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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인생역정(人生歷程)
작가 : 에이바
작품등록일 : 2016.8.19

21세기에 들어서도 수구골통과 종북좌빨이라며 서로 발톱을 세우고 사는 것이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이념을 떠나서 서로를 인정하며 공존하는 사회, 인륜과 천륜으로 살 수 있는 세상 - 우리가 꿈꾸는 엘도라도이다.

 
6.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 (3)
작성일 : 16-08-20 18:13     조회 : 965     추천 : 6     분량 : 4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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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장수 상좌가 나타나면서 상후의 앞날은 전혀 예기치 못한 쪽으로 선회하였다.

 이제 곧 북송이다.

 북한으로 끌려가서 한동안 사상교육을 받는다.

 대남방송에서 김일성 주체사상을 역설하고 적화통일을 부르짖는다.

 빨갱이 자식을 둔 여자라고 뭇사람이 어머니에게 손가락질한다.

 검게 그은 얼굴이 눈물로 범벅된 어머니가 가슴을 쥐어뜯는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어머니를 빨갱이 자식을 둔 죄인으로 살게 할 순 없다.

 기필코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

 정신을 차리고 책상 앞에 앉은 상후는 이름, 생년월일, 계급, 소속 등 위 칸부터 차례로 취조지의 공란을 채워나갔다.

 뒷면에는 부모와 형제는 물론 사촌까지 가족관계, 나이, 직업, 본적지와 부모의 원적지까지 적는 난들이 있다.

 상후가 마지막 칸을 채우는 순간 문이 열리고 이장수가 다시 방에 들어섰다.

 "동무, 왜 동무는 남의 나라 전장터까지 와서 싸움박질을 하나?

 남조선정부는 동무 같은 젊은이들을 이 전장터에 총알받이로 밀어 넣고 미국놈들로부터 동무들의 목숨값을 챙겨 받는 기야. 그거 알고 있나?"

  독백처럼 중얼거리며 이장수가 취조지를 훑어보는 동안 상후는 이장수가 가져온 엽차를 후후 불어가며 한 모금씩 마셨다.

 식도를 타고 내려간 따듯한 찻물이 텅 빈 위장 속에 흘러들자 온몸이 나른해지며 전신의 긴장이 풀렸다.

 한동안 상후가 쓴 내용을 훑어보던 이장수가 책상 위에 취조지를 내려놓고 속마음까지 읽어 내려는 듯이 상후의 얼굴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동무, 그 명치에 있는 뜸을 동무네 아바이가 떠 준거라고 했지?"

 "네."

 "아바이 이름을 한자로는 어떻게 쓰나?"

 "일만 만자, 빛날 섭자 입니다."

 "오마니 이름은?"

 "오얏 리, 물 하, 착할 선. 이하선입니다."

 "아바이 오마니 원적이 평안남도 어디멘가?"

 "안주군 용화면 응암리입니다."

 "본관은 어디멘가?"

 "전주 김가입니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이장수가 다시 말을 이었다.

 "동무, 조금도 거짓이 있으면 안 된다. 사실대로만 말해야 한다.

 아바이는 동란 중에 죽었다고?

 오마니는 뭘 하나?"

 "시골에서 농사지며 사십니다."

 “오마니는 올해 나이가 어찌 되나?”

 “쉰셋입니다.”

 “쉰셋, 오십삼 세라..., 그러믄, 닭띠?

 아바이와 오마니가 남쪽으로 내려갈 때 고향엔 누가 남아 있었나?”

 "할아버지 할머니와 저보다 여섯 살 많은 형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동무, 공화국에 있는 형의 이름을 알고 있나?"

 "네, 상제입니다. 김상제."

  상후의 마지막 대답을 들은 이장수 상좌는 담배를 깊숙이 빨아들이고 말없이 창밖을 응시하였다.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방안엔 무서우리만큼 무거운 적막이 흘렀다.

 한참 후 자리에서 일어선 이장수는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여 상후에게 건네준 후, 상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말없이 방을 빠져나갔다.

  옆방에 들어온 이장수는 쓰러지듯 침상에 주저앉았다.

 조금 전까지 상후 앞에서 등등했던 기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침통한 표정으로 벽을 바라보던 이장수의 두 눈에서 눈물이 불을 타고 흐러내렸다.

 

 ***

 

 1950년 11월.

 강추위가 산천을 꽁꽁 얼어붙게 한 날이었다.

 중공군이 이미 평양을 점령하고 계속 남하할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였다.

 봇짐을 등에 멘 상제의 아버지는 임신 육 개월의 아내를 부축하고 집을 나섰다.

 함께 가겠다고 보채는 여섯 살짜리 어린 아들을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에 남겨놓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떼었다.

 이장수의 눈앞에 연신 뒤를 돌아보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떼던 아바이 오마니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아바이는 남조선 군인과 미군들이 중공군을 무찌르고 나면 곧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넉 달 후에 태어날 동생이 사내아이면 이름이 상후고, 가시내면 영지란다.

 잊지 말고 꼭 기억해야 한다.

 아바이가 몇 번을 거듭 당부했던 말이다.

 

 ***

 

 참으로 얄궂은 운명이다.

 난생처음 보는 동생을 남의 나라 전쟁터에서 적군으로 만나다니.

 임무를 수행하자니, 동생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오마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를 풀어주는 것은 천애 고아나 다름없던 나를 키워주고 이 자리까지 있게 해준 공화국을 배신하는 일이다.

 

 땀 흘려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수확한다.

 굴뚝에는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난다.

 끼니때마다 온 식구가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것이 인민의 소망이다.

 전쟁은 인민의 삶을 송두리째 도륙하였다.

 부모형제가 바람에 흩날리는 홀씨처럼 산지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형제를 원수로 만들기도 하였다.

 

 서로 발원지가 다르고, 지나온 여정과 물색이 다른 두 강물이 만나서 더욱 큰 강을 이룬다.

 강물은 서로 다른 출신지를 따지지 않는다.

 지나온 과정의 오욕을 들추지 않는다.

 크기를 비교하지도 않는다.

 1950년 11월.

 강추위가 산천을 꽁꽁 얼어붙게 한 날이었다.

 중공군이 이미 평양을 점령하고 계속 남하할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였다.

 봇짐을 등에 멘 상제의 아버지는 임신 육 개월의 아내를 부축하고 집을 나섰다.

 함께 가겠다고 보채는 여섯 살짜리 어린 아들을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에 남겨놓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떼었다.

 이장수의 눈앞에 연신 뒤를 돌아보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떼던 아바이 오마니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아바이는 남조선 군인과 미군들이 중공군을 무찌르고 나면 곧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넉 달 후에 태어날 동생이 사내아이면 이름이 상후고, 가시내면 영지란다.

 잊지 말고 꼭 기억해야 한다.

 아바이가 몇 번을 거듭 당부했던 말이다.

 

 ***

 

 참으로 얄궂은 운명이다.

 난생처음 보는 동생을 남의 나라 전쟁터에서 적군으로 만나다니.

 임무를 수행하자니, 동생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오마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를 풀어주는 것은 천애 고아나 다름없던 나를 키워주고 이 자리까지 있게 해준 공화국을 배신하는 일이다.

 

 땀 흘려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수확한다.

 굴뚝에는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난다.

 끼니때마다 온 식구가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것이 인민의 소망이다.

 전쟁은 인민의 삶을 송두리째 도륙하였다.

 부모형제가 바람에 흩날리는 홀씨처럼 산지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형제를 원수로 만들기도 하였다.

 

 서로 발원지가 다르고, 지나온 여정과 물색이 다른 두 강물이 만나서 더욱 큰 강을 이룬다.

 강물은 서로 다른 출신지를 따지지 않는다.

 지나온 과정의 오욕을 들추지 않는다.

 크기를 비교하지도 않는다.

 다른 색깔을 나무라지 않는다.

 서로 말없이 가슴을 열고 함께 뒤섞인다.

 이념은 물색과 같다.

 강물은 푸른색도 있고, 황토색도 있다.

 뒤섞이면 온전히 하나의 색이다.

 서로 다른 둘이 하나가 되면 부유하는 것도 있고, 침전하는 것도 있다.

 그러나 강물은 하나이다.

 언젠가는 우리의 이념도 두 강물이 만나서 하나가 되는 것과 같을 게다.

 이념은 초월해야 할 과제이다.

 피는 이념보다 짙다.

 

 생각을 정리한 이장수는 부대 밖으로 나가 어둠이 짙게 깔린 거리를 지나서 허름한 음식점의 문을 두드렸다.

 한밤중에 돌아온 이장수가 베트남식 국밥이 가득히 담긴 러시아제 코펠과 숟가락을 상후 앞에 밀어놓았다.

 “동무, 살기 위해선 먹어야 한다. 자, 우선 밥부터 먹으라우.”

 뚜껑을 연 코펠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국밥이 상후의 후각과 시각을 자극하였다.

 민의 집을 떠난 후 사흘 만에 보는 밥이다.

 정신없이 국밥을 퍼먹는 상후를 바라보는 이장수의 눈에 이슬 같은 눈물방울이 맺혔다.

 지난 이십여 년 동안 얼마나 그립던 혈육인가.

 해가 지면 꿈속에서 오마니와 아바이를 만나기 위해 잠을 청했다.

 피난길에서 태어났을 동생이 남동생 상후일까, 아니면 여동생 영지일까.

 언젠가는 우리도 온 가족이 오손도손 둘러앉아서 함께 웃는 날이 올 거다.

 뼛속 깊이 새겨진 오마니와 아바이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한겨울 대동강가에 몰아치는 살점을 도려내는 추위도 이겨냈다.

 가슴 속에 목화처럼 새하얀 꽃망울을 터뜨리며 피어난 가족을 그리는 애절함이 있었기에 주린 배를 움켜쥐고도 참을 수 있었다.

 

 내가 네 형이다.

 내가 하나뿐인 네 형, 상제란 말이다.

 이장수는 당장에라도 상후를 와락 끌어안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누그러뜨렸다.

 우리는 북과 남으로 갈라서서 서로 잡아먹을 듯이 증오하는 상반된 이념의 체제 속에 갇혀 있다.

 그 억만 겹으로 둘러쳐진 이념의 쳇바퀴 속에서 구르고 굴러서 남의 나라 전쟁터에서 서로 적군으로 만났다.

 '지금 상후에게 내가 형이라고 밝히는 것은 자칫 그를 이념의 더욱 큰 제물로 만들 수 있는 위험한 일이다.'

 상후는 코펠 바닥에 붙은 밥풀까지 깨끗이 먹어 치웠다.

 이장수가 상후의 옷을 벗기고 상처에 약을 발라 주었다.

 어깨에 압박붕대를 대고, 준비해 온 소염제와 진통제를 먹였다.

 이것이 내가 동생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일인가.

 이장수의 콧속이 먹먹해지며 눈앞이 흐려졌다.

 치료를 끝낸 이장수가 담배 두 개비에 불을 붙여서 하나를 상후에게 건네주었다.

 “동무.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으라우.

 우리 공화국의 국가안전보위부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동무는 남조선에서 이미 전사자로 처리됐다.

 남조선 정부가 동무를 죽은 자로 만들었단 말이다.”

 상후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대한민국 정부가 전투 중에 실종된 병사를 확인절차도 없이 전사자로 처리했다고?

 이 말을 믿으라고 하는 것인가?'

 상후의 속마음을 꿰뚫어본 이장수가 책상 서랍에서 사진 몇 장을 꺼내어 말없이 상후 앞에 펼쳐놓았다.

 상후는 사진을 몇 번씩 바꿔가면서 확인하였다.

 분명히 국립묘지에 있는 자신의 묘비다.

 묘비 전면에는 자신의 사진과 병장 김상후라는 관등성명이 쓰여 있다.

 뒷면에 있는 자신의 생년월일, 출생지 및 입대 일자가 모두 정확하다.

 마지막에 ‘사망지:베트남 안케패스. 사망일자:1972년 4월 23일’이라고 적혀 있다.

 4월 23일은 상후가 안케패스 전투 중에 실종된 날이다.

 말없이 허공을 응시하던 상후의 두 눈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다.

 

 인생역정 6.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 (3). ©에이바(ABA)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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