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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49일,
작가 : 에스뗄
작품등록일 : 2017.7.20

평탄한 성공 가도를 걷다 한 순간에 실패자로 전락한 승완. 삶을 포기한 그녀 앞에 홀연히 나타나 자신을 악마라 칭하는 남자. 그런데 이 남자, 망자를 앞에 두고 엉뚱한 말만 한다. "새 인생은 즐겨. 날 유혹하는 건 대환영이고." 49일간 같은 이름의 전혀 다른 인물이 된 그녀. 게다가 전생의 인물들까지 엮여버린 상황에서 승완은 자신과 관련된 무서운 비밀을 발견하는데... (autor_ester@naver.com)

 
020. 나는 네 빛을 보고 찾아왔으니까
작성일 : 17-07-29 20:42     조회 : 239     추천 : 0     분량 : 7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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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당히 살이 오른 하얀 살결은 승완을 머뭇거리게 했다.

  지금 그녀가 하려는 일은 아무 발자국도 찍히지 않은 순백의 눈길에 발을 들이는 것과 같았다. 아니, 그보다 더 잔인한 행위였다.

  그녀는 파르르 떨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전과 다를 것 없어. 그저 한 번 스치는 것뿐이야."

 

  이미 오른손에 쥔 유리는 새어 나온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모든 게 생소했다. 피에 젖은 제 손과 거기서 비롯된 비릿한 쇠 냄새, 아린 통증까지 모든 게.

  손에 쥔 유리 조각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승완의 시간은 밖과 동떨어져 홀로 멈춘 듯 보였다.

  그러나 이내 그녀의 시간은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뭔가에 홀린 듯 손목을 향해 내려갔다.

 

 "뭐 하는 짓이야?"

 

  순식간이었다. LED 조명이 팍, 깨지며 어둠이 내려앉더니 승완의 주변에 보랏빛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불꽃의 중심에는 이준이 앉아 승완을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껏 본 적 없는 냉랭한 눈빛이었다.

 

 "죽기라도 할 생각이야?"

 

  이준의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승완의 유리 칼날이 향하던 하얀 손목으로 내려갔다.

  얇디얇은 선 하나에서 몽글몽글 새어 나오는 피는 붉고 따뜻했다. 다만, 그것은 승완의 것이 아니었다.

  이준은 제 손등에서 흐르는 피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1초만 늦었어도 이 피는 다른 이로부터 비롯되었으리라.

  그러나 이미 먹물을 푼 물처럼 탁한 색으로 물든 승완의 눈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어서 찔러."

 

  승완의 입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소리는 그녀의 것이되, 소리를 내는 자는 그녀가 아니었다.

  메마른 표정을 한 승완이 다시 손을 들어 올렸다.

 

 "듣지 마."

 

  커다란 손이 승완의 두 귀를 막았다.

  보랏빛이 도는 깊은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리는 다갈색 눈동자를 집요하게 쫓았다.

  가느다란 목에 그려진 백조가 연신 날갯짓을 하며 보라색 물방울을 튀겨댔다.

 

 "백승완, 그 소리 듣지 마."

 

  탁한 색으로 풀렸던 승완의 눈동자가 점차 제 모양을 찾기 시작했다.

  이준의 손은 결코 따뜻하지 않았지만 승완은 그의 온기를 느꼈다.

  여린 몸을 지탱하던 단단한 힘이 빠져나가려 하면서 자꾸만 눈이 감겼다.

  그러자 이준이 피가 흐르는 손으로 승완의 목을 붙잡아 벽으로 팍 밀쳤다.

 

 "커헉!"

 

  점점 더 강해지는 힘이 승완의 목을 무자비하게 조였다. 턱밑에서 막힌 날숨이 밖으로 나가려 안간힘을 썼다.

  죽음의 문턱에 선 승완의 눈에 비친 것은 한 점의 온기도 발견할 수 없는 냉랭한 눈빛이었다.

  혹한의 눈보라처럼 차디찬 눈동자에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승완이 비쳤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의 목을 휘감고 버티는 매캐한 연기, 악령이 비쳤다.

 

 "크아아악!"

 

  이준의 손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견디지 못한 악령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의 형상을 만든 새까만 연기가 보기 흉하게 찢어진 입을 쩍 벌렸다.

 

 "천한 네 놈이 신을 등에 업으니 뭐라도 된 양 착각하는구나."

 

  승완의 목소리에 거칠게 갈라진 악령의 소리가 덧입혀져 그녀의 입을 빌려 나왔다.

  사그라지지 않는 불꽃으로 악령을 단단히 붙잡은 이준의 머릿속에 조금 전까지 자신과 함께 있었던 남자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 여자는 네 정체를 알고 있나?'

 '......'

 '하긴, 알았으면 이렇게 무방비하게 있지 않겠지.'

 

  남자의 손에서 푸른 전기로 이뤄진 공이 하늘로 튀어 올랐다가 다시 그의 손에 안착했다.

 

 '악령의 가장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을 지키느라 밤낮없이 바쁘겠군.'

 

  한쪽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며 웃는 것이 마치 고소해 죽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이미 한 번 죽은 몸이니 더 죽을 일은 없겠지만.

  그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동시에 푸른 공이 파지직 소리를 내며 구름을 뚫을 듯한 기세로 빠르게 치고 올라갔다.

 

 '신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니까. 이런 애송이에게 악령을 누를 힘까지 주다니.'

 '그러는 너는? 너도 신의 변덕이란 특혜를 입은 몸 아닌가?'

 

  이준은 오히려 제 앞에 선 남자의 의중을 알고 싶었다. 의뭉스러운 표정을 하고 시도 때도 없이 제 앞에서 얼쩡거리는 남자는 아군도, 적군도 아니었다.

  이준의 물음을 들은 남자가 피식, 웃자 하얗고 푸른 전기가 서로 얽히며 그의 몸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보통 인간이었다면 2초도 견디지 못하고 죽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난 너와 급이 다르다고 했을 텐데.'

 

  대체 무엇으로 그 변덕스럽고 이기적인 신의 눈에 들었는지 몰라도, 남자의 눈에 이준은 새파란 애송이일 뿐이었다.

  신을 향한 원망도, 무언가를 지키고 싶은 간절함도, 그리고 그것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도 남자가 훨씬 강했다. 그는 하나의 집념이자 집착의 결정체였다.

 

 '혹시 모르지. 죽었다 깨어나면 내 발끝에는 미칠지도.'

 

  그 순간, 이준의 목에 새겨진 백조가 빛을 발했다.

  승완이 위험에 처했음을 감지한 이준이 인사도 없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바람에 사그라지는 보라색 불씨만이 그가 조금 전까지 이곳에 머물렀음을 알게 했다.

  구름을 뚫고 하늘에서 내려온 푸른 공을 잡아챈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이것 봐. 이래서 네가 안 된다는 거야.'

 

  이준의 손에, 정확히는 그의 분노 때문에 강렬히 타오르는 불꽃에 붙잡힌 악령이 크르르르, 적대감을 드러냈다.

 

 "대체 무엇이 신을 불러낼 만큼 간절했지?"

 

  뭉친 연기가 만들어낸 악령의 입이 기분 나쁘게 찢어졌다.

  다른 누군가가 봤다면 그 자리에 주저앉을 만큼 기괴한 형상 앞에서도 이준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무감한 태도를 유지했다.

 

 "내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던 그 오만방자한 신을 불러낸 게 뭐냔 말이다."

 "네 기도가 그만큼 하찮았나 보지."

 

  귀찮다는 듯, 고개를 비스듬히 내린 이준의 입가에 비릿한 비소가 맺혔다. 태연하기만 한 그의 태도는 도리어 악령을 부추겼다.

 

 "크르르르, 그래 봐야 네 놈들은 신에게 이용만 당하고 어둠 속에 재로 던져질 뿐."

 

  이준의 관심은 악령 따위가 아니었다. 그 빌어먹을 놈에게 잡아 먹힐 뻔한 승완의 영혼이 혹 다치지는 않았는지가 더 중요했다.

  혹 숨을 쉬지 못해 해가 될까, 가느다란 목을 으스러지라 쥐고 있던 손이 조금 느슨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악령이 킬킬, 웃으며 빈정거렸다.

 

 "이 여자가 그리도 맛있나? 혼자만 맛보지 말고 사이좋게 나눠먹... 켁!"

 

  펑, 소리와 함께 이준의 손에서 거대한 화염이 터져 나왔다.

  보라색을 넘어 시퍼렇게 타오른 불꽃이 입을 벌렸다. 마력으로 지핀 불이 넘실대며 악령을 집어삼키는 동안 매캐한 연기와 보랏빛 불씨가 뒤엉켜 튀어 올랐다.

  크아아앙, 하는 괴성을 끝으로 악령의 검은 연기는 입을 다물고 푸른 화염 안으로 사그라졌다.

 

 "이런, 세기 조절을 잘못했군."

 

  순식간에 악령을 집어삼킨 거대한 불은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손에 묻어난 그을음을 가볍게 털어낸 이준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차라리 소멸시켜달라고 할 정도로 서서히 괴롭혔어야 했는데."

 

  칠흑같이 검은 눈동자에서 냉소적인 보라색 빛이 번뜩였다.

  그가 손을 내려 미끄러지는 승완의 등을 받쳤다. 힘없이 수그러든 그녀의 목에는 붉은 손자국이 선명했다.

 

 "아..."

 "정신이 들어?"

 

  악령에게 빼앗겼던 눈동자가 제 색을 찾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준은 마른 입술을 축이며 승완이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유리 파편과 핏자국으로 엉망이 된 바닥, 그 위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녀 자신, 그리고...

 

 "조이, 너 손이..."

 "아, 이거? 별거 아니..."

 "내가, 내가 그랬지?"

 

  승완은 이준이 뒤로 물리는 손을 낚아챘다. 피가 맺힌 그의 손을 붙잡은 승완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녀 역시 유리 조각에 마구 베여 피가 나면서 이준의 손등만 아프게 쳐다봤다.

 

 "아니."

 "내가 널... 흐으..."

 

  몸을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면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모습은 거의 기절할 지경에 가까웠다.

  이준의 마음이 급해졌다. 악령을 없애는 게 끝이 아니었다. 악령에 사로잡혀 제가 한 일을 기억하고 있는 승완이 더 큰 문제였다.

 

 "잠깐, 백승완. 진정해. 이건 네가 그런 게 아니야."

 "내가 한 거야. 내가 또..."

 

  이준은 생긴 것과 달리 우는 여자를 어찌 달래야 할지 아는 게 없었다.

  아니, 알았다 해도 지금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승완을 품에 안고 등을 쓸어주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한숨을 내쉬는 그의 귀에 인기척이 들렸다. 누군가 이곳을 향해 오고 있었다.

  이준이 승완을 안은 그대로 무릎을 세워 일어섰다. 그가 한걸음 앞으로 발을 내딛자 순식간에 두 사람이 선 공간이 바뀌었다.

 

 "이렇게 데려올 줄은 몰랐는데."

 

  이준의 성격을 반영한, 화이트와 블랙으로 통일된 세련된 인테리어가 눈에 띄는 오피스텔이었다. 자질구레한 것 없이 딱 필요한 물건만 제자리에서 주인의 손길을 기다렸다.

  이준은 여전히 울음을 토해내는 승완을 침대에 앉히고 자신은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만 울어. 응?"

 

  이 작디작은 여자가 떨구는 눈물이 눈에 박힐 때마다 가슴이 저릿하고 갑갑했다. 그렇다고 차마 손을 뻗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줄 수도 없었다.

  그 익숙지 않은 감정에 이준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악령을 한 손으로 때려잡은 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미안해. 미안해."

 

  승완 역시 계속 차오르는 눈물을 막을 재간이 없었다.

  저 대신 피를 흘린 이준에게 미안해서, 악령에게 사로잡혀 제 것도 아닌 몸에 또 실수를 저지를 뻔한 자신이 한심해서,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있는 두 개의 마음은 차마 서로에게 닿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손 줘봐."

 

  구급상자를 가져온 이준이 승완의 손바닥을 가져갔다. 그녀의 손바닥을 펼치자마자 이준은 그만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깨진 유리 조각을 아무렇게나 힘주어 잡은 바람에 손바닥의 곳곳이 날카로운 단면에 스쳐 흘러나온 피로 얼룩덜룩했다.

  차라리 깊더라도 단번에 선을 그은 이준의 손등이 보기 좋을 지경이었다.

 

 "너는?"

 "난 인간이 아니잖아. 금방 나아."

 

  알코올로 피를 닦아내는 이준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승완의 다른 손이 치맛자락을 움켜쥐었다.

  자칫하면 다른 사람의 몸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길 뻔했다. 겨우 49일 동안 몸을 빌려 사는 세입자 주제에 말이다.

  악령은 그녀가 부모님과 유혁으로 인해 약해진 틈을 탄 모양이다. 그렇다면 지난 생에서도 그녀는 수도 없이 악령에게 사로잡혔던 것일까?

  제 의지가 아닌 타인, 아니, 다른 영혼에 의해 제 몸과 정신을 망가뜨렸다는 사실에 승완은 몸을 떨었다.

  게다가 악령에 사로잡혀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던 자신 때문에 다친 이준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그렇게 미안해?"

 

  승완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소독을 마치고 연고를 바르며 이준이 물었다.

  승완은 과연 고개를 숙이고 치료에 집중한 그가 볼지는 몰랐지만,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정말?"

 

  다시 한 번 끄덕, 고개가 크게 아래로 내려갔다.

  승완은 볼 수 없는 이준의 입술이 매끄럽게 위로 올라갔다.

 

 "그럼 밖에서 속살거리는 소리 듣지 마."

 

  새하얀 붕대가 둘둘 풀려 자그마한 손에 둘렸다. 이준은 그 새하얀 모습이 승완과 제법 닮았다고 생각했다.

 

 "네 안의 소리를 들어."

 

  그가 고개를 들어 본 승완의 얼굴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보니 어쩐지 안심이 되어 한숨을 닮은 웃음을 흘린 이준이다.

  둘둘 말린 하얀 붕대의 끝을 가위로 자른 이준이 붕대에 감긴 손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그의 손에서 시작된 보라색 파동이 붕대 안에 스며들었다.

 

 "혹시 네 목소리가 안 들린 땐, 이것만 기억해."

 

  다시금 이준의 고개가 승완을 향해 들렸다. 그녀를 향해 달싹이는 붉은 입술이 물을 먹은 꽃잎처럼 촉촉이 빛났다.

  승완은 마치 홀린 듯 그의 입술에 시선을 고정하고,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너는 반짝반짝 빛나."

 

  승완의 눈이 꽉 찬 보름달처럼 둥실 떴다.

  뭐랄까, 제 손안에 스며든 빛의 파동이 심장까지 닿은 기분이었다. 그 느낌이 너무 현실성 없어서 그의 말을 진실이라고 믿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거짓말이나 농담이라기에는 이준의 입술 끝에 매달린 미소가 너무나 따스했고, 잔잔히 열린 그의 눈빛이 너무나 진지했다.

 

 "내 말 믿어. 나는 네 빛을 보고 찾아왔으니까."

 

  이준이 몸을 일으켜 승완의 옆에 앉았다. 침대가 내려앉는 느낌이 지금 그녀의 심장이 덜컹거리는 것과 무척이나 닮아서 승완은 혼란스러웠다.

  자신에게서 빛이 난다는 말이 이토록 기쁘고 눈물 나는 말인지 몰랐다. 어쩌면 이 심장 박동도 단순히 그의 말에 반응한 것일지도 모른다.

  태어나 처음 듣는 말. 그러나 너무나 듣고 싶었던 말이라서, 그토록 간절했던 제 존재를 인정받는 기분이어서 설렜다.

 

 "그리고 네가 부정하는 너의 존재가 누군가에게는 구원일 수도 있다는 것도."

 

  이준의 눈동자 색이 깊어졌다. 짙은 눈동자 속 어느 깊은 곳에 숨겨둔 무언가가 반짝 빛을 냈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다. 이준이 눈을 감았다 뜨며 희미한 빛의 흔적까지 감추었다.

 

 "그래도 못 믿겠어?"

 

  혼란스러움과 기쁨이 뒤엉킨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입술을 깨무는 승완을 본 이준이 그녀의 손을 잡아 제 심장 위에 가져다 댔다.

  두근두근, 승완의 것과 똑같은 움직임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내 심장을 뛰게 해."

 

  손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그의 진심에 승완은 눈을 감았다. 심장에 의해 뜨겁게 달궈진 눈물이 복숭앗빛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준은 제 앞의 작은 여인의 눈꺼풀 위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눈물을 머금어 촉촉이 젖은 채 파르르 떠는 속눈썹이 그의 입술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눈물마저 달콤해서 날 안달 나게 해."

 

  이준의 입술이 떨어지자 승완이 천천히 눈을 들어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

  이준은 작게 떠는 그녀를 향해 미소 지었다. 어쩐지 가슴이 아픈 미소였다.

  하지만 승완은 더는 그의 미소를 생각할 수 없었다. 시원한 스킨 향이 가까워지나 싶더니 그녀는 이미 이준의 품 안에 폭 안긴 채였다.

 

 "네가 이런 여자야."

 

  승완의 귀가 이준의 심장 위에 닿았다. 심장은 그의 마음을 그녀에게 들려주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두근두근, 조금 빠른, 그러나 규칙적인 심장 박동을 듣고 있자니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차가운 손과 달리 제법 따스한 품 안이 몸을 느른하게 했다.

  이준이 승완의 등을 위아래로 천천히 쓸었다. 그 나른한 움직임에 승완은 저도 모르게 잠이 묻은 한숨을 내뱉었다.

 

 "승완아, 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야."

 

  꿈벅꿈뻑, 억지로 들어 올리는 눈꺼풀이 무거웠다. 긴장으로 굳었던 몸이 따스한 기운에 녹아 풀어지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승완은 이것 역시 이준의 마법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마법이라도 좋으니 이 순간이 꿈이 아니었으면 했다.

  그날 승완은 이준의 품에 안겨 오랜만에 깊은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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