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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인생역정(人生歷程)
작가 : 에이바
작품등록일 : 2016.8.19

21세기에 들어서도 수구골통과 종북좌빨이라며 서로 발톱을 세우고 사는 것이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이념을 떠나서 서로를 인정하며 공존하는 사회, 인륜과 천륜으로 살 수 있는 세상 - 우리가 꿈꾸는 엘도라도이다.

 
5.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 (2)
작성일 : 16-08-20 06:19     조회 : 717     추천 : 6     분량 : 5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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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이 나를 버렸다. 이제 내가 내 나라를 등진다.

 민주주의가 나를 기만하였다. 이제 나는 이념을 쓰레기통에 처박는다.

 

 상후는 베트콩에게 체포된 후 세 시간 만에 북베트남군에게 넘겨졌다.

 무자비한 고문이 밤낮으로 이어졌다.

 상후가 정신을 잃으면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시작하기를 사흘 동안 계속되었다.

 순간순간 의식이 가물가물해질 때마다 시뻘건 이빨을 드러낸 악귀가 잡아먹을 듯이 덤벼든다.

 그 뒤에 저승사자가 도포 자락으로 휘휘 바람을 가르며 상후를 낚아채려고 달려온다.

 상후는 안간힘을 써서 스러져 가는 정신을 수습했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다.

 살아야 한다.

 비켜갈 수 없는 운명이라면 맞부딪치자.

 창문 밖으로 올려다 보이는 하늘이 순식간에 먹장을 갈아 부은 듯이 새카맣게 변했다.

 곧이어 뇌성벽력과 함께 억수 같은 장대비가 퍼부었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해서 두 번째 맞은 우기지만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폭우는 처음이다.

 태산이라도 날려 버릴 기세로 무섭게 휘몰아치는 광풍에 유칼립투스 가지들이 휘청휘청하더니 아름드리 나무둥치가 우지끈하며 동강이 났다.

 창살 사이로 음습한 비바람과 함께 어둠이 스멀스멀 기어들었다.

 문이 벌컥 열리고, 깡마른 체구에 인상이 험악한 북베트남군 장교가 방에 들어섰다.

 그는 영어와 짧은 한국말을 섞어가면서 상후를 취조하기 시작하였다.

 상후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취조관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더니 급기야 책상을 땅땅 두드리며 목울대를 세우고 고함을 쳤다.

 일개 사병인 상후에게 그를 만족시켜 줄만한 정보가 있을 리 없다.

 취조관은 상후의 두 팔을 뒤로 돌려서 손바닥을 마주보게 하고 팔꿈치가 맞닿을 때까지 로프로 팔목부터 묶어 올렸다.

 가슴이 찢어질 듯 하다.

 취조관이 묶여진 상후의 팔을 들어올렸다.

 어깨뼈가 으스러지는 것 같다.

 상후의 입에서는 오직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처절한 신음소리만이 솟구쳐 나왔다.

 독기가 오른 취조관이 팔걸이와 등받이가 없는 의자 위에 상후를 엎어 놓았다.

 그는 뒤로 묶여진 상후의 두 팔을 밧줄에 걸어서 대들보 위로 올렸다.

 상후의 가슴과 위자 사이에 주먹 하나가 들어갈 만큼의 공간이 날 때까지 밧줄을 당겨서 대들보에 묶었다.

 양팔의 상완골이 몸에서 분리되고 삼각근이 찢어지는 듯하다.

 상체를 일으키려고 하면, 몽둥이가 상후의 등짝을 내려쳤다.

 취조관이 반복하여 물어도 상후의 대답은 한결같다.

 어깨뼈가 부서진 것 같은 통증과 째진 등판에서 전해 오는 칼로 저미는 듯한 아픔뿐이다.

 다른 것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취조관이 상후의 얼굴 아래에 물이 가득 담긴 양동이를 놓았다.

 상후의 얼굴을 물 속에 처넣었다.

 1분 후, 상후는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다음 질문에도 상후는 대답하지 못하였다.

 상후의 얼굴은 다시 물속에 처박혔다.

 1분 30초 후에야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세 번째 질문에도 상후는 그저 멍한 표정이었다.

 2분 후에 취조관이 뒷머리채를 잡아 올렸을 때 상후는 이미 실신하였다.

 취조관은 전기충격기를 상후의 심장에 대고 충격을 가했다.

 상후가 희미하게 정신을 차리자 다시 고문이 시작됐다.

 상후는 가물가물하는 정신을 가다듬고 온 힘을 끌어모아서 마지막 절규를 뱉어냈다.

 "나는 전쟁포로다. 제네바협정에 따른 인도적인 처우를 바란다."

 "뭐라고? 네놈들이 우리 땅에서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생각해본 적도 없나?

 미제국주의 놈들의 앞잡이로 이 땅에 들어와서 죄 없는 양민을 학살하고, 부녀자들을 농간하고, 포로가 된 우리 해방군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놈들이 바로 네놈들이다.

 뭐, 인도적인 처우? 이 쳐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고문관은 화를 참지 못하고 씩씩대며 상후를 발가벗기고 평행봉에 매달았다.

 고문관이 손에 말아쥔 자동차 팬벨트로 등짝을 내리칠 때마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상후는 마치 대가리가 잘려나간 뱀처럼 꿈틀댔다.

 이틀 동안 밤낮으로 고문을 당한 상후의 몸뚱이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터지고 갈라지고 멍이 들었다.

 그들은 거의 초주검에 이른 상후를 질질 끌어서 땅굴 속에 처넣었다.

 빗물이 흥건한 굴속에 세 명의 남베트남군 병사들과 민간인으로 보이는 두 명의 사내가 상후와 같이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를 눕히고 신음하고 있다.

 좁은 굴속에 오물 냄새가 진동한다.

 생쥐들이 떼를 지어서 배설물과 토사물을 먹어 치우고 있다.

 엄지손가락만 한 바퀴벌레들이 물을 피해서 벽과 천장으로 기어오른다.

 한 치 남짓한 크기의 정글 거머리가 찢어진 상처마다 몇 놈씩 달라붙어서 피를 빨아 먹는다.

 해가 떨어지자 모기가 며칠을 굶은 악귀처럼 떼를 지어 달려든다.

 윙윙거리며 달라붙는 파리 떼의 극성에 눈을 떠 보니 어느덧 해가 중천에 솟아있다.

 비가 그치고 태양이 작열하는 열대몬순지대의 불볕더위와 습도는 마치 고열의 사우나에 앉아있는 것과도 같다.

 머리꼭대기에 수돗물을 틀어놓은 듯이 줄줄 흐르는 땀이 얼굴을 타고 내려서 전신을 적시고 흘러내렸다.

 숨이 턱턱 막혀온다.

 찢어진 상처마다 땀이 스며들었다.

 마치 생살을 소금에 저미는 듯한 쓰라림에 상후는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처절한 신음을 토해 냈다.

 정오가 훨씬 지난 시간에 두 명의 북베트남군 병사가 상후를 끌어냈다.

 그들은 상후를 추녀 밑에 있는 물탱크 앞으로 끌고 갔다.

 상후의 몸에서 악취가 없어질 때까지 몇 차례 양동이로 물을 퍼붓고, 그들은 상후를 막사의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방으로 데려갔다.

 

 하늘을 찢어 내리며 시퍼런 번갯불이 번쩍인다.

 꽈다당 꽝!

 태산을 집어삼킬 듯한 천둥소리에 상후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옆구리가 몹시 쓰라리다.

 고개를 돌려 보니 찢어진 전투복 사이로 흘러나온 피가 흥건히 묻어 있다.

 어제 새벽에 베트콩을 피해서 달아나다가 계곡으로 굴러떨어질 때 나뭇등걸에 찢긴 자리다.

 마지막일지도 모를 순간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상후는 안간힘을 쓰며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페인트칠도 하지 않은 나무로 짠 투박한 책상과 의자 한 조가 정면에 놓여 있다.

 그 옆에는 낡은 철제 캐비닛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다.

 그밖에 집기라곤 상후가 앉아 있는 의자 하나뿐이다.

 

 한 달 전, 상후는 수색정찰 중에 안캐패스를 지키는 제1중대 본부가 있는 산등성이에서 불과 5km 떨어진 팔부능선에서 잠복해 있던 북베트남군의 기습을 피하다가 계곡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리고 어제 새벽에 민의 집을 떠나서 부대로 복귀하던 중에 그 계곡에서 다시 베트콩에게 포로가 되었다.

 민의 아버지 말로는 북베트남군이 진지를 구축했던 안캐패스 위쪽에서 가장 높은 638고지는 상후가 사고를 당한 일주일 후에 이미 한국군이 점령하였다.

 도대체 이 베트콩놈들은 어디서 나타났던 것일까.

 베트콩에게 체포된 지 세 시간 만에 상후는 북베트남군에게 인계되었다.

 상후를 호송하는 트럭은 한 시간쯤 빗속에 산길을 달려서 연대급 규모인 이곳 북베트남군 부대에 도착하였다.

 시간상으로 볼 때, 이곳은 안케패스에서 불과 50여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이다. 북베트남군이 이미 중부지역까지 남하했다는 생각에 이르자 상후는 극도의 공포와 불안감에 휩싸였다.

 

 쌩하니 불어 드는 비바람과 함께 문이 열리더니 불이 확 켜졌다.

 갑자기 켜진 전등에 눈이 부셔서 확연히 보지 못하였지만 꽤 큰 키의 장정이 문 앞에 서서 상후를 노려보고 있다.

 "동무! 이 옷으로 날래 갈아입으라우. 동무는 이제 남조선 군인이 아니야."

  말을 마친 사내는 상후의 포승줄을 풀어주고 책상 앞에 버티고 섰다.

 힐끗 그를 쳐다본 상후는 간담이 서늘해지도록 놀랐다.

 전투복 차림의 북한군 장교가 상후의 눈앞에 장승처럼 버티고 있다.

 상후가 베트남전에 참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고참들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북한 전투기 조종사들이 북베트남군을 지원하기 위해 비밀리에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미그기를 몰고 미군과 공중전을 치른다.

 북한은 그 보상으로 베트콩이나 북베트남군에게 포로가 된 한국군 병사들을 인수하여 북한으로 보낸다.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은 상후에게 매서운 호령이 떨어졌다.

 "나는 동무처럼 포로가 된 남조선 인민들을 공화국으로 압송하기 위해 파견 나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리장수 상좌다.

 지금부터 동무의 목숨은 내 손에 달려 있다.

 순순히 협조하면 동무에겐 우리 공화국에 가서 조국통일에 일조하여 노력영웅이 될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만약 취조에 협조하지 않으면 즉시 총살형에 처해진다. 알갔나?"

 이장수 상좌의 위압적인 말투에 상후는 잠시 심호흡하고 난 후 앞에 놓인 베트남 농민복을 집어 들고 일어섰다.

 이장수는 키가 상후보다 한 뼘이나 더 크다.

 딱 벌어진 어깨와 군살 하나 없는 근육질의 균형 잡힌 몸매는 한눈으로 봐도 혹독한 특수훈련으로 단련된 사내다.

 섬광이 번뜩이는 날카로운 눈매와 굴곡 없이 우뚝하고 날카롭게 선 콧날과 굳게 다문 두툼한 일자형 입술에선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란 인상이 풍겨 났다.

 상의를 벗은 상후를 바라본 이장수가 잠시 멈칫하더니 상후에게 다가왔다.

  "동무, 이거이 뭐이가?"

 "뜸자국입니다."

 "뜸을 뜬 자리라고? 왜 명치에 이렇게 큼지막하게 뜸을 떴나?"

 "우리 집안에 내려오는 전통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 누구래 뜸을 떠 줬나?"

 "내가 첫돌 때, 아프지 말고 오래 살라고, 아버지가 떠 주신 겁니다."

 "그럼, 동무네 다른 식구들도 다 명치에 뜸자국이 있나?"

 "예, 형도 있다고 들었고, 아버지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떠 주신 뜸자국이 있었습니다."

 "......"

  한동안 말없이 상후의 명치에 있는 오백 원짜리 동전만 한 뜸자국을 쳐다보던 이장수가 A4지 두 장짜리 취조지를 책상 위에 던져 놓았다.

  "우선 이 물음에 빠짐없이 답을 써라.

 하나라도 거짓이 있으면 동무는 즉시 처형된다.

 시간은 30분이다.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끝내야 한다."

 이장수가 방을 나가자 상후는 비바람에 쓰러지는 고목처럼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장수가 나타나기 전까지 상후는 이후에 닥칠 일을 그려보았다.

 갈 곳은 포로수용소뿐이다.

 숨이 턱턱 막히는 굴속에서 곡괭이질을 한다.

 채 풍화되지 않은 래터라이트층의 붉은 돌을 찍은 곡괭이의 끄트머리가 부메랑이 되어 튀어나온다.

 흙먼지에 눈을 뜨기도 힘들고, 폐부에 지층이 쌓인 것처럼 숨쉬기조차 힘들다.

 땅굴은 파도 파도 끝이 없다.

 허리를 펴면 뒤에서 사정없이 발길질을 해댄다.

 쌀자루만 한 돌덩이를 어깨에 메고 나른다.

 걸음이 뒤처지면 어김없이 채찍이 날아온다.

 찐 고구마 하나로 끼니를 때운다.

 해 떨어진 후에야 막사로 돌아온다.

 최악의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오밤중에 느닷없이 들이닥친 월맹군 병사들이 상후를 호출한다.

 그들이 상후의 두 눈을 헝겊으로 가린다.

 상후는 이것이 끝이란 것을 직감한다.

 밧줄에 묶인 채 끌려가서 벼랑 위에 세워진다.

 차렷!

 거총!

 사격 개시!

 총알이 심장에 박힌다.

 좌심방을 채우고 있던 뜨거운 피가 왈칵 몸 밖으로 배출된다.

 다리가 풀리고 맥없이 고꾸라진다.

 군홧발에 채인 몸뚱이가 계곡으로 굴러 떨어진다.

 이렇게 스물한 해의 짧은 생을 베트남 전쟁터에서 마감한다.

 

 인생역정 5.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 (2). ©에이바(ABA)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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