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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이웃이 용이다
작가 : 김거북
작품등록일 : 2017.7.28

옆집에 용이 산다?
첨탑 대신 아파트, 용사도 공주도 없는 이 21세기 대한민국에도 판타지가 존재한다.
이계에서 온 용이다와 숲에는 안 살아도 잠은 많은 인간 신하라가 그려나가는 신비하고 일상적인 로맨틱판타지.
이웃이 용이다!

 
8화. 이미 지난 일.
작성일 : 17-07-29 00:55     조회 : 244     추천 : 0     분량 : 7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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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처음엔 안 믿었어.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를 보육원에 두고 나올 때 함께 뒀던 목걸이를 말하더라. 그건 보육원 원장님과 우리만 아는 사실인데 정확히 묘사하는 거야. 새까만 돌이 박힌 목걸이였어. 그게 없으면 잠도 못 잘 정도로 항상 손에 쥐고 있던 거였는데, 혹시 기억나니?”

 “아뇨.”

 

 기억이 없었다.

 대부분이 그러하듯 최초의 기억을 향해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대여섯살의 단편적인 기억이 한계였다.

 

 “하긴 네가 집에 온 게 세 살 때니 기억 못 하는 것도 당연하겠지.... 그때 사진을 보면 목걸이를 쥐고 있느라 왼손을 항상 움켜쥐고 있단다. 아무튼 그 목걸이가 꽤 특이하게 생겨서 의심의 여지가 없었어. 골동품 가게에서나 볼 법한 모양에 가운데는 거무튀튀한 돌이 박혀있었거든.”

 “굉장히 새까만데 빛이 죽어서 화려한 목걸이에 어울리지 않는 그런 돌이었어. 네가 관심이 없어진 뒤론 장롱 안에 보관하고 있었지. 집에 가면 보여줄게.”

 “그런데 모양을 정확히 말하는 거야. 그건 누구한테도 보여준 적이 없거든. 그러면서 보육원에다 이미 확인했다고 하더라? 원장님께 확인하니 맞다고 하시더라구. 그때 놓고 갔던 카드 얘기도 하더라면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하라가 품고 있던 말을 툭, 내뱉었다.

 

 “왜, 연락했대요?”

 “너를 꼭 좀 만나고 싶다더라. 그냥 그 얘기뿐이었으면 말하지 않았을 텐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설마, 시한부라도 된대요?”

 “...그렇대.”

 “...뭐 그런 진부한 이야기가.”

 

 헛웃음이 자꾸 터져 나와 멈출 수가 없었다.

 버려놓고 이제와 속 편하자고 연락하는 꼴이라니.

 

 겨우 그런 인간이, 내 친부라고?

 

 욕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라 하라는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하며 억지로 끓어오르는 화를 삼켰다.

 명치 가운데가 불덩어리를 삼킨 듯 홧홧했다.

 

 “얘기하지 말지 그러셨어요.”

 “하라야.”

 “죽을 때 돼서야 속죄하듯이 버린 자식, 아니지. 자식이라고 생각도 안했으니까 버렸겠죠. 그래놓고 이제 와서 찾으면 내가 좋다고 만나준대요? 절대 안 만나요. 염치가 없어도 어쩜 그렇게 없어요? 어떻게 지가 뭐라고 엄마 아빠한테 연락해요? 난 절대 안 만나요.”

 “나도 네가 친부를 만나는 게 탐탁치만은 않아. 하지만 버린 게 아닐지도 모르잖니. 넌 내 자식이지만 그 사람도 쭉 널 자기 자식으로 생각하고 있었을까봐..., 엄마는 그게 마음에 걸려서....”

 “난 아니에요. 안 궁금하다고요. 절대 싫어요.”

 “...하라야?”

 “맞아요. 나, 다 눈치 채고 그렇게 반항했을 때도 친부모가 누군지 궁금해 한 적 없어요. 그냥 그 사실 자체에 화도 나고 혼란스러웠던 거지. 내가 왜 궁금해 해요? 왜 나를 버렸을까, 사정이 있었을까, 아주 잠깐 궁금한 적도 있었어요. 그치만 결국엔 엄마 아빠가 날 키워줬잖아요. 그런 거 궁금해해봤자 그 사람이 나 키운 것도 아닌데 내가 왜 궁금해 하지 싶어서 생각도 안 했어요, 그날 이후론. 싫어요. 안 봐요. 난 엄마 아빠 말곤 다른 부모도 없어요.”

 

 만나게 할 거면 나를 죽여라 식으로 나오는 하라에 두 사람의 얼굴 위로 복잡한 감정이 드리워졌다.

 안도, 안타까움, 가여움, 사랑스러움 까지.

 오만 감정이 한데 뒤섞인 부모의 얼굴을 한동안 응시하던 하라가 입을 열었다.

 

 “만나지 않아도 돼요. 어느 날 죽었다고 연락이 와도 죄책감가지지 않을 거니까. 내 운동회에 입학식에 진학상담까지, 부모님 모셔오라고 하는 행사마다 온 건 엄마 아빠잖아요. 늘 내 부모님이었고, 앞으로도 부모님은 두 분이에요. 그런 사람 나는 몰라요. 안 들은 걸로 할 게요.”

 “하라야....”

 “입양? 그게 뭐가 중요해요? 나한테 엄마 아빠는 한 명 뿐이에요. 사실 난 엄마가 여태까지 정확하게 말 안 해준 게 고마워요. 나 초딩 때 애들이 울 엄마가 나 다리 밑에서 주워왔대! 할 때 울 엄마는 나 가슴으로 낳았다던데! 했다가 애들이 엄마가 너랑 놀지 말라 그랬단 소리 들었거든요.”

 

 하라의 고백에 아빠의 눈물샘이 펑 터졌다.

 

 “내가 엄마 딸 맞다고 펑펑 울어서 없던 일이 됐지만, 살면서 그런 일이 참 많았고요. 근데 엄마가 나한테 말 안 한 게 나 상처받을까봐 겁나서 라고 했잖아요. 나는 그만큼이나 사랑받고 자랐어요. 세상에 나만큼 사랑 많이 받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을 만큼 많이요. 다른 애들은 피가 섞인 가족이 있어도, 나만큼 행복해보이진 않아요. 나는 지금이 너무 좋고 행복해서 이걸 깨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아빠가 눈물을 훔치며 훌쩍이자 엄마가 그만 좀 울라며 타박했다.

 그런 엄마도 정작 웃다가 울었다를 반복해 온 얼굴이 눈물범벅이었다.

 

 부모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지는 걸 알면서도 하라는 번복하지 않았다.

 그저 젓가락을 들고 “아, 배고프다.” 하고 누가 들어도 어색한 목소리로 재잘댈 뿐이었다.

 

 “회 맛있다. 왜 이렇게 맛있지. 오빠도 왔으면 좋아했을 텐데.”

 “우리가 생각이 짧았구나. 네 생각이 최우선이라고 말해놓고서도 우리 마음이 불편해서 네가 알게 모르게 강요한 것 같아. 알았다. 만나지 않겠다고 전하마.”

 “절대, 못 만나게 할게. ...배 많이 고프지? 좋은 날 맛있는 거 앞에 두고 이야기가 너무 길었네. 먹자. 많이 먹어.”

 

 말로는 다들 많이 먹으라고, 맛있다고 하면서도 젓가락질은 점점 느려졌다.

 결국 접시의 반도 못 비운 채 가게를 나섰다.

 

 

 -

 

 

 집에 와 소화제 두 알씩을 먹고 나서야 모두 제 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하라는 책상 앞에 앉아 일기장을 꺼내두고 생각에 잠겼다.

 중학생 때 쓴 일기장이었다.

 대부분은 그 날 있었던 안 좋은 일과 죽고 싶다, 그만두고 싶다, 나는 왜 살지 같은 부정적인 말들로 가득 찬.

 

 그럼에도 하라는 그 일기장을 아끼고 자주 펼쳐봤다.

 단 한 장, 가시밭 속에 핀 꽃 한 송이 때문이었다.

 하라는 익숙한 손길로 유난히 너덜거리는 장을 찾아 펼쳤다.

 

 

 11월 9일.

 

 날짜를 짚은 손가락이 아래로 내려갔다.

 

 날씨 좋아서 힘듦

 

 “그때는 맑으면 맑은 대로 궂으면 궂은 대로 매일이 힘들었지.”

 

 [오늘 신태양이 반으로 찾아왔다. 나를 괴롭힌 게 누구냐고 문을 열고 들어와서 소리 질렀다. 다들 덩치 큰 남자 선배가 그러니까 아무 말도 안 했다. 신태양이 맨 앞줄에 앉은 고아현에게 물었다. 누가 그랬냐고. 고아현은 겁먹은 것 같았다. 그치만 “아무도 안 그랬어요” 라고 대답했다. 아무도 안 했는데 나만 힘들다고? 쟤는 학교가기 싫어서 내가 어젯밤에 뭔 짓을 했는지나 알까. 찬 물 받아둔 욕조 안에서 덜덜 떨면서 세 시간을 있었는데. 결국 감기도 안 걸리고 학교도 왔지만. 우습다. 다들 적어도 이게 떳떳하지 못한 거라고 생각은 하는 구나? 그런데도 그렇게 쉽게, 당연하게 해댔고.]

 

 아래로 주르륵 늘어선 문장들은 읽을 때마다 심장을 푹푹 쑤셔댔다.

 

 “이런 상황이 되게 만들어놓고 뻔뻔하게 만나자고?”

 

 모든 원인이 그거였다.

 입양됐으니 친부모가 누군지도 모를 거라는 것.

 범죄자나 가난뱅이, 미혼모의 자식 중 하나 아니겠냐고 빈정거리던 말들이 떠올랐다.

 양부모에게 받은 사랑이 진짜에 비해 얼마나 값싼 동정인지 폄하하는 말들도.

 

 얼마나 불쌍해보였으면 데려왔을까 하며 멸시에 찬 시선을 던지는 인간.

 쟤 하는 말 좀 봐, 지가 입양된 게 아니래, 하긴 누가 그런 걸 쉽게 인정하겠어? 하며 비꼬던 인간.

 

 심지어 누군가 ‘쟤네 아빠가 외국여자랑 바람나서 낳아온 자식인 거 아냐? 같이 살려고 입양한 거겠지. 죽어도 친부모 맞다고 우기잖아. 둘 중 하난 친부모 맞나보지.’ 하고 깔깔댔고, 그건 기정사실화 되어 모두의 입에 오르내렸다.

 

 하라가 교실에 들어설 때면 일순간 조용해졌다가 저마다 수군대며 웅성이던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환청이 머릿속을 떠돌다 해묵은 감정에 힘을 얻어 방 안을 떠돌았다.

 

 “아니야. 다 끝났어. 이제 괜찮아.”

 

 입양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행복을 몰랐을 것이다.

 자식을 쉽게 버리는 사람이니 그런 사람 아래에서 자랐다면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불행했겠지.

 

 하라는 그렇게라도 위안 삼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했다.

 가족들이 너무 소중했다. 누군지도 모를 친부모보다 훨씬, 아주 많이.

 

 그런데도 과거는 쉬이 잊히지 않았다.

 과거의 일일 뿐인데 읽을 때마다 그 일이 마치 어제 일인 양 감정이 요동친다.

 

 아직 괜찮지 않다. 언제 괜찮아질지 장담할 수도 없다.

 하지만 스스로를 다독이지 않으면 상처입고 힘들어하는 건 언제까지나 혼자일 뿐이다.

 그 애들은 각자의 삶을 살고 있을 테니까.

 

 

 [고아현이 간과한 게 있다면, 신태양은 정말 고집이 세다는 거다. 나를 쳐다보면서 정말 없냐고 고아현이 울먹이면서 그만하라고 빌 때까지 물어봤다. 신태양은 끝까지 물어봤다. 고아현이 책상에 엎드려 울자 맨 뒷줄에 앉아서 구경이나 하던 정아름이 일어나 외쳤다. 내가 그랬는데? 니가 뭔데 여기 와서 지랄이야?]

 

 하라는 이 부분만 읽으면 그 때 기억이 또렷이 떠올랐다.

 정아름이 어찌나 당당했던지, 오빠도 아주 잠깐 멍 때렸었는데.

 물론 눈이 더 돌아서 사고를 크게 쳤지만.

 

 진술서마냥 자세히 적어놓은 당시의 기록을 죽죽 훑어 내려가다 다시 멈췄다.

 

 [ …… 신태양은 분명 이기적이다. 그런데 왜? 내가 괴롭힘 당하는 게 창피해서? 아니면 정말로... 가족이니까? 우리는 사이 나쁜 남매다. 지랄 맞게 싸우고 또 싸운다. 몸싸움도 자주하고 말싸움은 숨 쉬듯이 한다. 그렇게 싸우면서도 신태양이 나를 때린 적은 없었다. 작은 멍이라도 들면 엄청 혼나기도 했고 쬐끄만 걸 패서 뭐에 쓰냐고 하기도 했었는데. 그런 신태양이 정아름 머리채를 잡고 욕을 하다니? 학교도 다르면서 어디서 들었는지 소문들을 줄줄 읊으면서 다 니가 낸 소문이냐고 머리를 잡고 흔들었다. 선생들도 애들도 잔뜩 몰려왔다. 청운고 학생회장 신태양이 일진 정아름 머리채를 잡았다! 전부 다들 신태양을 말리지도 못하고 놔주는 게 어떻겠냐고만 했다. 오히려 몇 명이 나한테 와서 니 오빠 좀 말리라고 왜 저러냐고 했다. 제가 왕따 당한 걸 알았나봐요. 내 말에 전부 다 당황하는 게 보였다. 왜 당황하지? 이미 다 알면서도 입 다물었잖아. 전교에 소문났으면 옆학교에도 소문나는 게 이상하지 않은데. 그렇게 아끼던 신태양이 내 오빠인 건 몰랐나?]

 

 “알면서 모른 척하는 것도 동조하는 건데.”

 

 하라는 선생들도 여전히 원망스러웠다.

 다들 모른 척하거나 수군거리거나 둘 중 하나를 택했다.

 그럴 만 했겠지, 혹시 모르지 하면서 은근히 동조하기도 했다.

 

 성적도 괜찮고 예의바른 하라를 칭찬하면서도, 뒤에서는 ‘좀 혼혈아 같지 않아요?’, ‘애들이 혼외자식이라고 하던데.’ 하고 떠들어댔다.

 

 모른 척 하는 것도 어찌나 가관인지 눈앞에서 ‘걔 섞였다며? 왜 걔 있잖아, 8반 일등. 비쩍 마른 애. 걔네 아빠가 외국년이랑 바람나서 낳아왔대.’ 하고 천박하게 내뱉어도 못 들은 척 헛기침하기 바빴다.

 조금의 양심이라도 남은 선생은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하고는 소문을 지나쳤다.

 

 그 뿐이었다.

 

 [ …… 부모님이 불려오셨다. 상담실에 신태양이랑 나란히 앉아있는데 자꾸 말 걸어서 좀 귀찮았다. 왜 말 안 했냐는 둥 넌 나한텐 대들면서 왜 걔들 그러는 건 참았냐는 둥 멍청아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다. 맞은편엔 정아름네 가족이 앉았다. 뻔뻔하고 잘못을 모르는 건 집안내력이었나 보다. 다들 나보고 “딱 봐도 튀기 같네. 그래 보여서 그랬다는데 무슨 문제 있어요?” 라고 했다. 엄마는 어디서 난 건지 휴대폰을 꺼내 녹음을 켜고 다시 한 번 말해보라고 했다. 아줌마는 내가 뭘 잘못했냐면서 “찔리는 게 있으니까 오빠라는 게 고등학생이면서 중학교에 쳐들어와서 행패부린 거 아니겠어요? 밖에서 씨 뿌린 게 뭐가 자랑이라고 애 머리채를 잡아요?” 랬다. 돌려 듣는 건 꽤 귀찮지만 자세히 적고 싶다. 얼마나 무례하고 이상한 사람들이 날 괴롭혔던 건지 최대한 자세히 적어둘 거다. 나는 잘못한 게 전혀 없다.]

 

 악에 받혀 쓴 일기에서 지독함이 뚝뚝 묻어났다.

 하라는 그 뒤로 이어지는 저주의 말들을 넘겼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 …… “내 아이에요.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럽고 소중한 우리 아이라구요. 어느 부모가 제 배 아파 낳은 자식이 입양아란 소리를 듣는데 화를 안 내요? 대체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켜야 애 면전에 대고 입양아니 혼외자식이니 애들이 그런 소릴 해요?” 우리를 혼낼 때보다 훨씬 무서운 말투는 꽉 쥔 주먹만큼 부들부들 떨렸다. 저 정도로 화내는 엄마 모습이 낯설 정도였다. 엄마는 신하라, 귀 막아! 하고는 “외도니 외국에 첩이 있니 하는 게 애들 머릿속에서 나왔겠어요? 애들 앞에서 무슨 소리들을 해댔으면 그런 게 학교에 퍼졌겠냐구요.”하고 소릴 질렀다. 아줌마가 “우리 애는 잘못 없어요! 애들이 그러는 거 듣고 말 좀 옮긴 거 가지고 난리야.”하고 귀를 팠다. 나도 엄마도 반성이나 사과도 없고 예의도 없는 모습에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아줌마는 놀랄 만큼 태연했다. “그리고 요즘 애들이 얼마나 영악한데? 호들갑떨지 말고 이만 하지?”]

 

 정말 쓸데없이 열심히도 받아 적었다 싶은 내용들이었다.

 인터넷에 그대로 올리면 무개념이라고 댓글이 달릴 내용이기도 했다.

 일기라기보다 녹취록에 가까운 내용이 이어졌다.

 

 그 사이사이 엄마가 한 말들만 골라 읽던 하라의 눈이 멈춰섰다.

 

 [ ……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이 우리 애들 낳은 거예요. 난 소중해서 매 한 번 안 들고 키운 애한테 온갖 모진 소리로 상처 줘놓고 사과 한 마디를 안 하다뇨? 남한테 아무 근거 없는 욕을 들어도 내색도 못 하고 끙끙 앓는 애라구요. 이 여린 게 속이 곪아터져도 입만 꾹 다문 걸 내가 몰랐어요. 지금 내 심정이 어쩐 줄이나 알아? 이 못된 여자야. 자식 농사 잘못 지었음 먼저 사과하라고 가르쳐야지. 어떻게 이차 가해자 노릇을 하니?”]

 

 일기 곳곳에서 저런 표현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사랑스러운 내 아이, 자랑스러운 자식, 귀한 딸, 내 자식, 내 아기.

 

 인생 최고로 비참한 날이었다.

 어떻게든 숨기고 가린 온갖 더러운 것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부끄러워 어떻게든 가리기 급급한 나에게 엄마는 사랑한단 말만 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고 다그치지도 않았고, 너도 그렇게 생각하냐고 묻지도 않았다.

 아줌마가 숱한 모욕을 던져도 엄마는 욕 한 번, 손찌검 한 번 안 했다.

 속이 썩어 들어가는데도 다 참고 대거리만 했다.

 아줌마가 자리를 박차며 정아름을 데리고 나갈 때까지 쭉.

 

 선생이 입 한 번 안 뗀 상담이 끝난 뒤, 아빠가 기겁하며 외쳤다.

 

 “여보! 피나! 어어!”

 

 엄마는 화를 참느라 이를 악물고 손톱이 파고들게 주먹을 쥐어서 입 안도 손바닥도 피투성이였다.

 혈압이 올라도 흠 하나 안 잡히겠다고 참고 참아서 결국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

 

 그 와중에도 녹취파일을 챙긴 엄마가 퇴원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신고와 고소였다.

 정아름과 주동자 몇몇은 강제전학을 갔고 하라는 조금 먼 학교로 전학을 갔다.

 

 도망치는 것 같아 싫다는 하라에게 엄마는 전학을 강권했다.

 

 “네가 계속 불편한 것보단 나아. 방관도 동조란다. 그 애들이 주동자 몇 명 솜방망이 처벌 받은 걸로 따돌림을 그만 둘까? 뒤에서 수군대던 걸 멈출까? 정말로 분위기에 휩쓸리면 해야 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 구분도 못 한다고? 걔들은 그걸 즐긴 거야. 몇 명은 아닐지도 몰라. 하지만 전교생이 다 알았다며. 그 많은 애들 중에 하지 말라고 말 한 애가 한 명도 없는 건 이상한 일 아니니? 질 나쁜 소문 정도가 아니었잖아. 네가 아니라고 해도 변명 취급한 애들이야. 미련두지 마. 넌 더 나은 삶을 살려고 떠나는 것뿐이야. 혹시 아니? 저 학교에서는 좋은 친구를 사귀게 될지.”

 

 엄마 말대로 하라는 그 곳에서 윤진을 만났다.

 알고 보니 유치원도 초등학교도 쭉 같은 학교에 같은 반도 몇 번이나 한 사이였다.

 

 그 후로 쭉 하라 옆에는 윤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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