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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그것은 흩날리는 벚꽃처럼
작가 : 제이J
작품등록일 : 2017.10.30
그것은 흩날리는 벚꽃처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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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그녀는 그곳에 있었다.

그것은
한 여자가 기억을 잃은 이유이자,
한 남자가 그 기억을 필요로 하는 이유였다.

그날 밤,
그녀는 살인자를 보았다.

 
1부 <재회> #1
작성일 : 17-10-31 12:37     조회 : 293     추천 : 1     분량 : 6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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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재회>

 

 팔각지붕위에 앉아있던 까마귀가 큰 날개를 휘저으며 날아올랐다. 골목을 지나던 아이가 작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아이는 새가 머물렀던 지붕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낮고 아담한 목조주택들 사이에서 고풍스런 빅토리안 양식으로 지어진 대리석 집은 단연 눈에 띄었다. 성당을 연상시키는 팔각지붕과 돌출 창을 눈여겨보던 사람들은 어느 시점에서 한결같이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아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엄마, 이 집은 참 이상해. 나무도 꽃도 하나도 없어요.”

 

 울타리에서 본채까지 이르는 널찍한 정원을 채우고 있는 것은 자갈뿐이었다. 자갈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모든 것이 회색빛이었다. 생명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공간은 을씨년스러웠다.

 

 “그리고 저기 이상한 글씨도 있어.”

 “신경 쓰지 마. 유치원 늦겠다. 얼른 가자.”

 

 여자는 아들의 손을 움켜쥐었다. 아이의 걸음이 엄마의 그것을 따르느라 종종대며 바빠졌다. 그러면서도 눈길은 여전히 울타리에 남겨진 낙서에 머물러있었다.

 

 野獣の城

 ‘야수의 성’

 

 ----------------------

 

 “해리성 기억상실입니다.”

 

 수백 번도 더 들은 말이었다. 당연히 모를 리 없는 병명이었다. 병식(病識)은 이미 충분했다.

 

 “사고현장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은 충격으로 인한 부분기억상실로 볼 수 있습니다. 요즘 들어 자꾸만 같은 꿈을 꾼다고 하셨죠? 어떤 꿈인가요?”

 “집안이 피범벅이에요.”

 “꿈은 잃어버린 기억의 일부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기억이 되살아 날 수 있다는 건가요?”

 “그럴 수 있죠. 기억상실이란 인간의 뇌가.”

 

 지겹도록 빤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뭔가 뾰족한 수가 있지 않을까 했던 기대감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것은 이 방에 들어서서 오늘의 담당의를 대면하는 순간 산산이 조각났다.

 

 마흔을 갓 넘긴 듯 보이는 의사는 티 나지 않게 멋을 부리는 부류였다. 흰 가운 안으로 얼핏 보이는 명품 와이셔츠는 전문 세탁소에서 다림질한 듯 미세한 구김 한 점 없었고, 가위가 스쳐간 흔적이 뚜렷한데도 자른 티가 전혀 나지 않는 자연스러운 헤어스타일은 그가 적어도 2주에 한 번씩은 단골 헤어샵에 들린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깍지를 낀 채 테이블에 올려놓은 남자의 긴 손에는 반지자국이 옅게 남아있었다. 정기적으로 반지를 끼고 뺀다는 증거였다. 책상에 보란 듯이 놓인 가족사진으로 미루어 보아 은밀한 상대와 밀애를 즐기고 있는 게 틀림없을 터였다.

 

 보라는 눈을 감았다. 쏟아져 들어오는 시각적 정보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바람과 달리 이번엔 후각이 날을 세웠다. 은은한 스킨향과 뒤섞여 있는 여자 향수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벌떡 일어나 진료실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보라는 소파에 등을 기댔다. 이름 모를 더운 나라에서 나고 자랐을 물소의 가죽이 선뜩했다.

 

 “인간의 불안은 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죠. 꿈이란 인간의 무의식이…….”

 [그건 보라 네 안의 두려움과 불안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야.]

 

 삼촌 역시 그렇게 말했다. 두려움과 불안이 만들어낸 허상. 삼촌의 치료가 핵심을 회피하고 있다는 느낌은 기분 탓만은 아니었다. 믿지 못하는 건 그의 의학지식이나 정신과 전문의로서의 자질이 아니다. 삼촌의 눈동자였다. 그녀를 볼 때마다 흔들리는 그의 시선이었다. 삼촌은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고, 드러나지 않길 바라는 게 분명했다. 그것이 십년 전, 그날 밤의 일과 관련된 것이라는 건 빤한 일일터였다.

 

 확인받고 싶었다. 피로 얼룩진 피아노 건반도, 싸늘하게 식어버린 손가락들도 모두 잘못된 기억일 뿐이라고 그녀는 믿고 싶었다. 꿈이라고 하기엔 모든 것이 너무나 생생한 그 장면들을 확실히 부정해줄 누군가가 그녀에겐 절실했다. 그것이 보라가 온갖 병원을 전전하고 다니는 이유였다. 물론 오늘도 그 간절한 바람은 실패에 그칠 모양이었다.

 

 “듣고 계시나요?”

 

 보라는 감았던 눈을 떴다. 그 순간 스킨향과 뒤섞인 향수 내음이 접수처에 앉아있던 여자의 것과 일치한다는 것이 떠올랐다. 5분 만에 알아차린 상대의 모든 것을 이 자리에서 읊어댄다면 어떨까. 남자의 입술에 미세하게 묻어있는 핑크빛 무언가가 바깥의 여자가 덧바르고 있던 립스틱이라는 걸 알고 있다고 말하면 상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적어도 쓸데없이 이어지는 저 빤한 이야기들은 멈추게 할 수 있으리라.

 

 5년간의 은둔생활을 자살시도로 마감하던 날, 흐려지는 의식으로 구급카트에 실려 나가며 얼굴로 쏟아지는 햇살을 느끼던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전과 달라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녀는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바깥공기의 기온과 습도, 바람의 방향과 거기에 섞인 미세한 내음들이 어지럽게 달려들었다. 정맥주사를 놓는 구급대원의 빠르고 미세한 손놀림, 구급차 안을 가득 메운 약품 냄새, 그녀 이전에 구급차 안에 머물렀던 환자의 체취까지 모든 감각들이 흐려지는 의식을 잡아챘다. 그때부터였다. 자신을 대하는 삼촌의 태도가 개운치 않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은.

 

 한심한 의사는 여전히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집착할수록 증상은 심해진다. 마음을 편히 먹으면 호전될 것이다. 병명만큼이나 숱하게 들어온 이야기였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진 않았다. 지금껏 낭비한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아까웠다. 보라는 소파에 기대었던 등을 곧추세웠다.

 

 “호전될 수 없을 거예요.”

 “네?”

 “오빠가 살해당한 현장에 있었죠.”

 “…….”

 “집안에서 오빠가 죽었고, 그 집은 불타서 무너져 내렸어요. 그리고 나 혼자, 살아남았죠."

 “…….”

 “피할 수 없단 소리에요. 그래서 알아야겠어요. 내가 떠올리고 있는 것들이 진실인지, 허상인지. 아쉽게도 당신은 그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할 것 같네요.”

 

 나불대던 입이 꾹 닫혔다. 동정인지 연민인지 모를 눈빛이 그녀를 향해 있었다. 살아남은 자에 대한 일종의 경외일지도 몰랐다.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오늘도 새로운 의사는 그녀에게 수면제를 처방해주는 역할만 수여할 터였다. 그걸로 되었다. 서랍 속 유리병의 약은 필요량의 절반도 되지 못했다. 언젠가 제 스스로 삶을 끝내기로 결심할 여자에게 치사량이 되어주지 못할 터였다. 이런 머저리같은 의사들을 아직은 더 상대해야 하는 이유였다.

 

 진료실 한쪽 창문 너머에 잿빛구름이 무심히 떠있었다. 의지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태연한 척 하면서도 늘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삼촌도, 의학상식만 늘어놓는 엉터리 의사들도. 무슨 이유에선지 벚꽃사진이 아른거렸다. 그것이 나를 구원해 줄 수 있을까. 보라는 체념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

 

 막 들어선 카페에는 커피향과 녹차향이 뒤섞여 있었다. 트렌치코트에 매달려있던 물방울이 나무 판자로 짜여진 바닥에 뚝뚝 떨어지며 진갈색 자국을 남겼다. 아침부터 하늘이 꾸무럭거리더니 급기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 내리는 날씨와 이른 오전이라는 타이밍이 겹친 탓인지 손님은 거의 없었다. 교토 명소의 풍경으로는 보기 힘든 한가로움이었다. 보라는 하나를 찾아 눈으로 실내를 더듬었다.

 

 “매니저님, 집에 다녀오신다고 나가셨는데요.”

 “집에요?”

 “네, 손님이 오신다면서요.”

 

 직원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익숙한 시선이다. 야수의 성에서 매니저와 함께 사는 의문의 여자. 긴 세월 작은 방에 스스로를 가두었다가 결국 제 손목을 긋고 피범벅인 상태로 구급차에 실려 나온 여자라는 꼬리표는 시간이 흘러도 떨어질 줄을 몰랐다.

 

 “말차 라떼 하나 주세요. 비 좀 그치면 가지고 갈게요.”

 

 보라는 후미진 구석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아마 한 달 정도 걸릴 겁니다.”

 

 옆자리에 앉은 남자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려왔다. 보라의 고개가 무의식적으로 돌려진 것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모국어를 접한 자연스런 반응이었다.

 

 “꽃이 지고 나서야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화보촬영은 양작가가 진행할 거에요.”

 

 꽃구경을 온 모양이었다. 피지도 않은 꽃을 보러 벌써 오다니 시기를 잘못 짚었거나, 하는 일없이 한가로운 족속인 게 분명했다. 아니면 꽃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피는 순간부터 지는 모습까지 빠짐없이 즐기기로 작정한 걸지도 몰랐다. 정체가 무엇이든 꽃 보러 온 사람치고는 꽤 비장한 어투였다.

 

 쓸데없는 관심이었다. 보라는 고개를 유리창 너머의 정원으로 돌렸다.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시선을 너무 오래 주었다. 바람둥이 의사를 관찰한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피곤했다. 아닌게 아니라 관자놀이에서 두통이 번져오고 있었다.

 

 “올해 벚꽃은 여기서 보려고요.”

 

 벚꽃. 저도 모르게 고개가 다시 돌아갔다. 테이블 위에 놓인 두 개의 카메라가 그녀의 시선을 먼저 잡아챘다. 하나는 전문가용으로 보이는 고급 디카였고, 다른 하나는 세월의 흔적이 잔뜩 묻은 오래된 구형 필름카메라였다. 그 옆에 펼쳐져있는 수첩사이에는 역시나 오래되어 보이는 만년필이 놓여있었다.

 

 “따뜻하게 드세요. 간식거리 좀 챙겨드릴까요?”

 

 테이크 아웃잔을 건네며 직원이 물었다. 더 이상 엉뚱한 것에 신경을 쓰고 싶진 않았다. 보라는 고개를 작게 저으며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였다.

 

 +

 

 처마 밑에 선 보라는 허공으로 손을 내밀었다. 빗방울이 서늘하게 손바닥을 때렸다. 쌉쌀한 녹차가 얇은 스트로우를 통해 입안으로 들어왔다. 어지러웠던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꽃구경을 온 한국인들을 마주칠 때마다 이렇게 신경이 곤두선다면 이번 봄은 몹시도 피곤한 계절이 될 거였다.

 

 “갑자기 웬 비야?”

 

 나지막한 구시렁거림에 보라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조금 전 카페에서 들었던 목소리라는 걸 인식했을 때는 허리를 구부정하게 꺽은 남자가 처마 밑으로 들어선 후였다. 물색 재킷위로 같은 빛깔의 빗물이 희미하게 번져가고 있었다. 커다란 카메라 가방이 자꾸만 보라의 몸에 닿았다. 그녀는 움츠리며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간신히 가라앉힌 신경이 다시 곤두서고 있었다. 비를 맞으며 그냥 뛰어갈까 싶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가야할 길이 너무 멀었다. 이 정도 장대비면 겉옷은 물론이요 속옷까지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될게 뻔했다. 낯선 사람하나 피하려고 선택하기엔 무모한 행동이었다. 보라는 초조한 눈으로 동쪽 구석부터 더디게 개어오는 하늘을 훔쳐보았다.

 

 “근데 여기서 은각사는 어떻게 가야되는 거야?”

 

 주위를 황망하게 둘러보던 남자가 보라를 흘깃거리기 시작했다. 말을 걸까 말까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노.”

 

 그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택한 언어와 인적 없는 풍경으로 보아 보라를 향한 말이 분명했다.

 

 “킨카쿠지와 도우얏 테…….”

 

 완성되지 못한 문장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저런 회화실력으로 여행을 어찌하겠다고 나선건지 무모한 용기가 가상했지만 한가롭게 그걸 논할 때는 아니었다. 피하고 싶지만 갈 곳도 없었다. 비는 여전히 장대비였고 처마 밑에 더 이상 여분의 공간은 없었다.

 

 “히다리? 미다리?”

 

 발밑의 보도블럭만 눈으로 더듬던 보라가 마지못해 고개를 들어올렸다. 차분하지만 날카로운 남자의 눈매가 그녀에게 향해있었다. 길 묻는 사람의 것이라고 보기엔 어쩐지 복잡한 눈빛이었다.

 

 “히다리니 마갓떼 맛스구 잇떼 쿠다사이.”

 “히다리? 아, 오른쪽?”

 

 남자는 50%의 확률도 제대로 못 맞추고 있었다. 내버려 두고 싶었지만 그쪽으로 한없이 가버리면 엉뚱한 곳에 다다를 거였다. 아무리 한국인이 달갑지 않대도 물 건너 온 반푼이가 비 내리는 낯선 도시를 헤매는 걸 그냥 두고 볼만큼 매정하진 않았다. 누군가에게 두고두고 원망을 듣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었다. 보라는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왼쪽으로 돌아서 쭉 가시라고요.”

 

 남자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한쪽 입꼬리를 살며시 올린 표정에는 많은 것이 미묘하게 얽혀있었다. 상대가 한국 사람이라는 걸 알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갑게 지어보이는 단순한 표정과는 뭔가 달랐지만 그게 무엇인지 짐작되진 않았다.

 

 “한국인?”

 “…….”

 “한국사람 만나니까 되게 좋네. 사람들이 영어를 잘 못 알아들어서 답답했거든요.”

 

 타국에서 마주친 동포에 대한 반가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 장단에 맞춰줄 마음은 전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인을 만나는 게 보라에겐 전혀 편치 않은 일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떠나온 땅에 대한 모든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그러나 상대가 한국인이라는 것 보다 신경에 거슬리는 것은 여전히 자신에게 꽂혀있는 남자의 진지한 눈빛이었다. 썰렁한 기온 탓인지, 이상한 예감 탓인지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길도 알려줬는데 갈 길 서둘러 가세요.”

 “그 쪽은 어디까지 가는데요?”

 “그 쪽이 신경 쓸 일이 아닐 건데요.”

 “우산도 없이 처마 밑에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있는 사람을 두고 혼자 가라는 거에요? 인심 야박하게?”

 “…….”

 “같이 쓰고 가죠.”

 

 우산을 펼쳐든 남자가 처마 밖으로 나서며 빙그르 돌아섰다. 슬로우 모션처럼 느릿한 동작이었다. 푸른 우산위로 빗방울들이 동그랗게 말린 채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 남자가 우산을 한번 들었다 내렸다.

 

 “이왕 길 알려준 김에 더 알려줘요. 이 주소를 찾아가야 하거든요. 은각사 근처라는데.”

 

 남자가 내미는 종이를 보라는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京都市東山祇園町南側 570’

 

 머릿속의 모든 회로가 뚝 끊겼다. 두려움이 해일처럼 크게 덮쳐왔다. 정체모를 무언가를 두렵게 더듬는 소경마냥 그녀의 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굳어있던 입술이 한참 후에야 간신히 움직였다. 질문이라기엔 탄식같은 물음이 그 사이로 새어나왔다.

 

 “당신…… 누구에요.”

 

 남자는 말없이 한쪽 입술을 올렸다. 같은 쪽 볼에 보조개가 깊숙이 패였다. 뭔가를 꿰뚫는 듯한 눈빛에 담겨진 의미들이 도무지 읽히지 않았다. 온 몸의 감각들을 동원하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보라는 들고 있던 종이를 꽉 쥔 채 황망하게 그를 마주보았다.

 

 “누구냐고요.”

 “……맞구나. 당신. 화보라.”

 

 오랫동안 헤어졌던 피붙이를 맞닥트린 듯 미세하게 떨리는 그의 목소리는 무척 절절했다. 그녀는 한 손에 종이 조각을 그러쥐고 있었다. 거기에 적힌 주소는 꼬마들이 그 사이 또 한 번 낙서를 하고 달아났을지도 모를 회색 집의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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