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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인생역정(人生歷程)
작가 : 에이바
작품등록일 : 2016.8.19

21세기에 들어서도 수구골통과 종북좌빨이라며 서로 발톱을 세우고 사는 것이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이념을 떠나서 서로를 인정하며 공존하는 사회, 인륜과 천륜으로 살 수 있는 세상 - 우리가 꿈꾸는 엘도라도이다.

 
10. 비켜선 운명
작성일 : 16-08-22 11:37     조회 : 883     추천 : 4     분량 : 5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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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산 후에 민은 자나 깨나 아기에게 매달렸다.

 그날, 운명처럼 진종일 폭우가 퍼부었다.

 약초를 캐러 간 아빠와 엄마는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동굴 속에서 밤을 지새웠다.

 문단속하고 방공호로 내려갔을 때, 민은 상후의 얼굴에 번진 눈물을 보았다.

 그 처연한 모습을 본 순간, 민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민은 상후에게서 곧 정글 속에 내동댕이쳐질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자신만이 아니다.

 한 세기가 넘도록 서구 자본주의의 수탈로 초근목피하는 인민의 모습이다.

 이념이란 무엇인가?

 왜 도란도란 행복하게 살아야 할 인민이 이념의 제물이 되어야 하는가?

 이 사람은 적군이 아니다.

 이 사람도 이념의 희생양일 뿐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민은 주저하지 않고 상후의 품속을 파고들었다.

 단 하룻밤의 일이다.

 하늘이 숙명처럼 점지해준 아이다.

 상후 씨와 나 사이에 영원한 가교가 될 소중한 아이다.

 이 아이를 위해 조국도 버렸다.

 

 민은 아기의 볼에 뽀뽀하며 환하게 웃었다.

 ‘너는 어쩌면 이렇게 예쁘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란 말을 나도 이제는 알겠구나.

 너에게서 은은한 향기가 나네.

 자스민 향기로구나.

 너를 자스민이라고 부를까?

 자스민꽃이 캄보디아말로 푸까 말리지.

 그래, 네 이름은 말리다.

 말리야, 부디 이름처럼 은은한 향기를 주위에 풍기는 풍요로운 삶이 되어라.

 네 아빠가 이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기뻐하겠니?

 아빠에게 속히 네 소식을 전해야겠구나.’

 

 민은 프놈펜 주재 한국대사관에 상후의 소재 파악을 청원하였다.

 한 달 후, 고대하던 답장이 왔다.

 ‘병장 김상후는 1972년 4월 23일, 베트남 안케패스 전투에서 사망하였음을 통지합니다.’

 무언가 잘못됐다.

 민의 부모가 부상한 상후를 집에 데려온 날이 4월 23일이었다.

 그리고 한 달을 치료받은 후, 5월 26일에 상후는 부대로 복귀하기 위해 민의 집을 떠났다.

 민은 상세한 내용을 적어서 다시 한 번 한국대사관에 상후의 소재 파악을 의뢰하였다.

 회신은 전과 같은 내용이다.

 전투 중이었기 때문에 사망 일자가 잘못 기록됐을 수는 있다.

 하지만 병장 김상후가 사망한 것은 확실하다.

 답변서에 국립묘지에 있는 상후의 묘비 전면과 후면을 찍은 사진이 동봉되었다.

 

 민은 한동안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며칠을 번민하던 민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것은 나만이 겪는 일이 아니다.

 주말마다 사이공에 있는 무료 진료소를 찾아오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 모두가 남편 잃은 여인들이고, 부모 잃은 아이들이다.

 이 끝 없는 전쟁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가정이 풍비박산 났고, 수없이 많은 사람이 가족을 잃었다.

 이것은 우리 약소국가 인민 모두가 겪는 아픔이다.

 

 민은 산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섰다.

 상후가 아버지의 등에 업혀 들어오던 날부터 쏟아지는 빗속에서 집을 떠나던 날까지, 한 달 동안 상후와 함께 하였던 시간이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무정한 사람,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그렇게 가버리다니.’

 한동안 망연히 서 있던 민이 손가락에서 반지를 뽑아 강물에 던졌다.

 상후가 남겨준 유일한 정표인 M60 탄피를 갈아서 만든 반지다.

 ‘상후 씨, 나는 이제 먼저 가버린 당신의 모습을 떨쳐 버립니다.

 당신과의 모든 사연을 이 강물에 띄웁니다.

 나는 이제 당신을 잊으렵니다.’

 

 해가 바뀌어 1975년 초가 되었다.

 캄보디아 정세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돈, 그 자체이다.

 수도 프놈펜을 포함한 중부지방은 1970년에 미국을 등에 업고 왕정을 전복한 후 크메르공화국을 설립한 론놀의 친미 세력이 잡고 있다.

 격지는 여전히 1960년대 중반부터 북베트남 공산당의 지원을 받는 캄보디아 공산당인 크메르루주가 장악하고 있다.

 특히 상후와 민이 있는 캄보디아 동북부에 위치한 라타낙끼리주에는 캄보디아 공산당인 크메르루주의 중앙본부가 들어섰다.

 상후는 라타낙끼리 주도 반룽에서 서남쪽으로 20km 떨어진 쓰레이폭 강가에서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민은 반룽에서 동북쪽으로 25km 지점인 께쫑의 자라이부족 마을에 있다.

 3년 동안 불과 45km 떨어진 한 지방에 있으면서도 상후와 민은 서로의 소식을 모르고 지냈다.

 

 4월 초순, 우기가 시작하였다.

 상후는 곧 모내기할 준비로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였다.

 빗속에 모터사이클을 타고 온 전령이 러띠 장군의 서신을 전하고 돌아갔다.

 ‘삼보, 그 동안 잘 지냈나? 오늘 저녁에 내 집으로 오게나.’

 상후는 일찍 일을 마치고 반룽에 있는 러띠 장군의 집을 방문하였다.

 러띠 장군은 마치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아들을 대하듯이 반갑게 상후를 맞아주었다.

 "삼보, 오랜만이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예, 장군.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지낼만합니다.

 다 장군 덕분입니다. 요즈음 많이 바쁘실 텐데 어쩐 일로 나를 부르셨습니까?"

 “아무리 바빠도 가끔 서로 얼굴은 보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나?

 사람이 자네처럼 일만 하려고 태어난 것도 아니고, 나처럼 싸움질이나 하자고 태어난 것도 아닌데.

 자네 본지도 너무 오래되어서 오늘은 술 한잔하자고 연락한 걸세.

 자, 앉게나. 우리 한잔하면서 이야기하자고.”

 “네. 감사합니다, 장군.”

 술이 몇 순배 돌고 나자 러띠 장군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 상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자네가 살아오면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것은 내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하네.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구별할 수 없는 세상이니까.

 특히 자네는 그 외진 곳에 있으니까 각별히 신변 안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네.

 참, 자네도 이제는 결혼해야지? 내가 참한 아가씨를 소개해 줄까?”

 "아닙니다, 장군. 나는 결혼할 생각은 없습니다."

 "자네 올해 스물다섯 살 아닌가?

 결혼할 생각이 없다니, 혹시 어디 먼 곳에 사랑하는 여인이라도 숨겨두었나?"

 상후는 계면쩍게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기울어진 술잔 위에 민의 얼굴이 그려졌다.

 뇌우를 동반한 폭우가 퍼붓던 그 날 밤, 민의 육체에서 풍기던 여인의 농익은 냄새가 다시 상후의 후각을 자극하였다.

 상후의 입술을 덮쳐 왔던 민의 끈적한 입술이 다시 살아서 강렬하게 상후의 기억을 되살렸다.

 뇌성보다도 더 크게 들렸던 민의 거친 숨결이 또다시 귓속을 파고들었다.

 때론 서서히 때론 결렬하게 상후의 전신을 구석구석 핥고 지나가던 민의 입술과 뜨거운 손길에 온몸이 새롭게 뜨거워졌다.

 ‘지금쯤 하노이에서 밤낮을 잊고 일하겠지.

 그녀의 성격으로 보아서 어쩌면 아카보 소총을 들고 정글을 누빌 수도 있다.

 보고 싶구나, 민.

 어디에 있던지 제발 무사하길 바란다.’

 

 상후의 표정이 돌아오기를 기다린 러띠 장군이 정색을 하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삼보, 자네도 짐작하겠지만, 나도 곧 여기를 떠나야 하네.

 그리고 이 정부는 그리 오래가지 못할 거야.

 이 론놀 정부는 미국의 사주로 급조된 뿌리가 없는 정부야.

 게다가 지난 4년 동안의 실정으로 민심이 이미 떠나버렸네.

 곧 남베트남이 무너질 거고, 동시에 캄보디아 중앙정부도 크메르루주 손에 들어가겠지.

 그렇게 되면 이곳 라타낙끼리는 베트남과 인접한 지역이라 자연스럽게 북베트남 군대가 손을 뻗칠 것이네.

 자네, 어쩔 텐가?

 여기보다는 북베트남군의 관심이 덜한 서북쪽으로 가는 것이 안전할 것 같은데."

 "나는 그렇다 치고, 장군은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나? 허허허, 내 걱정은 하지 말게나.

 나는 그동안 낮엔 공화국 장군이었고, 밤에는 폴포트 동지의 형제였으니까.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이 어지러운 시절에 살아남으려면 어쩌겠나?

 내가 빠일린에 있는 이응 장군에게 편지를 써줄 테니, 세상이 잠잠해질 때까지 그곳에 가 있게나."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군.”

 

 1975년 4월 중순. 론놀이 해외로 도피하고, 캄보디아 공산당인 크메르루주가 프놈펜을 점령하였다.

 곧이어 4월 30일 사이공이 북베트남군에게 함락되었다.

 라오스는 5월에 들어서 좌파가 연합정부를 손에 쥔 후, 12월에 왕정을 폐지하고 라오스인민민주공화국을 건설하였다.

 이로써 반세기에 걸친 전쟁이 끝나고 인도차이나반도가 완벽하게 공산화되었다.

 

 4년 동안 캄보디아 중부지역을 통치하던 공화정이 무너지고 크메르루주가 정권을 잡았다.

 캄보디아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과 단교하고,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 국가들과 다시 수교하였다.

 캄보디아는 4년 동안 이어오던 한국과도 단교하고 북한과 다시 국교를 열었다.

 크메르루주가 프놈펜에 입성한 4월 17일, 상후는 쏟아지는 폭우 속에 라타낙끼리를 떠났다.

 러띠 장군의 호의로 스텅뜨렝까지는 장군의 지프를 타고 갔다.

 스텅뜨렝에서 낡은 목선을 빌려 타고 강 건너 탈라바아왓으로 메콩강을 건너갔다.

 3년 전, 베트남 중부고원지대의 전쟁터를 빠져나올 때도 비가 내렸다.

 

 비야, 더욱더 거세게 퍼붓거라.

 바람에 뒹구는 낙엽과 같은 내 영육을 저 강물에 띄워다오.

 상후는 3년 만에 다시 떠돌이 신세가 된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면서 메콩강을 건넜다.

 

 연초부터 민은 더욱 라디오 뉴스에 귀를 기울여 왔다.

 전쟁이 곧 끝날 것 같다.

 3월 들어 남베트남군의 중요한 요새인 닥락성의 쁘온마트웃이 북베트남군에게 함락되었다.

 승기를 잡은 북베트남군은 연이어 꼰뚬성과 쁘레이꾸를 공격하였다.

 전의를 상실한 남베트남군은 제대로 항전도 하지 못하고 거듭하여 남쪽으로 퇴각하였다.

 이로써 베트남 중부고원지대가 완전히 북베트남군의 손에 들어갔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캄보디아에서도 이미 변방을 장악한 크메르루주가 정부군을 압박하며 프놈펜을 향하여 좁혀 들고 있다.

 날이 갈수록 민은 초조하고 불안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미 크메르루주가 라타낙끼리주의 거의 모든 지역을 점령하였다.

 자라이부족이 사는 께쫑은 북동쪽에 치우친 산골 마을이다.

 아직은 별 탈이 없지만, 언제 그들이 마을에 들이닥칠지 모른다.

 말리는 마을에 있는 아이들과 외모가 다르다.

 베트남이나 캄보디아의 다른 부족 아이들과도 다르다.

 누가 보아도 사이공 뒷골목에 있는 라이따이한과 같은 생김새다.

 크메르루주나 북베트남군이 마을에 들어오면 말리는 적군의 딸이 되고, 민은 적군의 딸을 낳은 반역자가 된다.

 4월 17일. 크메르루주가 프놈펜을 함락하였다.

 라디오에선 진종일 승전가가 울려 퍼졌다.

 민은 한시도 지체할 수가 없다.

 마음을 다잡은 민은 다음 날 두 돌 된 말리를 품에 안고 언동미어에서 쪽배를 타고 산강을 따라 내려갔다.

 산강이 북쪽에서 내려오는 콩강에 합류한 후, 30분을 더 내려가니 콩강이 메콩강에 스며드는 스텅뜨렝이다.

 민은 뱃사공에게 사정하여 메콩강 건너편 탈라바리왓에 배를 대었다.

 바로 전날, 상후가 배를 타고 건너온 곳이다.

 

 인생역정 10. 비켜선 운명. ©에이바(ABA)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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