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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일반/역사
비상
작가 : 유호
작품등록일 : 2016.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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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비상하다!!

막강한 군사력과 정보력을 바탕으로 화려하게 비상하는,
다시 쓰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

21세기 어느 날, 백령도에서 비밀리에 행해진 실험은 일순간 그 주변의 모든 것을 19세기 말 대한민국으로 타임워프시킨다.
그런데 타임워프된 것들은 대한민국에서 자랑하는 모든 첨단무기들이었다.
망연자실했던 것도 잠시, 그들은 꿈꾸던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게 되고…….

조아라에 회당 2만의 조회수를 기록했던 유호의 처녀작 비상을 새롭게 구성하여 발간하였다.
꼭 바꾸고 싶은 우리 역사를 작가의 상상력과 실존하는 사건(역사, 문화, 전쟁, 군사무기 등)을 모두 망라해 새롭게 선보이면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꿈꿨던 대한민국의 발자취를 그려내고 있다.

 
제 11 화
작성일 : 16-08-19 14:32     조회 : 530     추천 : 0     분량 : 9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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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6년 10월 30일 14:35

 의촌리

 

 유상열은 자신의 장갑차 우측에 높이만 2미터가 넘는 커다란 깃발을 꽂았다.

 지난 출정식 때 황제께서 직접 들고 나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자신에게 건네주었던 시리도록 푸른색의 깃발이었다.

 ‘대한제국 정북대원수 대장 유상열’

 다시 한 번 깃발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시작이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장갑차 포탑에 앉아 차장용 방탄 헬멧의 투명 차단판을 눈앞으로 내렸다.

 자신의 K200 보병전투차를 선두로 90대의 전투차가 좌우로 날개를 편 형태로 정렬했고, 폭 800미터의 거대한 삼각형의 꼭지점에 자신과 자신의 깃발이 섰다.

 손에 쥔 중기관총 손잡이에 힘을 들어갔다.

 “3사단! 형태를 유지하면서 대각선으로 적진을 돌파한다! 돌파 시작부터 종료까지의 예상거리는 5킬로미터다! 쪽발이들에게 제국의 힘을 보여 준다! 3사단! 돌격 앞으로!”

 -돌격 앞으로!

 그르르릉―

 무선망 안에서 차장들의 복창소리가 줄달음치고 다음 순간, 90개의 무한궤도가 가을 가뭄에 말라붙은 대지를 일제히 쥐어뜯으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하세가와는 미칠 지경이었다. 아군 포병대는 이미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였고, 2차 돌격은 적 포병의 정확한 포격에 그 자리에 고착되어 버렸다.

 3차 돌격을 준비시키고 있지만 전세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빨리 참호 부근에 도달해 혼전이 되어야 포병의 공격이라도 피할 수 있을 터인데 그것이 쉽지 않았다.

 적의 화력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분명 일만 정도라 했거늘 이건 5만은 족히 넘어가는 엄청난 화력이었다.

 잠시 수성전을 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미 사라진 지형적 이점을 생각해봐야 가슴만 답답했다.

 우선은 눈앞의 조선군 진지를 돌파해야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무리를 해서라도 돌파해야 했다.

 “모리! 3차 돌격을 시행하라!”

 “핫!”

 3차 돌격을 위한 병력이 정렬하기 시작하자 하세가와는 돌격 명령을 내리기 위해 권총을 뽑아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적 포병의 포격이 멎었다.

 사방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고 고착되었던 2차 돌격부대가 어수선해지더니 후퇴하기 시작했다. 흙먼지가 자욱한 사이로 푸른색 깃발이 보였다.

 ‘기병인가?’

 조선군이 거꾸로 아군 진영의 돌파를 시도하고 있었다. 하세가와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쳤다.

 “이런, 젠장! 기병을 막아라! 돌파당하면 전열을 정비하기 힘들다. 어서!”

 그러나 그가 정신없이 후퇴하는 병사들과 흙먼지 사이로 본 것은 기관총을 난사하며 무인지경으로 아군 진영을 헤집는 육중한 철갑鐵甲기관차 수십 대였다.

 하세가와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단어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사신死神이다…….’

 방아쇠를 잡고 있는 손가락에는 감각이 없었고 헬멧 차단판에 피가 튀어 앞이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물론 자신의 피는 아닐 것이다.

 이를 악물었지만 노면의 요철에 따라 턱이 위아래로 정신없이 흔들렸고 땀방울이 눈에 들어와 따가워도 닦을 시간이 없었다.

 왜군 병사들이 장갑차를 피해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슬로우비디오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눈앞이 확 밝아졌다. 돌파가 끝난 것이었다.

 “3사단! 반전한다! 우측! 우측!”

 -사단! 반전! 우측!

 90대의 장갑차가 용천평야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시 왜군 쪽으로 방향을 돌려 세우자 아군 참호 쪽에서 무시무시한 함성이 일어났다. 장갑차를 앞세운 제국군의 일제 돌격이 시작되었다.

 

 이민숙은 장갑차량의 돌격을 기병으로 따르려 했으나 유상열의 결사적인 만류로 따라가지 못했다.

 아쉬움을 달래며 기병을 참호 뒤쪽으로 이동시킨 뒤 후방의 조금 높은 지역을 찾아 말 위에 앉아 망원경으로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망원경 안에는 적의 3만 대군을 일직선으로 돌파하며 적진을 헤집는 3사단 선두의 정인情人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장의 딸로 태어나 밤마다 조선의 무력한 모습에 울분을 터트리는 아버지의 한숨소리를 들었고, 이야기 속, 만주를 호령하는 고구려 기마병의 모습을 항상 꿈꾸어 왔던 그녀였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정인이 그 이야기 속의 고구려를 자신의 눈앞에 재현하고 있었다.

 자신은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그녀의 눈동자가 몽롱해졌다.

 

 5시간에 걸친 치열한 접전은 왜군의 우측전방에서 좌측후방을 관통하는 대한제국 친위군 3사단의 돌파와, 이어 계속된 제국군의 일제 돌격으로 승부가 결정 났다.

 수세에 몰리기 시작한 조선 주둔 일본군은 수많은 야포와 포로를 남기고 후방의 4사단과 패잔병들을 모아 1만이 조금 넘는 병력을 유지한 채 단둥 쪽으로 후퇴를 시도했다.

 하지만 압록강 강변에서 우회한 제국군 8사단에 포위되어 하세가와 상좌의 할복과 함께 항복, 그 깃발을 내렸다. 1896년 11월 18일의 일이었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전사 22,201명, 부상 1,315명, 포로 8,150명, 대한제국군은 전사 182명, 부상 811명의 대승을 거두었고 유상열은 황제에게 호국공護國公의 칭호를 하사받게 된다.

 전신戰神의 신화, 그 시작이었다.

 

 1896년 11월 19일 11:00

 경복궁

 

 경복궁은 축제 분위기였다. 대신들의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고 건원제의 얼굴에도 짙은 미소가 배어있었다.

 “대승이란 말이지요, 수상.”

 “그러하옵니다, 폐하. 왜군은 전사 2만2천에 포로만 9천이고, 아군은 겨우 120의 전사자가 났다 합니다. 워낙 잘 무장된 대군과의 전투라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만 아군의 피해가 생각보다 아주 적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잘 되었어요! 아주 잘 되었어요. 하하하.”

 “그리고 폐하, 이번에 왜국의 미우라 공사를 풀어 줄까 합니다. 조선의 상황을 조금 잘못 알고 떠나겠지만 가서 왜국의 연합함대를 데리고 오는 막중한 임무를 맡길까 합니다. 하하하.”

 임헌수는 곧 있을 영일동맹을 원천봉쇄하고 싶었다. 타이완과 남양군도는 왜의 대양 진출을 막는데 필요했다.

 타이완은 청일전쟁 직후 일본이 이미 할양받은 상태이고, 남양군도는 현재 독일령이지만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영일동맹을 이유로 일본이 독일에 선전 포고를 하고 공격해 영토로 삼는 곳이었다.

 후에 마리아나군도라 불리며 괌, 사이판, 파간 등 휴양지와 카지노로 유명한, 미국의 자치령이 되는 곳이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많은 조선인들이 사탕수수농장으로 끌려가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되는, 한국인에게는 만감이 교차하는 땅이었다.

 무리한 영토 확장은 하고 싶지 않지만 남양군도는 필히 제국의 영토로 편입해야 하는 지역, 향후에 제국의 영토로 남아도 분쟁의 여지가 없는 곳이었다.

 우선 왜의 해군력을 줄여 대양으로의 진출을 위축시키고 영국이 왜와 동맹을 맺을 필요성을 제거해야 했다.

 서둘러서 좋은 일은 없으니 차근차근 제국을 키워 갈 생각이었다.

 

 겨울이 되어 감에 따라 재정과 인력에 여유가 생기자 이순범은 당장 위생이 신경 쓰여 경성에 하수도와 정화조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겨울철 굳어진 땅을 감당할 수 없어 보류하고 내년을 기약했다.

 대신 지난여름 문경에 친위군이 내려갔을 때 같이 내려 보낸 광산기술자들을 통해 문경에 석탄 광산을 만들고 석탄을 이용한 난방을 경기도와 충청도 일대에 시행하도록 하여 난방을 위한 목재의 남벌濫伐을 막았다.

 각 민가의 아궁이 개조비용은 조정이 대고 석탄을 장작 값보다 싸게 팔기로 한 것은 물론이었다. 내년부터는 전국으로 확장할 예정이었다.

 나뭇짐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아 문제였지만 이들은 마을의 석탄 판매권을 주거나 철도공사와 광산의 인부로 흡수하기로 했다.

 

 천일염의 양산에 성공한 후부터 제국 내에서 소비되는 소금의 가격은 꾸준히 하향안정세를 유지했고 청으로의 수출도 제법 호조였다.

 의약품인 형욱-1과 은석-1의 판매는 벌써부터 제국에 월 2천만 원이라는 엄청난 수익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이은서 제국상단 사장의 말로는 내년부터는 효과가 입증되기 시작하여 최소한 5배는 더 벌 수 있다고 하니 가만히 있어도 배가 불렀다.

 연말에는 청에서 K-0소총 판매대금이 또 들어올 예정이었다.

 워낙 물량이 커서 가끔 영국과 법국(프랑스) 공사가 자국의 훈령을 가지고 와서 시비를 걸었지만 깔끔하게 무시해버렸다.

 백령도에서는 지난달 이필이란 화학공학자가 두 가지 선물을 제국상단에 넘겼다. 그 중 하나는 쉽게 제작할 수 있는 초기 형태의 볼펜이었고 이름을 천필千筆이라 정했다.

 초기형태의 만년필 촉 부분에 베어링을 내장해 잉크가 새지 않도록 한 물건이었다.

 생산준비를 서두르라 수하에게 지시하고 자신이 써 보았는데 현대의 볼펜만은 못했지만 상당한 호평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돈 냄새가 제법 났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일론과 여성용 스타킹 생산설비였다.

 나일론은 석탄에서 추출하여 만드는 것, 혼직물로 많이 가공되고 자동차 타이어 내부의 코어로 사용되며 어망, 밧줄 등에 사용하고 플라스틱 대체품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1938년에 미국의 듀퐁사社가 개발에 성공하여 이듬해부터 스타킹을 만들어 판매하면서 일약 세계 굴지의 회사가 되는 최고의 히트상품이었다.

 제국상단은 이 설비로 우선 밧줄과 군용 타이어, 옷감을 생산하기로 하고 생산 준비를 서둘렀고, 스타킹은 아직 여성의 노출이 심화되지 않은 상황임을 고려해 5년 후로 생산을 연기했다.

 사실 스타킹만으로도 제국은 떼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었다.

 역시 돈 냄새가 물씬 풍겼다. 건원제는 크게 기뻐하여 이필에게 경성 내에 있는 저택을 하사하고 금일봉 1만 원과 수발을 들 미모의 궁녀 둘을 백령도로 내려 보냈다.

 나이 34세, 아내와 예쁜 두 딸을 서울에 두고 온 그에게 다시 여자 복이 터졌다.

 

 철도는 해주와 경성, 경성과 청주를 잇는 것을 1차 목표로 하고 내년 11월을 목표로 착실히 진행되고 있었다.

 경인선 철도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상황, 철도에 사용될 기관차는 지난달 ‘해주 병기창’으로 정식 발족한 연구소 분원에서 선박용 중유원동기(디젤엔진)를 장착한 기관차의 개발을 끝내고 생산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년이 되면 세계 최초로 중유를 사용한 열차가 운행을 시작할 것이었다.

 대한-1공격기의 생산은 60대가 완료되어 다음달 말 조종사들의 훈련이 끝나는 대로 육군의 예하 부대로 정식 편입시키기로 했다.

 육군도 이제 9만을 넘어섰고, 군의 사기는 지난 왜군과의 전투에서 대승한 이후 말할 것도 없이 최고여서 무기와 훈련 상태만 조금 더 다듬으면 명실 공히 세계최강의 부대가 될 것이었다.

 그렇게 분주히 내정을 정리하는 1896년, 격동의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다.

 

 

 -------------------------

 

 1) 자주포

 K-9 자주포.

 사정거리는 40킬로미터.

 자동 사격장비와 자동 송탄 장치는 표적위치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사격제원을 산출, 포를 목표 방향으로 지향시키고 탄약을 자동으로 이송, 장전함으로써 30초 이내에 초탄을 발사할 수 있다.

 분당 6~8발의 사격이 가능하며, 단독으로 사격제원을 변경하여 사격을 수행할 수가 있다.

 고성능 동력장치를 탑재하여 기동성이 우수하며 유, 기압 현수장치를 채택하여 주행 및 사격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위치확인장치, 자동사격통제장치, 포/포탑 구동장치 및 통신장치 탑재로 자체 계산한 사격제원 또는 사격지휘소로부터 접수된 사격제원에 따라 포를 자동으로 방열할 수 있다.

 또한 음성 및 디지털 데이터 통신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포신잠금장치는 조종수가 포반장의 명령에 따라 조종수석에서 포신을 원격으로 잠금 및 풀림이 가능하게 해 준다.

 360도 포탑회전이 가능하며, 이동속도는 시속 60킬로미터이나 이동 중 사격은 불가능하다.

 

 2) 볼펜

 회전구로 구상한 현대식 발상은 1908년 헝가리 사람인 라디스라오. J. 비로와 게오르그 형제에 의한 것이다.

 형인 비로는 조각가인 동시에 화가이고 동생인 게오르그는 화학자였다.

 펜 끝에 부착된 단단하고 작은 공이 지면과의 마찰로 회전하면서 잉크관에서 잉크를 뽑아내어 공에 묻은 잉크가 종이에 분사된다.

 한국에는 1945년 해방과 함께 진주한 미군에 의해 처음 소개됐다. 1963년 처음 국내 생산이 시작되어 60년대 말에 대중적인 필기구로 자리 잡았다.

 

 제1차 한일전쟁

 

 

 

 1897년 2월 19일 09:00

 시모노세키 연합함대 사령부

 

 주조선 공사 미우라 고로는 지난해 말, 천신만고 끝에 귀국에 성공했다.

 그의 보고에 따라 일본정부는 즉각 외부대신 이토오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신으로 보내 조선정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억류된 일본인의 송환과 압수된 조선 내 일본인 재산의 반환을 요구했으나 조선조정은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해버렸다.

 왜국이 조선 황실의 전복을 기도하였으며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무력으로 조선을 병합하려 했다는 이유였다.

 또한 억류 중인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에 대한 가혹행위와 간자諫子로 억류된 것이라 송환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리고는 오히려 일본의 극비문서인 조선병합계획서를 내놓으면서 손해배상 4억 원을 요구해왔다.

 이제는 더 이상의 대화가 불필요한 상황, 이토오의 정식 보고를 받은 일본은 1월 중순, 대한제국에 대한 출병을 정식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준비를 서두른 끝에 마침내 2월 18일, 모든 준비를 끝내고 대한제국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연합함대 사령장관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해군대장은 참모장인 카토 도모사부로加藤友三郞와 함께 기함인 전함 미카사의 함교에서 느긋한 표정으로 연합함대 제1함대를 내려다보았다.

 연합함대 제1함대 지휘부는 사령장관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해군대장을 필두로, 참모장 가토 도모사부로加藤友三郞 해군소장, 함대 선임참모 아키야마 마사유키秋山眞之 해군중좌 등 일본해군 최고의 백전노장들이 즐비했다.

 함대주력부대인 제1전대는 함대기함 미카사를 비롯해 장갑순양함 카스가, 닛신 등 강력한 대형 전투함을 주력으로 했고 제3전대는 방호순양함 카사기와 치토세, 오토와, 신고, 그리고 통보함 1척, 구축함 13척, 수뢰정 4척으로 구성된 왜가 보유한 최강의 함대였다.

 비록 2, 3함대는 주둔지인 북해도와 타이완에서 이동하기 어렵지만 이 정도의 함대라면 조선의 허접한 나룻배 정도는 언제든지 전멸시킬 수 있었다.

 러시아 태평양함대와 만나도 밀리지 않고 능히 일전을 겨룰 만한 막강한 전력, 더구나 아직 조선에 선전포고도 전해지지 않은 기습이니 걱정할 일은 없었다.

 선전포고문은 육군이 조선에 상륙을 끝내고 나면 항복을 권유하면서 전달할 생각이었다.

 고베에 있던 오오야마 중장의 관동군 육전대 3, 4, 5여단 17만이 대형 수송선 45척에 분승해서 호위 순양함 13척과 함께 오늘 새벽에 고베항을 출발한 상황, 먼저 그의 함대가 조선으로 전개해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조선함대나 수뢰들을 소개해야 했다.

 “출항시켜라!”

 “핫!”

 만재수량 2만 톤의 거함 미카사를 필두로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해 미드웨이에서 그 명을 다할 예정이었던 총 28대의 일본 최강 연합함대 제1함대가 보급함 수십 척과 함께 승무원 6천여 명의 무덤이 될 대한해협을 향해 출발하기 시작했다.

 제1차 한일전쟁의 개전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1897년 2월 21일 16:20

 대한해협 대마도 외곽 20km

 

 지난해 진수해 제국해군에 편입된 209급 잠수함 예종은 훈련을 겸한 초계항해를 계속했다.

 왜군 연합 함대가 제국으로 진출할 거라는 정보는 진작부터 있으나 아직은 대마도에도 나타나지는 않았다.

 잠망경을 통해 만세키바시 항구의 한가한 풍경을 건네다 보던 박정국 대위는 음탐실의 호출에 잠망경을 끌어내리고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냐?”

 -6시 방향 약 60킬로미터 해상에 다수의 선박이 약 10노트의 속도로 서진하고 있습니다.

 “우리 쪽이네? 드디어 오는구만. 숫자는 파악되나?”

 -아직은 거리가 너무 멀어서 정확한 파악은 어렵습니다. 대략 30~40대 정도로 예상됩니다.

 “그래? 일단 함대 사령부에 타전해라! 우리는 항구의 구축함 2척을 잡는다. 우리가 신예함 중에서는 첫 번째 실전을 시작하는 거다.”

 ‘와’하는 즐거운 비명이 함 내에 퍼지자 박정국이 옆에 앉아 있는 항해장교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이것들아. 모두들 정신 차려! 명색이 잠수함 잡는 구축함이다. 소나 같은 것은 없겠지만 수뢰는 잔뜩 가지고 있을 거다. 소형함정들도 좀 있을 거고. 들키면 여러 가지로 귀찮아! 입 닥쳐! 기도유지! 10킬로미터까지 접근한다!”

 만灣 초입에 정박해 있는 구축함 2척이 목표, 잠수함의 접근은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아예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하긴, 잠수함이 원양에 투입되려면 아직 하세월이니 탓할 일도 아니겠지. 후후.’

 “어뢰실! 보고하라.”

 -1, 2번 발사관 백상어 발사대기 중입니다.

 “좋아. 빨리 끝내자. 충수해!”

 -1, 2번 발사관 충수합니다. 충수 끝.

 “발사. 재장전!”

 “발사! 재장전.”

 퉁―

 묵직한 진동을 동반한 백상어 2기가 어두워져 가는 현해탄의 바다 속을 갈랐다.

 “능동 음탐(액티브 소나)으로 전환합니다! 접촉 10초 전! …7, 6……3, 2, 1, 접촉!”

 비각의 지시로 지난 1월부터 모든 군사용어를 제국어로 바꾸는 통에 조금은 어색한 단어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사용하는 대원들의 얼굴에서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1천 톤을 겨우 넘는 작은 구축함 두 척이 바다 위로 쑥 올라오는 듯싶더니 선체가 순식간에 뒤로 기울기 시작했다.

 박정국 대위는 잠망경에서 눈을 떼고 손잡이를 접었다.

 “자! 이제 우린 연합함대를 영접하러 가자. 조용히 연합함대의 뒤를 따르다가 아군 함대와 합류한다. 좌현 반타, 기관 25퍼센트! 수심 100까지 내려간다. 잠항각 5!”

 -조타실, 좌현 반타!

 -기관실, 기관 50퍼센트!

 -잠항각 5도! 벨러스트 열어!

 무선망을 줄달음치는 복창과 함께 예종은 현해탄의 검은 바다 속으로 날렵한 선체를 감추기 시작했다.

 

 김여훈은 왜군의 출현 보고서와 작전 명령서를 들고 윈드쉴드를 통해 부산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제 내린 눈이 부산포와 영도 전체에 하얀 지붕을 만들었으나 함교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부산포는 달빛조차 없는 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갑판 위에 쌓인 눈을 치우느라 오후 내내 고생했던 병사들은 새벽의 출항을 위해 지친 몸을 눕히고 있었다.

 내무반 한쪽에서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함대에 가수로 소문난 김한수란 놈일 것이다.

 1년 전쯤에 기타를 함에 반입하려고 별짓을 다했던 놈이라 기억이 난다.

 내일 이 시대 최강이라는 왜의 연합함대와의 교전을 눈앞에 두었으니 걱정도 좀 되고 별생각이 다 나겠지. 청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가수가…… 김광석이던가? 기억이 아련하다.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가슴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 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어디선가 가느다란 흐느낌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은 감수성들이 예민한 20대 초의 병사들이니 아마 힘들 것이다.

 새로 친구를 만드는 수밖에 없겠지. 나도 가족이 그리운 것을……. 김여훈도 코끝이 찡해 왔다.

 ‘열차시간 다가올 때 두 손잡던 뜨거움 기적소리 멀어지면 작아지는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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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제 10 화 2016 / 8 / 19 650 0 9607   
9 제 9 화 2016 / 8 / 19 720 0 9301   
8 제 8 화 2016 / 8 / 19 564 0 8705   
7 제 7 화 2016 / 8 / 19 514 0 8574   
6 제 6 화 2016 / 8 / 19 561 0 9113   
5 제 5 화 2016 / 8 / 19 541 0 9133   
4 제 4 화 2016 / 8 / 19 503 0 8814   
3 제 3 화 2016 / 8 / 19 524 0 8299   
2 제 2 화 2016 / 8 / 19 518 0 7944   
1 제 1 화 2016 / 8 / 19 866 0 8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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