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거리며 시아는 집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핸드폰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스마트폰 중독자였다. 곧바로 불어닥치는 금단현상에 시아는 안절부절해하며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톡을 열어 바로 린을 소환했다.
‘야, 너 뭐해? 나 지금 전화기 없어.’
다행히 린은 바로 답을 했다.
‘지금? 집이야. 전화기는 왜?’
‘왜긴! 아말고가 가지고 날랐지.’
‘엥? 어쩌다? 아니, 아까는 어떻게 된 거야?’
‘말하자면 길고...너 과외시간 언제야?’
‘곧 할 거야. 지금 오고 있는 중이랬으니까.’
‘오, 진짜? 잘 됐네. 그래, 왠지 그럴 촉이었어. 너 내 부탁도 좀 들어주라.’
‘부탁? 뭔데?’
‘내 핸드폰 좀 뺏어줘.’
‘엥? 어떡해?’
‘화장실 갈 때나 암튼 자리 비울 때 있을 거 아냐? 그때 가방 열어서 좀 꺼내 줘.’
‘야, 그래도 어떻게 막 남의 가방을 뒤지냐?’
‘야, 그건 뒤지는게 아니야. 주인 것을 돌려주는 착한 행동이지!’
‘에이...들키면 오빠가 싫어할 거야.’
‘야, 너 내가 중요해? 아말고가 더 중요해? 너 누구 친구야?’
‘니가 더 중요하지...그런데 그래도 오빠가 싫어하는 건 안 하고 싶어.’
‘야...너 언제부터 그렇게 지고지순한 민들레가 됐냐? 섭섭하게스리...’
‘아, 진짜...그럼 일단 상황 좀 볼께.’
‘그래, 너만 믿는다, 미션임파서블 성공하는 거야. 그것만 갖다주면 내가 너랑 아말고 진짜 팍팍 밀어줄께.’
‘그래? 너...진짜지?’
‘아, 당연하지.’
‘어, 어...야, 지금 왔다. 이따 톡 해.’
그렇게 린과의 톡을 마치고도 시아는 초조했다. 린이 성공할 보장도 없는데다 딱히 되찾을 수 있는 플랜B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어떻게 찾지? 설마 핸드폰 안을 열어보는 건 아니겠지? 잠금해놨으니 그건 어려울 꺼야. 어떤 미끼를 제공해야하나? 그 사람이 필요한 게..."
20대 중반의 남자가 원할 만한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돈도 많고 차도 있고 게다가 머리도 좋은데 생긴 것도 나쁘지가 않다. 굳이 고딩 여자애로부터 더 원할 게 없는 인물이었다.
"아, 몰라. 될대로 되라지!"
그렇게 침대 위로 벌러덩 누워버리는 시아였다.
***
린의 방으로 하완이 들어왔다. 허겁지겁 시아와의 컴퓨터 톡 화면을 끄고는 하완을 맞이했다.
"왔어요?"
"어, 아까도 봤는데 뭘...숙제는 다했냐?"
약간 저는 듯한 걸음으로 들어와 철푸덕하고 그가 의자에 앉았다.
"아고고...삭신이야."
"어디 아파요?"
"아니, 뭐...괜찮아."
"아까는 어디를 뛰어 갔던 거에요?"
"어, 뭐...그럴 일이 좀 있어서."
그때 그녀가 하완의 목에 난 붉은 줄인지 얼룩인지를 보았다.
"어? 목에..."
"목이 왜?"
그가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아, 씨...이렇게 세게 할 건 뭐람?"
린의 눈동자가 커졌다.
"세게요? 뭘 했는데요?"
"아, 아까 차에서...진짜 위아래로 죽는 줄 알았네."
"네에?!"
"아우, 증말 다시는 내가 차로 끌어들이나 봐라. 이렇게 다른 사람 보기에도 티가 날 정도로 해놓다니..."
그녀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 듯 그는 시종일관 거울을 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린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남녀의 애정행각만 연상됐다.
‘입에도 했을 뿐더러 설마...아래까지?’
이미 멀리 가버린 상상에 진실이 들어올 틈 같은 건 없었다.
"누, 누가 이랬는데요?"
"누구긴 누구야? 니 친구 유시아지!"
"네에?"
우정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고막까지 울리는 듯 했다.
"걔가 이렇게 해놨다고요?"
"그래!"
눈물이 찔끔 솟는 듯 했다. 핸드폰을 찾겠다며 그를 유혹한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이 하완을 좋아한다는 걸 알면서 어떻게 그런 방법을 쓸 수 있는지 정말 화가 났다. 이 남자의 처음은 자신이어야 했다. 아니, 최소한 자기가 그의 처음이 아니라면, 그가 자신의 처음이라도 되어야했다.
"말도 안 돼!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갑자기 소리치며 벌떡 일어나는 린 때문에 하완은 화들짝 놀랐다.
"어, 어?"
"이, 씨...나쁜 기지배!"
당황한 하완은 그녀는 태도를 이해 못 했다. 하지만 일단 린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래, 걔랑 놀지마. 걔가 그렇다니까...안 겪어본 사람은 몰라. 그치?"
"그런 것도 모르고 자기 핸드폰을 찾아달라구? 칫, 나를 지 시다바리로 아는 거야? 뭐야?"
"해, 핸드폰?"
"오빠 가방을 뒤져서 자기 핸드폰 나더러 가져오라고 했단 말이에요."
"헐...걔가 너한테 시켰어? 내 가방 뒤지라고?"
"앗...이런..."
그래도 이런 말까진 할 필요가 없었는데 작전을 술술 밝히고만 것이었다. 홧김에 던진 말이라 린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막았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아니던가.
"아, 요거요거 맹랑하네...쳇, 이제 사람까지 쓰겠다? 내가 그리 쉽게 당할 줄 알고?"
"아, 이런 말까진 시아한테 안 할 거죠?"
"어, 그래. 뭐, 그럴 것 까지 없지. 그런데 넌 누구 편 할꺼야? 이렇게 된 이상 너도 줄을 제대로 서야하지 않겠어?"
"아, 진짜...왜들 그래요?"
"기억해라. 난 니 대학 진로를 책임질 과외선생님이다. 알지?"
"치이...다른 걸 책임진다면 내가 확실히 가르마를 타겠는데..."
기어 들어가는 린의 목소리를 하완은 가볍게 무시했다. 그리고 가방에서 시아의 힌드폰을 꺼내 자신의 주머니에 안 빠지도록 단단히 집어넣었다.
"오늘 어디 나갈 차례지? 내가 시험 본다고 했지?"
"아...시험은 보지 말지..."
그녀의 구시렁거리는 소리에도 그는 냉혹하게 시험지 프린트물을 꺼내 그녀의 눈 앞에 펼쳤다. 그리고 이어 비장한 표정으로 빨간펜을 엑스칼리버처럼 뽑아들었다.
"힝...내 연애는 너무 함수야...어려워...흑."
***
쿵쾅 쿵쾅.
지하 클럽에서 울리는 비트 소리에 고막이 드럼처럼 진동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파랑에게 동요처럼 더이상 자극적인 소리가 되지 않았다. 그가 소속되어 있는 크루의 스테이지가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래도 인기가 제법 놓아져 황금시간대로 올라섰다. 이렇게 올라오기까지 몇년이 걸렸는지 모르겠다. 10대 때는 춤에 신동이란 말도 들었었는데 오토바이 사고를 크게 낸 이후로 발목이 예전 같지 않았다. 사람들의 함성에 그의 팀이 등장했다. 그런데 오늘은 느낌이 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