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일반/역사
인생역정(人生歷程)
작가 : 에이바
작품등록일 : 2016.8.19

21세기에 들어서도 수구골통과 종북좌빨이라며 서로 발톱을 세우고 사는 것이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이념을 떠나서 서로를 인정하며 공존하는 사회, 인륜과 천륜으로 살 수 있는 세상 - 우리가 꿈꾸는 엘도라도이다.

 
4.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 (1)
작성일 : 16-08-19 20:22     조회 : 614     추천 : 6     분량 : 5225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1969년 초, 정부는 한 사람이 대통령 선거에 세 번 연속하여 출마할 수 있도록 헌법 개정을 추진하였다.

 조국의 근대화와 조국부흥이라는 민족적 과업을 위하여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란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삼선개헌 후엔 대통령의 영구집권을 위한 또 다른 개헌이 뒤따를 것이란 풍문이 교내에 파다하게 퍼졌다.

 6월이 되자, 전국의 대학들은 삼선개헌 반대 데모에 휩싸였다.

 상후는 며칠을 번민하였다.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봉사하겠다는 것은 독재자의 허울이다.

 그것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아만과 아집이요, 내 뜻대로 해야 한다는 독선이다.

 그것은 권력의 맛에 길든 자의 탐착이며, 국가와 사회의 가치 기준을 무너뜨리는 탈법이다.

 불의에 맞서는 것이 참다운 용기다.

 불의를 방관하는 것은 이미 죽은 양심이다.

 상후는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단지 사흘 동안의 항거였다.

 1969년 6월에 문리과대학에서 시작한 삼선개헌 반대 데모는 페퍼포그를 앞세우고 교정에 진입한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사흘 만에 끝났다.

 전국의 대학교는 정부의 지시에 따라서 학기말시험도 치르지 않고 조기 방학에 들어갔다.

 상후의 이름이 수배자 명단에 올랐다.

 정보과 형사들이 날마다 상후의 집에 찾아왔다.

 상후는 처음 며칠 동안 하동환 자동차공업사의 판금부에서 함께 일하던 어른들의 신세를 졌다.

 그다음 일주일 동안은 영등포, 노량진, 용산 등지를 떠돌면서 역전에서 노숙하였다.

 곧 역 주변에도 형사들이 나타났다.

 더는 서울 하늘 아래에 상후가 발붙일 곳이 없다.

 상후는 상원골에 있는 옛집으로 돌아갔다.

 상원골에 들어간 지 나흘 만에 상후는 한밤중에 들이닥친 형사들에게 체포되었다.

 상후는 동대문경찰서로 압송되었다.

 체포될 때 상후의 죄목은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이었다.

 하지만 심문 내용은 사뭇 달랐다.

 수사관들은 상후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북한을 찬양하는 이적표현물을 들이대면서 제작에 참여했다는 진술서에 서명을 강요하였다.

 그들은 데모를 주도한 문리과대학 이념 서클의 멤버들 명단에도 상후의 이름을 끼워 넣었다.

 불의를 보고 침묵하지 않은 것이 용공이며 이적 행위가 되는 세상이라면, 이 나라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하다.

 심문이 계속되면서 상후의 마음은 칠흑처럼 참담하게 내려앉았다.

 대학에 입학한 후, 상후는 서클 활동은 물론 그 흔한 미팅도 한 번 해본 적이 없다.

 수업이 끝나면 날마다 버스를 갈아타고 서너 곳을 옮겨 다니면서 그룹과외와 개인지도를 하였다.

 상후에겐 생활비와 학비를 버는 것이 공부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상후는 같은 과 선배들의 이름조차 모르고 지냈다.

 아무리 쥐어짜도 상후에게서 학내 써클 관계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없자, 수사관들은 상후의 가족과 친구 관계를 심문하였다.

 상후의 부모는 한국동란 중에 월남하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 상후에게 가족이라곤 하늘 아래 어머니 한 사람뿐이다.

 열아홉 살이 되도록 상후는 일가친척은 물론 본관이 같은 사람조차 만나 본 적이 없다.

 상후는 검정고시를 치르고 대학에 입학하였다.

 상후에겐 한국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혈연, 지연 및 학연이 전혀 없다.

 상후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서 삼선개헌 반대 데모에 참여했던 것뿐이다.

 닷새 동안 밤낮으로 협박, 고문과 회유를 반복해도 상후에게선 얻을 것이 없다.

 엿새째 되는 날, 수사관은 상후에게 서약서 한 장을 내밀었다.

 상후가 즉시 입대하고 월남전에 참전한다면 무죄로 방면하겠다는 내용이다.

 

 1960년 4월, 우리의 선배들이 꽃다운 젊음을 불사르며 막아낸 독재다.

 하지만 역사의 시련은 우리를 비껴가지 않았다.

 민의가 막걸리 사발과 고무신짝에 현혹되는 현실이다.

 이 땅에 민주주의는 아직 씨눈도 발아하지 못하였다.

 민주주의는 얼마나 많은 피를 먹어야 눈이 트는 것인가.

 민권이란 이름의 나무는 얼마나 오랜 세월이 지나야 꽃봉오리를 터뜨릴까.

 상후는 하룻밤을 꼬박 새웠다.

 다음날, 상후는 서약서에 지장을 찍었다.

 그 즉시 상후는 베트남전에 파병되는 장병들이 훈련받는 강원도 화천군에 있는 오음리 훈련소로 이송되었다.

 

 ***

 

 상후의 이야기를 들으며 민은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이 사람은 어떻게 그 모진 풍파를 헤쳐 왔나.

 혹한의 피난길에서 태어나서 아버지를 여의고 온갖 궂은일을 마다치 않고 어린 몸으로 세파를 헤쳐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의지를 굽히지 않고 공부하여 대학에 들어간 사람이다.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대학이지만 옳지 않은 것을 보고 분연히 몸을 던져 싸운 사람이다.

 한국의 역사는 어쩌면 이렇게도 우리 베트남의 역사와 유사한가.

 이차대전이 끝나면서 우리 베트남은 북위 17도 선을 경계로 북과 남으로 갈렸다.

 같은 때 한국은 북위 38도 선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분단된 나라다.

 베트남과 한국은 똑같이 외세의 개입으로 동족이 끝없는 이념의 악다구니 속에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우리와 같은 약소국가들에 벌어지는 이 끝없는 이념의 투쟁은 언제쯤이나 사그라질까?

 

 민은 추녀 밑에 호롱불을 켰다.

 흐릿한 호롱불빛이지만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고 돌아오는 엄마와 아빠에게는 이 불빛이 크나큰 위안이 될 거다.

 빗방울이 굵어지더니 곧 무섭게 불어치는 남서풍과 함께 장대비가 퍼붓는다.

 연이어 남쪽 하늘을 가르는 시퍼런 번갯불과 함께 대포 소리보다도 더 큰 천둥소리가 천지를 뒤집을 듯하다.

 오늘 밤 엄마와 아빠는 어쩔 수 없이 동굴 속에서 밤을 지새울 거다.

 민은 문단속을 하고 다시 방공호로 내려갔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민을 보고 상후는 얼른 돌아누워서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격한 감정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이역만리 남의 나라 전쟁터에서 낙오된 자신의 신세가 참담하기만 하다.

 상후의 얼굴에 번진 눈물을 본 순간, 민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이 가엾은 사람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사이공 거리와 무료 진료소에서 보았던 수많은 사람이 떠오른다.

 폭격으로 팔과 다리가 잘려나간 젊은이들,

 네이팜탄으로 전신에 화상을 입은 사람들,

 가장과 집을 잃고 노숙하는 부녀자들.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고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며 다니던 아이들.

 이 사람도 그들과 다를 바 없다.

 이 사람은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낯선 나라의 전쟁터에 끌려왔다.

 물설고 낯선 타국의 전쟁터에서 부상하고 낙오한 사람이다.

 더욱이 이 사람은 외상보다 더 큰 내면의 상처를 안고 있다.

 비록 적군으로 이 땅에 온 사람이지만, 그것은 이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이 사람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서구 자본주의에 빌붙어 사는 대한민국 정부의 그릇된 판단 때문이다.

 그것은 잘못된 지도자를 둔 힘 없는 약소국가 인민들의 비극이다.

 이 사람의 심정이 나보다 더 참담할 수도 있다.

 이 사람도 우리와 같은 전쟁의 피해자일 뿐이다.

 민의 눈에 이슬 같은 눈물방울이 맺힌다.

 

 민의 두 손이 상후의 볼을 쓰다듬었다.

 치렁한 민의 머리칼이 상후의 얼굴을 스친다.

 상큼한 민의 체취가 상후의 콧속을 파고든다.

 지난 한 달 동안 상후의 후각에 친숙해진 냄새다.

 오늘 밤은 전에 느끼지 못하였던 민의 또 다른 체취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진득해지면서 강렬하게 상후를 어지럽힌다.

 성숙한 여인의 육체가 풍기는 농익은 냄새다.

 민의 입술이 살며시 상후의 입술을 덮쳐 왔다.

 상후가 두 팔로 민을 부둥켜안았다.

 민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민의 입술이 움직였다.

 때론 서서히 때론 결렬하게 상후의 뺨과 목덜미와 귓불을 핥고 지나갔다.

 상후의 가슴을 지난 민의 입술이 점차 아래로 내려갔다.

 천둥은 끊임없이 우르릉거리지만 상후의 귀엔 민의 거친 숨소리만이 들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민과 상후는 아늑한 꿈속에서 헤매었다.

 "상후씨, 전쟁이 끝나면 꼭 돌아와야 해.

 상후씨가 있을 북동쪽을 향해서 날마다 기도할게요."

 "약속할게, 민. 꼭 돌아올게."

 

 상후가 민의 집에 온 지도 어느덧 한 달이 되었다.

 미국과 북베트남이 맺은 파리평화협정에 따라서 미군의 제2진이 이미 본국으로 철군하였다.

 안케 패스에 있는 한국군도 곧 철수한다는 소문이 나돈다.

 상후는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

 부대가 철군하기 전에 본대로 복귀해야 한다.

 상처도 거반 아물었고 거동하는 데 별반 지장이 없다.

 콘톰 이북의 중부지방은 이미 북베트남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베트콩은 아직도 쁘레이꾸에 주둔하고 있는 남베트남군 제2군단을 조롱이라도 하듯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중부 산악지방을 활보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베트콩을 피해서 안케패스에 가장 가까운 한국군 초소까지 가야 한다.

 3일 후, 상후가 기다리던 부대로 복귀할 기회가 찾아왔다.

 한밤중에 뇌성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진다.

 상후는 약초꾼으로 변장하였다.

 군복 위에 민의 아버지가 준 남루한 농민복을 걸쳤다.

 농이라고 부르는 챙이 긴 삿갓을 쓰고 어깨에는 바랑을 걸쳤다.

 한 손에는 약초를 캐는 괭이를 들고 다른 손엔 대나무 지팡이를 들었다.

 바랑에는 약초 몇 뿌리와 주먹밥을 담았다.

 준비를 끝낸 상후가 방공호에서 나왔다.

 실로 한 달 만에 들이쉬는 바깥바람이다.

 서늘한 바람이 폐부 깊숙이 파고든다.

 상후는 민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다.

 이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한 달 전, 안케 계곡에서 급류에 휩쓸려 죽었을 것이다.

 생면부지의 관계다.

 혈통도 다르고, 국적도 다르다.

 관습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다.

 더욱이 상후는 베트남 민족 간의 내전에 뛰어든 외국인이다.

 상후를 구해주고 치료해 준 것은 이들에겐 매우 위험한 일이다.

 베트콩에 발각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그런데도 이들은 정성껏 상후를 돌봐주었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상후의 마음을 아는 듯이 민의 부모도 상후의 손을 잡고 놓지 못한다.

 민은 창가에 서서 어둠 속을 바라보고 있다.

 울음을 참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측은하다.

 전쟁이 끝나면 꼭 돌아올게.

 상후의 마지막 인사에도 민은 고개를 돌리지 못한다.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민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줄 거다.

 상후가 문을 나서는 순간, 민이 달려와서 와락 상후를 끌어안았다.

 상후는 들먹이는 어깨를 어루만지며 민을 달랬다.

 꼭 돌아와서 너를 찾는다.

 네가 어느 곳에 있든지 꼭 찾을 것이다.

 한동안 울먹이던 민이 가까스로 진정하고 상후의 품에서 벗어났다.

 상후는 폭우가 쏟아지는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안케 패스가 가까운 계곡에 이르렀다.

 한 달 전에 상후가 북베트남군 매복조와 맞닥뜨린 순간, 중심을 잃고 굴러떨어졌던 계곡이다.

 이제 4km만 더 가면 안케 패스를 담당하는 제1중대 제12초소가 있다.

 상후가 잠시 멈춰 서서 지형지물을 익히고 다시 발을 떼는 순간, 동굴에 숨어 있던 베트콩 세 명이 튀어나왔다.

 “꼼짝 마!”

 

 인생역정 4.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 (1). ©에이바(ABA) 끝.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공지 글 삭제 안내 (1) 2017 / 3 / 15 892 0 -
10 10. 비켜선 운명 2016 / 8 / 22 883 4 5122   
9 9. 새 생명의 탄생 2016 / 8 / 22 949 5 5378   
8 8. 정착과 변신 2016 / 8 / 21 896 5 5214   
7 7. 탈출 2016 / 8 / 21 838 5 5193   
6 6.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 (3) 2016 / 8 / 20 966 6 4835   
5 5.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 (2) 2016 / 8 / 20 718 6 5378   
4 4.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 (1) 2016 / 8 / 19 615 6 5225   
3 3. 삶과 죽음의 간극 (3) 2016 / 8 / 19 663 8 5154   
2 2. 삶과 죽음의 간극 (2) 2016 / 8 / 19 897 6 5474   
1 1. 삶과 죽음의 간극 (1) 2016 / 8 / 19 1049 11 5157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