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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이제는 지나간 것들에게
작가 : 은호
작품등록일 : 2017.10.28

"엄마의 새 남편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이름과
이제는 식어버린 이름
가까이 있어도 이해하지 못 했던 이름들에게 보내는 이야기

 
1부_1회
작성일 : 17-10-28 15:35     조회 : 425     추천 : 1     분량 : 5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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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다음 달에 결혼한대.”

  “또?”

  눈 뜨자마자 듣는 소리가 이거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친엄마의 결혼식. 심지어 본인에게 직접 들은 것도 아니고 부엌에서 수선을 떨던 언니가 이쪽은 보지도 않고 던진 말이다. 거기에 무심코 ‘또?’라고 반응하고 말았다. 언니는 코웃음 치는 소릴 내며 다이어트 셰이크 가루를 텀블러에 털어 넣고 신경질적으로 우유를 부었다.

  “또라니. 이럴 때는 엄마가 너 인정머리 없다고 하는 것도 맞는 말 같애.”

  “처음 아닌 거 맞잖아.”

 말이 끝나자마자 언니가 휙 돌아서는 바람에 움찔 했지만, 나를 향해서가 아니라 발치에 다가온 고양이 때문이었다. 아침밥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열두 살이나 먹은 찡코 할배 주제에 목소리는 가냘프기 짝이 없다. ‘아이구 우리 금동이, 맘마먹자-’ 언니가 혀 짧은 소리를 냈다.

  “얘기해주고 출근한 거야?”

  “그랬으면 좀 좋아?”

 와르르-부엌 한켠에 있는 사기그릇에 사료를 쏟아주는 소리가 났다. 곧바로 달려들어 까드득 까드득 거린다. 요란도 하지.

  “아침에 청첩장 한 박스가 와서 알았다. 엄마한테 뭐냐고 전화하니까 회사로 시킬 걸 주소를 잘 못 적었대. 이런 건 얘기 좀 해주면 안 되나.”

 청첩장이라, 결혼을 알리는 대표적인 방법이긴 하지. 놀랍긴 하지만 특별히 엄청난 뉴스도 아니라서 느긋하게 물 한 컵을 따르고 식탁에 앉았다. 창 밖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가을볕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금동이가 사료를 씹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번엔 누군데?”

  “엄마 출판사 작가 중 한 명인가 봐.”

  “우리도 아는 사람인가?”

  “책으로는. 신우진 작가래.”

 신우진. 그런가, 그 사람인가. 책 제목이 뭐였더라. 그렇게 기억에 남을 만한 책은 아니었던가. 사실 얼굴도 잘 모르겠다. 뭐야 그냥 모르는 사람이네.

  “뭐였지?”

  “너도 관심 없구나? 재작년부터 떠서 이젠 베스트셀러 작가라는데. 그 책이….”

 언니가 책 제목을 말해줘서야 알겠다 싶었다. 비틀즈의 옛 노래와 동명의 제목. 센스 없기는. 아니 오히려 센스가 있는 편인건가. 읽었던 기억도 났다. 다소 초현실적인 내용과, 감각적이었던 문체. 일본 작가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그의 [사요나라 갱들이여]라는 작품을 나는 열 번 이상 읽었다. 하지만 신우진이란 사람은…한국 소설 치곤 분위기가 찜찜하지 않아 좋았고, 그거 하나만 좋았다.

  “뜬금없다. 엄마랑 그 사람이랑 사귀는 것도 몰랐는데.”

  “엄마 속을 누가 알아. 그런 젊은 사람을.”

  “젊어?”

  “엄마보다 아홉 살 연하.”

 엄마가 능력 있다고 해야 하는 건가. 물론 아주 어린 애인인 건 아니었다. 그래봐야…마흔 다섯. 뭐 그래도 엄마한테는 어린 것이다. 우리 엄마도 아직 안 죽었네. 인정한다. 이름 난 출판사의 사장인 엄마는 나이에 비해 십 년은 더 젊어 보이는데다 스타일도 세련된 편이고. 사교계라고 하는지, 그런 곳에서도 꽤나 셀러브리티인 모양이었다. 어릴 때부터 느낀 거지만 ‘엄마’ 보다는 ‘여자’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좋은 쪽으로.

  “다음 달 언제?”

  “몰라. 일단 결혼한다는 말부터 직접 들어야지.”

 맞는 말이야. 어느새 아침 맘마를 다 먹은 금동이가 내 발밑에 와서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몸무게가 7키로나 나가서 들어올리기가 쉽지 않지만 안아서 무릎에 앉혀 놓았다. 기분이 좋은지 그르륵 하고 목 울리는 소리가 났다. 별 생각 없구나 너는.

  “어쨌든. 오늘 공강이지?”

  “응. 언니는 오후 출근?”

  “어. 나 씻어야 되는데. 커피 물 올려놨어. 끓는지 봐주라.”

 나와 일곱 살 터울인 언니는 요가학원 강사였다. 외모도 연예인 못지않아서 학원에서도 인기가 많은 모양이었다. 디톡스다 다이어트다 매일같이 수선이다. 나는 별 거 없는 스물세 살 먹은 복학생이고.

  언니가 2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잠자코 금동이를 쓰다듬고 논다. 나도 아직 안 씻었지만 오늘은 나갈 데도 없으니까 멍 때리고 있었는데 금방 싫증이 났는지 금동이는 몸부림을 치며 내 품을 벗어났다. 발버둥치는 고양이를 내려놓느라 일어선 김에 핸드폰을 가져다가 포털 사이트를 켜고 검색창에 쳐보기로 했다. 신우진. 곧바로 프로필이 떴다.

  “아아.” 얼굴을 보니 알겠다. TV 프로그램에도 여기저기 나왔었지. 기억이 난다. 잘생기진 않았어도 반듯한 얼굴. 날카롭고 동양적인 인상과 큰 체격 때문에 무슨 조직원 같은 느낌도 나지만 말투나 행동은 멀끔하고 젠틀한 편이었던 것 같다. 속까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프로필 사진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어서 그나마 덜 무서워 보인다. 그렇다 해도…엄마랑 별로 안 어울리는데? 지금까지 봤던 애인들하고도 다르고.

  여태껏 쓴 작품들을 보니 첫 작품을 빼곤 다 엄마네 회사에서 출판했다. 거의 노예 작가다. 이러면 결혼할 만도 하네.

  스크롤을 내려 관련 기사들을 보다가 물 끓는 소리가 나서 얼른 일어나 가스를 끄고 다시 자리로 왔다. 문자가 와 있었다. 남자친구에게서. 일 끝나고 같이 저녁을 먹잔다.

  잠깐 스케줄을 생각해 보다가 오늘 날씨도 좋고. 조금 어수선하지만 학교 과제도 없겠다. 흔쾌히 승낙하고 내 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그래도 딸들인데, 이런 문제는 미리 말해주면 안 되나?”

  “사정이 있으셨겠지.”

  “사정은 무슨. 계속 그렇게 착한 척 할래? 저번에도 엄마한테 완전 깨져 놓고.”

  그래도 남자친구는 사람 좋게 웃으며 내 접시에 샐러드를 덜어주었다. 아침에 약속한 대로,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는 남자친구를 회사 앞에서 기다렸다가 퇴근하자마자 만나서 저녁을 먹으러 왔다. 거창하게 먹을 필요 없다고 했는데도 오늘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월급날이기도 하고 꼭 같이 오고 싶었단다. 형편이 좋지 않은데도 나에겐 늘 아끼지 않는 그것이 고마우면서도 한 편으론 걱정스럽다.

  “그냥 늦어서 집에 데려다 주고 가는 건데, 그걸 그렇게 쏘아붙여야 하나.”

  “오빠가 더 노력해야지. 마음에 드시게끔.”

  “연기하는 거야, 아니면 사람이 원래 그런 거야?”

 착한 건 좋지만, 답답하기도 하다. 이래가지고선 나만 나쁜 아이지.

  “어머니 재혼하시면, 그 분은 아빠라고 불러?”

  “아빠는 무슨.”

 불편함과, 이질감이 들었다. 엄마가 재혼하는 건 상관이 없으나, 그런 것이다. 최근 3년간 여자 셋만 지내던 집에 들어오는 낯선 남자. 싫어도 집안에서 계속 마주쳐야 하는, 새로운 얼굴과 맺는 새로운 관계.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닌데도 역시 불편하다.

  “그냥, 엄마 새남편이지. 내 새아빠가 되는 건 아닐 거야.”

  “그럼 뭐라고 부르게?”

  “부를 일이 없게 해야지.”

 되는 대로 대답했더니 남자친구는 허허 웃는다. 그렇지. 말도 안 되는 어리광이야.

  “저번 분은 아저씨라고 불렀는데. 이번에는…뭐라고 하지. 그냥 작가님이라고 할까.”

  “정말 정 없다.”

  “그건 우리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인데.”

 

  저녁을 먹고 앉은 자리에서 커피까지 마시고 밤거리로 나왔다. 공기가 싸늘하다. 추우냐고 묻기에 아니라고 했는데도 “떨고 있으면서.” 라며 한사코 자기 외투를 벗어 내 어깨에 걸쳐준다.

  “어머니 애인이랑 마주치는 거, 정 불편하면 학교 근처로 나와서 살아. 오빠가 도와줄게.”

  “됐어.”

  “오빠 괜찮은데.”

  “나도 괜찮아.” 내 방세 까지 내주고 어떻게 살려고-그런 말은 구태여 하지 않았지만.

  “아쉽다.”

 옆을 돌아보자 장난스럽지만 능글맞게 웃고 있다. “나와서 살길 바란 이유가 또 있나 보네.”

  “들켰다.”

  “음란마귀야.”

 

 

 

  “다녀왔습니다.”

  집에 들어오기 전까지 대문 앞에서 남자친구는 ‘들여보내기 싫다’는 말을 댓 번은 하고. 입술을 비롯한 온 얼굴에 도장 찍듯 입맞춤을 하고서야 겨우 나를 놓아주었다. 지난 2년 내내 이랬으니 이제는 어떤 의례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거실로 들어서자 소파에 엄마랑 언니가 앉아 있었다.

  “어쩜 이렇게 늦게 오니?” 나를 보자마자 엄마는 새침하게 쏘아붙였다.

  “10시 반 딱 맞춰 왔는데 늦어?”

  “암튼, 잠깐 와서 앉아봐. 엄마 할 얘기 있어.”

 이미 다 아는걸 뭐, 이제 와서 중대발표라고. 덕분에 손도 못 씻고 언니 옆으로 와서 앉았다. 언니도 거의 방금 들어왔는지 옷만 갈아입고 아직 화장도 지우지 않은 채였다. 엄마만 깔끔하게 씻고 스킨, 로션까지 꼼꼼히 챙겨 바른 반질거리는 얼굴로 가운을 입고 앉아서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엄마가 만나는 사람이 있거든?” 정말 소녀 같은 표정과 말투로. 약간은 수줍은 듯이 그렇게 말을 꺼냈다. 항상 이런 표정 이런 말투이긴 하지만 대사가 대사다 보니 더 간지럽게 들렸다.

  “응.” 우리 둘 다 시큰둥하지만 대답은 한다.

  “누군진 이미 알지? 청첩장이 이리로 와 가지고. 그 사람이랑 알고 지낸 것도 꽤 되고. 만난 지도 좀 돼서,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주책스러워 보일까 봐 조용히 있었는데, 그 사람 계속 혼자 지내면서 작업하는 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 생각해서 같이 살기로 한 거야.”

 장황하다. 요점만 이야기해도 알겠다 하고 넘어갔을 텐데.

  “마침 바쁜 일들도 끝났고, 타이밍이 딱 맞았지 뭐야. 그래서 새 작품 들어가기 전에, 다음 달에 식 올리기로 했어.”

  “응.”

  “나이는 좀 적지만 속 깊고 좋은 사람이야. 아마 너희들이랑도 마찰 없을 거구.”

  “그렇겠지.” 언니는 똑같이 ‘응’이라고 했는데 내가 그렇게 중얼거려서 엄마는 맥이 끊긴 듯,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작게 헛기침을 했다.

  “사람들 눈도 있으니 굉장히 숙고해서 내린 결정이야. 그러니까 좋게 생각해줬음 좋겠다.”

  “나쁘게 생각한 적도 없어.”

 이 말은 엄마가 흘려들었는지 별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라며 다음 이야기를 꺼낼 뿐.

  “그래서, 이번 주 토요일에 둘 다 시간 좀 비울래? 그 사람이랑 다 같이 저녁 먹기로 했어. 이제 가족 될 사람이니까 식 전에 몇 번은 봐야지.”

 이번 주 토요일? 그냥 내일 모레잖아. 그것은 이제까지완 달리 귀가 번쩍 뜨이는 이야기였다. 다짜고짜 정해진 엄마 애인과의 만남이 갑작스러운 것도 갑작스럽거니와, 남자친구와 선약도 있는데.

  “근데 그 날은….”

  “어머, 얘.” 아니나 다를까 언니도 살짝 신경이 곤두서서 항변했고 엄마가 바로 가로막았다. 내가 먼저 말 안하길 잘했네.

  “지금 그 사람도 나도 바빠서 시간 맞추기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이것도 겨우 잡은 거야. 가족인데 서로 그 정도는 양해해줄 수 있지 않니?”

  “…네.” 결국 언니가 또 졌다.

  “착하지 우리 딸들? 다 잘 될 테니까. 마음 편하게들 먹고. 이번 주 토요일이다?”

  “네.”

 그렇게 통보를 늘어놓고 엄마는 피곤하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언니와 나는 덩그러니 소파에 남겨져서 아무 말 않고 방문만 쳐다봤다.

  “아, 겨우 친구들이랑 시간 맞춰놨더니.” 언니가 잔뜩 짜증을 내며 핸드폰을 꺼내 거칠게 자판을 두드렸다.

  “불토는 물 건너갔네?”

  “몰라. 넌?”

  “난 오전에 만나면 돼.”

  “좋겠네.”

  “나 올라간다.”

 이 억울함을 하소연 할 곳이 친구들과의 대화방 밖에 없는 가엾은 언니를 놔두고 내 방으로 올라왔다. 옷을 갈아입고 씻으러 가는 길에 핸드폰을 한 번 확인했더니 역시나. 들어오고도 한참 연락이 없어 남자친구가 걱정하는 문자를 보내 놨다. ‘엄마의 중대발표를 듣느라 그랬어.’ 답장을 보내놓고 잠시 침대에 앉아 캄캄한 창밖을 보다가. 샤워 타월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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