 제국의 불꽃, 창, 방패, 돌풍 등으로 불리울 때 지략가 역할을 했던 것은 로즐리 가가 유일했다. 우리 가문이 대대로 발현자를 배출했다면 그들은 대대로 대마법사를 배출했다.

 

  "...당신의 아버지는 누굽니까."

 

  로즐리는 흡족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봤다.

 

  "이름. 에반 로즐리. 나이. 56세. 특이사항, 대마법사."

 

  대마법사를 죽이겠다고 나서는 학생은 제국을 통틀어 로즐리와 나밖에 없을 것이다.

 

  "대신 제 비밀을 꼭 지키겠다고 약조하세요. 만약 지키지 않는다면 내 검이 그 쪽 목을 베어버릴테니."

 

  "좋아. 좋다고."

 

  그는 그리 말하면 색이 바랜 양피지를 꺼내들어 깃펜으로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다. 계약서였다.

 

  "의외로 철저하시군요."

 

  "난 원래 철저했어."

 

  내가 가소롭다는듯 픽 웃는 로즐리를 조금 쨰려보곤 그가 건넨 깃펜으로 서명을 했다.

 

  "이제 이 계약 조항에 하나라도 어긋나면 우리 몸은 바로 터지니까 조심해."

 

  "그런 말은 없지 않았습니까!"

 

  "마법사와 계약할 때 그런 조건쯤은 당연한 거지."

 

  능글맞게 웃는 로즐리의 모습은 마치 먹이감을 발견한 뱀의 모습과도 같았다.

 

  "이 사기꾼!"

 

  "멍청한 평민."

 

  한마디도 지지않는 그의 모습은 엘리제다를 불러내어 몇 번 호되게 때려주고 싶을만큼 얄미웠지만 우린 이제 동업자였다. 흠이 있다면, 그 동업자가 너무도 재수없다는 것이었지만.

 

  "그런데 당신은 내가 아스라는 걸 알고도 그리 놀라지 않네요."

 

  "아, 그거?"

 

  로즐리는 그리 말하며 내가 언제 떨어트렸는지 모를 빈 마법약 병을 흔들었다.

 

  "그, 그 병, 언제..."

 

  "허술하긴. 이런 건 빈 병이라도 잘 보관해야 한다고. 뭐어. 그 덕에 네 약점을 잡을 수 있었지만."

 

  "그럼, 그럼 나한테 아스를 어디로 빼돌렸냐고 한 것도..."

 

  "정답. 고의야."

 

  그 어느 때보다 그의 얼굴을 가격하고 싶다는 충동이 몰려왔다. 다행이도 내 이성은 그 충동을 이겨냈지만 주먹은 이겨내지 못했나보다.

 

  "이게 뭐하는 짓이지, 아스."

 

  "...죄송합니다."

 

  웃는 로즐리의 얼굴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우리 아버지는 항상 그랬지. 전쟁이 아닌데 너에게 살기를 드러내는 강한 사람이 있다면 이길 자신이 있어도 도망치라고.

 

  전에없던 속도로 기숙사 복도를 가로질러 뛰어가는데 내 앞을 무언가가 가로막았다. 바트였다.

 

  "어라. 아스 어디 가?"

 

  "그냥. 마실 좀 가려고."

 

  "그럼 나랑 같이 가지 않을래?"

 

  로즐리에게 쫓기는 실정이라 당연히 거절하려 했는데 바트의 표정이 너무 어두웠다. 거절하면 다시는 그를 못볼 것같은 착각이 일 정도였다.

 

  "그래."

 

  내가 수락하자 바트는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말없이 걷기를 얼마, 그가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있지. 만약 아버지가 그릇된 행동을 저지르고 있다면 아스는 어쩔 거야?"

 

  "바로 잡아야지. 우리 아버진 현명하신 분이니까 열심히 말하면 들어주실 걸."

 

  "좋은 아버지를 뒀네. 부럽다."

 

  그렇게 웃는 바트가 순간 내 모습과 겹쳐 보여서 나는 그를 안아버렸다. 그의 귀가 단번에 파르륵 달아올랐다.

 

  "아, 아스? 왜 그래?"

 

  "넌 잘못한 거 없어. 넌 나쁘지 않아. 노력했잖아."

 

  되는대로 뱉어낸 말이었다. 아니. 사실은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이제 돌아가자. 너무 늦었어."

 

  잠시간 얌전히 안겨있던 바트는 나지막이 말했다.

 

  해가 중천이었다. 전혀 늦은 시간은 아니었음에도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로즐리가 있을 줄 알고 일부러 조용히 문을 열었는데 예상과 달리 그는 방 안에 있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얼마간 씻지 못했다. 갑자기 몸이 갑갑한 느낌이 들었다. 슬슬 씻을 때가 됐지. 그리 생각하며 욕실 문을 열어젖힌 순간 눈 앞에 로즐리가 서 있었다.

 

  꿈인가.

 

  지금 그와 내 상황은 말그대로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그는 하반신에 수건 한 장만 걸치고 젖은 머리를 풀어헤친 모습이었다.

 

  "너, 너, 뭐야!"

 

  "당신이야말로, 왜 그런 망측한 차림을 하고선!"

 

  오가는 비명 탓인지 옆 방의 학생이 문을 두드렸다. 그는 돌연 내 손목을 잡고 제 품 속으로 끌었다.

 

  "조용히 좀... 뭐야. 아무도 없잖아? 옆 방인가."

 

  중얼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문 닫히는 소리가 나고 나서야 우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멍청한 모습을 들킬 수는 없지."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저를 끌어 당겼습니까. 당신 덕에 거품투성이가 됐잖아요!"

 

  "고작이라니. 나한텐 중요해. 그리고 이만 나가지 그래? 내 몸이 훌륭한 건 알겠지만 평생 거기 있을 건 아니잖아?"

 

  부디. 신께 비옵나이다. 당신께서 절 미워하는 건 잘 알겠지만 저 사기꾼은 제발 제 인생에서 좀 치워주세요.

 

  나는 씩씩거리며 욕실 문을 쾅하고 닫았다. ...지금 계약을 파기했다간 내 몸이 터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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