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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잊혀 진 자들의 나라
작가 : 시란
작품등록일 : 2017.7.17

벌꿀처럼 달디 단 그것을 사랑이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잊더라도 그를...

망각된 기억 속에서 잊혀 진 것들은... 기억해내려 애쓰고, 또 기억되려 애쓴다.
하나하나가 모두 잊혀 진 자들이다.
자신처럼 망각의 길로 빠져들어 모든 것을 잊어가는 이들이 파괴되어 가는 것을 보며,
그들을 돕기위해 나선 그녀가 달빛에 희게 빛나는 밤이슬처럼 깨어난다.

 
11장. 모든 것들의 마을. [5]
작성일 : 17-07-31 16:25     조회 : 280     추천 : 0     분량 : 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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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자, 몸이... 괜찮아요?”

 

 미자의 시선이 다시금 알렌에게로 향했다. 그런데 다시 바라보는 미자의 눈빛이 불쾌하다는 듯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미자....”

 “에여?”

 

 알렌은 미자의 목소리에 마저, 불쾌함이 서려있다는 것을 느꼈다.

 

 ‘설마, 이 자 때문에?’

 

 알렌은 살짝 고개를 돌려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알렌의 시선을 느꼈는지, 사내가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여유롭게 미소를 흘렸다. 보란 듯이 말이다.

 

 “흠....”

 

 미자의 눈에는 유혹하듯 매력적인 저 미소가 알렌의 눈에는, 기분이 나빠질 만큼 오만해 보였다. 그리고 꿍꿍이 속이 있어 보이는 저 태도.

 

 “....미자, 움직일 수 있겠어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다는 듯, 알렌이 고개를 돌려 미자의 손을 살짝 잡아 쥐었다. 그러자 순간 움찔하는 그녀가 느껴졌다.

 

 “..........”

 

 알렌은 미자의 작은 손을 조금 더 다정하게 감싸 쥐었다. 그리고 벌꿀 같은 달콤한 미소가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알렌의 한없이 다정할 것 같던 모습은 한순간, 끼어든 낮선 웃음에 가로막혔다.

 

 “미자? 푸훅! 큭큭큭!”

 “.........”

 

 하? 지금 내 이름을 비웃은 건가? 미자는 자신의 이름을 한번 불러 보고는 쿡쿡 웃어버리는 사내를 멍하니 바라보다 자신도 모르게 따라 웃어 버렸다.

 

 “난 은오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듣기 좋은 굵고 낮은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그리곤 알렌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알렌이 잡고 있던 미자의 손을 쓱 쳐다보더니, 미자의 드러난 어깨의 날씬한 팔뚝을 자신의 손등으로 살짝 쓸어 올렸다.

 

 “아!?”

 “미자!”

 

 당황한 알렌이 서둘러 은오에게서 미자를 떨어뜨리려 하자, 은오가 먼저 미자의 귓가에 뭔가를 속삭였다. 미자의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고, 은오는 그런 미자를 보며 커다랗게 웃으면서 일어났다.

 

 ‘또 만나자고, 사랑스런 미자.’

 “.........”

 

 미자는 귓가에 울리는 낮은 목소리와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그의 따스한 숨결에 온몸이 전율하는 것만 같았다. 그가 스치듯 매 만진 팔뚝이 소름으로 곤두서 있었다. 그리고 입에서 절로 신음성이 흐른다.

 

 “하아......”

 

 은오는 그런 미자의 한숨 섞인 신음성을 들으며, 또다시 입 꼬리를 올려 말간 웃음을 흘렸다. 그런 은오를 바라보며 알렌은 아무런 말없이 그가 떠나가는 것을 바라 볼 뿐이었다. 그가 멀어질 쯤, 살짝 돌아본 미자는 여전히 돌처럼 굳은 듯 그 자리에 가만히 있기만 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쪽 손으로 감싸 쥐며 여운을 즐기듯, 말 한마디 못하고 있는 미자를 바라보며 알렌의 심정은 복잡해져 갔다.

 

 “미자.... 미자....”

 

 그런 미자에게 더 다가가지는 못하고 미자의 이름만 불러오는 알렌의 목소리에 미자는 점차 진정이 되는 듯, 얼굴색도 표정도 돌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곁에 있는 제 사내라 생각했던 그를 슬쩍 돌아보았다. 그에게 차갑게 맺혔던 가슴이 자신의 손을 잡아 쥐는 알렌의 따스한 온기에 조금씩 풀려오는 듯 했다.

 

 "........"

 "미자....“

 “.......”

 

 그래서 머뭇머뭇 대답하려했다.

 

 “...여긴, 어떻게... 어떻게 여기에 있는 겁니까?”

 

 미자는 한번 씩 튀어나오는 알렌의 저 깍듯한 존대가 갑자기 숨을 턱 막히게 하는 두꺼운 장벽처럼 느껴졌다.

 

 “........”

 “.....미자?”

 

 조금 더 대답을 하지 말아볼까? 가슴이 미친 듯이 답답하다. 내가 지금 화를 내야 하는 걸까? 원망을 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사과를 해야 하는 걸까?

 

 “미자....”

 “....다인을..”

 “.......”

 “따아 와어요...”

 “.......”

 

 어눌하게 발음이 똑바르지 않은 미자를 바라보며, 알렌이 가만히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그리고 금빛 눈동자로 미자의 얼굴에 난 상처를 하나하나 훑으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읊조린다.

 

 “미안해요, 미자. 나 때문에, 얼굴이 상했습니다.”

 “.....”

 “나 때문에, 당신이 다치게 됐습니다. 미안해요.”

 

 알렌은 미자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고운 얼굴이 엉망이다. 그리고 몸조차 추스르지 못하고 바닥에 앉아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죄책감이 알렌을 옭죄어 왔다. 자신이 조금 더 조심했어야 했다.

 

 “몸은 좀 괜찮아요?”

 

 안타까움이 절절 흐르는 얼굴이 그녀를 살피고 또 살핀다. 조금 전 사내가 자신의 옷으로 미자에게 묻은 오물을 털어준 덕에 오물은 많이 없어졌지만, 여전히 그녀는 짓밟히고 구른 통에 엉망이었다.

 

 “여기에 언제 까지 있을 수는 없는데... 일어 설 수 있겠어요?”

 

 그녀에게 들키지 않도록 말이다.

 

 “내가 부축해 줄게요.”

 

 언제나 그렇듯 다정한 모습으로 미자를 바라보던 알렌이 미자의 몸을 조심스레 부축하며 그녀가 몸을 일으키는 것을 도왔다. 그렇게 그에게 의지해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미자는 죽음에 직면했던 사건으로 차게 식었던 가슴이 가만히 흔들리는 걸 느꼈다.

 

 “괜찮아요? 서 있을 수 있겠어요?”

 

 알렌의 품안에 가만히 기대어 힘든 몸을 지탱하던 미자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이상하게... 몸이 덜 아픈 거 같아요.”

 

 미자는 의아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몸은 물론 어눌하던 말투도 제대로 나오는 것 같았다. 이상하지 않은가? 아니면, 그만큼 알렌에게 의지했던 것일까? 마치 그가 곁으로 다가오자, 상처가 아물어 가는 느낌이다. 몸도, 마음도 말이다. 이건 좋은 현상일까?

 

 “나... 당신을 따라왔어요. 그리고...”

 

 미자는 천천히 기억을 되 뇌이고 있었다. 자신이 어떻게 알렌을 따라 마을에 들어왔고, 마을에서 무엇을 보고, 만났으며, 자신이 왜 이 꼴이 되었는지, 자신이 왜 죽을 뻔 했던 것인지.

 

 “난... 난....”

 

 기억이 떠오르려 하자, 미자는 갑자기 감정이 격해지는 것을 느꼈다. 격해진 감정으로 인해 무언가 입 밖으로 울컥 튀어나오려하는 것을, 미자는 간신히 씹어 삼켰다. 그건, 그녀의 목숨이 위태로웠던 바로 그 순간.

 

 “당신을 불렀어요. 당신을...”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한 건지, 그런 일이 정말 있기는 했던 건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런 일 이란 게 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희미해져 가는 기억 속에 격한 감정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살려달라고.... 살려달라고....”

 

 미친 듯이 떨려오는 심장은 진짜 있었던 일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래서 인지 제대로 된 확신도 없으면서, 번져 버린 불씨마냥 입에서 원망의 말을 쏟아내고 말았다.

 

 “당신을 불렀어요! 당신을 계속 불렀는데! 당신은 계속해서 날 외면했어요....”

 

 진짜? 정말? 알렌이 날 외면했었나? ... 혹시, 정말 못 들었으면? 아냐! 그럴 리 없어. 그렇게, 그렇게 소리 질렀는

 데? 무섭다고 구해달라고... 그런데... 내가.... 정말 그렇게 위태로웠나? 나... 정말 죽을 뻔 했었나? 아... 뭐야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어.

 미자는 눈물이 동그랗게 번지는 눈을 손등으로 거칠게 닦아내며 토해내듯 알렌에게 성을 내고 있었다.

 

 “왜! 왜 못들은 척 한 거예요! 왜!?”

 

 알렌은 이제 눈물까지 뚝뚝 떨어뜨리며 외쳐대는 미자를 당황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알렌은 그녀의 목소리에 숨어들은 날카로운 칼날이 자신을 베어오는 것 만 같았다. 자신을 원망하는 그녀가, 이 상황이,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미안해요. 미자. 정말... 정말 몰랐어요. 내가 잘 못 했어요. 미안합니다.”

 “몰랐다는 게 말이 돼요? 당신은 바로 길 건너에 있었어요. 내가 그렇게 소리쳤는데 그냥 부르기만 해도 알 거리에서 몰랐다는 게 말이나 되냐 구요!? 난 정말, 죽는 줄 알고.... 얼마나 무서웠는데...! 윽!”

 

 두드려 맞은 듯 아프던 몸이 다시 말썽을 부려오고 있었다. 성을 이기지 못해 부들부들 떨었더니 몸뚱이가 그러하냐? 더 떨어볼까? 라며 미자의 몸을 휘 청이게 만들고 있었다.

 

 “미자.... 그러니까...”

 

 알렌이 흐느끼는 미자를 보며 무언가 말을 하려다 미자의 몸이 갑자기 휘청하며 넘어가려 하자, 서둘러 그녀의 등을 감싸 안으며, 품안으로 들였다.

 

 “미자, 조심해요.”

 “내가! 내가 살려달라고 한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좀 전에 그자는 누구고...”

 

 알렌의 품안에서 미자의 심장이 철렁했다. 왜 알렌을 그토록 처절하게 불러야 했는지, 왜 그렇게 죽음의 공포를 느껴야만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건 둘째로 치고, 미자가 지금 확실하지 않은 사실을 가지고 알렌을 원망하고 비난하고 있다라는 것까지 논외로 치더라도, 조금 전 알렌이 지목한 그 사내. 순간 매혹되듯 그에게 빠져있던 자신을 어쩌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알렌에게 커다란 죄를 지은 기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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