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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겨울과 밤의 검사
작가 : Dr러다이트
작품등록일 : 2017.6.21

허망하게 무너져 내린 행복과 타오르는 복수심 사이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 해매는 검사의 이야기

 
20. 이리스의 선택 01
작성일 : 17-07-23 18:27     조회 : 312     추천 : 0     분량 : 1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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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우드가 합류하면서 아케니아제국에 속한 마법사들도 대거 합류했다.

 “이런 개인적인 용무로 사일런트 아케인과 마법병단을 부려도 되겠습니까?”

 “개인적인 용무는 아니지. 흑마법사들이 만들려는 생물병기는 아케니아에도 득 될 것이 하나 없으니까. 뭐 말년에 얻은 제자가 걱정되는 것도 있고”

 “하긴 제가 황자니까 배울 수 있었던 거지. 저 아니면 누가 아델린학파의 마법을 배우겠습니까?”

 

 스승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분명 위안거리가 되긴 하지만 그가 이끌고 온 사일런트 아케인소속의 고위 마법사들과 근접전투에 능한 마법병단의 배틀메이지부대는 3년간 시간에 쫓겨 살던 리오넬에게 심리적 여유를 주었다.

 무엇보다 마법병단의 배틀메이지들은 주기적으로 끝의 산맥을 방문해서 탐색과 마물 구제작업을 하기에 마물을 상대하는 것에도 능숙했고 초입부의 지리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잡담은 그만해 이제 거의 다 왔어”

 나리아는 수정구슬과 두개골, 두 종류의 탐색마법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었다.

 “저기 추적마법을 두 개씩이나 사용할 필요는 없지 않아?”

 크라우젤은 그런 나리아에게 또 은근슬쩍 말을 걸었다. 그는 마야의 외모를 그대로 물려받은 나리아의 매력에 홀딱 빠진 것 같았다.

 “누가 이 멍청이 좀 치워줘 짜증나니까”

 “누가 멍청이라는 거야!”

 수정구슬은 이리스가 가진 협회의 증표를, 두개골은 흑마법사의 마나를 추적하는 용도다. 혹시 모를 매복이나 함정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모두 사용하는 것이 안전했다. 아직까지는 두 탐지기가 가리키는 방향은 똑같았다. 저 멀리 산 중턱에 보이는 오래된 신전

 “......어둠의 마나가 가까워지고 있어.”

 “저쪽에서도 우릴 눈치챘나보군. 전투준비!”

 마법병단의 배틀메이지들이 정면으로 나서고 벨트리스의 엘프들이 정령과 활로 그들을 지원할 준비를 했다.

 나리아는 푸른 안광을 불태우며 부르르 떠는 두개골을 보고는 그것을 집어던지고 그들의 앞으로 나섰다.

 “......뭔가 큰 게 오고 있어! 첫 번째 공격은 내가 전부 처리할 테니까 강한 마법을 준비해”

 그녀가 감지한 어둠의 마나는 소름 끼칠 정도로 흉폭하고 끔찍한 독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래 마치......마왕이나 혹은

 캬오오오오오

 저 본드래곤 같은

 산 너머에서 솟구친 본 드래곤은 하늘 높게 날아올라 태양을 가렸다. 본드래곤의 머리를 이루는 두개골 뼈 하나하나가 광기를 머금은 검붉은 빛의 안광을 불태우며 리오넬과 일행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그나스성에서 목격된 본드래곤 보다는 작은 것 같습니다. 아마 급조된 것 일겁니다.”

 “저 녀석은 나이트블레이져!”

 리오넬은 저 본 드래곤을 ‘알고’있다. 마치 말의 갈기처럼 검붉은 빛의 불꽃을 전신에 휘감은 본 드래곤 그렇다면 이곳은......

 “제길 이리스를 데려간 건 영생의 신도가 아니라 파멸의 추종자였어!”

 “그게 무슨 소리지?”

 블랙밸런스는 하나의 조직이지만 그 구성원은 영생의 신도와 파멸의 추종자라는 서로에게 배타적인 집단으로 나뉘어있다. 마룡의 연구는 분명 영생의 신도와 관련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가 미래에 이리스와 처음 만났을 때도 영생의 신도가 이리스를 데려와서 이였기에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다.

 그것과는 별개로 귀족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는 영생의 신도와 달리 파멸의 추종자는 귀족들을 증오하기 때문에 그들이 머무는 장소는 이 끝의 산맥 같은 외진 장소가 많았다. 여태까지 이리스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던 것도 이해가 되었다.

 “조심해야 합니다! 나이트블레이져는 파멸의 추종자의 수장, 오르반 비제네르가 부리는 본드래곤입니다.”

 파멸의 추종자가 영생의 신도보다 더 위협적인 점이라면 외진 장소에 사는 만큼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언데드를 마구잡이로 늘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오르반이 있다면 여기가 파멸의 추종자의 본거지일 것이다. 그리고 정말 재수 없다면 블랙밸런스의 수장인 ‘그’도 있을 것이다.

 “일단은 저걸 막고 생각해야겠군.”

 녹음이 우거진 산맥이 순식간에 망자의 썩은 뼈와 살점이 가진 탁한 흰색과 불결한 검은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곳에 있었다.

 어둠속에서 한 없이 서로를 닮은 목소리들이 울려 퍼진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감정들은 전부 틀렸다.

 ‘난 자유로워지고 싶었어. 하지만 난 날지 못했어. 부러진 날개를 가진 체 날아오른 새는 지상으로 추락했어.’

 운명에 대한 슬픔과 한탄으로 가득 찬 감정이 어둠속으로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울림이 멎을 무렵 다음 목소리가 말문을 열었다.

 ‘난 실망했고 원망스러워했다. 선한 이는 언제나 먼저 죽고 탐욕스럽고 영악한 존재들은 그들의 희생을 발판삼아 부와 권력을 누리지 그게 인간의 본성이다. 그래서 난 그들의 날개를 꺾고 부러트려서 다시는 날지 못하게 만들었다.’

 증오와 분노로 가득 찬, 짐승과도 같은 목소리 하지만 그 본래의 음색이 첫 소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그녀도 잘 아는 누군가와 정말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난......진심으로 나를 이해하고 공감해줄 사람이 필요했어. 아무리 친절한 이들이라도 결국 그들과 나는 본질적으로 달랐으니까. 그래서 도망쳤어. 마을을 떠나, 도시를 떠나, 바다를 건너서......그리고......그리고......’

 마지막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하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만큼은 누구인지 알고 있다. 마지막 목소리의 주인은 그녀의 어머니인 마야다.

 “나한테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거야? 엄마”

 

 죽은 물고기가 수면위로 떠오르는 것처럼 이리스의 모습이 어둠속에서 떠올랐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밖에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의식이 없었다. 목소리가 보여주는 악몽과 이 칠흑 같은 어둠속을 헤맬 뿐

 하지만 오늘은 손님이 있었다.

 

 “선택의 시간이야”

 이리스의 눈앞에 한명의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태까지처럼 모습을 감추고 속삭이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눈을 마주보고 서 있었다. 소녀는 마치......어린 시절의 자신과 꼭 닮은 것처럼 생겼다.

 “비웃으러 온 거야? 너희들의 말을 듣지 않아서 이렇게 된 거라고”

 “우리들은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것은 너의 몫이지”

 반대편에서 노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늙은...아니 늙었다는 말에는 어폐가 조금 있다. 새치가 살짝 섞인 검은 머리, 겉보기로는 쉰 정도 되었을까? 아니 신에게 나이를 따지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만 그래 만약 자신이 평범한 사람처럼 나이를 먹어서 50대가 된다면 딱 저 모습이 될 거라고 생각되는 그런 모습이었다.

  “내가 한 일은 길을 알려줄 뿐 선택하는 것은 언제나 너였어.”

 “책임도 권리도 모두 너의 것이었지”

 “틀린 말은 아니네......하지만 이제 지쳤어 선택을 하는 것도......그리고 살아있는 것도 괴로워하는 것도”

 이리스는 두 사람이 없는 어둠속으로 발걸음을 옮기려했다.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제자리 걸음을 할 뿐 에시디아의 형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이리스는 주저앉아 버렸다.

 “어째서 나만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거야! 어째서 나만 이렇게 불행한 거냐고!”

 “불평해도 소용없어”

 “그것은 우리가 정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번엔 또 뭐야?”

 “선택해라”

 “뭘 선택하라는 거야? 구차한 삶과 죽음?”

 이리스는 비아냥거리며 말했지만 그들은 여느 때보다 더 진지했다.

 “꿈”

 “그리고 현실”

 소녀와 노파는 양손으로 빛과 어둠을 만들어냈다.

 “너희는 이걸 선과 악이라고 부르지, 그러면 이건 뭘까?”

 빛은 선, 어둠은 악

 빛과 어둠이 합쳐져서 흑백의 그림이 되었다. 이리스, 자신의 자화상이다. 상처입고 괴로워하던 어린 시절, 복수심에 불타며 광기를 흩뿌리던 용병시절, 자유를 갈구하고, 또 후회하는......지금의 그녀다.

 “이건 선일까?, 아니면 악일까”

 “나는......나는......”

 선일까? 아니면 악일까? 모르겠다. 그런 고민을 노파는 가볍게 일갈했다. 이리스의 그림은 물거품처럼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전부 부질없는 일이야, 선과 악은 인간이 만든 기준이다.”

 “모호하고 불확실하고 불완전해”

 “클클클 그것은 우리조차 마찬가지니까”

 그녀는 다시 소녀와 노파로 나뉘어서 노래를 부르듯이 말을 이었다.

 “기쁨이 선이면 슬픔이 악일까?”

 “용기가 선이면 두려움은 악일까?”

 감정으로 선악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그렇기에 복수심과 증오조차 그것자체만으로 선도 악도 아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착한 일이 없으면 나쁜 일도 없을 거야”

 “흑과 백, 색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형태도 의미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지”

 어둠속으로 녹아내리듯이 두 신의 형상은 사라졌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들려왔다.

 “그러니까 선택해 선과 악이 아닌 흑과 백도 아닌 꿈과 현실을”

 “껍질을 깨고 나오거나 아니면 영원한 꿈을 꿀 시간이다.”

 “어느 것을 선택하든지 그건 너의 자유야”

 

 어둠을 가르고 빛이 내려와 Y자 형태의 두 갈래 길이 나타났다.

 오른쪽에서 다시 어린 소녀가 나타났다. 어린 시절의 이리스가 그곳에서 입을 열었다.

 “눈 아래 묻힌 씨앗, 끝나지 않는 꿈, 이 길을 걸으면 괴로운 것들은 전부 외면해도 괜찮아 너에게는 행복한 일만 남게 될 거야”

 왼쪽에서는 노파가 등장했다.

 “이 길을 고른다면 넌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탄생의 환희, 시련의 고통, 완성의 기쁨과 죽음의 슬픔까지도”

 아직 저들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하나는 알 것 같다. 아마 이것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을 갈림길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나는......이 길을 선택 하겠어”

 이리스는......오른쪽 길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괴로운 일은 이제 전부 잊어버리고 싶다. 아픈 것도 싫은 것도 전부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 끝나지 않을 영원한 꿈......즐거운 일만 남는 다면 더 이상 이렇게 괴로워할 필요도 없겠지

 왼쪽 길은 고르고 싶지 않아. 가시밭길을 걸으며 괴로워하는 것도 누군가가 곁에서 죽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이젠......이젠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포기하지 말아요! 당신을 날개는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 거죠!”

 정체모를 외침과 함께 갑자기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몰려들었다. 밝은 빛은 그녀가 서 있던 갈림길조차 날려버렸다!

 “흐엑?”

 “무, 무슨”

 흘러내는 빛의 격류가 두 에시디아를 저 멀리로 날려 보냈다.

 신조차 당황시킬 정도로 갑작스러운 사건에 이리스조차 어안이 벙벙해졌다. 빛의 격류가 약해질 때쯤에 한 명의...천사가 나타났다!

 “시공을 뛰어넘는 사랑의 천사! 스텔라 등장!”

 바다의 푸름을 그대로 가져다 칠해놓은 듯 푸른 머리와 눈동자 하지만 그와 상반되게 그녀의 등에 돋아난 날개와 머리위의 고리는 타오르는 불꽃처럼 진홍빛을 띠고 있었다.

 얼굴 자체는 별다른 특징 없이 평범해 보이는 소녀였지만 등장이 워낙 화려하다보니 임팩트가 강했다.

 “누, 누구야?”

 “대답하세요. 당신의 날개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거죠? 저 하늘을 날기 위해서 아닌가요?”

 “하, 하지만 난 날 수 없어”

 “이걸 보세요.”

 

 스텔라가 손짓하자 공간이 갈라지고 다른 풍경이 모습을 드러났다.

 “이건......리오넬이랑......나리아?”

 그곳에는 그들이 있었다. 벨트리스의 엘프들과 그녀와 크게 혹은 작게나마 인연이 닿아있는 사람들......그들은 흑마법사들과 싸우고 있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저 건물은......설마 이곳?”

 이리스는 그곳을 향해 손을 내뻗어보지만 내뻗은 손은 닿지 못하고 마물의 그것처럼 기괴했다. 마족화가 진행되어 흉하게 변해버린 몸......

 “나는......나는 갈 수 없어......”

 “포기하지 마세요. 다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하지만 이런 꼴로는......이게 내 운명인 걸”

 덥썩

 스텔라는 이리스의 양 어께를 붙잡았다. 푸른색으로 선명하게 빛나는 눈동자에는 그녀에 대한 혐오감이나 불쾌함은 먼지 한 톨 만큼도 없었다. 있는 것이라곤 인간을 향한 무한한 믿음과 사랑뿐. 그저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자신에게 보내는 용기와 의지가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다.

 “분명 바꿀 수 없는 운명도 있어요. 해야만 하는 일도 있지요. 하지만 인간은 그중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길을 위해 노력하고 선택해요. 설령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던 일이라고 해도 그걸 보고 어리석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아요.”

 샤악

 

 어느새 얼룩처럼 번져오던 어둠이 칼날을 뻗어 와서 스텔라를 두 동강 내었다. 다시금 에시디아의 분신이 나타났다. “방해는 거기까지야.”

 “켈라인의 종아 이곳은 나의 영역이고 그것은 그녀의 선택이다. 누구의 간섭도 허락하지 않는다.”

 어둠은 스텔라를 난도질해서 고깃덩어리로 만들었지만 그것들은 붉은 빛에 감싸이더니 순식간에 다시 원래 스텔라의 형태로 재생했다.

 “아프잖아요!”

 “거슬려”

 “선택을 방해받은 것은 정말이지 좋은 기분은 아니군.”

 에시디아는 스텔라를 경계하면서 어두운 기운을 불러들였지만 되살아난 천사는 신에게 반항하기보다 설득하는 방법을 택했다.

 “미숙한 아이의 선택에는 어른의 도움이 필요한 법이에요. 당신도 그녀가 올바른 길을 걷는 것을 원하잖아요?”

 “으음......틀린 말은 아닐지도”

 “그래 너의 개입을 인정하겠다. 하지만 신기하구나. 이곳은 나의 영역일 텐데?”

 “사랑의 힘이에요! 사랑만 있다면 공간도 시간도 초월할 수 있다고요!”

 갑자기 다시 공간이 갈라지며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대뜸 스텔라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남의 영역에서 무슨 행패야!”

 “아앗!”

 “중요한 순간을 방해했군. 미안미안 이 녀석은 데리고 돌아갈게”

 그는 사냥감을 들어 올리듯 스텔라의 목덜미를 붙잡고 자신이 나왔던 균열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떠올리세요. 당신의 날개는 무얼 위해서 존재하는지! 불가능한 일이라도 시도해 볼 수는 있어요!”

 목덜미를 붙잡힌 체 끌려가는 와중만 아니라면 정말 멋진 대사였을 텐데......이리스는 끌려가는 스텔라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그래 거기까지......나도 한 마디만 하자면 시련을 이겨낸 인간은 성장한다. 시련의 막바지에 와서 포기하는 건 너무 아깝지 않나?”

 “앗! 그거 제가 먼저 말하려고 했던 건데”

 “시끄러 다른 놈들한테 민폐나 끼치고 다니는 녀석이”

 “흥 다른 천사도 없는 주제에!”

 “에휴~”

 두 존재의 퇴장은 갑자기 내리고 사라지는 한여름의 소나기처럼 소란스럽고 신속했다.

 “저들은 누구야?”

 “고통과 시련, 현재와 여름”

 “켈라인과 그의 천사 리나 아스테다.”

 “리나 아스테? 아까는 스텔라라고 했던 것 같은데?”

 에시디아는 어둠을 이용해서 빛을 몰아내려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녀가 남기고 간 빛이 쉽사리 없어지지 않았기에 어둠으로 다시 갈림길을 만들어냈다. 처음 만들었던 갈림길과 색이 반전되어 있어서 에시디아의 모습이 더 뚜렷하게 느껴졌다.

 “둘 다 그녀의 이름이야”

 “살아있던 ‘시간’은 ‘리나’이지만 의미 있는 ‘순간’은 ‘스텔라’였지 큰 차이는 없다.”

 인간시절의 이름에 대한건가?

 “그건 그렇고 뭔가......인간적인 느낌이네.”

 잠깐이나마 신을 몰아낼 수 있는 천사라니

 그녀는 단순히 신과 천사의 관계치고는 엄숙한 분위기가 없어서 한 소리였지만 이리스가 한 말을 자신이 약하다는 소리로 받아들였는지 소녀의 형상을 한 에시디아는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정확하게 따지면 여긴 너의 내면세계지 우리의 영역이 아니야”

 “우리가 가진 힘은 분명 인간의 잣대로 잴 수 없는 힘이지만 그렇기에 인간계에서 많은 제약을 받지”

 “나는 다른 신보다 그게 특히 심해”

 “구체적인 믿음은 하나의 형상, 불확실하기에 두 개의 형상”

 

 인간이 가진 신앙심은 신의 형상을 결정한다. 그래서 죽음을 경험해본 인간이 없기에 죽음을 뜻하는 그녀의 이미지는 불확실하다. 죽음을 단순히 끝으로 보는 이들은 에시디아를 노파의 모습으로 이해하고 죽음 후의 새로운 탄생을 믿는 이들은 그녀에게 어린 소녀의 형상을 투영했다.

 “그래서 어떤 길을 고를 거야?”

 “뭐 저 아이가 끼어든 시점에서 이미 답은 정해진 것 같지만”

 이리스는 노파의 형상이 있는 왼쪽 길을 선택했다.

 “후회하진 않아?”

 “후회하지 않겠나?”

 “지금은 이 길이 옳다고 생각해”

 나를 사랑해주는......내가 보고 싶던 이들이 나를 찾아서 여기까지 와 주었다. 그런데 조금 흉측해지고 괴롭다고 혼자 이렇게 주저앉아있을 수는 없다.

 아직 해보지 않은 일이 많다. 소중한 사람들과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아무생각 없이 햇빛을 쬐며 풀밭에 드러눕는 다던가

 이런저런 케이크나 과자 따위를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먹는다거나

 세상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각지의 문화를 체험해보는 것도 괜찮다. 기회가 되면 남대륙도 꼭 한번 가보고 싶다.

 또 예쁘게 차려입고 연회에 참가해서 춤춘다든가

 ‘아 춤추는 법은 모르니까 그건 빼자’

 그리고......좋아하는 사람과 결혼도 해보고 싶다.

 “지나간 일은 어차피 변하지 않아. 하지만 바로잡을 순 있겠지. 그렇지?”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아프고 괴로우며 복수심과 죄악으로 덮인 기억들을 이제 정면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재미없는 이유야”

 “재미있구나.”

 “하지만 맞아 첫 번째 단추가 어긋나더라도 고치는 건 충분히 가능해”

 “모든 단추가 틀어졌다고 해도 만회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

 소녀가 있던 갈림길은 빛 아래 점점 희미해지며 사라졌다. 노파가 있던 갈림길도 점차 사라졌지만 그것은 검은 기운이 되어서 이리스에게 스며들었다. 미지의 힘이 그녀의 정신을 충만하게 만들었다. 내면세계에 갇혀있던 영혼이 다시 육체와 이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만류귀종 모든 길은 마지막에는 하나로, 너에게 주어질 힘은 그 이치를 따라서”

 “이 길을 선택했다면 삶과 죽음이 모두 꿈결과 같아졌을 텐데”

 “생사지몽 하지만 그 길은 추락의 반복이었겠지”

 이리스는 잠깐 생각을 하는 가 싶더니 에시디아에게 질문했다.

 “예전에 너희들은 나에게 과거를 받아들이게 하려 했었지? 내가 꿈이 아닌 현실을 택하기를 원했다면 어째서 선택하라고 한 거야?”

 “네가 꿈을 택한다면 더 이상 내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 길이 잘못된 길은 아니다. 굳이 그 길을 잘못이라 한다면 너에게 그 길을 선택하게 만든 환경의 잘못이겠지”

 

 에시디아의 형상도 점차 희미해졌다.

 “썩어가는 시체에도 대지에 뿌려진 씨앗에도 각자의 의미가, 이유가 있다. 그래서 과거를 받아들이고 다음 시작으로 나아간다. 그것도 하나의 길”

 “외면하는 것도 나쁘진 않아. 일기장이 가득 차면 바꿔야 하잖아? 괴로운 것들은 전부 낡은 일기장과 버려버리고 새로 시작할 수도 있지 이것도 하나의 길이야 딱 그 정도의 차이”

 “그래서 내가 성녀가 되면 해야 하는 일은?”

 이리스의 질문에 대한 에시디아의 대답은 굉장히 추상적이었다.

 “내가 관장하는 영역은 인간들이 말하는 단순한 죽음이 아니다. 끝과 새로운 시작을 연결하는 그 간극”

 “우리는 과연 하나의 죽음일까? 아니면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는 생명일까? 그런 건 네가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그게 우리의 뜻”

 “네가 짊어지고 가야할 의무는 단 하나 흐름을 유지하는 것”

 “우리가 관장하는 것은 끝, 죽음이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

 에시디아의 사제가 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에시디아의 권능을 바탕으로 영혼을 대가로 한 계약을 주관하거나 원한의 무게 때문에 흐름으로도 마계로도 돌아가지 못한 영혼을 흐름으로 회귀시키는 것, 죽은 이의 장례 등이 그들의 주 업무이다.

 이리스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렵게 말하지 마”

 “중간계에 남은 망령들을 흐름으로 돌려보내고 흐름이 혼탁해지지 않도록 큰 전쟁을 막아줘. 나머지는 네가 원하는 대로”

 “우리의 뜻에 따라 움직여주면 더 좋겠지만 그것은 바램 일 뿐 명령도, 부탁도 아니다.”

 언데드는 지상에 남은 오래된 영혼 그것을 흐름으로 되돌리는 것은 순리다. 큰 전쟁을 멈춰달라는 것은 한 번에 너무 많은 영혼이 죽을 경우 흐름이 불순해지고 탁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밖에 바라는 것이 없다는 것은 너무 제약이 없었다.

 “아이에게 일일이 시킬 일을 정해준다면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걸 그것보다는 잘못되더라도 스스로 선택 하는 게 좋아”

 “맹목적인 믿음은 거짓된 신앙과 다를 바 없지 우리들은 단절의 시간동안 그것을 직접 경험했었다.”

 애초에 에시디아가 만들어낸 이종족만 해도 인간과 대립하는 마족이 아니던가?

 다른 신이 만들어낸 이종족과 신을 모시는 사제들간의 관계 고려하면 같은 신을 모시는 사제와 이종족이 대립하는 것은 기이한 일이지만 에시디아의 신도들은 노파와 소녀, 그녀의 두 외형이 가진 이중성 때문에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의 공존으로 받아들였다.

 그랬기에 에시디아의 신도들은 언데드는 부정하지만 마족과 흑마법사의 계약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자 그럼 이제 일어나 새로운 선택을 할 시간이야”

 “허락되지 않은 생명을 눈앞에 두고 넌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서서히 육신이 희미해진다. 드디어 이 꿈속에서 깨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너의 날개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니?’

 ‘넌 무엇을 위해 날개를 원하느냐?’

 에시디아의 목소리와는 다른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요람 속에서 잠이 드는 것처럼 서서히 눈이 감기고 어둠이 찾아오고 있었다.

 “날개라는 건 날기 위해 존재하는 거잖아?”

 ‘그래 그거면 충분해’

 이리스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대답이지만 그 대답은 ‘그녀’에게는 퍽이나 즐거운 듯 화답하는 목소리는 만족스러움이 느껴졌다. 이젠......꿈에서 깨어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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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20. 이리스의 선택 01 2017 / 7 / 23 313 0 10231   
62 19. 별의 집결 04 2017 / 7 / 23 285 0 11934   
61 19. 별의 집결 03 2017 / 7 / 23 307 0 8482   
60 19. 별의 집결 02 2017 / 7 / 23 308 0 5304   
59 19. 별의 집결 01 2017 / 7 / 22 323 0 6992   
58 18. 엇갈림 05 2017 / 7 / 22 319 0 9357   
57 18. 엇갈림 04 2017 / 7 / 22 282 0 8036   
56 18. 엇갈림 03 2017 / 7 / 22 299 0 6871   
55 18. 엇갈림 02 2017 / 7 / 22 306 0 8294   
54 18. 엇갈림 01 2017 / 7 / 22 301 0 6011   
53 17. 교감 04 2017 / 7 / 22 307 0 7413   
52 17. 교감 03 2017 / 7 / 22 291 0 7954   
51 17. 교감 02 2017 / 7 / 22 309 0 6995   
50 17. 교감 01 2017 / 7 / 22 310 0 4587   
49 16. 이리스의 각성 03 2017 / 7 / 22 301 0 8440   
48 16. 이리스의 각성 02 2017 / 7 / 22 298 0 6314   
47 16. 이리스의 각성 01 2017 / 7 / 22 313 0 6204   
46 15. 검은 용의 이름 03 2017 / 7 / 14 307 0 8214   
45 15. 검은 용의 이름 02 2017 / 7 / 14 288 0 6637   
44 15. 검은 용의 이름 01 2017 / 7 / 14 293 0 4524   
43 14. 과거 미래 그리고 현재 02 2017 / 7 / 9 297 0 7511   
42 14. 과거 미래 그리고 현재 01 2017 / 7 / 9 317 0 7569   
41 13. 새로운 시작 03 2017 / 7 / 9 297 0 10812   
40 13. 새로운 시작 02 2017 / 7 / 2 321 0 6191   
39 13. 새로운 시작 01 2017 / 7 / 1 310 0 4296   
38 12. 추락 03 2017 / 7 / 1 321 0 8528   
37 12. 추락 02 2017 / 6 / 26 303 0 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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