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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퓨리어스 (FURIOUS)
작가 : HANNAH
작품등록일 : 2017.7.31

아무런 연고도 없이 모이게 된 우리들.
아무 것도 모른 채로 마지막까지 살아남기 위해 서바이벌 게임에 임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들 중 한 명은 이 게임에 대해 뭔갈 알고 있는 듯 하다.

서바이벌 로맨스.

 
퓨리어스(FURIOUS) 8
작성일 : 17-07-31 23:43     조회 : 278     추천 : 0     분량 : 7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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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에반의 시점〕

 

  마샤가 몰래 현관문 뚜껑을 들춰보았다. 열대성 나무들에게서 상쾌한 아침의 공기가 문 틈 사이로 녹아들었다. 마샤는 조심스럽게 좌우로 사방을 살펴보았다. 하늘 위로 원을 그리며 날아다니는 이름 모를 새들을 제외하고 움직이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살랑거리는 나뭇잎의 소리도 듣기 좋았고 끝자락에 흘러내릴 듯 맺혀진 이슬도 빛에 반사 되었다. 우거진 정글은 다행히도 평화로워 보였다. 마샤는 인형 같은 눈을 반짝이며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위니에게 말을 건넸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아. 다행이 날씨도 좋고 산책 가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이야. 습도도 쾌청해. 진짜 듣고 보니 소풍이라도 가고 싶어지는 걸?”

 “거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위니가 툴툴거렸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머리카락이 와인이라도 쏟아 부은 것처럼 더욱 선명해졌다. 위니는 사실 찡그리고 있는 인상만 아니었더라면 보기 좋은 갈색 눈동자에 하얀 얼굴, 어울리지 않게 깎은 듯 한 얼굴이 귀여웠을 법한데, 오늘은 아무래도 어제 에리얼이 쳐 놓은 함정에 걸려들어 그 인상이 더 구겨졌다. 꼭 장난감을 사주지 않아 토라져버린 어린애 같았다. 위니는 부산스레 근처 ‘산책’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 손에 쥐어지는 작고 검은 권총에 흠이 있는 지 세심하게 살펴보고 있었다. 나는 내심 불안했다. 에리얼은 저 ‘진짜’ 권총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지. 실수해서 다치기라도 하면 어쩔 생각인지. 그러던 중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는 몰라도 하여튼 환이가 두 어깨에 매 걸 수 있는 쓸 만한 배낭을 가지고 왔다.

 “마치 보석 찾기 같아. 이곳저곳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물건이 나오기도 해! 이것도 그렇게 해서 발견한 거야.”

  그가 자랑스레 가방을 내밀며 말했다.

 “확실히 그의 말이 옳아. 난 여기서 머리끈을 주었는걸.” 치렁치렁한 금발이 단정하게 하나로 묶여 있는 마샤가 짙은 밤 갈색 머리끈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하지만 여전히 파란 별 핀은 제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보석 찾기가 아니라 보물찾기라고 하는 것이겠지.”

  에리얼은 언제나 그렇듯 페르소나를 내어 보이며 기계적인 미소를 지었다. 부드러운 손짓으로 올리버와 보르에게 명령 아닌 ‘명령’을 내리며 친히 위니의 배웅을 도와주었다. 어디선가 가지고 온 환이의 배낭 안에 가공되어 있는 식품, 통조림 스튜라던가 대충 때울 수 있는 인스턴트 무려 삼 일분을 넣어 주었다.

 “에리얼, 정말 그를 삼일씩이나 내 보낼 생각이야?”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이것저거서 챙기는 척 하며 속삭였다. 하지만 에리얼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진짜 다치기라도 하면.......?”

 “조용히 해, 에반.” 그녀가 차갑게 대답했다.

 “잘 못 될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저 처음 시작점에서 폰을 두 칸 움직였을 뿐이야.”

  아무래도 보르는 열여섯 살 가장 어린 위니를 보내는 것을 맘에 걸렸는지 전처럼 밝은 얼굴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위니는 그런 보르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인상을 쓴 채로 옷깃의 통신 무전기가 잘 있나 다시 한 번 확인했고 이어폰도 만져 보았다. 그리고 진짜 상해를 입을 수 있는 권총을 마치 장난감 마냥 이리 저리 살펴보는데 그 모습이 불안해 보였다.

 “에리얼, 저거 뭐라고 말했어?”

  나는 걱정되어 다시 귓속말 하듯 에리얼에게 물어보았다.

 “호신용 실탄. 때마침 늑대의 출현으로 그럴듯한 이야기가 떠올라서. CI가 혹시 모를 맹수에 대한 호신용으로 준비해 놓았을 거라고 했지. 전혀 사람에게 사용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을 거야. 그래도 위험하니까 조심하라고는 했어. 어린애가 아닌 이상 스스로 다쳐서 돌아오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겠지. 폐가 될 뿐이니까.”

 “너 혼자 괜찮겠어? 그러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보르가 위니의 곁에서 슬쩍 에리얼을 쳐다보았으나 그녀는 못들은 척 미동도 없이 위니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쳇. 남 걱정 할 때가 아닐 텐데. 저 기분 나쁜 여자의 이래라 저래라 명령이 닿지 않는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상관없어. 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난 내 의지로 가는 거야.” 그가 심술궂게 말하자 도진이가 어련하겠냐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이걸 가지고 사흘을 버티라고? 잠은 또 어디서 자지?”

  위니가 가방 크기에 비해 공간이 많이 비어 남아도는 커다란 초록색 가방을 발로 들쳐 보며 말했다.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 너에게 큰 기대를 거는 건 아니니까.”

  에리얼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그녀의 말에 가시가 돋아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위니가 뭐라고 한마디 하려고 하기 전에 어서 내가 나서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서로 얼굴 붉혀 보았자 이득 될 거 하나도 없다니깐.

 “자, 자! 에리얼의 말대로 아직 첫날이고 하니까 저들도 함부로 밖으로 나갈 생각은 하지 않을 거야. 만약 그들도 우리 같이 기지가 지하에 있다면 말이지. 어쨌든, 길을 잃어버리도록 멀리 가지는 말고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도록 해.”

  나는 자상하게 그의 머리를 이루어 만져 주며 말했다. 위니도 싫지는 않았는지 순한 양처럼 가만히 있었다.“굳이 아침 일찍부터 나갈 이유가 있을까?”

  도진이가 썩 내키지 않는다는 투로 물었다.

 “일찍 가고 일찍 돌아오는 것이 좋지, 뭘 그래.”

  올리버가 검고 가느다란 안경테를 콧등 위로 제치며 위니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성량으로 말을 이었다.

 “지나가는 이야기로 위니에게 들었는데 캠프나 여행 같은 걸 많이 갔나봐. 괜히 에리얼의 술수에 일부로 걸려 준거라고 하더군. 어지간히도 자신 있나보지. 당당하게 큰 소리 치려는 건수 만들어 간다며 어젯밤 난리를 피웠는데, 아, 넌 그 때 없었지?”

 “아마 자고 있었을 거야. 그래도 다행이네. 나는 솔직히 에리얼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건지, 물론 지형 파악은 삼국지나 고전 병법 같은데서 많이 등장하긴 하지만.”

  환이와 다르게 그의 친절한 설명을 잘 알아듣는 도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을 들으니 나도 조금 안심이 된다. 올리버는 날카로운 눈매와 절제된 행동, 탁월한 분석가 같은 인상에다 가느다란 철사 안경테는 그를 상당히 지적인 사람처럼 보이게 하였다.

  위니는 환이가 건네주는 배낭을 가볍게 받아 사다리 한 계단에 발을 대었다. 아무런 망설임도 머뭇거림도 없었다. 올리버의 말처럼 이런 일이 익숙한 듯 오히려 즐거워 보였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들 있으라고.”

  그가 검은 샤프펜슬과 빨간색 볼펜, 종이 여러 장을 거칠게 바지 주머니에 쑤셔 놓고는 사다리 위를 날아오르듯 뛰어 올라갔다. 위니의 뒤를 정 많은 보르와 환이가 따라 갔다. 위니는 그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드는 보르와 환이를 돌아보지도 않고 해가 떠 있는 서쪽으로 우선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나와 마샤가 뒤쫓아 나왔으며 올리버는 고개만 살짝 내밀었다. 위니가 그렇게 낙엽 바스락거리는 걸음 소리를 내며 마침내 우리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당당하게 우거진 초록 수풀로 내딛는 그를 보며 보르나 다른 애들이 다시 기지 아래로 내려가려고 할 때었다.

 “빌어먹을-. 잘 들리니까- 제발- 조용해 좀 하라고-! 고막이-터지겠어.”

  저 멀리 대여섯 마리의 새가 공중으로 흩어가는 동시에 위니의 비명소리가 들려 왔다. 기지 현관 주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남아 있는 마샤가 영문을 몰라 도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제 서야 환이가 마이크에 대고 자꾸만 뭐라고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환이야.......

 “위니야. 그러고 보니 네 이름이 그 유명한 곰돌이 푸의 이름과 비슷한 것 같지 않니?”

  환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다시 절망이 가득 찬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들려 왔다.

 “제발-시끄러워-!”

  모두가 환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어색하게 씩 웃더니 버튼을 위아래로 내리게 되어 있는 이동 통신기의 전원을 내렸다. 그리고 나직이 변명이나 하듯 중얼거렸다.

 “난 그저, 위니가 너무 긴장할까봐.”

 “도진아, 환이가 몇 살이라고 했더라?”

  도진이 옆에 있던 마샤가 물어 보았다.

 “그는....... 아직 어린 것뿐이야. 열일곱 살.”

  그 때 아직 위에 남아 있던 그들의 이어폰에 에리얼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화나 있는 것을 간신히 삭히고 있는 것처럼 들려왔다. 낮고 차가운 허스키 목소리가 이어폰을 쩌렁쩌렁하게 울려 고막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지금 무슨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어서 내려오지 못해! 그렇게 크게 소리를 지른다면 상대편은 물론 늑대 같은 맹수들에게 위치가 파악되어 위험해 질 거라고. 당장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한편, 에리얼은 서재에서 책을 펼쳐 놓고 조용하게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다. 혹시 몰라 켜 놓은 이어폰에서 어찌나 고래고래 크게 소리를 지르던지 귀가 아려왔다. 저 기세로 보아 몹시도 못마땅한 우리들에게 당장이라도 멱살을 쥐어 잡아 난리를 쳐도 이상할 것 없었다.

 “왜 이렇게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거야, 바보 같이!” 그녀가 중얼거렸다.

  나는 타이밍이 좋지 않은 것 같아 지금은 물러나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위니가 이 곳을 떠난 지 몇 시간이 지났다. 아침은 일찍이 마샤와 올리버 덕분에 든든하게 먹은 터라 오후가 지났지만 배는 고프지 않았다. 도진이는 따로 귀찮게 점심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기뻐하는 듯 했다. 조금이라도 식량이 남아돌아야 생필품 조달이란 귀찮은 일이 미루어지니까 말이다. 그는 에리얼이 뭐든 귀찮은 일을 그에게 미룰 거라고 생각하나 보다. 어림해보니 식량은 약 7일치였다. 매뉴얼에 적힌 그들의 메시지로 미루어 보아 나중에 통보하겠다는 기타 사항은 아마도 식량과 관련된 것 같았다. 좌우간 약 7일 후에는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건 확실하다. 만약 운이 없어 아무것도 획득하지 못한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식량과 기타 생활필수품들은 사전에 많이 확보에 두어야 안전하기 때문이다. 환이와 마샤, 도진이는 다시 병동실로 돌아가 밤새 늑대 ‘루돌프’의 상태가 호전되었는지 확인하러 갔고 보르는 올리버와 지하 2층 트레이닝 실 앞에 놓여 있는 탁자에 앉아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에리얼은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 서재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대 다섯 권의 책을 널 부러 놓은 채 뭔가를 계속 찾는 듯 부산스럽게 책장을 넘겼다. 그래서인지 문 밖에서 내가 노크하는 소리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뭔가 재밌는 거라도 찾은 거 있어?”

  나는 파란 머그 컵 두 잔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에리얼은 그저 나를 힐끔 쳐다본 후 바쁜 척 고개를 푹 숙였다. 이마에서부터 코끝까지 내려오는 아름다운 곡선, 그리고 나를 보는 듯 말 듯 한 고양이 눈매를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바라보았다.

 “뭣 하러 왔어?”

  내가 두 컵을 책상 끄트머리에 조심스럽게 내려 두고는 정신없이 책을-그것도 한 번에 다섯 권이나-읽고 있는 에리얼을 빤히 쳐다보자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드디어 말을 걸어주네.”

  그녀가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그냥 차라도 한 잔 마실까 해서 왔지.”

 “미안하지만 난 차 같은 거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리고 나는 뭔가를 먹는 거, 마시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 딱 죽지 않을 정도면 충분하니까 이만 좀 가지 않을래?”

  그녀가 차갑게 대꾸하였다. 확실히 다른 애들이 마샤 몰래 이것저것 입에 물고 다니는 건 많이 보아왔지만, 그녀가 심지어 식사 시간에도 무언가를 많이 먹는 걸 보지 못했던 것 같았다. 좌우간 나는 에리얼이 귀찮아해도 말을 계속 걸었다.

 “그렇지만 그러다가 너 곧 쓰러진다? 아, 괜찮다. 사랑스러운 백설 공주님께서 독이 든 사과를 베어 물어도 내가 구하러 갈게.”

 “아, 큰일 났네.”

 “그렇지?”

  에리얼의 눈이 여전히 책에서 고정한 채로 내 말을 고분고분 받아 주었다. 나는 여전히 에리얼의 정면, 책상에 매달려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 세계를 창조한 조물주는 절대로 모든 인류들에게 공평하지 않나보다. 유독 그녀만을 정성 들여 빚어 놓았으니, 나는 뚜렷한 그녀의 콧날과 부드러운 얼굴선, 그리고 메마르면서도 사슴처럼 나를 바라보는 갈색 홍채에서 신이 숨겨놓은 모순의 아름다움을 찾았다.

  그녀는 나를 위해 만들어 놓은 인형 같았다. 전에는 이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솔직히, 이런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믿겨지지가 않는데, 이 안에서 만난 전혀 낯선 그녀가 내 눈 앞에서 살아 움직인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게 느껴졌다. 인형이 제 멋대로 움직여 내게 말거는 것만큼이나. 나는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그녀에게 미소를 지었다.

 “알잖아, 에반. 나는 그런 사랑스런 동화와는 어울리지 않다는 걸.”

 “설마.”

 “왜, 난 이런 얘기를 좋아하는 걸. 어느 나라 폭군 여왕이 살았는데, 어느 용감한 영웅에 의해 여왕은 내쳐지고, 그녀 아래 억압된 사람들에겐 행복이 찾아왔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지, 에반? 그러니 이젠 좀 가.”

 “그리고 그 평화로운 무대 아래에서 우리들은 행복할 수 있을 거야.”

 “넌 아무것도 몰라. 뭐가 어찌되었든, 네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그리고 함부로 ‘우리’라고 하지도 마. ‘내’가 기분 나빠.”

  드디어 그녀의 고양이 같은 눈동자가 나에게로 향했다. 희끗희끗 분홍빛이 도는 창백한 두 입술이 앙칼지게 다물어져 있었고 눈썹 한 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그런 그녀조차도 내게는 아름다워 보였다.

 “봐. 예쁜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 보여주지 않는 거야.”

 “난 그렇게 실없는 이야기나 들어줄 만큼 한가하지 않아.”

  에리얼은 나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지난밤에 재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 눈 주위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그러나 피곤해 하는 그녀에게 미안하게도 나는 여전히 웃고 있을 뿐이었다. 앗, 또다시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녀가 정말로 기분이 나쁜가 보다. 그리고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고개를 휘저었다.

 “만약 네가 일본인이 아니라면, 한국? 아니면 적어도 그 나라 말을 이해했으면 좋겠어.”

  내가 말을 이었다.

 “왜냐하면, 난 가끔 도진이와 환이가 이야기 하는 것을 못 알아듣겠거든. 누군가 통역이라도 해주었으면 해. 어쨌거나 나의 바람이지만 말이야. 네가 한국인이었다면 이미 그들과 말을 트고 지냈을 테니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면 계속 쓸 이유는 없잖아. 아, 그리고 생각보다 그들이 이것저것 많이 숨겨 놓았더라고!”

  내가 책상 모서리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는 파란 머그컵을 가리켰다.

 “환이가 가방을 챙기면서 같이 가져왔어. 로즈마리와 페퍼민트, 라벤더 찻잎. 난 집에 있었을 때 차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에 온 후로 이 차향이 얼마나 간절하던지! 은은하게 퍼지는 향이 일품인데. 사실, 이거 가져다주려고 온 거야. 그렇게 하루 종일 깨알 같은 글자들만 붙들고 있으면 머리가 아플 테니까.”

  나는 내 입장에서는 자상하게 대하려고 노력을 했지만 별로 그녀에게 먹혀드는 것 같진 않았다. 나는 라벤더 향이 그윽하게 퍼지는 컵을 들고 문 밖으로 나갔다. 아직은 너무 미숙한 일명 ‘밀고 당기기’를 해 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만약 네가 할 일이 너무 많다면 내가 도와줄 수 있어. 너무 힘들게 혼자서 모든 것을 도맡아 하려 하지 마. 내가 언제나 너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에리얼은 관심 없다는 듯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 자존심이.......

 “에리얼, 잊지 마. 내가 언제나 네 곁에서 무엇이든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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