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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인생역정(人生歷程)
작가 : 에이바
작품등록일 : 2016.8.19

21세기에 들어서도 수구골통과 종북좌빨이라며 서로 발톱을 세우고 사는 것이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이념을 떠나서 서로를 인정하며 공존하는 사회, 인륜과 천륜으로 살 수 있는 세상 - 우리가 꿈꾸는 엘도라도이다.

 
9. 새 생명의 탄생
작성일 : 16-08-22 00:43     조회 : 949     추천 : 5     분량 : 5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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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후는 농사짓기에 적합한 토양과 경사가 완만한 지형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훗날 크메르루주라고 불린 캄푸치아 공산당의 본부가 들어선 라타낙끼리는 이미 중앙정부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무법천지다.

 베트남과 인접한 서부 국경 쪽은 물론, 고산지대의 소수부족들도 대부분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러띠 장군이 지휘하는 동부국경사령부가 있는 남동부의 일부분만이 그나마 공산 게릴라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지역이다.

 상후는 어렵사리 7번 국도와 이어진 78번 국도에서 조금 벋어난 지역에 적합한 땅을 찾았다.

 쓰레이뽁강과 연결된 지류에는 넘쳐나는 맑은 개울물에 팔뚝만 한 메기와 잉어가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아름드리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찬 산림에는 온갖 새들이 지저귀고, 산토끼, 노루, 사슴, 멧돼지, 들소들이 뛰노는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상후는 개울가에 통나무로 움막을 지었다.

 러띠 장군이 보내준 쌀 두 포대와 소금 한 가마니가 전 재산이다.

 틈틈이 물고기와 날짐승들을 잡아서 훈제하거나 말려서 비축하였다.

 어느덧 8월 중순에 접어들었다.

 캄보디아사람들이 ‘우기 중의 짧은 건기’라고 부르는 비가 오지 않는 근 보름 동안 상후는 산림을 개간하였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화전이다.

 태고 이래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산림의 끝자락에 상후가 불을 지폈다.

 불어오는 남서풍을 탄 시뻘건 불길이 삽시간에 산림을 뒤덮었다.

 시커먼 연기가 태양을 가렸다.

 사나흘씩 밑동이 불에 타던 고목이 여기저기에서 쿵쿵 대포 소리를 내며 자빠졌다.

 쓰러진 고목이 불에 타면서 몇 날 몇 밤 동안 온 정글에 불의 향연을 벌였다.

 개간을 마친 상후는 소금을 담은 배낭을 메고 인근의 소수부족 마을을 돌아다녔다.

 다음날부터 볍씨를 담은 자루를 둘러멘 사람들이 상후의 집에 몰려들었다.

 이 험악한 산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소금은 황금보다도 귀중하다.

 상후는 볍씨 한 자루와 소금 한 줌씩을 맞바꾸었다.

 9월 초순, 상후는 근 100헥타르에 달하는 방대한 농지에 볍씨를 뿌렸다.

 11월 말까지 날마다 한 차례씩 비를 뿌려주는 우기가 지속하였다.

 스콜이 그치면 뜨거운 태양 빛이 대지를 달구기를 날마다 반복했다.

 하루가 다르게 싱그러운 벼포기가 쑥쑥 자라났다.

 해가 바뀌었다.

 탱탱하게 영근 벼 이삭을 간신히 지탱한 벼포기들이 산들거리는 북서풍에 너울너울 춤춘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은 벌판에 황금 물결이 출렁인다.

 곧 수확을 시작해야 한다.

 상후는 하루해가 짧은 것이 못내 아쉬웠다.

 동이 트기 전에 상후는 남폿불을 들고 들녘에 나가서 날짐승들을 쫓고 덫을 놓았다.

 상후는 자면서도 수확하는 꿈을 꾸었다.

 

 사흘 후에 벼 수확을 시작해야 한다.

 상후는 소수부족 마을을 찾아다니며 일손을 구했다.

 농사는 인근 마을 사람들이 탄복할 정도로 잘되었다.

 풍성한 수확에 설레어 상후는 새벽녘에 겨우 잠이 들었다.

 무언가에 놀라서 상후가 번쩍 눈을 떴다.

 창밖에 희뿌옇게 어둠이 걷히고 있다.

 상후는 밖으로 나와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저만치 쓰레이뽁강을 따라서 한 무리의 사내들이 몰려온다.

 상후는 개울 건너 숲속으로 몸을 숨겼다.

 얼마 후, 그들은 상후의 집 앞에 당도하였다.

 2개 소대 병력쯤 되는 공산군 게릴라들이다.

 일부는 소총으로 무장하고, 나머지는 모두 작두칼을 하나씩 들었다.

 몇몇이 흘끗 상후의 통나무집을 들여다보고, 그들은 벼를 베기 시작하였다.

 다음 날은 더 많은 병력이 투입되었다.

 사흘 만에 그들은 그 넓은 들판의 벼를 모두 거둬 갔다.

 상후는 언덕 위에 앉아서 벼 이삭이 모두 잘려나간 흉물스런 들판을 내려다보면서 허탈하게 웃었다.

 ‘어허, 수업료 한번 톡톡히 냈구나.’

 

 ***

 

 우리는 공산주의가 무엇이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른다.

 우리는 조상이 물려준 이 땅을 떠날 생각이 없다.

 우리는 이 땅에서 천주님의 뜻대로 살련다.

 너는 이미 성년이다.

 너는 네 의지대로 살아라.

 다만, 너는 자라이부족의 자랑스러운 딸이란 것을 잊지 말아라.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혼자가 아니다.

 엄마와 아빠가 항상 너를 위해 기도하마.

 민이 밤새도록 설득하였지만, 자자손손 대를 물려 이어받은 땅을 떠나는 것이 두려운 엄마와 아빠는 끝내 함께 가기를 거부하였다.

 상후가 부대로 복귀한 사흘 후에 민도 북베트남군 총사령부로 가기 위해 집을 떠났다.

 민은 하노이로 올라가는 민족해방전선 전사들 틈에 끼어들었다.

 캄보디아 시하누크빌 항구에 도착한 중국이 공여한 군수품을 북베트남으로 운반하는 대원들이다.

 민은 그들과 함께 호찌민트레일을 따라서 북쪽으로 올라갔다.

 미군의 공습을 피하고자 낮에는 정글 속에 트럭을 위장해 놓고 잠을 잔다.

 해가 떨어지면 다시 길을 떠난다.

 제작된 지 20년이 넘은 낡은 소련제 트럭은 수시로 엔진이 꺼진다.

 하노이까지 몇 날 몇 밤이 걸릴지 모른다.

 시도 때도 없는 미군의 융단폭격에 언제 생명을 잃을지도 모른다.

 하루 두 번, 구운 고구마나 옥수수로 끼니를 때운다.

 악조건 속에서도 민족해방전선 전사들은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하였다.

 

 트럭 위에 탄 민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오늘 밤도 저 찬란한 별을 보며 꿈을 꾼다.

 드넓은 벌판에 누렇게 곡식이 익어간다.

 네이팜탄과 고엽제로 만신창이 된 정글에 새롭게 녹음이 우거진다.

 그 짙푸름 속에서 온갖 산새들이 지저귄다.

 푸른 초원에 들소와 멧돼지가 뛰논다.

 시냇가에서 아기곰과 강아지가 재롱을 떤다.

 언덕배기에 있는 작은 집에는 때마다 밥 짓는 연기가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이것이 어찌 나만의 꿈이랴.

 자자손손 서구 자본주의에 착취당하여 날짐승과 같은 신세가 된 우리 인민의 꿈이다.

 

 민은 총사령부 정보국 제3과에 배속되었다.

 미국중앙정보국과 남베트남 정보부 사이에 오가는 비문을 감청하고 기록하는 임무다.

 두 명이 일개 조로 12시간씩 돌아가면서 일한다.

 조원이 몸이 아플 때는, 혼자서 24시간 동안 날밤을 새운다.

 일이 끝나면 쪽잠을 자고 일어나서 인근에 있는 병원으로 달려간다.

 병원에는 부상병들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밤낮으로 환자들이 들끓는다.

 환자들을 돌볼 손이 항시 부족하다.

 정신없이 일에 몰두하다 보니까, 어느덧 민이 집을 떠나온 지 넉 달이 지났다.

 언제부턴가 민은 종종 헛구역질하면서 속이 메스꺼웠다.

 누적된 과로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날이 가면서 복부가 팽만한 느낌이 든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집을 떠나온 후, 한 번도 달거리를 하지 않았다.

 벌써 넉 달째다.

 민은 그제야 임신이란 것을 알았다.

 몹시 기뻤다.

 사랑하는 상후 씨의 분신이 내 몸 안에 자라고 있구나.

 하지만 기쁨은 잠시뿐이다.

 곧 불안이 민을 엄습하였다.

 아직은 주위에서 눈치채지 못한다.

 곧 몸이 불면 모두가 알게 된다.

 누구의 아이라고 하나.

 상후 씨의 아이란 것을 숨길 수는 없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하는 행위다.

 또한, 아이에게도 죄를 짓는 일이다.

 따이한의 아이라고 밝힐 수도 없다.

 적군의 아이를 밴 것은 조국에 대한 반역행위다.

 민은 사이공 뒷골목과 무료 진료소를 찾아오던 따이한 아이들을 떠올렸다.

 아빠가 한국인인 아이들은 베트남 부족 아이들과는 다르다.

 얼굴 생김새가 확연히 구별된다.

 이 땅에서 이 아이는 라이따이한으로 멸시를 당하며 살 수밖에 없다.

 이 소중한 아이를 그렇게 둘 수는 없다.

 며칠 밤을 고민하다가 민은 베트남을 떠나기로 하였다.

 동료들이 내가 임신한 사실을 눈치채기 전에 떠나야 한다.

 조국이 통일될 날이 머지않았다.

 우리 베트남인민공화국의 금성홍기가 사이공 하늘에 펄럭이는 것을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모든 것을 버리더라도, 이 아이만은 지켜야 한다.

 민은 사흘 동안의 병가를 허락받았다.

 다음날 새벽, 민은 조그만 륙색 하나를 메고 하노이를 떠났다.

 민은 사령부에서 발급한 허가증을 가지고 꼬툼까지 국도를 따라 내려왔다.

 꼬툼의 강가에서 쪽배를 빌려 탔다.

 캄보디아 국경이 멀지 않은 곳까지 산강을 따라 내려갔다.

 배에서 내린 후, 민은 수비대를 피하여 산기슭을 타고 국경에 이르렀다.

 이제 서쪽으로 발을 떼면 캄보디아 땅이다.

 민은 동쪽 고향을 향하여 엎드려 절하였다.

 어머니, 아버지, 당신들을 두고 떠나는 이 불효 여식을 용서하십시오.

 지금은 상후 씨가 내게 심어 준 이 소중한 생명체를 지키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임무입니다.

 절을 마치고 일어서서 발아래 산강을 바라보는 민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언제 돌아올지 모를 조국이다.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이 될 수도 있다.

 '조국이여, 부둥켜안고 통곡하고 싶은 조국이여.

 부디 하나가 되어라.

 몸은 떠나 있어도, 마음만은 늘 너와 함께 하련다.'

 

 캄보디아 영토에 들어온 민은 쪽배를 빌려 타고 산강을 따라서 내려갔다.

 우기가 절정에 이른 시월 초순이다.

 강둑을 무너뜨릴 기세로 시퍼런 강물이 거침없이 흘러내린다.

 일렁이는 물결에 몸을 맡긴 쪽배는 가라앉을 듯하다가 솟아오르고, 솟구쳐 오를 듯하다가 내려앉기를 되풀이한다.

 하류를 향해 비스듬히 선 맹그로브들이 밀려내리는 물살과 힘겨운 몸싸움을 하고 있다.

 물결에 부서진 저녁노을이 산지사방으로 황금빛을 흩뿌린다.

 짙푸른 맹그로브숲 위에 흰 두루미들이 길쭉한 목을 뽐내며 날갯짓한다.

 황혼이 강물을 붉게 물들일 때. 배는 언동미어에 도착하였다.

 민은 물어 물어서 자라이부족이 사는 께쫑을 찾아갔다.

 부족 사람들은 집 떠났다 돌아온 제 자식처럼 민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간단한 입촌식이 거행되었다.

 ‘나는 자랑스러운 자라이부족의 딸이다.

 나는 부족의 명예를 지키고, 부족의 공동번영을 위하여 헌신하겠다.

 나는 이를 천신과 지신에게 맹세한다.’

 

 자라이부족은 공동체 생활을 한다.

 부족 전체가 함께 농사를 짓고, 가족 수에 따라서 분배한다.

 몇몇 남정네들이 사냥을 나가서 멧돼지나 노루 한 마리를 잡아 와도,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나눈다.

 마을 사람들은 임신한 민을 배려하여 들일을 시키지 않았다.

 민은 폐쇄된 학교의 교실 한 칸을 수리하였다.

 다음날부터 민은 어른들이 들일을 하는 시간에 아이들을 돌보았다.

 부족 말만 써 온 자라이부족 아이들은 캄보디아말을 하지 못한다.

 어른들도 몇몇 사람만이 캄보디아말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민은 아이들에게 캄보디아어와 영어를 가르쳤다.

 자라이부족 마을에는 의료시설이 없다.

 민의 집이 마을의 약국이며 병원이다.

 배탈이 난 아이부터 사냥하다가 몸을 다친 어른들까지 모두 민을 찾아온다.

 민은 부족한 양약 대신 산과 들에서 채취한 약초를 써서 환자들을 치료하였다.

 민의 집은 마을의 미용소다.

 자라이부족의 여인들은 전통적으로 머리를 자르지 않는다.

 치렁한 머리칼을 둘둘 감아올리고 수건으로 질끈 동여맨다.

 아낙네들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과 남정네들까지 온 마을 사람들의 머릿속에 이가 득실거린다.

 민은 사람들을 설득하여 머리를 잘라주고, 약재로 살충제를 만들어서 소독하였다.

 민은 마을 사람들의 손톱과 발톱을 잘라주고, 날마다 이를 닦고 손과 발을 깨끗이 씻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어느덧 해가 바뀌었다.

 민은 산고 끝에 여자아이를 낳았다.

 

 인생역정 9. 새 생명의 탄생. ©에이바(ABA)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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