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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라이트노벨
너와 함께
작가 : rororiri
작품등록일 : 2017.7.2

인간을 증오하는 드래곤 ‘엘리시아’와 아름다운 그녀에게 반한 인간 ‘이유하’는 누군가의 음모로 이세계에 떨어졌다. 차원이동의 부작용으로 하필 유하가 가장 꺼려하는 로리가 된 엘리시아. 곧 죽어도 싫어하던 둘이지만 점점 서로에 대한 감정은 싹트고……. 지구로 돌아가기 위한 유하와 엘리의 이세계 모험기.

 
아르시아 축제(4)
작성일 : 17-09-12 17:21     조회 : 400     추천 : 0     분량 : 5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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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정성스럽게 포장된 상자를 열자 그녀의 눈에 보인 것은 하얀색 레이스삭스와 베이지색 메리제인이었다.

 

 “유하, 이게 무엇이냐?”

 

 아직까지 상황파악이 제대로 안 된 엘리시아가 유하에게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유하는 닦고 있던 그릇을 내려놓고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아하하……, 그……. 엘리 네 발 차가울까 봐…….”

 

 거짓말.

 그것이 뻔한 거짓말이라는 것쯤은 아무리 인간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엘리시아라고 하더라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게, 한 개의 초승달이 뜨던 날 밤 체온이니 체온조절 마법이니 하면서 그녀와 티격태격한 것이 불과 몇 주 전밖에 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한 유하는 그녀가 그저 쉽게 납득하고 받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왜……. 왜 이런 걸 내게 주는 것이냐……?”

 

 하지만 그럴 리가 없지.

 그녀가 말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유하는 자신의 거짓말이 너무 뻔했다고 속으로 탓하면서 변명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아, 아니, 그게, 저……. 아무리 그래도 맨발은 좀 시려 보인달――”

 “―그게 아니라, 난 네게 아무 것도 해준 게 없는데 왜 내게 이런 선물을 했느냔 말이다……!”

 

 신줏단지 모시듯이 두 손으로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선물상자를 들고 있는 엘리시아.

 예상하지 못한 그녀의 반응에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하.

 그런 유하의 앞까지 성큼성큼 다가가 안쓰러운 눈으로 엘리시아가 올려다보았다.

 ―그 아름답고 예쁜 얼굴에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이 눈물이 글썽거렸다.

 

 “난……, 난 너한테 아무 것도 해준 게 없는데……. 넌 왜 나에게 이렇게까지…….”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보니 소녀가 되었어도 영락없이 여린 여자아이처럼 느껴지는 유하였다.

 ―하지만 그 모습이 싫지 않다.

 유하는 엘리시아에 반응에 당황스러웠던 감정은 뒤로하고 저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려 한번 쓰다듬어 주고 나서 입을 열었다.

 

 “아니, 난 충분히 너한테 많은 은혜를 입었고, 넌 지금도 내게 많은 걸 해주고 있어……. 나 때문에 이런 세계에 오게 되었는데도 언제나 날 구해줬고 또 너한테 못되게 굴었는데도 지켜줬잖아…….”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정작 엘리시아의 눈은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회피하고 있는 유하였다.

 ―그녀를 지켜준 일도, 지킬만한 능력도 없는 자신이 너무도 한심하고 미안해서. 그런데도 이렇게 뻔뻔하게 위로한다는 듯이 말하고 있는 스스로가 싫어 그녀를 볼 면목이 없어서.

 ――그저 그녀를 ‘좋아하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미워서.

 터억.

 갑자기 자신의 손이 끌어당겨지는 듯한 느낌에 유하가 돌렸던 시선을 다시 엘리시아에게로 맞추었다.

 

 “가자.”

 “에? 가, 가자니? 어디를? ――어어어?”

 

 그녀가 유하를 끌고 주방에서 나와 현관으로 향했다. 그러고 나서는 이 바보 멍청이 같은 남자가 준 너무나도 예쁜 레이스삭스와 메리제인을 신고 문을 열었다.

 

 “에, 엘리!”

 

 저도 모르게 그녀를 따라 신발을 신고 끌리듯 따라 나온 유하가 도대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엘리시아는 그저 한쪽 눈을 찡긋 감고 자신의 입술에 검지를 올려놓았다.

 유하는 메리제인을 신고 키가 커진 그녀를 보고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을 떠올렸다.

 

 “봐, 아직 축제는 안 끝났어!”

 

 그녀가 거리를 향해 손을 뻗어서 아르시아 축제를 벌이고 있는 소서리아 시의 찬란한 풍경을 유하에게 보여주었다.

 

 “어? 아까 전까지만 해도 거의 파토 나는 분위기였는데 어느새…….”

 

 하늘은 아직까지 먹구름이 조금 끼어있는 상태였지만 낮보다는 소강상태가 되어 다시 분위기에 물이 오른 축제였다.

 게다가 불꽃놀이도 계획대로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자~ 오세요, 오세요――! 날이면 날마다 걸칠 수 있는 화룡포가 아니랍니다!”

 

 유하와 엘리시아가 광장 쪽으로 더 들어가자, 가장 먼저 호객행위를 하고 있던 것은 아르키메시아의 전통 의상을 빌려주는 가게였다.

 

 “유하! 우리 저거 입어보자!”

 “엘리……. 아아, 응, 그래!”

 

 환한 미소를 지으며 여전히 유하의 손을 잡고 끄는 엘리시아.

 그런 그녀에게서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사근사근한 말투와 행복한 표정을 보니,

 

 ‘이렇게 보니 엘리도 평범한 여자애랑 다름이 없구나…….’

 

 정말로.

 정말로 그녀가 인간을, 그리고 자신을 그렇게나 혐오하고 하찮게 여기던 그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정말로 이렇게 행복해 하는 엘리는 평범한 한 소녀와 다름이 없어보였다.

 

 “어이쿠, 연인인가 보군! 그렇다면 가장 화려한 이걸로!”

 

 그 노점상이 유하와 엘리시아에게 집어준 것은 제비나비 모양의 뿔이 달린 용의 자수가 새겨진, 두루마기처럼 크고 널찍한 화려한 빛깔의 코트였다.

 

 “여, 여, 연…….”

 “자, 어서어서 걸쳐보셔~”

 

 유하와 엘리시아의 얼굴이 동시에 발개지면서 말을 더듬고 있는 사이에 노점상이 능숙한 솜씨로 빠르게 붉은색의 화려한 화룡포를 둘에 몸에 걸쳐주었다.

 

 “자~ 자~, 선남선녀니까 내 특별히 1실버 깎아서 5실버에 해줄게!”

 

 정말 능숙한 노점상의 장사수완에 넋이 홀린 유하와 엘리시아가 서로를 보고는 별안간 하하호호 웃는다.

 

 “엘리! 넋 놓고 당하고 있으면 어떡해! 하하하!”

 “흐흥―! 바보, 바보!”

 

 유하와 엘리시아는 계산을 마치고 다음 거리로 향했다.

 이어서 도착한 거리는 길거리 음식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선 거리였다.

 빵에 훈제 고기를 올려 파는 핫도그나 토스트 비슷한 것을 파는 가게부터 해서 잔치국수처럼 따뜻한 국물에 얇은 면을 삶아 넣은 가게, 네모나게 모양이 난 철판에 밀가루 반죽과 야채, 고기를 넣고 부쳐서 타코야키 같은 음식을 파는 가게.

 커피는 기본이고 각종 과일 열매로 과즙을 낸 음료수부터 100퍼센트 레드링 과즙을 자랑하는 고급 차까지 다양했다.

 

 “여어――! 유하! 엘리! 왔구나!”

 “랄프 아저씨!”

 “랄프!”

 

 먹자거리를 지나는 중에 랄프가 유하와 엘리시아를 발견하고는 소리쳐 부르자, 둘이 그가 있는 가게로 쪼르르 달려간다.

 

 “이야, 엘리! 화룡포가 아주 잘 어울리는데? 이렇게 눈에 띠는 녀석이 오후에도 안 보이길래 벌써 아르키메시아를 떠났나 싶었지!”

 “아저씨! 저는요!”

 “넌 별로야. 안 어울려.”

 “헐, 왜요!”

 “남자잖아.”

 

 지금 사람 차별하냐!

 ―라고 생각하는 유하의 속마음이 뿔난 황소마냥 씩씩대는 그의 모습에서 드러나자 랄프와 엘리시아가 풋, 하고 웃었다.

 

 “크하하하하! 녀석, 농담이다, 농다암―! 크하하!”

 “잘 어울려, 유하.”

 “오호~ 엘리, 너도 잘 어울린다, 그 말투! 어제 내 말 듣고 바꾼거냐! 애정이 듬뿍 담겨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데!”

 

 랄프가 그 우락부락하고 듬직한 손으로 엘리시아의 머리에 손을 얹고 히죽거렸다.

 

 “흐, 흥……! 그, 그저 간만에 분위기가 고조돼서 인간들의 축제에 어울려주고 있을 뿐이다……!”

 

 엘리시아가 입모양이 흐물거리듯이 다물어졌고, 이번엔 그 모습을 유하와 랄프가 흐뭇하게 바라본다.

 그러다 랄프가 뭔가를 잊고 있었다는 듯이 머리 위에 느낌표를 띄우고 커피추출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잠깐만 기다려봐.”

 

 그가 입맛을 다시면서 순식간에 섹시한 근육남 바리스타로 변신했다. 그렇게 몇 분 안 되어서 그가 따뜻한 커피 두 잔을 둘에게 내어 놓았다.

 

 “자, 너희 둘만을 위한 서비스야.”

 “에? 서비스?”

 

 향을 맡은 유하는 담백하고 고소한 향이 나는 그 커피가, 상당히 고급진 것임이 분명하다고 느꼈다.

 유클리아의 집무실에서 마셨던 홍차도 제법 그 풍미가 넘치는 향이었지만, 다른 종류의 차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것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호로록.

 유하와 엘리시아가 동시에 차를 입에 머금었다. 추운 겨울에 야외에서 마시는 뜨뜻한 커피인지라 향을 느끼기에도 수온이 너무나 적절했다.

 

 “어때?”

 “마, 맛있구나.”

 “맛있어요! 지금까지 아저씨 가게에서 못 마셔본 향인데, 어디서 난 거예요?”

 

 유하가 커피의 향을 한번 음미하고는 랄프에게 묻자, 그가 원두가 포장되어있던 봉투를 보여주었다.

 

 “어, 설마, 그거?”

 “그래! 루리 녀석이 테라로사에서 사온 그 고급 원두야. 이 날만을 위해서 아끼고 아껴두고 있었는데, 루리는 엊그제 떠나버렸잖냐. 마지막으로 우리 가게에 들러서 인사할 때 며칠만 더 있다가 가라고 했었는데, 조금이라도 덜 추울 때 가야한다고 그러더라.”

 “아아. 어쩔 수 없죠……. 그래도 내년엔 루리도 부르면 되니까……!”

 

 괜찮은 듯이 말했지만 루리랑 테레이엘도 같이 축제를 즐겼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내심 아쉬워하는 유하였다.

 하지만 아쉬움도 잠시, 광장의 중앙 쪽에서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려왔고, 이에 유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랄프에게 물었다.

 

 “아직 불꽃을 날리려면 시간이 조금 남지 않았어요?”

 “그렇지. 지금이 오후 6시 20분이니까 10분 정도 남았네. 아까 보니까 광장 중앙에 뭔가 무대 같은 것을 설치하는 것 같던데.”

 “무대요?”

 “이번엔 뭔가 특별한 이벤트를 한다는 것 같더라고.”

 

 ―무대라. 그렇다면 필시 가수라도 온다는 얘기다. 아니면 마술쇼라든지. 하지만 마법 국가에서 마술이 웬 말?

 

 “엘리! 가볼까?”

 “응!”

 

 어느새 입장이 뒤바뀌어 엘리시아의 손을 끌고 있는 유하였다.

 

 

 * * *

 

 

 유하와 엘리시아는 먹자거리에서 힘겹게 인파를 뚫고 몇 분을 다시 걸어 광장의 중앙에 도착했다.

 

 “어? 앙고리아?”

 

 엘리시아의 손을 이끌고 어렵사리 무대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은 유하가 무대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중얼거렸다.

 

 [안녕하세요, 카르메이입니다.]

 

 무대에 선 앙고리아―카르메이가 관객들을 향해 인사를 하자 일제히 환호성이 들렸다.

 그녀는 아르키메시아에서는 흔치않은 금발인데다가 늘씬하고, 다리도 길고 무엇보다 아름다운 외모여서 대부분의 함성은 남성들이었지만, 광장의 모두가 그녀를 주목했다.

 

 “엘리, 카르메이라면……?”

 “응, 루리가 듣고 반했다던 그 아크로마.”

 “오오, 역시 그렇구나! 앙고리아족이라 그런지 엄청 예쁜데?!”

 

 무대에서 하프 비슷한 악기들을 손으로 뜯거나 활로 켜는 연주자들의 반주와 함께 카르메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광장에 있던 연인들이 황홀경에 빠졌다.

 

 “…….”

 

 유하 역시 어느새 카르메이의 노래에 흠뻑 빠졌는데,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엘리시아의 눈썹이 안쓰럽게 구부러졌다.

 문득 유하가 고개를 그녀에게로 돌리자 엘리시아가 획, 하고 시선을 피했다.

 

 “응? 엘리, 노래 별로야?”

 “아니……. 노래는 좋은데…….”

 

 생각지 못한 그녀의 표정에 당황하는 유하. 여자친구는 물론 보통의 친구마저도 없다시피 한 그가 그녀의 마음을 알아 챌 수 있을 가능성은 제로였다.

 

 “나, 나보다 저 앙고리아가…….”

 “응……? 뭐라고?”

 

 눈치가 없어 청각에 의존해야 하는 유하는, 엘리시아의 말꼬리가 점점 개미소리처럼 기어들어가자 노래 소리에 묻히는 바람에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 없었다.

 

 “모, 몰라! 바보 같은 녀석!”

 “크허어억!”

 

 뺨이 터질 것 같이 붉게 물든 엘리시아가 저도 모르게 죽어가던 손버릇을 되살리고 말았다.

 주먹에 유하의 복부가 느껴지는 순간, 아차 싶어 인식저하 마법을 썼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으면 뜨겁게 달아오른 광장의 열기에 찬물을 붓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아야야……. 아프다고, 엘리……. 흐엉.”

 “네, 네 녀석이 이상한 데에 한눈 팔고 있으니까 그런 것 아니더냐!”

 

 하지만 광장의 열기가 식는 것은 막았을지언정 둘 사이에 부어진 얼음물은 돌이킬 수 없었고, 그런 바람에 엘리시아의 말투는 다시 딱딱해져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를 축제로 끌고 나온 것도 자신이다.

 그저 특별한 날이니까 선물을 준 거겠지.

 들떠 있었던 건, 그냥 나 혼자뿐이었던 거야.

 ―그는 인간이고, 나는 드래곤이니까…….

 

 “……엘리.”

 

 괜스레 그가 미워질 것 같은데, 그의 목소리를 듣자 금방 마음이 또 녹아내릴 것 같아 창피하다.

 그렇게 그의 시선을 회피하는데, 엘리시아는 자신의 팔목에 무언가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바보야, 너보다 예쁜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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