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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용사 이디스
작가 : 앵스티
작품등록일 : 2017.10.30

[마왕딸(?)여주/황제아들(?)여주/남장여주/용사여주/기사여주/걸크러쉬/예쁘고 잘생기고 조신하고 참한(?) 남주들 다수 대기중(??)]

마왕의 손에 키워졌었지만 아르딘 제국의 삼황자이자 제국 제일가는 기사이자 마족에게서 세상을 구할 용사인 이디스의 꿈은 세계평화가 아닌 운명적 사랑!

그녀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사랑을 받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표지는 @HSCOMMI ‏님께서 커미션으로 그려 주셨습니다! *^//^*

 
겨울 축제일
작성일 : 17-10-30 22:27     조회 : 253     추천 : 0     분량 : 3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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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나와 블랑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바삐 뛰어다닐 때, 정작 이디스 쪽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소매치기는 인적 거의 없는 뒷골목으로 그녀를 끌어들이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바로 잡혀서 지금은 이렇게 이디스의 엉덩이 아래 깔려 있는 처지였다.

 

 “끅끅끅…… 얼른 도망치지 않으면 후회할 거다!”

 

 끝까지 입만은 살아 있었다. 이디스는 반쯤 일어섰다가 도로 털썩 주저앉아서 흙바닥에 뭉개져 있던 소매치기가 어흑 어흑 울게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더 버티고 싶어지네. 소매치기 씨.”

 

 처음에 소매치기는 자신의 동료가 아주 많다며, 그들이 이디스의 친구들을 혼쭐내주러 갔을 거라고 말했었다. 그러니 자신 따위는 신경 쓰지 말고 얼른 꺼지라는 소리였는데 아무래도 이상해서 그냥 버텨 봤다. 그랬더니 그 다음엔 자신의 동료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을 거라고 이디스를 협박해 왔다. 그는 멍청하게도 이디스가 자신을 끌고 가 경비대에게 넘길 수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실제로 방향치인 이디스로서는 혼자 힘으로 무사히 큰길까지 나갈 방법이 없긴 했다. 언제 돌발행동을 할지 모르는 소매치기를 제압해서 이 골목을 헤매는 것보다는 메리나가 끌고 올 경비대나 블랑을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게 이디스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선 그게 정답이었다.

 

 “……블랑?”

 

 저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여럿은 아니기에 소매치기가 말한 패거리는 아니겠지 싶었던 이디스가 소리 내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 메리나라기엔 지나치게 무겁고 어딘지 눅눅한, 축축한 데가 있는 발소리가 검은 그림자 안쪽에서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그가 그림자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순간 이디스는 그마저 그림자인 줄 알았다. 원래도 전신을 새까맣게 하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피부까지 검지는 않았는데 그 순간만은 그저 전신이 다 검어 보였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그의 두 눈만은 붉게 빛나고 있었다.

 

 불길하고 사악한 ‘뭔가’를 연상시키는 모습에 깜짝 놀라 눈을 비볐다. 다시 보니 그녀가 익히 잘 아는, 검은 눈의 블랑이 한숨을 푹 쉬며 다가오고 있었다.

 

 “블랑!”

 

 방금의 환상을 부정하듯 이디스는 저도 모르게 평소보다 과장스러운 태도로 블랑에게 달려들었다. 길치인 자신을 구해줄 그의 품에 가 덥썩 안겼다.

 

 그의 품에선 어릴 적 황제와 독대할 때마다 맡게 되던, 그런 냄새가 났다. 다른 누군가가 단발마처럼 남긴 불안 공포 슬픔 억울함 그리고 피의 냄새였다. 정말로 실체화되어 있는 어떠한 냄새는 아닐지 모르나 이디스는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감을 믿었다.

 

 촤악! 매정한 채찍질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블랑의 심장이 격하게 뛰는 것처럼 이디스의 심장도 불안으로 쿵쿵쿵쿵 뛰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무슨 일이 있었기에 블랑에게서 이런 냄새가 나는 거지?

 

 “무, 무슨 일 있었어?”

 “그건 제가 여쭤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난 보다시피 멀쩡해. 소매치기는 저기 잡았고.”

 

 이디스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뒤를 가리켰다. 하지만 줄에 묶여 있는 것도 아닌 소매치기가 지금까지 그 자리에 가만있을 리 없었다. 이미 텅 빈 골목을 보며 이디스가 뒤늦게 후회하는 사이, 블랑의 눈이 다시 한 번 붉게 물들었다. 그는 이 일의 발단이 된 소매치기를 곱게 놔줄 생각도 곱게 죽여줄 생각도 없었다.

 

 “이, 이건 뭐야!”

 

 부리나케 도망치던 소매치기는 제대로 된 비명소리 한 번 남기지 못하고 검은 구덩이에 빨려 들어갔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그 구덩이는 미미한 마력의 잔재만을 남긴 채 그 자취를 감추었다.

 

 소매치기가 자신의 아공간에 무사히 납치된 걸 확인한 블랑이 태연히 말했다.

 

 “놓쳤나 보네요. 그래도 이렇게 무사하시니 다행입니다.”

 “블랑은 무사해? …무슨 일 없었어?”

 

 불안으로 흔들리는 갈색 눈이 안쓰러웠다. 뭔가 눈치채 버린 걸까? 생각하며, 블랑은 한쪽 무릎을 꿇어 자세를 낮췄다. 그 동안에도 이디스의 눈은 블랑을 향해 있었다.

 

 숭배하듯 그녀를 올려다보며 블랑이 속삭였다.

 

 “내 보물이 걱정할 만한 일은 아무것도.”

 

 마성이 넘실거리는 붉은 눈과 혼란으로 가득 찬 갈색 눈이 마주쳤다. 다음 순간 이디스는 기절하듯 잠들어 버렸다. 블랑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작은 몸을 품에 안았다.

 

 그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마녀 베르웰라가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신관들의 성가가 크게 울려 퍼진 지 얼마 안 된 덕에 신성력이 도처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 곳에 웬만하면 접근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로서는 이 상황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궁금했다.

 

 “블라이디에 님. 내 계약자. 이건 무슨 상황이지요?”

 

 주름진 얼굴 한가득 호기심이 떠올라 있었다. 크고 쑥 들어간 눈이 무서울 정도로 반짝였다. 궁금한 것은 못 참는 그녀의 성정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블랑이 순순히 입을 열었다.

 

 “이디스가 불안해하기에 손을 좀 썼지.”

 “그건 그녀를 위한 건가요 아니면 당신 자신을 위한 건가요.”

 “당연히 이디스를 위한 거다.”

 

 개구진 소녀처럼 웃으며 베르웰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베르웰라의 눈엔 자신의 정체가 들통날까, 그래서 자신이 아끼는 사람에게서 외면 받게 될까 두려워 잔뜩 위축된 남자 한 명이 비치고 있었다. 본인은 부정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래서 더욱 분명히 보이는 그 마음은 늙은 마녀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사랑이 블라이디에 님의 눈을 멀게 했나요? 아니면 집착인가요? 당신께서 이러시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네요. 언제나 냉철하시던 분이.”

 “……내 계약자는 지금 나를 비난하려 하는 건가?”

 

 이리 예민하게 구는 모습마저도 신선하고 즐거웠다. 어차피 이 정도로 그가 진심으로 화내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는 베르웰라는 그녀의 기준에서 젊다 못해 어린 모습을 하고 있는 블라이디에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그럴 리 있나요? 단지, 블라이디에 님께서 잠시 잊으신 것 같아서요.”

 

 블랑은 그녀의 말을 싹 무시하려던 것을 멈추고 다시 경청했다. 베르웰라는 마법사 중 제일 먼저 이디스를 찾아낸 자이자 마왕 블라이디에 바르디아흐 이테 이테의 가장 오랜 계약자로서 수많은 도움을 준 이였다.

 

 “그게 뭐지?”

 “아가씨의 몸 안쪽에 있던 봉인의 존재요. 그게 지금 제 힘의 원류를 만나서인지 아주 요동치고 있는데 그대로 두실 건가요? 그랬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저도, 당신도, 그 누구도 몰라요.”

 

 블라이디에가 황급히 이디스의 몸을 살폈다. 베르웰라의 말대로 오래된 봉인이 헐거워지며 그 안쪽의 강대한 힘이 흘러넘치려 하고 있었다. 그저 봉인이 얌전히 풀리기만 하는 거라면 그나마 나았다. 혹시라도 뭔가 잘못되면, 이디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면…….

 

 이미 그는 지나치게 마법을 많이 썼다. 마력의 볼모지, 자연적으로 마력을 보충할 수 없는 인간계에서 마법을 쓴다는 건 제 수명을 갉아먹는 것과 같았다. 게다가 오늘은 축제일. 어느 불량한 신관이 조금 늦게까지 돌아다니고 있다가 마력을 감지해낼 수도 있었다. 그건 좋지 못했다.

 

 그러니 더 이상 마법은 쓰지 말아야 했다. 자신만을 생각한다면, 그래야만 했다.

 

 “…….”

 

 블라이디에는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아닌 이디스를 위해 마법을 썼다. 메리나가 불러온 경비병이 이디스를 찾기 전에, 그녀를 황궁으로 끌고 가기 전에 저 봉인을 안정시킬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검은 기운이 허공에 녹아들고 붉은 눈이 사방을 빠르게 훑었다.

 

 “이렇게 아가씨를 생각하는 것의 반만큼이라도 마족들을 생각해 주면 참 좋을 텐데요.”

 

 베르웰라가 저 위로 날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한 마디는 블라이디에의 주의를 잠시도 끌지 못했다.

 

 

 

 

 ***

 

 그러고 보면 블라이디에도 참 죄 많은(?) 남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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