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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동물의사 옥선생
작가 : 연지주자
작품등록일 : 2017.7.28

동물병원에서 일하게 된 27살 설희. 그 곳에는 염라대왕 보다 더 무서운 수의사 옥 선생이 있었다. 특이하고 재수없는 이 남자, 근데 자꾸만 이 남자한테 눈이 간다.

 
19화 : 전 남친.
작성일 : 17-07-30 17:46     조회 : 337     추천 : 0     분량 : 5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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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11시.

 예전 같으면 아직 한참 놀 시간이었지만, 동물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한 설희에게는 한밤중이었다. 몸을 쓸 일 없던 설희에게 동물병원 일이 고되었다. 목요일 밤인 오늘 밤도 설희는 입을 벌리고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 설희의 단잠을 깨운 것은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였다.

 

 [ 따르르르릉. ]

 

 아, 짜증나.

 전화 소리에 잠이 얼핏 깬 설희는 대충 손을 휘저었다. 너무 졸려 고개를 들 수 조차 없었다. 그녀가 손을 대충 흔들자, 머리맡에 놓여있던 핸드폰을 건드렸는지, 따르르릉 소리 대신에 남자의 목소리가 전화에서 흘러나왔다.

 

 [ 설희야, 설희야. ]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잠이 확 달아났다. 눈을 비비면서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핸드폰 화면에는 ‘찬정오빠♥’라는 글자가 떠있었다. 당장 번호부터 삭제해야겠다. 아니, 아예 차단을 해놔야지. 설희가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에도 전화기에서는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설희야, 듣고 있어? 설희야. ]

 

  한숨을 쉬며 전화를 들었다.

 

 “ 왜? “

 [ 설희야, 나 너무 힘들다. 나 너무 힘들어. ]

 

  목소리로 보니 완전 술에 취한 게 틀림없었다. 얼마나 마셨는지, 발음을 겨우 알아들었다.

 

 [ 나 네가 너무 보고 싶어. 내가 잘못했어, 설희야. ]

 

  욕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왔다. 그에게 욕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래봤자 였다. 술 취한 사람에게 욕해봤자 내 입만 더러워지지.

 

 “ 집에 들어가서 잠이나 자. “

 

  그렇게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의 전화번호를 차단 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베개를 끌어당겨 머리를 댔다. 고개를 대자마자 다시 꿀 같은 잠에 빠져들었다.

 

 *

 

  그 주 토요일.

  동물병원의 토요일은 평일 보다 더 정신이 없다. 많은 반려견 보호자들은 급하지 않은 병의 경우 평일 보다 일이 쉬는 주말에 병원을 찾았다. 그래서 일요일까지 영업하는 동물병원도 많았지만, 돌마래 동물병원의 경우 일요일이 휴일이어서 그만큼 전쟁 같은 토요일을 보냈다.

  영업이 끝나고 청소까지 끝내자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설희는 늘 가지고 다니는 에코백을 힘없이 손에 들고 다른 직원들에게 인사를 했다.

 

  “ 들어가 보겠습니다. “

  “ 응, 나도 슬슬 가야겠네. 설희씨, 잘 가요. “

 

  인사를 하고 병원에서 나와 기지개를 쭉 폈다. 현재 시간 4시. 집에 가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푹 자고 싶었다. 내일 아침 10시까지 자야지. 그렇게 신나게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병원 반대편 가로수 밑에 서있는 남자가 보였다.

  찬정이었다.

  그 역시 그녀를 발견하고, 서둘러 길을 건너 왔다. 설희는 그를 발견하자 마자 고개를 돌리고 얼른 역 쪽으로 걸어갔다. 진짜 끈질기다. 가방 끈을 단단히 쥐고, 거의 뛰듯 걸어갔다. 그러자, 뒤에서 찬정이 큰 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 설희야! “

 

  잠시 움찔했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걸어갔다. 지겨웠다. 남자친구한테 헤어지자고 하면 여자를 괴롭히는 경우가 세상에 많다고 듣긴 했지만, 왜 찬정오빠는 자기가 헤어지자고 해놓고 나를 따라다니지?

 

  “ 설희야, 잠깐 나 좀 봐봐. “

 

  찬정이 뛰어와서 설희의 손목을 잡았다. 거의 낚아채듯 그가 손목을 잡는 바람에, 얇은 설희의 손목이 꺾였다.

 

  “ 아야, 왜 이래! “

 

  설희가 소리를 지르자 찬정이 그녀의 손목을 놓아줬다.

 

  “ 미안. “

  “ 왜 그러는 거야? 전화하고, 직장에 찾아오고. 왜 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해? “

  “ 네가 병원에 들어오지 말라고 해서 밖에서 기다렸잖아. “

 

  잘했지? 라는 식으로 말하는 의기양양한 찬정의 얼굴을 설희가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야할 지 알 수가 없었다. 찬정은 설희의 첫 번째 남자친구였다. 다른 사람과 이별을 겪어 본 적이 없어 확신은 할 수 없지만, 그가 이렇게 찾아오는 것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둔한 그녀도 알 수 있었다.

 

  “ 이러지마, 나 이제 오빠가 싫어 질라 그래. “

 

  설희의 말에 찬정이 고개를 저었다.

 

  “ 다시 한번 생각해봐. 우리 결혼까지 생각했었잖아, 응? “

  “ 100번 생각해도 답은 같아. “

 

  찬정이 그녀에게 헤어지자고 한 순간, 그들은 헤어진 것이었다. 더 뭐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가 이렇게 질척댈수록, 그나마 있던 정조차 사라졌다.

 

  “ 그러니까 제발 좀 오지마. “

  “ 다른 남자 생겼지? 아니면 네가 이럴 리가 없어. 너 나밖에 없는 애였잖아. “

 

  끈질긴 찬정의 말에 설희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거 미친놈 아니야? 너무 화가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생겼다 생겼어. “

 

  현실은 토요일도 집에 가서 혼자 뒹굴거리는 인생이었지만, 앞의 지긋지긋한 인간을 떼 버리려면 다른 남자가 생겼다고 말 하는 수밖에 없었다.

 

  “ 역시 그랬구나. 우리 헤어진지 몇 달 됐다고 벌써 다른 남자를 만나? “

  “ 오빠도 다른 여자 만나던 거 봤어. 오빠랑 헤어지고 다른 남자랑 만나든 말든 헤어진 이후 일은 상관 없는 것 아니야? “

 

  설희의 말에 찬정의 눈빛이 변했다.

 

  “ 너… 내가 다른 여자랑 데이트 한 거 봤어? “

  “ 응. 봤어. 근데 신경 안 써. 그러니까 오빠도 나한테 신경 꺼줘. “

 

  찬정이 새로운 여자친구가 생겨서 잠깐 설희가 질투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곤란했다. 설희는 턱을 쳐들었다.

 

  “ 새로 만나는 남자는 오빠보다 훨씬 멋있는 사람이거든. 그러니까 제발 좀 나타나지 마. “

 

  순간, 이상하게도 설희의 머릿속에는 옥 선생이 떠올랐다.

 

  옥 선생이랑 그런 관계는 아닌데. 조금 찔린다. 옥 선생님이 알면 황당해 하겠지. 그래도 선의로 이용하는 거니까 한번만 용서해주세요, 옥 선생님.

 

  “ 네가 다니는 동물병원의? “

  “ 그래. 키도 오빠보다 커. 오빠보다 능력도 있고. “

 

  170이 될까 말까 하는 찬정을 아래위로 훑으며 말을 이었다.

 

  “ 얼굴도 훨씬 잘생겼고. 여러모로 그 남자가 오빠보다 훨씬 낫거든. 그러니까 좀… “

 

  꺼져줄래? 그렇게 말하려던 설희의 말을 찬정이 끊었다. 그가 크게 윽박질렀다.

 

  “ 그래서, 지금 그 남자 조건 보고 만나는 거야? “

  “ 그런 건 아니지만… “

  “ 너도 똑 같은 여자구나! 너 정말… “

 

  그의 말에 신물이 올라왔다. 똑같긴 뭐가 똑같아? 설희가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 그만해. 오빠란 사람 정말 지긋지긋하다. “

 

  그렇게 설희가 말하자, 찬정이 손을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 너, 말 다했어? “

 

 찬정이 살기가 등등한 표정으로 설희를 바라보며 주먹을 쥐었다.

 맞는다.

  순간적으로 설희는 두 손을 들어 머리를 감싸 안았다. 키가 크지 않은 찬정이라고는 해도 남자였다. 170센치의 그가 손을 들자, 키가 작은 설희는 무서워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 탁!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에,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조심스레 손을 내리고 고개를 들었다. 설희의 눈 앞에는 의외의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찬정이 들어올린 손을 옥 선생이 잡고 있었다. 아직도 흰 가운 차림의 옥 선생은 이마에 핏줄이 서있는 채 찬정의 손목을 꺾었다.

 옥 선생이 어떻게 여기에?

 

 *

 

  이번 주말, 설희가 들어가기로 한 오피스텔의 세입자가 방을 뺐다. 설희한테 그 이야기를 하고, 또 빈 방을 보러 오고, 이삿날도 잡으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토요일의 정신 없는 일상 속에 말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퇴근하기 전 청소시간에 이야기해야지. 그렇게 생각했지만, 퇴근 전 보호자로부터 전화가 와 장시간 통화를 해야 했다. 전화를 끝내고 나와보니 병원 사람들은 이미 청소를 끝낸 참이었다.

 

  “ 설희씨는 어디 있어요? “

 

  옥 선생의 말에 테크니션, 진영이 밖을 내다보았다.

 

  “ 퇴근했어요. 근데, 좀 전에 나갔으니 지금 나가면 만나실 수 있을걸요. “

 

  서둘러 병원 문을 열고 밖으로 향했다. 설희는 늘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갔다. 역 쪽으로 걸어가자, 저 멀리 설희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곁에는 낯선 남자도 있었다. 둘이 뭐라고 큰 소리로 이야기를 했지만,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다. 지금 가도 돼나? 남자친구인가? 잠시 고민했지만, 둘의 대화가 일상적이지 않고 옥신각신 큰 소리로 커지며 왠지 모를 불안감에 그쪽으로 다가갔다.

 둘은 서로의 대화에 집중해, 옥 선생이 바로 곁에 까지 옥 선생이 다가가고 있는 것 조차 몰랐다. 둘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 그만해. 오빠란 사람 정말 지긋지긋하다. “

 

  그렇게 설희가 말하자, 앞에 서 있던 남자가 손을 들었다.

 

  “ 너, 말 다했어? “

 

  설희씨가 위험해.

 본능적으로 뛰어들어 남자의 팔을 잡았다. 갑자기 뒤에서 팔이 잡힌 남자는 당황해 뒤를 쳐다보며 외쳤다.

 

 “ 뭐야, 넌! “

 

 앞에 서있던 설희도 놀라 은우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손을 놔줄 수는 없었다. 손을 놨다가는 설희가 위험할 수 있었다.

 남자가 소리를 지르는 데도 은우는 차분하게 오히려 찬정의 팔을 들어올려 그를 압박했다.

 

  “ 아악! “

 

  팔이 꺾여 아픈지 남자는 소리를 질렀지만, 봐줄 생각은 없었다.

 

  “ 너, 너, 뭐야 이 새끼야? “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은우는 설희를 바라보았다.

 

  “ 괜찮아요? “

 

  설희는 아직 손을 들어올린 채 멍하니 은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놀라서 그런지 입이 반쯤 벌어진 상태였다.

 

  “ 유설희씨, 괜찮아요? “

 

  다시 한번 묻자, 설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 네, 네, 선생님. 괜찮습니다. “

  “ 너, 이 팔 안놔? “

 

  남자가 은우에게 팔을 잡힌 채 버둥대고 있었다. 그는 은우보다 한참 체격이 작아 도저히 은우의 힘을 이기기는 힘들었다.

 

 “ 너, 너, 이 새끼 누구야? “

 

  남자의 말에 은우가 되물었다.

 

  “ 너야 말로 누군데 유설희씨한테 손을 대? “

 

 은우의 질문에 남자가 떠듬떠듬 대답했다.

 

  “ 나, 나는 설희 남자친구야. 그러니까.... “

 

 남자친구란 말에 은우의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남자친구. 그녀가 남자친구가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남자일 줄은 몰랐다. 여자에게 손 대는 남자. 분노에 정신이 잠시 나갔다. 비틀었던 그의 팔을 풀어주며 바닥으로 남자를 밀어 쓰러뜨렸다.

  은우가 팔을 풀어주고, 밀어버리자 남자는 바닥으로 쓰러졌다. 엎어진 채, 은우를 올려다봤다. 은우는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 꺼져. “

 

  낮고 으르렁 대는 듯한 은우의 말에 남자가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화가 나서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치고 싶었지만, 설희가 안 그래도 놀라 떨고 있는데 더 이상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 꺼지라고! “

 

  은우가 크게 소리치자, 남자가 일어서서 뒷걸음질을 쳤다. 도망가지 않는 남자 쪽으로 은우가 한발자국 내딛고 눈을 부라리자, 남자가 몸을 돌려 서둘러 뛰어갔다. 뭐라고 제대로 들리지 않는 말을 웅얼거리기도 했지만, 그는 은우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은우는 몸을 돌려 아직도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몸을 떨고 있는 설희를 바라보았다. 가늘게 떨리는 설희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고 그녀의 눈을 보았다.

 

  “ 괜찮아요? “

  “ 네? 네. “

 

  설희가 어색하게 웃어 보이자, 그제서야 은우의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다. 은우가 조금이라도 늦게 병원을 나왔으면, 꼼짝없이 설희가 맞았을 것이다. 그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애였다. 계속 이런 취급을 받고 있었던 걸까?

 

  “ 전, 정말 괜찮아요. “

 

 괜찮다는 설희의 말과 달리 화가 나고 가슴이 턱 막혀왔다. 가녀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은우가 중얼거렸다.

 

  “ 설희씨. “

  “ 네? “

  “ 저 사람 만나지 마요. “

 

  소중하고 예쁜 설희씨 아프게 하는 놈, 큰 소리 지르며 손이나 올리는 저런 놈, 만나지 마요. 자기 옆에 있는 여자친구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도 모르고 설치는 저런 놈, 만나지 마요.

  그녀를 좋아했다. 그래서 언젠가 그녀와 사귀고 싶었다. 지금 설희가 남자친구가 있는 것은 상관없었다. 정정당당하게 겨룰 생각이었다. 마치 봄비처럼, 옆에서 한걸음씩 쫓아가 그녀의 마음에 스며들고 싶었다. 당장 헤어졌음 하는 그런 꿈을 꾸진 않았다. 하지만 저런 남자는 싫었다.

 

  은우가 다시 중얼거렸다.

 

 “ 저 사람이랑 헤어져요. “

 

  나랑 만나요. 내가 더 잘해줄게. 내가 더 사랑해줄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까지 말할 용기는 없었다. 그저 같은 말을 반복했다.

 

 “ 저런 놈 만나지 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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