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햇살이 강한 오후, 30대로 보이는 여성이 귀여운 퍼그를 데리고 왔다.
“ 이름은 곰곰이구요, 8살 이에요. “
오늘 병원에 처음 온 개인지라, 설희는 컴퓨터에 여성이 불러주는 정보를 쳤다.
“ 제 이름은 김혜연이고, 010-3324-xxxx 이고요. “
여성이 개인정보를 불러주는 사이, 곰곰이는 병원이 신기한지 연신 크고 까만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주변을 구경했다. 코가 앙증맞게 짓눌려 있었고, 축 늘어진 귀에 동글동글 말려있는 꼬리가 너무 귀여워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였다.
요즘은 매일매일 개를 보는 설희의 눈에도 너무 귀여웠다. 퍼그가 이렇게 귀엽구나.
“ 곰곰이가 참 귀엽네요. “
“ 그래요? “
보통 강아지를 칭찬하면, 보호자들은 좋아서 웃는 일이 많았는데, 이 여성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하고는 진찰실로 들어갔다.
“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떠한 일로 오셨나요? “
옥 선생이 오로지 진찰때만 보여주는 ‘영업스마일’을 지으며 곰곰이와 여성을 맞이했다.
“ 아, 그게요. “
여성이 곰곰이를 진찰대 위에 올려놓고 어깨를 으쓱했다.
“ 요즘 얘가 힘이 없더라구요. 집에 들어가서 몸을 벌벌벌 떨질 않나, 산책도 좋아하는 편인데 잘 안가려 하고, 안 걸으려 해요. 밥도 엄청 좋아하고 식욕이 넘치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사료를 줘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구요. “
“ 화장실은 잘 가나요? “
“ 아, 그 화장실도요… “
잠시 여성이 짜증난 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 예전엔 잘 가렸는데, 이제는 집 주변에서 싸네요. “
옥 선생이 몸을 꼼꼼히 만졌다. 그의 손이 곰곰이의 다리로 간 순간, 얌전히 가만히 있던 곰곰이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 깨갱! “
병원에 와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평온하던 곰곰이가 큰 소리를 내자, 설희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어디가 안 좋긴 안 좋은가봐. 소리가 너무 날카로웠어. 어디가 아픈 걸까.
소리를 지른 후, 곰곰이가 사시나무처럼 덜덜 몸을 떨었다. 옥 선생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많이 아픈 걸까.
“ 언제부터 이랬죠? “
“ 한 일주일 전부터요. “
“ 집에서도 이렇게 가끔 소리를 지르던가요? “
옥 선생의 말에 보호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 반응만 봐서는 디스크 같습니다. “
“ 디스크요? “
“ 네, 엑스레이 찍어보고, 필요하면 척추 조영검사도 하는 게 좋겠습니다만, 반응만 봐서는 디스크, 추간판 탈출증 같네요. “
그 말에 보호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디스크라 하믄… 사람도 걸리는 그 디스크요? 허리 아픈? “
“ 네. “
그리고 옥 선생이 뼈가 그려져 있는 샘플을 들고 보호자에게 설명을 했다.
“ 여기 이 곳이 추간판이란 곳인데, 나이가 들거나, 비만이나, 몸을 너무 격렬하게 움직였을 때, 추간판에 부담이 실려서 밖으로 돌출하면서 척수를 압박하는 병이에요. “
보호자의 표정이 한결 밝아지며 곰곰이를 한 손으로 쓰다듬었다.
“ 저희 아버지도 디스크 셨어요. 그럼 그냥 좀 조심하면 되는 거겠네요? “
그러자 옥 선생이 고개를 저었다.
“ 사람 디스크랑 달리 애견 디스크는 치료를 해주시는 게 좋아요. 사람의 경우 디스크로 아예 하지마비가 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개들의 경우는 최악의 경우 신경마비나 반신불수가 될 수도 있거든요. “
옥 선생의 말에 보호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 우리 곰곰이가 반신불수가 된다는 말씀이세요? “
그 말에 옥 선생이 서둘러 손을 저었다.
“ 아니, 곰곰이는 지금 뒷다리 반응도 좋고, 아직 초기 상태이니 초반에 약물 치료를 좀 하면 나아 질거예요. 앞으로 생활 하실 때 조심을 하셔야 할 점이 몇 개 있습니다만, 그 것을 빼고는… “
그렇게 옥 선생이 이야기해도 보호자의 얼굴은 썩 밝아지지 않았다.
“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신가요? “
“ 우선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말씀 드려야 겠지만, 입원치료를 삼사 일정도 하시던지, 그게 싫으시면 통원치료를 좀 하시면서 약물치료를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보호자가 옥 선생과 곰곰이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곰곰이는 이 상황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보호자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 그럼 입원 시킬게요. “
보호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곰곰이를 놔 두고 휙, 대기실로 나가버렸다. 그녀의 반응이 놀라워 옥 선생을 바라보았다. 옥 선생도 당황한지 잠시 멍하게 보호자의 뒷 모습을 바라보았지만, 곧 어깨를 으쓱했다.
“ 병이라고 하면 사람들 반응이 가지가지니까. “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설희가 보기엔 보호자가 너무 차가웠다. 보호자가 진찰실을 나가자, 혼자 남겨진 곰곰이는 불안한 듯 작게 울면서 그녀를 불렀다. 그러나 보호자는 그런 곰곰이를 다시 돌아보지도 않고 퇴원하는 4일 뒤 데리러 오겠다며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 끄응… “
곰곰이를 조심스럽게 안고 입원실로 옮기자, 그가 작게 울음 소리를 냈다. 불안한 눈동자가 촉촉했다.
“ 괜찮아, 곰곰아. 4일만 있음 엄마 오실 거야. 잘 먹고 잘 치료받아서 건강하게 엄마 만나야지. “
그렇게 따스하게 설희가 말을 걸자, 곰곰이는 울음 소리를 멈췄지만, 케이지에 넣자 또 다시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곰곰이와 4일을 함께 보냈다. 처음 하루는 계속 울면서 엄마를 찾던 곰곰이었지만, 다행히 이틀째, 삼일째가 되니 병원 생활이 익숙해 졌는지 불안해보이던 얼굴도 많이 평온해졌고, 우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 응, 거의 다 나았네요. “
“ 정말요? “
옥 선생의 말에 설희가 활짝 웃으며 곰곰이의 복슬복슬한 털을 쓰다듬었다. 설희가 만지는 것이 기분 좋은지, 곰곰이가 눈을 가늘게 뜨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 그래요. 통증도 없고, 반응도 좋고 하니 앞으로 조심만 하면 될 것 같아요. 오늘 퇴원하는 날이죠? “
“ 네. 언제쯤 오시려나? “
“ 지난번에 오후 늦게 오셨으니, 오늘도 오후쯤 오시는 거 아닐까요? “
그러나 그날 저녁, 병원을 닫을 시간이 되도록 보호자는 오지 않았다.
“ 날짜 착각하신 거 아닐까요? “
설희의 질문에 매니저가 고개를 갸웃했다.
“ 그럴 수도 있지. 전화 한번 해볼까요? “
그리고 매니저가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전화를 걸자 마자, 매니저가 표정이 이상해졌다.
“ 왜 그러세요? “
“ 없는 번호라는데. “
그 소리에 대기실로 걸어 나오던 옥 선생의 발이 멈췄다. 매니저를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 곰곰이요? “
“ 네. “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이자, 옥 선생이 한숨을 쉬었다.
“ 튀었네. “
“ 튀.. 튀다뇨? “
설희가 묻자, 매니저가 난감한 듯 자신의 턱을 쓸어 내리며 혀를 찼다.
“ 동물병원에 개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가끔 있거든요. 입원 했다가 안 찾아 가기도 하고. 길에 버리는 것보다 동물병원에 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죠. “
그럴 수 가… 곰곰이가 버려졌다고?
곰곰이는 시간이 지나 많이 안정되긴 했지만, 아직도 입원실에 누가 들어가면 그것이 엄마인지 아닌지 고개를 쭉 빼고 보곤 했다. 그리고 들어온 사람이 엄마가 아니면 다시 시무룩해 하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얼굴을 바닥에 대고 한숨을 쉬었다.
“ 설마요. 제, 제가 전화번호를 잘못 적은 건 아닐까요? “
곰곰이가 온 첫 날, 귀여운 곰곰이의 매력에 빠져 자신이 정신을 놓고 전화번호를 잘못 적었을 수도 있다.
“ 하지만 오늘 퇴원일인데 안 왔고… 소개로 오신 분도 아니죠? 큰일 났네. 곰곰이는 반려견 등록도 안 되어 있던데. 찾을 방법이 없어. 혹시 정말 전화번호를 잘못 적은 게 아닐까요? “
“ 튄 거 맞아요. 분위기가 그랬어. “
옥 선생의 말에 매니저가 눈을 크게 떴다.
“ 그랬어요? “
“ 보통 아프다고 하면 어떻게 치료하냐, 얼마나 걸리냐,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냐 치료 방법도 안 물어보고 그냥 입원 시켜달라고 하고 나가버리는 게 뭔가 그때 이상했어요. 아, 그때 눈치 챘어야 했는데 “
“ 혹시 날짜 착각 하신 거일 수도 있잖아요. 며칠만 기다려봐요. “
설희의 말에 옥 선생이 설희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의 눈빛에, 설희는 긴장이 되 어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옥 선생이 한숨을 쉬었다.
“ 그래야죠. 근데, 아마 안 올 거예요.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
그리고 옥 선생이 곰곰이의 상태를 보려 입원실로 들어가버렸다.
마치 이 날, 옥 선생의 말이 예언이 된 것처럼, 일주일이 지나도 보호자는 끝내 곰곰이를 찾으러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