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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퓨리어스 (FURIOUS)
작가 : HANNAH
작품등록일 : 2017.7.31

아무런 연고도 없이 모이게 된 우리들.
아무 것도 모른 채로 마지막까지 살아남기 위해 서바이벌 게임에 임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들 중 한 명은 이 게임에 대해 뭔갈 알고 있는 듯 하다.

서바이벌 로맨스.

 
퓨리어스(FURIOUS) 12
작성일 : 17-07-31 23:51     조회 : 263     추천 : 0     분량 : 9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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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 도진이의 시점〕

 

  에리얼을 부르러 갔던 환이가 올라왔을 때는, 식탁 위에 간소한 저녁이 차려져 있었고 그녀와 환이를 제외한 모두가 앉아 있었다. 물론 지상 위의 여정을 떠난 위니는 곁에 없지만 말이다. 환이는 그녀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정수기 위 바구니에 있는 페퍼민트 허브 차 봉지 하나를 들고 뜨거운 물을 받았다.

 “마샤야, 빵은 어디에 있어?”

  환이가 물었다.

 “빵으로 때우게? 조리대 구석에 종류별로 정리해 놓았긴 하지만 그냥 여기 합석해, 환이야. 올리버가 알뜰하게 저녁을 만들어주었으니까 식량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야.”

  마샤가 발랄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마샤, 환이는 그렇게 많은 문장을 한꺼번에 이해하지 못한단다. 게다가 정확히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웅얼거리는 네 발음으로는 특히.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던 환이는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하였다. 그리고 환이는 가장 많이 남은 종류,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것들의 비해 하나도 수가 줄지 않은 가장 맛대가리 없는 빵 봉지 하나를 들었다.

 “에-? 그 흙 맛이 나는 빵은 부드럽지도 않고 푸석푸석 할 텐데?”

 “내가 먹을 게 아니라 에리얼에게 부탁받았어. 이거....... 가져오란 소리 같았는데? 저녁 생각이 없으니 마실 차하고 빵 한 덩이 좀 가지고 오래. 에리얼은 항상 바빠 보인단 말이야.”

 “퍽도 ‘부탁’받았겠네. 입맛 취향도 성격만큼이나 특이해.”

  마샤가 혼자서 중얼거렸다. 아마도 낮의 일을 아직까지도 마음에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실수를 했으면 숙연히 인정이나 할 것이지. 조용히 빵을 뜯고 있던 나는 테이블에서 일어나니 환이가 들고 있던 머그컵과 빵을 대신 들어 주었다.

 “어? 내가 할 수 있어 도진아! 넌 먹던 것 마저 먹어!”

 “아니, 난 그녀에게 따로 할 말이 있어.”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멀뚱히 나만 쳐다 볼 뿐이었다. 나는 환이를 식탁까지 데려가 앉힌 후 식사 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컵 위에 빵 봉지를 올려놓고 노크도 하지 않은 채 에리얼이 있는 서재에 들어갔다. 사실 이 곳 서재는 공동의 소유물이긴 하지만 언제 부터인가 그녀만의 사무실로 전락해버렸다.

 “고마워, 거기 책상 위에 두고 가.”

  그녀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에리얼의 무릎 위에 루돌프가 누워 있었다. 그녀가 왼손으로 쓰다듬어주자 루돌프는 그녀의 손길을 즐긴다는 듯이 그르렁거리고 있었고 그녀의 다른 오른쪽 손으로는 책장을 빠르게 넘기고 있었다.

 “할 말이 있는데.”

  에리얼은 환이와는 다르게 투박한 내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낮에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낸 것에 대해 사과한다. 생각 보다 다혈질이거든.”

 “그런 것 같더라.”

  그녀가 장난스럽게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분명 내 과민 반응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편협 적이고 권위적이기만 너의 태도도 옳은 것은 아니야. 매사에 분명하고 주관이 강한 것은 물론 높이 평가될 만해. 하지만 이건 언제까지나 팀플레이가 아니겠어?”

 “나는 내 일을 아주 잘 해결해 나가고 있어.” 그녀의 눈매가 사뭇 예리 하게 변했다.

 “도진아. 넌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겠지. 어쩌면 나보다 더 말이야. 다른 애들은 몰라도 너만큼은 분명하게 알거라고 믿어. CI가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한 열대 우림 속에 우리를 가두어 놓은 의미를. 그거야. 어설프면 이 곳에서 살아 갈 수 가 없다는 걸. 오로지 강자만이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 아래에서 우리가 달리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약한 것들은 강한 것에 먹혀 버리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당연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말이야. 좋아. 이번에는 내가 다시 물어볼까? 난 오늘 다시 한 번 모두에게 실망했어. 다시 한 번 더 말하는데 이건 장난이 아니야. 더군다나 나는 목숨 가지고 과감한 도박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그런데 봐! 단순히 ‘실수’로 터진 섬광탄이 적의 이정표 역할을 했어. 우리가 동요한 만큼 그들도 당황하겠지. 하지만 만약 그들 중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감만 넘치는 자들은 분명 이 곳 근처까지 탐색해 올 거야. 우리는 단 몇 일만에 최악에 상태에 놓인다는 것을 너만이라도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내가 이렇게 필사적으로 말을 해도 못 알아듣는 건 너희들이야. 내가 아직까지도 나쁘다고 비난 받을 수 있을까?”

  에리얼이 읽고 있던 책을 거세게 내리쳤다. 그녀 낯빛이 좋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마샤나 보르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

 “괜히 겁주기 싫다고 내가 한 제안에 기꺼이 동의한 너야. 그리고 상황을 안다 한들 제대로 이해 못 할 것 같고. 기껏 사실을 알려주어도 ‘사냥용 탄환을 왜 사람에게 사용하라는 거지. 그러면 방송 심의에 걸리지 않아?’라고 대답할 것이 눈에 훤한 걸. 그렇지 않아? 어찌되었든 그래도 나와 사전의 상의도 없이 함부로 알려 주지는 말아줘. 동요 상태에서 그 애들이 날뛰면 가장 피곤한건 바로 너와 나니까. 가끔은 모르는 게 약일 수 도 있다는 걸.”

  나는 괜히 힘들게 하려고 온 것은 아니었는데....... 에리얼은 그녀가 읽고 있던 ‘생존의 진화’에 책갈피로 표시되어 놓은 부분을 펼쳐 나에게 보여주었다. 비가 내리는 흑백 숲 속 사진이 프린트되어 있었고 글 부분에는 깔끔하게 형광펜이 칠해져있었다. 나는 그녀가 펴 놓은 부분을 유심히 읽기 시작했다.

 “곧 스콜이 올 거야. 흰 스콜이 아닌 뇌우 스콜이. 오늘 구름이 맑지 않은데다가 적운이 아니었거든. 하긴야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 열대 기후니까. 내일 비가 온다면, 나와 함께 잠깐 나갔다 올래? 다른 먼 곳은 위니에게 맡기고 우린 그저 근처만 수색하자는 이야기지.”

 "내일 다시 한 번 나간다고 했어?”

  나는 하마터면 책상 위의 페퍼민트 허브차를 건드려 엎지를 뻔하였다. 전혀 뜻밖인 제안이었다. 에리얼이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조사할 것이 남아있는데 그러지 못했어. 앞이 분관이 되지 않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 지는 날, 밖에 나갈 거야. 산책하기 좋은 날씨에 나간다면 마주칠 확률이 너무 높거든.”

 “밖으로 나간다고? 하지만 분명 네가 당분간 안에 있는 것이 안전하다고 하지 않았어?”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모르는 난감한 표정으로 주춤거렸다. 나는 공연히 죄 없는 머리를 사정없이 긁적이며 에리얼에게 말했다.

 “도진아. 나는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어도 전혀 동요하지 않을 만한 사람을 찾고 있었어. 무엇보다도 아직까지 난 다른 여섯 명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을 뿐 더러 그들이 무엇을 잘하는지, 무슨 약점이 있는지 알아야 새로운 수를 만들어 낼 수 있지.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사실을 직시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필요해. 그리고 나는 그 사람이 네가 되었으면 하고.”

  작고 부드럽지만 확신에 찬 그녀의 목소리가 방안을 조용히 울려 퍼졌다. 기분이 묘하였다. 에리얼은 환이를 제외하고 나의 이름을 가장 똑똑히 발음하는 사람 중 하나이기도 한데, 다른 코쟁이들 보다 더 친숙한 얼굴이라서 다른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벽 같은 것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내가 이제부터 무엇을 하면 좋을까, 에리얼?”

  내가 에리얼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

 “일단, 이 책을 한 번 훑어봐. 숙지하라고까지는 말하지도 않아. 다만, 언젠가 도움이 될 거다. 내가 마냥 책만 읽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지.”

  아, 나는 책만 보면 잠이 쏟아지는 타입인데. 어쨌거나 나는 그녀가 준 책 한권을 들고 밖으로 나가 다시 저녁식사에 합류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내가 먹을 것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하늘은 회색빛 구름에 가리어 암울한 풍경만을 자아냈다. 파릇파릇하고 보기 좋게 윤이 났던 나뭇잎들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으며 마치 눈이라도 내릴 것 같이 날씨가 좋지 않았다. 현관문 사이로 밖을 살피는 것은 마샤의 일이었다. 우중충한 기상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사사 철철 때 모르는 참새와도 같았다. 귀엽고 동글동글한 눈매에다 보기 좋게 찰랑거리는 길고 눈부신 금발머리. 그리고 솔직히 그녀보다 더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커다란 파란 별 핀은 누가 보아도 예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리 끌리지는 않았다. 그런 그녀가 있는가 하면 정반대의 타입의 에리얼도 리벤지 중 한명이었다.

 “맙소사! 곧 비가 올 것 같아. 그렇지 않아도 눅눅한 실내가 더욱 불쾌해지겠군! 내가 살던 나라는 이런 곳이 아니었어! 더 쾌적하고 더 아름다운 곳이었지! 그때는 살기 좋은지 몰랐지만 말이야. 내가 어쩌자고 여기에 있는 것일까!”

  높고 카랑카랑한 그녀의 목소리가 중얼거리듯 빠르게 지나갔다. 마샤는 소형 마이크 전원을 켜 에리얼과 나에게 실외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어폰을 끼고 있는 사람들은 다 들리겠지만 말이다. 목소리가 너무 높아 귀가 얼얼하였다.

 “글쎄. 소풍 나가기에는 그다지 좋은 날씨는 아닌 것 같아. 비라도 올 것 같단 말이야. 미리 말해두겠는데, 아쉽게도 우산은 못 찾은 것 같아.”

 “아, 그래? 알려줘서 고마워. 비가 올 것 같다니. 또 피곤해 지겠군. 우리로서는 다행이지만 위니 쪽이 걱정인데.”

  한편 지하 1층 개인 방에서 뒹굴 거리고 있었던 나는 너무 배가 고픈지라 식사 실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나는 침대 위에 누워서 에리얼이 주었던 책을 읽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책은 좋은 물건이었다. 나는 이제껏 그렇게 일찍 잠들었던 것은 처음이었다. 어젯밤에 책장을 넘기면서 놀라운 책의 수면 효과를 몸 소 느끼고 온 터였다.

 “토스트 먹을래? 오늘은 마멀레이드 잼이야. 아니면,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샌드위치를 만들어줄까? 아침은 든든하게 먹어야 두뇌 회전이 빨라져.”

  식사 실에서 아침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이는 올리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멈칫했다. 얘가 원래 가사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이 초 정도 정적이 흐르고, 내가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대답하였다.

 “너 요리하는 거 되게 좋아하나 보다?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굶긴다.”

 “미안합니다. 이런, 근데 또 빵이야? 올리버. 쌀 같은 것은 없어? 사실 말이야 난 밥을 정말 먹고 싶어. 그 달고 짜고 느끼한 그런 음식에 질렸어! 아침 점심 저녁, 아침 점심 저녁 죄다 빵 뿐이라니!”

 “그래, 그래, 도진아. 네 말이 백번 옳다. 하지만 말이야. 쌀이 생각보다 양이 적어서 7인분을 짓다간 하루도 못 가서. 나중에 환이와 함께 몰래 지어 먹자.”

 “난 쌀을 꼭 손에 넣겠어. 다른 건 다 버려도 밥만큼은 챙겨 올 거라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환이의 통신이 연결되었다.

 “진짜지! 분명 나도 같이 먹는 거야!”

  재량으로 사용되는 아니, 이제는 루돌프의 가장 넓은 방이 된 지하 2층 회의실 마주편의 방에서 유독 자신에게만 반항하는 어린 늑대를 훈련시키고 있을 환이가 말했다. 그는 요즘 하루 일과를 그 방에서 보내고 있다. 루돌프에게 물려 밴드가 덕지덕지 붙여진 왼손이 꽤나 아파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는 마치 애완용 강아지라도 되는 양 ‘앉아’ ‘일어서’와 같은 간단한 훈련을 시켰는데 똑똑하게도 늑대는 능글능글하게 웃으며-적어도 환이가 보기에는-그가 ‘앉아’라고 할 때 일어섰으며 ‘일어서’라고 할 때에는 배를 보이며 벌러덩 드러눕기도 하였다. 그를 보며 보르가 얼마나 웃어 제쳤는지 모른다.

 “딸기잼은 없나? 나는 마멀레이드 잼보다 딸기가 더 좋은데.”

  환이가 덧붙였다.

 “그래, 알았어. 토스트쯤이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지. 하지만 한 사람당 두 장씩 토스터기 두 대를 가지고 열여섯 장을 굽는다는 건 꽤 성가신 일이기도하단 말이야. 마샤. 넌 어디에 있는 거야!” 부엌에서 정신없이 오고 가는 올리버가 소리쳤다.

  아침식사 시간이 되자 하나 둘씩 식사 실로 모여들었다. 결국 올리버 혼자서 상을 다 차렸으며 마샤는 얄밉게도 다 차려질 즈음에 들어와 ‘어머! 도와주려고 왔는데 벌써 다 차렸네!’라며 식탁에 앉아 제일 먼저 토스트를 입에 물었다. 올리버는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반은 웬일로 늦잠을 자 하얀 와이셔츠를 대충 걸쳐 입었다. 단추도 뒤죽박죽 채워져 있어 그의 맨살이 드러나 보였다.

  아, 저래도 되는 구나. 괜히 아침부터 씻고 난리를 피웠네. 그는 부스스해진 밝은 갈색 머리카락이 하늘을 찌르며 식사 실에 들어왔는데, 열심이 먹는데 집중하고 있던 마샤를 보고 깜짝 놀라 다시 단추를 채우기 시작하였다. ‘에반, 정신 차려. 여기는 남자 기숙사가 아니야.’라고 혼잣말하면서 말이다. 보르는 바로 에반을 뒤따라서 들어왔는데, 씻고 왔는지 얼굴과 그의 금발 머리카락에는 물기가 흥건하였다. 목에는 젖어있는 녹색 수건이 걸려있었다.

 “오늘은 아침을 빨리 먹네? 아, 맞다. 에리얼과 나가기로 했지. 역시, 같은 동양인이라서 통하는 게 있었나 보지?”

  보르가 아직 졸려 운지 길게 하품하고 있던 에반에게 말했다. 에반의 눈동자가 한번, 두 번 깜빡이더니 이내 뭔가를 알아차린 듯 커다래지며 되물었다.

 “에리얼과 도진, 어디 가?”

  그가 물었다. 여전히 주름이 자글자글한 와이셔츠에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꼭 동네 운동복 입고 돌아다니는 아저씨 같아 보였다.

 “남자들이란!”

  마샤가 혼자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 에반은 모르고 있었나? 맞다. 먼저 들어가 잤지. 만약 오늘 비가 온다면 그 기회를 틈 타 도진이와 에리얼이 가까운 근거리를 정찰한다고 했어. 우기가 아닌 이상 스콜은 일찍 그쳐버리니까 서두르는 것이 좋을 거야. 그치 환이야.”

  보르가 마침 방금 도착한 환이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환이가 해바라기 같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사실 그는 친구이기 보다는 동생 같았는데 여하튼 아무것도 모르고 언제나 즐겁게 웃어 주는 나의 친구이다. 하지만 그가 내게 정답게 말을 걸어 줄수록 나는 더욱 견디기 힘들어진다. 내가 그의 곁에 있는, 얽매여 있는 이유 중 하나. 미안함 때문에.

 “마치 첩보 영화에서 나오는 배우 같았어, 보르!”

  그의 말에 보르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런, 이런! 도우진아. 네가 아주 기가 막힌 행운을 잡았구나!”

 “나는 생각보다 언어 쪽으로는 재능이 없는 것 같아. 네 말이 비웃음으로 밖에 안 들려.”

  내가 길게 하품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잠을 너무 많이 잔 터라 아직도 졸음이 눈꺼풀을 덮치는 것 같았다. 환이도 루돌프를 옆에 내려놓은 채 강아지처럼 쪼르르 달려 그 옆에 앉았다. 에반이 그만의 특이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전혀 그런 의미가 아니야. 솔직히 그녀와의 동행이 부러운 걸. 난 그녀가 진심으로 흥미롭다고 생각하거든!”

  에반의 말에 마샤는 황당한 얼굴로 그가 아직까지 잠에 취해 있는지 아니면 정말 제 정신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건 그녀뿐만이 아닌 지 보르는 마시고 있던 우유를 뿜을 뻔하였다. 다만 환이와 루돌프는 늑대와 그 주인답게 먹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에반이 멋쩍은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농담하는 거 아닌데?”

 “그녀를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 물론 그녀는 훌륭한 리더야. 정확한 성과는 아직 없지만. 그 점에는 우리 모두가 같아. 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디가?”

  보르가 사래들 뻔했는지 한참동안 기침을 해대더니 곧 잠잠해지자 에반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에반이 보기에는 그가 무척 고통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가라니?”

  에반이 정말 모른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그러니까 그래. 에리얼은 분명히 좋은 아이야.”

 “그냥 네 취향이 특이하다고 말해버려. 뭘 그리 꾸물대?”

  오늘따라 상당한 까칠한 마샤가 덧붙였다. 에반은 여전히 생글거리고 있었으며 여전히 낭랑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나도 오늘따라 에반이 맘에 들지 않았다.

 “맞아. 가만히 생각해 보면 확실히 내 취향이 특이하긴 해. 하지만 사납게 치떠는 눈매가 아기 고양이 같다고 해야 할까?”

 “아기 고양이.”

  마샤가 중얼거리듯이 비웃었다.

  그나저나 에반은 왜 자꾸 에리얼을 걸고넘어지는 거지? 그리고 취향이 특이한 것이 아니야. 솔직히 그녀가 아주 이상하게 생긴 것 같진 않은데 말이지. 하지만 보르는 마시고 있던 우유를 다시 한 번 내뿜을 뻔했다. 올리버도 얼굴이 벌게지도록 기침을 해대자 환이가 친절하게도 그의 등을 두들겨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환이가 이렇게 덧붙였다.

 “아니야. 에리얼이 얼마나 착한 데! 그래서 루돌프도 잘 따라!”

  마샤가 손으로 가리며 나에게 속삭였다. 나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몇 살이라고?”

 “...... 생일이 좀 느려서 그래.”

  그 때였다. 부드럽게 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절망의 장작에 불을 붙여 화려하게 타오르다 식어버린 재와 같은 흑발에 눈처럼 하얀 피부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이국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그녀지만 어쩐지 너무나도 친숙한 기분이 들어 에리얼을 쳐다보는 것 만해도 다시 한국에 돌아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언제까지나 내 착각에 불과하지만. 에리얼이 환한 미소와 함께 에반과 내 사이의 유일하게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이목구비가 더 가까이에서 보였다.

 “오늘은 왔네, 에리얼. 크림 티로는 원활한 영양 공급에 문제가 생겨.”

  에반이 미소 지었다.

 “맞아. 밀크 로프 맛이 아주 기가 막혀!”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마지막 두 번째 토스트를 입에 넣은 환이가 말했다. 에리얼은 그저 말없이 잼도 바르지 않고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먹었다. 밝게 웃음 지는 그녀의 정교한 갈색 눈동자는 부자연스러울 정도 한결 같았다. 묘한 귀품이 돌았다. 그러나 항상 웃고 있던 그녀임에도 오늘은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약 15도 각도로 눈을 내리깔고 있는 에리얼은 세상에나 역시 책을 펼쳐 읽고 있었다. 평소에 읽던 약초의 역학은 나에게 빌려주었기 때문에 그녀는 ‘생존의 진화’라는 포스트잇 여럿이 꼼꼼히 붙여져 있는 책을 복습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밀랍으로 봉해버린 것 같은 그녀의 얇고 지적으로 보이는 입술이 떼어졌다. 나는 일부로 그녀를 주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숨기려고 곁눈질을 하였다.

 “정확히 30분 후 나와 도진이는 떠날 거야. 소형 이동 통신기로 1시간 간격으로 연락할 것이지만 4시간 안팎으로 돌아올 거야. 그리고 이쪽에서 허락하기 전에 기지 내에서 통신기 사용을 금지 한다. 마이크의 전원을 꺼버리고 듣기만 해.”

  에리얼이 바삭 바삭하게 구워진 토스트를 천천히 소리 없이 먹고는 다른 한 장은 식탁에 내버려둔 채 자리에 일어났다. 왼손에 들고 있던 책 말고 이제는 오른손에는 파란색 파스텔 톤의 머그컵이 에리얼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이번 아침에는 아마 로즈마리 향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말도 없이 나가버렸다.

 “정말 상냥한 것 같으면서도 같으면서도 까칠하지 않니?”

  에반의 실없는 소리에 보르만 낄낄 웃어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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