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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인생역정(人生歷程)
작가 : 에이바
작품등록일 : 2016.8.19

21세기에 들어서도 수구골통과 종북좌빨이라며 서로 발톱을 세우고 사는 것이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이념을 떠나서 서로를 인정하며 공존하는 사회, 인륜과 천륜으로 살 수 있는 세상 - 우리가 꿈꾸는 엘도라도이다.

 
3. 삶과 죽음의 간극 (3)
작성일 : 16-08-19 14:47     조회 : 662     추천 : 8     분량 : 5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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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후야, 눈을 떠라. 상후야, 눈을 뜨고 일어나거라.’

 너무도 낯익은 어머니의 목소리다.

 꿈속에서도 그리던 어머니다.

 사무치게 보고 싶은 어머니다.

 상후는 눈을 뜨려고 애썼다.

 눈이 떠지질 않는다.

 상후는 일어나려고 몸부림쳤다.

 손가락 한 마디도 움직일 수 없다.

 어머니는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상후를 애타게 부른다.

 어머니의 모습이 점차 흐릿해지며 안갯속으로 사라진다.

 상후는 어머니를 붙잡으려고 팔을 뻗었다.

 터질 듯한 심장을 부여안고 울부짖었다.

 ‘어머니!’

 어머니의 환한 얼굴이 번쩍 뜬 상후의 눈앞을 가득 채우며 들어온다.

 상후는 와락 어머니의 목을 끼어 안았다.

 어렸을 때 맡았던 엄마의 상큼한 냄새가 폐부 깊숙이 밀려든다.

 엄마의 젖가슴에서 스며 나오는 온기가 상후를 따듯하게 감싼다.

 

 민의 손이 부상병의 목에 닿자, 갑자기 눈을 뜬 부상병이 와락 민의 목덜미를 감싸 안는다.

 한순간 당황했지만 민은 곧 침착하게 부상병에게 몸을 맡겼다.

 사이공에 있는 무료 진료소에서 주말마다 수많은 환자를 돌보며 익숙해진 상황이다.

 ‘어머니. 어머니 …….’

 부상병은 몇 번 어머니를 되뇌더니 다시 기절하고 말았다.

 민은 혼절한 부상병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측은하고 애처롭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이념은 또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오빠 또래의 이 젊은이가 물설고 낯선 머나먼 이국땅의 정글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가.

 오빠는 무엇을 위하여 스물한 살 꽃다운 젊음을 전쟁터에 바쳤나.

 나는 진정 무엇을 위하여 내 몸과 마음을 전화의 한복판에 던져 넣고자 결심하였나.

 과연 이것이 최선인가.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란 말인가?

 곧 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어찌 이런 생각을 하는가.

 우리 조국은 서구 자본주의의 침략을 받았다.

 그들은 1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땅에서 온갖 만행을 저질러 왔다.

 우리 민족의 영혼은 처참하리만큼 갈가리 찢어졌다.

 우리의 육신은 날짐승과 다름없는 신세가 되었다.

 그들의 반인륜적인 포악함을 끊어내기 위하여 우리는 싸워야 한다.

 그들의 야욕을 근절시키고 우리의 자존을 되찾기 위해서는 목숨이라도 기꺼이 받쳐야 한다.

 우선, 이자부터 처치해야 한다.

 민의 두 손이 다시 상후의 목을 거머쥐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눈을 떠야 하는데 눈꺼풀이 열리지 않는다.

 몸을 움직여야겠다고 애를 쓰지만, 꼼짝도 할 수 없다.

 어떻게 된 것일까?

 매복했던 적군의 기습을 받고 계곡으로 굴러떨어지던 기억이 났다.

 그럼 나는 지금 어떤 상황에 놓였는가?

 상후는 다시 눈을 뜨려고 애를 썼다.

 갑자기 숨이 막힌다.

 상후가 번쩍 눈을 떴다.

 

 부상병의 목에 댄 두 손에 힘을 가하는 순간, 번쩍 뜬 그의 두 눈과 눈길이 마주치자 민은 화들짝 놀라서 손을 거두고 고개를 숙였다.

 상후의 동공에 시커먼 물체가 들어왔다.

 사람이다.

 망부석처럼 미동도 하지 않지만, 분명히 사람이다.

 머리칼이 어깨 아래까지 치렁한 것을 보면, 여인이다.

 상후의 후각이 돌아왔다.

 향긋한 여인의 체취가 느껴진다.

 상후는 다시 눈을 감았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옆에 있는 이 여인은 누구인가?

 이것은 적군에 포로가 된 상황이 아니다.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가?

 정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아무리 애를 써도,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갑자기 옆구리에 심한 통증이 온다.

 상후는 저도 모르게 외마디 신음을 내며 다시 눈을 떴다.

 마침 상후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희미한 불빛이지만, 갸름한 얼굴에 큼직한 두 눈과 오뚝한 콧날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상병과 다시 눈이 마주친 순간, 민은 그의 동공에 서려 있는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보았다.

 슬픔의 강에 마음이 젖어 본 사람은 슬픔에 저린 눈동자를 안다.

 고뇌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댄 사람은 고뇌하는 눈동자를 읽는다.

 번민으로 새하얗게 밤을 새워 본 사람은 번민이 그렁한 눈동자를 볼 수 있다.

 민은 가슴 한편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이것은 연민이다.

 나의 이 마음은 불행한 처지에 놓인 인간에 대한 애처로움일 뿐이다.

 지금 이 사람은 적군이기 이전에 부상한 불쌍한 젊은이다.

 우리는 인간의 평등과 자유를 되찾기 위하여 미 제국주의자들과 맞서 싸우고 있다.

 우리는 민족 모두가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부패한 서구 자본주의의 개가 된 남부의 반민족주의자들을 응징하고자 싸우고 있다.

 야욕을 버리고 이념을 거둬내면 인간은 같은 인간일 뿐이다.

 곤경에 처한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것은 인간의 도리다.

 

 "아, 이제 깨어나셨네요. 갈증이 심할 텐데, 우선 차를 좀 드시지요."

 민이 상후의 목덜미 아래에 자신의 팔을 넣어서 상체를 가볍게 들어주었다.

 한 손으론 오지그릇에 담긴 약차를 상후가 천천히 넘길 수 있도록 그의 입 앞에 대어 주었다.

 여인의 치렁한 머리칼이 상후의 얼굴을 스친다.

 오랜지향의 비누 냄새에 상큼한 여인의 체취가 묻어온다.

 어머니다.

 얼굴도, 체취도, 자태까지 모두가 어머니와 같다.

 약차를 한 모금씩 넘길 때마다, 상후는 애써 심호흡하였다.

 어머니의 체취를 더욱 깊이 들이마시고 싶었다.

 상후는 여인의 가슴에 얼굴을 더욱 가까이했다.

 어릴 때 안겼던 엄마의 품에서 풍기던 따듯한 기운을 더 깊이 느끼고 싶었다.

 상후가 약차를 다 마시자, 여인은 상후를 자리에 눕히고 일어섰다.

 "궁금한 것이 많겠지만, 밤이 깊었으니까 오늘은 푹 쉬시지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마음이 편해야 건강을 빨리 회복하실 수 있습니다. 아침에 뵙지요."

 여인은 가볍게 눈인사를 한 후,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그제야 상후는 자신이 방공호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기가 깊어지기 전에 약초를 조금이라도 더 채취해야 한다.

 민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루도 쉬지 않고 아침마다 주먹밥을 싸 들고 집을 떠났다.

 상후를 치료하고 돌보는 일은 민의 몫이 되었다.

 상후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몸을 씻어 주는 일로 민의 일과가 시작되었다.

 하루 세끼 미음을 끓여서 먹여 주었다.

 아침 저녁으로 탕약을 달여서 먹였다.

 곪아 터진 대퇴부에 하루 두 번 거즈로 농을 제거하고 약을 발랐다.

 찢어진 왼쪽 옆구리와 허벅지도 날마다 소독하였다.

 등이 짓무르지 않도록 종종 상후의 상체를 일으켜 세워서 벽에 기대 앉히고 가볍게 전신을 마사지하였다.

 날마다 반복되는 궂은일이지만 민은 내색하지 않고 성심껏 상후를 돌보았다.

 민은 종종 상후의 옆자리에 누워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민은 상후의 지나온 이야기를 듣기 좋아했다.

 

 1950년 11월, 압록강까지 진격하였던 국군과 유엔군은 파도처럼 덮쳐 오는 중공의 50만 대군에 밀려서 남으로 남으로 맥없이 후퇴를 거듭하였다.

 유엔군이 평양을 버리고 퇴각할 때, 상후의 아버지도 임신 육 개월이 된 아내를 부축하여 고향을 떠났다.

 살을 에는 한겨울의 추위 속에서 개성을 거쳐서 서울까지 내려왔지만, 이미 서울도 함락 직전이었다.

 상후의 아버지는 만삭이 된 아내를 어렵게 구한 소달구지에 태워서 청주까지 내려왔다. 상후는 청주 서문동 다리 아래에 아버지가 임시로 지은 움막에서 태어났다.

 상후의 아버지는 꽁꽁 언 한겨울의 눈밭을 헤쳐서 찾아낸 곰보배추로 국을 끓여서 아내의 산후조리를 하였다.

 양지녘 계곡의 얼음이 녹으면서 돌미나리가 파릇하게 피어날 때, 상후의 가족은 청주를 떠난 후 대전, 공주와 신풍을 거쳐서 마곡사가 있는 태화산 북쪽의 상원골에 들어갔다.

 상원골에 흐르는 맑은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유구천에 이른다.

 유구천은 남쪽으로 흘러서 마곡천과 만난 후, 금강으로 스며든다.

 유구천과 마곡천을 끼고 있는 태화산 자락이 택리지와 정감록에서 전쟁, 질병, 기근의 삼재와 추위, 더위, 배고픔, 목마름, 물, 불, 칼과 병란의 팔란이 들지 않는 전국에 있는 명승지 열 곳을 일컫는 십승지지 중의 한 곳이다.

 정감록을 신봉하는 상후의 아버지는 이곳을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까지 거주할 곳으로 택하였다.

 상후가 두 돌이 지난 1953년,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나무를 팔러 유구읍내에 갔던 아버지가 퇴각하는 인민군 잔당에 죽임을 당했다.

 이후, 어머니는 혼자 힘으로 산비탈에 화전을 일구고 어린 상후를 등에 업고 날품을 팔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다.

 상후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여름엔 방과 후에 아이스케키통을 메고 이 동네 저 동네를 헤매었다.

 겨울방학엔 읍내 다방을 돌면서 구두를 닦고, 밤에는 찹쌀떡과 메밀묵을 팔러 다녔다.

 하지만 입에 풀칠하기조차 어려운 살림살이는 해를 거듭하면서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상후가 중학교를 졸업한 해였다.

 날품을 팔더라도 이 산골보다는 서울이 나을 거다.

 서울 하늘 아래 어딘들 이 산골짜기만이야 못하랴.

 상후와 어머니는 며칠 밤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였다.

 철쭉이 태화산 기슭을 빨갛게 물들일 때, 상후와 어머니는 옷 보통이를 하나씩 들고 정든 상원골을 떠났다.

 천안역에서 서울행 기차를 탔다.

 저물녘 잿빛 하늘이 도회지를 덮칠 때쯤 영등포역에 내렸다.

 

 며칠 동안 역전에서 노숙하면서 일자리를 찾았다.

 전봇대와 담벼락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구인광고를 종이쪽지에 깨알같이 적어서 발이 부르트도록 찾아다녔다.

 닷새 만에 상후는 어렵사리 취직하였다.

 영등포에서 경인 국도를 따라가다가 안양천 둑방 밑에 있는 하동환 자동차공업사다.

 하동환 자동차공업사는 미군 부대에서 고철로 불하받은 군용차량의 부품을 수리하고 철판을 두들겨 붙여서 버스를 만드는 공장이다.

 상후는 판금부에 배속되었다.

 아버지뻘의 기사들이 쭈그러진 철판을 나무망치로 두들겨서 종잇장처럼 펴 놓는 것이 신기했다.

 상후는 연장을 나르는 일뿐만 아니라 담배 심부름과 술 심부름까지 온갖 잡일을 도맡아 했다. 해가 떨어질 무렵에 일이 끝난다.

 고척교를 지나면서 안양천을 물들이는 저녁노을을 보면 떠나온 상원골이 떠오른다.

 상후의 집은 버스정류장에서 마을 길을 따라서 30분을 걸어 들어가야 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발목까지 진흙에 빠지는 길이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살 수 없는 동네라고들 하였다.

 어머니가 잠자리에 누우면 상후는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를 시작하였다.

 일이 없는 일요일이면 영등포 역전의 헌책방들을 뒤져서 필요한 참고서를 찾았다.

 서울에 올라온 다음 해에 상후는 고등학교졸업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하였다.

 상후는 삼수 만에 문리대 영문학과에 합격하였다.

 상후가 대학에 입학한 후에 달라진 것이라곤 공업사 판금부의 잡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뿐이다.

 상후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공장 일 대신 네다섯 팀의 과외와 개인 지도를 하였다.

 상후는 대학생활을 혼돈 속에서 시작하였다.

 

 인생역정 3. 삶과 죽음의 간극 (3). ©에이바(ABA)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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