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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로맨스판타지
퍼스트 라이트
작가 : 빛나라
작품등록일 : 2017.6.18

남편에게 여자가 있는 것 같다.
그의 외도 현장을 덮치기 위해, 나는 남장을 하고 가면무도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드디어 현장을 덮쳤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라?
상대가 이상하다?

-어쩌다 남편놈 때문에 엮인 인간 같지 않은 인간.
이 나라의 왕제 대공.
무시무시한 그의 비밀을 알게 된 나는 무사할 수 있을까?
제기랄. 그냥 바람피는 남편 놔둘걸.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남자의 곁에서 성장해가는 여인.
남주: 복잡미묘한 캐릭터의 대공. 완벽하지만 어딘가 어수룩한 먼치킨.
여주: 숨겨진 능력녀. 타의적 과부.
#성장물#사이다#달달물#판타지#악마#타락한천사

 
17. 천사와의 거래(2)
작성일 : 17-07-28 16:54     조회 : 387     추천 : 0     분량 : 4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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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고 싶은가?”

 그걸 말이라고 하냐, 이 천하의 몹쓸 흡혈 왕족 놈아!필립과 실비아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했지만, 이렇게 마주앉아 대화를 하자니 죽기 억울해졌다.

 

 왕족이란 모름지기 국민의 평안함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도덕적 표상이어야 하지 않냔 말이야.

 

 “지인의 죽음을 무기로 협박을 하신 건 각하이십니다.”

 “비겁하다 생각하는가?”데몬이 웃음기를 거두고 허리를 세웠다.

 셀린느는 손가락이 하얘지질 정도로 꽉 움켜쥐고 용기내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어쩌다 그런 저주를 받아 죄를 저지르고 계시는지 몰라도 저 같으면 제 나라 국민의 피를 먹으려 연명할 목숨이라면 스스로 버리겠습니다.”

 

 호오!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이 아니군.

 “그럼 그대가 기절할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겠군.”

 

 데몬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셀린느가 움찔했다.

 지금 바로 죽이는 것인가.

 내뱉은 말에 거짓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움츠린 셀린느를 힐끗 보며 가볍게 웃던 데몬은 책상으로 걸어가 봉투 하나를 가져왔다.

 셀린느 앞의 테이블로 봉투를 놓자, 그녀가 물었다.

 “이게 뭐죠?”

 “그대 말대로 이 나라의 왕제인 내가 왜 블라디아 자작을 살해했는지 그 이유가 들어있는 봉투다.”

 

 데몬은 다시 소파에 앉아 봉투를 뚫어지라 쳐다보는 셀린느를 느긋하게 지켜봤다.

 그녀는 눈에 띌 정도로 손가락을 파르르 떨며 봉투를 집어 들었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이윽고 결심한 듯 과감하게 봉투를 열고 내용물을 테이블 위로 쏟아냈다.

 

 사진들이었다.

 좁고 어두운 감옥 같은 곳에 헐벗은 소년들이 갇혀 있었다.

 

 “왜 이런 사진들을?”

 “블라디아 자작의 아주 고약한 취미지. 그대의 남편이 상선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잘 알지?”

 “네. 알고 있어요.”

 “귀족 가의 영애로 태어나 귀하게 자란 그대는 끼니 걱정 따위는 해본 적이 없지?”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거에요. 이 사진들이 제 남편과 무슨 상관이죠?”

 

 “최근 1년동안 수도 근교의 가난한 마을에서 외모가 고운 소년을 후한 값에 사간 상인들이 있었다. 대부분의 소년들은 병든 부모와 동생들을 위해 스스로 나섰다고 해. 허드렛일과 심부름을 하는 하인 노릇만 잘하면 된다고 해서 자신의 몸을 판 것이지.”

 

 설명하는 데몬의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어쩐지 그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지고 있었다.

 “제보가 있었다. 그렇게 팔려간 소년들이 감금되고 학대당하고 있다는.”

 

 셀린느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설마......

 아닐거야. 그럴 리가.

 다정다감한 남편은 아니었지만, 이런 소름 끼치는 범죄자일 줄이야.

 

 “그래. 네 남편, 클린턴 블라디아 자작이 소년들을 돈으로 사서 자신의 배 안에 가둬두고, 상상하기도 힘든 성적인 고문을 어린 소년들에게 행했지.”

 

 셀린느의 입이 충격으로 크게 벌어졌다.

 믿을 수 없었다.

 도대체 클린턴이 왜?

 

 갑자기 접한 믿기 힘든 사실에 셀린느는 아무 말도 못 하고 테이블에 펼쳐진 사진들만 바라볼 뿐이었다.

 아직 사춘기도 다 지나지 않은 소년들이었다.

 오, 클린턴 당신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닌 거예요.

 

 말아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던 셀린느가 고개를 들어 힘겹게 입을 들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각하의 살인이 정당화될 순 없어요. 죄인은 법의 심판에 맡기셔야죠. 사법부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처결하시다뇨. 그것도 아주 희한한 방법으로 말이죠. 말이 안 돼요.”

 

 “그냥 단두대에서 처형시키면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거든.”

 

 무슨 일?

 사람 피를 빨아먹는 일?

 

 “두 번째 진실을 말해도 될 것 같군.”

 

 뭐?

 이것보다 더 추악한 진실이 죽은 남편에게 더 있나?

 

 블라디아 성 어딘가에 ‘푸른 수염의 방’ 이 있는 건 아닐까 싶어, 갑자기 온몸에 한기가 드는 셀린느였다.

 

 “이번엔 남편이 아니라, 그대 자신에 관한 진실이야.”

 

 ***

 

 아마다스의 수도 프라바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한 웅장한 황성.

 황제 레노만 퓨리어 아크나르의 침실에서 기침 소리가 쉴 새 없이 났고, 황궁 의료진과 시녀들이 바삐 들락날락했다.

 

 “쿨럭!”

 

 기침 소리와 함께 울컥 핏덩어리를 토해낸 황제의 입가를 닦아내는 황실 최고 의원인 큐레인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각혈 일부를 작은 플라스크에 넣어 간호사에게 넘겨주고, 황제의 체온을 확인했다.

 

 40도!

 고열에 각혈.

 탈수증.

 가끔 보는 환각과 마비증상.

 장시간의 의식불명.

 

 도대체 황제가 앓고 있는 병이 무슨 병인지 알 길이 없었다.

 입으로만 혈이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황제가 아랫도리에 차고 있는 것은 가장자리가 금실로 수놓아져 있긴 하나, 기저귀였다.

 기침할 때마다 괄약근이 고장 난 듯 쉴 새 없이 혈변이 새어 나왔다.

 현명한 눈동자는 빛을 잃어가고, 온몸이 앙상하게 말라 꼭 살아있는 미이라 같았다.

 

 클레오 공주는 그녀의 백발에 가까운 은발만큼이나 차가운 눈빛으로 부왕의 침대 머리맡에 서 있었다.

 

 “큐레인. 지난 번에도 폐하의 혈액을 채취해 가지 않았나요?”

 “아...... 네. 공주 전하.”

 “몇 번이나 가져간 아바마마의 혈액을 제대로 분석하기나 했나요? 어떻게 이다지도 차도가 없단 말입니까.”

 

 절대 신경질적이거나 감정적인 말투가 아니었다.

 조금은 느긋하게 느껴지는 기품있는 말투, 그래서 더 무서웠다.

 외모만큼이나 서늘하고 차가운 문책.

 

 “황실 의무실 시설이 형편없나보군요. 싹 다 갈아 엎어야겠어.”

 

 나이가 지긋한 이 최고 의원은 젊은 공주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어쩔 줄 몰라했다.

 

 레노만 퓨리어 아크나르가 원인 모를 병으로 정사를 돌보지 못한 것이 1년이 다 되어 간다.

 그 동안 실질적인 황성의 업무는 어린 황자, 파디앙 퓨리어 아크나르가 아닌 황위 계승서열 3위인 클레오 퓨리어 아크나르였다.

 

 제국 역사상 가장 천재적인 감각을 타고났다는 그녀였다.

 다리 사이에 물건만 달고 나왔어도 희대의 황제가 됐을 거라 불리는 황제의 외동딸.

 그러나 어디까지나 아마다스 제국은 철저히 부계 중심 사회였다.

 

 클레오는 단 한 번도 자신을 두고 나오는 여러 가지 말들에 동조한 적이 없었다.

 뛰어난 향기가 나는 꽃에는 자연적으로 벌과 나비가 몰려드는 법.

 미모뿐 아니라 능력을 겸비한 이 여인의 곁에는 당사자가 의도하지 않아도 따르는 무리가 생겼다.

 동생인 파디앙 퓨리어 아크나르가 병약했기 때문이다.

 

 “흐억. 쿨럭 쿨럭. 클...... 클레오.”

 

 한 움큼의 각혈을 한 후, 잠시 기절했던 레노만 황제가 눈을 뜨고 가장 먼저 찾은 것은 클레오였다.

 

 클레오가 황제의 곁으로 다가갔다.

 가쁘게 힘든 숨을 몰아쉬며 그는 가까스로 눈동자의 초점을 그녀에게 맞추고 있었다.

 

 “데......찾......너라.”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하는 호흡에 따라 힘겹게 하는 말이 정확하게 들리지 않았다.

 클레오가 허리를 숙여 자신의 귀를 부왕의 입가로 가져갔다.

 

 “데...몬...... 너의 숙부. 허억 허억. 대공을 찾아...... 찾아서 짐 앞에...... 데......려오......흐억 쿨럭!”

 클레오의 붉은 눈동자가 잠시 타오르다가 차분한 핑크빛으로 가라앉았다.

 

 “명 받들겠습니다. 황제 폐하.”

 

 황제의 침실에서 나온 클레오는 문 밖에서 대기 중이던 실더만 재상에게 물었다.

 “대공의 행방은요?”

 “얼마 전에 입국하셨습니다.”

 

 시종일관 변하지 않던 고운 입매무새가 일그러졌다.

 “폐하의 상태를 아셨다면 바로 황성으로 오셨을 테지만, 아직 폐하의 상태는 극비니까요.”

 

 공식적으로 황제는 피부병 치료를 위해 카를로리 온천 도시로 피접을 나갔다가 바로 동방제국들을 순회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대공을 모셔오세요. 폐하께서 찾으세요.”

 “네? 하지만 전하.”

 

 클레오가 재상을 차갑게 노려보자 얼른 고개를 숙이고 명을 받드는 재상이었다.

 “분부 받들겠습니다. 전하.”

 

 재상이 물러나자, 클레오는 건조한 목소리로 자신보다 어린 숙부의 이름을 나직이 읊조렸다.

 “후우...... 데몬......”

 

 ***

 

 “저에 대해 저보다 각하께서 더 잘 안단 말씀이십니까?”

 

 셀린느가 의아한 얼굴로 데몬을 쳐다봤다.

 “그대의 남편이나 그대나 같은 죄를 저질렀지.”

 

 셀린느가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났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저는 여성애자가 아닙니다!”

 

 데몬이 어깨를 으쓱하며 입술끝을 아래로 늘렸다.

 그리고 집게 손가락을 하늘로 치켜 올리며 말했다.

 “죄목, 배우자가 아닌 자와 입맞춤한 죄!”

 

 서 있던 셀린느가 두 주먹을 꽉 쥐고 파르르 떨었다.

 “아무리 황족이라도 귀족가의 부인을 모함하면 어찌 되는지 모르십니까. 사과하십시오. 당장!”

 “거 참 희한하지. 부부가 동일한 대상을 상대로 말이지.”

 

 셀린느의 주먹이 맥이 풀리듯 탁 풀리며 어깨가 내려갔다.

 데몬이 소파에서 일어나 셀린느의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키가 작은 셀린느의 눈높이와 맞추느라 데몬은 허리를 숙였다.

 부드러운 벨벳리본이 스르륵 흘러내리며 풀어진 청은발이 그녀의 양쪽 뺨에 커튼을 드리웠다.

 청량한 향을 머금은 긴 청은발 사이에 갇혀버린 셀린느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기억에 없는 장면이 눈 앞에 펼쳐졌다.

 달빛 아래에서 지금보다 더 반짝이던 청은발이 바람에 휘날리며 그녀의 얼굴 아래로 떨어지던 그 순간이.

 

 “같은 행위에 의도는 정반대였지. 한 명은 그 더러운 목숨의 끝을 재촉하기 위해. 다른 한 명은 귀하신 생명과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

 데몬은 긴 손가락을 들어 셀린느의 입술을 스윽 문질렀다.

 

 아아, 수... 숨을 쉬기가 힘들어.

 호흡을 멈춘 셀린느의 얼굴이 토마토색이었다가 푸른곰팡이색이었다가 결국 송장처럼 하얘졌다.

 데몬의 눈동자가 짙은 회색으로 가라앉았다.

 

 “셀린느, 그대 앞에 악마가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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