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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추리/스릴러
퇴마행
작가 : 장준우
작품등록일 : 2016.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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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퇴마사의 운명에 휩쓸린 평범한 사람들.
그들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어지럽히는 한(恨)을 위로한다.
몰랐던 힘을 자각한 그들은 운명에 절망하는 대신,
오히려 힘을 내어 자신들이 가야 할 길을 걸어간다.

자식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벌어진 어미의 간절한 굿판.
그러나 그 업으로 인해 아이는 장차 귀문(鬼門)을 열게 된다.
그리고 수십 년 후, 고고학과 교수가 된 아이 은우는 죽은 자와 마주한다.
한편, 은우의 후배인 범죄심리학과 교수 민지는
평범한 삶을 살다가 우연히 '병원사건'에 휘말린다.
은우와 한 고아원에서 자랐지만 입양되면서 헤어진 친구 지현도
그 사건에 휘말리고, 천부적 재능을 가진 최연소 퇴마사 한울까지 합세하는데…

 
2 화
작성일 : 16-08-24 09:15     조회 : 788     추천 : 1     분량 : 10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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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2. 또 하나의 이야기

 

 

 

 길게 늘어선 전원주택들이 가을의 햇살을 담뿍 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지은 지 며칠 되지 않은 아담한 주택이 눈에 들어온다.

 집 앞 작은 정원에는 앞치마를 두른 젊은 여인과 꼬마가 있었다. 꼬마는 작은 손에 맞는 소꿉놀이용 물 조리개를 들고 있다. 자신의 키만 한 방울토마토 넝쿨을 유심히 보던 꼬마가 고개를 들었다.

 “엄마! 여기! 여기!”

 꼬마의 호들갑에 여인은 웃으며 바구니를 내렸다.

 “우리 신이 엄마보다 더 많이 땄네!”

 신이는 그녀의 칭찬에 우쭐대면서 물 조리개를 놓고는 넝쿨 사이로 고개를 숙였다. 신이의 작은 손이 빨갛게 잘 익은 방울토마토를 움켜쥐려는 순간 그 움직임이 멈췄다.

 보였다. 스쳐 지나갔지만 분명 보였다. 새까만 눈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에게로 고정되어있는 검은 눈들의 시선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하지만 그 시선에 놀라 신이는 뒷걸음질 쳐 엄마에게 안겼다.

 “엄마, 저기에…… 저기에…….”

 신이가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넝쿨 사이를 가리켰다. 그런데 따뜻한 엄마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았다.

 “엄마?”

 화들짝 놀란 신이가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따스한 햇살 사이로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그러나 평소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엄마의 눈빛이 아니다. 그 눈이다. 넝쿨 사이에 있던 그 눈이었다. 검게 변한 엄마의 눈이 신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덧그려졌다.

 “왜? 아가야?”

 신이는 변한 엄마의 품에서 떨어지기 위해 용을 썼지만 이미 그녀의 손이 아이의 어깨를 잡고 있었다.

 “아니야. 아니야……. 엄마가 아니야!”

 신이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힘을 주며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웃고 있던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엄마를 몰라보다니 나쁜 아이구나! 그럼 벌을 받아야지?”

 그녀의 손이 신이의 목을 향해 다가갔다. 점점 죄어 오는 그녀의 손아귀를 아이는 빠져나올 수 없었다. 덮쳐오는 절망이 신이를 나락의 끝으로 당기기 시작했다.

 

 “신아!”

 들려오는 목소리에 신이는 눈을 떴다. 등에 익숙한 부드러움이 느껴지기도 전에 불안이 신이를 찾아왔다. 침대에 누운 자신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엄마의 모습이 신이의 눈에 보였다. 다가오는 그녀의 손길을 신이는 피했다.

 “오지 마!”

 “신아? 왜 그러니?”

 그녀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묻어났다. 평소 엄마의 얼굴이 맞다. 좀 전에 보았던 검은 눈이 아니다. 안락한 자신의 침대와 방의 풍경들로 그제야 신이는 조금 전의 일이 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신이는 엄마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엄마! 엄마 맞지? 으아앙.”

 “그럼 엄마야. 우리 아들 무서운 꿈꿨구나. 엄마 여기 있어. 착하지, 우리 신이.”

 그녀는 떨고 있는 아이의 등을 몇 번이나 쓸어내렸다. 울음에 들썩이던 신이의 작은 몸이 그녀의 손길에 다시 평온을 찾고 있었다.

 아이의 방에 난 작은 창밖으로 노을이 지고 있다. 그 붉은 노을이 오늘은 너무나 빠르게 어둠을 몰고 왔다.

 

 “신이는 자?”

 남편은 피곤한 듯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건넸다.

 “그럼 자죠. 시간이 몇 시인데. 또 회식한 거예요?”

 아내의 잔소리가 시작되려고 하자 남편은 손을 휘휘 젓더니 안방을 나와 잠든 아들이 있는 방으로 갔다.

 그녀가 받아든 외투에서는 술과 고기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고는 외투를 환기가 잘되는 곳에 걸어 놓기 위해 베란다로 향했다.

 베란다 뒤편으로는 작은 산이 보인다. 어둠 사이에서 나무들이 스산한 바람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유독 차갑게 느껴지는 바람에 그녀는 몸을 살짝 떨었다.

 “이번 가을도 짧네.”

 그녀는 아쉬움을 뱉어내곤 남편의 외투를 털어 바람이 잘 부는 산 방향으로 걸어놓았다. 그리고는 서둘러 차가운 바람을 피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여보, 아직도 안 오고 뭐해요?”

 안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여직 남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건너편 신이의 방을 향해 물었다. 하지만 남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직 신이 방에 있나? 아무튼 아들 사랑은.’

 말은 그리 해도 남편의 아들 사랑을 이해 못할 그녀가 아니다.

 세 번의 유산을 경험한 부부였다. 세 번의 피지도 못한 목숨이 그녀의 배 속에서 사라졌다. 세 번의 유산 후 다시 임신이 어려울 거라는 산부인과 의사의 말에 모든 것을 포기할 때쯤에 신이 주신 선물처럼 신이가 태어났다.

 지금도 그녀는 그때의 감동을 잊지 못해 종종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엄마로서, 또 아내로서 슬픈 모습을 보이기 싫어 신이의 방 앞에서 크게 호흡을 하고는 문을 열었다.

 “아들만 챙기지 말고 나도 좀 챙겨요, 여보.”

 그녀의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방 안에 퍼졌지만 남편은 아무런 요동 없이 등을 돌린 채 우두커니 앉아 누운 신이를 보고 있었다.

 “여보?”

 그녀는 꼼짝도 않는 남편을 이상하게 여기며 다가갔다. 한 걸음, 두 걸음, 좁은 방 안에 그녀의 발소리가 퍼질수록 그녀의 심장도 이상할 정도로 쿵쾅대며 뛰기 시작했다.

 “여보?”

 가까이 다가간 그녀는 다시 한 번 남편을 부르며 떨리는 손을 그의 어깨 위에 올렸다.

 툭.

 그것은 너무나도 갑작스런 반응이었다. 차마 현실이라고 판단하기 어려운 소리였다. 아무런 힘없이 떨어지는 남편의 머리를 그녀는 잠시 동안 멍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꺄악!”

 정적을 깨고 그녀는 비명을 질렀지만 그 소리 역시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차가운 느낌이 그녀의 등을 뚫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더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에 그녀는 등을 돌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고, 그 바람에 그녀는 자신의 등과 배를 뚫고 나온 검은 손을 볼 수 있다. 그녀의 몸 안을 헤집던 손이 빠져나왔다.

 허전함과 고통이라는 두 가지 색의 감각이 그녀를 스침과 동시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바닥을 향했다. 점점 희미해지는 시야에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는 사랑스런 아들이 보였다.

 “신, 신이야…….”

 보이지 않는 존재로부터 아들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목소리를 짜냈다. 하지만 아들은 그녀의 간절한 작은 외침을 외면한 채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온몸의 힘을 짜내 아들을 향해 무거운 몸을 끌며 다가갔다.

 겨우 침대의 언저리에 도착했을 때쯤 그녀의 떨리는 몸이 누운 아들 위로 축 늘어졌다.

 “으음…….”

 신이는 답답함에 몸부림을 쳤다. 그리고 익숙한, 포근한 엄마의 향에 눈도 뜨지 않고 팔을 뻗으며 투정을 부렸다.

 “무거워, 엄마.”

 엄마의 대답은 없었다. 이상하게 여긴 신이는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축축하게 자신의 침대를 적시고 있는 액체에서 느껴지는 끈적함과 비린 향에 신이는 그제야 불길함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며 소리를 질렀다.

 “엄마! 엄마!”

 신이는 몸을 일으켜 누운 엄마를 흔들어 보았지만 이미 그녀는 차갑게 굳어가고 있었다. 흔들리는 침대 아래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평소 다정하던 아빠의 미소는 그대로였지만 마치 자신이 가지고 놀다 고장을 낸 합체 로봇처럼 분리된 모양이다.

 신이의 눈에 천천히 공포라는 단어가 스며든다.

 “아악! 엄마! 아빠!”

 아이는 모든 것이 꿈만 같아서 소리를 질렀다. 평소처럼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 다시 엄마의 모습이 보일 거라는 작은 희망에 신이는 더욱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이 긴 악몽은 깨지질 않는다.

 신이의 비명이 멈췄다. 목이 아파서가 아니다. 꿈에서 깬 것은 더더욱 아니다.

 보였다. 온통 검은 옷을 입은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어두운 방 안인데도 그 움직임이 정확하게 보였다.

 신이는 다가오는 그를 피해 뒷걸음질 치다가 남자의 목소리에 그대로 멈췄다.

 “다시 보는구나, 아가야. 이제 너도 이들을 따라가야지?”

 차가운 음성이 신이의 귓가를 찔렀다.

 그 목소리에 신이는 두려움 속에서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 누구야!”

 남자는 신이의 외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아이를 향해 다가간다.

 탁.

 남자의 발에 신이의 엄마가 걸렸다. 남자는 귀찮은 듯 손가락을 슥 하고 튕겼고. 시체는 곧바로 붕 뜨더니, 벽으로 밀려났다.

 신이가 움찔하며, 벽을 보았다.

 벽에는 고개를 푹 숙인 엄마가 매달려 있었다.

 “엄마!”

 꿈이라면 빨리 깨고 싶기에 신이는 더욱더 소릴 질렀다. 남자는 그런 아이가 재미있다는 듯 다른 손가락을 튕겼다.

 이번에는 머리가 없는 신이의 아빠가 반대편 벽으로 붙기 시작했다.

 “아빠!”

 아이는 절망에 가까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를 노려보며 외쳤다.

 “저, 저렇게 한 게 너야? 네가 그런 거야?”

 온통 검은 옷을 입은 남자의 고개가 천천히 아래위로 움직였다.

 그에 신이는 터진 울음과 함께 소리를 질렀다.

 “왜? 왜!”

 하지만 신이의 물음에 검은 옷의 남자는 대답 대신 빠르게 손을 뻗어 아이의 목을 움켜쥐었다.

 가느다란 신이의 목은 아무런 저항 없이 남자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으으윽.”

 막혀오는 숨이 신이의 시야를 더욱 어둡게 했다.

 흩어지는 시야로 엄마와 아빠가 보였다. 캄캄함 속에서 부모의 웃는 얼굴이 신이에게로 다가왔다.

 ‘엄마, 아빠…….’

 눈물이 신이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부모의 얼굴이 지워지고 다시 검은 옷의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놈이, 이놈이 엄마 아빠를!’

 쏟아지는 원망과 분노가 내뱉는 눈물방울이 신이의 목을 쥔 남자의 손에 떨어졌다.

 쾅!

 그 순간 굉음과 함께 거대한 빛이 뿌려졌다. 그 힘에 의해 검은 옷의 남자는 방을 뚫고 멀리 날아가 벽에 박혔다.

 “죽여 버릴 거야!”

 신이의 몸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제 몸에서 왜 이런 빛이 나오는지 신이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알 틈도 없었다. 이미 신이의 머릿속에는 남자에 대한 저주만이 가득 차 있었다.

 쓰러진 남자를 향해 신이는 괴성을 지르며 달려가 작은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아쉽게도 남자는 쉽게 고개를 틀어 신이의 주먹을 피했다. 남자는 신이를 피해 몸을 거실로 날렸다.

 자신을 노려보는 신이의 눈빛에 남자는 당황한 눈치였다.

 “벌써 깨어난 것인가?”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신이는 다시 남자를 향해 달려갔다.

 “죽어!”

 이번에도 남자는 가볍게 신이의 주먹을 피했다. 신이는 멈추지 않고 작은 몸을 날렸다. 아슬아슬하게 신이의 주먹이 남자의 검은 옷깃 어깨 부분을 스쳤다.

 남자는 다급하게 또다시 다가오는 신이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안개처럼 검게 퍼지는 기운이 신이를 향해 날아갔다.

 뿌옇게 흩어지는 기운들이 이윽고 한데 뭉치며 검은 벽이 되어 신이를 감쌌다.

 “아악!”

 신이의 비명이 난장판이 된 집 안을 울렸다. 고통스러운 외침에 검은 옷의 남자는 여전히 즐거운지 손을 뻗어 신이를 둘러싼 기운을 조정했다.

 점점 커지는 기운은 이미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크큭, 그럼 그렇지. 아직 완전하지 못하구나. 하긴 아직 애인가?”

 남자는 이제 끝을 보려는지 기운을 조종하던 손을 들어 아이를 향해 뻗었다. 하지만 남자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남자의 손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남자의 당황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어린 신이의 울분 가득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집 안에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죽어!”

 신이를 감싸고 있던 칠흑 같은 벽이 그대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미 벌게진 신이의 눈은 남자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다시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크큭, 그래 어쩌면 이것도…….”

 “시끄러워!”

 신이의 분노가 계속될수록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이 붉어졌다. 그러한 모습을 보던 남자는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크큭, 하하하! 그래 꼬마야, 어쩌면 잘된 일이야.”

 신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남자의 말을 계속 들을 생각이 없는지 몸 주위로 흐르는 붉은 기운을 가득 뿜어내며 다시 남자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남자는 너무나도 쉽게 피했다.

 “날카롭긴 하지만 아직도 모자라. 하지만 저 붉은 기운, 역시 다르긴 다른 건가?”

 다시 달려오는 신이를 향해 남자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신이의 작은 몸이 그대로 거실 구석을 향해 나뒹굴었다.

 “천천히 더욱더 다듬어. 언젠간 그 분노가 나를 찾을지도 모르지. 크큭. 그럼 꼬마야, 안녕.”

 쓰러진 신이가 일어나기도 전에 남자는 알 수 없는 말을 뱉으며 그 형체가 천천히 흐려지더니 완전히 사라졌다.

 “가, 가지 마!”

 신이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미련과 분노가 가득 담긴 떨리는 손으로 남자가 사라진 허공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이미 그 자리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모든 것이 아직도 꿈만 같았다.

 “꿈, 그래 꿈 맞을 거야. 엄마가 말한 무서운 꿈 맞을 거야. 신이가 만날 늦게 자고 엄마 말 안 들어서 무서운 꿈꾼 거야…….”

 신이의 커다란 눈이 천천히 감기고 있었다. 흐려지는 의식과 무거운 눈꺼풀에도 신이는 따뜻한 엄마의 품이 그리워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방 안으로 가면 이 지독한 악몽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다시 눈을 뜨면 늘 똑같이 엄마의 웃음이 보일 거라는 기대에 신이는 침대 위에 엎드린 채 딱딱해진 엄마의 몸을 꼭 쥐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다. 신이는 그렇게 모든 것이 꿈이길 간절히 기도하며 눈을 감았다.

 

 해가 지고 나면 어김없이 ‘그것’들이 눈을 뜬다. 보이지 않는 자에게는 평온한 밤, 하지만 보이는 자에게는 가혹한 밤.

 그렇게 나뉜 밤을 알고 있는 자는 극히 드물었다. 아는 자들도 ‘그것’들을 피해 끝없는 방황의 길을 달리다 스스로 지쳐 죽거나 힘을 얻어 ‘그것’들을 뒤쫓거나. 결국 답은 두 가지뿐이다.

 지금 어두운 골목을 달리는 이 남자는 후자에 속하는가 보다. 그는 길게 늘어선 어두운 골목을 아무런 두려움 없이 뛰고 있었다. 남자는 무엇을 찾는 듯 열심히 두리번거렸지만 아직 그가 찾는 것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나이는 20대 후반쯤, 꽤나 다부진 체격에 짙은 눈썹이 한눈에 봐도 쾌남이었다. 그의 부리부리한 눈이 잠시 찡그려졌다.

 “망할, 이 근처가 맞는데. 또 잘못 읽은 건가?”

 남자는 짧은 스포츠형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늘 어둡기만 한 서울의 밤하늘치고는 오늘따라 유난히 별이 빛나고 있었다. 그는 별들을 유심히 보더니 다시 모르겠다는 표정과 함께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욕을 내뱉기 시작했다.

 “이런! 분명 별의 떨림이 있었는데? 이 근처라고 하더니 무슨! 요즘 영 점성술 빨이 안 맞네. 에라이 모르겠다.”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품속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라이터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던 손이 그 순간 멈췄다. 남자는 담배를 버리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역시 틀린 게 아니었어! 별일 없어야 될 텐데. 그 빛나던 붉은 별은? 그리고 그 옆에 다시 보이는 흉성은? 그 별의 등장에 다른 별들이 떨리다니,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거지?’

 여러 가지 궁금증이 차올랐지만 어느 순간 남자는 멈춰서야 했다.

 “망할, 이미 늦었나?”

 겉으로는 아담해 보이는 정원 주택이었지만 문을 열기도 전에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물론 후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영능력, 즉 보이는 자의 여섯 번째 감각이었다.

 남자는 품속에서 여러 대의 대추나무 화살을 꺼냈다. 화살이라고 하기엔 손가락 중지 크기 정도의 작은 크기였지만 그 끝은 꽤나 날카로워 보였다.

 “시운술.”

 남자의 진언에 화살들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푸른 기운을 머금고 떠오르며 그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후웁, 그럼 들어가 볼까.”

 남자는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문고리를 조심스럽게 잡았다.

 철컥.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아, 또 깜빡했네.”

 남자는 머리를 벅벅 긁더니 품속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내 자신이 잡았던 문고리를 닦기 시작했다. 유리창을 닦는 것처럼 남자는 ‘호’ 입김까지 불어가며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윤이 날 정도로 깨끗해진 문고리를 보고 남자는 입술 끝을 씩 올렸다. 그러고는 한 발짝 물러서더니 다시 굳은 얼굴로 문을 노려보았다.

 “흡.”

 남자의 짧은 기합 소리와 함께 그의 팔에서 푸른빛이 나기 시작했다. 남자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빛나는 팔을 그대로 문에 때려 넣었다. 하지만 문은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하물며 남자가 그렇게 있는 힘껏 쳤는데도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남자의 굳은 표정에 다시 미소가 그려졌다. 그는 마치 재미있는 장난을 하는 것처럼 문을 손가락으로 톡 건드렸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문이 형체도 없이 그대로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남자가 집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가장 먼저 엉망이 된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벌써 일이 벌어진 모양이군.’

 몇 걸음 지나지 않아서 남자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지독한 피 냄새를 맡았던 것이다. 물론 이번에는 여섯 번째 감각이 아니라 바로 후각이었다. 그는 아까 그 손수건으로 조심스럽게 코를 막으며 피 내음이 가득한 곳으로 향했다.

 일정하게 들리던 그의 발소리가 끊긴 건 그때였다. 이미 목이 잘린 남자의 시체가 방에 널브러져 있었고 등이 꿰뚫린 여자의 시체가 침대 위에 있었다. 하지만 시체를 봐서 놀란 것은 아니었다. 미세하게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기운에 남자는 걸음을 멈춘 것이다.

 ‘이 기운, 무엇이지?’

 남자는 떠오르는 의문을 풀기 위해 다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아무런 소리 없이 움직이는 남자의 모습은 다부진 체격과는 반대로 흡사 날렵한 고양이처럼 꽤나 조심스러웠다.

 남자는 침을 한 번 삼키더니 부리던 화살을 이불 속에 있는 형체에 겨냥했다. 그리고 침대 위의 이불을 걷어냈다.

 “아이?”

 긴장했던 남자의 얼굴엔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죽은 엄마의 몸을 부여잡고 잠이 든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게다가 그 아이는 조금 특별했다. 그 몸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기운에 남자는 잠시 넋 놓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런가! 이 아이인가?’

 남자의 입에서 감탄 이후 탄식이 터져 나왔다.

 ‘어째서, 저 어린 것에게 이런 시련을……. 이게 길인가요? 무능하고 업 많은 저에게 어찌 이런 일을…….’

 남자는 아직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들’을 향해 원망과 한탄을 퍼부었지만 당연히 ‘그들’에게서는 답이 없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렇게 한탄만 할 수도 없다. 잠을 자던 아이가 언제 깨었는지 벌떡 일어나 그의 품으로 뛰어든 것이었다.

 “아빠! 신이 또 무서운 꿈꿨어. 흑, 엄마랑 아빠가…… 흑.”

 자신의 가슴속에 파묻혀 눈물을 흘리는 아이를 보고도 남자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남자는 그대로 자신의 품에 안긴 아이를 꼭 안고는 방 밖으로 뛰쳐나왔다.

 “아빠, 왜 그래! 신이 무서운 꿈꿨다니까!”

 품에 안긴 신이의 눈을 가리며 집 밖을 뛰어나와서야 남자는 아이를 내려놓았다.

 “아빠가 아니야! 누구야!”

 신이 앞에 서있는 남자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미 야심한 밤이라 남자는 황급히 아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신이는 발버둥을 치다가 귓가에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 그대로 멈췄다.

 “보았니? 엄마와 아빠가…… 죽는 걸?”

 드디어 악몽에서 깨었다는 기대에 신이는 아빠를 목 놓아 불렀지만 자신을 품에 안은 것은 아빠가 아니었다. 그 악몽이 현실이라는 것을 어린 신이는 그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흑, 엄마랑, 아빠가…….”

 신이는 그대로 남자의 품에 안겨 다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남자의 따뜻하고 큰 손이 신이는 아빠의 손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좀 전의 그 검은 남자의 차가운 손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서럽게 울던 아이를 슬픈 눈으로 보던 남자는 아이를 안은 채로 진언을 읊기 시작했다.

 “제천구직화.”

 남자의 오른손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은 진언과 함께 다시 불기둥이 되어 남자의 손에서 솟아올랐다.

 남자는 아무런 표정 없이 손에서 타오르는 불기둥을 피비린내 가득한 집을 향해 쏘았다. 집의 지붕 위에 쏘아진 불기둥은 그대로 작은 집을 태우기 시작했다.

 남자는 타는 불길을 보며 아이의 슬픈 기억이 지워지길 빌었지만 여전히 신이는 그의 품을 적시고 있었다.

 “이름이 뭐니, 아가야?”

 남자의 물음에 아이는 울먹임과 함께 띄엄띄엄 말을 했다.

 “신……이, 이 신…….”

 “모두 잊을 수 있겠니? 살고 싶으면 잊어야 한다. 너의 부모님도, 그리고 너의 이름도. 저 불길에 모두 태워야 된다. 알겠지?”

 남자의 말에 신이는 대답할 수 없었다. 차오르는 서러움이 아이의 어깨를 들썩이게 할 뿐이었다. 남자 역시 더는 아무런 말없이 그런 신이를 안고 다시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남자의 품에 안긴 신이는 멀어지는 불길에 몇 번이나 눈을 돌렸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잠꾸러기야.]

 아침 햇살이 작은 창을 통해 뿌려졌다. 계속되는 알람시계 소리에 이불이 꿈틀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잠꾸러기야.]

 계속되는 알람시계의 투정에 다시 이불이 꿈틀거렸다. 이불 사이로 나지막한, 얼핏 들으면 잠꼬대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방 한가운데 걸린 대추나무 화살이 저절로 떠올랐다.

 화살은 울어대는 알람시계를 향해 천천히 방향을 틀더니 매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시계를 금방이라도 부술 것처럼 날아가던 화살은 시계 바로 앞에서 뚝 멈춰서더니 알람 버튼을 가볍게 눌렀다. 그러고는 원래 있던 위치로 가서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장식품이 되어 그 자리를 다시 지켰다.

 조용해진 방 안, 그리고 이불더미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하지만 그 고요한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잠꾸러기야.]

 다시 요란하게 울리는 시계 소리에 결국 이불 속 주인공은 비비적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신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꼬마다. 이미 나이는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지만 아직 사춘기는 오지 않았는지 또래 애들과 같은 여드름은 없었다. 어릴 때의 하얗던 피부와 큰 눈이 그대로였다.

 아이는 기지개를 켜고는 거실을 향해 나왔다. 거실에는 빈 맥주 캔과 음료수 병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욕실은 마치 전쟁이 난 것처럼 어질러져 있었고 누군가가 금방 사용했는지 거울에는 수증기가 끼어 있었다.

 아이는 익숙하게 주방에 있는 냉장고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엔 노란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인류에게 중대한 일이 있어서 몇 달간 못 들어올 것 같다. 밥 잘 챙겨먹고 질리면 짱깨 시켜 먹어라. 돈은 늘 있는 곳에 있다.

 아! 그리고 한국병원에 언제 시간 내서 한번 가봐라. 거기에 요즘 지박령이 모이는 것 같더라.

 가서 쪽수 많으면 냅다 튀고, 뭐 알아서 할 거라고 믿는다. 잘 지내고 있어라.

 

 하늘같은 스승님이.」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놈의 인류 중대사가 뭐기에 만날 돌아다니시는지.”

 아이는 이미 이런 일이 익숙한 듯 노란 종이를 휴지통에 버렸다. 그런 뒤 냉장고를 열었지만 빈 물통만이 가득했다.

 “물이라도 사놓고 나가시지…… 스승님도 참.”

 아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방을 향해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리고 여러 장의 부적 뭉치와 대추나무 화살을 몇 개 챙겨 들고는 집을 빠져나왔다.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는 아파트 단지, 복도식 아파트 아래로 아이 또래의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그들의 모습이 부러운지 한참을 바라보던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쓸쓸하게 웃고는 천천히 계단을 향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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