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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미소에 홀리다
작가 : 쪽달
작품등록일 : 2016.8.21

누구든 홀릴 수 있는 그 남자가 홀린 단 한 명의 여자.

서울남부지검 배속 3개월차 평검사 고미소,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그녀의 앞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남자!

"너가 어떻게 여기에!"
"수석검사 전도솔입니다. 잘 해봅시다, 고미소 검사."

두 사람의 질기고 질긴 인연이 다시 시작된다!

 
2장 범인은 현장에 다시 나타난다 (4)
작성일 : 16-08-28 23:13     조회 : 331     추천 : 1     분량 : 5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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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1981년 여대생 피살사건이네.’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어 재판을 받았던 피고인이 마지막 재판에 이르러서 무죄판결을 받아 풀려나 미제로 처리된 사건이었다.

 

 사진 속에는 무죄판결을 받아 기자회견을 하는 용의자 곁으로 수사관들이 서 있었다.

 

 “하, 딱 봐도 이 자식 맞는데. 이런 놈도 결혼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겠지.”

 

 혀를 차던 미소의 시선이 사진 한 구석 트렌치코트 차림의 남자에게 머물렀다. 몸을 살짝 빗긴 상태에서 고개를 뒤로 돌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딘가 낯이 익은 인상이었다.

 

 ‘수사관인가? 전 수석님이랑 묘하게 비슷하네.’

 

 눈을 찡그려가며 살피던 미소는 픽 웃으며 중얼거렸다.

 

 “설마 본인 아냐?”

 

 “요즘 내 뒤를 캐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군, 고 프로.”

 

 “으기약!”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미소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혹시나는 역시나라고 했던가.

 

 낯이 익을 대로 익은 남자가 한 팔에 양복재킷을 걸친 채 책장에 기대 서있었다.

 

 ‘이 인간은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오는 거야?’

 

 미소는 금방이라도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 같이 뛰는 심장을 다스리려 애썼다.

 

 “쯧쯧,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하는 건 기본 매너 아닌가? 요즘 신임검사들은 그런 기본소양도 배우지 않는 건가?”

 

 도솔은 검지를 입술에 댄 채 짙은 눈썹을 기울였다.

 

 보통사람들이 했다면 드라마의 폐해, 모델병이라며 혀를 찼을 법한 동작이었으나, 그녀의 앞에 있는 말쑥한 남자에게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잘 어울렸다.

 

 ‘아무튼 검지가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 중요한 것은 도솔에게 수사과정이 들통 났다는 사실이었다. 미소는 빠르게 머릿속으로 선택지를 나열해봤다.

 

 1번, 사실대로 말한다.

 

 2번, 발뺌한다.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미소는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전도솔 수석검사님. 수사자료도 찾았으니, 전 이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빠져나가면 끝.

 

 그렇게 생각하던 미소의 계산은 어긋났다. 어느 사이에 도솔은 미소의 앞에 바싹 다가와 있었다.

 

 “헉.”

 

 ‘가, 가깝잖아.’

 

 미소는 몸을 빼려고 해봤지만 등 뒤에는 책장이 가로 막혀 있었다. 지그시 내려 보는 도솔의 시선에 미소는 눈을 둘 곳이 없었다.

 

 ‘고개를 못 들겠네.’

 

 “정말 모르나?”

 

 나지막한 목소리가 미소의 귓가에 떨어졌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깨끗하면서도, 묘하게 허스키한 느낌이었다.

 

 “뭘… 말입니까?”

 

 미소는 눈을 돌린 채 딱딱하게 말했지만, 얼굴 표정에는 당황했다는 것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도솔은 그런 미소를 보며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모태솔로 인생 28년, 썸 비스끄므리한 것 몇 번 외에는 변변찮은 연애경험 하나 없는 미소로서는 지금의 상황은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이, 이건 그때 일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야! 고미소, 쫄지마!’

 

 미소는 단단히 마음을 먹고 고개를 쳐들었다.

 

 그 순간 도솔의 얼굴이 그녀의 눈에 확 들어왔다. 일전 밤에 잠깐 봤을 때도 잘생겼다는 생각은 했지만, 밝은 데서 본 도솔의 얼굴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모공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깨끗한 피부, 선명한 윤곽을 드러내는 콧날을 사이에 두고 속쌍꺼풀이 진 눈이 학의 날개처럼 뻗어 있었다.

 

 그 와중에도 미소의 시선을 끄는 것은 역시 눈동자였다.

 

 깊은 연못처럼 투명하면서도 깊이 있는 눈동자는, 그 밤에 봤던 것과 똑같았다.

 

 “그렇게 티 나게 뒷조사를 벌여놓고 모를 줄 알았다니, 대단한데.”

 

 미소는 이어진 도솔의 말에 반짝 정신이 들었다. 그녀는 눈에 힘을 주며 도솔의 시선을 받아내려 안간힘을 썼다.

 

 “내 눈은 못 속여…요.”

 

 강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려던 그녀의 의도와 달리 말꼬리가 저절로 흐려졌다. 시원하게 뻗은 눈꼬리를 살며시 휘며 도솔이 물었다.

 

 “뭘 속인다는 거지?”

 

 “다, 당신 그때 밤에 나타나서… 내…!”

 

 미소는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평소에는 어떤 일이든 간에 거침없이 입에 올리던 그녀이건만, 도솔과 입술을 맞댔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라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고 프로의 무엇을?”

 

 도솔이 넌지시 묻자 미소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고발할 겁니다! 당신 신분도 위조한 거 다 알아! 지금 이렇게 하는 것도 추행이란 거 명심하세요!”

 

 미소는 몰아세우기로 전략을 바꿨지만 도솔의 태도는 여유가 흘러넘쳤다.

 

 “추행이라. 피해자가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꼈다고 주장한다고 성희롱이 다 인정되는 건 아니란 것쯤, 알고 있을 텐데. 지금 나는 선임검사의 뒷조사를 하다 적발된 까마득한 후임에게 진위여부를 확인 하는 중이야. 내 행동의 어떤 부분이 추행에 성립되는지 소상히 설명해주겠나?”

 

 “윽.”

 

 미소는 침음을 흘렸다.

 

 실제 성희롱 성립 요건에서 피해자의 주장은 고려의 대상일 뿐,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사회적 상식 내에서의 성적인 언어나 행동으로 판가름이 났다.

 

 도솔의 말대로 그는 어떠한 성적의도가 담긴 언동이나 행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엊그제 나한테 한 짓 기억 안나…요?”

 

 미소는 황급히 주위를 돌아보고는, 한껏 목소리를 낮추어 쑥덕였다. 도솔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미소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꽉꽉 누르고는 다시 한 번 쑥덕였다.

 

 “엊그제 밤에 복도에서 나한테 키스했잖아…요!”

 

 “그런 일을 겪었나?”

 

 도솔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무구한 표정에 미소는 어처구니가 은하계 너머로 날려가는 기분이었다.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 분간을 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뭐 이런 파렴치하고 뻔뻔한 인간이 다 있어!’

 

 미소가 황당함에 정신이 아득해져 있는 동안 도솔은 작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그래, 고 프로. 내게 어떤 심증을 갖고 있을 법도 해. 하지만 검사라면 물증으로 승부해야지. 이해해, 신임검사 때는 심증만으로 몰아붙이는 실수를 저지르곤 하니까.”

 

 측은한 눈빛을 보내는 도솔에 미소는 이차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 예에, 아주우 잘 배웠습니다, 증거 꼭 찾아올 테니까 딱 기다려.”

 

 “오후에 사건브리핑 있는 자리는 잊지 말고 참석하도록.”

 

 “명심하겠습니다, 전도솔 수.석.검.사.님!”

 

 미소는 씩씩거리며 증거기록 열람등사실을 빠져나갔다. 빠르게 걸어 나가는 미소의 뒷모습을 보며 도솔은 낮게 웃었다.

 

 “하여간 웃기기는.”

 

 도솔은 문득 바닥에 떨어진 서류철을 발견하고 집어 들었다.

 

 ‘장기미제사건집이군.’

 

 가만히 파일을 넘기던 도솔은 이들꽃 피살사건 대목에서 시선이 멈췄다. 사진 속 여자아이를 보는 도솔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기억하고 있는 건가.”

 

 

 

 ***

 

 

 

 컹, 컹! 으르렁,

 

 사각의 철창 안에서 핏 불테리어와 진돗개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었다.

 

 두 마리 모두 이미 꽤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팔과 다리, 몸통 전체에 피 묻은 털가죽 사이로 반쯤 떨어져 나온 살점이 덜렁거렸다.

 

 그럼에도 두 마리 개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채 서로의 목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겨도 져도 그들의 앞에는 비참한 최후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잔혹한 살(殺)과 사(死)의 사투였다.

 

 “물어!”

 

 “가라, 화이팅!”

 

 투견이 벌어지는 철망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응원을 하고 있었다. 손에 꽉 움켜쥔 종잇조각은 이미 땀에 절어 눅눅했다.

 

 중년배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걔 중에는 청년과 장년도 왕왕 보였다. 연령대는 달랐으나, 그들의 눈은 하나 같이 시뻘겋게 충혈이 되어 있었다.

 

 그들의 뒤에서는 커다란 덩치의 남자들이 망을 보고 있었다.

 

 “아, 박빙입니다. 한국의 자존심이 이기느냐, 정통 강자가 이기느냐, 이거 흥미진진합니다.”

 

 한쪽에는 방송용 카메라가 돌고 있었고, 그 옆에서 금 목걸이를 한 남자가 마이크와 헤드셋을 끼고 중계를 하고 있었다.

 

 그가 보는 화면 속 채팅방에는 쉴 새 없이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진돗개 쩐다]

 

 [봤음? 피 철철 나는데 막 덤빔]

 

 [그래도 핏불이 이김]

 

 그때 진돗개가 튀어 올라 핏 불테리어의 목을 물어뜯었다.

 

 “오오오!”

 

 진돗개에게 건 사람들 쪽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컹!

 

 핏 불테리어는 진돗개를 떨쳐내려 바닥을 구르고 몸을 비틀었으나 송곳니는 목덜미에 단단히 박혀 떨어지지 않았다.

 

 이윽고 핏 불테리어의 까만 눈동자의 초점이 흐려지더니, 축 늘어졌다.

 

 “와아아아악!”

 

 “저, 저놈의 개새끼!”

 

 “내 돈!”

 

 핏 불에 걸었던 사람들이 철창에 달라붙어 아우성을 내지르는 가운데 진돗개에 걸었던 사람들의 환호성이 섞여 아비규환이었다.

 

 핏 불 테리어가 배를 내민 채 쓰러졌지만 진돗개는 계속해서 목을 물어뜯었다.

 

 “그만!”

 

 보호구를 낀 심판이 나서서 떼어놓으려 하고서야 진돗개는 송곳니를 뺐다. 진돗개의 주둥이와 이빨에는 핏 불테리어의 살점과 피가 흥건했다.

 

 “휘유! 오늘 판의 최종승자는 대한민국의 자존심이었습니다! 따신 분도 잃으신 분도, 게임은 게임일 뿐인 것을 잊지 마시고, 다음 판을 기대해주세요!”

 

 중계자가 멘트를 마치고는 헤드셋을 벗었다.

 

 우우웅, 우우웅,

 

 주머니 속에서 세찬 진동이 느껴졌다. 투견판 운영을 위해 지급 받은 작업용 대포폰. 이곳으로 전화할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투견판의 진정한 주인.

 

 “예, 마쳤습니다.”

 

 남자가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로 낮은 음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번 판도 괜찮더군, 라 사장. 판 접고 손님들 배당금 나눠서 돌려보내게. 자네 몫은 바로 지급하지.”

 

 남자의 말에 라 사장의 표정이 급격히 밝아졌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사장님께도 안부 전해주십쇼, 헤헤.”

 

 뚝,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중후한 인상의 사내는 통화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섰다.

 

 컹! 크르르,

 

 거대한 응접실의 대형 스크린에서는 투견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섯 명은 족히 앉을 수 있을만한 크기의 소파에 남자가 몸을 기댄 채 영상을 보고 있었다. 삼십 대 초반정도에 머리칼을 왁스로 밀어 넘긴 준수한 외양의 남자였다.

 

 “난 개싸움이 참 좋더라.”

 

 남자의 입술이 벌어지며 완벽하게 가지런한 치아가 드러났다.

 

 “한쪽이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잖아. 목덜미를 물어뜯고, 피를 뿜어내도록 처절하게 싸우지. 돈으로 피를 사면 그 피가 다시 돈을 벌어 줘. 아주 맘에 드는 순환이지 않나, 홍 실장?”

 

 “그렇습니다, 한 도련님.”

 

 홍 실장은 빙긋 웃으며 동의했다.

 

 “이번 판이 들킨 건 의외입니다. 라사장이 단속을 잘못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백 검사가 사전에 언질을 주어서 다행이지요.”

 

 홍실장의 말에 도련님이라 불린 남자의 표정이 슬며시 일그러졌다.

 

 “라 사장더러 다음 판에는 좀 더 엄선해서 견주를 물색하라고 지시해. 두 번은 없어.”

 

 라 사장을 밑에 두고 일한지 세 해째.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긴 하지만 일처리 하나는 깔끔한 자였다. 초보적인 입단속 하나 제대로 못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어디서 냄새를 맡은 거지?’

 

 한은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칼 한 가닥을 만지작거리다, 이내 한 가지 생각을 떠올리고는 씩 웃었다.

 

 “검찰나리들이 수고하는데 인정머리 없이 그냥 보내드릴 수 있나. 홍실장, 오늘 저녁은 누구주지?”

 

 “청진건설의 셋째 따님과 약속입니다.”

 

 “아아, 그 여자. 주제파악은 못 하고 허영심만 많지. 갖고 놀기 안성맞춤이라 맘에 든다니까. 킥킥, 방 하나 잡아두고 거기서 기다리라 해. 그리고 외출해야 하니까 차 대기시켜.”

 

 홍 실장은 “알겠습니다.” 대답하고는 응접실 뒤편을 흘긋 보았다.

 

 “저 뒤의 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길게 휘장을 드리운 방 안에는 대여섯 명의 남녀가 반라의 모습으로 늘어져 있었다. 침대, 소파, 탁상할 것 없이 드러누운 그들의 표정은 하나 같이 약이라도 맞은 것처럼 넋이 나가 있었다.

 

 “치워.”

 

 반한은 흥미를 잃은 표정으로 대답하고는 휙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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