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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학사무림
작가 : 봉황송
작품등록일 : 2016.3.28

학사의 무림행 이야기

 
학사무림 3장
작성일 : 16-05-04 11:58     조회 : 522     추천 : 0     분량 : 7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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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단하세요.”

 팽설이 존경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어렵고 힘든 문에 있어서 무아지경을 경험한 임학후가 거인처럼 크게 보였다. 문약해 보이는 왜소한 체격 안에는 결코 굽히지 않는 굳건하고 고고한 기상이 느껴졌다.

 “새처럼 하늘에서 움직일 수 있는 너의 능력도 대단하다.”

 임학후 입장에서는 팽설이 놀라웠다.

 땅을 박차고 하늘로 한 마리 새처럼 솟구쳐 오르고, 눈에 보이지도 않게 움직이는 도를 휘두르는 능력이 경이로웠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사람이 과연 펼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호호호! 실력이 출중한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에요.”

 팽설이 짤랑짤랑한 웃음을 터트렸다.

 ‘헉! 아가씨가 공부를 하면서 저렇게 좋아하시다니…….’

 못마땅한 눈빛으로 임학후를 바라보던 팽위린은 진정 기뻐하는 팽설을 보면서 놀랐다.

 그녀는 학업의 수많은 시련으로 인해 큰 부담을 안고 있었기에 학업을 할 때면 항상 주눅이 들었었다. 점점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늘 힘들어하는 모습을 내비쳤다.

 ‘괴짜 학사가 이처럼 기특한 일을 할 줄은 몰랐는데…….’

 팽위린이 눈을 가름하게 뜨고 임학후를 살폈다.

 말도 되지 않은 일을 벌인다고 생각하며 무시했는데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냈기에 깜짝 놀랐다. 문방사우를 휴대하고 다니면서 연무장에서 상상할 수 없는 수업을 하고 있는 참으로 괴이한 사내였다.

 “영자팔법을 배웠으니 이제 천자문을 시작해볼까?”

 임학후가 말했다.

 “이제 서당으로 가야겠네요.”

 팽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면서 딱딱하게 굳어졌다. 천자문은 그녀에게 있어 마의 벽이었다. 지금까지 그녀를 가르쳤던 학사들이 잔뜩 실망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얼굴이 떠올랐다.

 ‘사부님께서 실망하시면 어떻게 하지?’

 그녀의 마음속에 걱정이 크게 일어났다.

 사냥꾼 앞에 선 사슴처럼 잔뜩 겁먹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임학후가 그녀의 걱정을 풀어줬다.

 “수업은 연무장에서 할 거다.”

 “와아!”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이었던 팽설이 어린아이처럼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면서 환호했다.

 “방금 전 너는 영자를 도로 그려냈다. 천자문의 글자들을 도로 쓰고 배우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지.”

 “맞아요.”

 “먼저 시범을 보여줄 테니 잘 보고 들어.”

 “네.”

 팽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넙죽 대답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강렬하고 뜨거운 눈길을 받으면서 임학후가 붓을 잡고 자세를 잡았다.

 휘이잉! 휘이잉!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서 학창의와 어깨까지 내려온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하늘 천. 팔 벌린 사람 머리 위에 있다.”

 가로로 한 번 긋고 그 안에 팔다리를 활짝 벌린 사람모양의 큰 대자를 그려냈다. 문자의 음과 뜻 그리고 설명을 하며 운율을 담아 흥겹게 소리치는 말이 이어졌다.

 “땅 지. 흙을 잇달아 이어진 것이 땅이다.”

 온누리에 잇달아 흙이 깔려있는 뜻을 합한 글자인 땅을 임학후가 선명하게 허공에 그려냈다. 천자문의 시작인 천지현황 우주홍황 여덟 글자가 임학후가 움직이는 붓에 의해서 한글자씩 쓰였다.

 펄럭!

 글자를 써나갈 때마다 학창의의 넓은 소매가 흔들리면서 기묘한 소리를 냈다.

 팽설이 집중하는 뜨거운 눈길로 임학후의 자세와 허공에 그려지는 글자를 살폈다.

 위에서 아래로 네 글자씩 써 내린 임학후가 마지막 황자를 끝으로 붓을 멈췄다. 하나의 호흡으로 일순간에 여덟 글자를 쓴 그가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괜찮게 나왔군.’

 임학후는 자신이 허공에 쓴 글자가 눈에 보였다.

 제자인 팽설에게 보여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여덟 글자가 마음에 들었다.

 “천지현황 우주홍황.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며, 우주는 넓고도 거칠다. 천자문의 맨 처음은 천지우주로 시작하는데, 이는 조물주가 만든 세상 속에서 인간은 천지의 한 미물임을 인식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임학후가 담담한 음성으로 천자문의 시작인 여덟 글자를 풀어줬다.

 “여덟 가지 변화의 투로를 가진 하나의 초식이다.”

 임학후의 말을 듣고 있는 그녀가 허공에서 이미 사라진 글자가 있던 공간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천에서 시작되어 황으로 끝난 여덟 글자의 흐름에 대해서 단번에 꿰뚫어봤다.

 무공초식이라고 생각하자 여덟 글자가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다. 지금까지 두렵고 거부감이 극심하게 드는 글자들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네 차례다. 기억하지 못하면 한 번 더 보여줄까?”

 고개를 돌려 팽설을 바라본 임학후가 물었다.

 “아니에요. 할 수 있어요.”

 방금 전 임학후가 보여줬던 여덟 글자가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있는 팽설이 소리쳤다. 방금 전 보고 들은 글자를 조금이라도 빨리 허공에 쓰기 위해서 몸이 근질거렸다.

 슥!

 도집에서 추상이 뽑혔다.

 시린 도신이 빠르게 허공을 죽죽 그어나갔다.

 “하늘 천, 팔 벌린 사람 머리 위에 있다. 땅 지, 흙을 잇달아 이어진 것이 땅이다.”

 그녀가 섬섬옥수를 휘두를 때마다 도에서 여덟 글자가 쏟아졌다. 짧은 순간 여덟 글자를 모두 쓴 도가 허공에서 선회를 한 뒤에 다시금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갔다.

 휘익! 휙!

 눈빛을 반짝거리는 팽설이 연신 천지현황 우주홍황을 써내려갔다.

 햇볕 아래 연무장에서 도를 휘두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문자의 음과 뜻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도를 움직였다.

 그녀가 기억을 떠올리며 면면부절 이어지던 임학후의 흥겨운 운율 속으로 빠져들었다. 애병 추상에 임학후에게서 받은 즐거움을 실었다.

 휘이익! 휘익!

 추상이 허공을 가르면서 날카로운 칼바람을 연신 일으켰다.

 도를 가지고 추는 흥겨운 춤이었다.

 도무는 그녀를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다 주려하고 있었다. 너무 멀게만 느껴졌던 신천지가 그녀 앞에서 수줍게 문을 열었다.

 하지만…….

 두터운 문이 조금 열리다 말고 멈췄다.

 ‘멈추면 안 돼. 활짝 문을 열어줘.’

 팽설의 얼굴에 진한 안타까움이 어렸다.

 두터운 문은 지금껏 그녀를 가로막아오던 장벽이었고, 뒤에 있는 신천지는 그녀를 새로운 무공의 경지로 이끌어줄 깨달음이었다.

 문 뒤의 신천지를 보고 두 발로 밟고 싶었다.

 조급한 마음에 애를 태울수록 점점 더 멀어져만 갔고, 문이 다시금 닫히려고 했다.

 그때, 임학후의 말이 참으로 시기적절하게 그녀의 귓가에 천둥처럼 울렸다.

 “단순하게 머리로 외우려고 하지 마라.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향유하고,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지에 대해서 심신으로 생각해라.”

 신바람이 나서 도를 휘두르다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팽설을 지켜보면서 임학후가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가 많은 정보들을 바탕으로 한 분석을 통해 눈앞의 팽설의 상태에 대해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은 팽설에게 적지 않는 시사점을 줬다.

 ‘바라보고, 향유하고, 이어나가기를 심신으로 생각하라고요?’

 글자를 써내려가는 팽설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임학후의 말은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얻는 바가 컸다. 무공을 모르는 학사의 말이라고 하지만, 누구에게나 유용한 살아있는 삶의 지혜를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글자를 지배하는 주인이 되기도 하고 종속되는 노예가 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그녀가 글자와 사자결구에 담겨져 있는 뜻을 깨우쳐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천자문의 글귀와 마음이 통하는 절친한 친우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하늘 천자이구나.’

 천의 하늘이라는 의미가 있는 그대로 그녀에게로 흘러들어왔다. 고개를 들자, 금방이라도 푸른 물이 떨어질 것 같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눈에 가득 투영됐다.

 ‘높고 가득하다.’

 항상 보아오던 하늘의 의미를 새삼 깨달았다.

 다음으로 지의 땅이라는 의미가 느껴졌다.

 ‘깊고 포근하다.’

 두 발로 딛고 있는 대지의 기운이 용천혈을 통해 생생하게 느껴졌다. 너무나도 기분이 황홀해져오는 느낌에 그녀가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부르르!

 그녀가 몸을 떨며 전율했다.

 하늘과 땅이 눈에 가득하게 들어왔다.

 화사하게 웃음을 짓는 그녀에게 깨달음이 찾아들면서 하늘과 땅의 기운이 스며들었다. 자연에 동화되어 가면서 그간 막혀있던 벽인 천지합일의 경지를 향해가는 그녀의 몸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그녀의 시야에서 주변이 사라졌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잊어버렸다.

 그녀에게 세 번째 무아지경이 찾아들었다.

 우우웅! 우우웅!

 강렬한 용음이 그녀를 타고 흐르면서 패도적인 기운이 동심원을 그리면서 퍼졌다. 대기가 은은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임학사님, 전음이라는 것이니 놀라지 마십시오. 무아지경을 접하고 있는 아가씨에게 중요한 순간입니다. 소리내지 말고 조용히 뒤로 물러나십시오.]

 팽위린이 임학후에게 전음을 날리면서 주변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살폈다. 혹시라도 벌어질 수 있는 만약의 사태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대처할 자세였다.

 슥!

 드넓은 땅에서 허공으로 서서히 떠오르는 팽설을 바라보면서 임학후가 뒤쪽으로 발자국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물러났다.

 그의 입가에 한겨울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볕처럼 부드러운 웃음이 걸렸다.

 ‘천자문을 만든 저자는 곳곳에 깨달음을 뿌려놓았다. 팽설은 천자문에서 깨달음을 채취해낸 것이다. 무인들은 이런 걸 기연이라고 하던가?’

 완전히 몰입하여 글을 써내려가던 팽설에게 찾아든 축복이었다.

 [임학사, 고맙소이다.]

 그의 귓가에 중년인의 묵직한 전음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 틈에 나타났는지 팽무전이 보였다. 팽무전 옆에는 비슷하게 생긴 한 명의 건장한 사내, 팽무종도 있었다.

 -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임학후가 붓으로 허공에 글씨를 써나갔다. 눈높이 맞춤 교육을 하면서 우연하게 벌어진 일이었다. 의도적으로 행한 바가 아니었기에 공치사를 할 생각이 없었다.

 [이번 일에 대한 고마움을 결코 잊지 않겠소이다.]

 임학후를 바라보는 팽무전의 눈에 고마움이 가득 넘쳤다. 남들은 어떻게든 자신이 한 일이라고 뽐내는데 반대로 담담하게 나서는 모습이 더욱 크게 보였다.

 팽무전은 연무장에서 갑자기 느껴지는 강렬한 기운에 깜짝 놀라 황급히 팽무종과 함께 달려왔었다. 달려오면서 팽위린에게 전음으로 자초지종을 모두 들은 상태였다.

 귀한 가르침을 쉬운 말로 하고, 시기적절한 순간 가르치니 참으로 훌륭한 스승이다.

 임학후는 팽설에게 기연을 떠안겨준 장본인이었다.

 그들이 공중에 떠있는 팽설을 바라보았다. 자연에 동화되는 천지합일의 경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팽설의 모습에 두 사내의 입이 헤벌쭉하게 벌어졌다.

 팽설의 성장은 하북팽가에 있어 커다란 경사였다.

 - 아닙니다. 제가 한 일은 없습니다. 모두 팽설의 복이지요.

 [내 동생인 팽무종이라오. 무종아! 임학사께 인사드려라.]

 팽무전이 두 명에게 동시에 전음을 날렸다.

 [강호의 무부 팽무종이라고 하오.]

 팽무종이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임학후를 바라보면서 정중하게 포권했다. 방금 전까지 당장에 세가 밖으로 내쫓고 싶었던 임학후였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예쁘게 보였다.

 - 임학후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임학후가 고개를 숙였다.

 [임학사가 벌인 기적을 봐라. 쫓아냈으면 땅을 치고 후회했을 일 아니냐?]

 팽무전이 팽무종에게만 전음을 날렸다.

 [형… 형님은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것이오? 내가 언제 그랬단 말이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가주전에서 임학후를 쫒아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던 팽무종이 말을 더듬거리면서 발뺌하고 나섰다.

 그는 두 살 차이의 친형인 팽무전에게 평소 존대를 할 때도 있고 편하게 말할 때도 있었다. 한 마디로 자기 마음에 따라서 말투가 바뀌었다.

 [지금도 쫓아내고 싶으냐?]

 [그런 헛소리 하는 놈이 있으면 내가 당장에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리겠소.]

 - 팽설의 다음 수업에 준비할 것이 있어서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임학후가 붓으로 말했다.

 ‘무공에 대해서 알아봐야겠어.’

 팽설이 수업과정 와중에 보여준 성과는 훌륭했다. 특히 학문이 무공과 접목됐을 경우 극대화 되는 효과를 보여줬다.

 ‘무공과 병합되는 공부를 시켜보자.’

 임학후가 수업과정과 방향을 확실하게 잡았다.

 제자를 가르치기 전에 스승이 알고 있어야 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학사인 그는 무공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렇기에 무공에 대해서 공부할 생각이었다.

 팽설의 눈높이에 스승인 자신을 맞춰야했다.

 [고생하셨소이다.]

 [들어가시오.]

 팽무전과 팽무종이 임학후에게 전음을 보냈다.

 임학후가 고개를 숙이자, 그들도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강호에서 배분이 높은 자신들과 동급의 위치에서 동등하게 대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대단한 남자다.]

 [능력이 좋다는 사실에는 동감하오.]

 [우리와는 다른 힘을 가지고 있어.]

 [학사이지만 존중받을 자격은 충분하오. 한림원에서 지냈다고 목에 힘주고 다녔던 학사들과는 전혀 다르군요.]

 숙소를 향해 걸어가는 임학후를 바라보면서 그들이 이야기를 나눴다. 왜소한 체격이지만 자신만의 믿음을 가지고 파격적으로 행동하는 임학후에게서 강렬한 힘이 느껴졌다.

 임학후가 건물 모퉁이에 가려져서 사라지자, 그들의 시선이 허공에 떠있는 팽설에게로 돌려졌다.

 [얼마나 강해질까?]

 [흐흐흐! 무아지경에서 깨어나고 난 뒤 비무를 해보면 될 일이 아니겠소?]

 [내가 먼저다.]

 [쳇!]

 그들은 팽설의 무아지경이 길어지고 있지만 전혀 지루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 될수록 더욱 환한 표정을 지었다.

 깨달음이 그만큼 깊고 강하다는 의미였기에…….

 팽설이 무아지경에 빠져든 연무장을 중심으로 가주까지 포함된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다.

 

 ***

 

 스윽! 슥!

 붓이 힘차게 움직인다.

 하얀 서적 위에 검은 선이 죽 그려지면서, 숯처럼 윤기 나는 머리카락이 만들어졌다. 유려한 곡선을 그리고 세밀하게 손놀림을 하자 오밀조밀한 여인의 얼굴이 완성됐다.

 동그란 눈동자의 맑은 눈빛을 뿜어내는 팽설이었다.

 스윽! 슥!

 임학후가 거침없이 붓을 움직일 때마다 서적 위의 팽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상반신의 팔의 위치와 하반신의 발의 방향 등 세밀하게 그려진 팽설이 마침내 완성됐다.

 슥!

 임학후가 붓을 지그시 누르며 마지막 획을 끝냈다.

 먹물의 농담만을 사용하여 수묵화로 그려진 서적 속의 팽설이 곧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생생했다. 연무장에서 도를 휘두르고 있던 팽설이 고스란히 그림 속으로 옮겨온 듯 했다.

 태산서원에 다닐 때 임학후는 그림에 일가견이 있는 한문준 대석학에게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웠다.

 하남성 충주 태생의 한문준은 이름 보다 묵장이란 호가 더욱 이름 높았다. 중원에서 묵장의 그림을 가지고 있다면 어지간한 집 한 채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임학후는 한때 그림에 미쳤던 적도 있었던 만큼 실제 모습처럼 그려내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단 한문준 대석학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던 그림에 마음을 담는 법은 아직까지 몰랐다.

 “여기에는 조금 더 획의 간격을 좁히고 힘을 가볍게 해야만 했어.”

 임학후가 중얼거렸다.

 무아지경에 빠져서 잘못된 점을 지적할 수 없었기에 서적으로 만드는 중이었다.

 “도로 천자문을 배우고 있는 팽설에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많다. 특히 글자를 쓰는데 있어 간가와 강약을 맞추는데 부족함이 보인다.”

 서예는 너무나도 정교하고 미묘해서 약간의 흐트러짐만 있어도 무너진다. 글자의 분위기를 매혹적으로 살려내려면 주의해야 할 점이 무척 많다.

 “주의해야 할 사항으로 적어두자.”

 그림 한쪽에 별첨으로 써내려갔다.

 임학후는 여러모로 꼬장꼬장한 성격인 탓에 제자의 잘못된 점을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는 팽설이 완벽한 글자를 만들어내도록 교육시킬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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