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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문자의 아이들
작가 : 뉴레기
작품등록일 : 2017.7.8

첫 번째 암흑기를 주도했던 세 명의 사이먼 중 하나인 젤브로스는 두 번째 암흑기가 도래하려하는 전란의 시기인 300년대에 모든 인과관계를 끊고 가이아드 대륙을 방황한다. 그러던중 우연히 네지라는 자의 부탁을 들어주게된다. 부탁이란 최근 도시 펠리스를 둘러싼 영악한 괴물에 대한 퇴치 의뢰였는데........

 
Final
작성일 : 17-07-21 19:56     조회 : 287     추천 : 0     분량 : 16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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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명일, 루브네와 젤브로스는 올라프 외곽의 습기 찬 풀밭을 걷고있었다. 아직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검은 하늘은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조차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않았다.

 

 남동쪽으로 향하던 젤브로스는 루브네를 생각해 속도를 최대한 늦추며 쉬는 시간을 오랫동안 가졌다. 속도는 무척 느렸지만 젤브로스도 슬슬 둘이 함께하는 여행에 익숙해진 참이었다.

 

 문제는 저녁 때 부터 시작되었다.

 

 "........뭐?"

 

 저만치 보이는 평야의 끝에 우거진 숲이 하나 있었다. 그다지 커다란 숲은 아니었지만 숲은 곧 산으로 이어져 있는 듯 보였다. 아마 공화국의 수도 율레무어로 향하기 위해선 반드시 넘어서야할 터였다.

 

 하지만 산 언저리에서 느껴지는 심상찮은 독기는 아직 먼곳에 있는 젤브로스 조차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짙게 다가왔다.

 

 루브네도 인상을 쓰며 코를 막았다. 하마자르의 취락에서 느꼈던 냄새에 강한 독기를 섞어 놓은 듯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던 것이다.

 

 '이 정도 거리에서도 저만큼의 독기, 대체 저곳은.....?'

 

 젤브로스는 일단 걸음을 멈춰서기로 했다. 하자마르 한이 말했던 것이 문득 뇌리에 스쳤다. 올라프 등지를 돌아다닌다는 오버로드의 존재. 그리고 반드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조언.

 

 '.....그럴리가.'

 

 기껏해야 황혼기가 지난 시체남작이 우연히 산에 둥지를 튼 정도일 것이리라, 젤브로스는 생각했다. 황혼기를 지난 시체남작은 가만히 있어도 주변에 치사량의 독기를 내뿜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젤브로스가 해야할 일은 간단했다.

 

 '해독제를 위해 필요한 것은 콥서의 내장과 도라지 뿌리, 그리고 다카쉬의 눈물, 마지막으로 카나 열매의 즙이겠군.'

 

 다행이 카나 열매라면 가지고 있었다. 루브네를 위해 젤브로스가 몇 개 챙겨두고 있던 참이었으니까. 문제는 나머지 재료들이었다. 도라지의 경우도 이런 들판이라면 잘 자랄터이니 구하기 어렵지 않을터였다.

 

 젤브로스의 예상대로였다. 도라지 꽃을 찾는데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젤브로스는 즉시 2인 분량의 해독제를 만들 도라지 뿌리를 캐낸 뒤 다음 재료를 찾아나섰다.

 

 '카나 열매를 구워서 보관하지 않은건 불행중 다행이로군.'

 

 두 발로 뛰어서 그 괴물을 찾는다면 언덕이나 깊은 산속이 좋겠지만 그렇게 찾는 것은 초보 용병들이나 저지르는 짓이었다. 콥서는 항상 시체 주변에 모인다. 그렇다면 시체를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닌가?

 

 젤브로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은 전쟁중이다. 이 근처에서 전투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나 만약 전투가 일어났다면 승자 쪽은 콥서가 꼬일게 뻔한 전사자들의 시체를 들판에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었다.

 

 "흠, 바로 저기있군."

 

 풀들이 무성한 들판의 한 곳에, 이상하게 갈색 흙으로 덮여있고 몇 가닥의 잡초들만 나있는 장소가 눈에 띈다. 젤브로스는 즉시 그곳으로 갔다.

 

 "여기서 기다리렴."

 

 "응."

 

 루브네는 즙을 짜고 남은 카나 열매를 건네며 루브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맥시멈."

 

 주먹을 움켜쥔 오른손이 푸른빛에 휘감긴다.

 

 쾅!

 

 내지르는 주먹이 땅을 가르고 타격지점에 있던 흙과 돌들을 하늘 높이 들어올리며 엄청난 굉음을 일으켰다.

 

 "제길, 냄새가 아주......"

 

 본능적으로 인상을 찡그리는 젤브로스의 몸에 무색 투명한 물방울 몇 개가 튀었다. 아주 지독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었다.

 

 젤브로스는 자신이 파낸 구덩이의 꼴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깊게 판 구덩이 속에 수많은 시체를 죄다 쏟아부어 놓은 탓에 구덩이는 시체에서 흘러나온 물로 아주 호수를 만들고 있었다. 대충 이 시체를 파묻기 위해 족시 30m가량은 파내었을 것이다. 전투의 규모는 100vs100 정도일까. 시체의 갑옷으로 미루어보자면 공화국 인근을 습격한 제국군과 그것을 막기 위해 달려온 공화국 간에 일어난 것임이 틀림 없었다.

 

 '공화국이 승리했나보군. 시체의 수는 거의 대부분이 제국놈들이야.'

 

 "루비!"

 

 젤브로스는 옷에 묻은 지저분한 수분기를 대충 털어내며 루브네에게 다가갔다. 루브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젤브로스가 있는 곳으로 총총 걸어오다가 뒤쪽에서 나는 고약한 악취 탓에 헛구역질을 했다.

 

 "조금 멀리 떨어져있자."

 

 "우우....대체 이게 무슨 냄새야?"

 

 "흠, 이독제독이라는 거란다."

 

 "먹는거야?"

 

 "으음......뭐, 우리가 먹는 음식은 아니지."

 

 젤브로스와 루브네는 구덩이로 부터 30m정도 떨어져 있은 뒤 그곳에 불을 피웠다. 그리고 젤브로스는 루브네와 함께 잠시 그곳에서 한 시간 가량 기다렸다.

 

 그리고.

 

 '왔군.'

 

 멀직이 보이는 시체의 우물 근처를 서성이기 시작한 그림자가 몇 보이자 젤브로스는 리블을 빼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때 쯤 루브네는 풀밭에 누워 꾸벅 꾸벅 졸고있었다.

 

 '깨울필요는 없겠지.'

 

 젤브로스는 즉시 다시 시체의 우물로 되돌아갔다.

 

 그곳에서 흉측한 모습의 붉은 괴물이 물웅덩이에 빠져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대체 저게 뭐가 맛있다고 으적으적 먹는 것인지 이해하려해도 알 수 없다.

 

 '그러니까 괴물이지.'

 

 죽어 썩은 시체를 먹던 콥서가 살아 숨쉬는 인간을 발견하곤 표적을 젤브로스로 옮겼다. 그릉 그릉 거리며 어슬렁 어슬렁 젤브로스 주변에 기어오던 콥서들은 총 다섯 마리 정도였다.

 

 '필요한 건 한 마리.'

 

 리블을 빼든 젤브로스는 즉시 사냥을 개시했다.

 

 결과는 정말 너무도 허무했다. 칼을 한 번 휘두름과 동시에 괴물 세 마리의 몸이 두동강났고 뒤쪽에서 달려든 콥서를 발로 걷어찬 뒤 연이어 달려든 마지막 한마리의 뺨에 칼날을 찔러넣었던 것이다.

 

 마지막 남은 한마리가 꾸역 꾸역 몸을 일으키더니 이빨을 드러냈다. 젤브로스는 리블을 거머쥐고는 휙! 휘둘렀다. 괴물의 목이 깨끗하게 잘려나갔다.

 

 '......됐다.'

 

 마지막으로 해치운 괴물의 시체 옆에 쭈그려 앉아 두 손으로 괴물의 쇄골을 잡아 뜯어내자 부패한 살점과 함께 쇄골 뼈가 통채로 뜯겨나왔다.

 

 "냄새....."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해야할 일은 마친 젤브로스는 괴물의 살점과 피가 더덕 더덕 붙은 창자를 한 웅큼 쥐고는 맥시멈을 외운 타격으로 시체의 우물을 매워버렸다. 팔때와는 다르게 메울 때는 꽤 세심한 힘 컨트롤이 필요했던지라 시간을 좀 잡아먹고 말았다.

 

 캠프장으로 돌아온 젤브로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낮인지 밤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칠흑의 하늘은 젤브로스를 깊은 잠에 빠뜨리려는 듯 계속해서 푸근한 어둠을 내리깔며 종용하고 있었다.

 

 루브네는 아직 자고 있었다.

 

 젤브로스는 그녀를 흔들어 깨웠다. 눈가를 비비며 하품을 스읍! 하던 루브네가 순식간에 입과 콧속으로 들어오는 썩는내 탓에 기침을 콜록이며 눈물을 그렁거렸다.

 

 "뭐야 이게! 냄새나 제브! 저리 치워!"

 

 "아, 미안. 루비는 이런게 익숙하지 않지."

 

 젤브로스는 창자 덩어리를 옆에다 휙 집어던져 놓았다. 그러나 루브네의 표정은 여전히 혐오로 물들어 있었다.

 

 "몸에서도 냄새가 나! 좀 씻어 제브!"

 

 "흠, 이 근처엔 물가가 없는데."

 

 "아까 구덩이에 물이 자안뜩 고여있던데?"

 

 "분명 착각일거란다 얘야."

 

 어쩐지 입술을 삐쭉내민 루브네를 그대로 냅두며 젤브로스는 양 허리에 손을 올려놓았다.

 

 마지막 재료가 중요하다.

 

 보통 시체남작이 내뿜는 독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면역 포션 제조법은 이상이 끝이었다. 도라지 뿌리와 콥서의 내장, 그리고 카나 열매의 즙.

 

 하지만 황혼기를 벗어나 보통의 시체 남작보다 수십배 이상의 강한 독기를 쉴새없이 내뿜는 고령의 시체 남작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면역 포션으론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다카쉬의 눈물.

 

 다카쉬의 눈물은 일반 약초상들 사이에서도 고가에 거래되는 약초였다. 높은 산 등지에서 피어나는 흰색 꽃인 다카쉬 꽃이 아침에 머금는 이슬을 담은것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콥서들과는 달리 그 꽃은 어떻게 유인할 방법이 없었다.

 

 이 근처에 높다란 산이라고는 눈 앞에 보이는 독기 가득한 산이 전부였는데 저런곳에 맨몸으로 갔다간 아무리 젤브로스라도 몸에 무리가오고 말것이다. 게다가 애초에 루브네가 곁에 있다는 시점에서 그 방법은 기각이다.

 

 '곤란하군.'

 

 젤브로스는 팔장을 끼고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올라프로 돌아가 약초상에게 사는것이 가장 빠른길이지만 지금 젤브로스는 가지고 있는 데릭실이 별로 없었다. 다카쉬의 눈물은 고사하고 일반 약초 조차 한 줌 사기 힘들 정도로 지갑 사정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해독제를 만드는것을 포기하고 산을 돌아서 가는 것도 문제였다.

 

 젤브로스는 지도를 펼쳤다. 지도는 디엘노움 지역만을 자세히 표시해준 터라 베를리 지역에 대한 묘사는 조금도 그려져있지 않았다.

 

 하지만.

 

 '디엘노움 지역으로 이어지는 두 개의 거대한 강, 하나스와 폴호스가 분명 저 산의 양 옆으로 흐르고 있을거야. 강의 폭은.....지도상에 그려져있는 것으로 보면 아주 깊고 넓은 곳이군. 아마 이 근처엔 하류가 흐르고있을거야.'

 

 디엘노움 지역 남쪽에서 동쪽으로 흐르고있는 두 개의 거대한 물줄기를 검지로 따라그리니 손가락이 지도의 남동쪽을 벗어나 맨땅을 가리키게 되었다.

 

 젤브로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젊은이, 도움이 필요한가보군 그래."

 

 바로 그 때 뒤쪽에서 낮선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젤브로스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50대 초반 쯤 돼보이는 여성이 나이에 걸맞지 않은 검은 드레스를 입은채 거기에 서있었다.

 

 "누구지?"

 

 기척을 알아채지 못했다. 젤브로스는 그 사실에 인상을 찡그렸다.

 

 노인은 늘어진 웃음을 내며 손을 휘저었다.

 

 "뭘, 이곳에서 장사지낸 내 남편을 매일 찾아오는 드로킨이지."

 

 젤브로스의 눈섭이 까딱였다.

 

 "드로킨, 공화국 사람인가. 하지만 드로킨은 머리에 야트막한 풀뿌리 같은것이 돋아있지. 하지만 네겐 없는 것 같군."

 

 "낄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들 생각한다네."

 

 노인은 몇 걸음 젤브로스에게 다가오더니 고개를 숙여 정수리를 보여주었다. 흙밭의 풀을 뿌리채 뽑았을 때 생기는 상처같은게 거기에 나있었다.

 

 "우리들은 젊을 땐 이 뿌리에서 양분을 얻지만 늙으면 오히려 빼앗긴다우. 그래서 조금 더 오래 살고싶어하는 드로킨은 늙기 시작할 때 쯤 뿌리를 뽑아내지. 물론 생살 덩어리를 뜯어내는 고통을 참을 자신이 있는 사람들만! 이히히히!"

 

 노인은 늙은 나잇대의 인간과 어울리게 천천히,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젤브로스는 어딘지 모르게 그 노인이 실성한 조현병 환자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노인의 눈은 잔뜩 풀려있었다. 게다가 초점도 제대로 맞춰져있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꼭두각시 인형같았다.

 

 "......남편이 이곳에서 죽었나."

 

 젤브로스가 묻자 노인이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오오, 귀여운 아이야! 아주 예쁜 아이를 데리고 있군! 이히힛! 이 나이가 되면 작고 꼬물거리는 인간의 아이들이 모두 신기하게 보이게 된다우."

 

 하지만 노인은 젤브로스의 말에 일언반구 않고 루브네에게 관심을 돌렸다.

 

 '이 노친네 제정신이 아니군.'

 

 50대 할매 주제에 젊은 처녀나 입는 검은 원피스를 입고다니는 것 부터가 일단 넌센스였다. 처음엔 자신도 잘 모르는 공화국의 숨겨진 문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노인의 언변과 행동을 보며 젤브로스는 그것이 잘못된 예측이었다는 것을 금방 알아챘다.

 

 노인이 루브네에게 다가가려하자 젤브로스가 팔로 가로막았다.

 

 "물러나. 더이상 다가오지마."

 

 "......킬킬, 관계라는 것은 아주 좋네 젊은이."

 

 노인은 발걸음을 멈추곤 기분나쁜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젊은이들 같은 관계를 가진 영감탱이가 하나 있었네. 직업이 직업인지라 이런 전쟁기간엔 집에 있는 시간보단 군대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지. 우히, 우히힛!"

 

 "제브, 저 할머니 어딘가 이상해."

 

 루브네가 겁을 먹었다. 젤브로스는 그녀를 뒤쪽으로 물린 뒤 눈살을 찌푸렸다.

 

 '드로킨은 애정과 우정을 삶의 기준점으로 삼는 종족들이야.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불륜을 저지르거나 끔찍한 죽음을 맞이한다면 남은 반쪽은 제정신을 못차리지. 만약 이 노인의 남편이 이곳에서 벌어졌던 전투에서 전사한 공화국군의 병사라면 이 노인이 실성하는 것도 이해가. 하지만.....'

 

 젤브로스는 거기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노인은 단순히 남편을 잃은 슬픔에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불쌍한 과부는 아니었다. 그녀에게선 남편을 향하는 그리움이나 애증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이 노인이 온 방향.'

 

 느껴지는 것은 순수한 사악.

 

 오랜 시간동안 어둠속에서 살아온 젤브로스가 만나왔던 수많은 사악들과 다를것 없는 검정.

 

 젤브로스는 노인의 발목 부분을 내려다보았다. 오랫동안 그녀를 걷게해준 신발은 이미 헐고 찢어져 있었다. 수선하면 충분히 고쳐 신을 수 있는 신발이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게다가 노인의 신발 윗 굽엔 죽은 벌레가 녹아 엉겨붙어있는 것이 보였고 원피스 밑단과 신발 사이에 드러난 10cm가량의 다리엔 수분기 잃은 흙이 무성했다. 분명 오랫동안 이 땅 위를 걸어다녔던 것이 틀림없었다.

 

 '발자국.....'

 

 노인이 서있는 곳의 뒤쪽, 자세히 보면 노인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물어보고 확인할 필요도 없이 이 노인은 독기가 우거진 숲 쪽에서 걸어왔던 것이 틀림없다!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있지? 황혼기를 벗어난 시체 남작의 독기는......"

 

 그 순간.

 

 노인이 간질에 걸린 환자마냥 입에 거품을 물고 자지러지기 시작했다.

 

 "우국....우꺅....우꺄 구르르룩....꾸각.....끼게게게게게게겍!!!"

 

 "제, 제브으으으?!"

 

 젤브로스의 뒤쪽에 잠자코 숨어있던 루브네가 뒤로 자빠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지금 이 노인의 돌발적인 행동은 정말 문자 그대로 갑자기 튀어나온 발작과도 같은 것이라 흠칫, 젤브로스도 저 노인의 급작스레 변한 몸짓에 놀라 몸을 움츠리고 말았다.

 

 "위험해, 이건.......!"

 

 노인이 양팔을 하늘 높이 뻗고 괴상한 팔자걸음으로 젤브로스에게 다가오기 시작했고 젤브로스는 방어태세를 위해 리블을 뽑아들었다.

 

 "루비! 물러나라! 이건......코서야!"

 

 커스 오브 오버로드.

 

 미지의 존재이자 사이먼들 조차 상대하고 싶어하지 않아하는, 목숨을 걸고 도전해도 이길 승산이 반할도 안되는 절대적인 존재, 오버로드의 저주를 온몸으로 받아버린 인간의.

 

 코서.

 

 노인은 발작을 일으킴과 동시에 전신에서 검은 아우라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아우라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젤브로스는 몸속의 장기가 녹아드는 듯한 역한 고통에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것은 저 눈앞에 보이는 우거진 숲에서 발산되는 독기와 아주 흡사했다. 마치 저 숲의 독기를 병에 담아 온 축소판 같은 것이 지금 젤브로스의 눈앞에 서있었던 것이다!

 

 "루비!"

 

 리블의 검날을 노인에게 들이대며 젤브로스는 뒤에 있을 루브네를 걱정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볼 수는 없었다. 아무리 오버로드의 저주를 받았을 뿐인 인간이라도 그 힘은 상급 괴물들을 아우르고도 충분했다.

 

 방심했다간 당한다.

 

 '다행이 지성은 없는 코서야. 정신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환각계 저주에 걸린 놈이 틀림없어.'

 

 칫, 젤브로스는 혀를 찼다. 지성이 없다고해서 좋은 것은 아니었다.

 

 지성이 없다는 것은 즉, 다르게 말하면 눈에 뵈는게 없다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그갸갸갸갸가가가가각, 그갹! 끄끼얏!"

 

 서서히 다가오던게 갑자기 달리기 시작한다. 젤브로스의 성흔이 빛났다.

 

 "스피--"

 

 "거기까지네."

 

 파앗!

 

 강력한 폭풍이 불어온것은 바로 그 때였다. 작은 묘목들 정도는 가볍게 뽑아낼 수 있을 정도의 바람이 젤브로스의 뒤쪽에서 불어와 노인을 넘어뜨리곤 소용돌이 처럼 주변을 맴돌더니 하늘 높이 승천했다.

 

 '이, 이건.....?'

 

 "우웁....!"

 

 젤브로스는 역한 냄새가 풍겨오자 인상을 찌푸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이 냄새....."

 

 익숙하다.

 

 어제 올라프에서 하자마르 한의 취락에 들어갔을 때 풍겨왔던 냄새와 판박이었다.

 

 "우고고고곡! 우옥! 우가아악!"

 

 그 역한 냄새에 고통스러워 하는 것은 비단 젤브로스 뿐만은 아니었다.

 

 "뭐....."

 

 눈앞의 코서는 젤브로스 보다 몇 배, 아니 몇 십배는 더 고통스러워 하며 온몸을 부를 떨기 시작하더니 우거진 숲속으로 냅다 도망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놓치지 않아!"

 

 다시 한 번 예의 그 목소리가 들려오자 잠시 잠잠해졌던 대기가 다시 일렁이기 시작했다.

 

 "라크 난 다엘!"

 

 그냥 휘몰아칠 뿐이었던 바람이 마치 힘을 얻은 듯 노랗게 번쩍인것은 바로 그 때였다.

 

 "사라져라, 저주받은 존재여!"

 

 "너...."

 

 구태여 몸을 숨길 생각은 없는지 당당하게 젤브로스 앞에 모습을 드러낸건 다름아닌 하자마르 한이었다. 한은 예의 그 짐승 뼈 목걸이를 움켜쥐고는 그 손을 앞으로 뻗고있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목걸이가 마치 빛의 바람에 공명이라도 하는 것 처럼 번쩍 번쩍 빛나기 시작했다.

 

 "우그아아아아!"

 

 빛의 바람에 휩싸인 코서의 몸은 이제 검은 음영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자마르 한이 조종하고 있는 빛의 바람속에 파묻혀 있는 그녀는 여전히 고통스러운 듯 그 안에 마구 날뛰고 있었다.

 

 그러나.

 

 "흐읍!"

 

 뻗었던 손을 당기듯 뒤로 뺌과 동시에 빛의 바람이 팟!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진다.

 

 "........"

 

 더이상 비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코서였던 여인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후,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네 사이먼이여."

 

 대기는 언제그랬냐는 듯 또다시 깊은 정적에 휩싸였다. 조금 전까지 빛의 힘을 머금었던 바람은 다시 평범한 실바람이 되어 젤브로스의 옷깃을 간질이기 시작했다.

 

 젤브로스는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 역한 냄새에 인상을 찡그린 채로 하자마르 한을 노려보았다. 아니, 냄새가 나지 않았어도 그는 분명 인상을 찡그렸을 터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할 준비는 됐겠지."

 

 젤브로스는 느꼈다.

 

 그것은 의심할 필요도 없는 시엘의 힘이었다.

 

 

 

 #

 

 

 

 

 늦은 밤이 돼서야 세 사람은 다시 올라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젤브로스와 루브네는 하자마르가 인도해준 빈 움막에 들어가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는 한의 취락으로 이동했다.

 

 "어머, 혼자서는 화장실에도 못가는거야? 세상에 우리 카예프들은 아이부터 어른들 까지 모두 겁이 없는데~!!"

 

 "아, 아니야! 그렇지않아!"

 

 한의 딸인 간과 루브네는 이래저래 떠들며 자기들 끼리 왕왕 떠들어대고 있었다. 루브네보다 다섯 살 정도 많은 간이었지만 이렇게 놓고보니 언니와 동생이 따로없었다.

 

 간의 놀림에 씩씩 화를내는 루브네를 보며 싱긋웃던 한은 조금전 자신이 내준 따뜻한 우유를 머금으며 침묵하고 있는 젤브로스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떪떠름한 표정이었다.

 

 "그것보게, 내 말하지 않았나. 자네는 반드시 되돌아올거라고."

 

 젤브로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네가 억지로 끌고온것 아니냐."

 

 "설명을 듣기 싫었으면 그냥 가던길 마저 갔으면 되었네. 구태여 나를 따라 올라프로 돌아오기로 한건 자네의 선택이었지."

 

 "억지스럽군."

 

 젤브로스는 잔을 다 비우고는 빈컵을 테이블 위에 난폭하게 올려놓았다. 한은 여전히 여유롭다 못해 장난기 까지 머금은 듯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이건 영식이라고 한다네."

 

 한은 짐승뼈 목걸이를 살며시 거머쥐며 운을 뗐다. 목걸이는 평소와는 다르에 희미한 푸른빛을 내며 약하게 공명하고 있었다.

 

 "자네와 저 아이가 냄새를 맡지 못하는 이유도 자네에게 건 특별한 영식 덕분이지."

 

 젤브로스는 팔장을 끼곤 고개를 기웃 거렸다. 아까 그 코서를 물리칠 때 저 한이라는 자가 사용했던 폭풍. 그것이 몰아침과 동시에 형언할 수 없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묵은 시체를 한곳에 모아두고 썩인 뒤 오물을 부어 그 속에 뛰어드는 것 보다도 더 역한 악취가.

 

 괴로운건 젤브로스도 매 한가지였다. 저 한이라는 남자가 만들어낸 악취라면 목을 비틀어 꺾어서라도 멈추게 하고 싶을정도로.

 

 "그 냄새는 대체 뭐였지? 나와 루비만 느끼는건가? 아니면 너희들 카예프들은 면역이 돼있는 건가?"

 

 "우리는 맡지 못한다네."

 

 젤브로스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일종의 방어 영식이지. 어둠의 존재로부터 도시를,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영식."

 

 "어둠의 존재라. 허, 재미있는 작명센스군. 일백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적도 없어. 영식인지 뭔지 그것도 마찬가지야. 내가 질문하고 싶은것은 어떻게 일반인인 너희가 시엘의 힘을 사용할 수 있냐는 거야. 사이먼도 아닌 너희들이."

 

 "처음듣는 것도 당연하지. 너 또한 우리들이 경계하는 어둠의 존재 중 하나이니."

 

 한은 짐승뼈 목걸이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며 말을 이었다.

 

 "칠흑의 저주, 칠흑의 역장.....이 영식은 초대의 르칸부터 이 때까지 내려오는 반영구적 영식이라네. 우리들은 우리를 보살피는 신, 그 중에서도 초력의 시엘을 섬기는 사제들이야. 우리들은 시엘의 힘이 세상밖으로 퍼지지 않게 지키는 것과, 어둠의 존재들로 부터 이 성소를 지키는 두 가지의 임무를 위해 살아간다네."

 

 "너희들은 지금 공화국에 소속된 소수민족들 아니던가?"

 

 "그것은 우리의 선택이었지."

 

 하자마르 한의 눈가에 음영이 드리워졌다.

 

 "자네도 보았겠지. 그 음침한 숲의 강렬한 독기 말일세."

 

 "황혼기를 넘은 시체남작......은 아닌것 같더군."

 

 하자마르 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혼기를 넘은 시체남작? 그건 또 뭔가. 혹시 늙은 시체남작을 말하는건가? 작명센스가 뛰어난건 비단 우리들 뿐은 아닌것 같은데."

 

 소녀에게서 소년의 이름을 본 사람 처럼 의아한 듯 눈을 깜빡이던 한은 헛기침을 하더니 본래의 주제로 돌아갔다.

 

 "대략 2년 전 쯤이었네. 저 어둠의 존재가 올라프 주변을 기웃거리기 시작한건."

 

 "오버로드라고 했나?"

 

 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도 느껴 알겠지만 이 근처에 어슬렁거리는 어둠의 존재는 모두 역한 냄새 때문에 접근도 하지 못하지. 자네의 경우에는 신탁을 통해 미리 자네들이 올것을 알았기에 그 방향의 역장을 거둬들였을 뿐이라네. 이곳으로 오는 손님의 발길을 돌리게 할 수는 없으니 말일세 허허."

 

 "그리고 내가 올라프를 멋대로 빠져나갔을 때도 그 숲 일대의 냄새도 지워버렸지. 일부로."

 

 후후, 한은 즐겁다는 듯 미소지었다.

 

 "깨닫게 해줄 필요성이 있었네. 뭐, 그 탓에 어둠의 존재 한 명이 근처까지 다가오도록 허락하고 말았지만."

 

 그 코서를 말하는 것인가.

 젤브로스는 생각했다.

 

 "거기에 있는 녀석이 보통 녀석이 아니라는 것은 알겠어. 그런데 한 가지 묻고싶군. 원래 그 방어 영식이라는 것은 오버로드 조차 접근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강력한 주술이었나?"

 

 오버로드는 가이아드 대륙 심연의 심연에 존재하는 극강의 존재들이다. 아직 밝혀진 정체라고는 한치도 없고 어디서 어떤방식으로 생겨나고 생활하는지도 알려진 바 없다. 애초에 그들의 존재를 알고있는 자는 기껏해야 젤브로스와 같은 사이먼들, 그리고 리버티 어스의 수장인 페가수스 정도 뿐일터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오버로드는 괴물이라 불리는 내가봐도 괴물이지. 그들이 네 영역에 관심이 없어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뿐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들이 접근하려 했음에도 겨우 조악한 마법술식 하나로 그것들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막아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보기엔 우스운 자기위로로 밖에는 보이지 않아."

 

 "막는것이 아니네."

 

 한은 망설임 없이 젤브로스의 반론에 반론을 던졌다.

 

 "막는 것은 칠흑의 역장이 하는 역할이지. 올라프 등지에 모여드는 괴물이나 코서의 존재들을 원천에 차단하는 역할. 단지 그것 뿐이네."

 

 "그렇다면--"

 

 "그것은 칠흑의 저주가 하는 역할이라네. 자네가 이제껏 봐왔던 칠흑의 하늘 말일세."

 

 한은 젤브로스가 끼어들 틈도 주지 않고 청산유수로 말을 내뱉었다.

 

 "우리도 그 강대한 존재들을 미약한 힘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네. 그래서 내 선조들은 관점을 돌렸지. 그들의 침입을 막는게 아니라, 그들의 침입을 완전히 봉쇄하는 쪽으로 말일세."

 

 "알기 쉽게 설명해."

 

 "칠흑의 저주는 우리 카예프들이 세대를 거듭해 오랜 시간 축적해 만든 영식 주술의 결정체일세. 자네가 부르는 오버로드라는 존재들은 이 저주의 비호를 받고있는 올라프를 발견하지도 못하지. 시야를 차단하는 것일세."

 

 한은 이어서 말했다.

 

 "이 시엘의 보구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 자네가 문자를 통해 성흔을 발동시킨다면 우리는 이 보구를 통해 영식을 발동시킨다네. 하지만 시엘의 자손으로서 초월적인 힘을 내는 자네와는 다르게 우리는 이 힘을 지키기에는 너무 미약하네. 때문에 우리가 사용하는 영식은 언제나 방어와 보호에 치중되어 있지. 이 보구는 언제나 외부인들이 침을 흘리며 노리고 있으니까."

 

 아니, 빼앗겨서는 안되지. 한은 뒤에 나지막히 덧붙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네. 역장과 저주가 약해진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자네 말대로 오버로드는 그저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뿐인지는 모르겠지만 2년 전부터 올라프 등지에 강한 존재가 어슬렁 거리기 시작했어. 처음에는 그냥 기웃거리는 정도였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 빈도가 점점 커지더니--"

 

 한은 손가락으로 젤브로스를 가리키며.

 

 "자네가 이 쪽으로 향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그 숲에 틀어박혀 사악한 힘으로 오염시켜 놓기 까지에 이르렀네."

 

 "난 근래 오버로드들의 심기를 거스른 일은 한적이 없는데."

 

 "내가 말했지 않았는가, 자네는 표적이 되었다고."

 

 아니, 아니지.

 

 한은 직후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이 내뱉은 말을 정정했다.

 

 "실질적인 표적은 자네가 아니라 저 여자 아이일세."

 

 "그 이야기는 지긋지긋하군, 그 누구도 루비에겐 손끝하나 대지 못해."

 

 젤브로스의 표정은 단호해서 귀염성이라곤 없는 하자마르 한도 입술이 오므라지고 말았다.

 

 잠시 침묵이 있은 뒤, 하자마르 한이 입을 열었다.

 

 "자네가 누구를 만나기 위해 공화국 땅에 발을 들였는지 예상할 수 있겠군."

 

 주제가 바뀌었다. 취락안에서 왁자지껄 떠들던 간과 루브네의 목소리가 멀어져갔다. 아마 바깥으로 나갔을테지.

 

 "라스의 자손 제무르라 했던가."

 

 젤브로스의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후후, 정곡을 찌른 모양이군. 그 남자의 고향이 공화국에 있다는 소문은 사실인 모양이지?"

 

 "구태여 숨길필요는 없겠지."

 

 한의 동공이 한점에서 멈췄다. 필시 무언가 생각에 빠져있는 것이리라.

 

 "너는."

 

 자주 찾아오는 침묵속에서, 이번에 벽을 깨뜨리고 목소리를 낸것은 특이하게도 젤브로스였다. 한의 동공이 그제서야 젤브로스의 얼굴로 향했다.

 

 "루비에 대해, 루브네에 대해 뭔가 아는 것이 있나?"

 

 한은 대답하지 않고 다시 동공을 아래로 떨어뜨릴 뿐이었다. 하지만 젤브로스는 그라면 반드시 입을 열것이리라 믿어의심치 않아하며 그가 운을 떼기를 기다렸다. 둘 사이에 놓인 탁자 위의 테피스트리 속 그림이 그날 따라 더 음울해 보였다.

 

 한은 몇 번을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심지를 굳힌듯 날카롭게 뜬 두 눈을 젤브로스에게 던졌다.

 

 "나도 정확히는 모르네. 하지만 그 아이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총 다섯 가지라는 것은 알아챘지."

 

 한은 손가락 다섯개를 펼치며 젤브로스 앞에 내놓았다.

 

 "무슨 뜻이지?"

 

 "하나는 인간의 기운일세. 본래 의심할 필요없는 순수한 인간의 영혼은 분명하게도 그녀의 가슴속 깊은 곳 언저리에 숨 쉬고있지. 이것이 그 아이를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느꼈던 기운일세."

 

 그리고는 손가락을 하나 접었다.

 

 "두 번째는 신의 기운일세. 특히 내가 섬기는 시엘의 기운이 특히나 더 강력하더군, 자네에게서 느껴지는 것과 똑같아. 인간의 영혼 속에 야트막한 시엘의 기운이 서려있어. 이런 기괴한 기운은 자네 같은 사이먼들에게서만 느낄 수 있지."

 

 "듣고있네."

 

 한은 두 번째 손가락을 접었다. 그리고 거기서 한 숨을 푹 내쉬었다.

 

 "남은 하나는 어둠의 존재가 내뿜는 기운일세. 그래, 자네들의 용어로 풀이하자면 오버로드의 기운이라고 할 수 있겠군."

 

 "........"

 

 젤브로스는 이전, 리드웨이와 얽혔던 디엘노움 지역의 어느 숲속에서 흉물로 변해버린 루브네를 마주했던 적이 있었다. 아니, 본래는 자신과 있었을 때 보다 더 많은 시간을 그런 끔찍한 모습으로 지냈을터였다. 플라버스와 펠리스에서, 어쩌면 그보다도 더 많은 지역에서.

 

 "어째서 신과 대비되는 존재인 어둠의 존재의 기운이 공명할 수 있는 것인지는 나도 미지수일세. 이런 경우는 고대 르칸들의 서적에도 적혀있는 바가 없었으니까. 저 아이가 누구인지는 내가 오히려 묻고싶을 정도군. 어디 그뿐인가."

 

 한은 손가락을 하나 더 접었다. 이제 남은 손가락은 두 개였다.

 

 "......남은 두 개는?"

 

 그러나 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은 자네가 풀어야할 숙제지. 남아있는 두 개의 기운은 느껴지긴 하나 그 정체는 실로 불가사의 하다네. 이제껏 들어보지도, 접해보지도 못한 이질적인 기운이 두 개. 그 두 개가 지금 그 아이의 내적 세계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짐작가는 거라도 없나?"

 

 그러나 한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만 절레절레 돌릴 뿐이었다.

 

 "미안하네만 거기까지는 나도 알 수 없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호언장담할 수 있겠군. 저 아이는 지금 무지막지한 괴물을 내면에 감추고있네. 조금만, 반의 반의 반만.....아니, 드넓은 초원에서 흙 한줌만 걷어올릴 정도로 극히 일부분만 보아도 정신이 미쳐버릴 정도로 억척스런 무언가가 말일세."

 

 "역시 오버로드인가."

 

 "흐음?"

 

 한은 젤브로스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끔찍한 괴물로 변해버린 루비를 일전에 상대해야 했던 적이 있었어. 내뿜는 기운은 의심할 필요도 없이 오버로드의 그것이었지. 그런데 시엘의 문자를 사용한 성흔마저 사용하더군. 실력과 힘은 실제 오버로드에 비하면 미약하기 그지없었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내가 살아오면서 보아왔던 그 어떤 미지수적인 존재들 보다 몇 층 더 깊은 심연에 잠겨있었어."

 

 "그 아이는 노력하고 있는게야."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던 한은 그렇게 말했다.

 

 "내 예상이지만 그녀는 알게모르게 자신이 품고있는 괴물에 대한 것을 은근 자각하고 있을지도 몰라. 최대한 그것을 억누르고 억눌러왔지만 아마 그녀의 의지보다도 심층에 잠들어있는 그 괴물은 더 흉폭했던게지. 아마 시엘께서는 그렇기 때문에 그 아이에게 문자를 하사하신것이 아닐까? 난 그런 생각이 드는군."

 

 "시엘이.....?"

 

 시엘의 자손이라 불리지만 실제로 젤브로스는 시엘이란 존재에 대하여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다만 알고있는 것이라곤 시엘이 세상 육신의 아버지라는 것과 다른 어떤 신들보다도 더 강인하다는 것, 그리고 세상을 창조했을 때 세상의 외형을 만든 초력의 신이라는 것.

 

 하자마르 한은 입을 열었다.

 

 "그는 초력의 속성을 가진 신으로서 세상의 만물을 창조했다네. 육신의 아버지라고 불린다는 것은 자네도 알고있을 터. 하지만 자네는 시엘의 힘, 그 본질 자체는 깨닫고있지 않은 듯 보이는군."

 

 허허허, 하자마르 한이 훈수를 두는 교사 처럼 징글맞은 웃음기를 띄며 이어 말했다.

 

 "자네는 자네에게 새겨진 시엘의 문자를 이용한 성흔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육체를 강화하는 능력이 뛰어나지. 제무르나 니케와는 다르게."

 

 하지만 하자마르 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은 극히 일부라네. 육신만을 강화하는게 시엘의 힘 전부는 아닌것이야."

 

 그러면서 한은 자신의 짐승뼈 목걸이를 들어 젤브로스 앞에 흔들어보였다.

 

 "보게, 아까 그 어둠의 존재를 멸할 때 난 확실히 바람을 이용하지 않았던가? 원소를 이용하는 힘이라면 우주의 속성을 가진 라스의 자손에게 더 효과적일 터."

 

 젤브로스는 그 폭풍을 생각했다. 시엘의 문자가 빛을 발할 때 나타나는 금빛 찬란한 빛에 휩싸였던 그 폭풍을.

 

 그것은 확실히 육신을 강화하는데 국한된다고 생각해왔던 젤브로스의 개념과 상반되는 현상이었다.

 

 젤브로스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있는 것을 즐거이 바라보던 한은 뼈 목걸이를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는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우주의 속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내 힘을 부여하는 성흔이라면 초력의 속성은 이미 존재하는 것에 힘을 부여하는 성흔이라네. 내가 사용하는 영식 또한 자네가 사용하는 것 처럼 육체를 극한까지 강화하는데 쓸 수도 있겠지. 물론 원판이 꾀죄죄한 영감탱이여서야 그런건 쓰잘데기 없는 짓일뿐이지만."

 

 "있는 것에.....힘을 부여하는 성흔이라고?"

 

 "그렇네."

 

 하마자르 한은 손바닥을 펼쳐보였다. 대기중에 떠돌던 공기가 약한 소용돌이가 되어 하자마르 한의 손바닥 위에서 춤추었다.

 

 "이미 이곳에 존재하는 대기에 힘을 불어넣어 소용돌이로 만든거라네. 물론 잠잠히 떠다니는 공기를 난폭하게 만드는 만큼 마력의 소모도 굉장히 클 수밖에 없지. 그런 점은 우주 속성을 가진 라스의 성흔에는 뒤떨어진다고 할 수 있겠군. 처음부터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 위에서 사용한다면 또 모를까."

 

 "그렇다면 내가 즐겨사용할 일은 없겠군."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네 시엘의 자손이여."

 

 하자마르 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는 도전할것이 아닌가? 우거진 숲속 어둠의 존재, 아자르뷰스에게."

 

 젤브로스가 일어난 한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루비에게 위협이 된다면 당연히 그래야겠지."

 

 젤브로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겨운 정적은 다시 한 번 찾아왔고 이번에 그것을 깬것은 하자마르 한 쪽이었다.

 

 "이곳 공화국에는 시엘을 섬기는 사제인 우리 카예프 뿐 아니라 노만과 라스의 사제들도 갇혀있다네. 그들이 과연 자네를 받아줄지는 모르겠지만."

 

 "갇혀있다고?"

 

 "시시 때때로 사제의 보구를 노리는 어둠의 존재보다 두려운 것은 인간들의 탐욕이니까."

 

 "........"

 

 바람이 불었다. 자세히 보니 간과 루브네가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갈 때 제대로 닫지않아 출입문이 삐걱거리고 있었다.

 

 "자네가 올라프를 떠나면 그 때부터 이 도시는 하늘을 어둡게 물들이는 것을 좋아하는 특이한 소수민족들의 터전으로 돌아갈걸세. 나는 카예프의 르칸이 아닌 도시의 시장으로 되돌아갈테지, 똑같이 세금을 내고, 똑같이 징병되고, 똑같이 죽음을 맞이하는."

 

 "싫은가?"

 

 "아무렴."

 

 하마자르 한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젤브로스의 입꼬리도 살짝 올라갔다. 그것은 시엘의 사제 앞에서 내보인 최초의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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