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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더 포저(The Pauser)
작가 : 송지음
작품등록일 : 2017.6.1

[범죄·추리·미스터리·판타지·로맨스]
일시 정지된 시공간, 멈춰진 세상에서 범죄의 비밀을 쫓는다.
시간을 일시 정지할 수 있는 현이우. 특수범죄사무국의 영업팀 김수호.
이우에게 도착하는 의문의 메시지로 인해 스치게 된 두 사람의 특별한 인연과 시즌별로 이어지는 크고 작은 범죄 사건들.
각 사건을 관통하고 있는 거대한 범죄조직의 최종 목표를 파헤치는 과정과, 이를 통해 발현되는 서로를 위한 헌신과 희생.
수호의 헌신을 통해 잠재된 능력을 깨워가는 이우의 성장을 중심으로 주인공들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시즌제 소설.

 
{ 더 포저 에피소드 Ⅱ} 시간사용 매뉴얼 ... 1
작성일 : 17-07-21 14:34     조회 : 282     추천 : 3     분량 : 8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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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사용 매뉴얼 }

 

 

 

 

 

 

 *

 백단향 향기가 풍겨왔다. 잠결이었던 눈이 번쩍 떠졌다.

 욕실 앞 콘솔테이블의 향로에 꽂힌 인센스 스틱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침대 아래로 뛰어 내려가며 시계를 보았다. 오전 6시 10분. 욕실 문을 가볍게 노크했다.

 “형 왔어?”

 조용했다. 살짝 열어보았다.

 욕실은 비어있었다. 괜한 불안감이 스쳤다.

 방문을 돌아본 딱 그 순간 문이 살며시 열렸다. 너무 보고 싶던 얼굴이 문틈으로 들이밀어졌다.

 “형!”

 “깼네?”

 “언제 왔어? 번호 어떻게 알고?”

 수호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포옹부터 했다. 그리고는 늘 그러하듯 내 머리에 코와 입을 붙였다.

 이런 식으로 옴짝달싹 못하게 붙들릴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수호를 마주 안는 거뿐이다.

 “좋다, 우리 방울이 냄새.”

 소곤거리는 말에 괜스레 코가 찡해졌다.

 “보고 싶어서 죽을 뻔 했네.”

 더해진 소곤거림에 맹맹한 웃음이 나왔다. 나도 수호를 따라 두 팔에 힘을 꽉 넣으며 물었다.

 “현관번호 어떻게 알고? 형이 바꾸래서 바꿨는데?”

 수호가 고개를 뒤로 빼며 시선을 맞춰왔다. 자다 깬 내 얼굴이 지금 어떨지 새삼스러운 걱정이 스쳤다.

 “요게 근데 맨날 사람 띄엄띄엄 보네? 이 오빠가 뭐든지 맞추는 건 도사님인 거 몰라?”

 웃음이 나왔다. 언젠가 메모에 적었던 걸 놀리느라 수호는 오빠라는 농담을 간혹 한다.

 “치, 웬 도사.”

 “에에? 얘가 얘가,”

 그제야 수호의 팔에 묶였던 몸이 풀려났다. 대신 얼굴을 붙들렸다.

 “형이 얼마나 잘 맞추나 한 번 보여줘?”

 “하지 마. 나 금방 일어났”

 무의미한 말이 막혔다. 저절로 눈도 감겼다. 조심스럽게 맞닿은 수호의 입술 사이로 흐르는 숨이 떨리는 듯 느껴졌다.

 

 침실과 욕실, 아담한 거실과 주방, 화장실, 보일러실에 이르기까지 수호는 늘 그러하듯 집 안을 샅샅이 둘러보고 있었다. 매번 올 때마다 딱 집 사러 온 사람처럼 군다.

 “그만 보고 빨리 와! 배고파.”

 기다리다 못해 한 마디 하자 수호가 잰걸음으로 다가와 식탁에 마주앉았다.

 “답답하겠다. 답답하지?”

 수호는 올 때마다 하는 말을 또 했다. 이사 온 집이 좁아서 답답하겠다는 걱정이다.

 고개를 가로젓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괜한 대답이 아니라 실제로 답답할 정도까진 아니다.

 혼자 살기에 불편함이 없다. 도우미 아주머니도 못 부르는데 더 넓었으면 청소하기도 힘들었을 거 같다.

 물론, 도우미 아주머니보다 열 배는 더 깔끔한 도우미가 오긴 한다.

 수호는 틈만 나면 청소기며 물걸레를 들고 집을 헤집는다.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다. 자기가 도우미 못 부르게 했으니 청소는 자기 책임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앞세운다.

 “왜 안 답답해, 답답하지. 그 넓은 집에서 살다가, 불편하지. 낯선 동네에서 혼자.”

 수호가 시리얼을 씹으며 중얼거렸다. 석 달째 이어지고 있는 소리에 나는 대답하지 않고 식사를 이었다.

 내가 이 집에 적응하지 않기를 바라는 수호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남태령 집에 숨어 지내던 중에 수호는 나에게 묻지도 않고 둘이 살 집을 구했었다. 그때만 해도 나와 수호는 밖으로 나다니지 못하던 터라 기웅이 대신해서 알아봐주었다고 했다.

 집이 결정되고 나서야 수호는 함께 살 집을 구했다는 얘기를 했고, 그날 우리는 처음으로 다퉜다.

 남태령 집에서 같이 지냈던 한 달은 거짓말처럼 행복했지만 너무 조마조마했었다. 수호에게 숨길 것들을 숨기느라 늘 신경이 곤두서있었고 그 사이 한 번 있던 월경 기간엔 잠도 편히 못 들었다. 특이한 냄새만 났다하면 킁킁거리고 다니는 수호 때문에 삼십 분마다 한 번씩 욕실을 들락거렸고, 수십 번 밀봉한 생리용품 쓰레기를 그 때 그 때 버리느라 진땀을 뺐었다.

 수호와 계속 같이 산다면 잘 숨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거절했지만 수호는 고집을 부렸다. 어차피 틈만 나면 같이 있으니 따로 살 이유가 없다며 우기던 수호에게 나는 먼저 화를 내고 말았다.

 동의도 없이 멋대로 집을 알아보는 경우가 어디 있냐고 질타했는데 어쩌다보니 필요 이상으로 화를 냈다.

 생각해보면 수호에게 화가 났던 것이 아니다. 수호에게 다 털어놓을 용기를 내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아직도 수호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있다. 왜 계속 숨기고 있는 건지, 정확히 모르겠다.

 그동안 속았던 걸 알게 될 수호의 반응이 걱정스러워서인지, 시간능력 때문에 성별을 숨기게 되었음을 한꺼번에 털어놓았어야 했는데 어쩌다 타이밍을 놓쳐버려서 어정쩡해진 건지, 아니면 여자도 남자도 아닌 나를 수호가 좋아하지 않게 될까봐 두려워서인지.

 

 “나 혼자 가도 된다니까. 그냥 자. 자고 있어. 응?”

 말을 들을 리가 없음을 알면서도 나는 수차례 사양했다. 일주일동안 하루 한 시간도 못자고 있었다는 사람에게 굳이 운전기사노릇을 시킬 이유가 없었다.

 “내 차로 가면 돼. 맨날 혼자 다녔는데 뭐.”

 말하는 중에 수호의 차에 태워졌다. 나를 조수석으로 밀어 넣고 운전석으로 들어앉은 수호는 시동을 걸며 대꾸했다.

 “그거야 형 바빠서 어쩔 수 없을 때고. 나 왔는데 왜 혼자 다녀? 위험하게.”

 “위험하긴 뭐가. 경호원들 계속 붙어 다니는데.”

 말대답이 너무 길어졌나보다. 수호는 째진 눈을 살벌하게 부라렸다.

 “형 피곤할까봐 그러지. 잠도 못 잤으면서.”

 “그깟 잠이 중하냐? 일주일씩이나 못 봤는데. 너 못 봐서 형 진짜,”

 핸들을 꺾느라 잠깐 말이 멈췄다.

 “돌아가실 뻔 했어요.”

 나는 말대답을 포기하고 웃었다. 웃으면서 코가 찡한 게 우스웠다.

 “점심 뭐 먹을래? 형 없는 동안 먹고 싶은 거 없었어?”

 아침 먹고 나오자마자 점심메뉴를 물어보는 수호 때문에 또 웃었다.

 “특별히 없었는데. 형은?”

 “그럼 순두부 어때? 깨끗한 집 알아놨는데.”

 “우와! 순두부 맛있겠다. 날도 추운데 딱이다. 형 센스 최고.”

 기분 좋으라고 열심히 호응했다. 예상대로 수호의 입이 벙긋 벌어졌다.

 센터 입구를 통과한 차의 속도가 줄었다. 수호는 느릿느릿 차를 몰며 헤드센터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이따 몇 시에 올 건데?”

 “응? 당연히 한 시지. 너 한 시에 끝나잖아.”

 “에이, 형 잠도 좀 자야지. 여기까지 왕복하는 거만해도 한 시간인데.”

 “고양이 쥐 생각해주시네, 집 따로 구해서 똥개훈련 시키시는 분이 누군데.”

 나는 바로 대꾸를 못했다. 수호가 힐끔 쳐다보더니 차를 세우며 목소리를 띄운다.

 “아유 방울이 냄새 맡으니까 피곤이 싹 달아나네 그냥. 보약이다 보약.”

 “세 시까지 와, 조금이라도 자고. 네?”

 “한 시. 너 두 시간씩이나 여기서 뭐해. 여기 뭐 볼 거 있다고.”

 “그러게 내 차로 온다니까. 내가 가면 되는 걸.”

 “혼자 다니지 말라니까. 위험하다고.”

 결론이 달라지지 않을 말씨름을 포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훈련에 꾀가 나는 날이 있다. 오늘이 그랬다.

 일주일 만에 다시 수호의 차로 출근을 하고 나니, 집에 대한 고민이 또 머리를 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다 털어놓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고민이다.

 내가 여자임을 털어놓고 나면 오히려 같이 살지 못하는 명확한 이유가 될까. 한국 사람들은 남녀의 동거에 대해 부정적이라니 말이다.

 수호도 어쩌면, 내가 남자라는 생각에 별 고민 없이 같이 살자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다 털어놓고 나면, 수호는 어떻게 나올까.

 같이 살자고 더는 조르지 못할까, 오히려 더 같이 살자고 할까.

 아니면, 아예 멀어지게 될까.

 석 달 전 내가 이사하던 날 수호는 나와 함께 살려고 구했다는 집으로 혼자 들어갔다.

 수호의 집에 아직 가보지 못했다. 수호는 틈만 나면 가보자고 하지만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번번이 거절했다.

 막상 가보면 수호와 다퉜던 일이 더 미안해질 거 같고, 그래서 마음이 약해질 거 같다. 같이 지내자는 말을 그 집에서 또 한다면 거절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남태령 집 매도 계약서를 쓰러 동행했던 날도 그랬었다. 계약을 마치고 나와 남태령 집에 들렀었는데, 수호와의 추억이 많아서인지 새삼 섭섭했다.

 수호도 같은 기분이었는지 그냥 같이 살자는 얘기를 또 꺼냈었고, 나도 그러고 싶다고 대답하고 싶은 걸 힘들게 참으며 남태령 집을 마지막으로 둘러보았다.

 한국에 들어와서 처음 그 집을 찾아갔을 때만 해도 적당한 집을 찾기 전까지만 있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삼 년이나 살았다. 이웃 주민을 마주칠 일이 거의 없는 한적한 동네의 단독주택은 조용히 숨어 살기 적당했다.

 얼굴을 알아보는 이웃이 생겼다면 내가 사라지거나 나타나는 모습을 보이게 될까 봐 걱정했을 것이다.

 그 집은 할아버지가 내게 남겨주신 집이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 나는 모른다. 어린 아버지와 함께 찍어 두셨던 사진을 통해서 얼굴을 알 뿐이다.

 할아버지는 남태령 집 외에도 많은 재산을 남겨주셨다. 아버지가 관리하시다가 내가 성년이 되던 해에 분리해주셨다.

 생각해보면 참 고마운 분이다. 얼굴도 못 본 손주에게까지 힘들 게 모은 재산을 남겨주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만나 뵐 수 있었다면 나를 아껴주셨을까.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며칠 전에 행방불명이 되셨다고 한다. 이십 년도 넘은 일이니 돌아가셨을 것 같다.

 

 마지막 훈련을 끝내고 시계를 다시 확인했다. 12시 51분.

 서둘러 훈련실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로 걸으며 퇴근 보고를 했다. 퇴근 보고는 항상 핸드폰 메시지를 이용한다.

 ― 현해진입니다. 오늘 최고 기록 11분 48초입니다. 퇴근하겠습니다.

 엘리베이터로 오르는 사이 답 메시지가 들어왔다.

 ― 라이언 : 수고했어요.

 매일 받는 똑같은 메시지이지만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 이름 때문이다.

 라이언. 평범한 이름이지만 철자의 시작이 흔히 쓰는 R이 아닌 L이라서 그런지 라이온, 사자가 연상된다. 라이언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느낌이 있다.

 출근한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었다.

 처음 입사 제의를 받았을 때는 바로 거절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결국엔 수락하고 말았다.

 소원이라는 표현까지 얹으며 간곡히 권유하는 수호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수호는 특범국으로 복귀하게 되면서 내가 혼자 있는 문제로 속을 태웠다. 집 앞에 경호원들이 있으니 괜찮다고 달래도 소용없었다.

 그러던 차에 그런 제의를 받았으니 수호가 조용히 있을 리 없었다. 수호는 이 회사야말로 한국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등 떠밀려 들어왔지만 한 달간 시간훈련을 하면서 라이언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무조건 십 분만 쓸 수 있고 그것은 내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매일 컨디션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오늘 기록인 11분 48초는 최근 기록 중에 조금 짧은 편이다. 이제껏 최고 기록은 15분 04초였다.

 오늘처럼 집중이 안 되고 꾀가 나는 날에는 틀림없이 기록이 좋지 않다.

 라이언은 여유롭게 생각하라지만 나는 그렇지가 않다. 막상 가능성을 확인하고 나니 욕심이 생긴다.

 기왕 시작한 일, 빨리 실력을 키워서 실전 어딘가에 써 보고 싶다.

 

 

 “기웅이 형 떼놓고 오느라 죽는 줄 알았다 야.”

 식사 주문을 마친 수호가 말했다.

 “같이 오지 그랬어. 같이 먹으면 좋지.”

 약간은 빈말이었다.

 “그 잘난 척을 밥 먹으면서까지 들으라고? 국제특범대 직원이라고 하루 종일 얼마나 뻐기는지 아냐? 그래 봐야 말단이?”

 기웅과 수호는 볼수록 조금 특이한 사이다. 친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얼굴만 붙이면 말싸움을 한다.

 “아니, 그게 뭐 그리 대단하신 신분이라고 숨겨? 그거 숨겨가면서까지 왜 저렇게 영업질을 못 해서 야단인지 몰라? 하긴.”

 수호는 말을 하다가 코웃음을 치더니 본인이 대답했다.

 “말단이 무슨 힘이 있겠냐, 시키면 해야지.”

 나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었다. 위험한 현장 일을 굳이 하는 이유가 뭘까, ISCU 일만해도 바쁠 사람이.

 수호가 다시 입사하면서 기웅도 특범국 영업을 다시 시작했다. 둘은 여전히 같은 팀이라서 항상 같이 일하고 쉬는 날도 같다. 덕분에 나도 기웅을 자주 보게 되었다.

 얼마 전에는 수호와 함께 내 집에 놀러오기도 했다.

 그날도 두 사람은 계속 티격태격했다.

 “우리 고양이 좋아하는 파이 사 왔지!”

 “내가 사 왔거든?”

 “누가 뭐래냐? 그럼 니 애인 드실 거 니가 사야지 내가 사냐?”

 나는 도무지 인사할 틈이 없다. 침실로 들어간 기웅의 높은 목소리가 거실까지 들려왔다.

 “이야, 침대 좋다! 웬 킹베드? 어디, 서랍에는 뭐가 있나?”

 들으라고 일부러 큰소리치는 게 뻔한데도 수호는 눈을 치켜뜨며 부랴부랴 쫓아 들어갔다.

 -아 못 일어나? 왜 먼지도 안 털고 남의 침, 서랍은 왜 또!-

 -왜, 내가 보면 안 되는 물건이라도 숨겼냐?-

 -아 씨 우리 그런 놈들 아니라니까!-

 두 사람의 말다툼을 듣고 있으면 웃음이 나온다.

 누구 한 명이라도 있으면 감정이 아예 없는 사람처럼 무뚝뚝하고 과묵한 수호지만 나와 기웅 앞에서는 다른 사람 같다. 내겐 늘 웃어 주고 기웅에겐 주로 짜증을 낸다.

 기웅이 유독 수호에게 짓궂게 굴기도 하지만 수호도 기웅에게는 좀 유난스럽다.

 그렇지만 싸움이 커질 것을 걱정하지는 않는다. 목청을 키우며 싸우다가도 금방 머리를 맞대고 비슷한 표정으로 낄낄 웃는다. 싸우면서 정이 든 두 사람인가 싶기도 하다.

 또래 친구가 없는 나로서는 신기하고 재미있지만 가끔은 조금 다른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내가 끼어들 틈이 없어서 섭섭한 기분. 일종의, 질투심 같은 걸까.

 나 혼자 동떨어져있는 기분이 스친다. 수호의 진료를 위해 병원에 갔던 날부터 그런 기분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수호가 남태령 집으로 돌아오고 일주일 뒤에 병원에 갔었다.

 진료는 수호에게만 필요했지만 함께 다녀왔다. 병원만 같이 간 것이 아니라 한동안은 서로의 그림자처럼 붙어 지냈다.

 수호는 집 안에서도 나를 혼자 두지 못했다. 내가 서재에 있든 침실에 있든 거실로 나가든 같은 공간에 있었다. 내가 조금만 오래 씻어도 밖에서 불러대는 통에 한동안은 불안해서 목욕도 어려웠다.

 처음 병원에 갔던 날, 진료실에서 기웅을 다시 만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호의 진료 스케줄에 맞춰 일부러 특범국 전담병원으로 왔던 것 같다.

 남태령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던 수호의 안부가 궁금했을 것이다.

 어쩌면 나를 만날 목적도 함께 있었을지 모르겠다.

 기웅은 우리의 인사에 건성으로 대꾸하며 나를 빤히 뜯어보았다.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으로 말없이 시선만 맞춰왔다.

 팔목 깁스를 다시 하고 있던 수호가 짜증을 부렸다.

 “아 그만 쳐다봐! 얼굴 닳아!”

 “우리 고양이, 슈퍼고양이라며?”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바로 알아들었다. 나는 대꾸를 못 찾고 수호를 쳐다보았다.

 내 눈초리가 곱지 않았던지 수호가 눈치를 보았다.

 “그게, 그거 안 털면 형이 너 만날 길이 없어서.”

 “더 조심했어야지.”

 기웅이 다정하게 말했다. 그러더니 수호를 돌아보며 소리를 질렀다.

 “너야말로! 애 잡아먹을 궁리나 하지 말고 조심을 시켜야지 이 미친놈아!”

 갑작스러운 고성에 얼떨떨했다.

 “찍힌 걸 알고도 그냥 둬? 그걸 누가 볼 줄 알고!”

 “아….”

 수호의 탄식에 더 얼떨떨해졌다. 뭐가 찍혔다는 건지.

 “강기웅 님, 이쪽으로 앉으세요.”

 간호사가 대화를 끊었다. 기웅이 옮겨 앉아 어깨 붕대를 풀기 시작했다.

 나란히 앉아 치료를 받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나만 다치지 않은 게 미안해졌다. 수호와 나를 찾으려고 저 어깨를 하고 어두운 산을 헤맸다니. 수호는, 나 하나 살리자고 수호는.

 뜨거워지는 눈을 돌려 진료실 밖을 내다보았다.

 “저 음료수 뽑아올까요? 그래도 돼요?”

 “안 돼.”

 “갔다 와.”

 두 사람이 동시에 다른 대답을 했다. 동시에 서로를 노려보았다.

 “어딜 갔다 오래?”

 “가드 있잖아, 자판기까지 걸어서 일 분이야.”

 “에이 진짜.”

 “작작 좀 해라. 눈꼴이 시다 못해 아주 초파리가 앉을 지경이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기웅이 이긴 듯 했다. 수호의 눈치를 슬쩍 살피고 복도로 나섰다. 문 앞에 서 있던 두 사람이 따라 움직였다.

 내가 걸으면 무조건 따라오는 사람들. 집 안과 회사 건물 안을 제외하고는 어디를 가든 따라온다. 내가 걸을 땐 걷고 차를 타면 차로 따라온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제는 없으면 궁금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항상 딱딱한 무표정이고 대부분이 우락부락한 몸집이다. 저절로 눈치를 보게 되는 인상들이다.

 자판기에 지폐를 넣고 인원수를 생각했다. 수호와 기웅, 간호사 두 명, 의사, 경호원 둘, 그리고 나. 음료수 여덟 개를 뽑아 들었다.

 “형들 여기요. 드세요.”

 경호원한테 먼저 건넸다. 눈동자를 굴려 음료를 보더니 말없이 받는다. 시선이 맞자 희미하게 웃는 듯해서 덩달아 웃었다. 경호원들도 내게 적응했는지 아주 가끔이지만 웃는 얼굴을 보여준다.

 진료실 문을 열려다가 멈췄다. 기웅이 수호의 머리 위에 손을 얹은 채로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수호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처럼.

 두 사람의 대화를 방해하고 싶지 않은 기분에 문밖의 대기 의자로 앉았다. 음료수를 하나를 따서 마셨다.

 무슨 얘기를 나누느라 저렇게 다정한 걸까.

 음료를 들고 있는데도 입이 말랐다.

 당연히 다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왜 싸우기만 하는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런 모습을 보고 나니 기분이 달라지는 건 왜일까.

 수호는 이런 기분으로 예전에 나와 전영인을 보며 화를 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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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4 2017 / 6 / 25 281 4 5613   
27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3 2017 / 6 / 24 282 4 5819   
26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2 (2) 2017 / 6 / 23 340 5 5239   
25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1 (2) 2017 / 6 / 22 409 5 5234   
24 { 더 포저 시즌 Ⅱ} 아담의 비밀 ... 9(완결) (2) 2017 / 6 / 21 325 5 6978   
23 { 더 포저 시즌 Ⅱ} 아담의 비밀 ... 8 (1) 2017 / 6 / 20 301 5 8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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