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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너와 나의 세상
작가 : 은아린
작품등록일 : 2017.7.19

이제는 없는 그 아이를 찾아야해.


인간의 노예화를 추진 중인 뱀파이어와 인간과의 공존을 꿈꾸는 뱀파이어 사이에 서게 되었다.




어느새 내 지척에 다가온 라무엘이 한 손은 쇼파를 짚고 한 손으로는 내 턱을 잡아 자신에게로 돌렸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까만 눈동자가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달큰한 냄새가 훅 풍겨왔다.

"겉보기와 다르게 눈물 많고 여리다는거."

라무엘의 기다란 손가락이 내 눈매를 매만졌다. 차가운 손끝이 피부로 느껴졌다.

"뭔 개소리야."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는데 무슨 소리신지. 손을 탁 쳐내자 라무엘은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그를 흘겨보며 술병을 들어 안의 내용물을 입 안에 쏟아부었다.

 
너와 나의 이미 시작된 시간 2
작성일 : 17-07-21 13:00     조회 : 216     추천 : 0     분량 : 5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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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너와 나의 이미 시작된 시간(2)

 

 

 

 "… 이, 제…, 제이! 이제이!"

 "허억!"

 

 막혔던 숨이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재희의 손이 닿았던 목을 손으로 쓸었다. 아직도 재희의 손이 내 목에 달라붙어있는 것 같았다. 내가 알던 재희와 꿈 속의 재희는 소름끼칠정도로 괴리감이 있었다. 그 반재희가 저런 끔찍한 짓을 하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었다. 아마 뱀파이어의 제물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런 꿈을 꾼 것이리라. 나도 참 답이 없네. 정말 말도 안되는 꿈이나 꾸고.

 

 "제이야, 괜찮아?"

 

 라무엘이 새까만 눈으로 내 얼굴을 찬찬히 살피고 있었다.

 

 "어어, 괜찮아. 나 물 좀."

 "잠시만."

 

 냉장고로 가는 라무엘의 등을 보다가 마른세수를 했다. 식은땀도 흘렸는지 머리카락이 얼굴 여기저기에 달라붙어있었다. 그것을 떼어내려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 물."

 

 달큰한 향기와 함께 다가온 라무엘이 컵을 내밀다가 떨리는 손을 멍하게만 보고 있는 내 어깨를 살짝 잡았다.

 

 "괜찮은거 맞아?"

 "으응."

 

 눈을 꾹 감았다 뜨며 손을 쥐었다폈다 반복했다. 조금 진정되는 것 같기도 하고.

 

 "가위 눌린건가?"

 

 컵을 내 입으로 가져온 라무엘이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들어 내 뒷목을 받치고 천천히 물을 마시게 해주었다. 꿀꺽꿀꺽 물을 받아마시다가 적당한 선에서 컵을 들고 있던 라무엘의 손을 슬쩍 밀었다.

 

 "응. 아마도."

 "아마도."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말을 따라하던 라무엘이 빈손으로 내 얼굴에 달라붙은 젖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있었다.

 

 "뭐가 불만인데."

 "꿈 이야기를 제대로 해주지 않는거."

 "생각안나."

 "그런 주제에 여태 떨고있네."

 

 라무엘의 말마따나 내 손은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크게 내쉬었다.

 

 "몇시지?"

 "아직 10시도 안됐어."

 

 내 질문에 몸을 돌려 개수대로 향하던 라무엘이 대답했다. 내가 언제 잠든거지. 또 당분간 제대로 자긴 글렀네. 한숨이 나도 모르게 새어나왔다.

 

 "아아. 오늘부터 알바는 그만둬야겠네."

 "왜?"

 "FIL에 들어가게 될테니까."

 

 라무엘이 컵을 깨끗하게 닦아 건조대 위에 올려놓았다.

 

 "무슨 알반데?"

 "어, 음. 배달?"

 

 

 ***

 

 

 "아, 카페인이 부족한 것같아."

 

 비는 그쳤지만 낮게 깔린 구름때문에 오후임에도 어둑한 거리를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옆에서 라무엘이 혀를 찼다.

 

 "그렇게 마시고도 부족해?"

 "계속 몽롱한 상태야."

 

 뒤집어쓴 후드를 벗고 회색빛으로 가득한 하늘을 올려보다가 옆에서 내 걸음에 보폭을 맞춰 걷고 있는 남자를 봤다.

 

 "누구씨가 내 기호품 취향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가져주는게 참으로 불편한 상태기도 하고."

 "칭찬 고마워."

 

 라무엘이 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

 

 "절대 칭찬 아닌데."

 "칭찬으로 들렸어."

 

 뻔뻔한 낯으로 뭐 문제있냐는 표정인 라무엘에게 질려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앞을 바라봤다.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의 초조한 얼굴이 자꾸만 시야에 잡혀서 도로 후드를 깊숙히 눌러 썼다. 그렇게해도 아예 안 볼 수는 없었지만 조금은 덜 보이는 느낌이었다.

 

 "알바 그만 둔다고 했잖아."

 "마스터가 이거 하나만 해달라는데 어떡해."

 

 조금전 전화로 그만둔다고 했는데 마스터가 지금 사람이 없어서 그러니 이거 하나만 해달라고 사정사정하는 바람에 라무엘과 사무실로 가는 길이었다. 어차피 간단한거라니 후딱 끝내고 잭의 가게로 가면 대충 시간이 맞을 것도 같았다.

 

 "그나저나 당신, 나중에 가게 앞에서 만나자니까 왜 따라오는거야."

 "계약이라고 말했잖아, 네 옆에 있는게."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하다가 라무엘의 말에 대꾸를 해야하나 무시를 해야하나 고민에 휩싸였다. 물론 고민의 시간은 짧았다.

 

 "있잖아, 그 계약이라는거 아직 성립된게 아닌거같은데."

 

 내 말에 라무엘이 그 새까만 눈으로 나를 보며 무슨 소리냐고 묻고 있었다.

 

 "난 아직 FIL에 입단이 확정된게 아니잖아. 잭이 거절할 수도 있고."

 "그건 걱정하지마. 제이 네가 FIL에 들어가지 못하면 나도 거기에 들어갈 일 없어. 너와 내가 독단적으로 일을 진행해도 상관없으니까. 물론 FIL에서 활동하게 될 경우보다는 인적 물적 시간적으로 많이 부족할테지만."

 "우리 둘만으로 그게 가능한거야?"

 

 미심쩍어서 물어보자 라무엘이 웃었다.

 

 "가능성은 있겠지."

 

 이거 지금 나 놀리는거지? 대번에 눈썹을 휙 치켜 올렸다.

 

 "뭐하자는거야."

 "그러는 너는 왜 알바 그만둔다는건데. 당연히 FIL에서 널 받아줄거라고 확신했으니까 그만둔다는거 아니야."

 

 할말이 없네. 나 입 막는데서 특출난 재능을 보이는 라무엘을 어이가 없어서 보다가 길을 걷던 누군가와 부딪힐 뻔했다.

 

 "조심. 앞을 잘 봐야지."

 

 내 팔을 잡고 자신을 품으로 당긴 라무엘의 품에 안긴 꼴이 되었다. 달큰한 냄새와 산뜻한 이파리 냄새가 뒤섞인 그만의 독특한 향기가 풀썩이며 주변을 맴돌았다. 옆에 섰을 때와는 달리 진한 향기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고마워."

 

 빠르게 라무엘의 가슴팍을 밀치며 떨어졌다. 그제야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어디 다쳤어? 얼굴색이 안좋은데."

 "없어. 신경꺼."

 

 말을 툭 내뱉고 지척에서 얼굴을 들이미는 라무엘을 피해서 걸음을 서둘렀다. 얼마 안가 칙칙한 회색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 라무엘이 따라 들어오는게 느껴졌지만 돌아보진 않았다.

 

 "뭘 배달하길래 이런데 사무실이 있는거야."

 

 두계단씩 성큼성큼 오르며 들리는 라무엘의 말을 무시했다. 3층에 다다라 검은색으로 코팅된 유리문을 벌컥 열었다.

 

 "제이야 잘왔어!"

 

 돋보기를 콧잔등에 얹고 누런 종이를 살피고 있던 마스터가 날 발견하고 다가왔다. 까무잡잡한 그의 피부와 낡아서 여기저기 헤졌지만 깔끔하게 차려입은 밝은 회색 정장이 상당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저렇게 차려입은거지.

 

 "이게 마지막이에요. 앞으로 연락하지마요."

 "에이, 쌀쌀맞긴. 오랜만에 만났는데 인사가 먼저 아니냐."

 

 능글맞게 웃은 마스터가 새치 가득한 머리를 매만졌다.

 

 "누구?"

 

 뒤늦게 내 뒤에 서 있는 라무엘을 발견한 마스터가 흥미로운 눈으로 그를 살폈다.

 

 "신경끄세요. 여기 있을 사람 아니에요."

 "정말 섭섭하게 이러기냐? 여기가 뭐 어때서 여기 있을 사람이 따로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한다."

 

 진짜 서운하다는 표정이 되어버린 마스터를 무시한채 아까 그가 있던 자리로 가서 보고 있던 누런 종이를 들어올렸다.

 

 "배달할게 이거에요?"

 "아, 그건 너한테 할당된게 아니야."

 

 다급하게 다가온 마스터가 내 손에 있던 종이를 휙 낚아채 뒤집어서 서랍에 넣어 놨다. 그리고 서랍을 열쇠로 잠궈버렸다.

 

 "마스터 그거…."

 "네가 신경쓸 일 아냐."

 

 이마를 소매로 훔치는 마스터의 행동이 무척이나 수상해보였지만 오늘 이후로 볼 일 없을테니 그냥 신경끄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배달할건 뭐에요?"

 "아, 잠깐만. 올 시간이 다 됐는데."

 

 벽에 걸린 빛바랜 시계를 초조하게 보던 마스터가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기다리다가 지루해져서 마스터가 보던 벽시계를 가만히 살펴보니 중앙 밑쪽에 XX시장상인회라는 글씨가 보였다. 무슨 시장인지는 지워져서 잘 보이지 않았다. 아마 이 근처의 오래된 시장에서 나눠준건가. 못해도 몇십년은 되보이는데. 거의 골동품에 가까워보였다.

 

 "제이야. 도대체 뭘 배달한다는거야?"

 

 유리문 옆의 벽에 기대서서 내가 하는 양을 보고만 있던 라무엘이 갑자기 말을 건넸다.

 

 "나도 몰라. 마스터가 얘기도 안해주고 나갔잖아. 여긴 배달 할 수 있는 세상의 모든것을 다 배달하는 곳이니까. 그게 시체든 작은 종이쪼가리든."

 

 내 말에 라무엘이 묘한 낯으로 나를 봤다.

 

 "그건 또 무슨 얼굴이야."

 

 그게 거슬려서 못마땅한 투로 묻자 라무엘이 눈을 길게 감았다가 떴다.

 

 "역시 재희가 말해준 너와 내 앞 있는 너는 다른 것 같아서."

 "당연한거 아냐? 재희와 헤어진게 언제적인데."

 "그런 의미가 아닌데."

 

 내 말에 라무엘이 슬쩍 웃어보였다. 도통 무슨 의미인지 나는 모르겠는데요. 내가 표정으로 물었지만 라무엘은 살며시 고개를 저어보이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대답하지 않겠다는 말을 온몸으로 내보이는 모습에 헛웃음이 났다. 유치하긴.

 

 "제이야. 손님 오셨다."

 

 덜컹거리며 유리문이 열리고 마스터와 우락부락한 남자가 함께 들어왔다. 민머리에 거무죽죽한 색의 가죽 안대로 왼쪽 눈을 가린 남자가 험상궃은 얼굴로 나를 흘긋 봤다. 남자가 입고 있는 티셔츠가 근육을 따라 터질것처럼 부풀어있었다. 제법 키가 큰 마스터가 그 남자의 옆에서는 왜소해 보이기까지 했다.

 

 "손님?"

 

 그러고보니 어제 선술집에서 본 기억이 났다.

 

 "응. 이번 배달은 사람이야. 이분이 D구역을 지나서 E구역으로 가고 싶다고 하시는데 네가 D구역을 잘 알잖아."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아니 마스터 이건 간단한게 아니잖아요. D구역이라니 오늘 안에 지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걸 간단하다고 말한거에요?"

 "제이야, 그게…."

 "그건 내가 설명하지."

 

 짜증스럽게 말하자 마스터가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손님이 불쑥 끼어들었다.

 

 "우리 조직원 모두가 갈거야. 제법 실력이 있으니 걱정은 안해도 좋아."

 

 뭐 돌아오는거야 나 혼자 숨어서 오면 상관없겠지. 가는건 저렇게 자신만만하니 죽든말든 나와는 상관없고.

 

 "마스터 선금으로 받아요. 죽으면 돈을 못받으니까."

 "암암, 당연하지. 미리 받아놨어."

 

 마스터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다가 손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봐요, 손님. D구역으로 가는건 평범한 배달이 아니니까 그쪽이 죽어도 난 책임없어요. 그게 싫으면 말고."

 "아아, 그건 상관없어. 죽을 일 없으니까."

 

 대단한 자신감이네. 하긴 저런 근육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감이 넘쳐도 상관없을라나.

 

 "지금 출발하면 되나요?"

 

 내 물음에 손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가죠."

 

 유리문을 벌컥 열어 밖으로 나가자 라무엘이 바로 내 뒤에 따라붙었다. 손님이 그걸 봤는지 나를 불러세웠다.

 

 "이봐, 배달원. 저 남자는 뭐야."

 "아, 저기 당신은 그냥 가게로 가있는게 좋을 것 같은데."

 

 라무엘을 보며 손님에게 들리지 않게 작게 말했다. 그러자 라무엘이 나를 향해 고개를 저어보이고는 손님에게로 시선을 뒀다.

 

 "난 신경쓰지 마시죠. 그냥 배달원과 계약관계라서. 당신들 일에는 일절 간섭안할겁니다."

 

 아니, 무슨 계약관계 주제에 내 일터까지 따라와. 누가보면 내가 사채라도 쓴 줄 알겠네. 어이가 없어서 팔꿈치로 라무엘의 옆구리를 퍽 쳤다. 그러나 라무엘은 눈도 깜빡 안하고 나를 보며 왜 그러냐고 물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서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손님이 조직원들이 있다는 장소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알겠다."

 

 뭘 알겠다는건데요. 네? 손님? 어버버거리는 나의 팔을 잡은 라무엘이 우락부락한 손님의 뒤를 따라갔다.

 

 제법 걸어서야 도시의 경계에 다다랐다. 낡은 철책들이 녹슬어서 붉은기가 도는 갈색을 띄고 있었다. 그 앞에는 손님의 인상과 별반 다르지 않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가자."

 

 손님의 묵직한 한마디에 주저앉아있던 사람들이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의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나와 라무엘이 그의 옆에 서서 같이 걸었다. 나무와 수풀로 가려진 철책 문을 열고 경계를 건넜다. 반대편으로 나오자마자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배달원들의 정보로 만들어진 D구역의 지도를 켜고 주변을 살폈다. 제발 별일 없어야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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