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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문자의 아이들
작가 : 뉴레기
작품등록일 : 2017.7.8

첫 번째 암흑기를 주도했던 세 명의 사이먼 중 하나인 젤브로스는 두 번째 암흑기가 도래하려하는 전란의 시기인 300년대에 모든 인과관계를 끊고 가이아드 대륙을 방황한다. 그러던중 우연히 네지라는 자의 부탁을 들어주게된다. 부탁이란 최근 도시 펠리스를 둘러싼 영악한 괴물에 대한 퇴치 의뢰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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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21 19:50     조회 : 281     추천 : 0     분량 : 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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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어둠이 내려앉았다. 젤브로스는 고개를 떨구면 보이는 무수한 횃불들을 바라보며 수풀 속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드디어 시간이 됐다.

 

 지금 젤브로스는 베르비언의 부대가 진지를 트고있는 곳의 바로 윗경사에 올라서 있었다. 언덕의 중심부에 툭 튀어나온 작은 절벽이 있어 지금은 그곳에 웅크려앉아있는 상태였다. 약 5m가량 아래로 이제부터 싸워야할 제르키아 제국의 군대가 빽빽하게 순찰을 돌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젤브로스가 이제껏 상대해온 약탈자나 스케빈저들에 비하면 그들은 강도높은 훈련을 받은 정예병사 답게 각과 모양이 반듯이 잡혀있는 상태였다.

 

 젤브로스는 우선 루브네가 있는 장소를 특정해야만 했다. 저 많은 수의 병사들을 일일히 상대해주다간 베르비언이 루브네를 어디론가 빼돌릴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브네가 잡혀있는 곳은 아무리 젤브로스라도 추론할 수 없었다. 그가 만들 수 있는 연금술 의약품 중엔 루브네의 채취를 담아 냄새로 추적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연고가 있기는 했지만 그것을 만들기 위해선 루브네의 냄새가 강하게 베어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아쉽게도 젤브로스는 그런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베르비언에게 직접 묻는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젤브로스는 리블을 빼들었다. 놀랄만치 반짝이는 아름다운 진홍색의 검날이었다.

 

 그리고 그는 적들이 우글거리는 발밑 아래로 뛰어내렸다.

 

 탓!

 

 착지한 곳에 자갈이 많이 깔려있었던 지라 돌이 지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

 

 그 소리를 들은건지 10m가량 앞에서 경계를 서고있던 병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봐, 왜그래?"

 

 그의 동료가 물었다.

 

 "아니, 방금 뭔가 소리가 들린것 같아서."

 

 "야 야, 불길한 소리하지마. 이런 곳에 생명체가 있다면 그건 괴물들 뿐이라고."

 

 "좀더 동화같은 이야기일 수는 없는거야? 토끼라던가 사슴이라던가.....아직 남아있을 수도 있잖아?"

 

 지루한 경계 임무를 약간이나마 즐겁게 보내기 위한 둘의 잡담이 시작된다.

 

 하지만 그들은 곧, 자신들에게 그런 여유가 없으리라는 것을 인지하기에 이른다.

 

 "스피딩."

 

 푸르고 왜곡된 잔상.

 그것은 두 병사가 눈동자를 굴리는 것 보다도 빠른 속도로 그들 사이에 나타났다. 처음에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들의 뇌 정보체계가 혼선을 빚었다. 정말로 그 잔상은 뜬금없이 둘 사이에 '갑자기'나타났던 것이었다.

 

 "누, 누구--"

 

 그 다음으로 그들의 눈이 받아들인 영상은 날카롭고 번쩍이는 진홍빛의 열기였다. 뭔가가 날아와 시야를 덮쳤던 것이다.

 

 ".....어억."

 

 무거운 중갑을 착용한 인간의 몸이 힘없이 땅에 쓰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젤브로스가 순식간에 베어버렸던 보초병 둘 중 하나는 쓰러지면서 동시에 옆에 걸려있던 횃대를 쓰러뜨리고 말았다. 녹색 풀과 갈빛의 흙이 대부분인 숲속에 붉그스름한 화염이 번지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뭐, 뭐야! 뭐야!!"

 

 "불?! 불이야?!"

 

 저 앞에서 들려오는 병사들의 당황 섞인 외침소리가 들려오자 젤브로스는 피가 묻은 리블을 가볍게 털어내고는 그들 사이로 돌진했다.

 

 처음 마주친 자는 창을 든 기수 둘이었다. 어둠 속에서 검은 옷을 입고있던 젤브로스였던 지라 그들은 젤브로스의 모습보단 그가 들고있는 진홍빛 검에 시선이 쏠리고 말았다.

 

 "으아아악!"

 

 비명소리.

 

 젤브로스는 자신의 진로 앞을 가로막고있는 모든 장애물을 부수어 넘어뜨리는 대량의 물소떼 처럼 눈앞에 보이는 적들을 일도양단하며 진지의 깊숙한 곳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리고 그 때가 돼서야 제국군들은 비로소 자신들의 진지에 침입자가 나타났다는 것을 인지했다.

 적이 들이닥쳤음을 알리는 뿔피리 소리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제국의 진지에 요란하게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베르비언은 어디지?"

 

 고립된 적의 멱살을 거머쥐며 젤브로스는 난폭하게 물었다. 병사는 겁을 먹은건지 말할 생각이 없는건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젤브로스는 망설이지 않고 그자의 복부를 리블로 꿰뚫었다. 물어볼 사람은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저기다! 침입자다!"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진지 안에서 검은 옷의 젤브로스를 발견한 적이 큰소리로 외쳤다. 즉시 사방팔방에서 무거운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몰려드는 소리가 밀려왔다.

 

 "헤이스트."

 

 시엘의 문장이 빛을 발함과 동시에 젤브로스의 몸이 공중에 붕 떴다. 일반인들이라면 범접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높게 솟아오른 그의 몸이 2초간 10m 높이의 하늘에 못박힌듯 고정되었고.

 

 "스피딩."

 

 마하의 속도로 아래로 쳐내려간다.

 

 콰과광!!

 

 하늘에서 땅 까지, 고속의 추진력을 얻은 젤브로스의 몸이 엄청난 흙먼지를 일으키며 땅을 할퀴었다. 마치 거대한 괴수가 손톱으로 땅을 순식간에 긁듯이 말이다.

 

 흙먼지가 사라졌을 때엔 젤브로스가 할퀴어간 대지의 상처 곳곳에, 찢어지고 토막난 제국군의 시체가 여러구 널부러져 있었다.

 

 '제법 깊은곳에 왔을터.'

 

 젤브로스의 규격 외의 실력에 주춤거리는 제국군들이었지만.

 

 히이이잉!

 

 요란하게 울리는 말울음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거친 말발굽 소리들이 젤브로스를 향해 몰려들었다. 제르키아 제국이 자랑하는 기마부대였다. 그들은 무거운 렌스와 바스타드 소드를 들고 젤브로스의 몸을 갈갈히 찢어놓기 위해 망설임 없이 말머리를 젤브로스에게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스피딩."

 

 오히려 자신에게 몰려드는 기마부대에게 돌진하는 젤브로스.

 

 희푸른 잔상이 푸른 궤적을 남기며 순식간에 눈앞의 기마병들에게 달려든다.

 

 고속이동.

 

 그것은 거듭 말하자면 순간이동과는 다른것이다. 순간이동은 A지점에서 B지점 까지 그 어떠한 과정 없이 결과에 도달하는 기술인 반면 고속이동은 A지점에서 B지점 까지 도달하는데 그려지는 과정과 결과가 나뉘어져 있었다. 그 말인 즉슨 자신에게 달려드는 기마부대의 뒤쪽 까지 이동한 젤브로스는 좋든 싫든 무섭게 내달려오는 말들의 한복판을 거쳐왔다는 뜻이고.

 

 ".....커헉."

 

 그가 그 무리를 통과하는 그 찰나의 순간동안 눈에보이는 모든 존재를 리블로 베어버렸다는 뜻이 되기도 했다.

 

 털썩!

 

 말 위에 올라있던 열 명 남짓의 기병들이 모두 낙마한다. 그들은 분명 자신들이 언제 어디서 어떤 공격을 받아 이승에서의 생을 마감하게 됐는지 저승에서도 알지 못할 것이리라.

 

 "우우....!"

 

 "뭐, 뭐야 저녀석....?!"

 

 불길은 벌써 진지 곳곳에 퍼져있었다. 젤브로스가 휩쓸고간 자리에서 쓰러진 병사가 들고있었던 횃불이 넘어가면서 근처의 막사에 불을 옮기고, 그것이 반복되고, 끝내 소화되기 힘든 영겁의 화염이 그들 진지 전체를 감싸고말았다.

 

 "베르비언은 어디있지."

 

 금방이라도 실신할 것 같은 두려움을 품고있던 제국군에게 검 끝을 겨누며 위협하고 있는 젤브로스. 그러나 필요 이상치의 공포를 머금은 그 병사는 이미 젤브로스가 하는 말 따윈 귀에 들어오고 있지도 않았다.

 

 쓸모없어.

 

 젤브로스는 망설임 없이 그자의 숨통을 끊어버리곤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부터 열심히 찾고있지만 견장을 달고있는 지휘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도망쳤나? 병사로 위장했나? 그렇다면 무의식 중에 내가 베어버린건-'

 

 그러한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하늘 위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쿠쾅!!!

 

 마치 무거운 암석이 땅에 직격한 듯한 무거운 일격.

 젤브로스는 스피딩을 이용해 여유롭게 그 일격의 범위에서 빠져나온 상태였다.

 

 어둠이 내려앉은 제국군 진지에 또다른 흙먼지가 일렁인다. 탁한 갈색의 연기 속에서 거무틱틱한 인간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리고 흙먼지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연기속의 그 남자는 굉장히 의외라는 듯한 표정으로 젤브로스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살아있는거지?"

 

 백야의 리드웨이.

 

 다짜고짜 공격한 주제에 질문공세부터 펼치는 그가 우습기만 하지만 젤브로스도 문득 그에게 묻고싶은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언제부터 제국의 앞잡이가 되었나 백야."

 

 "흐음, 이것도 비즈니스지. 상호협동관계라는거"

 

 "좋지."

 

 둘은 마치 평소에도 늘 보아왔던 이웃을 보는 것 마냥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단지 리드웨이의 미심쩍은 듯한 표정이 얼굴에 아주 약간 드러나 있을 뿐이었다.

 

 "루비는 어디있지?"

 

 젤브로스가 묻자 리드웨이는 인상을 찌푸렸다.

 

 "타인의 걱정은 지금 네 눈앞에 있는 언덕부터 넘은 뒤 하시지 그러나 응?"

 

 "넌 날 이길 수 없어 리드웨이."

 

 "........."

 

 쯧, 리드웨이는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애초에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면 굳이 귀찮게 독약을 탄 술을 젤브로스에게 먹이는 짓은 벌이지 않았을 터였다.

 

 "뭐, 이길 수는 없지. 하지만 나도 죽지 않을 자신은 있어."

 

 리드웨이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때때로 용병은 버티는 인내도 필요하지. 늙은 페스트롭의 공격을 버텨내며 동이 트길 기다리는 것 처럼말이야."

 

 "난 페스트롭과는 다르게 아침이 떠도 약해지지 않아."

 

 "물론, 하지만 시간은 벌 수 있겠지."

 

 젤브로스의 눈가가 움찔거린다.

 

 "루비를 빼돌리려는 속셈이군."

 

 "하지만 알았다고 해서 네가 어쩔거지?"

 

 리드웨이는 자신의 무기인 거대한 바스타드 소드를 젤브로스에게 겨누었다. 자뭇 공격적인 그의 눈빛을 바라본 젤브로스는 인상을 찡그리며 공격자세로 들어갔다.

 

 주변은 적막했다. 덤벼봤자 개죽임만 당할 뿐이라는 것을 인지한 제국군들이 초조한 마음으로 그 주변을 형식적으로 애워싸고 있을 뿐이었다.

 

 

 

 #

 

 

 

 

 

 언제나 소외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태어났을 때도 느꼈고 철없었던 어린 시절에도 느꼈으며 10살, 처음으로 용병세계에 발을 들일 때 역시 그렇게 느꼈다.

 

 부모님은 그가 공화국의 의원이 되기를 바랬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친형인 케인웨이 스테이튼은 그런 부모님의 기대에 어느정도 부흥했다. 몸은 허약했던 케인웨이였지만 그의 성적을 따라올만한 학생은 없었고, 늦둥이로 태어난 리드웨이 또한 그런 형에게 어느정도의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리드웨이는 멍청했다.

 그는 선천적으로 빼어난 싸움실력과 강인한 육체능력을 타고 태어났지만 부모님은 리드웨이가 군인이 아닌 의원이 되기를 바랬던 것이다. 우수했던 케인웨이를 따라서.

 

 나이차이가 15살이나 되는 케인웨이는 제법 동생 리드웨이를 아꼈다. 그래서 리드웨이는 형에게 공부를 배웠다. 하지만 리드웨이는 아무리 노력하고 노력해도 도저히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흥미뿐 아니라 재능 또한 리드웨이의 편에 서주지 않았다.

 

 부모님은 매일 나가서 싸우고 들어오는 리드웨이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했다. 싸움과 의회의 의원은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공부보다는 운동을 좋아하고, 우등생이 아닌 골목대장에 더 매리트를 느낀다. 리드웨이를 바꿔보기 위해 케인웨이와 그의 부모님이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리드웨이를 바꿔놓기란 불가능했다. 그는 어려서 부터 매우 고리타분하고 신경질적이며, 반항적이고 자신을 향한 자부심과 열정이 굉장히 높은 남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화국 의원 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한 케인웨이가 자택 앞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한것은 리드웨이가 9살이 되던 해였다.

 

 '부질없어.'

 

 리드웨이는 형의 장례식장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리드웨이는 알고있었다. 자신이 부모에게 반항하며 길거리를 전전하고 있을 때, 자기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고등부 학생들을 곤죽으로 만들어주고 있었을 때 케인웨이 스테이튼이 집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케인웨이에게 자유란 없었다.

 

 언제부턴가 그는 스테이튼 가의 아들로서가 아닌 스테이튼 가의 꼭두각시로서의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아마 케인웨이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리라.

 

 리드웨이는 형의 죽음이 그다지 슬프지 않았다.

 부모의 사랑은 온전히 형에게 갔고 자신은 언제나 스테이튼 가에선 소외된 존재였기 때문이다.

 상복은 입고있지만 어쩐지 남남같았다. 생각해보면 공부를 배울 때 빼고는 형과 제대로 시간을 보낸 적도 없었다. 언제나 형은 공부하기 바빴으니까.

 

 그래서 리드웨이는 집을 나섰다.

 리드웨이의 부모님은 케인웨이가 죽자 이번에는 리드웨이에게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스테이튼 가는 공화국에서도 꽤나 유서깊은 가문에 속해있었다. 이제까지는 케인웨이가 그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해줘서 어느정도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달랐다. 그들이 진심으로 리드웨이를 묶어두려 한다면, 그리고 자택 앞 고목나무에 목을 매 죽어버릴 다음 타겟이 리드웨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리드웨이는 필시 그들에게서 도망칠 수 없으리라.

 

 그래서 그는 집을 나섰다. 9살의 겨울은 그에게 있어 무척이나 혹독했다.

 

 신분을 숨긴채 거리를 전전하던 리드웨이는 자신이 속한 세상이 얼마나 보잘것 없이 작았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제까지 싸움에서 져본적 없는 리드웨이였지만 그를 지켜주는 스테이튼 가의 방패가 없는 타지에서, 건달이란 존재들은 리드웨이에게 꽤나 치명적인 인생의 쓴맛을 보여준 매게체였던 것이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덩치와 키가 큰 리드웨이는 몸에 상처가 없는 날이 없었다. 자존심은 세고 건방지고 오만방자하여, 자신에 대한 열망과 자부심이 큰 꼬맹이가 대체 누구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으랴.

 

 언젠가, 리드웨이가 10살이 되던 해 봄에 정말로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먹을 것을 훔치기 위해 경관들의 눈에 띄지 않는 구석진 골목길에서 고기를 구워먹던 도시 건달들이 마약을 태우기 위해 잠시 자리를 뜬 사이 허기진 리드웨이가 참지 못하고 그들의 음식에 손을댔던 것이다.

 

 물론 그정도 쯤이었다. 아무리 건달이라 하지만 아이들을 죽이는 취미따윈 없었다. 그저 몇 대 때려주고 내쫒으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런데 리드웨이는 남에게 굴복하는 것을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늘 그랬듯이 건달들에게 덤볐다.

 

 그리고.

 

 고기가 꿰어있던 쇠꼬챙이로 그들 무리중 한 명을 찔러버리는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처음에는 지고싶지 않았던 리드웨이가 본능적으로 무기를 찾은데에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그것뿐이었다. 리드웨이는 싸움을 오랜시간 해왔지만 인간의 급소가 어디인지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우연히 내지른 꼬챙이가 건달의 명치에 정통으로 명중했고 그 남자는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고 말았다.

 

 리드웨이는 그 때 정말로 죽을 뻔했다.

 도망칠 수 없었다. 건달이라는 자들은 모두 어릴적 리드웨이 같은 거리의 망나니들로 이루어져 있는 조직들이었다. 아직 풋내기인 리드웨이가 그들을 감당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때, 젤브로스라는 남자를 처음 만났다.

 

 온몸에 피멍이 들고 짓이겨지고 살이터져 만신창이가 돼있는데도 불구하고 움켜쥔 주먹을 풀지 않는 리드웨이에게 회심의 일격이 날아오기 직전, 젤브로스가 그를 구했다.

 

 인생은 소외감의 연속이다.

 

 리드웨이는 생각했다.

 어떤 분야든, 어딜가든, 무엇을 하던지간에 자신보다 우수한 녀석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우수한 녀석의 위에는 그것보다 더 우수한 녀석이 존재했다.

 

 도대체 자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 차라리 스테이튼 가의 꼭두각시로 살기로 마음먹었다면 최소한 이것보다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정신을 잃기 직전, 리드웨이는 그런 생각을 했다.

 

 어중간한 실력으론 거리에서 살아남을 수 조차 없는 형편없는 주먹에 형편없는 인성, 형편없는 지능, 그리고 형편없는 자존심.

 

 이런 인간이 커서 대체 어디에 쓰일까.

 차라리 최연소로 의회 의원에 합격한 뒤 자택 앞 고목에 목 매달아 죽어버린 바보같은 형의 인생이 더 가치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

 .

 .

 .

 .

 

 

 "용병이 되어볼 생각은 없니."

 

 리드웨이의 사정을 안 젤브로스는 10살 밖에 안된 리드웨이에게 그런 제안을 했다.

 젤브로스는 그에게서 싸움꾼으로서의 가능성을 엿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당시 실제로 용병으로서 활약하고 있던 젤브로스는 리드웨이가 가진 선천적인 억척스러움이 혼자 살아가는데에 있어 수십, 수백번 리드웨이의 목을 죄어 올것이란 것을 알고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땅의 얼룩으로 칠갑해버리기엔 그의 재능은 너무나도 아까웠다.

 

 어차피 이대로 냅둬도 리드웨이는 살인죄로 잡혀들어간다. 공화국의 법에 따라 미성년자인 리드웨이가 감옥에 갈 일이야 없겠지만 소년원에서 10대의 전부를 버리게 될 것임은 기정사실이었다.

 

 젤브로스는 자신이 용병이라는 것을 밝히고는 그에게 용병일을 배워볼것을 제안했다. 용병이 된 자는 가지고 있는 국적을 잃게되며 그의 명부는 '리버티 어스'라는 용병 명부에 등록되어 용병세계의 규칙에 얽히게 된다고 설명했다. 리드웨이는 그 제안을 망설였지만 곧 젤브로스의 손을 맞잡게 되었다.

 

 그리고 리드웨이 스테이튼은 그 다음 해, 우수한 성적으로 대륙 최연소의 브론즈 클래스 용병으로 발탁되었고 그로부터 7년 뒤, '백야'라는 이명을 얻고 플라버스 지역을 주름잡는 용병 세계의 거장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305년 겨울.

 

 백야의 이름을 얻은지도 거진 5년이 되어갔을 무렵이었다. 이제 리드웨이는 오버로드에게 저주받은 불쌍한 코서들을 어느정도 저세상으로 보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쌓여있었고 여러 사람들의 존경과 경외를 받고있는 다이아몬드 클래스 중에서도 상위권의 실력에 진입해 큰 부와 명예를 얻게된 상태였다.

 

 그러나, 리드웨이를 부추기는 소외감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늦었네, 약속시간이 한참이 지났어."

 

 "미안하군."

 

 어쩌면 제자과 사부의 관계, 혹은 동일한 인생의 길에 뛰어든 동료 관계, 다르게 본다면 서로에 대하여 잘 아는 친구관계 처럼 보이기도 한다.

 

 젤브로스는 그가 백야의 이름을 얻을 때 까지 그에게 검과 추적술, 그리고 필수 약물 조제법 등을 가르쳤다. 그가 자신을 설명했을 때 스스로를 백치라고 밝혔던 것과는 다르게 놀랄만치 빠른 성장속도를 보여줘 젤브로스도 놀란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 사람들은?"

 

 눈 덮힌 어떤 산의 정상 부근에서,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있던 리드웨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에게 물었다. 젤브로스에 비해 그다지 자주보는 얼굴들은 아니었지만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정평이 나있는 젤브로스와도 호각 이상으로 겨룰 수 있는 두 남자는 이따금 젤브로스와 때때로 말할 수 없는 무언가를 처리하기 위해 훌쩍 모습을 감추고는 했다.

 

 그리고 오늘은 처음으로 젤브로스와 그 두 남자들만이 수행할 수 있는 '어떤 임무'라는 것에 처음으로 리드웨이가 함께하는 날이기도 했다. 물론 젤브로스는 여전히 리드웨이가 자신을 따라왔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오랫동안 함께 했던 리드웨이의 고집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었기에 젤브로스는 그가 동행하는 것을 마지못해 수긍해주었다.

 

 "이번 의뢰는 그 녀석들 까지 불러야 할 정도로 위험한 일은 아니야. 나와 너만으로도 충분하지."

 

 리드웨이는 인상을 찌푸렸다. 살아온 인생의 절반을 리버티 어스에서 보낸 리드웨이는 딱 한 가지, 놀랄만치 뛰어난 직감을 얻게되었는데 그의 예상으론 아무래도 젤브로스가 자신 때문에 일부로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은 일을 골라잡았을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난이도가 낮다는 그 일은 실제적으로 마스터 티어 급 용병 세 명을 기준으로 잡은것이니 아마 리드웨이에겐 벅차다 못해 클리어할 수 없는 임무임이 확실할 것이었다.

 

 그럼에도 리드웨이는 어쩐지 분했다. 물론 전귀라고 불리는 그와 대등한 조건에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은 말도안되는 영광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열 살때 부터 그와 함께한 리드웨이는 그게 얼마나 큰 영광인지 알 수 없었다.

 

 "2:8이다."

 

 "뭐가?"

 

 리드웨이가 문득 묘한 말을 꺼냈다.

 

 "보수 말이지. 내가 2고 당신이 8. 더이상 양보는 안돼."

 

 젤브로스의 표정이 어리둥절한 듯 변했다.

 

 "보통은 5:5가 적정선 아닌가?"

 

 "흥, 당신과 나의 실력차를 생각해본다면 1:9도 아까울 정도지."

 

 "스스로를 너무 낮추지 말게 리드웨이."

 

 "퍽이나! 슬슬 출발하지. 그래, 대체 가끔씩 '당신들'이 일 때문에 모습을 비우는 동안 어디서 뭘하고 있었던건지 드디어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볼 수 있겠군."

 

 리드웨이가 팔장을 끼며 우렁차게 말하자 젤브로스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보니 아직 리드웨이에게 이번 임무에 대한 설명을 조금도 해주지 않았던 참이었다.

 

 "크게 다르지않아.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괴물을 퇴치하는 일임에는 변함이 없어."

 

 "정말로 그것 뿐이야?"

 

 젤브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이아몬드 클래스의 용병들도 군체를 이뤄 도전하면 실패할 것도 없는일이지만 아무래도 그럴바엔 나나 그녀석들을 한 명 고용하는게 더 싸게먹히겠지."

 

 "흐음. 과연, 당신들의 수당은 내가 생각하는 것 만큼이나 대단하지는 않은것 같군."

 

 "너무 돈에 연연하지 않는게 좋아 리드웨이."

 

 젤브로스는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몇 걸음 위로 올라갔다.

 

 "시체 남작이야. 황혼을 넘긴 녀석이지."

 

 "뭐?"

 

 보통 시체 남작이라는 괴물들은 리버티 어스에 들어오는 의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은 퇴치의뢰 마수였다. 그 이유는 시체 남작은 인간과 유사할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다는데에도 있었지만 해를 거듭할 수록 난폭해지고 강해지는 그 괴물의 특이한 특성 탓이 절대적이었다.

 

 때문에 시체 남작이라도 다 같은 종류는 아니어서, 골드 클래스 상위권 용병이 분대를 이루고 도전하면 그렇저렇 쓰러뜨릴 수 있는 정도의 어린 녀석이 있는반면, 5~6년을 살아온 시체 남작의 경우는 다이아몬드 클래스 용병이 꼭 한 명은 끼어있어야 할 정도로 위험한 녀석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시체 남작들이 채 10살도 되기 전에 용병들에게 퇴치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많은 수의 용병들이 이 시체 남작이란 괴물을 사냥하던 중 목숨을 잃어왔다.

 

 그때문에 젤브로스가 말한 '황혼'을 넘겼다는 시체 남작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리드웨이로서는 알길이 없었다.

 

 젤브로스가 설명했다.

 

 "자신을 퇴치하기 위해 덤벼든 용병들의 공격을 피하거나, 역으로 그들을 쓰러뜨리면서 '용병'이라는 존재에 대한 위험성을 인지한 극소수의 시체 남작들은 인간 사회로 부터 몸을 숨길 때가 있어. 녀석들은 자신의 존재가 리버티 어스로 부터 잊혀져 '잠재적 퇴치'처리가 될 때 까지 오지에 숨어있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들이 내뿜는 역한 독기는 지울수가 없어 대부분은 발견되어 퇴치되기 마련이야. 극소수 중의 극소수 개체를 제외하고는."

 

 "하! 주변으로 퍼지는 독기가 인간들에게 들통나지 않게 아예 세상 밖으로 꺼지는 녀석들도 있다는건가. 확실히, 해발 6000m인 이런 오리무중 산꼭대기에서 만나자고 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군."

 

 젤브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그런녀석들이 발견돼. 최소한 '잠재적 퇴치'처리가 된 후 30~40년 뒤에 발견되는 녀석들을 우리는 황혼기를 넘은 시체 남작이라고 표현하지."

 

 "대체 그런 녀석들이 발견되는 경위가 어떻게 되는거야?"

 

 "여러가지 있지만 이번 경우엔 녀석이 직접 모습을 드러냈어. 산 아래에서 제국군과 왕국군이 전투를 치르고 있었는데 이 녀석이 나타났지. 모두 전멸했어."

 

 "독기가 원인인가?"

 

 "맞아. 아마도 이제 더이상 인간들에게 몸을 숨기지 않아도 충분하리 만치 강대한 힘을 얻었다고 자부하고는 세상의 밖에서 뛰쳐나온 것일테지."

 

 젤브로스는 품에서 분홍빛 액체가 든 플라스크를 꺼내 리드웨이에게 건넸다.

 

 "시체 남작의 독기를 예방해주는 케즈웰 포션이야. 미리 마셔둬."

 

 "킁 킁, 흐음. 일반적인 것과는 다른데. 어렴풋이 말라닌 꽃 향기가 나는 것 같기도하고."

 

 적어도 자신이 알고있는 조제법과는 다르다는 것 만큼은 알아낸 리드웨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젤브로스를 올려다보았다.

 

 "일반적인 케즈웰 포션으론 황혼기를 넘은 시체 남작의 독기를 막을 수 없어. 조금 특별한 녀석이 필요하지."

 

 "나중에 만드는법을 알려줘야 할거야."

 

 "글쎄, 네가 황혼기를 넘은 시체 남작을 상대해야 할 때가 된다면 알려주지."

 

 리드웨이는 미간을 찌푸렸고 젤브로스의 농담기 있는 미소에 침을 뱉어준 뒤 산 정상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하얗게 쌓여있어야할 눈이 점성있는 보랏빛 액체로 뒤덮여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젤브로스는 손을 들어올려 리드웨이를 막아섰다.

 

 "근처에있군."

 

 젤브로스는 코를 킁킁거렸다.

 

 "냄새가 나. 인간 수십.....아니, 수백명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독성 안개의 냄새가."

 

 리드웨이도 젤브로스를 따라 코를 킁킁거렸지만 설산의 차디찬 공기가 콧속을 시리게 할 뿐, 별다른 냄새는 맡지 못했다.

 

 "준비해 리드웨이. 곧 녀석과 마주칠거야."

 

 "뭐? 도대체 나무 한 그루 없는 탁트인 장소의 대체 어디에서 괴물이 나타난다는거야?"

 

 그 때.

 

 묵직한 땅울림과 함께 뿔피리를 연상케하는 찢어지는 굉음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눈사태라도 일어난 줄 알았다. 하지만 보랏빛 점성물질로 뒤덮힌 지면이 꿰뚫리고, 그곳에서 튀어나온 부패한 살덩어리가 올라왔을 때 비로소 리드웨이는 그것이 시체 남작의 울음소리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으으...!"

 

 "균형을 잃지마! 호홉을 가다듬어! 여기는 해발 6000m의 설산이야! 불필요한 행동은 삼가하고 놈이 공격하기를 기다리는거야!"

 

 "제에기라아아알.....!"

 

 콰쾅!

 

 땅이 솟아오름과 함께 보랏빛의 기분나쁜 점성물질들이 사방팔방으로 퍼지기 시작한다. 젤브로스와 리드웨이는 각자의 무기를 꺼내들어 그 기분나쁜 물질이 자신의 몸을 희롱하지 않도록 그것들을 바깥으로 쳐냈다.

 

 그리고 모든 진동과 울음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을 때 쯤.

 

 리드웨이는 눈앞에 나타난 이질적인 존재를 실제로 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시체 남작은 본디 머리가 없는 인간의 형상을 취하고있는 괴물이다. 대신 머리가 있어야할 곳에는 인간의 뇌를 연상시키는 말랑말랑한 살점 덩어리에 기분나쁜 수십개의 촉수가 돋아나 있는 시체 남작의 '핵'이란것이 달려있었고 그 외의 상반신과 하반신은 완전히 백골화된 인간의 뼈에 얇은 근육과 썩은 살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을한 기분나쁜 외관에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선천적으로 인간에게 유해한 독성 안개를 주변에 형성하는데 어린 나이의 시체 남작들의 독기는 인간에게 환각, 정신이상, 체력저하,구토와 같은 증상만 유발하는 반면 어느정도 나이가 있는 5~6살 정도된 녀석의 독기는 잠시 들이쉬는 것 만으로도 죽음에 이를 정도의 치사량을 갖고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퇴치해야하는 의뢰를 받은 용병들은 시체 남작의 독성 안개에 면역력을 띄는 케즈웰 포션이라는 것을 제조해, 녀석과 맞닥뜨리기 전에 마셔야만 했다. 시체 남작에게 희생된 많은 용병들이 지속시간이 채 한 시간도 안되는 케즈웰 포션의 올바른 섭취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포션을 마시기 전에 시체 남작의 독기를 들이마셨던가, 너무 일찍 마시는 바람에 전투중 지속 효력이 떨어져 그대로 살해당하고 만다던가.

 

 어쨌든 그 괴물은 지나가는 곳 마다 시체를 만들고, 그 시체를 뜯어먹으려 안달이난 콥서들을 불러일으키는 가이아드 대륙의 가장 골치아픈 암덩어리라는 것엔 일말의 의심도 필요치 않으리라.

 

 그런데 지금 리드웨이 앞에 나타난 시체 남작은 이제껏 그가 처리해오고 보아왔던 시체 남작들과 문자 그대로 아주 틀린 외관을 갖고있었다.

 

 일단 말랑거리는 머리부분의 '핵'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존재하지 않았다기 보다는 핵을 둘러싼 촉수들의 길이와 굵기가 너무 거대해서 파묻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보는것이 타당했다. 또한 놈의 피부는 땅 이곳저곳에 흩어져있는 보랏빛 점성 물질들의 보호를 받기라도 하는듯 온몸 구석구석에 치덕치덕 발라져 있었다. 마치 보라색 슬라임을 보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보랏빛 점성 물질 속에는 확실히 시체 남작의 썩은 피부와 백골들이 숨어있었다. 반투명한 그 물질 속으로 부터 그것의 윤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런 제기랄 처음보는데에에에!"

 

 리드웨이는 저도모르게 입에서 욕지기가 나오고 말았다. 신장은 대충 3m가량으로 여타 시체 남작과는 크게 차이 나지 않았지만 공통점은 단지 그것 뿐이었다.

 

 젤브로스는 리블을 꺼내두고 언제라도 놈에게 달려들 준비를 취했다.

 

 "최우선 목표는 놈의 핵을 둘러싸고 있는 저 촉수들을 제거하는걸세! 하지만 놈을 보호하고 있는 점성물질에는 닿지 않도록 주의해야해! 저것이 피부에 닿는 순간 순식간에 피부가 타들어가고 말거야! 저건 케즈웰 포션으로도 막을 수 없어!"

 

 "이런 씨부랄 아주 그럴듯한 명령을 하는군 그래!"

 

 "해내지 못할 것 같으면 뒤로 물러서있게 리드웨이!"

 

 "하! 내가? 설마!"

 

 리드웨이는 자신의 바스타드 소드를 꺼내들었다.

 그는 언제나 처럼 물러설 생각은 코빼기도 없었다.

 

 

 

 "뛰어!"

 

 젤브로스가 외쳤다. 남작의 핵을 둘러싼 무수한 촉수가 그들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쿠쾅!

 

 비스듬히 점프해 가까스로 놈의 공격을 피한 리드웨이는 검을 놓쳐버릴 것만 같은 강렬한 폭풍이 리드웨이를 휩쓸었다.

 

 젤브로스는?

 

 리드웨이는 검으로 땅을 긁으며 미끄러지는 자신의 몸을 진정시킨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젤브로스가 없었다. 대체 어디로간거지? 분명 그녀석도 공격을 피하기 위해 뛰어올랐을터.

 

 ".......!"

 

 리드웨이가 젤브로스를 발견한건 그 직후였다.

 

 으랴아아아!

 

 맹호같은 기합소리가 창공의 높은 곳으로 부터 들려왔기 때문이다. 리드웨이는 무의식 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젤브로스는 그곳에 있었다. 숙련된 전사가 자신의 몸무게와 신체의 한계를 무시하고 뛰어오를 수 있는 2~3m의 수준을 넘은 높다란 저 곳에.

 

 젤브로스는 붉은 검신을 가진 리블을 양손으로 쥐어 하늘 높이 치켜든 채로 시체 남작에게 낙하하고 있었다.

 

 "스피딩!"

 

 콰쾅!

 

 파란 하늘에 점 처럼 박혀있던 젤브로스의 몸이 일순 사라지더니 시체 남작이 있는 곳에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눈의 폭풍이 불어왔다. 대체 저곳에서 무슨일이 일어난건지 리드웨이는 자신의 눈으로 쫒을 수가 없었다.

 

 "....제길!"

 

 바스타드 소드, 자신의 검에 몸을 지탱해 일으켜세운 리드웨이가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표정에 살기를 띄었다. 기껏 따라왔는데 아무것도 못하는 짐짝 취급 받기는 싫었던 것이다.

 

 우아아아아아!!!

 

 리드웨이는 달렸다. 털을 제거하지 않은 두꺼운 가죽 갑옷에 무거운 철덩이 까지 들고있던 지라 그의 몸은 무겁기만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달리는 속도는 도처에 널린 그렇고 그런 용병들에 비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의 몸은 구보를 뛰는 말을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의 스피드를 내고있었다. 이곳은 6000m의 설산이고, 바닥에는 다리를 빠뜨릴 정도의 눈이 쌓여있으며, 살을에는 냉기가 만연하고, 시체 남작에 도달하기 위해선 경사진 코스를 지나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윽고 눈보라 속에서 꿈틀거리는 남작의 핵을 둘러싼 기다란 촉수가 눈에 띄자 리드웨이는 검을 왼쪽으로 비스듬히 돌리고는.

 

 "이거나 먹어라 이 자식아!"

 

 촤악!

 

 연체동물의 몸을 부엌칼로 토막내는 듯한 쫄깃한 소리가 리드웨이의 귓속에 울려퍼진다. 리드웨이에게 당한 핵의 촉수 세 가닥이 힘을 잃고 바닥에 쏟아져 내렸다.

 

 ".....구욱!"

 

 그때.

 

 남작 쪽에서 거무틱틱한 무언가가 날아왔다. 리드웨이의 공격을 받은 시체 남작이 무의식 적으로 몇 가닥의 촉수를 리드웨이에게 보냈던 것이다. 그 미끌거리고 기분나쁜 악취가 풍기는 촉수가 리드웨이의 몸을 옳아메자 그는 욕지기를 내뱉었다.

 

 푸시시......

 

 촉수에 닿은 갑옷의 가죽이 부식되기 시작하는 소리가 얕게 들린다. 리드웨이는 무거운 바스타드 소르들 오른손 하나 만으로 번쩍들고는.

 

 "그아아아아!"

 

 촉수의 연결고리를 통째로 토막내버렸다.

 

 싹둑! 하는 소리와 함께 깨끗하게 잘린 촉수의 단면이 고통스러운 듯 꿈틀거리며 눈바닥에 파묻혔다. 시체 남작의 보랏빛 독기가 눈을 부식시키며 주변을 물들였다.

 

 쾅! 쿠쾅!

 

 리드웨이가 다음 타겟을 찾고있을 때. 저 앞에서 무언가 폭발음이 들렸다.

 

 "젤브로스!"

 

 50m가량 멀직이 보이는 것은 커다란 그림자와 작은 그림자.

 허연 눈안개 탓에 제대로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둘의 격렬한 싸움이 주변의 눈을 계속 쏘아올리고 있다는 것 쯤은 알아챌 수 있었다.

 

 싸움은 젤브로스가 압도적이었다.

 

 핵에서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촉수. 하지만 젤브로스는 그것이 세상에 태어나 몸을 한 번 움직이기도 전에 절단내고 있었다. 모닥불에 날아오는 무한의 나방들이 계속해서 타닥 소리를 내며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대단해.'

 

 리드웨이는 저도모르게 분한 듯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뭔가 저놈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리드웨이의 마음속은 그것을 갈망하고 있었다.

 

 "으랴아아아아아!"

 

 리드웨이가 무기를 거머쥐고 젤브로스에게 합세하기 위해 그곳으로 달려간다. 달리면 달릴수록 흰안개가 걷어지고 둘의 모습이 점점 뚜렷하게 와닿기 시작했다.

 

 "리드웨이, 조심해!"

 

 "뭣....!"

 

 쿠구구궁!

 

 땅이 울린다. 리드웨이는 그것을 느꼈지만 원인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타액냄새.....썩는내.....설마!'

 

 치잇!

 

 리드웨이는 앞으로 몸을 굴렸다.

 

 콰과광!

 

 이윽고 리드웨이가 방금까지 서있었던 바닥에서 눅진눅진한 보랏빛 젤리가 화산 처럼 폭발했다. 그것은 눈 대신 지면을 물들이고 있던, 그리고 지금 저 시체 남작의 몸을 보호해주고 있는 보랏빛 점성 물질과 똑같은 물질이었다.

 

 "얕보지마라, 괴물주제에!"

 

 거대한 바스타드 소드를 하늘 높이 치켜든 뒤 헬기의 프로펠러를 돌리듯 빙빙 돌린다. 작은 폭풍이 리드웨이의 주변에 몰려들었다.

 

 "타아앗!"

 

 콰쾅!

 

 그리고 그 추진력을 이용해 가속도를 얻은 검을 땅에 내려치자 일종의 붕괴음과 함께 눈 밑에 숨어있던 단단하게 얼어붙은 땅바닥이 부숴지고 파괴되며 크고작은 바위의 파편으로 변해 눈앞의 점성물질을 향해 빠르게 날아들었다.

 

 철퍽! 철퍽!

 

 리드웨이가 날린 일종의 '탄환'들이 스스로의 몸을 부식시키며 눈앞에 우뚝선 점성물질의 형태를 무너뜨리고 바닥에 눕혀 묻어버리기에 이른다. 리드웨이는 가소롭다는 듯 코밑을 슥 닦고는 젤브로스를 돕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여전히 사이먼 특유의 기이한 마법 같은 것을 사용하며 공격의 틈을 주지도 않고 시체 남작의 몸을 유린하고 있었다.

 

 어쩌면 도움은 필요없을지도.

 

 리드웨이는 무의식 적으로 마음 속에 그러한 생각이 든 자신에게 분노했다.

 

 도움이 필요없어도 좋아, 난 저녀석에게 떨거지 취급만큼은 받고싶지않아!

 언젠가 내가 저 녀석을 구해주겠어.

 저 표정에서 겁에 질린 토끼의 얼굴이 나올때 멋지게 등장해 무한한 감사의 말을 들어줄테다!

 

 리드웨이는 괴성을 질렀다. 난생 태어나서 처음보는 저 괴물의 핵을 찢어버리는 것은 나다, 반드시 내가 될테다.

 

 리드웨이가 그렇게 생각하려는 그 때.

 

 땅이 또다시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제길 또 그거냐! 몇 번을 해도 그딴건 나한테--'

 

 "리드웨이!"

 

 파앗!

 

 저 앞에서 젤브로스의 몸이 미친듯이 빠른 속도로 자신에게 날아오더니 그대로 자신의 몸을 끌어안고 20m가량 뒤쪽으로 날아간다.

 

 우어어어어억?!

 

 리드웨이는 영문도 모른채 젤브로스의 팔에 이끌려 함께 뒤쪽으로 튕겨져 나갔고.

 

 쾅! 쿠쾅! 쿠과과과과과광! 콰쾅!

 

 시체 남작이 서있는 반경의(아마 10m 내지 15m 사이일까) 지면이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더니 땅 밑에 숨겨놓은 강력한 화약통을 폭발시키기라도 한 듯 굉장한 폭발력과 함께 일대를 찢어발겨 놓은것이 아닌가.

 

 "......허어? 뭐, 뭐냐 저 새끼는."

 

 눈에 의거한 허연 안개에 모락모락 뜨거운 김과 흙먼지가 섞여 주변을 아우른다.

 

 지면에 광범위하고 깊은 일종의 분화구 같은것이 생기자 리드웨이는 경악을 금치못했다. 20m? 30m?아니 어쩌면 그것보다도 더 깊을지도 모른다. 방금 자신이 저 폭발의 범위 안에 있었다는 것을 상상해보면 온몸에 치가떨릴 지경이다.

 

 "아무래도 황혼기에 접어들면서 반고체 형태로 만들어낼 수 있게된 자신의 독액이 인화성물질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우친 모양이군."

 

 "뭐....? 그런게 어딨어!"

 

 "세상의 이면에 숨쉬고있는 괴물들은 모두 우리들의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법이네."

 

 젤브로스는 리블을 꽉 움켜쥐었다.

 

 "안좋아, 아무래도 이 근처에 화산이라도 있는 모양이군. 우리 발밑에 마그마 흐르고있을 확률이 높아. 저 괴물녀석은 흐르고있는 마그마가 흐르는 곳의 바로 윗층에 일종의 독액의 층을 만들어놓았어. 그리고 이때다 싶을 때 저 촉수를 땅밑에 내려 꼿아 마그마의 층과 독액의 층 사이에 있는 일종의 방벽을 깨뜨린거야. 그곳으로 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에 지면의 독액이 연쇄폭발을 일으킨거겠지. 킁 킁, 냄새가 나. 황, 염소......불소와 가스 향. 조금전 까지는 나지 않았던 것들이 지면이 찢어고 난 뒤 그 상처를 통해 풍겨오기 시작하는 군."

 

 "당신의 코는 대체 뭘로 만들어져 있는거야!"

 

 "어쨌든 놈이 단층을 찢어놓았으니 깊숙한 곳에 흐르던 마그마의 강한 열기가 위로 뚫고 들어올거야.

 

 젤브로스는 낮게 혀를 찼다.

 

 "놈은 무한대로 재생되는 강력한 폭약을 손에넣은거지. 하지만 봐, 저 녀석은 그 강력한 힘을 사용하려고 마음먹은 대신 온 몸을 보호해주던 독액의 방어막을 제거했어."

 

 리드웨이는 시체 남작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몸을 슬라임 처럼 덮고있던 보랏빛의 점액이 모두 사라져 평범한 시체 남작의 썩은 인간의 신체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어쩌면 이건 찬스일지도 모르겠군. 다시 한 번 폭발을 일으키기전에 단숨에 처치해주겠어."

 

 젤브로스가 검을 움켜쥐고는 놈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잠, 젤브로스! 당신! 거기는!!!"

 

 ".....?"

 

 폭발 때문에 일어난 연기, 여전히 불고있는 차가운 냉기, 그리고 상대적으로 좁은 범위에 퍼져있던 지라 젤브로스가 눈치 못챈것일 수도 있다.

 

 시체 남작을 향해 달려가던 젤브로스의 발밑.

 

 그곳에는 아까전 리드웨이가 놈의 촉수를 잘라내면서 펼쳐진 약간의 독액 필드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을.

 

 쿠구궁.

 

 콰쾅!

 

 땅밑에서 올라오는 마그마의 열기가 그제서야 지면에 얇게 펼쳐진 독액을 자극한건지, 아니면 저 영리한 시체 남작이 때를 노린 것인지 리드웨이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젤브로스으으으으으!!!"

 

 달려가던 리드웨이의 발 밑이 순식간에 폭발해 그의 몸이 폭발의 안개속으로 사라졌다는 것이 리드웨이의 눈에는 보였을 뿐이다.

 

 "......!"

 

 

 강한 황내음에 지독한 독액의 냄새가 섞여있는 듯한 냄새가 리드웨이의 코를 자극한다.

 

 ".......어이."

 

 젤브로스는 반응이 없다. 보이는 것은 뭉개뭉개 피어오르는 폭발의 연기 뿐이다.

 

 리드웨이의 두 눈동자가 부르르 떨렸다.

 

 "어, 어이 젤브......"

 

 주춤 일어서려다 푹, 고꾸라진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 리드웨이의 아래턱이 덜덜 떨리고 있다.

 

 설마?

 

 아니, 그럴리가.

 

 리드웨이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있을 수 없다. 저 젤브로스가 설마.

 

 그것도 내가 만들어놓은 트랩에 걸려서......

 

 리드웨이는 자신의 숨이 거칠거지는 것 조차 느끼지 못했다. 마음 속에서 뭔가 죄어오기 시작했다. 이건 뭐지? 죄책감? 아니, 그럴리가 없어. 분노.....? 아니, 그것도 아니야.

 

 이건 대체.....

 

 

 '난 결국.......'

 

 쿠워어어어어!

 

 멀직이서 시체 남작이 자신의 승리를 기뻐하기라도 하는 듯 즐거운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핵의 촉수가 꿈틀거리는 그림자가 멀직이 눈에 띄었다.

 

 리드웨이는 움직일 수 없었다. 도저히 눈 앞에서 무엇이 벌어진 것인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저 젤브로스가 죽다니?

 

 ".....안돼."

 

 결국 난 뭐였지? 내가 여기와서 한건......대체 뭐였지?

 

 "안돼 젤브로......"

 

 젤브로스에겐 내 도움이 필요 없을 것이란건 알고있었어, 알고있었는데......

 

 도움이 필요없는 수준이아니라 그건, 내가 나서면 방해만 되는.....그런.....

 

 내가 쓸데 없는 참견을해서......그런.....

 

 "안돼에에에에!!"

 

 콰과광!

 

 대지가 울리는 소리가 들린것은 바로 그 때였다. 아니, 울린다기 보다는 땅 밑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이리라.

 

 튀어나온 것은 사람의 그림자였다. 멀직이 튀어나온 그것은 폭발의 연기에 몸이 휘감겨 있어 제대로 된 모습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카운터."

 

 이윽고 모든것을 박살내버리는 '폭압'이 연기를 날려버리며 땅을 갈아버리기 시작한다. 콰과과과과과과광!!!!

 

 시체 남작이 자신 주변 일대의 모든 것을 파괴로 물들어버렸던 그 폭발력과 비슷하거나 그것보다 한 수 위다.

 

 그 노랗고 강렬하고 빠른 폭음은 리드웨이의 눈 앞. 조금전 까지 죽었으리라 생각된 젤브로스가 뻗은 왼쪽 손바닥으로 부터 퍼져나가고 있었다.

 

 "젤브로스?....다,당신."

 

 끼에에에에엑!

 

 땅의 살갖을 찢어버리며 맹렬한 속도로 돌진하던 폭풍이 독액의 방벽이 사라진 시체 남작의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놓기 시작한다. 꿈틀거리는 기다란 촉수가 바람에 휘날리는 끈 처럼 펄럭거리더니 이내 중심점을 잃고 뭉텅이로 찢어져 폭압의 방향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스피딩."

 

 파앗!

 

 순식간에 시체 남작의 앞까지 도달한 젤브로스.

 

 오른손에 움켜쥐고 있던 붉은 양날검 리블을 옆으로 홱! 돌리고는.

 

 "끝이다."

 

 촤악!

 

 대부분의 촉수를 잃어버리고만 시체 남작의 '핵'을 토막내버리는데 성공한다.

 

 끄게게게게게겍!

 

 잘려진 핵의 단면으로 부터 밝은 초록빛 액체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시체 남작이 몸의 균형을 잃고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젤브로스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스피딩을 이용해 놈의 주변 곳곳을 돌며 리블로 놈의 핵을 자르고 찌렀다.

 

 순식간에 주변이 초록빛 액체로 물들었다.

 

 리드웨이는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촉수를 잃은 시체 남작에게 접근하는데 성공한 젤브로스는, 그야말로 리드웨이 본인이 콥서를 가지고 놀듯이 저 강력한 세상의 이면에 살고있는 괴물을 유린하고 있었던 것이다.

 

 꿀꺽.

 

 리드웨이는 침을 삼켰다. 황혼기를 지난 시체 남작은 머리 부분의 핵이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게 일그러져서야 움직임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후."

 

 젤브로스는 리블을 칼집에 집어넣고는 시체 남작에게서 잘라낸 핵을 몇 조각 소지하기 쉬운 크기로 잘라 허리에 차고있는 가죽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윽고 젤브로스가 리드웨이에게 다가왔다.

 

 "몸은 괜찮나 리드웨이."

 

 "......아아?"

 

 리드웨이는 여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그 모든일이 순식간에 끝났다. 리드웨이는 자기가 대체 뭘 본건지 여전히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황혼기를 넘어선 시체 남작의 핵은 감정사에게 비싸게 팔리지. 자네도 몇 조각 챙기는게 좋을거야."

 

 "......어째서."

 

 "흠?"

 

 리드웨이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째서!"

 

 그리고는 젤브로스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이었지만 젤브로스의 표정은 여전히 태연했다.

 

 "당신은 어째서 멀쩡히 살아있는거냐. 어떻게 저 폭발을 정통으로 맞고도 눈하나 꿈쩍하지 않을 수 있냐고!"

 

 "내가 죽기를 바랬나?"

 

 "크윽....!"

 

 리드웨이는 말을 잇지 못했다. 젤브로스는 그가 하고싶은 말이 무엇인지 잘 알고있었다. 그와 함께 지내온 시간은 5년이 넘었다. 그렇기에 그의 속에서 불타오르고 있는 강한 투쟁의식을, 그는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젤브로스는 리드웨이의 손을 뿌리치지 않고 그대로 놔두며.

 

 "세상의 이면에 살고있는 괴물들은 언제나 우리들의 상식을 뛰어넘어. 그런데 리드웨이, 한 가지만 묻도록 하지. 지금 네 눈앞에 서있는 남자는 대체 뭐지?"

 

 "......!"

 

 리드웨이는 손을 놓았다. 그의 동공이 잔뜩 수축되었다.

 젤브로스라는 남자와 너무 자주 있었던 탓에 리드웨이는 문득 잊어버리고 말았다.

 

 지금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전귀라는 남자 또한 세상의 이면에서 살아가는 괴물들 중 하나라는 것을.

 

 첫 번째 암흑기를 주도했던 세 명의 사이먼.

 그중 한 명, 시엘의 자손 젤브로스. 그것은 '전귀'라는 이명을 가진 용병 젤브로스의 또다른 이름.

 

 젤브로스는 리드웨이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자네가 나로인해 소외감을 느낄 필요는 없네. 자네는 인간이고, 나는 그 탈을 벗었으니까."

 

 "........"

 

 먼저 내려가겠네.

 

 젤브로스는 짤막하게 그 말만을 남기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

 

 바람이 불었다.

 아니, 바람은 아까부터 불고있었다. 설산의 차가운, 눈들이 섞인 서리바람이.

 그러나 리드웨이는 바람이 아무렇지도 않았던 몸을 시리게 하는 것을 느꼈다.

 

 차가웠다.

 마음 속에 구석진 한곳에 차가운 얼음이 쌓이고 있는 느낌이었다.

 

 리드웨이는 그 느낌을 알고있었다.

 

 확실했다. 그것은 스테이튼 가에서 형인 케인웨이와 부모님에게서 받았던 그것과 거의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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