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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거울의 도시
작가 : 홀로가는길
작품등록일 : 2017.7.27

에펜슐렌 대륙 중부에 위치하는 국가 브리티아에서는 에드워드 왕태자가 그의 아버지인 클레이안 왕을 시해함으로써 반역자로 간주되어 실각하였다. 그에 따라 빈 왕좌와 주인을 잃은 왕관은 자연스럽게 왕의 둘째 아들이자 왕태자의 이복동생 에렌 왕자에게 넘어간다.
하지만 이는 상징적인 것 일뿐, 에렌 왕자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의 모후가 되는 헤스데아가 섭정후로 등극하였고, 브리티아는 그녀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된다.

에렌은 자신의 의지 하에 선택을 해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그의 인생을 재단하는 것은 늘 그의 어머니 헤스데아 섭정후였다. 거짓 왕의 자리에 앉아 어머니와 그에 관련된 신하들 사이에서 놀아나는 것에 분노를 느끼던 나날 중, 우연히 카드 한 장을 발견하게 된다.

그 카드는 이복형이자 실각한 에드워드 왕태자에게 자신이 그려줬던 카드였다. 이 카드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왕태자와 자신뿐이었다.
평소 시해 사건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던 에렌은 이 카드의 끝에 닿으면 왕태자의 진실을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뒤를 쫓는다. 하지만 이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일에만 자꾸 휘말리는데… 과연 그 끝에는 무엇이 있는 것인가?

 
#11
작성일 : 17-07-30 02:17     조회 : 257     추천 : 4     분량 : 9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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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 저 멀리서 물건이 우지끈 부서져 뒤엉키는 소리와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이 둘이 걷는 길에 유난히 크게 들렸다. 자연스럽게 둘은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서 한 남자가 품에 무언가를 안고 (날렵하게) 가게 앞에 둔 물건들을 뛰어넘으며 그 둘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당연히 그를 쫓는 어느 통통한 남자가 손가락을 가리키며 뭐라 소리치는데 입 모양을 추측하건데, ‘저 놈 잡아라.’ 뭐 이런 말일 것이다.

 

 상황 파악이 끝난 둘은 고개를 다시 돌려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사람들이 넘어지고 소리치고 물건들이 쏟아지는 등 온갖 잡음이 점점 가까워지자 라키아가 입을 열었다.

 

 “이안, 네가 보기에도 제일 앞에 보이는 놈이 도둑놈 같지 않느냐?”

 

 “그러하겠지요.”

 

 “도둑은 이 곳 지리나 길이나 뭐 잘 알겠지?”

 

 “그러니 저렇게 잘 도망 다니겠지요.”

 

 “근데 도둑은 영 신뢰하기가 어려워서…”

 라키아는 깃털 부채를 코에 갖다 대어 살랑살랑 거리며 말했다.

 이안은 라키아의 발걸음에 맞춰 걸으며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이처럼 ‘현재가 중요해! 인생에서 현재 순간을 즐겨야 해!’하게 된 이유가 어떻게 보면 바로 그 도둑놈들의 작품일 테니 말이다.

 

 “대신에 어려운 상황에서 손을 내밀어 준 이는 보통 인간이라면 그 은혜를 잊지 않겠지…?”

 

 이안은 곧 왕의 탄신일에 맞춰 있을 축제와 검투 대회 등의 일정으로 숙소를 구하기 어려울 텐데 이렇게 쓸 데 없는 소리를 하는 라키아가 이해가 가지 않아 눈썹을 움찔했다.

 

 지금 당장 발품을 팔아도 숙소 하나를 구할 수 있을까 의문도 들지만 얼마나 돈을 더 얹어주어야 할까(최대한 경비를 아끼고 싶은) 웬만하면 쾌적하고 위치는 어디로 이동 하던지 편리한데 조용한 곳은 없을까 생각해 보지만 너무 많은 바람인 것을 이안도 알고 있다.

 

 이렇게 신경 쓸 일이 많은데 태평하게 수도 구경이라던가. 사람이라면 응당 이래야 하지 않겠나 라는 말을 하는 것이 현재 상황에 맞는 주제는 아닌지라 이안은 살짝 짜증이 나서(자신만 고생하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약간 말이 뾰족하게 나갔다.

 

 “그렇겠지요. 보통의 인지상정이 있는 자라면 어려울 때 도움을 준 이는 잊지 않겠지요. 정말 눈물도 피도 없는 악한이 아닌 이상 그러겠지요. 그런데 이런 건 왜 물으십니까?”

 

 라키아는 이안의 날이 선 목소리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지? 그럼 우리가 수도에서 좀 더 편안하고 쾌적한데다가 경비를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으니 이안 너는 내 말만 따르면 되는 것이다.”

 

 이안은 라키아의 말에 별 기대도 안 한다는 듯이 무성의하게 답했다.

 “예예, 또 엄청 획기적이기는 하나 현실 불가능한 방법을 떠올리셨겠지요. 예전에 아그리젠에 있을 때 회의에서 ‘합의가 안 되니까 그냥 공평하게 땅을 나눠. 자네도 자네가 갖고 있는 거 내 놓기 싫고 내 옆에 있는 자네도 싫어하는 것 같고, 근데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자네를 위해 뭔가 하기 싫어하는 것 같으니 찢어져야지 뭐 어쩌겠나.’ 그러셨던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셨겠지요.”

 

 “솔직히 그 땐 그게 제일 현실적인 대안이지 않나? 같이 그 땅에서 못 살겠다는 데 찢어져야지 뭐 별 수 있겠나, 이안.”

 

 “예예. 합리적인 방법이지만 제일 비현실적인 방법이지요. 나눠서 뜯어짐으로써 그들이 현재 얻고 있는 것도 놓아야 하는데 참 그런 선택을 하시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결과적으로 방랑하게 되셨지 않습니까.”

 

 “쯧쯧. 다들 욕심은 많고 멍청해서 그러한 것을.”

 

 “예예. 그렇지요. 하지만 저희는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처지이니 어쩌겠습니까. 여하튼 또 말도 안 되는 말씀 하실 생각이시면 그냥 제가 구할 수 있길 신이나 그 분께 기도드리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안의 말에 라키아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이내 멈춰섰다. 이안은 라키아가 자신의 말에 혹여 상처받아 그런가 싶어(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는 워낙 무신경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신도 걸음을 따라 멈춰 라키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때 라키아의 입술이 열렸다.

 

 “이안, 큰일을 성사시키려면 늘 희생이 필요한 법이다.”

 

 “?”

 이안은 라키아가 아까부터 사람의 심성이 어떻고 진리는 어떻고 하는 것으로 보아 또 실없는 소리를 하나 싶었다. 하지만 계속 받아주지 않고 자신이 계속 넘기는데도 얘기 하는데도 불구하고 얘기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이안은 라키아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라키아의 입술이 다시 열렸다.

 

 “이안, 네가 좀 더 무게가 나갔으면 좋겠다만 그건 신이 정한 것이니 내가 바꿀 수는 없고… 내가 최선을 다해보마. 자, 간다!”

 

 “!”

 

 이안은 그의 마지막 말과 함께 순식간에 자신이 붕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 놀라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다 순간 뒤에 떨어져 충격 받을 것이 걱정되어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 어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자신은 땅바닥에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남자는 자신에게 사람이 날아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서로 찰나의 순간을 함께 했다. 그리고 이안이 기억하는 것은 꺼림칙한(정확히는 부딪힘에서 오는 그 통증이겠지만) 접촉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누군가와 충돌하였지만 남자가 넘어지면서 자신의 충격까지 어느 정도 흡수했기 때문에 이안은 남자보다는 먼저 일어날 수 있었다. 아직도 약간 머리를 지탱하고 있는 나사 하나는 빠진 느낌이라 이안은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현실 감각을 찾으려 했다.

 

 이안은 누구 덕분에 이렇게 사고를 당했는데 자신은 상관치 않고 그 남자에게 가는 것 같은 라키아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 곁에 있는 아이가 장난이 좀 심하여 댁께 피해를 끼쳤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뭐 이런 기름칠 잔뜩 바른 듯 매끈한 말들을 내뱉겠지. 그리고 ‘얘, 이안. 어서 사과드리렴.’ 부산 떨며 내가 고개도 못 들도록 허리를 굽히게 하겠지.

 

 이안은 띵한 머리를 가로저으며 이 아저씨, 오늘 식사도 못 먹고 노숙하게 해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자연인 상태로 지내봐야 자신의 노고를 알 것이라고 중얼거리며 속으로 온갖 욕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에 이안은 자연스럽게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제일 먼저 보였던 것은 반질반질한 검은 구두와 프릴 모양의 장식이 가득한 셔츠로는 감출 수 없는 배였다. 그 휘황찬란한 것은 자신을 스쳐 지나가 반짝이는 보석들이 촘촘히 별처럼 박혀있는 재킷 뒷자락에서 자신의 시선은 멈췄다. 그 때 라키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이거 혹시 경의 것이 아니십니까?”

 

 중년의 남자가 라키아의 손에 있는 물건을 빼앗다시피 가져가며 말했다.

 “오오, 맞소.”

 그의 얼굴에서는 감격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잡은 라키아는 뱀이 먹잇감을 발견한 것 같은 눈빛으로 순간 번뜩였다.

 

 “제가 그럴 줄 알았습니다. 저 멀리서 공께서 다 제쳐두시고 앞만 보고 뛰어오시는 모습과 이 도둑놈이 휙휙 가로질러 날뛰는 모습이 제 눈에 딱 박혔지 뭡니까. 그래서 ‘아! 저것이 바로 수도에서 자주 볼 수 있다는(사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만) 날렵한 도둑놈의 일종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이 한 몸 희생하여 이렇게 경의 것을 찾았습니다.”

 

 라키아는 ‘휙휙 가로질러 날뛰는 모습’에서 저 혼자 몸을 요리조리 뒤틀어 보이다가 한 걸음을 성큼 뛰어 다니며 포현하였고, ‘아! 저것이…’ 에서는 손뼉을 치며 깨달음의 표정을 재현하였다. 특히 ‘제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에서는 ‘제가’를 강조하였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에서는 불타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손을 불끈 쥐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옆에서 구경하는 이안은 그저 기가 막혀 헛헛한 마른 웃음을 낼 뿐이었다.

 

 “이걸 잃어버렸으면 큰일을 치룰 뻔 했는데 이렇게 찾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오. 정말 고맙소, 고맙소, 고맙소이다.”

 

 중년의 남자는 물건을 품에 꼭 껴안고 말했다. 물건은 겉으로 보기엔 상자 같았다. 그가 말하는 물건은 정확히는 그 상자 안에 있을 것 같았다. 그가 물건이 흐트러지지 않고 잘 있나 살짝 열어서 봤을 때 이안도 힐끔 보았다. 상자 뚜껑이 빨리 닫혀 정확히 보지는 못했지만 투명하고 반짝이는 것처럼 보여 보석인가 싶었다.

 

 “공께서 세상이 다 무너진 것 같은 얼굴로 달려오시니 그 모습을 보고 저도 예전에 비슷한 도둑 사건을 겪은지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 때 일로 제 것을 잃어버리게 되었지만 공께서는 그런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 저는 그 때 일로 인한 상실감이 어떤지 알고 있기 때문이죠…”

 

 라키아는 자신도 비슷한 일을 겪어 누군가에게 자신의 것을 빼앗겨서 오는 마음의 상처가 작지 않음을 강조하였다. 마치 그랬기 때문에 이 상황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음을 강조했다.

 

 “오,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공께선 여기 사람은 아닌 듯하고 여행자이신 듯한데…”

 중년 남자는 라키아가 입고 있는 후드와 수도의 유행은 따르지 않고 움직이고 활동하기 편한 옷차림새를 보며 말했다.

 

 라키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예… 보다시피 여행자입니다.”

 

 “그럼 여행 하시다…”

 

 “예… 여행하다가 도둑놈들을 만나 앉아서 코를 베였지 뭡니까.”

 라키아는 깃털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그러다 문득 자기가 생각하기에 뭔가 대화에서 어색한 느낌이 들어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깃털을 보고 알았다.

 ‘여행자에게 깃털 부채가...?’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에 라키아는 저도 모르게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

 

 혹시 중년의 남자가 ‘여행자’ 라는 단어가 자신을 지칭하기에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아챘을까 슬쩍 그를 쳐다보았다. 다행히 중년의 남자는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듯 그를 안타까운 얼굴로 쳐다보았다.

 

 “글쎄 그 도둑놈들이 몇 푼 남기고 다 가져가버려 노숙과 신의 사제님들의 도움으로 하루하루 버티며 겨우 수도로 오늘 입성했습니다. 화려한 도시의 모습을 구경하고, 이 곳 사람들도 구경하며 거리에 앉아 있었지요. 특히 이곳은 아름다운 아가씨들과 멋진 청년들이 많은데 아마도 경처럼 어떻게 꾸며야 돋보이는지 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라키아는 ‘경처럼’을 강조하며 한 쪽 눈을 찡긋했다. 이안은 그저 끔찍할 뿐이었다.

 

 “넋 놓고 구경하다 이 깃털부채를 발견했지 뭡니까. 어느 귀부인께서 밖을 나오셨다 이 깃털 부채를 놓고 가신 것 같은데… 주인을 찾을 수 없어 일단 제가 가지고 다녔는데, 못 찾으면 이거라도 팔아서 방을 구해보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안은 지금 말하고 있는 라키아를 자신이 모르는 또 다른 인물로 단정 짓는 것이 속이 편할 것 같았다. 저 부채로 말할 것 같으면, 그들이 수도로 입성한 후 가난하게 된 원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라키아는 괜찮은 물건들을 알아보는 아주 뛰어난 눈을 가졌는데, 문제는 그 물건들이 값이 꽤나 나간다는 것이었다. 라키아의 눈에 저 물건이 눈에 띄자마자, 주인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강아지 같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이안을 쳐다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라키아의 돈 씀씀이를 믿지 못하는 집사가 모든 금전적 권한을 이안에게 부여했기 때문이었다.(물론 라키아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했기 때문에 이안이 금전적 권한을 가진 것에 대해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일 큰 이유는 돈을 매번 챙겨야 하는 귀찮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안은 단호하게 ‘안됩니다.’ 라고 하며 자리를 떴다. 라키아는 이안을 따라가지 않고 그 가게를 지키는 석상이 되어 서 있었지만 이안은 과감하게 버리고 떠났다. 이안이 시야에서 사라지려 하자 불안해진 라키아는 그제야 자리를 떠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안은 이렇게 매정하고 단호하게 자신의 입장을 표현했는데 못 알아듣는 어린아이도 아니고 라키아가 포기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라키아가 예전만큼 자유롭게 돈을 쓸 처지가 아닌 것은 본인이 제일 잘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 생각은 이안의 크나큰 착각이었을 뿐이었지만. 라키아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철이 없고 자제력이 없으며 한 가지에 꽂히면 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안이 잠든 사이에 귀신 같이 돈을 빼가 거금을 주고 깃털 부채를 사 온 것이었다.

 

 원래 그 깃털 부채를 사 가기로 한 아가씨가 예약 되어있었는데 라키아가 그 중간에서 가로채려면 웃돈을 더 얹어주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덕분에 꽤 좋은 위치에 쾌적한 숙소에 있었는데(라키아는 주제에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앞으로 꽤 머물러야 하는데 돈을 지불할 능력이 되지 않아 짐을 꾸려 나왔다.

 

 이안은 그 깃털부채를 볼 때마다 먼지떨이로 쓰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아무 생각 없어보여도 아그리젠의 쟁쟁한 상인들 사이에서 버텨내신 분이다. 이유가 다 있으실 거야.’ 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어 보지만 가끔 튀어나오는 ‘정말 그럴까? 정말 나중에 큰 뜻이 있어서 저러는 거라고? 그냥 정신 나간 건 아니고?’ 이런 종류의 부정한 생각은 어쩔 수 없었다.

 아마 이걸로 인해 사람은 바뀌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쳐 쓸 수 없다는 것을 이안은 깨달았을 것이다. 왜 자신이 그런 걸 깨달아야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안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도둑에 생각이 미쳐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이 상황에서 정신을 잃은 것인지 아니면 영리하게 자신의 얼굴을 숨기려고 하는 것인지 엎어져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이안이 도둑을 대충 훑어보기엔 건장한 남자 같았다. 평균 남자의 키와 골격. 따로 무언가 몸을 단련하지 않은 평범한 남자. 헤지고 너덜너덜한 짙은 색 옷을 입고 있었고, 눈에 띄는 점도 없었다. 이런 남자에게 누군가 사주를 해서 물건을 훔치게 할 거 같지는 않았고 그냥 상자 안에 있는 보석을 보고 따라온 건가.

 

 개인적인 이유(이안이 보기에 제일 가능성 있는 이유는 생계 같았다)로 도둑질을 해야 했던 남자라고 결론을 내리려다가도 혹 무기를 쓰지 않아도 스텔을 다룰 수 있는 자 이면 무엇을 할지 모르니 일단 예의 주시해야겠다고 이안은 생각했다.

 

 이안이 도둑을 다시 밑에서 위로 훑던 중, 손목 위로 조금 걷어진 옷으로 인해 보이는 그의 팔목 일부가 보였다. 도둑의 팔에는 희한한 기하학 문양의 문신이 있는 것 같았다.

 ‘잠시 저 문양…’

 이안은 묘하게 익숙하다 싶어 가까이 다가가서 보려다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어서 예민하게 구는 것 같아 그만 두었다.

 

 이안이 혼자만의 생각에서 벗어났을 때, 라키아와 중년의 남자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중년 남자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지금은 곧 왕의 탄신일에 열릴 축제와 검투 대회 등으로 제일 싼 숙소도 구하기 힘들고… 가장 싼 숙소도 지금 가격이 엄청 날 텐데 걱정입니다. 여기서도 노숙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제가 아까 바로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이 물건을 제게 다시 오게 해주신 것에 대한 답례를 하고 싶다는 것을 먼저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너무 제 마음을 공감해주셔서 이제야 말씀드립니다. 불편하시지 않다면, 저희 집에서 지내시다가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중년 남자의 말에 라키아는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이안은 이 연극에서 저 얼굴도 만들어 낸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저 혼자만 아는 것이 답답하지만 여기서 머무르는 동안 식‧주가 해결될 기회가 오는 거 같아 그저 가만히 있었다.

 

 중년의 남자는 라키아가 오해하는 줄 알고 다시 말을 이었다.

 “아, 저도 좋은 숙소를 구해드리는 것이 좋겠지만, 이미 좋은 숙소는 지방귀족들과 부유한 이들이 다 차지했습니다. 차지한 그들을 끌어낼 수 있을 만한 매력적인 선택지를 제가 가지고 있지 않아 구하기 힘들 거 같아서 드린 말씀입니다.

 아니면 좋지 않은 숙소에서 알아봐야 하는데 제 은인을 거기로 모시기엔 제가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 저희 집이 다행히도 손님방과 여유분의 방이 꽤 많고 지내시면서 식사도 다 챙겨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여행자이신데 여기를 구경하시는 것도 목적이신 것 같아 제가 잘 아는 사람을 붙여드리려고 해서 제안 드린 건데 불편하시면 거절하셔도 됩니다.”

 

 라키아는 깃털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너무 너무 감동적인 제안이라 제가 잠시 할 말을 잃어서… 지금 머물 곳 없이 거리에서 방황해야 하는데 이런 뜻밖의 좋은 제안을 해주신 것에 대해 너무 감사합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제가 경의 댁에 머무름에 따라 경께서 느끼실 부담감과 책임감 등을 염려하여 단칼에 거절하는 것이 옳으나 지금 제 위치에서 경의 제안이 너무 유혹이 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갈팡질팡 하고 있습니다.”

 

 중년 남자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제겐 오히려 은인이신데 이 정도 쯤이야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수도에 머무르시는 동안 모실 수 있는 기회를 제게 주심으로써 은혜를 갚을 수 있다면 제게 엄청난 영광일 듯싶습니다.”

 

 “그럼… 염치가 없지만 부탁드립니다.”

 

 중년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예예,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라키아는 부끄럼타는 숙녀처럼 눈을 아래로 내리고 코 이하를 깃털 부채로 가리며 말했다.

 “저 근데…”

 

 “?”

 

 라키아는 깃털 부채로 이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아이도 같이 여행 온 제 조카라…”

 

 이 성격 너그럽고 좋은 중년 남자는 다시 웃으며 말했다.

 “예, 괜찮습니다.”

 

 라키아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뒤를 돌며 말했다.

 “그럼 이 도둑을 잡아넣고 갑시다!”

 

 그 때 의식 없이 누워있다 싶은 도둑이 벌떡 일어나더니 도망가기 시작했다. 라키아는 그 모습을 보며 호들갑 떨며 말했다.(물론 그는 너무 당황하여 소리치는 척을 했을 것이다. 그가 도둑을 잡으러 뛰어가는 것은 무척이나 귀찮은 일이기 때문에 적당히 시늉을 하면 어찌됐던 이 중년의 남자의 도움을 받을 자격이 될 터이니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어어어어, 저 도둑이!!”

 

 도둑은 아까 중년의 남자를 피해 달려오던 때와는 다른 속력으로 도망갔다. 아까 그 속력은 중년의 남자를 상대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살아남기 위해 아껴두고 숨겨두었던 힘을 써 가며 속력을 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중년의 남자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물건이 무사하니 굳이 쫓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라키아는 옳다구나 박수를 치며 말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도둑을 꼭 잡아야 하셨다면 수도로 오는데 써 버리고 몇 안 남은 힘으로 죽어라 쫓아갈 뻔 했습니다.”

 

 중년의 남자는 라키아의 말에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은인의 입장에서는 또 그렇겠군요. 하지만 정말 괜찮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키아는 남자의 말에 기뻐하며 말했다.

 “그럼 이제 좀 제대로 된 곳에 쉬고 싶군요. 하도 돌아다니고 당황스런 일을 겪고 나서 긴장이 풀리니 힘이 훅 풀리는군요.”

 

 이안은 그의 말에 나지막히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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