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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49일,
작가 : 에스뗄
작품등록일 : 2017.7.20

평탄한 성공 가도를 걷다 한 순간에 실패자로 전락한 승완. 삶을 포기한 그녀 앞에 홀연히 나타나 자신을 악마라 칭하는 남자. 그런데 이 남자, 망자를 앞에 두고 엉뚱한 말만 한다. "새 인생은 즐겨. 날 유혹하는 건 대환영이고." 49일간 같은 이름의 전혀 다른 인물이 된 그녀. 게다가 전생의 인물들까지 엮여버린 상황에서 승완은 자신과 관련된 무서운 비밀을 발견하는데... (autor_ester@naver.com)

 
010. 나랑 데이트하자
작성일 : 17-07-29 20:11     조회 : 220     추천 : 0     분량 : 7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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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 - 35)

 

 "우세찬 씨."

 

  또 시작이다.

  칸막이 너머로 수빈이 세찬에게 다가가는 걸 본 승완은 조용히 두 손을 모으고 세찬을 위해 묵념했다.

 

 "지금 바빠요?"

 "네? 아, 그게..."

 

  아니나 다를까. 한 손에 자료집을 들고 사르르, 녹는 눈웃음을 치는 수빈의 품새가 예사롭지 않다.

  세찬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키며 흘끔, 벽에 걸린 시계로 향했다.

  5시 20분. 퇴근을 40분 남겨둔 시각.

  아니, 이제는 퇴근 시간을 가늠하지도 못하게 되겠지.

 

 "나 좀 도와줄래요?"

 

  신입 사원 주제에 상사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용자가 얼마나 될까?

  세찬은 작업 중이던 엑셀 파일의 저장 버튼을 누르고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빈이 당장 손에 든 자료집을 세찬의 손에 넘겼다.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묵직한 무게감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내일 외부 회의 주제에 맞는 챕터를 표시해놨어요. 원 회의 자료 파일에 이것들 더해서 내일 오전 9시까지 인원수대로 회의실 책상에 올려놓으면 돼요."

 

  그 말인즉슨 3일 연속 야근 당첨. 그것도 양을 보아하니 자정까지 사무실의 지박령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세찬이 지.못.미.'

 

  동기의 신세를 불쌍히 여긴 승완의 묵념이 길어졌다.

  한때 그녀는 야근 수당으로 부자가 되어볼까, 하는 미련한 꿈을 가져본 적이 있다. 그야말로 미련하기 짝이 없는 꿈이었다.

 

 "흐아아!"

 

  2시간 뒤, 승완은 컴퓨터를 향했던 눈을 천장으로 올리고 기지개를 켰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야근을 삼시 세끼 먹듯 일삼던 그녀의 습관은 신입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세 번씩 교차 확인했으니 됐어."

 

  한 번도 하기 힘든 교차 확인(Cross-Check)을 세 번씩이나 했으니 일이 늦어지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녀가 이 시간까지 남은 이유는 그뿐이 아니었다.

 

  똑똑-

  탕비실에 들렀다 나온 승완은 제자리로 돌아가는 대신 앞자리와 경계를 나눈 칸막이를 손으로 두드렸다.

  그녀의 바로 맞은편 책상 위에는 구겨진 종이컵 하나와 커피가 절반가량 담긴 종이컵이 하나 더 있었다.

  승완의 눈썹이 가운데로 모였다. 그러나 노크 소리를 듣지 못한 책상의 주인은 또 커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승완이 얼른 그의 손길을 저지했다.

 

 "커피는 몸에 안 좋아. 이거 마셔."

 

  불쑥 눈앞에 내민 레몬차를 발견한 세찬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레몬차는 승완의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주신 수제청으로 갓 끓여낸 것이었다.

 

 "아, 고마워, 승완아."

 

  세찬이 두 손으로 공손히 컵을 받아들었다.

  김이 오른 레몬차를 한 모금 마시자, 시큼털털한 맛이 입안에 감돌며 카페인과 다른 방식으로 온몸의 감각을 일깨웠다.

  세찬의 눈이 지릿, 하고 제 의지와 상관없이 전율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본 승완은 쿡쿡, 소리 내 웃었다. 세찬도 민망했는지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얼마나 했어?"

 "거, 거의 다했어. 이제 하, 한 번 더 확인하고 추, 출력하면 돼."

 "고생이다. 이리 줘봐."

 

  세찬이 내민 자료를 한 장씩 넘기는 승완의 눈썹이 점점 일그러졌다.

  이건 신입에게 맡길 만한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표시를 해놓았다지만, 그중에서도 필요한 내용을 발췌하고 연관성 있는 것들끼리 엮는 건 해당 사업을 잘 알고 있는 사람만 가능했다.

 

 "주임님도 참 너무하시네. 이건 뭐, 오늘 안에 집에 가지 말란 소리잖아. 본인은 쌩하니 퇴근하고서."

 "아, 아니야. 가, 갑자기 일이 마, 많아져서 바, 바쁘신가 봐."

 

  승완의 비아냥에 세찬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펄쩍 뛰었다.

  아무리 수빈이 승완을 대놓고 괴롭히지만, 그녀는 상사였다. 세찬은 승완이 수빈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것이 불편했다.

  게다가 승완은 잘 모르지만, 그에게 수빈은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세찬은 그녀를 필사적으로 변호했다.

 

 "지, 지난 대리님의 일을 떠, 떠맡으셨다고 들었어."

 "떠맡았다고? 수빈 주임님이?"

 

  그럴 사람이 아닌데.

  승완이 아는 수빈은 어떤 이유에서든 제 일이 아닌 것은 딱 잘라 거절하는 사람이다.

  본인을 생각했을 때는 현명한 처사지만, 상사와 동료의 입장에서는 얄미운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수빈이 제 일을 떠맡았다니, 승완으로서는 그녀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보다 파일 넘겨. 내가 교차 확인해줄게."

 "지, 진짜? 우, 우와! 고마워! 아, 안 그래도 눈이 아파서 호, 혼났어."

 

  세찬은 혹시라도 승완의 마음이 바뀔세라 얼른 사내 메신저로 작업 파일을 넘겼다.

  승완으로 인해 한숨 돌린 덕분일까. 세찬의 머리로 한 단어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 그런데 그 얘기 들었어?"

 "무슨 얘기?'

 "조, 조이준 대리님이 오신 이유."

 

  칸막이 너머 조심스럽게 움츠린 어깨만큼, 세찬의 목소리가 확 작아졌다.

  승완은 저도 모르게 그와 같이 어깨를 좁히고 칸막이 위로 목을 쭉 빼냈다. 이준에 관한 소문이라니, 호기심이 생겼다.

 

 "그 전 대리님이 손목을 그었대."

 

  호기심에 반짝반짝 빛나던 승완의 눈빛이 얼어붙고 말았다.

 

 "우, 우리 연수 끝난 다음 날, 화, 화장실에서 발견됐대. 그래서 바, 바로 병원으로 옮겼는데 아, 아..."

 "거기까지만 들어도 될 것 같아."

 

  승완은 정말 듣고 싶지 않았다. 속이 메스꺼웠다.

  제 마지막 이야기를 타인에게서 듣는 건 처음이었다.

  살아있을 때 제 뒷말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자신의 마지막을, 그것도 웃으며 들을 수 없는 장면이 떠도는 소문으로 둔갑해 제삼자로부터 듣는 건 기껍지 않았다.

 

 "그... 무리해서 새 대리님을 이, 일주일 만에 데려온 이유가 밖으로 안 좋은 소문 퍼지지 아, 않게 하려고 그런 거래."

 

  그 말인즉슨, 회사의 꼭대기 층에 앉은, 높으신 분들의 뜻이었다는 의미다.

  불미스러운 사건을 제공한 승완의 흔적은 먼지 하나조차 완벽히 지워내고자 이준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제 물건을 가져다 버린 수빈의 행동도, 동료들의 묵인도 이해가 되었다.

 

 "그, 그런데 끝까지 새 대리님 데려오는 걸 바, 반대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

 

  세찬은 아예 엉덩이를 쭉 빼고 일어서서 칸막이에 팔을 기대고 얼굴을 내밀었다.

  주변을 살핀 그는 한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대고 지금까지보다 더 은밀한 목소리를 흘렸다.

 

 "수빈 주임님."

 

  승완은 사찰의 종이 된 기분이었다. 충격으로 머리가 뎅, 하고 지르르 진동하며 울렸다.

 

 "그 사람이 왜?"

 "나, 나도 들은 거라 잘..."

 

  하고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그 여자가 이준의 부임을 반대했을까?

  승완이 사라지고 가장 좋아했을 여자가 왜? 혹시 자기가 그 자리를 차지하려 했나?

  화면에 뜬 엑셀 파일의 네모난 칸이 무한대로 펼쳐져 그녀의 눈앞에 떠다녔다.

 

 "그, 그나저나 난 드, 등산대회가 걱정이야."

 

  아예 자리에 앉는 걸 포기하고 칸막이에 기댄 세찬이 이틀 뒤에 있을 등산대회 이야기를 꺼냈다.

  매년 두 번, TI 전자는 신입사원이 입사한 달에 등산대회를 개최했다.

  명목상 신입사원과 전 직원 간 단합을 도모하고 비전을 상기하기 위함이라지만, 승완이 봤을 때는 윗분들의 취미생활에 눈요기해줄 젊은이들이 필요한 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 진짜 가기 싫다."

 "나, 나도."

 

  등산길의 풍경이 눈에 훤했다.

  저기 앞서가시는 어르신들과, 그들의 눈에 한 번이라도 더 띄기 위해 알랑방귀를 뀌는 중간직급의 정치공작이.

  그나마 그들과 떨어져 있는 실무자 무리의 상황도 그리 좋진 않다.

  남자친구로 시작하는 호구조사를 비롯한 사생활 침해는 기본이요, 성희롱에 가까운 시답잖은 농담을 하산할 때까지 들어야 하니 말이다.

 

 "우리 팀은 새, 새 대리님까지 오셔서 완전 파, 파이팅하는 분위기더라."

 

  승완은 컴퓨터 화면에 뜬 엑셀 파일을 세세히 살피면서도, 세찬의 말을 놓치지 않았다.

  새 대리라 함은 이준을 가리키는 것이겠지. 그는 등산대회를 어떻게 생각할까?

  인생을 즐겁게 살자는 신조를 가진 그는 등산마저 재미있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의견은 달랐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등산은 그 모든 날이 싫은 것이지."

 "와, 완전 적절한 마, 말인데!"

 "야근과 등산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난 야근을 택하겠어."

 "나, 나도."

 

  세찬의 반듯한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자신감이 부족한 것에 비해 세찬은 상당히 긍정적인 편이었다. 무슨 일이든 No 하지 않는 Yes Man인 그가 싫어하는 일이 있다니.

  승완은 의외의 대답에 궁금증이 일었다.

 

 "너는 왜?"

 "나, 나는 고, 고소공포증이 있어."

 "고소공포증?"

 "그, 그래서 저, 정상이 싫어."

 

  승완은 손가락을 집게로 만들어 입술을 비틀어서야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참아낼 수 있었다.

  세찬과 고소공포증, 고소공포증과 세찬이라. 뭐지, 이토록 잘 어울리는 조합은?

 

 "어쩌냐? 분명 정상에서 단체 사진 찍을 텐데."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쉰 세찬의 머리가 칸막이를 세차게 내리쳤다.

  그 모습을 본 승완의 뇌리에 장난기 어린 생각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그거 알아? 우리가 가는 산 정상에는 슬픈 전설이 있어."

 "저, 전설?"

 "어느 보름날, 사랑하는 남자에게 배신당한 여자가 한밤중에 그 산을 올랐대. 어둠 속에서 신발이 벗겨지고, 머리를 풀어헤쳐 지는 줄도 모른 채 정상까지 질주했지."

 

  목소리를 낮추고 전설 속 여인의 발걸음을 재현하며 움직이는 승완의 몸짓이 제법 진지했다.

 

 "정상에 다다른 그녀는 보름달에게 그 남자를 죽여달라고 소원을 빌었어. 그러자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어. '제물을 바쳐라.'"

 

  점점 절정을 향하는 이야기를 듣는 세찬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순진한 남자를 놀리는 승완은 마음속으로 클클, 사악한 웃음을 흘렸다.

 

 "이미 신발까지 벗겨진 그녀는 가진 게 없었지. 결국, 그녀는 자신을 제물로 바치기로 했어. 그리고는 바로 그 자리에서 절벽 아래로..."

 

  이야기는 절정에 다다랐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뿐.

  승완이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동그랗게 말아 넣은 입술을 크게 벌리는 찰나,

 

 "쿵!"

 "으, 으악!"

 "엄마야!"

 

  세찬과 승완은 동시에 의자 위로 벌러덩 넘어졌다.

  쿵, 하는 소리는 승완의 입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그녀가 의자 위에 널브러져 튀어나올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을 일도 없었다.

  세찬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의자를 붙들고 있는 사이, 세모꼴로 눈을 뜬 승완이 앞에서 빙글빙글 웃고 있는 남자를 쏘아봤다.

 

 "대리님!"

 

  이준이었다.

  두 시간 전, 야근에 허덕이는 신입사원 둘을 뒤로하고 칼퇴근한 그가 정장 차림 그대로 승완의 앞에 서 있었다.

 

 "막내 둘이서 이 시간까지 뭐합니까?"

 "대리님이야말로 왜 돌아오셨어요?"

 "깜빡 놓고 간 게 있어서요."

 

  립스틱을 바르지 않으면 색이 칙칙하게 죽는 승완의 입술과 달리, 이준의 것은 늦은 밤에도 생기가 넘쳤다.

  승완은 인간도 아닌 존재에게서 불공평함과 질투를 느꼈다.

 

 "그보다 두 사람 무슨 비밀 얘기를 하는 겁니까? 나도 좀 들읍시다."

 "됐거든요."

 "그럼 말고요."

 

  승완은 주먹을 꽉 쥐고 이를 갈았다.

  긴 다리를 이용해 성큼성큼 제 책상으로 걸어가는 이준의 뒷모습이 이렇게나 미울 수가 없었다.

  그 사이, 세찬도 집 나간 정신을 다시 챙겨 돌아왔다.

  승완이 머리를 두어 번 치고는 화면에 집중했다. 저 악마 녀석과 더 마주치기 전에 어서 집에 가야 했다.

 

 "확인 끝. 문제없으니 이대로 출력하면 될 것 같아."

 "우와, 고, 고마워."

 "동기끼리 이 정도로, 뭘."

 

  승완의 겸손한 말에도 세찬은 진심으로 고마웠다. 능력자 승완 덕분에 최소 한 시간은 번 것이다.

  이제 회의실 세팅만 하면 그도 집에 돌아갈 수 있다.

 

 "저, 스, 승완아."

 "응?"

 "이, 이거 벼, 별건 아니지만 고마움의 표, 표시야."

 

  컴퓨터를 끄고, 가방을 챙겨 일어서는 승완을 불러세운 세찬이 내민 것은 막대 초콜릿이었다.

  승완이 입술이 자연스레 벌어져 하늘로 향했다. 그녀가 종종 사다 세 번째 책상 서랍에 쟁여놓는 애정템이었기 때문이다.

  세찬은 어떻게 딱 그녀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선물했을까?

 

 "우와, 이거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데! 고마워. 잘 먹을게."

 "나, 나야말로 고, 고마워."

 "아무튼, 다음에 또 일 있으면 혼자 끙끙대지 말고 말해. 그러다 호구 된다, 너!"

 

  허리에 손을 얹고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어도 세찬은 그저 머리를 긁적이며 배시시 웃음을 지을 뿐이다.

  그런 그를 보니 자신의 신입사원 시절이 떠올라 안타깝기도 하고, 귀엽기도 한 승완이다.

  그녀는 홀리듯 세찬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그에게 닿지 못했다.

 

 "일 다 끝났어요?"

 "네?"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이준이 승완의 손목을 붙잡았다.

 

 "다 끝났냐고요."

 "아, 네."

 

  한 자, 한 자 씹어 말하는 그의 표정이 어쩐지 무서워 승완은 주눅 들어 곧이곧대로 대답하고 말았다.

  그러자 이준이 그녀의 손목을 돌려 고쳐잡았다.

 

 "그럼 나갑시다. 백승완 씨."

 "네, 네?"

 

  이준은 대답도 듣지 않고 한 발 앞으로 나갔다. 그의 각진 손목에 걸친 손목시계의 차가운 재질이 승완의 팔에 닿았다.

  손목을 끌어당기는 강한 힘에 승완은 속절없이 끌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준의 빠른 속도에 맞춰 잰걸음을 걷던 승완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나서야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뭐야, 너?"

 "내가 뭘?"

 "너 때문에 세찬이한테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나왔잖아."

 

  투덜대는 목소리는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세찬과의 인사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준에게 잡혔던 손목이 아렸다.

  저도 남자라고, 그녀의 손목을 손쉽게 감싼 손바닥의 힘은 완강했다. 그리고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웠다.

 

 "인사는 나하고만 하면 돼."

 

  시선은 아래로 내려가는 숫자에 향한 채로, 이준이 간단히 답했다.

  지금의 그는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 승완은 갑자기 달라진 그에게 적응하지 못해 어쩔 줄 몰랐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선 네모난 공간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이번 일요일에 뭐해?"

 

  이준과 마찬가지로 점점 줄어드는 숫자에만 고정했던 승완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신은 이 남자를 만들 때 꽤 보람찼을 것 같다.

  재킷 없이 와이셔츠만 걸쳤을 뿐인데도 당당한 어깨와 딱 떨어지는 각을 그리며 바지 주머니에 꽂아 넣은 손은 가히 남성적이었다.

  이마에서 시작해 우뚝 솟은 코와 구불구불한 입술을 지나 턱까지 내린 옆선은 깎아지른 절벽을 표현한 듯했다.

 

 "글쎄. 별생각 없는데. 왜?"

 "그날 내 소원을 써볼까 해서."

 

  이준의 잘난 옆모습을 감상하느라 승완은 그의 말뜻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승완은 멀티 태스킹(Multi-Tasking)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한 번에 여러 가지 사고를 하는 건 어려웠다.

  그런 그녀를 도와주려는 듯, 이준이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려세웠다.

  이준이 허리를 숙이자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부터 보랏빛이 빛나고, 꽃잎을 올려놓은 듯한 입술이 매끄러운 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나랑 데이트하자, 백승완."

 

  간발의 차이로 땡, 소리를 내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귓속으로 들어온 소리는 고막을 지나 승완의 머릿속에 도달해 크게 경고음을 울렸다.

  뽀뽀보다 더한 것이 바로 여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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