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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인생역정(人生歷程)
작가 : 에이바
작품등록일 : 2016.8.19

21세기에 들어서도 수구골통과 종북좌빨이라며 서로 발톱을 세우고 사는 것이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이념을 떠나서 서로를 인정하며 공존하는 사회, 인륜과 천륜으로 살 수 있는 세상 - 우리가 꿈꾸는 엘도라도이다.

 
2. 삶과 죽음의 간극 (2)
작성일 : 16-08-19 14:02     조회 : 896     추천 : 6     분량 : 5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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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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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퍼붓는다. 그렇게도 기다리고 기다리던 빗줄기다.

 우기가 시작되었다.

 날마다 40도를 오르내리는 이 지옥 같은 전쟁터를 식혀 주는 고마운 단비다.

 바람이 분다.

 비구름을 몰고 오는 서늘한 남서풍이다.

 개구리가 운다. 맹꽁이도 운다.

 이들의 울음은 울부짖음이 아니다.

 타는 살갗을 적셔주는 단비를 반기는 고마움의 표시다.

 열대몬순지대의 우기는 생명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건기 내내 타는 불볕에 움츠리고 있던 산천초목이 기지개를 켠다.

 나뭇잎들이 희뿌연 먼지를 털어내고 파릇한 제 모습을 찾는다.

 산비탈을 쓸고 내려오는 빗물이 계곡을 채운다.

 반나절 전까지 바싹 말랐던 계곡에 물이 차오른다.

 불어난 급류가 어둠과 함께 상후를 덮친다.

 상후가 물에 떠내려간다.

 

 "죽었나?"

 "아니, 아직 숨이 붙어 있어."

 "빨리 갑시다."

 "서럽게 죽은 우리 아들을 생각해서 데리고 갑시다."

 

 민은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마당에 널었던 약초를 거둬들였다.

 곧이어 민은 저녁 식사를 준비하였다.

 엄마 아빠의 일과는 민이 사이공으로 떠나기 전인 8년 전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동녘이 붉어질 때쯤 엄마와 아빠는 주먹밥을 챙겨서 집을 나선다.

 진종일 산속을 헤집고 다니며 약초를 채취한다.

 땅거미가 젖어들 때쯤이면 온갖 종류의 약초들로 채워진 바랑을 힘겹게 둘러매고 돌아온다.

 오늘처럼 오후에 비가 쏟아지는 날엔 동굴 속에서 비를 피한다.

 비가 그친 후에 산에서 내려오기 때문에 종종 한밤중에야 돌아오곤 한다.

 민은 추녀 밑에 호롱불을 밝혀 놓고 연신 개울 건너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모처럼 시원스럽게 흘러내리는 개울물 소리가 민을 추억 속으로 밀어 넣었다.

 오빠와 함께 물장난하던 개울이다.

 돌 틈 사이에서 가재와 게를 잡고 통발을 놓아서 물고기를 잡던 개울이다.

 8년 전, 민이 미국인 선교사를 따라서 사이공으로 떠난 후에도 오빠는 종종 편지 속에 개울 이야기를 쓰곤 하였다.

 3년 전, 오빠는 열여덟 살의 나이로 콘톰에 있는 미군 캠프 할로웨이가 지원하는 민병대에 입대하였다. 오빠뿐만이 아니다.

 지알라이지방과 콘톰지방의 산악지역에 흩어져 사는 자라이부족의 청년들은 대부분이 남베트남군에 입대하거나 남베트남 쪽 민병대에 들어갔다.

 이는 콘톰에 미군 부대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라이부족의 많은 사람이 민의 가족처럼 프랑스 통치시대에 천주교로 개종하였기 때문이다.

 민도 첫돌 때 유아세례를 받은 천주교 신자였다.

 

 오빠가 민병대에 입대한다는 소식을 들은 민은 장문의 편지를 썼다.

 오빠는 잘못된 선택을 하였다.

 미국은 결코 우리 베트남민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베트남은 자본주의로 통일이 돼서는 안 된다.

 우리 베트남은 54개의 소수 부족이 모여서 만든 나라다.

 자본주의로 통일된다면, 물질 만능주의에 물든 부족 사이에 새로운 분쟁이 야기될 것이다.

 남과 북이 통일되고 모든 베트남민족이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기 위해선 호찌민의 지도력 아래에 모두가 하나로 뭉쳐야 한다.

 우리 베트남의 운명은 우리 민족 스스로가 선택할 문제다.

 하지만 민의 편지가 도착하기 전에 오빠는 이미 집을 떠났다.

 그리고 석 달 후에 오빠의 전사 통보서가 날아왔다.

 

 민은 사이공에서 양부모인 미국인 선교사 부부와 함께 살면서 미국계 학교에 다녔다.

 민은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미국과 자본주의에 회의를 느꼈다.

 미국은 독립선언서에서 자유와 평등을 주창하였다.

 그런 미국이 사백만 명이 넘는 흑인을 물건처럼 사고팔고 종으로 부렸다.

 베트남에 들어와 있는 미군들을 보라.

 그들은 밤낮으로 술과 마약에 취해 있다.

 그 잘난 달러를 뿌리면서 하룻밤에 서너 명의 여자를 끼고 자기도 한다.

 베트남사람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는 경멸과 조소가 가득하다.

 미국이 주장하는 평등은 가진 자들만의 평등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자유는 기득권자들만의 자유다.

 

 민은 미국인들이 운영하고 가르치는 국제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의 모순과 추악한 모습을 직시하였다.

 민이 8학년이었던 1969년에 호찌민이 타계하였다.

 민은 한동안 방향키를 잃은 난파선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하지만 민은 곧 정신을 수습하였다.

 조국의 독립과 인민의 자유를 위하여 평생을 헌신한 호찌민의 정신과 삶을 따르기로 작심하였다. 이후, 민은 더욱더 열심히 공부하였다.

 양부모는 민이 졸업 후에 미국에 가서 계속 공부하기를 원했다.

 졸업식을 일주일 남겨 놓은 날 새벽에 민은 양부모 앞으로 한 통의 편지를 남겨 놓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돌봐주고 가르쳐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조국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싸우기로 하였습니다.

 잠시 고향에 들렀다가 하노이로 가렵니다.

 그곳에서 그동안 보고 듣고 배운 모든 것을 동원하여 조국의 독립과 우리 베트남 민족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할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인이 우리의 적은 아닙니다.

 우리의 적은 약소민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서구 자본주의입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다리를 건너오는 발걸음 소리에 민은 상념에서 깨었다.

 먼저 건너온 엄마가 호롱불을 껐다.

 엄마가 의아해하는 민의 손을 끌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들어온 아빠가 등에서 내려놓은 것은 한국 군인이다.

 엄마가 재빨리 민의 입을 막는다.

 "네 오빠가 살아있으면 이 청년 나이쯤 됐을 텐데.

 네 오빠 생각이 나서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단다."

 "그렇다고 한국 군인을 데려오면 어떻게 해……."

 "자, 우선 물부터 덥히거라."

 엄마의 말이 떨어지자 민은 불평을 거두고 화덕에 불을 피웠다.

 흥이 상후의 맥을 짚는다. 맥은 아직 살아있다.

 

 응옥은 뒷문을 열고 약초 창고로 들어갔다.

 응옥이 구석에 있는 약초를 담은 마대자루를 치웠다.

 마대자루 밑에 깔렸던 판자를 들어내니, 한 사람이 드나들기에 빠듯한 구멍이 나온다.

 방공호로 내려가는 입구다.

 흥이 방공호로 내려가서 위에서 아내가 내려준 상후를 받아서 낟가리 위에 눕혔다.

 AK소총 탄환이 관통한 상후의 왼쪽 대퇴부에선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다.

 엄지손가락만큼 찢어진 옆구리엔 응고된 피가 뭉쳐 있다.

 흥이 상후의 상처에 약재를 짓이겨 만든 지혈제를 붙였다.

 응옥이 더운물과 수건을 가지고 내려왔다.

 잠시 후 민이 탕약 한 사발을 내려보냈다.

 흥이 상후의 몸을 닦아 주는 동안, 응옥은 상후의 입을 벌리고 탕약을 한 숟가락씩 떠 넣었다.

 응급처치를 끝낸 흥은 아내를 올려보내고 상후의 옆자리에 누웠다.

 아들 생각에 부상한 한국 군인을 데려오기는 했지만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주위 사람들은 아들이 남베트남의 민병대에 자원하였다가 전사한 사실을 알고 있다.

 더욱이 딸 민은 곧 하노이에 가서 북베트남군 사령부에 자원하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다.

 아들은 민주주의자고, 딸은 공산주의자다.

 흥의 집안만 이런 것이 아니다.

 주변은 이미 아군과 적군을 구별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부상한 한국 군인을 치료해 준 사실이 민족해방전선 전사들에 발각되면 딸도 위험할 수 있다.

 흥은 성호를 긋고 기도하였다.

 이것이 천주님의 뜻이라면, 어떤 시련과 고난이 닥치더라도 받아드리겠습니다.

 민은 엄마 옆에 누웠다.

 엄마와 함께 누운 것은 열 살 때 집을 떠난 이후로 8년 만이다.

 엄마의 체취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민이 엄마의 손등을 쓸어 본다.

 손마디는 더욱 굵어졌고 손등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칠어졌다.

 민은 울컥하는 마음을 누르고 수건을 들고 개울가로 나갔다.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개울물에 몸을 담갔다.

 오후에 쏟아진 폭우 때문에 물살이 제법 세다.

 민은 이제 오빠와 함께 물장구를 치던 어린 소녀가 아니다.

 열대여섯 살이면 결혼하는 자라이족의 관습으로 보면 민은 이미 결혼 적령기를 넘긴 여인이다.

 사이공에서 8년 동안 생활하면서 민은 늘씬한 몸매에 청순미와 관능미를 겸비한 완숙한 여인이 되었다.

 민이 집에 돌아왔다.

 아빠는 아직도 방공호에서 올라오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던 민이 방공호로 내려간다.

 "아빠, 올라가서 주무세요. 아침 일찍 또 산을 타야 하잖아요.

 이 사람은 제가 돌볼게요."

 "네가 어떻게 이 사람을 간호할 수 있겠니?"

 "아빠, 저 일급 간호사예요. 사이공에 있을 때 주말마다 양부모님이 여는 무료 진료소에서 환자들을 돌봤는걸요."

 "참, 그렇구나. 그래, 네가 수고 좀 해라."

 흥은 딸을 믿는다. 천성이 착한 아이다.

 비록 사상이 달라져서 곧 하노이에 있는 북베트남군 사령부에 자원할 아이지만, 상처를 입어 의식도 없는 사람을 해할 만큼 모진 아이는 절대 아니다.

 흥은 민에게 상후를 맡겨 놓고 방공호를 나왔다.

 민은 상후의 옆자리에 무릎을 곧추세우고 앉았다.

 며칠 동안만이라도 엄마 아빠와 함께 있고 싶었다.

 아직도 가슴 속 깊이 아들을 잃은 슬픔을 품고 사는 분들이다.

 남은 딸자식마저 전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든다는 말을 듣고 며칠째 수심이 가득한 분들이다.

 하노이로 가면 전쟁이 끝나기 전에는 다시 볼 수 없는 엄마와 아빠다.

 아니, 어쩌면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어찌 우리 가족만의 사연인가.

 이 땅에 사는 베트남민족 모두가 대를 이어서 겪어 온 불행이다.

 이제 이 참혹한 전쟁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다음 세대에는 절대 이 비참한 역사를 물려줘서는 안 된다.

 사악한 물질문명으로 우리의 존엄을 참담하게 짓밟는 미 제국주의자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야 한다.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통일을 방해하는 남부의 반민족주의자들을 처단해야 한다.

 그것만이 자자손손 외세로 인하여 핍박을 받아온 이 베트남 땅에 평화를 찾는 길이다.

 그것만이 우리 베트남민족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길이다.

 이 숙명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오늘도 수많은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정글과 늪지에서, 도시와 공장에서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영혼을 불사르며 몸을 던져 싸우고 있다.

 이제 때가 됐다.

 이제 나도 이 한 몸을 조국의 통일과 민족의 자유를 위하여 불사를 때다.

 그런데 이 한국 군인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이자는 적군이다.

 이자는 미 제국주의자의 꼭두각시다.

 이들은 미 제국주의자들이 던져 주는 몇 푼의 달러에 영혼을 팔아먹은 자들이다.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민족해방전선 전사들은 물론 무고한 양민들까지 학살한 자들이다.

 어쩌다가 이런 적군을 내 집 방공호에 숨겨 주고 치료해 주게 되었나.

 나는 곧 하노이로 떠나야 한다.

 내가 떠난 후에 민족해방전선 전사들에게 발각되면 엄마와 아빠는 죽은 목숨이다.

 그들은 이미 오빠가 월남의 민병대원으로 활동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항시 보이지 않는 눈이 엄마와 아빠를 주시하고 있을 거다.

 민은 한동안 생각을 멈추고 허공을 응시한다.

 엄마와 아빠를 위해선 내가 이자를 처치하고 떠나야 한다.

 지금 내 손으로 이자를 없애자.

 기도를 일 분만 막으면 이자는 숨이 끊어진다.

 날이 밝은 후에 민족해방전선 전사들에게 신고하자.

 이것은 엄마 아빠의 믿음에 어긋나는 일이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의 안전을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를 설득하여 함께 하노이로 가자.

 이 중부고원지대는 낮에는 남베트남군이 장악하고 밤이 되면 민족해방전선 전사들이 활보한다.

 이곳에선 엄마와 아빠의 안전을 확신할 수 없다.

 민은 결심을 굳혔다.

 생각을 정리한 민이 상후 쪽으로 돌아앉아서 상후의 목을 향하여 손을 뻗었다.

 

 인생역정 2. 삶과 죽음의 간극 (2). ©에이바(ABA)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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