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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공작님이 너무해!
작가 : 패티라이트
작품등록일 : 2017.11.1

[마법천재여주/기사되려는여주/내가최고야여주/여주바라기남주/공작남주/집착남주/그런데여주는남주가좋아하는걸모르고]

"이 정도 스펙으로 잘도 우리 기사단에 지원했군 그래."

"네? 뭐라구요?"

"체력 중하, 전술전략 중, 실용마법 중. 그나마 봐줄 건 물에 대한 마법인가. 기사단이 어린애 장난인 줄 아나?"

기사가 되고 싶은 천재마법사 여주가 여주가 다칠 세라 어화둥둥하려는-나름-남주의 마수를 피해 기사로 성장하는 이야기.

"하. 감히 나를 까. 이 로지 카펜샤를? 제국 내로라하는 상단과 황궁에서도 모셔가려 하는 이, 나를?"

 
만남
작성일 : 17-11-01 01:05     조회 : 246     추천 : 3     분량 : 4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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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하. 문을 직접 열지 마시라고 제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아무리 늙은이라지만 저도 아직 문 열 힘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선 숨길 수 없는 흐뭇함이 떠올라 있었다. 그 표정을 본 카지르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피식, 바람 빠지는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손짓했다.

 

 

 방 안의 분위기는 조금 전 로지와 대면했을 때와는 많이 달랐다. 단정하고 위압감이 있었던 방이건만 어느새 조금 더 가볍고 편안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좋게 말하자면.

 

 

 그래, 조금 더 직설적으로 하자면……. 더러웠다.

 

 

 면접 때만 해도 나름 깔끔했던 집무실 책상은 어느새 각종 서류로 어질러져 있고 분명 반질반질한 대리석이었던 바닥에는 커다란 커피자국이 진하게 남은 붉은 카펫이 깔려있었다. 심지어 카펫 끝자락은 제대로 펴지지 않아 주름이 졌다.

 

 

 그러나 카지르는 집무실의 모양새 따위는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는지 책상 옆에 놓인 카우치에 기다란 몸을 눕듯이 기대고 있을 뿐이었다. 긴 다리가 카우치 안에 다 구겨 넣지 못하고 바깥으로 쭉 뻗어있었다. 그나마 채우고 있던 셔츠의 소매 단추도 어느새 풀어진 채였다.

 

 

 알렉스는 일견 한량처럼 보이는 공작의 자세에 익숙했지만 그래도 도련님 시절부터 모셔온 제 주인의 자유분방한 몸가짐에 말 안 듣는 손자를 보는 할아버지 기분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분명 로지 카펜샤께서 온다고 오전에 집무실을 깨끗하게 청소한 걸로 아는데 이 자국은 또 무엇입니까

 

 “아, 안 그래도 카펫은 새로 사는 게 좋겠는 걸. 이번에는 어두운 색으로. 아까 책상에서 몸을 일으키다 커피를 쏟았는데 이건 밝아서 그런지 그대로 자국이 남더라고.”

 

 

 “멀리서 날아오는 화살도 그대로 잡으시는 분께서 어쩌다가……. 어릴 적부터 온갖 기상천외한 실수는 다 벌이셨지만 잔을 쏟는 건 처음 보는 군요. 그래서, 설마 면접을 이 상태로 진행한 것은 아니겠지요. 전하?”

 

 

 “날 뭐로 보는 거야. 알렉스.”

 

 

 문 열리기 직전에 재빠르게 카펫을 말아서 책상 뒤로 숨겨뒀다는 얘기를 하며 뿌듯한 웃음을 짓는 공작을 보던 알렉스가 조용히 하인들을 불렀다.

 

 

 저 카펫이 얼마짜리인데……. 제 주인은 사치품이 어디 말만 하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줄 아는 데 집무실에 깔아놓는 카펫의 가격만 해도 세가 작은 귀족은 엄두도 내지 못할 귀중품이었다. 꼭 잘 세탁해서 집무실에 다시 깔고 말리라.

 

 알렉스가 굳게 다짐하는 동안 동방에서 직접 공수한, 장인이 한 올 한 올 혼연의 힘을 불어넣은 천연모 카펫이 장정 네 명의 손에 간신히 들려 밖으로 나갔다.

 

 저 무거운 것을 혼자서 말아 들었다는 공작의 능력이 새삼 보이는 순간이었다.

 

 

 카펫이 나가자 어수선했던 방 분위기가 한결 정돈되었다. 그래도 대리석 바닥은 깨끗한 것을 본 알렉스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기분이 매우 좋아 보이는 공작에게 한 걸음 떨어진 곳으로 다가갔다.

 

 

 

 “그럼 일주일 후에 로지님을 앞으로 지낼 방으로 모시겠습니다. 보르자 기사단장에게도 미리 말을 하는 것이 좋겠군요.”

 

 

 앞으로 할 일을 속으로 계산하며 말을 잇는 알렉스에게 카지르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그녀를 입단시키지 않을 거니까.”

 

 

 그리고 이어진 폭탄 같은 말에 속으로야 어떻든 겉으로는 평안함을 유지하던 알렉스의 표정이 처음으로 깨졌다.

 

 

 

 “아니. 이번에 훈련장 옆에 지은 새 기사단 숙소도 로지님 때문에 지은 것 아닙니까. 급하게 짓느라 아직 내부 단장도 마치지 않았는데 그 건물은 어떡하고요.”

 

 

 “어떤가. 기왕 지은 거 기사들에게 제공하면 사기도 오르고 좋지. 옛날 숙소는 말이 고풍스러운 건물이지 사실 남자들만 지내온 지 오래된 곳이라 시설은 별로였잖아.”

 

 “헤르스 지역-봉토로 받은 헤샤 왕국은 공작령이 된 후 명칭이 바뀌었다.-에서 난다 긴다하는 장인들을 모두 불러 모아 정원 단장에 밤낮없이 갈아 넣으신 이유도 로지님 때문이잖습니까.”

 

 “그간 좀 황량했잖아. 새로 단장할 때가 되었지.”

 

 “조경을 새로 한 지 두 달이 채 넘지 않았습니다만.”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공작의 찌푸려진 미간에서 고집스러움을 읽은 알렉스가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기대하고 계셨잖습니까. 로지님의 지원서를 받고 몇 날 밤을 꼬박 새워 훈련해서 애꿎은 기사들만 침대신세 지게 하셨으면서 왜 갑자기 심경에 변화가…….”

 

 

 십 대도 아니건만 로지의 지원서가 공작성에 도착한 뒤 며칠 동안, 공작의 행동은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 같았다. 밤마다 잠을 못자고 굳이 훈련장을 돌다가 자고 있는 기사들 문을 두드려 대련을 빙자한 혈기 발산을 계속 해대는 건 약과였다. 나중에는 반경 오백 미터 안에 공작이 떴다 하면 기사들이 모두 꽁지 빠지게 도망을 다닐 정도였으니 말 다한 것이다.

 

 기사단장이 몰래 자신을 불러 공작님을 말려달라 하소연하던 때를 생각하면 알렉스는 아직도 머리가 아팠다.

 

 

 

 그런 그가 막상 면접 직후 그녀를 불합격 시켰으니 알렉스로선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는 사자 기사단 최초 여마법사-여기사는 이미 몇 명 있었다.-를 어떻게 대우해야 티 안 나고 주인마님 대하듯 할 수 있을지 완벽한 계획이 있었는데 모두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의 주인은 입을 꾹 다문 채 왜 합격시키지 않았는지 얘기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서 저에게는 더 이상 이유를 이야기해주지 않을 것을 느낀 알렉스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입단이 거절되었으니 그 분께서도 오래 머무르진 않으실 텐데 말입니다.”

 

 

 “어쨌든 그녀도 먼 길을 오느라 지쳤을 테니 손님으로서 최고의 대우를 해줘. 남부까지 내려온 김에 휴양하는 기분이 들도록.”

 

 

 “취업의 꿈이 물거품이 되었는데 잘도 휴양 기분이 나겠습니다.”

 

 

 “…으음. 언제 시간을 내서 식사라도 같이 하는 게 좋을까?……위로 차원에서 말이야.”

 

 

 “전하. 전하께선 자신을 내친 상사-가 되었을- 사람과 함께 식사하고 싶을까요? 아마 앞으로 로지님과 같은 식탁에 앉는 건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알렉스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에 내내 나른하게 퍼져있던 공작의 눈썹이 무언가 불만스러운 듯이 한쪽으로 치켜올라갔다.

 

 

 “너무 심하게 말하는 거 아니야?”

 

 

 “현실을 알려드리는 겁니다.”

 

 

 칼같이 떨어지는 알렉스의 말에 카지르가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유능한 마법사다. 그건 누구보다 그가 잘 알았다. 그러나……. 쉬이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였다. 그의 모래색 눈동자가 얇은 눈꺼풀 밑으로 사라졌다.

 

 

 

 

 

 ---------------------------

 

 

 

 

 “와아. 나 도대체 얼마나 잔거야.”

 

 

 

 

 눈을 뜨니 이미 밖은 어두워진 상태였다. 로지는 대충 머리를 쓸어 올리며 잠이 덜 깬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피곤하긴 정말 피곤했었나 보네. 합격이고 나발이고 피곤하면 잠이 온다는 원초적인 본능을 깨달은 그녀가 크게 하품을 했다.

 

 

 

 

 “일단 씻어야겠다. 제일 비싼 입욕제를 잔뜩 풀고 물도 펑펑 쓰고야 말겠어.”

 

 

 

 

 마법으로 씻는 게 제일 간편하지만 그녀가 억울해서라도 그건 안 될 말이었다. 공작가의 재정에 티끌의 눈곱만큼의 생채기는 내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하며 로지가 힘차게 일어났다,

 

 ‘으, 아무래도 바닥에 곧장 발을 대면 시릴 것 같은데.’

 

 카펫이 침대 앞에 깔려있다지만 그 외의 부분은 전부 반들반들한 대리석이 깔려있는지라 냉기가 그대로 발바닥으로 침투할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한 로지가 그대로 침대와 바닥의 높이 차는 생각하지도 않은 채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발이 허공을 휘저으며, 누군가가 보았다면 바닥으로 떨어져 크게 다칠까 비명을 지를 만한 순간.

 

 ‘퐁-, 포퐁-’

 

 

 아무리 질 좋은 카펫이라도 성인 여성이 떨어진 것이라기엔 상당히 가벼운 소리가 났다. 그대로 추락하는 대신 그녀의 발밑에 생긴 물거품들이 전등 빛을 받아 노랗게 반짝였다. 하느작하느작 나부끼는 얇은 물거품들이 익숙하다는 듯 로지는 그대로 물에 몸을 맡기며 욕실까지 걸어갔다.

 

 그대로 욕실 앞에 도착한 로지가 문을 열고 들어가려다 말고 그대로 몸을 돌려 여전히 허공에 떠있는 물거품으로 된 장막을 쳐다보다, 손가락을 들어 가볍게 튕겼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비단결 같던 물의 흐름이 일순간 정지하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샐 수 없이 많은 물방울은 박제된 곤충날개처럼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전등 빛만 반사했다. 끊임없이 유동적이어야 할 자연의 법칙을 무시한 모양새는 비현실적인만큼 신비로웠다. 그녀가 다시 한 번 손을 내젓자 수많은 물방울이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눈 한 번 간신히 깜박일 만큼 순간의 일이었다.

 

 물기 하나 없는 바닥은 오히려 조금 전보다 더욱 깨끗해진 기분이다.

 

 

 “이렇게 대단한 내 능력이 필요가 없다고? 하! 이 광경을 공작도 봤어야하는 건데!”

 

 

 아깝다. 아까워. 로지가 욕실로 들어가며 공작 앞에서 실수인 척 넘어져볼지 고민했다. 성 중앙의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거면 상황도 긴박해보이고 충분히 자기 피력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실 일반 귀족 영애였다면 그런 건 ‘넘어지는 날 잡아주세요.’ 상황이겠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당황한 공작이 잡기 직전에 마법으로 스스로 방어하는 걸 보여주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어차피 그녀의 마력은 그녀의 위험을 스스로 감지하니 실수 할 일은 없었다.

 

 

 일부러 욕조에 뜨거운 물을 수동으로 받으며 로지가 제 완벽한 계획에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으, 아니야. 그래도 나름 기사도를 걸으려하는 건데. 아무리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지만 그런 방법은 정당하지 못 해.’

 

 

 옆에 놓인 입욕제들의 설명을 꼼꼼하게 읽은 로지가 물에 한가득 뿌렸다.

 

 따뜻한 물에선 달달한 마른 꽃잎 향이 났다. 몽글몽글 거품의 산이 욕조 밖으로 흘러내렸다. 뜨거운 김으로 뿌옇게 진 시야를 헤치고 욕조 안에 몸을 담그니 쏴아- 물이 흐르는 소리가 경쾌했다. 로지는 무릎을 가슴으로 끌어 모아 그 위에 볼을 대었다. 새하얀 거품에 얼굴이 반쯤 잠겼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가만히 거품을 바라보다 동그랗게 입을 모아 후, 하고 부니 거품이 한들한들 민들레 홀씨마냥 허공으로 퍼져나갔다.

 

 

 

 끝을 모르고 올라간 방울이 소리 없이 터지는 모습이 꼭 자신과 같아, 그녀는 김 서린 공간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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