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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49일,
작가 : 에스뗄
작품등록일 : 2017.7.20

평탄한 성공 가도를 걷다 한 순간에 실패자로 전락한 승완. 삶을 포기한 그녀 앞에 홀연히 나타나 자신을 악마라 칭하는 남자. 그런데 이 남자, 망자를 앞에 두고 엉뚱한 말만 한다. "새 인생은 즐겨. 날 유혹하는 건 대환영이고." 49일간 같은 이름의 전혀 다른 인물이 된 그녀. 게다가 전생의 인물들까지 엮여버린 상황에서 승완은 자신과 관련된 무서운 비밀을 발견하는데... (autor_ester@naver.com)

 
004. 내가 조처를 해뒀거든
작성일 : 17-07-23 01:23     조회 : 243     추천 : 1     분량 : 5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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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아, 내 새끼 퇴원 기념 만찬이다!"

 

  어머니의 시원시원한 외침과 함께 식탁 한가운데에 지름 40cm의 둥근 냄비가 놓였다.

  승완은 무심코 터져 나오려는 탄성을 꿀꺽, 집어삼켰다.

  새 몸을 얻은 지 만 하루도 되지 않아서 그런지 아직 예전 습관이 남아있었다.

 

 "이게 다 뭐예요?"

 

  눈으로 살피면서도 승완은 난생처음 보는 진기한 음식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했다.

  두 다리가 튼실한 닭백숙 위로 전복, 낙지, 톳에다 그 비싸다는 능이버섯까지 올라갔다.

  그야말로 육해공 보양식의 결정체였다.

 

 "딸래미 덕에 아빠도 호강하네. 고맙다."

 "느이 아빠가 해산물 다 손질했다! 멋지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하나뿐인 딸을 방에 욱여넣고 두 분은 뭘 하시나 했더니, 이런 엄청난 음식을 준비하셨던 거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혼자 먹던 즉석밥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압력밥솥으로 삶아서 제대로 익었어. 어서 닭다리부터 먹어 봐."

 

  어머니가 손으로 실한 닭다리 하나를 뜯어 승완 손에 쥐여주었다.

  얼떨결에 받아든 승완은 제 얼굴만 한 고깃덩어리를 차마 입으로 가져가지는 못했다.

 

 "제가 하나 먹어버리면 두 분은요?"

 "부부가 괜히 '일심동체'겠니? 둘이서 나눠 먹으면 되지."

 "너야말로 그거 다 먹어야 해. 그래야 다른 것도 먹지."

 

  승완은 이제껏 집에서 닭다리를 먹어본 적이 없다.

  그녀의 집에서 닭다리는 아버지와 남동생 주완의 몫이었다. 딸인 승완은 그 보드라운 살에 언감생심, 눈길도 주지 못했다.

  독립하고 나서는 두 손에 쥐고 맘껏 먹을 수 있었지만, 막상 혼자서 닭 한 마리를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 승완의 손에 닭다리가 쥐어졌다. 그것도 가장 먼저, 오로지 그녀만을 위해. 그녀는 손에 쥔 뽀얀 살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 뜨뜨! 뜨거워라."

 "조심해. 이 사람아."

 "말만 하지 말고 여보야가 좀 해주지?"

 "난 소주 따라야지."

 "아무튼 힘든 건 다 마누라한테 미룬다니까."

 

  어머니가 집게로 닭을 해체하는 동안, 아버지가 세 식구 앞에 놓인 소주잔을 가득 채웠다.

 

 '내가 부모님과 술잔을 부딪친 적이 있던가?'

 

  승완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나지 않았다.

  심지어는 부모님 앞에서 술에 취한 모습을 보인 적도 없었다.

 

 "자자, 건배하자고. 당신이 선창해."

 "좋았어. 우리 딸의 건강을 위하여!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위하여!"

 "위하여!"

 "... 위하여."

 

  육해공 보양식에 이어 후식까지 푸짐하게 끝낸 승완이 배를 통통 두드리며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켰다.

  사흘이나 중환자실에 누워있던 주인과 달리 말짱한 핸드폰에는 수십 통의 문자와 전화가 와있었다.

 

 -승완 씨, 사고 났다며 괜찮아?

 -우리 입사 동기 짹짹이 승완! 많이 아픈 거야? 문자 보면 연락 줘!

 -승완아, 나 세찬이야. 어쩌다 보니 내가 회사에 네 사고를 말해버렸어. 미안해. 얼른 다 나아서 회사에서 보자.

 

  지난 한 달간 연수를 함께 한 입사 동기들부터,

 

 -와니와니! 이게 무슨 일이야?ㅠㅠ 어머니한테 소식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내가 내일 당장 서울 올라간다! ㅠㅠㅠㅠㅠㅠ

 -와니♥ 오늘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우리 와니 모습 보고 얼마나 맴찢했는지ㅜ 얼른 나아서 우리 단골 카페 가자. 내 맘 알지?♥

 

  중학생 때부터 함께 시간을 보낸 친구들까지 저마다 자기답게 승완을 걱정하고 있었다.

  짹짹, 와니 등의 귀여운 별명은 생전 그녀가 가져보지 못한 것이었다. 영 생소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2D의 문자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그녀로 하여금 새사람이 되었음을 일깨워주었다.

 

 "나이도 어린데 참 잘 살았네."

 

  자신보다 세 살이나 어린 이 몸의 주인은 그녀보다 더 다채로운 색으로 삶을 칠해온 모양이다.

  승완 역시 나름대로 치열하게 공부하고 일해왔지만, 인생의 끝자락에 서서 보니 전부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자신이 아닌 이 어린 주인을 위해서라면 49일 내내 눈이 붓도록 울어줄 사람이 줄을 설 것이다.

  몸을 감싸는 공기마저 따스한 이 집 안에만 두 명이나 되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부럽다, 정말."

 

 

 *

 (D - 45)

 

  퇴원한 다음 날, 승완은 부모님의 우려를 뒤로하고 신입사원으로서 회사에 첫 출근을 했다.

 

 "호오, 이런 우연도 다 있네."

 "이거 우연 맞아요?"

 

  정문 앞에서 한숨을 내쉰 승완이 곁에 서서 회사 건물을 훑어보는 남자, 아니, 악마에게 물었다.

  공교롭게도 그녀의 새 직장은 예전에 몸담았던 TI 전자였다.

 

 "우연일걸?"

 "믿을 걸 믿어야지."

 "정말이야. 이건 내 소관이 아니거든."

 "그분께서는 이번에도 융통성을 발휘해주지 않으셨나 보네요."

 

  승완을 향해 어깨를 으쓱한 남자가 프리지아 꽃다발을 내밀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승완은 마치 마술쇼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첫 출근 기념."

 

  멀뚱히 서서 샛노란 꽃잎을 앙증맞게 모은 프리지아를 보고 있자니, 남자가 승완의 손 위에 꽃을 얹었다.

 

 "지금은 이미 프리지아가 들어갔을 철 아닌가?"

 

  봄의 전령사 벚꽃도 이미 봄비에 쓸려 지나갔다. 이제는 아스팔트 바닥에 달라붙어 환경미화원에게 고생을 더해줄 뿐이다.

  하물며, 봄의 시작을 알리는 프리지아는 말할 것도 없었다.

 

 "말했잖아. 계절은 중요하지 않다고."

 "아무리 그래도..."

 "내게 중요한 건 한 여자뿐이야."

 "설마 그게 나라고 말할 건 아니죠?"

 

  입술을 매끄럽게 끌어올린 악마가 손을 내려 프리지아의 꽃송이를 어루만졌다.

  아직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꽃잎의 노란 빛깔이 더 진한 색을 띠었다.

 

 "좀 웃어 봐. 오늘은 희망에 부푼 날이잖아."

 

  승완은 그제야 프리지아의 꽃말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짙은 보라색으로 물든 악마와 샛노란 프리지아는 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새 시작을 하는 곳이 하필이면 전 직장이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곧 웃게 될 거야."

 "그걸 어떻게 확신해요?"

 "내가 그렇게 조처를 해뒀거든."

 

  고양이를 닮은 날카로운 눈매가 찡긋, 접히자 신비로운 눈동자가 제 모습을 드러냈다.

  고급스러움을 품은 보랏빛 보석을 닮아 반짝반짝 빛나는 그의 눈동자에는 마음을 끄는 힘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승완은 이미 절반이나 넘어간 상태였다.

 

 "난 잘 웃는 여자가 좋더라."

 "그래서요?"

 "넌 이미 내 취향이긴 하지만, 조금 더 웃으면 내가 완전히 반해버릴 거란 뜻이야."

 

  어느새 그가 승완의 매끈한 왼쪽 손목을 가져가 엄지손가락으로 느른하게 쓸어내렸다.

  차가운 손끝에서 시작해 발끝까지 퍼지는 야릇한 감각에 승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악마가 반한 여자라니, 그건 이쪽에서 사절이었다.

 

 "그러니 당당히 가서 신입사원의 천진난만함을 보여주고 오라고."

 

  승완이 발걸음을 차마 떼지 못함에도, 그녀의 등을 떠미는 힘은 주인의 목소리처럼 가볍기만 했다.

  승완은 내키지 않는 마음을 다잡고 묵직한 유리문을 밀었다.

  그녀는 그저 남의 몸을 빌려 쓰는 힘없는 영혼에다, 지각은 단 1분도 허용하지 않는 FM(정석)이었다.

 

 "이게 우연이라고?"

 

  전 직장이었던 걸로도 모자라, 승완은 자신이 앉아있었던 기획 1팀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녀는 기분이 이상했다. 뭐랄까? 감개무량하거나 불쾌하기보다, 그냥 아무렇지 않았다.

  바로 그 점이 이상했다.

 

 "스, 승완아. 아, 안녕!"

 "세찬아, 안녕."

 "몸은 괘, 괜찮은 거야?"

 "보다시피. 말짱해!"

 

  동기인 세찬이 옆자리에 앉으며 인사했다. 승완은 세찬에게 보디빌더 흉내를 내보였다.

  주치의부터 그녀의 부모님, 직장 동료까지 승완의 건강을 의심했지만 그녀는 설명할 수 없었다.

  이 경이로운 회복 속도를 설명하자면 먼저 그녀의 몸과 영혼에 관해 말해야 하니, 믿어줄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세찬이 네가 우리 부모님께 연락해줬다며? 고마워."

 "그, 그게 우, 우연히 병원에서 널 봤거든."

 

  같은 기획 1팀에 배정된 세찬은 50명의 동기 중에서도 눈에 잘 띄는 남자였다.

  물론, 이것은 다른 의미에서다. 키도 농구선수 저리 가라 할 만큼 크면서 어깨를 잔뜩 웅크리는 통에 더 눈에 띄었다.

  항상 시선이 바닥을 향하는 그의 또 다른 특이한 점은 말을 심하게 더듬는 것이다.

 

 "어, 어차피 가해자도 와, 와있어서 내가 한 건 부, 부모님께 전화드린 게 다였어."

 "그게 어디야. 진짜 고마워. 내가 밥 한번 살게!"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지레짐작해 세찬의 말을 중간에 잘랐겠지만, 승완은 끝까지 들었다.

  그는 말을 조금 더듬을 뿐, 자신의 의사 표현은 확실했다.

  말을 전혀 더듬지 않으면서도 의사를 표하지 못했던 과거의 그녀와는 정반대였다.

  게다가 칭찬을 하면 수줍어서 어쩔 줄 몰라하며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저, 저기..."

 

  세찬이 무언가를 말하려던 찰나였다.

  또각또각, 자신감에 찬 당당한 걸음걸이를 지닌 누군가가 그들의 앞으로 다가왔다.

 

 "반가워요. TI 전자 기획 1팀의 여수빈 주임입니다."

 

  아, 승완이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사무실에 돌아와서도 아무렇지 않았던 이유는 그녀가 중요한 사실 하나를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획 1팀에 배정받은 우세찬 씨, 그리고 백..."

 

  손에 쥔 종이에 적힌 정보를 찬찬히 읽어내려가던 수빈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모습을 승완은 제대로 포착했다.

 

 "... 승완, 씨?"

 

  여수빈, 그 여자였다.

  과거 자신의 팀원이자, 직속 후임이자, 제 남자와 침대에서 구른 여자가 눈앞에 있다.

  이번에는 승완의 상사로서 그녀 앞에 서 있다.

 

 '자기, 아는 여자야?'

 '글쎄요. 좀 안 되긴 했네요.'

 

  승완은 세찬 몰래 주먹을 말아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드는 통증만이 미쳐 날뛰려는 그녀의 이성을 잡아주었다.

  그때, 나지막한 목소리가 그녀의 뇌리를 번쩍 스치고 갔다.

 

 '곧 웃게 될 거야. 내가 그렇게 조처를 해뒀거든.'

 '기왕 새로운 삶을 사는 거, 전엔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지.'

 

  그 남자, 악마의 말이었다. 그는 승완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

  물론, 승완은 이 세상에 미련 따위 없다. 다만, 꽉 막혔던 가슴이 조금 후련해지는 건 괜찮을 것 같다.

  지난 생에서는 가슴 답답한 고구마만 먹었으니, 남은 40여 일 동안 사이다 한 잔쯤 원샷하고 가도 되지 않을까?

 

 '나는 어제의 백승완이 아니니까.'

 

  결정을 내리자 마음의 준비는 금세 끝났다.

  승완이 자리에서 일어나 수빈에게 손을 내밀었다. 길쭉한 손가락이 승완의 손을 어정쩡하게 감쌌다.

  딱딱히 굳은 수빈의 얼굴을 향해 승완이 싱긋, 정돈된 미소를 던졌다.

 

 "처음 뵙겠습니다, 여수빈 주임님."

 

  저는 오늘부터 당신과 새로 맞붙을...

 

 "백승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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