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이!”
난 방문을 닫고 들어왔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밖에서는 윤이 소리치고 있었다.
“후...”
난 순이 너무 답답했다.
분명 뭔가 다른 말을 하려했던 게 분명했다.
그래도 난 이미 그 말을 한번 했으니 기다리기로 했다. 순이 용기 내어 내게 그 말을 할 때 까지...
“이제 그 말이 얼마나 힘든지 알겠지?”
내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순을 보니 약간은 고소했다.
책상에 앉아 책을 다시 봤지만 순과 놀러가는 내일이 기다려져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그냥 책을 덮고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워있으니 몸이 나른해지는 게 기분이 무척 좋았다.
“지선아!”
“엄마?”
방문 밖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고, 목소리를 따라 방문을 여니 소희가 칼을 들고 엄마의 배를 찌르고 있는 게 보였다.
“야!”
“왔네?”
소희가 나를 보고 기분 나쁘게 웃고 있다.
그 웃음에 참을 수 없던 난 소희에게 달려들었다.
“안 돼!”
그때 뒤에서 순이 나를 꽉 안았다. 나는 발버둥을 쳤지만 그의 품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엄마!”
눈을 뜨자 나는 내 방이었고 주변을 둘러보니 내 손을 꼭 잡고 침대에 걸쳐 있는 순이 보였다.
방금 전까지 보였던 그 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놀래서 깨자 순도 놀랐는지 꼭 잡은 손에 힘을 주며 깼다.
“지선아 괜찮아?”
“순? 왜 여기 있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잠에서 깨서 거실로 나왔는데 네가 방에서 괴로워하는 소리를 내고 있더라고. 그래서 들어왔어. 미안해 놀랐어?”
“아냐 괜찮아.”
방금까지 악몽을 꿔서 콩닥거리던 가슴이 순의 손이 느껴지자 점점 진정 되는 게 느껴졌다.
“악몽 꿨어?”
“응... 그 날이 보였어.”
“지선아...”
“괜찮아. 순이 이렇게 꼭 잡아주니까.”
난 다시 침대에 누웠다.
순을 다시 방으로 돌려보내 편하게 자라고 하고 싶었지만 혼자 있기 무서워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내손을 잡아주는 순의 손은 너무 따뜻하고 편한 했다.
그렇게 난 다시 잠이 들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잠에서 깨니 옆에서 잠들어 있던 순이 없었다.
“언제 나간거지?”
‘우리 그래서 어디로가?’
핸드폰을 보니 혜영이가 문자를 보냈었다.
“아 맞다. 깜빡했네.”
머리를 긁적이며 방문을 여니 윤이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윤?”
“일어났어?”
“요리도 할 줄 알아?”
“아니! 처음 해봐! 근데 어제 하루 종일 요리하는 것 만 봤거든!”
불안은 했지만 이미 저렇게 벌려놓은걸 그만하라고 할 수도 없고 그냥 두기로 했다.
“다른 애들은?”
“혼은 자기 방에 있고 순은 방금 나와서 씻으러 들어갔어!”
순이 어디를 갔나 했더니 순도 일어 난지 얼마 되지 않았나 보다.
윤은 다시 요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뭘 그리 지지고 볶는지... 그래도 냄새는 좋았다.
혼의 방문을 두드렸다.
“혼?”
“네!”
“어제 가기로 했던 거 어디로 갈지 생각해 봤어?”
“안 그래도 혜영 양과 연락 중입니다.”
“그래?”
“그런데 놀이공원이 뭐하는 곳이죠?”
“놀이공원 가고 싶데?”
“그렇다고 하는군요.”
놀이공원은 갈 시간도, 갈 돈도 없었기에 나도 한 번도 가본적이 없었다. 가보고는 싶었지만 놀이기구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었기에 약간 두렵기도 했다.
“그럼 거기가자!”
“알겠습니다.”
“근데 교육에는 놀이공원이 없나봐?”
“네. 교육에는 이런 곳이 없었어요.”
“그래?”
모든 걸 배운다고 잘난 척 하더니 그렇게 모든 걸 알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윤이 핸드폰을 보고 신기해하는 것도 그렇고 가만 보면 이 셋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가끔 내가 키우는 애들인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특히 윤은...
“밥 다 됐습니다!”
부엌에서 윤이 우리를 불러서 부엌으로 가니 식탁위에 차려진 식사는 꽤나 먹음직스러웠다. 색도 모양도 모든 게 좋았다. 냄새는 어찌나 내 코를 자극 하던지...
“오~”
“와... 악마 집에서 놀고만 있던 건 아니군요?”
나를 따라 나온 혼과 화장실에서 머리를 털며 나오는 순이 식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순이 식탁에 앉자마자 음식을 먹으려하자 윤이 순의 손을 탁 쳤다.
“아직! 사진 찍어야해!”
“뭐?”
“풉!”
윤의 귀여운 모습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어디서 본 건 꼭 따라 하려는 게 정말 애 같았다.
“그래 원래 음식은 먹기 전에 사진을 찍어야해.”
“알았어. 찍어. 맛만 없어봐라.”
윤이 공용 핸드폰을 혼으로부터 뺏어서 식탁위에 음식들을 찍고 나서야 우리는 드디어 젓가락을 들었다. 반찬은 꽤 많았다. 메인인 김치찌개 또한 잘 끓여진 것 같았다.
“와... 뭐야 너?”
김치찌개를 한 술 뜬 순이 감탄을 하며 말했다.
“오... 악마 소질 있네요. 그렇게 밥 타령을 하더니만...”
반찬을 밥에 얹어 먹은 혼도 옆에서 칭찬을 거들었다.
나도 김치찌개에 밥을 비벼 한 술 크게 먹었다.
“와... 엄마가 해준 거랑 맛이 똑같아. 어떻게 한거야?”
“에이 뭘... 그냥 본데로 했는데 이렇게 됐네?”
오랜만에 먹는 집 밥이었다. 그동안 사먹고 얻어먹고 하기만 했을 뿐 집 밥을 먹는 건 오랜만이었다.
어느새 밥공기는 비어있었다.
“잘 먹었어 윤! 설거지는 내가 할께!”
난 다 먹은 밥그릇을 들고 일어나 싱크대로 가서 말했다.
다 먹은 그릇을 설거지하고 시간을 보니 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방으로 들어가 화장품을 찾다가 어제 침대 밑에 막 쑤셔 넣은 게 생각나서 침대 밑에서 화장품을 꺼냈다.
순과 혼은 준비가 다 됐는지 거실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났다. 내가 들리지 않게 얘기를 하는 거 보니 분명 내 욕인 것 같다.
“잠깐만! 다 됐어!”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지만 그냥 말했다. 화장이 끝나고 아까 골라서 둔 옷을 입고 거실로 나갔다. 역시나 모두 준비를 끝내고 난 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가?”
윤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윤에게는 아무도 이걸 말하지 않았다.
윤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윤이 같이 가게 되면 홀수가 되어버리니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 했다.
“음... 오늘 지선이가 도서관에 간다고 해서”
“네... 오늘은 제가 갈 테니 윤은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주세요.”
순과 혼이 윤에게 말했다. 혼도 거짓말 하는 게 미안 했는지 윤을 악마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불러 주었다.
“공부하러 가는 거야? 알았어. 공부는 싫어! 지겹거든.”
다행히 윤은 속아 넘어갔다. 도서관이라는 소리에 나는 얼른 책가방을 들었다.
예쁜 원피스에 어울리지 않는 책가방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옷차림을 보면 의심해볼 많 한데 윤이 순진해서 다행이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올게!”
“갔다 올게!”
우리 셋은 혹시라도 윤이 마음 상할까. 다정하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