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진은 마음을 옥죄는 답답함을 끌어안고 납골당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아득한 기분 속에 찬바람이 불자 온갖 생각이 피어올랐다. 잡념을 마음에 욱여넣고 혜진은 아까부터 울리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엄마]
“여보세요, 혜진이니? 어디길래 전화를 이렇게 안 받아?“
“카페에서 깜빡 졸았어요.”
“안 받길래 걱정했잖아. 엄마 지금 나왔으니까 저어기, 정류장 앞에서 만나.”
“네. 지금 갈게요.”
엄마 목소리가 울먹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혜진은 뒤통수를 벅벅 긁고 엄마에게 온 알림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 8개, 문자 메시지 3개]
답답함에 아까 쑤셔 넣어둔 생각이 터져 나오는 듯했다. 두통이 몰려왔지만, 그저 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정류장에서 다시 만난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목소리만 조금 낮아져 있었다. 어쩌면 술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혜진은 엄마의 안쓰러운 모습을 애써 외면했다. 굳이 감정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버스에 타서 이어폰을 꽂았다. 엄마 입이 뻐끔, 뻐끔하는 것이 보인 것도 같았다. 혜진은 이어폰을 귀 깊숙이 꽂고 눈을 감았다. …왜 나를 미워하나요…난 매일 밤 무서운 꿈에 울어요…왜 나를 미워했나요… 꿈에서도 난 달아날 수 없어요… 고등학생 때 걸핏하면 들었던 노래가 흘러나왔다. 엄마, 아빠, 나를 미워했나요, 나는, 나는 꿈에서도 달아날 수 없어요… 구슬픈 노래를 자장가 삼아 억지로 잠을 청했다. 악몽이라도 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얘, 이혜진. 너 우니 지금?”
“으응, 으으응…”
한 시간쯤 달렸을까? 잠들어있던 혜진에게서 흘러나오는 신음에 엄마가 혜진을 흔들었다. 꼭 감은 눈에서 맑은 눈물이 줄줄 흘렀다. 얘가 이젠 자다가도 우네,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던 엄마가 혜진을 한 번 더 부르려던 순간 혜진이 깨어났다. 엄마, 엄마 물 있어요? 으응, 여기. 가쁜 숨으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숨을 몰아쉬던 혜진은 맺힌 식은땀을 손등으로 쓸고 다시 눈을 감았다. 엄마는 몇 분을 의아스런 눈으로 혜진만 쳐다보았다.
“엄마, 도착할 때 됐어요. 일어나봐.”
혜진이 엄마를 흔들어 깨웠다. 버스에서 곤히 잠들어있던 엄마가 눈을 비비적대며 일어났다. 엄마의 눈가 화장은 번진 지 오래였다. 새까만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는, 둘 중 어떤 것이 번진 것인지 분간도 안 되는 채, 엄마의 울음 때문인지, 자고 일어난 탓인지, 비비적댄 탓인지도 모를 만큼 눈가를 새까맣게 물들였다. 아까도 엄마 얼굴이 이랬나? 사실 혜진이 알 턱이 없었다. 아까 혜진은 엄마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다. 얘, 내리자. 네. 혜진이 짐을 챙기다 가방을 거꾸로 들었다. 핸드폰, 가방, 이어폰, 지갑, 카드… 온갖 것이 쏟아져 내렸다.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고, 혜진의 귀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혜진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엄마가 혀를 쯧, 차는 소리가. 비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