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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겨울과 밤의 검사
작가 : Dr러다이트
작품등록일 : 2017.6.21

허망하게 무너져 내린 행복과 타오르는 복수심 사이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 해매는 검사의 이야기

 
18. 엇갈림 05
작성일 : 17-07-22 23:43     조회 : 318     추천 : 0     분량 : 9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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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이리스는 불침번을 마치고 바로 잠을 자러 빈 방으로 들어갔다. 비교적 멀쩡한 여관건물이라고 등잔이나 마법등이 남아있지는 않았지만 무너진 건물의 틈새로 푸른 달 히라의 빛이 흘러 들어와서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허전하네. 그러고 보니 갑옷을 두고 왔잖아? 뭐 상관없나? 가져갈 사람도 없는데”

 그건 자신에게 맞지 않는 갑옷이다. 돌아가면 돌려주고 가벼운 것으로 바꿔야겠다. 그렇게 그녀는 잠이 들려고 했었지만......잠들지 못했다.

 ‘뭔가 있어’

 마치 아직도 이리스의 뇌리에 깊숙이 박혀있는 노스가드성에서 도망치던 날처럼 지금 잠들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잘 시간이 한참 지나서 몸은 피곤하지만 날카롭게 선 정신은 오감을 자극하고 육체를 일깨웠다. 그녀는 문 바로 뒤쪽으로 몸을 감췄다.

 “......”

 느리게 눈을 깜빡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쩌면 아무 일도 없는데 착각한 것 이거나 원혼들이 그녀의 정신을 파고들어서 느끼는 감각일 수도 있다. 그래도 그녀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어쩌면 아니카의 말이 맞을 지도 모른다. 최악의 가정이지만 카밀라와 카를이 블랙밸런스의 흑마법사이고 원정대를 따돌려서 자신을 실험체로 삼을 수도 있다는......아직은 모든 것이 시기상조다.

 사박

 작게 발소리가 들렸다. 아직은......아직은 모른다. 그저 지나가는 길일수도 있고 화장실에 가는 중일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기대를 배반하듯이 방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끼이이......

 오래된 문이 비명을 지르고 마침내 세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회귀의 검 무념무상’

 호흡을 점점 느리게 하고 눈을 감았다. 혈액의 흐름도 마나의 흐름도 천천히 느려지는 가 싶더니 이리스의 모습은 점점 어둠속에 녹아들었고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야말로 암살자와 같은 완벽한 은신이었다.

 그녀는 방문자의 목적을 확인하려했다. 아직까지는......아직까지는 그녀에게 용무가 있어서 왔을 수도 있으니까 예민해진 감각은 방문자들의 호흡, 심장박동조차 놓치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니었다면 좋겠다. 그냥 자신이 예민했던 것이고 방문자는 방을 잘못 찾았다던가 혹은 자신을 만나러 왔다가 갑자기 사라진 자신에 깜짝 놀라는 작은 해프닝 정도, 그 정도는 있어도 나쁘지 않았다.

 그들은 문 뒤에 숨은 이리스를 눈치체지 못하고 주변을 뒤적거리고 침대를 중심으로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다시 눈을 살짝 뜨자 흐릿하게 이리스의 모습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 형체는 마치 유령과 같고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서 아무도 그녀가 이 방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두 명의 남자는 방을 뒤적거리고 있었고 나머지 한 명은 침대를 중심으로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다. 도저히 호의적인 목적으로 방문했다고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분명 이 방이 맞을 텐데”

 “검을 보니 이 방을 사용하고 있는 건 확실해 일단 함정을 설치해두고 주변을 확인하지.”

 “함정 설치 중에 갑자기 들어올지 모르니까 탐지마법을 사용해둬”

 이제 억지로 눈을 돌리고 있던 사실을 인정할 시간이다. 저들은......그녀를 붙잡으러 온 흑마법사가 맞다.

 무기가 없다는 사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았다.

 샤악

 웨어울프의 손톱으로 탐지마법을 사용 중이던 마법사의 목 줄기를 잡았다. 날카로운 짐승의 손톱은 마치 물을 통과하는 것처럼 아무 저항감 없이 살점을 파고들고 뼈를 잘라냈다.

 잘려진 머리가 떨어지기 전에 몸을 반 바퀴 돌리며 그녀의 소지품을 뒤지던 남자의 머리통을 하이킥으로 걷어찼다.

 퍽

 “헉! 목표가...커헉”

 그제야 함정을 설치하던 이도 그녀를 알아차렸지만 그의 말이 체 끝나기도 전에 얼음으로 된 칼날이 목 줄기에 틀어박혔다.

 “크헉! 쿨럭쿨럭 힐링”

 끈질기게도 아니면 칼이 빗맞았는지 함정을 설치하던 마법사는 아직 목숨이 붙어있었다. 열심히 치료마법으로 자신의 피를 멈추려 하지만 전문 분야가 아닌지 회복은 느리고 굼떴다.

 “......저기 이거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지?”

 “......”

 그자의 눈에는 갈등이 어렸다. 마치 지금이라도 잘 해명하면 살려줄지도......

 “하긴 그럴 리가 없지”

 서걱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검을 집어서 그의 목을 베었다.

 그에게서 비친 감정의 색은 피처럼 검붉은 빛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의로는 볼 수 없는 색 애초에 이런 질문에 갈등했다는 사실 자체가 악의를 품고 있다는 이야기 밖에 되지 않는다.

 “이제 대충은 이 색이 뭘 뜻하는 지 알 것 같아서 기분 나쁘네”

 

 ‘색을 본다는 건 너의 경계가 얇아지고 있다는 거야.’

 ‘영혼이라는 그릇에 담긴 정신 그것을 엿보는 것이다.’

 “그래~ 그래 당신 때문이라는 건 잘 알겠어.”

 이리스는 혼잣말 하듯이 건성으로 마음속의 소리에 대답한 후에 시체를 침대에 올리고 이불을 덮은 다음 핏자국을 물로 지웠다.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으니 별 의미 없는 짓이지만 약간의 시간벌이는 되리라

 ‘일단 아니카를 찾아야겠지?’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리스는 아니카가 있을 옆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너무 당연하게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 없네. 아마 저들이 데리고 있겠지?”

 보나마나 인질로 삼으려고 데려갔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녀가 선택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빨리 아니카를 되찾아야겠어.’

 저들이 블랙밸런스라면 자신이 목적일 테니 당장은 아니카도 안전할 테고 도망치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그 선택지를 지워버렸다.

 ‘다른 사람에게 쫓기는 건 지긋지긋해 오늘은......이리스 노스가드가 아니야 오늘만은 니케로 돌아가자’

 그녀를 단순한 검은 용인이자 소드마스터 정도로 생각하면 곤란했다. 그녀는 수많은 전장을 넘으며 수십, 수백 번의 위기를 경험한 적이 있다. 명예와 긍지를 아는 전사이기 이전에 스스로의 안위와 실리를 챙길 줄 아는 용병

 그런 그녀에게 인질극은 통하지 않는다. 실내에서 쓰기 불편한 대검은 포기했다. 왼손의 손톱과 얼음의 칼날이면 충분하다. 물위에 떨어뜨린 잉크 한 방울처럼 희미하게, 먹이를 노리는 고양이처럼 은밀하게 그녀는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너무 늦는군. 설마 아직 잠들지 않은 건가?”

 “한번 가보겠습니다.

 흑마법사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리스를 데리러 간 무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곁에는 아직 잠들어있는 아니카도 있었다. 한참이 지나도 그녀를 살피러 간 동료들이 돌아 오지 않는 것이 수상했는지 제이콥은 추가로 몇 명의 흑마법사를 더 보냈다.

 “......”

 “......”

 한참이 지나도 두 번째로 보낸 무리까지 돌아오지 않자 그들은 직감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수상함”

 “아무래도 그녀가 알아차린 것 같군. 계획을 너무 서둘렀어.”

 “역시 검은 용인이라는 건가 어쩔 수 없지”

 그들은 인질로 잡아둔 아니카를 데리고 방을 벗어났다. 복도에는 먼저 보낸 사람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고 수상쩍은 침묵만이 감돌았다.

 “일단 다른 방에서 대기하고 있는 이들과 합류하지”

 끼이이익

 다른 흑마법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방의 문을 열어보니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있는 것이라곤 흑마법사들의 시체와 핏자국뿐 전투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

 “어떻게 된 거지?”

 서둘러서 다른 방을 둘러보아도 전부 마찬가지, 이리스의 방에는 먼저 갔던 이들이 전부 죽어있었다. 그녀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제이콥은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여기 있는 아홉 명을 제외하고 삼층에 머물던 이들은 전부 죽었다.

 그는 애써 불안감을 털어내려 했다. 그래 방의 크기가 작아서 인원을 분산 시켜둔 것이 실수였던 것 같다. 흑마법사는 근접전에 취약하고 암흑기사는 몇 명 없었으니 그래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아래층에 아직 많은 병력들이 남아있다.

 “침착해 카를은 탐색마법을 사용해봐 카밀라는 시체에서 사념을 읽어보고 너희들은 인질에게서 눈을 떼지 마라”

 제이콥은 다른 흑마법사들에게 아니카를 맡기고 방안에 남은 다른 흔적을 조사했다.

 “검흔이 거의 남아있질 않군. 들고 다니던 대검을 쓴 것 같지는 않은데? 투척용 무기라도 가지고 있었나?”

 시체에 남아있는 흔적들을 보아도 대검을 쓴 것 같지는 않다. 그것보다는......마치 작은 단검으로 찌르거나 무언가 예리한 칼날 같은 것으로 헤집은 흔적이다.

 이리스는 무념무상으로 기척을 지우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흑마법사랑 함께 지내본 경험이 도움이 될 줄이야’

 그녀는 블러드트랙의 흑마법사들과 이해관계를 구축하면서 흑마법사들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았다. 그녀는 흑마법사 쥬드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하나 확실히 말씀드리자면 저희의 마법은 강력할지는 몰라도 정교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섬세한 폭발물은 다른 마탑 쪽에 의뢰하는 게 낮다. 이 말이지요.”

 “내가 다른 마탑에 갈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을 텐데. 그리고 그건 무슨 뜻이지?”

 “흑마법사는 마족과 계약을 통해 힘을 받습니다. 요컨대 빌려온 힘이다. 이것이지요. 마족이 가진 특유의 마기는 분명 강력하지만 그만큼 거칠고 통제하기 힘듭니다. 긴 시간의 훈련이 없다면 제작계열마법이나 탐색마법과 같은 보조계열은 많이 약한 편입니다.”

 흑마법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탐색계열마법은 마나를 탐지하거나 시야를 확장시키는 종류가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가 가진 생명력을 탐지하거나 죽어있는 시체에서 사념을 뽑아 기억을 읽는 방식이다.

 

 산맥을 넘어서도 그런 점은 별반 다르지 않은지 그들은 그녀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원혼 없음 추적불가”

 “생명탐지마법에도 우리들밖에 걸리지 않아......이 층에 있는 녀석들은 거의 다 죽은 것 같다”

 하지만 이리스가 사용한 회귀의 검 무념무상은 자신의 존재를 실제공간에서 지워버리는 기술이라 생명력이 전혀 새어나가지 않았고 흑마법사의 원혼들을 전부 흡수했기에 읽어낼 사념이 남지 않았다.

 “하는 수 없지 2층으로 내려가자 생명탐지마법은 유지하도록 해”

 창문 너머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그들이 방을 벗어나는 모습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날카로운 마물의 손톱이 창틀위로 모습을 드러냈고 히라의 푸른빛 아래에 이리스의 모습이 드러났다가 다시 그녀의 모습은 어둠속으로 덮여서 사라졌다.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길목이 좁아지는 구간에서 이리스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털썩

 선두에 있던 제이콥 일행이 아니카를 데리고 계단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갑자기 후열에 있던 사내 하나가 갑자기 쓰러졌다. 근처에 있던 흑마법사가 쓰러진 동료를 일으켜 새우려는 찰나 짙은 피비린내와 몸통에서 떨어진 머리통이 굴러갔다.

 “어이......! 기, 기습입니다! 커헉”

 기습을 알리던 흑마법사의 목에 얼음칼날이 날아들었다. 칼날을 집어던진 흐릿한 인영이 바로 옆의 방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사라졌다.

 “쫒아가!”

 “아니야 멈춰!”

 이리스로 보이는 무언가를 다른 이들이 쫒아가려 따라가려고 하자 제이콥은 그들을 멈추려고 했다.

 “제길......카밀라는 아래로 내려가서 남아있는 사람을 전부 불러와 카를 너는 따라와”

 “알겠다.”

 제이콥이 한 발 늦게 방으로 들어가 보았지만 이미 그녀를 쫓아갔던 나머지 동료들은 전부 죽어있었다.

 

 이리스는 더 이상 모습을 감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침대 위에 걸터앉아서 왼손에 얼어붙어있는 핏물을 오른손으로 때어내고 있었다.

 “혹시 해서 물어보는 건데 블랙밸런스라는 조직 알고 있어?”

 질문을 하는 그녀의 얼굴은 피로하고 어쩐지 싸우기 싫어 보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 어떻게 조직의 이름을!”

 제이콥의 얼굴은 당황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카를을 보았지만 그도 그녀에게 말해주지 않은 듯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카밀라가 말했을 리는 없고......아니 사일런트 아케인이라면 충분히 우리에 대해서 알고 있을 수도 있겠군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날 찾고 있던 거야?”

 “첫 만남은 우연이었지 않습니까? 다만 이리스님이 저희가 찾고 있던 검은 용인이었던 것뿐이지요.”

 제이콥은 아니카의 목에 칼을 가져다 대었다.

 “동료들을 제법 많이 죽였더군요. 얌전히 따라오지 않는다면 이 아이의 목숨은...”

 “정말 진부한 협박이네 아니카는 좋은 아이긴 하지만 내 목숨보다 중요하지는 않아”

 이리스는 오른손으로 얼음의 칼날을 만들어내어 쥐었다.

 ‘분명 양손검을 썼던 것 같은데?’

 제이콥은 바짝 긴장한 체로 아니카의 목에 조금 더 칼날을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지금 이리스는 오른손만 쓰고 있다. 그리고......시체에 남아있던 흔적과 저 검은 매치가 되질 않는다.

 “전부 알고 있습니다. 푸른 물푸레의 일족, 몇 남지 않은 하이엘프의 일족이지요.”

 “......”

 혈통으로 선지자가 결정되는 엘프의 특성상 하이엘프인 아니카가 가진 의미는 상당히 컸다. 그리고 그간 관찰한 바에 따르면 그녀는 정이 많은 인물이다. 이런 식으로 동료를 버릴 리가 없다.

 “쳇”

 이리스는 하는 수 없다는 얼굴로 무기를 내렸다.

 “후우 얌전히 따라와 주신다면 아니카의 신변은 보장해드리겠습니다.”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얼음의 칼날이지만 그녀의 손에서 무기가 떨어졌다는 사실에 제이콥은 안도하고 아니카를 붙잡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 말을 믿을 리가 없잖아”

 순식간에 제이콥에게 접근한 이리스는 왼손을 휘둘렀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다섯 개의 손톱......그는 직감적으로 자신이 보았던 상흔이 저 손톱에 의한 것임을 깨달았다.

 “허억”

 그는 아직도 의식이 없는 아니카를 앞으로 밀면서 뒤로 물러났고 이리스는 단검을 저글링하는 광대처럼 섬세한 동작으로 아니카를 상처 입히지 않고 끌어당겼다.

 “큭”

 “다시는 볼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본 케이지”

 뼈로 만들어진 우리가 이리스를 감쌌다.

 “우리의 연구를 완성하려면 네 도움이 꼭 필요하다.”

 카를은 혼란스러워 보이는 얼굴로 이리스를 보았고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무엇을 위해서? 이 땅에서 흑마법사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서?”

 “그, 그건 어떻게!”

 “아무래도......당신에겐 저희가 모르는 비밀이 더 있는 것 같군요.”

 '리오넬이 미래를 보여줘서'라는 말을 하기엔 일이 더 복잡해질 수 있기에 그녀는 거짓말을 조금 섞기로 했다.

 “메이트라왕국에 있던 전쟁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 텐데? 그럼 블러드트랙이라는 흑마법사 집단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지 않았어?”

 

 전쟁에서 큰 도움을 주었고 전염병의 치료약을 만들어 많은 사람을 구제했기에(물론 그 전염병을 만든 것도 블러드트랙의 흑마법사들이지만) 메이트라에서는 이전처럼 흑마법사들이 배척받지 않았다.

 “아 당신을 도왔다는 그 흑마법사들의 이야기 입니까?”

 “우리는......그들처럼 될 수 없다. 우리의 목적은 인간들의 표준적인 윤리관에 어긋나는 일 일 테니까”

 파멸의 추종자의 목적은 복수다 부패하고 오만한 귀족무리에 대한 복수! 가족의 죽음, 충성에 대한 부당한 대가, 버려진 이들이 자신의 영혼을 걸고 맹세한 복수

 영생의 신도의 목적은 불로불사 타인의 생명을 대가로 영원한 삶에 대한 약속을 받는 것

 

 기존 국가들의 전복과 새로운, 흑마법사를 위한 나라를 만드는 것! 그들의 목적은 학문의 추구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영원한 삶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복수의 끝에도 허망함뿐이라고 말했잖아”

 “영생의 신도와 파멸의 추종자에 대한 것도 알고 있었나?”

 이리스는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뼈의 벽을 부수었다. 마치 여린 나뭇가지처럼 그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부러져나가는 뼈는 카를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거 보십시오. 카를 제가 필요한 조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시작하십시오.”

 “이제 와서 무슨 수를 쓴다고 해도 소용없어”

 “미안하군. 데들리 카운트”

 카를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이리스는 마나의 흐름을 관찰했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래 그녀에게는

 “커헉! 쿨럭쿨럭”

 아니카는 부들부들 발작을 일으키며 피가 섞인 기침을 토하기 시작했다.

 “아, 아니카! 아니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간단한 저주마법입니다. 신관이 있다면 금방 해체할 수도 있겠지만......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분명 죽겠지요.”

 “이, 이리스님......쿨럭 도, 도망치시......”

 “아, 아니카 정신 차려!”

 제이콥이 만약을 대비해서 아니카에게 저주를 걸어두자고 건의했던 것이 이렇게 될 줄이야......분명 효과적인 작전이지만 카를은 뒷맛이 쓰라렸다.

 “......내가 얌전히 가면 아니카는 확실히 살려주는 거지?”

 “물론입니다.”

 “내 계약을 걸고 맹세하지 그녀를 안전한곳에 데려다 주겠다.”

 “카를로스!”

 “......믿겠어.”

 흑마법사의 계약을 건 맹세는 에시디아의 계약과 비슷하다. 맹세를 어길 경우 계약한 마족에게 즉시 영혼을 빼앗긴다.

 “저주는 당신의 마나를 봉인한 다음에 풀어드리겠습니다.”

 “마음대로 해”

 이리스도 그 사실을 알기에 저항을 포기하고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카를이 저주의 발동을 멈추자 정신을 차린 아니카가 이리스에게 소리쳤다.

 “이리스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도망치십시오!”

 이리스는 아니카의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주고는 그녀를 자신의 품에 파묻었다.

 “쫓기는 것도 지긋지긋하지만 아는 사람을 버리고 도망치는 건 더 싫어”

 포기하고 도망쳐야 했던 나리아처럼, 자신을 지키려다 허망하게 죽어버린 렉스처럼 설령 자신에게 그만큼의 가치가 있더라도 다른 사람이 자신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모습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설령 그 결과 자신이 괴물이 된다고 해도 혹은 죽어버린다 해도

 

 “아 리오한테 사과를 해야 하는데”

 “실험에 충분히 협조를 해준다면......나중에 풀어줄 수도 있다.”

 “같잖은 위선은 집어 치우십시오. 당신의 스승이 그녀를 포기할 것 같습니까?”

 “살아있다면 시간은 오겠지 스승님은 영생에 염원이 없으시고 그녀는 용인이니까”

 “......”

 틀린 말은 아니다. 영생의 신도였다면 다르겠지만 파멸의 추종자들은 복수 이외의 것에는 큰 관심이 없다. 한 세대가 지나고 카를로스의 직위가 올라가면 그녀를 풀어주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물론 그때까지 이리스가 살아남거나 제정신을 유지할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허무해졌다. 그저......그저

 “나는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던 것뿐인데 왜 이렇게 된 걸까?”

 왜 이렇게 불행에 휘둘리기만 하는 걸까?

 “......”

 “......”

 카를로스도 제이콥도 그녀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들도 행복을 원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그 행복이 무너져 내렸고 그 복수를 위해 이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그 복수를 위해서 다른 누군가의 행복을 무너뜨리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 인걸까?

 “아니카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는데 들어줄 수 있니?”

 “무엇이든지 말씀하십시오.”

 “리오에게는 날 찾지 말아달라고 해줘 그리고......행복하게 살라고 전해줘”

 

 자신 때문에 그가 더 이상 고통 받는 건 싫었다. 다른 여성을 만났다고 하니 그녀와......다른 여성과 함께 있으면서 그녀에게 미소 짓는 리오넬을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시큰하고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 리오넬을 거기까지 좋아하고 있었구나.’

 렉스나 메튜의 충성과도 다나의 광신과도 다른, 부모를 잃고 나서 처음으로 받아보았던 라오넬의 이해와 관심은 그녀의 메말라 버린 영혼에 한줄기의 빛이 되었다. 이미 한 번 포기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일어설 용기를 주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이 불행 속으로 추락하는 건 한번 보았던 미래처럼 되어버리는 것은 변하지 않을 자신의 운명인 것이다.

  “리오넬을 다시 보면 좋겠네.”

 그녀의 한탄과 푸념이 끝날 때쯤에는 카밀라가 다른 흑마법사를 데리고 올라왔고 이리스와 파멸의 추종자에 속한 흑마법사 무리는 마그나스 성에서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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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17. 교감 01 2017 / 7 / 22 310 0 4587   
49 16. 이리스의 각성 03 2017 / 7 / 22 301 0 8440   
48 16. 이리스의 각성 02 2017 / 7 / 22 298 0 6314   
47 16. 이리스의 각성 01 2017 / 7 / 22 313 0 6204   
46 15. 검은 용의 이름 03 2017 / 7 / 14 307 0 8214   
45 15. 검은 용의 이름 02 2017 / 7 / 14 288 0 6637   
44 15. 검은 용의 이름 01 2017 / 7 / 14 293 0 4524   
43 14. 과거 미래 그리고 현재 02 2017 / 7 / 9 297 0 7511   
42 14. 과거 미래 그리고 현재 01 2017 / 7 / 9 317 0 7569   
41 13. 새로운 시작 03 2017 / 7 / 9 297 0 10812   
40 13. 새로운 시작 02 2017 / 7 / 2 321 0 6191   
39 13. 새로운 시작 01 2017 / 7 / 1 310 0 4296   
38 12. 추락 03 2017 / 7 / 1 321 0 8528   
37 12. 추락 02 2017 / 6 / 26 303 0 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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