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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49일,
작가 : 에스뗄
작품등록일 : 2017.7.20

평탄한 성공 가도를 걷다 한 순간에 실패자로 전락한 승완. 삶을 포기한 그녀 앞에 홀연히 나타나 자신을 악마라 칭하는 남자. 그런데 이 남자, 망자를 앞에 두고 엉뚱한 말만 한다. "새 인생은 즐겨. 날 유혹하는 건 대환영이고." 49일간 같은 이름의 전혀 다른 인물이 된 그녀. 게다가 전생의 인물들까지 엮여버린 상황에서 승완은 자신과 관련된 무서운 비밀을 발견하는데... (autor_ester@naver.com)

 
013. 내 눈엔 너밖에 안 보이는데
작성일 : 17-07-29 20:20     조회 : 231     추천 : 0     분량 : 7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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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딱딱히 굳어버린 승완을 내려다보는 이준의 눈에 보랏빛 이채가 서렸다.

  비쩍 말랐던 전생에서와 달리 지금의 승완은 육체로 보나 영혼으로 보나 토실토실 보기 좋게 살이 올라있었다.

 

 '젠장.'

 

  비록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 그의 발톱에 붙들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져보고 싶을 만큼 보드라운 살결과 그 위로 톡 튀어나온 도톰한 체리 빛 입술이 그의 시각을 괴롭혔다.

  이대로 1cm만 더 내려가면 젤리처럼 말랑한 입술을 단숨에 먹어버릴 수 있으니, 이준은 인내심을 쥐어짜느라 입술이 바짝 타들어 갔다.

 

 "저, 저기..."

 

  타들어 가는 입술을 혀로 축이는 이준의 귀에 승완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지나가는 실바람에 파르르 떠는 그녀의 풍성한 속눈썹이 이준의 눈에 포착되었다.

  갈피를 잡지 못한 눈동자가 이리저리 헤매는 모습이 딱 날 잡아먹어 주세요, 하는 것 같았다.

 

 '이만하면 고문 수준이군.'

 

  그의 몸속에서 차갑게 식었던 피가 뜨겁게 끓어 소용돌이쳤다.

  이렇게 된 이상 그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악마이기 전에 남자였고, 악마이기에 더더욱 승완의 영혼에 끌렸다.

  그가 손을 뻗어 승완의 뒤통수를 휙, 잡아당겼다.

 

 "어, 어...!"

 "쉿."

 

  한계치로 확장된 검은 동공이 빠르게 흔들렸다. 승완의 머리를 받친 이준의 손가락이 그녀의 목덜미를 달래듯 어루만졌다.

  그러자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듯, 승완의 눈에서 빛이 바래고 뻣뻣했던 목에서 힘이 풀렸다.

  이준의 벌어진 입술 사이로 잘 벼려진 검처럼 날카로운 송곳니가 승완의 입술을 향해 예리한 각을 세웠다.

  달콤한 향내를 내뿜는 입술은 그것을 향해 내려가는 1초의 순간에도 조바심이 나게 했다.

 

 "백승완 씨!"

 "백승완 씨, 들리면 대답하세요!"

 

  두 사람의 입술이 맞닿기 직전, 이준의 움직임이 가까스로 멈췄다.

  가까운 곳에서 승완을 찾는 소리가 바람결을 타고 닿았다. 회사 무리가 부른 구급대원이었다.

 

 "하아..."

 

  깊은 분노를 담은 묵직한 한숨이 하얗고 가느다란 목덜미로 떨어졌다.

 

 "아... 어? 으아!"

 

  뜨거운 숨결이 닿자마자 눈동자에 빛이 돌아온 승완이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서 파드득 떨어졌다.

  제게서 도망치는 그녀를 바라보는 이준의 턱이 단단해졌다.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로 위치를 가늠한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 어디 가?"

 "내가 여기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조금 전까지 잡아 먹힐 뻔한 건 잊은 것인지, 승완이 급히 이준의 바짓자락을 붙잡았다.

  하지만 그녀 역시 이준과 같은 생각이었다. 구급대원도 못 찾은 승완 곁에 그가 있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준의 바짓자락을 붙잡은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음에도 쉽사리 손을 떼지 못했다.

 

 "어? 저기 있다!"

 

  마침내 승완을 발견한 사람이 크게 소리쳤다.

  승완이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린 사이, 이준은 사라졌다. 그가 함께 있었던 흔적이라고는 타고 남은 보랏빛 불씨뿐이었다.

  그 불씨가 왜 못내 아쉬운 것인지, 승완은 이유를 알지 못했다.

 

 "백승완 씨 맞죠?"

 "... 네."

 "그런데 방금까지 누구랑 같이 있지 않았어요?"

 

  승완을 향해 달려온 구급대원들이 그녀의 발아래 들것을 펼쳤다.

  그녀를 처음 발견한 대원이 이상한 듯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아뇨. 쭉 혼자 있었어요."

 

  구급대원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와중에 승완은 그들에게 성실히 답해주면서도 눈으로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이준을 찾았다.

  어째서인지 꼭 그가 근처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다행히 발목 인대가 늘어난 것 외에는 큰 부상이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다행이군요."

 "그나저나 의사 생활 5년 만에 이런 환자는 처음 봅니다."

 

  산 아래에 위치한 병원 응급실의 환자는 주말이면 열에 네, 다섯은 실족한 등산객이 차지했다.

  그래서 당직 의사는 구급대원에게서 전화로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었다.

 

 "구급대원 말로는 추락 지점에서 50m나 떨어진 절벽에서 발견했다던데, 그 정도면 사망 상태로 발견되어도 크게 이상하지 않거든요."

 

  그 사실은 의사가 아닌 일반인이 봐도 크게 다르지 않기에 이준은 입을 다물었다.

 

 "아무튼 천만다행이죠. 이런 걸 두고 신의 가호라 부르나 봅니다."

 

  젊은 의사는 떡진 머리에 다크서클이 뺨까지 내려온 얼굴을 하고도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아무리 무신론자라 할지라도 응급실에 온종일 앉아있다 보면 신을 찾기 마련이다.

  비록 신이라 불리는 그는 단 한 번도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을지라도.

  어쩌면 그는 생과 사의 문턱에서 이쪽으로 내딛는 발길 하나, 불씨처럼 사그라지다 급히 토해내는 숨결 하나로 답했을지 모른다.

 

 "아무튼, 오늘 돌아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보시다시피 만실이거든요, 라고 말하는 의사의 다크서클이 더 짙어진 듯한 건 착시현상이리라.

  실제 환자인 승완은 멀찍이 떨어져 의사와 대화하는 이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그녀의 신경은 온통 그의 머리에 가 있었다. 조금 전 손톱만 한 나뭇잎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뭇잎뿐만 아니었다. 그의 옷에는 크고 작은 부스러기와 흙이 묻어있었다. 아마도 몸을 던져 그녀를 찾았을 때 데려온 아이들일 것이다.

 

 "떼어주고 싶다."

 

  승완이 엄지와 검지를 맞잡아 주욱 끌어당겼다.

  그때 촤락, 하고 커튼 걷히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다 죽어갈 줄 알았더니, 괜찮은가 보네."

 

  다른 이들처럼 집으로 돌아간 줄로만 알았던 수빈이었다.

 

 "주임님?"

 "그냥 있어요. 다리 다친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려고."

 

  급히 몸을 움직이는 승완을 저지한 수빈이 물병을 건넸다. 금방 구입한 병 표면에는 불투명한 물기가 어려있었다.

 

 "고맙습니다."

 "내가 아니라 세찬 씨가 주는 거예요."

 "아, 네."

 

  그럼 그렇지.

  승완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수빈이 친히 이곳까지 납신 것도 놀라운데, 물까지 사다 줄 리는 없었다.

  그래도 마침 목이 말랐던 차에 물을 가져다주었으니 승완은 수빈과의 악연은 잠시 접어두고 고마움을 표현하기로 했다.

 

 "백승완 씨."

 

  그러나 수빈의 생각은 승완과 다른 모양이다.

 

 "백승완 씨는 똑똑한 사람이죠. 한 번만 말할 테니 잘 들어요."

 

  수빈이 기다란 팔을 겹쳐 안았다. 뚜껑을 돌려 여는 승완의 몸을 위에서부터 찬찬히 훑는 그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녀는 절벽에서 떨어져 구조된 사람 치고 특별히 다친 곳 없이 멀쩡했다. 누군가는 이를 기적이라 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소름 끼칠 만큼 무서운 일이었다.

  특히 수빈에게는 더더욱.

 

 "백승완이란 이름으로 사고 치는 건 한 사람만으로 족해요."

 

  자신의 이름이 가진 두 가지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아는 승완의 눈에 수빈의 얼굴이 비쳤다. 그녀는 이름 석 자를 입에 담는 것조차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참 감정을 숨길 줄 모르는 사람이다. 아니, 어쩌면 감추려 하지 않는 건가?

 

 "그러니 회사 오래 다니고 싶으면 적당히 해요."

 

  높지도 낮지도 않은 담담한 어조였다.

  의도를 바로 드러내는 표정과는 반대로, 많은 생각을 눌러 담은 한 문장. 그 속에 심어놓은 의미를 모르지 않는 승완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기류가 하얀 커튼으로 만든 얇은 벽 안에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실례할게요."

 

  말끔한 얼굴로 싱긋, 미소 지으며 커튼을 젖힌 사람은 이준이었다.

  그가 얇은 벽을 쳐내자 묵직하게 굳었던 공기가 자잘히 부서져 흩어졌다. 승완은 저도 모르게 꾹 참고 있던 숨을 토해냈다.

 

 "집에 가도 된다네요."

 "정말요?"

 "대신 당분간 발목 깁스는 하고 다녀야 해요."

 

  대리로 돌아온 조이, 이준은 묘하게 달랐다.

  악마로서의 조이가 제멋대로에 관능적이라면 이준은 제멋대로라기보다는 당당하고 신사적이며, 승완과 약간의 선을 두는 느낌이 풍긴다.

  승완은 아까 산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비교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손잡아요."

 

  이준이 승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바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승완은 이준의 손이 제법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승완이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자 이준이 그녀의 손을 잡아 제 앞에 세웠다. 승완의 가는 다리에 매달린 반깁스가 영 불편해 보였다. 역시나 승완의 입술이 비죽 튀어나왔다.

 

 "이런 거 안 해도 되는데."

 "아픈 척이라도 해."

 

  소곤소곤, 이를 악물고 나누는 대화는 온전히 둘만의 것이어서 한 발짝 떨어진 수빈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의 머릿속은 중요한 일로 꽉 차서 두 사람의 말소리는 들어가지도 않을 터였다.

 

 "그럼 전 가볼게요. 월요일에 봐요, 백승완 씨."

 "네."

 

  다른 사람에게와 달리, 수빈은 승완의 이름은 꼭 성까지 붙여 불렀다. 너와는 친해지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경계심이 느껴졌다.

  승완 역시 그녀에게 앙갚음했으면 했지, 친해지고 싶은 마음 따위 코딱지만큼도 없었다. 여기까지 일부러 찾아와준 것에 대해 고맙다는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를 내며 멀어지는 수빈을 보던 승완이 고개를 돌렸다. 딱 이 정도였다. 두 사람의 사이는.

 

 "어? 웬 차?"

 "오빠 차 뽑았다."

 

  이준의 부축으로 절뚝거리는 연기를 선보이며 병원 밖으로 나온 승완은 눈앞에서 삐빅, 소리를 내며 불을 밝히는 검은 세단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매끄럽게 잘 빠진 몸체 하며, 번쩍이는 날카로운 눈매가 딱 검은 표범을 연상시켰다. 고갯짓으로 차를 가리키는 이준의 어깨가 한껏 치켜 올라갔다.

 

 "오오, 돈 좀 있는 오빠들만 탄다는 바로 그 차잖아?"

 "이렇게 능력 있는 남자다, 내가."

 

  씨익, 입꼬리를 올린 이준이 보조석 문을 열어 승완을 에스코트했다.

  그녀가 머리를 다치지 않도록 천장에 얹은 이준의 커다란 손을 보며 승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오묘한 기분을 느꼈다. 예전에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체한 듯 속이 울렁이면서도 가슴께가 간질간질한, 생소한 감정이었다.

  차 문에 손을 기대고 선 이준이 승완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웃자, 그 정체불명의 감정의 폭은 급격히 증폭되었다.

 

 "이제 좀 반했나?"

 "아니거든."

 "흐음, 조금 더 분발해야겠네."

 

  이준의 중얼거림을 들은 승완의 얼굴에 장난스러운 빛깔이 번졌다가 곧 사라졌다. 얼굴도 뜨겁고, 머리까지 어지러운 게 아무래도 체한 것 같았다.

  두 사람을 태운 세단은 미끄러지듯 병원을 빠져나와 어둠이 막 내리기 시작한 도로를 달렸다.

 

 "그래서 걔가 나보고 회사 오래 다니고 싶으면 적당히 하라는 거 있지? 정말 어이가 없어."

 

  불편한 속을 달래기 위해 말을 꺼낸 승완이 입술을 비죽 내밀며 불쾌한 기분을 드러냈다.

 

 "그건 널 걱정해서 한 말 아냐?"

 "걱정? 여수빈이 나를? 걔가 나한테 한 짓을 몰라서 그래, 네가."

 "내가 꼭 그 여자에 대해 알아야 하나?"

 "뭐? 넌 무슨 말을..."

 "내 관심사는 오로지 백승완뿐이라서..."

 

  운전하느라 내내 앞을 향했던 이준의 얼굴이, 그의 짙은 눈매가 옆에 앉은 여자를 향했다.

 

 "내 눈엔 너밖에 안 보이는데."

 

  매끄럽게 올라가는 입술 끝이 마치 그들이 탄 세단의 몸체처럼 잘 빠진 선을 그렸다. 잘 벼려진 검처럼 날카로운 선의 끝이 승완의 심장을 쿡, 찔렀다.

  그러자 쿵, 하고 내려앉은 심장이 빠르게 운동을 시작했다. 눈앞의 세상이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일렁이자 이유를 모르는 승완의 마음이 급해졌다.

 

 "야아, 아, 앞에 봐."

 "자동운전 중이라 괜찮아."

 "자동운전?"

 

  이준은 아예 핸들을 붙잡고 있던 손을 떼어 핸들 위에 얹었다. 마치 팔베개를 하듯 비스듬히 몸을 기댄 모양이 마치 검은 표범이 바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듯하다.

  아니, 표현이 잘못되었다. 나른하게 늘어진 몸과 반대로 그의 눈동자는 형형한 빛을 내뿜었다. 마치 사냥감을 발견한 표범의 눈처럼.

 

 "너한테 멋있어 보이려고 운전하는 건데, 정작 내가 널 못 보잖아."

 

  정말 눈으로 키스하는 장인이 있다면, 눈앞의 이 남자가 단연 으뜸이렷다.

  이준의 눈길이 닿는 곳 하나하나가 마치 그의 입술이 닿는 것처럼 찌릿거렸다. 씨앗에서 뿌리가 나와 땅속으로 뻗어 나가는 듯한 야릇한 느낌이 심장에서부터 시작되어 손끝, 발끝으로 퍼져나갔다.

  발끝까지 보라색 불꽃에 화르르 타는 느낌은 낮에 이준의 입술이 제게 내려오던 그 순간이 떠올리게 했다. 승완은 주먹을 꽉 쥐고 빽, 소리를 질렀다.

 

 "아, 얼른 앞 보라고!"

 "싫어."

 "아아, 제발 말 좀 들어라. 이 악마야."

 

  쿡쿡, 승완 들으란 듯이 웃음을 흘린 이준이 못 이긴 척 핸들을 잡았다.

 

 "크흠, 아무튼, 그 계집애는 말을 해도 꼭 그따위로 한다니까."

 "그러게. 그건 여 주임이 잘못했네."

 

  가볍게 핸들 쥔 이준이 느른하게 웃음을 흘렸다. 백미러를 통해 흘러내리는 그의 미소를 지켜보는 승완의 눈빛이 어지러이 흔들렸다.

 

 "저기. 하얀 승용차 뒤에 세워주면 돼."

 

  주인을 닮아 날쌘 세단은 승완을 위해 세상의 그 어떤 차보다도 부드러운 몸짓으로 멈춰섰다.

  선선한 저녁 바람이 얼른 차에서 내린 승완의 얼굴을 식혀주었다. 그래서일까, 그녀가 어느새 차에서 내려 제 앞에 선 이준을 향해 돌아서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오늘, 고마웠어."

 "정말?"

 "응. 오늘은 악마 같지 않았어."

 

  피식, 고개를 살짝 숙여 웃음을 떨군 이준이 손을 뻗어 승완의 팔을 잡아끌었다. 발목에 묵직한 깁스를 단 승완은 제 의지와 상관없이 절뚝거리며 그에게로 끌려갔다.

  성큼 가까워진 이준의 향수 냄새가 콧속으로 들이치자 괜찮아진 줄 알았던 승완의 심장이 다시금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지러이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가 불안한 빛을 내비쳤다.

  승완은 이준에게 잡히지 않은 팔을 뻗어 그의 가슴을 밀어내려 했다. 그러나 여자로서 은근한 힘으로 무장한 남자를 이기는 것은 무리였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야, 너...!"

 

  미끄러지듯 아래로 내려간 이준의 얼굴이 승완의 손목에 닿을 무렵, 그의 머리카락이 그녀의 팔을 스쳤다. 간지러움이 부끄러움으로 바뀌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보드라운, 그러나 단단한 이준의 입술이 승완의 얇은 손목을 덮었다. 겨우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도톰한 감촉이 주는 생경한 충만감에 그녀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오늘만 벌써 세 번째. 이준으로 인해 그녀의 몸이 자꾸만 이상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온몸을 뒤덮는 짜릿함은 조선 시대 여인과 다름없는 승완으로 하여금 부끄러움에 입술을 깨물게 했다.

  한없이 여린 그의 입술에 비해 자꾸만 도망치려는 손목을 잡은 힘은 은근하면서도 묵직했다. 이준의 입술은 하얀 손목 위에서 제법 오래 머물렀다.

 

 "오해하지 마. 주문 강화한 거야."

 "......"

 "원래 사심이 약간 담겨줘야 약발이 좋거든."

 

  마치 맛난 음식을 맛본 듯 혀로 제 입술을 핥으며 눈을 찡긋한 이준을 본 승완은 저도 모르게 몸이 굳어버렸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건만, 몸의 반응이 이전과는 달랐다. 그가 쳐놓은 덫에 걸린 기분이다.

 

 "내일 약속 잊지 않았지?"

 

  다소 쌀쌀한 저녁 바람에 이준이 승완의 옷깃을 여미며 물었다. 혼란스러운 승완과 달리 생글생글, 기분이 좋기만 한 이준이었다.

 

 "예쁘게 입고 나와."

 

  어울리지 않게 우유처럼 하얀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는 마치 첫 데이트를 기대하며 설레는 남자친구 같았다. 승완은 처음 보는 순수한 미소였다.

  그러나 승완은 그런 이준을 모른 척 뒤로 하고 내달리듯 빠른 걸음으로 아파트에 들어섰다. 안전지대에 들어선 그녀의 눈이 그제야 새초롬하게 위로 올라갔다.

 

 "예쁘게는 무슨. 내가 자기랑 진짜 데이트라도 하는 줄 아나 봐."

 

  화가 난 듯 비죽 튀어나온 입술은 그러나 가슴께를 장악한 간지러움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슬며시 위로 올라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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