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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인생역정(人生歷程)
작가 : 에이바
작품등록일 : 2016.8.19

21세기에 들어서도 수구골통과 종북좌빨이라며 서로 발톱을 세우고 사는 것이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이념을 떠나서 서로를 인정하며 공존하는 사회, 인륜과 천륜으로 살 수 있는 세상 - 우리가 꿈꾸는 엘도라도이다.

 
8. 정착과 변신
작성일 : 16-08-21 20:04     조회 : 895     추천 : 5     분량 : 5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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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베트남전쟁에 70만 톤 이상의 폭탄을 투하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전 유럽에 떨어진 폭탄의 2배가 넘는 엄청난 양이다.

 특히 1965년부터 미국 내의 반전운동이 거세게 몰아치자, 전쟁을 조기에 끝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미국의 위정자들은 더욱더 많은 양의 폭탄을 사용하였다.

 그들은 전쟁 당사국인 북베트남뿐만 아니라 인접한 캄보디아와 라오스에도 목표물을 설정하지 않은 채 무작위로 폭탄을 투하하였다.

 이 때문에 베트남은 물론 캄보디아와 라오스에서까지 수백만 명의 양민들이 애꿎은 죽임을 당하거나 불구가 되었다.

 

 상후는 깊은 잠을 자지 못하였다.

 잠시 자다가 눈을 뜨면 생각을 이어가기를 반복하였다.

 어느덧 동녘이 불그스름해지면서 어둠이 조금씩 걷히기 시작한다.

 이장수 상좌의 말대로라면 오늘 밤에는 국경을 넘어서 캄보디아 영토에 들어갈 수 있다.

 상후는 일어나서 다시 서쪽을 향하여 걷기 시작하였다.

 붉은빛으로 누리를 밝히는 동녘과는 달리 상후의 마음은 처연하기만 하다.

 내 인생이 바람에 뒹구는 저 낙엽과도 같구나.

 불의에 항거하기 위하여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그 결과, 타의에 의하여 군에 입대하고 월남전에 참전하였다.

 2년 동안 크고 작은 전투에 참전하고 귀국선을 타기 직전에 가장 치열한 전투에 투입되었다.

 총상을 입고 급류에 휩쓸려 죽을뻔한 목숨을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살려주었다.

 베트콩에게 체포되고 북베트남군에게 인계된 다음에 북송 직전에 북한군 장교의 도움으로 탈출하였다.

 이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발걸음을 떼면서 캄보디아라는 낯선 나라로 향하고 있다.

 이것이 숙명인가.

 저만치 바리케이드가 산비탈을 깎아 만든 도로를 가로지른 모습이 내려다보인다.

 바리케이드를 중심으로 양쪽에 나무판자로 어설피 지은 초소가 고즈넉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국경이다.

 드디어 베트남-캄보디아 국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

 캄보디아 영내에 있는 호찌민루트를 지나야 비로소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의 시야에서 벋어날 수 있다.

 상후는 쉬지 않고 서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산자락에 펼쳐진 커피 농장으로 내려갔다.

 폭격을 맞지 않은 자리에 남아 있는 커피나무에서 향긋한 냄새가 퍼져 나온다.

 아침이슬에 흠뻑 젖은 순백의 커피 꽃이 자못 애처롭다.

 흰색은 순결이다.

 아침이슬은 여인이다.

 아침이슬을 머금고 있는 커피 꽃은 순결한 여인처럼 가녀리고 애잔하다.

 얼굴 위에 뜨거운 눈물방울을 떨어뜨리던 민의 모습이 떠오른다.

 민이 보고 싶다.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애써 웃음 짓던 그녀의 얼굴이 그립다.

 얼굴을 감싸 주던 그녀의 따스한 손결이 그립다.

 폐부 깊숙이 밀려들던 그녀의 뜨거운 숨결이 그립다.

 얼굴을 스치던 그녀의 치렁한 머릿결이 그립다.

 활화산같이 뜨겁게 타오르던 그날 밤 그녀의 나신이 그립다.

 상후는 한나절을 더 걸었다.

 오야다오를 지나서 보께우 사거리에 이르렀다.

 국경에서 이미 25km를 더 들어왔다.

 이미 호찌민루트를 지나서 15km를 더 캄보디아 영내로 들어왔다.

 계속 서쪽으로 가면 반룽이다.

 반룽은 라타낙끼리의 주도 룸팟이 미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후, 라타낙끼리주의 새로운 주도가 되었다.

 오른쪽으로 돌아서 북쪽으로 가면 민과 같은 자라이부족이 사는 께쫑에 이른다.

 께쫑에서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베트남의 콘툼지방에서 흘러내려서 캄보디아의 라타낙끼리로 유입된 산강이 흐르는 언동미어에 다다른다.

 왼쪽으로 내려가면 베트남의 쁘레이꾸지방에서 흘러 들어온 쓰레이뽁강에 다다른다.

 사거리에 있는 검문소에 총을 든 군인이 상후를 주시하고 있다.

 상후는 두 손을 머리 뒤에 깍지 끼고 헌병 검문소로 내려갔다.

 

 ***

 

 중국이 북베트남에 공여하는 군수물자를 실은 배는 캄보디아의 남쪽 시하누크빌 항구에 도착한다.

 북베트남은 미군과 남베트남군을 피하여 베트남 국경에 가까운 캄보디아 영내에 있는 길을 통하여 이 군수물자를 북베트남으로 운송한다.

 이 길이 호찌민트레일이다.

 미군과 남베트남군은 이 길을 차단하여 물자와 인력이 북베트남으로 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1969년 초,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캄보디아의 시하누크 국왕에게 캄보디아 영내에 있는 호찌민트레일을 괴멸시키기 위하여 폭격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중립을 선언한 시하누크 국왕은 이 제안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보잘것없는 나라인 캄보디아의 승인에 연연할 미국이 아니다.

 이때부터 3년 동안 미국은 캄보디아의 전 국토에 무작위적으로 폭격을 시작하였다.

 또한, 1970년 3월에 시하누크 국왕이 모스크바를 방문한 틈을 타서 미국은 론놀 장군을 사주하여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에 성공한 론놀은 왕정을 폐지하고 친미 성향의 크메르공화국을 세웠다.

 이후 캄보디아에는 쓰나미와 같은 거대한 피바람이 몰아쳤다.

 하찮게 여겼던 베트남 전쟁에서 참패를 거듭하며 굴욕을 당한 미국의 극우 반공주의자들이 캄보디아에서 분풀이를 시작한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애꿎은 양민들이 죽임을 당하였다.

 그들은 특히 캄보디아에 거주하던 베트남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도륙하였다.

 목숨을 부지한 사람들은 국경을 넘어서 도피하였고, 크메르루주는 변방의 정글로 숨어들었다.

 상후가 베트남의 전쟁터에서 탈출하여 캄보디아에 들어온 1972년에 캄보디아에는 론놀이 이끄는 친미 성향의 크메르공화국이 정권을 잡고 있었다.

 

 해 질 무렵에 상후는 러띠 장군이 있는 동부국경사령부로 이송되었다.

 러띠 장군은 작달막하지만 다부진 체격이다.

 검게 그은 얼굴에 황소 눈알처럼 억실억실한 눈이 인상적이다.

 상후가 건네준 사진 뒷면에 이장수 상좌가 쓴 편지를 읽고 난 러띠 장군이 상후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루테난 리와 나는 모스크바 군사정보학교에서 일 년 동안 형제와 같이 지냈다.

 루테난 리는 신념이 확고하고 매우 당찬 사람이다.

 그는 좀처럼 남에게 신세를 지지 않을 사람이다.

 그가 나에게 당신을 돌봐달라고 이처럼 절절히 부탁할 때는 필시 무슨 사유가 있을 텐데, 당신은 루테난 리와는 어떤 사이인가?"

 "북베트남군에게 포로가 된 뒤, 그에게 인계되어 심문을 받았습니다."

 "그게 전부인가?"

 "그렇습니다."

 한동안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러띠 장군이 입을 열었다.

 

 "필시 루테난 리에게 무언가 말 못할 곡절이 있겠지.

 당신이 고국으로 돌아간다면, 내가 공식절차를 밟고, 프놈펜에 있는 당신네 대사관까지 안전하게 호송을 해주겠네."

 "나는 내 나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돌아가면, 나는 정보부에서 심문을 받게 될 겁니다.

 심문이 아니고 고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전투에서 낙오한 후, 북베트남군에게 포로가 됐고, 북한군 장교가 나를 탈출시켜 주었다는 사실을 토로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에 가장 강력한 반공 국가입니다.

 틀림없이 나는 전쟁터에서 북한군과 내통한 간첩죄로 극형을 받게 될 겁니다.

 나는 이미 베트남에서 두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입니다.

 내가 죽는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베트남에서 북한군과 접촉한 이유로 처형된 사실이 북한 첩보망에 포착되면, 나를 탈출시켜 준 이장수 상좌도 북한에서 반역죄로 처단될 겁니다.

 나를 구해준 은인을 사지로 내몰 수는 없습니다."

 한동안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던 러띠 장군이 돌아서서 상후의 손을 잡았다.

 "그래, 당신 말이 맞다.

 루테난 리는 훌륭한 군인이다.

 그런 사람의 앞길을 막아선 안 되지.

 그리고 당신의 그 곧은 품성도 마음에 든다.

 자, 당신은 오늘부터 캄보디아사람이다.

 필요한 서류는 내가 만들어 주지.

 이름은 삼보, 재물과 부를 뜻하는 이름이다.

 어떤가? 마음에 드나?"

 

 상후는 하루아침에 삼보라는 이름으로 캄보디아 국적을 얻고, 러띠 장군 휘하의 군인으로 적을 두었다.

 한동안 상후는 주변에서 적지 않게 따돌림을 당하였다.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에 가면 티가 나고, 시골 사람이 서울에 가면 촌뜨기라고 괄시 받는 것이 우리네 사는 세상이다.

 하물며, 나는 전혀 다른 세계에 내동댕이쳐졌다.

 나는 이들과 혈통과 사고가 다르다.

 언어와 관습도 다르다.

 내가 이들과 닮은 구석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뵈질 않는다.

 나는 마치 병아리 무리 속에 있는 한 마리 오리 새끼와 같다.

 단지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에 떠밀려서 온 캄보디아 땅이다.

 난생처음 대하는 캄보디아사람들 속에서 상후는 꽤 많이 고민하였다.

 하지만, 상후는 그다지 오래 갈등하지 않았다.

 우리는 같은 사람이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자.

 인간에겐 등급이 없다.

 이들을 나와 똑같은 사람으로 인정하자.

 혈통은 지나가는 개에게 줘 버리자.

 유색인이나 흰둥이나 같은 사람이다.

 문전걸식하는 거지나 고대광실에서 배를 두드리는 자나 같은 인간이다.

 오늘 이들이 사는 모양새가 20년 전 피란살이를 하던 우리네 모습이다.

 이제는 캄보디아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내가 이들의 말을 익히고, 이들의 사고와 관습을 이해하자.

 이들이 ‘바람 풍’을 ‘바담 풍’하면, 나도 따라서 ‘바담 풍’하자.

 고래가 육지에 사는 동물이라면, 그러려니 하자.

 닭의 무리 속에 있는 한 마리 학에겐 모든 이목이 쏠린다.

 언제든지 표적이 될 수 있다.

 이들과 똑같이 거무튀튀한 때깔을 하자.

 이들처럼 발가락에 쪼리를 꿰어 신고 정글을 누비자.

 이들 속에 섞여들어야 한다.

 이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이들이 즐거워할 때는 언제인가.

 이들은 무엇 때문에 슬퍼하고, 무엇에 분노하는가.

 이들이 슬퍼할 때, 진정으로 함께 슬퍼하자.

 이들이 즐거울 때, 함께 즐거워하자.

 이것은 이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온당한 일일뿐더러, 상후에게는 비켜 갈 수 없는 생존의 문제다.

 상후가 삼보라는 이름에 걸맞게 캄보디아사람으로 행세하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상후는 신분은 동부국경사령관 러띠 장군 직속 휘하에 있는 군인이지만 부대에 근무하지는 않았다.

 상후는 캄보디아어와 문자를 익히고 캄보디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공부에 집중하였다.

 또한, 시간이 날 때마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라타낙끼리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산지사방이 모두 울창한 정글이다.

 상후는 상원골로 피난을 갔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산비탈에 화전으로 손바닥만 한 밭뙈기를 일구었다.

 그곳에서 옥수수, 감자, 고구마 등을 수확하여 부족한 식량에 보탰던 것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명료하게 떠오른다.

 30여 년 동안 내전과 외세의 침략에 시달린 캄보디아사람들은 농사도 포기한 상태다.

 너나 할 것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초근목피하는 신세다.

 그래, 농사를 지어보자.

 결심한 상후가 러띠 장군을 찾아갔다.

 “장군, 화전을 일궈서 대규모 농사를 지어보겠습니다.”

 “자네가? 자네, 한국에서 대학교까지 다녔다면서? 농사지을 수 있겠어?”

 “농부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장군.

 살면서 농부가 되는 거지요.

 자신 있습니다.

 해보겠습니다.”

 

 인생역정 8. 정착과 변신. ©에이바(ABA)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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