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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퓨리어스 (FURIOUS)
작가 : HANNAH
작품등록일 : 2017.7.31

아무런 연고도 없이 모이게 된 우리들.
아무 것도 모른 채로 마지막까지 살아남기 위해 서바이벌 게임에 임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들 중 한 명은 이 게임에 대해 뭔갈 알고 있는 듯 하다.

서바이벌 로맨스.

 
퓨리어스(FURIOUS) 1
작성일 : 17-07-31 23:36     조회 : 280     추천 : 0     분량 : 21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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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에리얼의 시점 〕

 

  눈을 떠보니 기억에 없는 전혀 낯선 곳에 있었다. 이제는 눈가에 눈물마저도 고이지 않았지만 그 동안에 쏟아 부은 깊이만 해도 아득했기에, 아직까지도 가슴 한 구석에서는 욱신거리듯이 아려왔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 고통이란 감각마저 적응해 가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 그렇게라도 마주치고 있는 끔찍한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공허함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내가 고개를 들어 여기는 어딜까, 생각해 보았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아 보이는 천장에서 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코끝에서 느껴지는 텁텁한 먼지. 목이 건조하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매캐한 것을 보니, 또 다시 환기조차 되지 않는 밀폐된 공간에 갇혀버렸음을 알아차렸다. 사방을 두리번거렸지만 역시나 밖을 내다 볼 수 있는 창문하나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 구분조차 어려웠고 또 얼마나 오랫동안 잠이 들어 있었는지, 시간의 감각마저 얼어붙어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멈춘 듯하였다. 그저 깜깜하고 조용할 뿐이었다.

  여기는 어딜까. 나는 누구를 위해서, 또 이번엔 무엇을 해야만 하는 걸까.

  이런 답 없는 질문을 되풀이 하는 것도 어느새 오랜 세월이 지나 부질없는 허망이라는 것을 잘 안다. 이제 와서 여기가 어디인가에 대해 놀라지도 않았다. 아니, 이젠 전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지금 나에게서 가장 다행인건 숨을 쉬고 있다는 것 즉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아, 이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것인가. 행운 같은 실수. 실수 같은 행운. 신께서는 죽음이란 마지막 평안에 결단코 도달하지 못하도록 나를 낙원으로 불러내었다. 그 누구도 보호해 주지 않는 망가져버린 낙원 한 복판으로. 앞으로의 시간들을 한 치도 가늠 할 수 없어서, 그래서 더욱 형벌의 의미를 부여해 주는지도 모른다.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를 질려버린 어느 들 고양이에게는.

  나를 배신해버린 심장의 고동소리가 아직까지도 나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잠시라도 내가 받고 있는 벌에 대한 고통을 떨쳐 낼 수가 없도록. 빈껍데기만 남은 나의 삶. 죄인의 삶. 그저 슬픈 듯이.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것 외에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 따윈 아무것도 없었다.

 “.......”

  목소리가 나오질 않아. 눈앞에서 아른 거리는 기억들 때문에.

  하지만 언제까지나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무것도 해결 될 것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이것은 세월이 알려준 교훈이었다. 나는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기엔 너무 지쳐있었다. 무언가 달라져야만 했다. 내 안의 나약함이 지금의 나로 파멸시킨 것이기에. 어쨌든 그래도 이 질긴 목숨을 붙잡고 살아가기 위해서라면 무언가라도 해야만 했지만 삶의 의욕 따윈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려 움직일 힘조차 나지 않았다.

  난 어쩌면 좋지? 무엇을 하면 좋을까.

 천장 위 원모양 전등에서 희미한 불빛이 반짝거렸다.

  아아, 정신 차리자. 정신 차리자.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는 어떤 작은 방 안에 있었는데 천장과 마찬가지로 사방의 벽 또한 딱딱한 시멘트 색깔을 띠고 있었다. 앉아 있는 작은 침대는 출입문의 마주 편에 가로로 놓여 있었고 앞에는 접이식 의자와 나뭇결이 선명히 드러난 짙은 고동색 책상, 그 위에는 파란색 스탠드가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침대 끝 정면으로 겨우 옷가지 몇 벌을 넣을 수 있는 작은 옷장이 전부였다.

  ‘그래도 그 지긋지긋한 곳은 아니라서 좋군.’

  나는 속이 살짝 비칠 정도인 반팔 와이셔츠와 착 달라붙는 짧은 검정색 속바지 비슷한 것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불쾌하게도 그런 것을 입은 기억이 전혀 없었다.

  신경 쓰지 말자. 따져봤자 누구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나는 그 자리에 일어나 주저 없이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저 너머에 무엇이 기다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계속 여기에 누워 있을 수만 없었다. 미지가 두렵지 않았다. 무언가에 두려워할 만한 삶의 대한 미련도 없었다. 누군가 당장 문을 열고 들어와 목을 졸라버린다 한들 그 사람에게 기꺼이 고맙다고 말할 여유가 있었다. 이제 나를 기다려 줄 사람도, 걱정해 줄 단 한 사람도 이젠 없으니까.

  맨발 차림이었던 터라 촌스러운 원모양 양탄자가 까슬까슬 발을 간질였다. 몇 걸음을 내딛자 방바닥에 뭔가가 돌출되어 걸리긴 했지만 개의치 않고 출입문 손잡이를 열려던 차에 책상 위의 하얀 종이가 눈에 띄었다. 새하얀 국화꽃 같이 흰 포스트잇에는 까만 컴퓨터 글씨체가 새겨져 있었다.

 

 Go to the AP

 CI

 

  나는 포스트잇 말고도 지도처럼 보이는 종이 몇 장과 옷 한 벌을 발견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포스트잇을 더러운 벌레가 붙어 있는 마냥 힘껏 구겨 방구석에 던져 쳐 박아 둔 다음 A4용지만한 지도를 펴 AP라고 표시되어 있는 곳을 확인했다. 종이 한 장은 세 구간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지령 받은 곳은 아래층으로 보이는 구간에 있었다. 나는 함께 놓여 있는 단체복 비슷한 것을 집어 들었다. 목 부근에 버클이 달린 까만 여름용 반팔 지퍼 재킷이었다.

  반팔이라니. 나는 이 삭막하고 차가운 곳에서 얼어 죽고 말거야.

  하얀색 줄무늬가 소매 테두리와 허리선 등 정갈하게 검정색과 대조되었는데, 나는 오른쪽 가슴 부근에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EPO(Experimental Object)란 글자가 신경 쓰였다. 실험 물체. 하물며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고 있는 내 처지를 너무나도 잘 알려주는 단어였기 때문이기에.

  어쨌거나 거칠게 재킷을 걸치고 이와 마찬가지로 옆이 틔어 있는 스커트-단을 따라 하얀색 줄무늬로 깔끔하게 재단된-면바지도 위에 걸쳐 입었다. 치마 길이는 허벅지의 삼분의 이정도 내려왔고 꽤 괜찮은 디자인이었긴 하다만 내 입장에서는 어쩐지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들이 입은 죄수복처럼 느껴졌다. 그러데이션이 넣어져 있는 넥타이를 집어 목에다 걸쳤다. 하얀 늑대 실루엣과 배경 십자가가 인상적인 그 넥타이는 어디 도망이라도 못 가게 묶어 놓는 개목걸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영원히 도망칠 수 없게 매달아 놓은 쇠목걸이 같은. 나는 네 등분으로 접은 지도를 왼손에 쥐고 문 밖을 나섰다.

  순간의 긴장이나 두려움 없이 문 밖을 나선 첫 느낌은 ‘조용하다’였다. 문 밖은 마치 호텔처럼 하나의 긴 복도 사이로 여러 개의 방이 위치하고 있었는데 내가 나온 방은 가장 끝 쪽이었다. 마주 편에는 네 개의 방이 있어 총 여덟 개의 방이었다. 화성암으로 만든 복도는 맨발로 다니기에는 딱딱하고 냉기가 흘렀다. 바닥이 카펫이었으면 했지만 어쩐 일인지 공기 중 습도가 높아 곰팡이 냄새가 날 것 같았다. 어쨌거나 결론은 복도에 ‘아무도 없다’라는 것이다.

  굳이 다른 뭔가가 있다고 한다면, 막다른 벽 아래에는 단순하면서도 유난히도 눈에 튀는 짙은 크림색 장식장이 하나 있었다. 도대체 이런 걸 왜 가져다 놓은 건지는 모르겠다만 바로 그 위엔 어느 여인의 초상화가 아슬아슬하게 걸려 놓여 있었다. 그 여자는 곱슬곱슬하고 짙은 검은색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닿아 있었고 요란한 장식 없는 검은 실크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눈물 가득한 파란 눈동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기분 탓이겠지.

  초상화 속 그녀의 입가엔 자상한 미소가 어려 있었지만 눈가에는 눈물자국만이 선명이 남아 있었다.

 “그림 속에 갇힌 당신은 나보다 더 슬픈 사람입니다. 영원히, 그 눈물 자국이 마르지 않을 테니까요.”

  곧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은 그녀의 뺨을 가만히 닦아주었지만 그 어떤 것도 묻어나지 않았다. 그 단조로운 초상화에 가만히 얼굴을 대었다. 차가운 기운이 뺨에 와 닿았다.

  “아니, 어쩌면 당신은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르죠. 이미 내 안에는 눈물이 바다를 이루어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데, 당신은 웃을 수라도 있네요.”

  그나저나 누가 왜, 이런 그림이 걸어 놓았을까. 그리고 왜 초상화 속의 여인은 그런 표정으로 상복을 입고 있는 것일까? 처음으로 마주친 시선은 가슴 시릴 정도로 목을 죄어 오는 것 같았다. 어쩐지 나와 비슷해서 더욱 가슴이 타들어 가는지도 모른다.

  말을 할 수 없는 당신이여, 당신은 앞으로의 나의 미래를 알고 있나요? 그래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건가요?

  나는 슬프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림 속 여인의 얼굴을 만져 보았다. 그저, 입체감 없이 매끄러웠다.

  나머지 방들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하지만 이내 언제까지나 의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앞으로도 그 누구도 나에게 해답을 알려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나는 다시 긴 복도를 따라 걸었다. 그러다 좌측으로 바로 꺾어지면 식사 실이었고 바로 앞은 위를 향하는 사다리 밖에 없었다. 기분이 묘했다. 분명 이 넓은 공간을 그녀 혼자 사용하지 않을 터, 필히 다른 누군가가 있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좌우간 위치를 다시 확인한 나는 방향을 틀어 나선형 계단으로 내려갔다. 한 층을 내려가니 왼쪽 첫 번째로 보이는 곳이 AP이었다. 나는 들어갈까 문 앞에서 서성이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 안에 사람 몇 명이 모여 수군거리고 있었다.

 

  어느 새, 잘라 버렸던 까만 머리카락은 차분하게 어깨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시간의 경과를 알려주는 가장 알기 쉬운 단서였다. 그리고 흘러간 시간만큼이나 아주 오랫동안 햇볕을 쬐지 못해 ‘하얗다’를 넘어선 핏기 없는 팔뚝은 마치 시체와도 같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온전한 사람 피부 색깔은 아니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낯선 이들의 등장에 바짝 정신 차려 경계하여야만 했다. 이곳에 ‘끌려 온’ 후 이렇게 많은 숫자의 사람은 처음 볼 뿐더러 나를 포함한 약 여덟 명의 이들 역시 같은 디자인에, 같은 색깔의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내부 역시 내가 나왔던 방처럼 사방이 민무늬 회색으로 도배되어있었는데 삭막하게도 가운데 커다란 탁자 또한 같은 색깔이었지만 조금 더 옅었다. 그리고 조그마한 짙은 남색 의자가 상석에 하나, 양 옆으로 일곱 개 놓여 있었고 그 앞에는 한 벽면을 가득 채울 것 같은 벽걸이형 까만 모니터가 걸려 있었다. 나는 휑하고 쓸쓸한 장소라고 생각했다. 한참 실내를 조심스럽게 구경하고 있던 나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아니, 명백한 시비 어조였다.

 “네가 여덟 번째야. 빌어먹을”

  탁자에 앉아 있던 붉은색 머리 남자아이가 눈을 번뜩이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나 역시 차갑게 대꾸하려고 하였지만 어쩐지 목이 메어서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오랜 만에 들어보는 나 자신의 목소리기에 지금 내가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누군가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조차 혼란스러웠다.

  지난 이곳에서의 시간 동안, 엘레나 외에 처음으로 말을 걸어준 두 번째 사람이었지만 굳이 무례한 이에게 상냥하게 대해 줄 마음 따위 없었다. 내리 깔보는 듯 한 언동과 결례에 한마디로 첫인상이 최악이었다.

 ‘얽히지만 않으면 되. 이들과 얽히지만 않으면 되.’

  불쌍하게도, 내가 스스로를 타일렀다.

 “이봐.”

  성질 더러운 그 아이. 그가 짧게 나를 부르더니 책상 위에 놓인 어떤 것을 집어 들어 던지다시피 건네주었다. 나는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는 직사각형 플라스틱 같은 것을 한 손에 잡아챘다. 일반 명함정도의 크기의 카드였는데 이니셜이라고 할 수 있는 알파벳이 정갈하게 적혀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그거 빌어먹을 네 신분증이라고 하니까 간수하고 있어. 도대체 여기는 뭐하는 곳이야? 이런 곳에 내다 버린 것 보니 어지간히도 내가 귀찮았나 보지. 젠장! 차라리 고아원에 갖다 버리라고.”

 “뭐라고?”

 “너 사람 말 귀 못 알아들어?! 이런 곳, 척 하면 모르겠어?”

  그가 비꼬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 곳이 어디인데?”

  게다가 놀랍게도 그는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순간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줄 알았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워서 지금 눈앞에 펼쳐진 낯선 이들이 과연 내가 만들어낸 환상이 아닐까. 그렇다면 드디어 내가 미쳐버린 것이겠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다. 두 눈에 비쳐진 이 광경 전부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잠시만, 그렇다면 넌 처음부터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있단 말이야? 너도 그 동안 계속 그 곳에서 같은 곳에.....?”

 “갇히다니? 난 여기 오늘 처음 왔다고.”

  그가 짜증내며 신경질 적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내겐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낯선 이 곳에서 그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이 눈에 보였지만 나는 그의 투정을 받아 줄 정도로 여유롭지 못했다. 오히려 그가 가시를 곤두세워 난리를 피울수록 나의 마음은 잔인하게 얼어갔다. 기계처럼 삐걱거리며. 심장이 금방이라도 멈춰 버릴 것 같이.

 “오늘 처음 왔다니!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나는, 이제껏 줄곧.......”

 “난 기분이 좀 나쁘니까 저리 좀 갈래?”“이봐,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말을 제대로 이을 수 없었다. 지금 심정을 그저 멍하다고 달리 표현할 수 없었다. 가슴 속에 담아둔 말들은 갑작스레 북받쳐 올라 입술에만 겉 돌뿐 제대로 된 문장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보다 확실하고 핵심적인 문장을.

 “네가 할 말이 더 있든 없든 내 알바가 아니야.”

  그가 탁자 위에서 내려와 성큼 성큼 빠른 걸음으로 멀어졌다. 나는 손을 뻗어 그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더 이상 그로부터 해답을 얻어 낼 수 없다고 확신했다.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해답을 얻을 수 있겠지. 지금까지도 잘 견뎌 내어 왔잖아.

  하지만 슬슬 인내심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안절부절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여기에 온 지 또 얼마나 세월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껏 엘레나 외에는 사람을 처음 대하기 때문에 뭘 어떻게 굴어야 하는지, 무슨 말을 꺼내야 상처 받지 않는지 정신이 없었다.

  저들은 누굴까?

  나와는 다른 사람인 건 분명했다. 다른 이들 전부가 여기가 어디인지 감이 잡힌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저 빨간 머리 남자아이와 같다면 나는 이들 사이에서의 이방인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얽힐 이유는 없었다. 내게 있어서 그 전처럼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을 테니까.

 “좋아, 네 시야에서 사라져 줄게. 네가 원한다면 말이야.”

  사람이란 존재 자체가 싫었다. 나를 이렇게 만든 것들이 ‘사람’이었으므로. 그래. 차라리 혼자가 더 편안하고 마음이 놓였다. 적어도 누군가 때문에 상처 받을 일은 없을 테니. 시끌시끌한 소음보다는 ‘유(有)’의 존재를 집어 삼킬 적막이 간절히 필요 했다. 모든 것이 사라지도록. 이렇게 죄어오는 족쇄의 아픔을 잊어버릴 수 있도록. 아직 아무렇지 않게 굴기에는 이미 내게 남아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고 더욱이 과거에 얽매여 있는 후회와 그리움이 나를 집어삼켜버리는 것만 같았다.

 ‘괜찮아, 괜찮아. 아무 일 없을 거야.’

  날카롭게 뛰어대는 심장을 쥐어뜯으며 또다시 스스로를 다독인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 질 것 같이 코가 시큰거렸지만 이미 눈가는 메말라 사막보다도 황폐해 같잖은 눈물 따위는 나오지 않았다. 조용히 벽 구석에 기대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내버려 두었다. 나도 모르게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애써 깨물며 이렇게 불안에 차 있는 나를 아무도 보지 못하게, 그 누구도 나 자신을 업신여기지 못하도록.......

  혼자 있어 보려고 했지만 짜증나게도 눈치 없는 다른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나는 미간을 찡그리며 눈썹을 치켜세웠다.

 “안녕? 난 환이라고 하는데, 왔어. 한국에서. 네 이름은 뭐니? 혹시 여기가 어딘 줄 아니?”

 “.......”

  나와 같은 동부 아시아인종인 한 남자아이가 어설픈 단어나열식으로 물었다. 남자치고는 살짝 긴 머리카락에 순진해 보이는 검은 홍채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물어보았지만 나는 귀찮기만 해 못들은 척 고개를 돌려버렸다. 공연히 화풀이를 다른 이에게 하는 것이었다.

 “너 영어 할 줄 몰라? 아, 보아하니, 대 놓고 뭐라 지껄여도 못 알아듣겠네? 한심하긴.”

 “어디서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한 귀에 거슬리고 천박해.”

 “너, 뭐라고 했어?”

  ‘환’이라고 소개한 남자아이 옆에 서 있던 짧은 갈색 머리가 나에게 대들듯이 쏘아 붙였다. 그의 머리 스타일이 쥐 파먹은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아도 인상이 더러워 보이는데 찡그리니 더 더러워 보였다.

 “도진아,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일거야. 다들 우리처럼 알고 있던 사이는 아니잖아?”

 “그래, 네 말이 맞아. 앞으로도 영원히 모르는 사이였으면 한다.”

 “도진아, 그런 말은 실례야.”

  이쪽도 마찬가지.

  환이가 그의 나라 언어로 내게 으르렁 거리는 도진이를 말렸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익숙한 행동이 그들의 오랜 관계를 말해주는 듯했다. 마치 예전의 나와 엘레나의 관계처럼. 도진이라는 그 아이는 내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뭐라고 혼자서 투덜거리고는 다른 곳으로 꺼져버렸다.

 “미안해, 원래 쟤가 저런 애가 아닌데, 갑자기 이런 상황이다 보니 기분이 별로 인가봐. 기분이 나빴다면 내가 대신 사과할게.”

  환이는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도진이의 행동에 대해 사과하였다. 하지만 나는 사과하는 환이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제 만날 일도 없을 텐데. 그의 말대로 앞으로도 아주 영원히, 모르는 사이가 될 것인데.

  솔직히 말해 나는 두려웠다. 더 이상 쓸데없는 것으로 상처 받는 것을.

  그들을 피해 고개를 돌리자 재수 없게도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 있던 누군가와 또다시 눈이 마주쳤다. 나를 쳐다보고 있는 그는 전부터 계속 지켜보았던 것처럼 짙은 올리브색 눈동자를 나에게서 떼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내 얼굴에 더러운 것이라도 붙어 있기라도 한 듯이. 나는 어쩐지 나란 존재에 대해 점수를 매기고 있는 것 같아서 불쾌한 마음이 들었다.

 ‘왜 아까부터 나를 주시하고 있는 거지?’

  그가 인사하듯 손을 흔들었는데도 나는 못 본 척 일부로 시선을 딴 곳으로 두었다. 전부 귀찮았다. 시야에서 다 사라져 버려 혼자 조용히 내버려 두었으면 하고 바랬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 때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디선가 고막을 찢는 기계음이 들렸다. 내가 들어왔던 출입문 바로 반대 편 벽을 가득 메울 것 같은 모니터에서 불빛이 켜졌다. 마치 몰래 카메라로 지켜보는 것 같이 모니터에 비춰져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건 또 무슨 퍼포먼스냐고?”

 “파티다! 새해 파티야!, 아니 학교 댄스파티인가?”

 “좀 조용히 하고 있을래?”

 고막이 찢어질 만큼의 고음이 영 거슬려 한 마디 했더니 이내 사그라졌다.

  이제 좀 조용해 주었군.

  모니터에 굵은 주황색 글씨가 하나 씩 하나 씩 나타났다. 컴퓨터 타자를 치는 것 같이.

 

 매뉴얼을 참고.

 다음 태양이 뜨는 날에 모든 것이 시작된다.

 CI

 

 “매뉴얼이라고? 탁자 위에 그런 거 따위 없는데?”

 “녀석들이 탁자 위에 곱게 두었을 것 같아?”

 “그 매뉴얼이라는 게 종이 더미야, 아니면 무슨 식당 메뉴판처럼 커다란 판이야? 도대체 뭔지를 알고 참고 하라는 건지. 봐, 아무것도 없잖아. 안 그래?”

  도진이가 텅 빈 탁자 위를 뒤집다 못해 엎드리며 매뉴얼이라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나도 힐끗 의자 아래를 살펴보았지만 종이 쪼가리는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매뉴얼이라! 그러다 누군가 번쩍 손을 들어올렸다.

 “아, 그거 내게 있어. 원한다면 읽어줄 요양이 있는데.” 파도가 물결치듯 금발이 살랑거리는 여자아이가 또다시 신경 거슬리는 고음으로 말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녀의 이름은 마샤였다.

 “그리고 탁자 위에 있었어. 내가 첫 번째로 여기에 도착했거든. 사실 지도 같은 거 잘 볼 줄 몰라서 얼마나 헤맸는지 몰라. 아마 지금은 눈 감고도 어디든 찾을 수 있을걸?”

 “대걸레?”

  환이었다. 그리고 마샤는 무시해버렸다. 마샤는 인형처럼 예쁘장한 화색이 도는 미인 형으로 사실 그녀의 뛰어난 미모보다는 오른쪽 머리의 커다란 파란색 별 핀이 더 눈에 띄었다.

 “도대체 그런 걸 왜 혼자 가지고 있는 거야?”

  도진이가 투덜거렸다.

 “뭔가가 놓여 있어서, 내가 잠시 보려고 가져왔는데, 그게 죽을죄라도 된다는 거야?”

 “어,”

 “너, 뭐하는 인간이야?”

 “시끄럽고 읽기나 하지?”

  나를 제외한 모두가 프랑스 인형 마샤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서로가 아는 사이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마샤가 연보라색 집게로 집혀져 있는 약 일 밀리미터의 두꺼운 A4용지 묶음을 보여주었다. 아무것도 프린트 되어 있지 않는 한 장을 넘기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 크고 또렷하게 매뉴얼을 읽기 시작했다. 나도 조용히 눈을 감아 마샤의 말을 경청하려고 하던 차였다.

 “이거 무슨 텔레비전 깜짝 쇼 같은 것이니? 나는 아무것도 신청한 기억이 없는데! 친구들이 신청해 주었나? 하긴 그러고도 남은 애들이긴 하지. 어쨌거나 무슨 캠프 모임이라면 정말 흥미로울 것 같아. 난 그런 거 정말 좋아하거든.”

  제발 뜸 들이지 말란 말이야.

 “서론은 접어두고 빨리 읽어줄래? 아니면 나에게 주던가. 이런 멍청한 놀이나 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단 말이야. 빌어먹을!”

 “말 참 예쁘게도 하네.”

  빨간 머리가 투덜거리며 예쁜 프랑스 인형 마샤의 말을 잘라먹자 뭐라고 따지려 입을 열다가 고개를 저었다. 인형이 커다랗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몇 줄 되지 않는 단락을 읽었다.

 

 게임의 조건은 간단하다.

  승리한 여덟 명만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권한을 쥐어주겠다.

  승자의 조건은 나머지 세 팀은 섬멸한 단 한 팀, 여덟 명에게만 돌아간다.

  단 그 여덟 명은 사망자를 제외하며 항복한 자나 포로 등은 책임자의 선택으로 포함할 수 있다. 이외에 생존자는 없어야 인정된다.

  사망자는 감독기관(CI)에서 관리한다. 한 팀에 생존자 세 명 이하 일 경우에는 자동으로 실격처리가 되며 생존자는 AP 모니터 아래쪽 오른편에 디지털 숫자로 표기 된다. 총 생존자의 수가 표기 될 뿐 상세한 정보는 공개되지 않는다. 게임 필드의 이탈을 엄격히 금하고 필요 사항이 아닌 경우를 제외한 CI의 개입은 없다.

 여덟 명씩 네 팀으로 엄격한 선별을 통해 공정하게 분류되었다. 책임자의 명령은 절대적이므로 미리 정해진 책임자의 지시에 엄중히 복종해야 한다. 팀 내에 모든 권한은 이에게 부여 되고 상황에 따라 처벌(사살)까지 가능 하다. 책임자 다음 서열은 보좌인으로 책임자의 최종 결정에는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각자의 ID 카드 뒷자리에 A1은 CI가 지정한 그 팀의 리더, N2는 보좌인이다. 만약 책임자 사망 시에는 지목된 다른 후계자가 없는 한 보좌인이 모든 권한과 지위를 양도 받으며 보좌인의 권한은 양도가 되지 않는다. 단 책임자의 권한은 두 번 위임되지 못한다. 만약 책임자와 보좌인 모두 사망 시에는 그 팀은 자동 실격 처리로 간주되며 나머지 살아남은 부원들은 다른 곳으로 합류 되거나 사살된다.

 

 P. S 7일 간격으로 기타 사항을 전달하겠다.

 

  원래부터 명랑하다 못해 쾌활한 마샤의 목소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갈수록 흥분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마샤뿐만이 아니라 다른 일원들의 얼굴도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이상하게도 밝아져만 갔다. 내가 보기에 이들은 게임의 온전한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적어도, 당연한 반응이 아니었기에. 그런 표정들을 살펴보면서 또다시 나 홀로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무리들 속에서 혼자인 나 자신이.......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점점 멀어져 간다. 나는 뒤틀려져만 가는데.

  그래, 웃을 수 있을 때 실컷 웃도록 해. 아무것도 몰랐을 때가 가장 행복한 법이니까.

  아까 탁자 위에 있었던 빨간 머리가 제일 먼저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뭐, 뭐야, 이거? 게임이라니. 무슨 시험 같은 건가? 귀찮게.”

  그가 더듬거리며 미간을 찡그렸다.

 “시험은 무슨. 거봐, 게임이라잖아. 서바이벌 게임! 내 말이 맞잖아. 분명 상금도 어마어마할 거야. 잠시만,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은 여기가 타국이라는 말인가?”

 “우리 부모님이 언제 여권을 넘기셨지? 잠시, 이런 것에 동의하실 분들이 아닐 텐데. 차라리 이럴 시간에 책이라도 읽으라는 것이 우리 집 신조였지.”

 “윽, 차라리 집보다 여기가 더 재밌고 살맛 날 것 같아. 그렇지 않니?”

  금발의 백치 인형 마샤가 또 다른 금발의 백치 미남에게 대답하였다.

 “당분간 여기에 있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아. 그러고 보니, 휴가철이잖아. 여기서 쉬면서 좀 놀자고.”

 “돌아 갈 수·······있는 거야, 사 년 만에?”

  별 영양가 없는 만담 가운데 도진이가 말끝을 흐렸다.

 ‘사 년........만이라니?’

  멍해 있던 나는 순간 도진이를 쳐다보았다. 특정 단어가 뇌리에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초점이 흐릿하게 변질된 가운데 그의 표정은 거의 경악에 가깝게 질려 있었다. 놀라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의 말에 관심이 갔다.

  사 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나는 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다른 이들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아니, 질려있었다. 환희와 새로운 즐거움 속에서 비참하게 뒤틀린 표정. 그는 내가 알고 있지 못하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다른 이들보다 좀 더 나와 직접적으로. 보다 관련되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돌아갈 수 있다는 그 말 한마디가 심장 한 가운데를 꿰뚫어버리는 듯하였다.

  이 게임에서 승리 할 경우 고국으로 돌아 갈 수 있다는 그들의 제의. 돌아갈 수 있다. 돌아갈 수 있다. 이젠, 그 곳에서 있지 않아도 돼. 잃어버린 불쌍한 나의 시간.

 “사 년 만이라니? 넌 도대체 여기서 사 년 동안이나 무엇을 하고 있었니? 기숙학교 같은 건가? 난 오늘 왔는데 말이야. 전학 간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그렇다면 이건 교복인가?”

 “난 전혀 전학 수속을 밟은 기억이 없는데? 아, 강제 전학? 하지만 난 그럴 만큼 사고를 친 기억이 없다고!”

  금발의 백치 미남이 또 생각 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럼 아닌가? 그렇다면 왜 내가 여기에 있는 거지?”

 “그나저나 본인의 사전 동의나 통보 없이 강제 전학이 가능 한 거야?”

 “아니, 그것보다는 여기가 학교라고 생각하는 거야? 무슨 교도소도 아니고 말이야.”

 “어머, 교도소라기보다는 아늑한 기숙사 같잖아. 분명 다른 건물에는 학교가 있을 거야. 난 여기의 시설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음, 한 가지 흠이라면 햇볕이 들어오지 않아 어둠침침하긴 하지만 뭐, 괜찮아. 뭔가 21세기 드라큘라 성 같은 분위기가 나지 않니? 솔직히 사람 사는 곳 같은 데는 아닌 것 같아.”

  어딘가 억양이 살짝 특이한 마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러자 도진이는 놀람을 금치 못하며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아무 생각 없을 수 있는 거지?”

  나도 도진이만큼이나 어쩔 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도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지만, 아주 오랫동안, 작고 검은 곳에 갇혀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이들은 아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어째서, 나만이........

  갑작스레 심장 박동 수가 증가하는 것이 느껴진다. 호흡이 가빠져 금방이라도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아팠다. 아무것도 모른 채 홀로 해매는 나 자신이 안타까워 미어진다. 그 빨간색의 남자아이의 말이 사실이었을까? 무언가가 한참 어긋난 느낌이었다. 나는 도진이란 아이를 쳐다보았다. 도진이가 뭐라 말을 꺼내기 전에 환이가 입을 열었다.

 “......... 사상자라는 단어. 내가 알고 있는 그 뜻 맞지?”

  그가 중얼거렸다.

 “에이!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그냥 탈락자를 말하는 거겠지.”

  모두들 보통 이상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그에게 한마디씩 던졌다. 하나 같이 쓸데없는 소리나 하지 말라고. 하지만 도진이는 선뜻 의미심장한 얼굴을 좀처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의 가설이 더욱 분명해져갔다.

 “모르는 소리.” 도진이가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또다시 학살이 일어날 거야.”

  그는 알고 있었다.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 나와 가장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 이건 게임이다. 그들이 게임이라고 말한 거라면 그런 것이다. 생존을 건 도박. 나는 알고 있다. 나의 본능이 두려울 정도로, 소름끼칠 정도로 속삭이고 있다. 그러나 나와 도진과, 어쩌면 환이를 제외하고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납득해야 옳은지 판단력이 흐려지는 시점. 그랬다. 나를 포함해 이들의 연령은 고작 10대였을 뿐이었다.

 “저기 말이야. 대충 상황을 정리 해보자.”

  무미건조한 전등 빛 아래에 유난히도 눈에 띄는 어느 남자아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조명 의 빛줄기를 따라 부드럽게 이어지는 짙은 갈색 머리카락이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누굴까.

  나는 다시 한 번 그를 바라보았다. 나무 수피처럼 은은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빛깔이 피로한 나의 두 눈을 또다시 사로잡았다. 머리카락 끝에서 퍼지는 새하얀 얼굴은 당연히 나와는 전혀 다른 화색이 돌았다. 그가 나를 쳐다본다. 신비스러운 밝고 선명한 초록색. 끊어질 듯 이어진 그의 아름답고도 날카로운 얼굴선이 나를 베어버리는 것 같았다.

  내가 미쳤나?

 “하고 싶다는 말이 뭐야? 말리지는 않아.”

  싱글거리는 마샤가 친절하게도 대답해 주었다.

  전체적으로 시원시원하게 생긴 그의 얼굴에서 초콜릿처럼 녹아내리는 선명한 색깔 사이로 눈처럼 흰 바탕에다가, 아까부터 불쾌하게 나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나뭇잎 색깔이 예쁘다는 걸 차마 부정할 수는 없었다. 까맣기만 한 나와 너무나도 달랐다. 싫다. 그와 비교 되어서. 그 백치 미녀와 다른 방면으로 열등감을 불러 일으켰다.

 “일단 자리에 앉아서 침착하게 생각해보자. 일단 여기가 어딘지 알고 있는 사람 있어?”

 “알고 있으면 내가 이러고 있겠어?”

  어디선가 또다시 투박한 억양이 들려왔다.

  그건 맞는 말이다. 말투는 밉상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분명 천천히 또박 또박 이야기 했음에도 불구하고 환이는 비영어권 나라에서 온 터라 이해하는 애 먹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도진이가 내게 대했던 사나운 기색과 달리 친절하게 뜻을 설명해주었다.

 “하! 네가 그 잘난 뭔가 라도 되는가 보지? 웃기는 군.”

 “그런 건 아니야.”

  위니가 대놓고 비꼬는 투로 비아냥거리자 그는 살짝 무안해 하는 것 같았다. 이상한 알파벳 꼬리표 하나 더 붙인 사람이 누가 되든, 그게 누군지 알게 된다면 저 녀석은 불만에 몸 둘 바를 모를 것이다.

 “아쉽게도 난 아니지만 현재 담당자로 보이는 리더가 누군지도 모르고 밝혀주시지도 않는데, 나라도 나서야 상황이 빠르게 정리될 수 있지. 아, 내 이름은 에반 플로렌스야. 성이 여자이름 같긴 하지만 뭐, 그것 가지고 뭐라고 할 만한 나이는 아닌 것 같고. 그리고 일단 나이는 열여덟 살. 음....... 일단, 안녕?”

  그가 낮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째서 그는 이렇게까지 아무렇지 않고 여유로울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자상하고 당당하게 짓는 미소가 내 눈에도 아름다워 보였다. 확실히, 내가 아는 이곳과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입 한 꼬리를 씩 들어 올려 천진난만하게 웃음을 보이며 가장 가깝게 놓여 있던 의자에 앉았다.

  “그의 말이 옳아. 난 여기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아. 어서 나가고 싶어.”

  에반의 말을 누구보다도 주의 깊게 듣고 있던 환이가 어설픈 영어 실력에 전혀 엉뚱한 대답을 늘어놓았다. 순간 환이의 목소리에서 묻어나온 절박함에 나도 모르게 말한 것은 아니었을까 흠칫했다. 나도 그의 말에 동의한다.

  나도 여기에 더 이상 머무르고 싶지 않아.

 “나는 김 환. 환이가 내 이름이야. 옆에는 한 도진이라고 해. 우리 둘은 열일곱 살, 한국에서 왔어. 에- 그러니까 영어를 잘 못하지만 일단은 잘 부탁해. 여긴 외국 사람이 정말 많은 것 같아!”

  환이가 잔뜩 찡그리고 있던 도진이를 대신해서 자신들을 소개했다.

  너도 이들이 보기에는 외국인이야.

  “이거 무슨 이벤트인가? 그런 거 있잖아. 텔레비전에서 하는 쇼 프로그램 같은 거. 혹시 그런 것에 뽑힌 건 아닐까? 아, 마샤 끌로이라고 해. 열여섯 살 소녀랍니다!”

  매뉴얼을 읽었던 마샤가 명랑하게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카메라를 의식하며 손가락을 ‘브이’자를 만들어 눈 사이로 갔다대었다. 마샤는 흘러내리는 금발을 다시 귀로 넘기며 눈동자 색만큼이나 밝고 선명한 별모양 핀으로 머리카락을 고정시켰다.

  가당치도 않은 소리. 이들은 지금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너무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서 나는 분할 정도로 치가 떨렸다.

 “내 생각이 맞을 걸?”

  마샤가 잿빛 눈동자에 금발 백치에게 물었다. 그러자 자기가 말할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가 당당하게 말했다. 누가 보면 서로 남매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그렇구나! 그런 거라면 정말 재밌겠는걸! 정말 상금도 있으려나? 어느 방송국에서 주체 하는 것일까? 이 정도의 스케일이면 우린 금방 유명해 질 거야. 아, 난 보르 디에터라고 해.”

  그가 장난스럽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런가? 타임 슬립인 건가!”

 “그런 게 아니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리고 말았다.

  아, 조용히 묻혀 있고 싶었는데.

  갑작스러운 고함에 다들 깜짝 놀라며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어떻게. 내가 머리가 잘 못 된 건가. 아니면 긴 꿈을 꾸었던 것인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납득해야 할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 말은.......”

 “그럼 넌 우리가 왜 여기에 있는 줄 알아?”

  마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았다.

 “도진, 너는 뭔가를 알고 있어.”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난, 난 언제가 끌려 왔어. 그리고 차가운 곳에, 빛 하나 들어오지 않은 깜깜한 곳에 혼자, 갇혀 있었어. 이유도 모르고, 목적도 모르고. 죽지 않을 정도의 식량과 음료. 그리고........ 그리고!”

 “심어 둔 배우가 틀림없을 거야. 바람 잡아 그럴 듯하게 참가자를 속이는 거지.”

 “아니라니까!”

  감정이 북받쳐 윽박질렀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내 말을 귀담아 들어 주지 않았다. 도진이를 제외 하고는.

 “거기 까칠한 친구.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난 지금 정말 즐거울 것 같은데!”

  보르가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빨간 머리에게 물었다.

 “난 이따위 짓거리 하고 싶은 마음 조금도 없어. 당장 집으로 보내줘.”

  그가 마지막이 내키지 않는 듯이 짧게 덧붙였다. 그 다운 대답이었다.

 “이봐, 어리광 부릴 나이는 지나지 않았나?”

 “너도 어서 시청자들에게 자기소개 해야지!”

 “쇼 프로그램 따위가 아니라니까!”

 “위니아르 레보프 열여섯 살. 이제 만족해?”

 “뭐야. 나보다 어리잖아!”

 “도대체 왜 아무도 내 말은 듣는 척이라도 하지 않는 거지?”

  구석에서 반 쯤 몸을 뒤로 젖힌 도진이가 위니가 눈에 영 거슬렸나본지 한 마디 하자 위니가 책상을 두 손으로 내려치며 고함을 질렀다. 아마 그가 민감한 부분을 건들인 것 같았다.

 “빌어먹을 그래서 어떻다는 거야?”

 “자, 자. 이래봤자 얻어지는 이득은 없어. 이런 종류의 게임은 개인플레이로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게다가 이거 기권은 어떻게 하는 거야?” 에반이 난처하듯 그들을 중재하며 조곤조곤 타일렀다.

 “그리고 만약에 네가 원한다면 말이야, 이름을 물어 보아도 될까? 나는 내 또래의 외국인들을 이렇게 한 자리에서 함께 하는 건 처음이거든. 서로 알아 두면 언젠가 좋겠지! 글로벌 시대니까 말이야.”

  에반이 염색을 했었는지 탈색인지, 중간 중간 하얀색이 감도는 머리카락을 짧게 동여 맨 남자아이에게로 화재를 돌려 버렸다. 구릿빛 피부로 혼혈인 것 같았다. 그는 조용하고 깐깐하게 보였는데 검은색 뿔테 안경 너머로 살짝 보이는 새까만 검은색 홍채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이는 열여덟 살이고 올리버 메이플. 그냥 올리버라고 불러줘.”

  그가 안경을 벗고 새하얀 와이셔츠 자락에 렌즈를 문질렀다.

 “올리비아? 예쁜 이름이네!”

  또 환이었다.

 “내 이름은 올리버야. 올리비아가 아니라.”

  올리버인가 올리비아인가, 어찌되었든 그 아이가 슬쩍 나를 넘겨보았다.

  어떻게 이렇게 쉽게 안면을 틀 수 있는 것일까. 인간과 인간의 사이에서 어쩌면 저렇게 쉽게, 가벼운 웃음을 흘리고 다닐 수 있는 것이냐고. 나를 부디 그 무리에 넣지 말아줘. 어울리고 싶지 않으니까. 한 여름 밤의 꿈처럼 더 이상 그 짧았던 환상에 주저앉고 싶지 않아.

  멍하니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는 나에게 문득 시선이 몰려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무슨 대답을 해야 되고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몰랐다. 그런 것 따위는 오래전에 잊어버렸다. 내가 입술을 꽉 깨물고 간신히 말을 이었다.

 “에리얼.” 내가 짧게 대답했다.

 “에리얼. 그것이 내 이름이야.”

  예전에 엘레나가 나를 그렇게 불렀었다. 본명은 아니지만. 그리고 나이 같은 건 몰랐다.

 “대단해. 그 누구보다도 짧았어. 축하해.”

  두드러지게 밝은 금발을 뒤로 넘기던 마샤가 살짝 놀리듯이 말했지만 나는 그녀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무시해버렸다. 마샤를 보자 어쩐지 괴로운 기억이 목을 타고 기어와 숨통을 조르는 것 같았다. 마샤는 내가 단순히 그녀의 농담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는지 머쓱해져 얼굴을 붉혔다.

 “그런데, 그 책임자라는 사람은 누구야? 분명 그는 뭔가를 알고 있을 게 분명하잖아.”

  보르가 끼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누구냐는 듯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지만.

 “에반이라고 했던가? 어쨌든 너는 아니라고 했고 마샤는? 나는 아니고. 아까 말하는 것 들어보니까 위니도 아니지?”

  보르가 간신이간신이 이름들을 기억해 내며 잔뜩 찌푸리고 있는 위니에게 물었다.

 “쳇”

  그가 대답 대신 말했다.

 “카드 뒷자리에 나와 있다고 하지? 도진아. 너는 어때?”

 “그거야 본인이 잘 알겠지. 이제 보니 그 알파벳 하나 더 붙은 사람들은 대우부터 다른 것 같으니까! 있었던 곳이며, 여기까지 거쳐 온 과정까지 철저하게.”

  나를 힐끗 쳐다보고 탁자에 엎어져 자는 도진이가 귀찮다는 듯이 툭 내뱉자 모두가 전혀 그 사실을 몰랐다는 듯 일제히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고개를 살짝 들어올렸다. 그의 말이 확실한 건 모르겠지만 내가 있었던 곳에서는 나를 포함해 다섯 명이 전부였다.

 “나 두 번째라고 하더라고.”

  도진이가 일종의 신분증 역할을 하는 카드 뒷면을 보여 주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에, 진짜야? 과정부터 달랐다면,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데도 왜 너와 함께 지냈어?”

  정작 도진이와 제일 가까운 환이가 오히려 더 놀라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 나중에 알려줄게.”

  유쾌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도진이가 N2라면, A1은 올리비아겠네?”

 “올리버라니까.”

  마샤가 도진이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올리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올리버가 자기 카드를 뒤집어 보며 자기도 그게 몹시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부정의 의미로 고개를 저었다. 마치 복권이라도 당첨되기 바라는 사람들 같아 보였다.

 “안타깝지만 난 아니야.”

 “아....... 에반도, 환이라고 했던가? 어쨌든 보르, 올리비아, 위니, 나도 아니라면?”

  어느 새인가 올리버는 올리버라는 그의 본명보다 올리비아라는 이름으로 많이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고 마샤가 하나하나 손을 꼽아보고는 누군가 하나 비는 것을 나와 마샤가 동시에 깨달았다. 이런.

 “에리얼?”

  모두가 의심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무도 내가 그 책임자인가 뭔가 하는 것 일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나도 마샤의 웅얼거리는 혼잣말을 들으며 방금 깨달았고 내가 원해서 떠맡은 직함도 아니었다.

  책임자? 보좌인?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내게 자꾸만 시선이 쏠려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나는 위니가 주었던 카드를 탁자 한 가운데로 던져버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에 더 이상 머무르다가 미쳐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넥타이에 그려져 있는 디자인과 같이 까만색 바탕에 하얀 늑대 실루엣이 그려져 있는 카드 뒷면 아래 하얀 글씨로 쓰여 있었다.

 

 EPO - HK2111 A1

 

 "그럼 저 여자애가 그 책임자란 말이야? 아니, 우리 팀의 리더라고 해야겠지?”

  보르가 전혀 예상 밖이라는 듯이 과장스럽게 놀라며 덧붙였다. 어쩐지 보르의 반응이 더 불쾌하게 느껴졌다.

 “빌어먹을! 말도 안 되는 게임 나부랭이에, 저 헛소리를 지껄이는 동양인 여자애가 나의 리더라고? 잘 하겠네. 어서 집에 가야겠어! 아니, 여덟 명에는 항복한 다른 팀도 받아 준다고 하니, 어서 딴 자리를 알아봐야할 것 같아.”

  위니가 큰소리로 내가 들으라는 식으로 빈정거렸다. 순간 문 밖을 나서려던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무엇을 그렇게 잘못을 했기에 왜 저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건가. 내가 그에게 무슨 죄를 지어서! 이래서 그녀는 사람이 싫었다. 사람인 나 스스로조차 역겨워 미쳐버릴 것 같은데 왜 모두가 나를 상처 입히고 싶어서 안달이 난 걸가?

 “야, 그녀와 원래부터 아는 사이야?”

 “아닌데.”

 “그렇다면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보통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런 종류의 말장난은 하지 않아. 초면이라면 더더욱 말이지.”

  내가 문고리에서 서서히 손을 떼자 마샤가 얼른 그에게 말이 심했다고 충고하였다. 그는 마샤의 말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팔짱을 낀 채 거만하게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어떤 감정을 느껴야만 하는 걸까?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 걸까?

  나는 그런 표정 없는 얼굴로 위니에게로 다가갔다. 너 따위가 뭔데 감히 나를.

 “여왕 폐하 납시오.”

  나도 그에게 상냥한 웃음을 지어주었다. 안면 근육을 비틀어 주며. 그리고 오랫동안 오른쪽 허벅지 낡은 가죽 끈에 부착되어 있던 것을 자연스럽게 꺼내들어 손잡이를 거꾸로 잡았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앉아있던 그의 턱을 치켜들며 갖다 대었다. 움직이지 못하도록 위니의 허벅지를 무릎으로 세게 짓누르고 지긋이 그를 바라보는 나의 눈매에는 변화 없이, 그리고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띠어 주었다.

 “고마워,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어서. 모든 권한은 이 팀의 책임자인 나에게 부여 되고 상황에 따라 처벌(사살)까지 가능 하다.”

  위니는 자신의 뺨에 대어진 날카롭고 차가운 금속이 칼날이라는 것을 그제 서야 알아차린 것 같았다. 순간 그의 오만한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어리자 조금 흡족해졌다.

 “빌어먹을. 그건 또 어디서 난 거야?”

 “게임 시작 전부터 일곱 명으로 출발하고 싶지 않으니 오늘은 넘어 가지.”

  나는 은빛으로 정교하게 장미 꽃잎이 조각된 작은 단도를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문 밖으로 나가기 전에 그의 얼굴을 있는 힘껏 갈겨버렸다.

 “이 한심한 것들을 데리고 움직이라니, 어째서 내가 리더인지 알 것 같군.”

 

  나는 그 곳을 빠져 나와 왼쪽 재킷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내부 기지 지도를 꺼내었다. 종이 수를 세어보니 지도만 네 페이지였는데, 첫 번째 페이지는 간략한 전제척인 구도로, 아마 총 3층으로 이루어져 있을 거라 짐작할 수 있었다. 각각의 층은 계단으로 이동 할 수 있었다. 가장 위층인 지하 1층에는 내가 있었던 개인 방 여덟 개와 식사 실, 세탁실과 밖으로 나가는 현관문이 있었다. 지하 2층에는 방금 전에 나온 AP과 같은 라인으로 트레이닝 룸(뭐 하는 데 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주 편에는 재량이라 쓰인 빈방과 서재, 한 칸 너머 보건실. 마지막 3층에는 식량과 무기 창고 두 곳이 가로 세로 붙어 있었다. 비교적 기억하기 쉬운 단순한 구조였다. 마치 마샤가 말했던 것처럼 작은 학교 기숙사 같기도 하였다.

  기숙사라. 나라도 정신 차려야 한다. 주최 측에서 이런 장소를 마련할 만큼, 아주 오랜 시간동안 여기에 있어야 할지 모른다. 어쩌면 그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과거에 얽매이지 않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돌아가야 해. 멋대로 떠들라지.’

 

  전에 언급했던가?

 나는 두려운 것 따위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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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퓨리어스(FURIOUS) 0 2017 / 7 / 31 458 0 7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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