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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인생역정(人生歷程)
작가 : 에이바
작품등록일 : 2016.8.19

21세기에 들어서도 수구골통과 종북좌빨이라며 서로 발톱을 세우고 사는 것이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이념을 떠나서 서로를 인정하며 공존하는 사회, 인륜과 천륜으로 살 수 있는 세상 - 우리가 꿈꾸는 엘도라도이다.

 
1. 삶과 죽음의 간극 (1)
작성일 : 16-08-19 13:42     조회 : 1,047     추천 : 11     분량 : 5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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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죽음은 우리를 강하게 한다. 삶은 우리를 비굴하게 한다.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면 맞부딪치자.

 

 상후는 어제저녁 해머로 두들겨서 납작하게 만든 탄피를 귀국박스에 담았다.

 박스가 가득 찼다.

 뚜껑을 덮고 못을 박았다.

 마지막 못질을 하고 난 후 상후는 박스에 기대앉아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지난 일요일 외출에서 돌아온 오 상병이 귀국선물이라고 준 양담배 말보로다.

 화랑담배와는 맛이 천양지차다.

 담배를 깊숙이 빨아들였다. 향긋하다.

 담뱃갑 앞면에 있는 카우보이가 가죽채찍을 휘두르며 말을 달려올 것만 같다.

 뿜어낸 담배 연기 속에 귀국선을 타고 돌아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퀴년항에서 귀국선를 타고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를 거치면, 일주일 후에 부산항 제3부두에 도착한다.

 

 "김 병장님, 중대장님이 급히 찾으십니다."

 중대 작전계 이 상병의 말에 상후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일주일 후면 떠날 사람을 왜 찾으시나. 또 귀국박스 준비했는지 확인하려나.’

 상후는 어슬렁거리며 중대분부로 향하였다.

 

 삼 주 전, 귀국 특명자들을 면담할 때 상후는 중대장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이 전쟁터에서 살아서 돌아가는 것만도 천운이다.

 상후는 늘 이것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중대장도 이에 동감한다. 그런데도 중대장은 몇 마디를 덧붙였다.

 

 지금 우리나라는 물자가 턱없이 부족하다.

 미군들이 마시고 버린 맥주캔과 콜라병까지 수거해서 재활용한다.

 서민들은 궁핍한 생활에 찌들었다.

 남대문시장 한복판에는 아침마다 커다란 공드럼을 화덕 위에 올려놓고 죽을 끓인다.

 정오가 되면 죽을 팔기 시작한다.

 이 죽 한 그릇을 사 먹으려고 몰려든 사람들이 시장통을 벗어나서 남대문 앞 대로까지 줄지어 있다.

 사람들은 이 죽을 꿀꿀이죽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미8군에서 나온 음식물 쓰레기다.

 햄버거, 소시지, 베이컨 등, 미군들이 먹다 버린 음식물 쓰레기를 뒤섞어서 끓인다.

 이 쓰레기 죽 한 그릇을 먹으려고 우리 부모와 형제들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날마다 남대문시장에 장사진을 친다.

 이것이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지금 이 남베트남에는 지난 십 년 동안 미국이 쏟아부은 전쟁물자가 넘쳐 흐른다.

 대못 하나라도 가져가면 우리 땅에선 요긴하게 쓸 수 있다.

 이것이 귀국박스를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다음날 상후는 포탄박스를 잘라서 귀국박스를 만들었다.

 그날 이후 상후는 작전에서 돌아올 때마다 배낭에 한가득 탄피를 주어 왔다.

 탄피 그대로는 박스에 담기는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

 M50 탄피에 M60 탄피를 넣고 그 속에 다시 M16 탄피를 넣어서 세 개를 한 조로 만든다.

 그놈을 해머로 두들겨 납작하게 만들면 적지 않은 양을 박스에 담을 수 있다.

 탄피는 동과 아연을 7:3으로 배합한 황동이다.

 일본말 그대로 신주라고 부르며, 꽤 고가의 고철이다.

 귀국선이 도착하는 부산항이나 포항에는 탄피를 구입하는 고철업자들이 항시 진을 치고 있다. 이 때문에 탄피는 귀국하는 장병들이 선호하는 물건 중 하나다.

 

 귀국박스 안에는 파월 장병들의 생활이 그대로 담겨 있다.

 미군이 공급한 전투식량인 시레이션, 담요, 정글화, 지포라이터는 물론 미군 PX에서 구입한 양담배, 캔맥주, 캔콜라, 초콜릿 정도는 기본이다.

 일부 장교와 하사관들의 박스 속에는 선풍기, 전축, 텔레비전 세트, 냉장고 등 가전제품들도 들어 있다.

 사병들은 고가의 물건을 구입할 처지가 못 된다.

 그들은 탄피와 알루미늄캔을 줍거나, 버려진 전선을 주워 와서 밤새도록 피복을 벗겨서 박스 속에 넣는다.

 

 대부분 사병은 할당된 한 개의 귀국박스도 채우기 어렵지만, 일부 장교와 하사관들은 두 개 또는 세 개의 박스를 준비한다.

 이 때문에 귀국선에는 귀국하는 장병들의 수보다 귀국박스의 숫자가 더 많다.

 

 상후가 중대 본부에 도착했을 때, 연병장에는 이미 전 중대원이 집합해 있다.

 왠지 좋지 않은 낌새가 느껴진다.

 일조점호 시간을 제외하곤 전 중대 병력이 집합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잠시 후, 중대장이 지휘봉을 들고 연단에 올라섰다.

 

 "우리 아군은 지난 일주일 동안 안케 패스에서 북베트남군에게 연일 참패를 당하고 있다. 오늘 우리 중대는 안케 전투에 투입된다.

 10분 내로 전 중대원은 완전군장을 하고 연병장에 집합한다.

 귀국특명을 받았던 장병들은 30분 전에 특명이 취소됐다.

 모두 전투에 참여한다. 이것은 사단 사령부의 지시다. 실시!"

 조금 전까지 귀국선을 타고 가는 상상의 나래를 폈던 상후는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다. 일주일 후면 귀국할 시점에 가장 치열한 전투에 투입되다니.

 

 전 중대원이 트럭에 나눠 탄 후, 앞뒤로 장갑차의 엄호를 받으며 안케패스를 향하여 중대 분부를 출발하였다.

 아무도 말이 없다. 모두가 굳은 표정이다.

 앞차가 일으킨 건기 막바지의 황토 먼지가 태양 빛을 가렸다.

 바나나밭이 이어진다. 바나나 대들이 한 아름씩 맺힌 열매를 힘겹게 받치고 서 있다.

 바나나밭을 지나니 광활한 사탕수수밭이 펼쳐졌다.

 수확이 늦어진 탓에 삐죽이 머리를 내민 사탕수수 꽃대들이 갈대밭처럼 하얗게 출렁인다.

 평원을 지나고 안캐패스의 정상으로 올라가는 고갯길에 접어들었다.

 하늘을 찌를 듯한 대나무숲이 절반쯤 길을 덮었다.

 끊길 듯하면서 이어지는 북동풍에 대나무숲이 물결칠 때마다 한 뼘씩 되는 가시들이 찌를 듯이 달려들었다.

 

 해가 떨어지기 직전에 중대 병력은 안케패스를 지키고 있는 제1중대 연병장에 도착하였다.

 시레이션으로 저녁밥을 먹으면서 전 대대 병력이 재편성에 들어갔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손톱과 발톱을 깎아서 관등성명과 군번이 적힌 편지봉투에 담아서 제출하였다. 생사를 알 수 없는 전투에 투입된 장병들은 모두 참담한 심정이다.

 

 19번 국도는 20세기 초 프랑스 통치 시절에 건설되었다.

 동쪽의 퀴년항에서 시작한 19번 국도는 북위 14도를 따라 중부지방을 가로질러서 서쪽의 캄보디아 국경까지 이어진다.

 중동부의 비옥한 평원을 지나온 19번 국도는 안케에 이르러서 해발 300m에서 700m에 이르는 수많은 구릉과 까마득히 내려다뵈는 계곡을 이리 돌고 저리 굽이치는 험준한 산길로 변한다.

 미국에서 군수물자를 싣고 온 수송선은 퀴년항에 정박한다.

 날마다 100여 대의 트럭이 군수품을 싣고 19번 국도를 통과하여 중부고원지대의 남베트남 제2군단과 미군에게 공급한다.

 19번 국도는 이들의 유일한 보급로다.

 안케패스는 19번 국도가 통과하는 지역에서 가장 험난한 곳이다.

 이곳엔 수시로 베트콩이 출몰하여 보급로를 차단한다.

 19번 도로가 끊어지면 중부고원지대인 쁘레이꾸에 있는 남베트남 제2군단과 쁘레이꾸보다 북쪽에 위치한 콘톰에 있는 미군 캠프 할로웨이는 고립무원이 되고 만다.

 1970년에 미군이 안케에서 철수하면서 안케패스는 한국군 청룡부대의 작전지역이 되었다.

 

 상후가 속한 3소대에서 오늘 야간근무조는 1분대와 2분대다.

 상후는 분대원들과 함께 방공호 뒤편에 배낭을 베고 누웠다.

 구름 한 점 없이 새카만 밤하늘에 점점이 박힌 별들이 보석처럼 찬란하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어서 별을 세던 고향 하늘만큼이나 아름답다.

 쏟아질 듯한 별빛 사이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명료하게 빛을 내며 떠오른다.

 

 쉬잉- 꽝!

 시뻘건 불꼬리를 달고 날아온 적의 박격포탄이 참호 앞에 떨어졌다.

 야음을 틈탄 북베트남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모두 참호에 들어가 몸을 낮췄다.

 북베트남군의 85mm 박격포, 75mm 무반동총과 B-40 유탄발사기가 굉음을 내며 수없이 아군 진지를 향해 날아온다.

 아군의 105mm 포가 시뻘건 불길과 함께 북베트남군이 점령한 638고지를 향하여 날아간다.

 포탄이 터지는 사이사이에 따콩대는 적의 AK소총 소리가 귀가 따갑게 들여온다.

 적의 기습조가 이미 아군 참호의 턱밑에서 제3 방어선인 철조망을 끊고 참호를 향해서 기어오르고 있다.

 사격명령이 떨어지자 아군의 M60 무반동총이 불을 뿜기 시작하며 일제히 M16의 방아쇠를 당기고 수류탄을 던졌다.

 동녘이 뿌옇질 때 참호 아래까지 기어 올라오던 북베트남군의 기습조가 퇴각하였다.

 하지만 적 진지에서 날아오는 박격포탄은 쉴새 없이 중대본부를 강타한다.

 아군이 쏘아대는 105mm포와 박격포의 포탄도 끊임없이 시뻘건 불빛을 뿜으며 638고지로 날아간다.

 정오가 지나서야 포격이 멈췄다.

 적군의 포탄에 맞은 탄약고가 폭발할 때 세 명의 중대원이 사망했다.

 

 영현백에 시신을 수습하던 상후는 숨이 멈추는 듯하여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대학 후배 오 상병이다.

 일주일 전에 그는 월남 아가씨들이 입는 하얀 아오자이 원피스를 손수 짠 나무상자로 포장하여 상후의 귀국박스 속에 넣었다.

 곧 시집갈 누나에게 줄 선물이라며 해맑게 웃던 오 상병의 얼굴이 떠오른다.

 우리 조국은 자유 수호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스무 살 꽃다운 젊은이들을 이 베트남의 정글 속에 내동댕이쳤다.

 그것이 국가의 올바른 행태인가?

 조국은 이념의 악다구니 속에서 우리의 인권과 생명을 무참히 짓밟았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은 언제든지 같은 과오를 되풀이한다.

 동료들의 죽음을 슬퍼할 여유도 없다.

 사상자들을 수습하고 나자 곧바로 사단본부에서 진격명령이 떨어졌다.

 상후는 첨병조를 이끌고 중대 병력에 앞서서 638고지로 향했다.

 중대본부에서 638고지로 올라가는 산등성이는 적의 관측에 그대로 노출된다.

 상후는 은폐와 엄폐가 쉬운 산비탈을 택하였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가면서 적의 매복조를 확인해야 한다.

 가파른 비탈에서 미끄러지기 일쑤다. 한 시간에 30m를 나가기가 어렵다.

 땀이 비 오듯 한다. 분대원들의 수통은 이미 바닥이 났다.

 목이 타들어 가고 배가 고프다.

 아침에 적군이 퍼붓는 포탄 때문에 보급품을 실은 헬기가 중대본부에 접근하지 못하였다. 헬기는 보급품을 19번 국도에서 가까운 계곡에 뿌려놓고 떠났다.

 모두가 아침을 걸렀다. 정오가 한참 지난 후에 세 명이 일 인분 시레이션 하나씩을 나눠 먹은 것이 전부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낙오하는 분대원들이 늘어났다.

 638고지를 100m쯤 남겨놓은 지점에 이르러 상후는 잠시 분대원들을 쉬게 하였다.

 먹구름이 점차 늘어나는 하늘이 곧 소나기를 쏟아부을 듯하다.

 모두가 관목 사이로 빼꼼히 올려다뵈는 하늘을 바라보며 비가 쏟아지길 간절히 빌었다. 배고픈 것은 견딜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심해지는 갈증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수통에 오줌을 받아서 마셨다.

 갈증이 더욱 심해진다.

 휴식을 끝내고 일어서는 순간, AK소총 소리가 요란하게 나면서 불과 10m 앞의 덤불 속에 매복했던 북베트남군들이 튀어나왔다.

 "적군이다. 쏴라!"

 사격명령과 동시에 거총 자세를 취하던 상후는 중심을 잃고 계곡으로 굴러떨어졌다.

 

 인생역정 1. 삶과 죽음의 간극 (1). ©에이바(ABA)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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