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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인생역정(人生歷程)
작가 : 에이바
작품등록일 : 2016.8.19

21세기에 들어서도 수구골통과 종북좌빨이라며 서로 발톱을 세우고 사는 것이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이념을 떠나서 서로를 인정하며 공존하는 사회, 인륜과 천륜으로 살 수 있는 세상 - 우리가 꿈꾸는 엘도라도이다.

 
7. 탈출
작성일 : 16-08-21 04:02     조회 : 837     추천 : 5     분량 : 5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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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이장수 상좌가 보트카를 한 모금 더 들이켜고 말을 이었다.

 “동무는 내일 하노이로 압송된다.

 그리고 사흘 후에 평양행 비행기에 태울 예정이다.

 하지만, 내일 동무가 탈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있을 게다.

 이곳을 출발한 후 한 시간이면 몹시 휘어진 길이 나오고, 곧 삼십도 경사의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그곳에서 동무를 호송하는 차량에 무언가 사고가 터질 것이다.

 그때가 동무가 탈출할 유일한 기회다.”

 잠시 말을 끊은 이장수 상좌가 새 담배 개비에 불을 붙여서 상후에게 건네주고 책상 서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차에 사고가 나고 운전병과 호송관이 차에서 내리면, 총성이 들릴 게다.

 총소리를 듣는 즉시 차에서 내려서 서쪽 계곡으로 피해라.

 그리고 19번 도로를 따라서 계속 서쪽으로 가라.

 이틀 밤낮으로 걸으면 국경을 넘어서 캄보디아 라타낙끼리에 도착할 수 있다.

 그곳에서 동부지역 군사령부를 찾아가라.

 이 친구가 나와 모스크바 군사정보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캄보디아 동부국경 사령관 러띠 장군이다.

 내가 사진 뒷면에 러시아어로 동무를 부탁하는 편지를 썼다.

 러띠 장군에게 이 사진을 보여주면, 그가 동무를 보호해 줄 게다.”

 상후의 머리 속이 다시 뒤엉키기 시작하였다.

 ‘이 사람은 한국군 포로를 북송하려고 파견 나온 북한군 장교다.

 왜 이 사람이 나를 탈출시키려고 하는 것일까?.’

 상후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이 이장수가 말을 이었다.

 

 “동무, 아무것도 묻지 마라.

 오늘 내가 동무에게 한 말은 천지신명만이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살아서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게다.

 이 베트남 땅에서 있었던 일은 말끔히 잊고 부디 캄보디아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길 바란다. 동무, 꼭 살아남아야 한다.”

 

 멀리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려 온다. 어느덧 동녘이 뿌옇게 밝았다.

 밤새도록 오만 가지 상념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상후는 꼬박 밤을 새웠다.

 잊자. 이미 베트남 땅에서 두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모두 잊어버리고, 내 운명의 굴렁쇠가 구르는 대로 살아 보자.

 아침이 되자 어김없이 비가 내린다.

 북베트남군 연대본부를 출발한 지 거반 한 시간이 되어 간다.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긴장한 상후의 이마에서 땀이 비 오듯이 흐른다.

 고갯길을 조심해서 내려가던 차가 왼쪽으로 크게 회전하였다.

 순간 차가 한쪽으로 몹시 기울었다.

 간신히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간 운전병이 돌아와서 호송관에게 보고하였다.

 앞 타이어가 펑크 났다.

 호송관이 차에서 내려서 운전병과 함께 차 앞쪽으로 다가갔다.

 순간, 경쾌한 M16 총소리가 빗속을 뚫고 연이어 계곡에 메아리쳤다.

 땅! 땅! 땅! 땅!

 두 북베트남군이 맥없이 고꾸라지는 것을 보고, 상후는 차에서 뛰어내려 계곡으로 몸을 던졌다.

 

 이장수는 변복했던 남조선 군인 복장과 M16 소총을 땅에 묻었다.

 산에서 내려온 이장수는 부대 앞에 있는 선술집으로 들어섰다.

 손님이 없어서 을씨년스러운 홀의 구석빼기에 앉은 이장수는 베트남 독주 넵모이를 주문하였다.

 이장수는 물컵에 가득 찬 넵모이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통곡하고 싶은 이장수의 마음을 아는 듯이 하늘도 더욱 거세게 빗줄기를 쏟아부었다.

 동생 상후와 함께 했던 하룻밤이 꿈만 같다.

 기나긴 염원 후에 너무도 짧은 만남이었다.

 눈앞에 있는 동생에게 형이라고 밝힐 수 없는 기구한 운명이다.

 살아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기엔 북과 남의 이념의 골이 너무도 깊다.

 부디 무사히 국경을 넘어가서 잘 살기를 바랄 뿐이다.

 이장수는 두 번째 넵모이 한 컵을 단숨에 들이켰다.

 

 흐릿해진 이장수의 눈앞에 대동강가에서 죽어가던 그를 살려준 양아버지 리필곤 장군의 얼굴이 떠올랐다.

 너는 오늘부터 내 아들이다.

 오늘부터 네 성은 리씨다. 네 이름은 장수, 리장수다.

 또한, 너는 자랑스러운 우리 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아들이며, 위대하신 김일성 어버이 수령님의 아들이다.

 

 빗줄기가 점차 굵어지더니 순식간에 폭우로 변했다.

 앞을 분간할 수 없는 빗속에서 상후는 미친 듯이 계속 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른 방법이 없다.

 오직 탈출 현장에서 조금이라도 더 멀어져야 한다.

 다시 그들에게 포로가 되면 총살형을 면치 못할 것이다.

 현장에서 사살될 수도 있다.

 상후는 북베트남군이나 베트콩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19번 국도의 약 100m 북쪽의 산기슭을 택하였다.

 돌부리와 나뭇등걸에 걸려서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고, 몇 미터씩 미끄러지면 또다시 기어올라와서 쉬지 않고 앞으로 나갔다.

 땅거미가 내려앉을 때쯤 아스팔트 도로가 상후의 앞을 가로막았다.

 동서로 이어지는 19번 국도를 남북으로 가로지른 14번 국도다.

 그렇다면 이곳은 남베트남군 제2군단이 있는 쁘레이꾸다.

 남베트남군 초소를 찾아갈까?

 상후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서쪽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이곳은 아군과 적군을 명확히 구별할 수 없는 복잡한 전쟁터다.

 남베트남군 속에도 적지 않은 베트콩이 신분을 위장하고 잠입해 있다.

 남베트남군 초소를 찾아간다고 해서 신변이 안전할 수는 없다.

 비가 그쳤다.

 폭우가 먼지를 씻어낸 신선한 대기가 폐부 깊숙이 밀려든다.

 무수한 별들이 영롱하게 밤하늘을 수놓는다.

 상후는 별빛에 흠뻑 취하여 잠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무아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곧 정신을 차린 상후는 방향을 잃지 않으려고 북극성을 찾았다.

 북두칠성의 아래쪽 국자 모양의 6번째 별과 7번째 별의 거리를 다섯 배로 연장한 곳에 있는 별이 북극성이다.

 북극성을 오른쪽에 두면 정면이 서쪽이다.

 그런 상태로 계속 가면 서쪽에 있는 캄보디아 국경에 다다를 수 있다.

 촌각을 다투어 국경을 넘어가야 한다.

 캄보디아 영토에 들어서야만 이 생지옥 같은 전쟁터를 벗어날 수 있다.

 대나무 지팡이로 앞을 헤치고 나가면서 상후는 이장수 상좌를 떠올렸다.

 상후가 탈출할 때 계곡에 울려 퍼진 총소리는 분명히 M16 총성이다.

 이장수 상좌가 그곳에 매복하였다가 호송관과 운전병을 저격한 것이 틀림없다.

 안케패스를 관할하고 있는 한국군에게 피습당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M16소총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는 한국군 포로를 북송하기 위해 파견된 북한군 장교다.

 무엇 때문에 그가 아군인 북베트남군을 사살하면서까지 나를 탈출시켜 주었을까?

 

 일제치하에서 해방되면서 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되고 한국전쟁을 겪은 후로 대한민국 정부는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극에 달한 반공교육을 국민에게 주입해 왔다.

 북한군은 모두 빨갱이고 지구상에서 쓸어버려야 할 종자다.

 오죽하면 군대에서 아침점호 때마다 외치는 구호가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공산당!"이다.

 북한의 사상교육도 이에 못지않다.

 36년 동안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수탈로 조선 민족은 초주검에 이르렀다.

 친미제국주의자들의 수괴인 이승만이 통일을 주장하는 민족주의자들을 학살하고 친일파와 손잡고 세운 것이 남조선 정부다.

 그들은 동족 간에 총부리를 겨눈 전쟁을 일으킨 주범이다.

 조국의 통일과 민족의 평화를 위하여 처단해야 할 사악한 무리다.

 지난 20여 년 동안 남과 북은 서로 극과 극을 달리는 사상교육을 국민의 뇌리에 주입하였다.

 그런 체제에서 살아온 우리가 어떻게 상대방을 용인할 수 있을까?

 젊은 나이에 상좌가 된 것을 보면 이장수는 북한에서 촉망받는 군인이다.

 그가 나를 살려주었다.

 그것은 그의 조국에 대한 반역행위다.

 무엇 때문일까.

 "아무것도 묻지 마라. 우리는 살아서 다시 만날 기회가 없을 것이다.

 동무, 꼭 살아남아야 한다."

 이장수 상좌의 마지막 말이 상후의 귓전에 맴돈다.

 

 쁘레이꾸에서 캄보디아 국경으로 가는 중부고원지대다.

 산림이 울창해야 할 정글은 간 곳이 없고 숲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고엽제로 산림이 파괴된 현장이다.

 별빛을 받으며 희뿌옇게 서 있는 고사한 고목들이 마치 지옥문 앞의 광경처럼 괴기스러운 모습을 연출한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과 남베트남군에 의해 살포된 고엽제에는 다이옥신이라는 화학적 불순물이 들어있다.

 다이옥신은 청산가리와 비교하여 일만 배, 비소의 삼천 배에 이르는 독성이 있다.

 이 독소는 체내에 축적되어 10년 ∼ 20년이 지난 후에도 각종 암과 신경계 손상을 일으킨다.

 또한, 기형을 유발하고 독성이 유전되어 2세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 고엽제는 미군이 생산을 위탁하여 몬산토, 허쿨리스, 다우 케미컬 및 발레로 에너지와 같은 다국적기업에 의해 제조되었다.

 미군은 산림에 서식하는 말라리아의 매개체인 모기나 거머리를 퇴치하기 위해 고엽제를 살포했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베트콩이 은신한 산림을 파괴하고, 게릴라들이 장악한 지역의 농업기반인 경작지를 파괴하는 것이 주목적이란 사실을 온 천하가 알고 있다.

 1961년부터 베트남에 살포된 고엽제는 확인 가능한 양만 8천360만 리터다.

 이 결과 전쟁에 직접 참여한 군인을 제외하고도 400만 명 이상의 베트남 양민들이 고엽제에 노출되었다.

 

 동튼 지 불과 2시간쯤 지난 시각이건만 더위가 기승을 떤다.

 우기에 비가 오지 않는 한낮에 정글 속의 무더위는 건기의 불볕더위보다 더욱더 견디기 어렵다.

 이글거리는 태양과 수분을 흠뻑 먹은 대지와 밀림을 채우고 있는 온갖 초목들이 뿜어내는 고온의 수증기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힌다.

 온몸엔 땀이 비 오듯이 흐른다.

 얼굴과 팔뚝엔 소금기가 허옇게 끼었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앞이 노랗게 보이며 어찔어찔하다.

 상후는 쓰러지듯이 고목에 기대앉았다.

 이미 하루 동안 잠도 자지 않고 먹지도 못하고 걸었다.

 눈꺼풀이 내려앉으며 잠이 쏟아진다.

 지금은 목이 타는 듯한 갈증도 참을 수 있다.

 뱃가죽이 등에 붙는 듯한 허기도 둘째 문제다.

 상후는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살갗을 태울듯한 뜨거운 햇볕 때문에 상후는 잠이 깼다.

 얼마나 잤을까?

 태양의 위치로 봐서 정오쯤인 듯하다.

 입안에 침이 마르고 목구멍이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그늘에서 자란 이름 모를 덩굴식물의 어린 잎사귀를 씹어 보았다.

 담담한 맛이다.

 상후는 잎사귀를 한 움큼 따서 잎에 넣고 씹었다.

 몇 번을 반복하고 나니 조금은 갈증이 해소되었다.

 상후는 다시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일어섰다.

 가야 한다.

 여기서 머뭇거리다가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다.

 가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을지언정 한걸음이라도 더 서쪽으로 가야 한다.

 

 저물녘 황금빛 하늘이 정글 속으로 빨려들 때쯤, 상후는 고갯마루를 넘었다.

 세찬 남서풍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이 서로 몸을 비비며 빚어내는 괴기한 울음소리가 밀림 속을 가득 채운다.

 곧 비가 쏟아질 듯하다.

 상후는 비 피할 곳을 찾았다.

 해가 떨어진 후 폭우가 퍼붓는 암흑 속에서 이 정글 속을 더듬어 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이곳저곳에 미군 폭격기가 쏟아부은 폭탄에 화산의 분화구처럼 움푹 파인 집채만 한 웅덩이들이 앞길을 막는다.

 캄보디아 국경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인생역정 7. 탈출. ©에이바(ABA)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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