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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49일,
작가 : 에스뗄
작품등록일 : 2017.7.20

평탄한 성공 가도를 걷다 한 순간에 실패자로 전락한 승완. 삶을 포기한 그녀 앞에 홀연히 나타나 자신을 악마라 칭하는 남자. 그런데 이 남자, 망자를 앞에 두고 엉뚱한 말만 한다. "새 인생은 즐겨. 날 유혹하는 건 대환영이고." 49일간 같은 이름의 전혀 다른 인물이 된 그녀. 게다가 전생의 인물들까지 엮여버린 상황에서 승완은 자신과 관련된 무서운 비밀을 발견하는데... (autor_ester@naver.com)

 
002. 벙어리가 되면 살짝 아쉬울 뻔했어
작성일 : 17-07-20 15:17     조회 : 235     추천 : 1     분량 : 6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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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 - 48)

 

  김 첨지에게 운수 좋은 날이 하루라도 있었다면, 승완의 인생에는 그저 운수 나쁜 나날밖에 없었다.

  더 자세히 표현하자면 그녀의 삶은 무미건조한, 겨울의 회색을 닮은 무채색이었다.

 

 -여보세요.

 "... 아버지."

 -그래.

 

  '아버지'란 단 세 글자를 내뱉기 위해 승완은 가슴 아래에서부터 숨을 끌어올려야 했다.

  실낱같이 가느다란 목소리, 자신감 없는 호흡. 언제, 무엇 때문에 질책이 날아들지 몰랐다.

 

 "잘 지내셨어요?"

 -어떻게 됐냐?

 

  입술을 몇 번이나 달싹인 뒤에야 겨우 말을 꺼낸 승완은 금세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과장 승진했어, 안 했어?

 

  전화기 너머의 상대는 안부 따위는 생략한 채, 그녀에게 결론을 물었다. 이게 그녀의 아버지였다.

  호흡이 가빠지는 걸 느낀 승완이 귀에 갖다 댄 핸드폰이 생명줄이라도 되는 양 꽉 움켜쥐었다.

  낮게 채근하는 목소리는 그녀의 심장을 한 손에 움켜쥐고 옥죄었다.

 

 "그게, 이번에는 안 됐어요."

 -......

 "사실, 대리 된 지 얼마 되지도 않..."

 -됐다. 바쁘니 이만 끊어라.

 

  툭, 하는 전자음과 함께 귓가에 닿은 기계가 차갑게 식었다. 천 근같이 묵직한 목소리가 그녀의 뺨을 휘갈긴 뒤였다.

  승완은 좁은 화장실 칸에 머리를 기대고 주르르 내려앉았다. 손톱만 한 구두굽이 흰 바닥을 긁으며 떨었다.

  아버지와의 통화를 마쳤다는 안도감과 또다시 질책을 받았다는 좌절감이 동시에 그녀를 덮쳤다.

  물론, 크기와 강도는 후자가 더 컸다.

 

 "사무실로 돌아가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대상과 10초 이상 말을 섞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동료들이 한창 일하고 있을 시각,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 숨어 전화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 띄었다면 그녀가 얼마나 꼴사나웠을지, 또 그는 어떤 눈을 하고 그녀를 바라볼지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그때, 벨소리는 꿈도 못 꾸는 핸드폰이 승완의 손에서 드르르 발작을 일으켰다.

 

 "네, 어머니."

 

  승완은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아버지와 따로 사는 어머니는 당연히 딸의 진급 여부를 모르니, 궁금함을 참지 못해 득달같이 전화를 넣었으리라.

 

 -얘, 과장 진급은 어떻게 됐니?

 "어머니도 아시잖아요. 저 대리 단 지 2년밖에 안 됐어요."

 -그래도 이번에 됐으면 너희 회사 최연소 과장이었잖아. 아유, 아쉬워라.

 

  이마를 짚은 손바닥이 뜨뜻하게 익어갔다.

  대체 무엇이 아쉽고, 또 누가 아쉬운 것인지 승완은 알 수 없었다.

  맹세코 그녀 자신은 아니었다.

 

 "어머니, 저는..."

 -됐고. 느이 아버지한테는 말씀드렸니?

 "네."

 

  승완의 부모는 현재 별거 중이다.

  그래서 그녀는 좋지도 않은 소식을 두 번씩 전하는 수고를 해야 했다. 몸을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면서.

  그건 승완의 심장에 몹쓸 처사였다. 물론, 그녀의 심장은 유전적으로 매우 튼튼하다.

 

 -그보다 요즘 정 서방 연락이 잘 안 된다?

 

  승완의 심장이 쿵, 하고 묵직한 소리를 내며 추락했다.

  복싱 선수에게 제대로 얻어맞기라도 한 듯 관자놀이 부근이 뻐근했다.

 

 -상견례도 했는데, 얼른 날 잡으려면 예식장부터 알아봐야지.

 

  어머니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흘러나오자 승완의 눈앞에 작은 스크린 하나가 내려왔다.

  틈 없이 엉켜 든 살색 덩어리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눈을 감아도 또렷한 상을 그렸다.

 

 "... 얘기해볼게요."

 

  승완은 수면 아래 깊이 잠긴 목소리를 힘겹게 끌어올렸다.

  어머니는 별말 않고 전화를 끊었다. 천만다행이었다. 그녀는 어머니보다 먼저 전화를 끊을 용기가 없으니.

 

 '미치겠다.'

 

  덜덜 떠는 그녀의 손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렸다.

  전날 밤, 승완은 결혼을 약속한 남자의 불륜을 목격했다.

  밤이 다 가도록 승완은 눈을 감지 못했고, 그는 찾아오지 않았다.

 

 "백승완 얘기 들었어?"

 

  자신의 이름이 칸 너머에서 들려오자 승완은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회상에 잠긴 사이, 여직원들이 화장실에 들어온 모양이다.

  승완의 회사는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대기업으로, 직원 수도 많고 남녀 성비가 비슷했다.

  해서, 얼른 아버지께 전화만 드리고 나오려 했더니 어머니의 전화가 그녀의 발목을 잡아버렸다.

 

 "어어. 과장 승진 떨어졌다며?"

 "쥐뿔도 없는 게 부장 빽 믿고 설치더니 잘됐다."

 "내 말이! 완전 고소미."

 

  자신을 향한 신랄한 비난에 승완이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그림자의 끄트머리라도 칸막이 밖으로 내보내서는 안 됐다.

 

 "오늘도 어떻게 시간 때우나 했는데, 이게 웬 사이다야?"

 "나도나도. 대박 꿀잼!"

 

  승완은 목소리의 주인들을 알고 있다.

  그녀와 같은 팀원들로, 대화는 몇 번 나눠보지 않았지만 자신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이유도 알았다. 이미 학창시절부터 지치지 않고 그녀를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걔 선배들 앞에서도 고개 빳빳이 세우는 거 봤지?"

 "진급 좀 빠르다고 유세 떠는 거야, 뭐야?"

 

  몸을 바르게 세우는 건,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엄한 사람이었다. 걸으면서 발소리를 내도,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도, 심지어 젓가락 위의 밥알이 몇 알 이하여도 혼났다.

  집에서 샌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대로 아버지의 교육은 집 밖에서도 통했다.

  사람들에게 승완은 목이 뻣뻣하고 남들을 눈 아래 둬서 말도 섞지 않는, 오만한 여자였다.

  처음에는 해명하려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제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그들을 보며 입술을 달싹일 때마다 가슴이 뻐근해지며 숨통이 조여왔다.

  그녀는 소심하고 나약한 여자였다.

 

 "수빈 씨는 어때?"

 "네?"

 "수빈 씨도 백승완 대리 별로 안 좋아하잖아."

 

  어젯밤 그의 품에 딱 달라 붙어있던 여자의 얼굴이 번쩍 떠올랐다.

  작은 문틈으로, 맞은편 거울에 비친 그 여자의 모습이 잔뜩 웅크린 승완의 망막에 박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승완의 남자를 은밀히 탐하던 여자는 지금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드러내는 하얀 블라우스와 H라인 스커트를 걸치고, 고급 브랜드의 마스카라로 눈화장을 고치는 중이었다.

 

 "글쎄요. 좀 안 되긴 했네요."

 "어우, 수빈 씨. 사람이 왜 이렇게 물러터졌어?"

 "그러게. 너무 착하면 호구 돼요."

 

  동료를 향해 살며시 미소 지어준 수빈의 입술 한쪽이 매끄럽게 위로 향했다. 화장을 고치느라 내리깐 눈은 마치 제 발아래의 승완을 향한 듯했다.

  승완은 두 팔로 무릎을 고쳐 안았다. 오한이 든 것처럼 몸이 벌벌 떨렸다. 좁은 화장실 칸에 숨어 제 뒷말을 듣는 처지가 한심했다.

  하지만 그녀는 당장 문을 박차고 나가 제 욕을 한 사람들에게 한 마디 던지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수빈 씨, 그 마스카라 어디서 샀어요? 컬링 죽인다!"

 "이거요? 남자친구가 해외여행 갔다가 선물해줬어요."

 "어머, 좋겠다. 이 브랜드 우리나라에 없는 거잖아. 완전 비쌀 텐데!"

 

  그는 승완에게 선물 하나 던져준 적이 없었다. 선물하는 건 언제나 그녀의 몫이었다.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사라지고도 한참 동안 승완은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있었다.

  별안간 찌를 듯한 통증이 그녀를 덮쳤다. 그녀는 납작한 배를 움켜쥐었다.

 

 '자궁내막증입니다.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불임의 위험이 있어요.'

 

  두 달 전이었다.

  상견례를 마치고, 예비부부 검진을 위해 그와 손을 잡고 산부인과를 방문한 승완은 뜻밖의 선고를 받았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열렬하진 않지만 나쁘지도 않았던 그와의 관계가 차갑게 식은 것은.

 

 "그런 거였어."

 

  그는 더는 승완이 필요하지 않다. 그나마 결혼이란 제도로 유지하려던 관계도 아내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며 끝난 것이다.

  그건 그녀의 부모도 마찬가지다.

  학창시절에는 화려한 성적을 자랑하고, 유명 대학 입학과 졸업을 수석으로 해내고, 대기업에서도 이례적으로 빠른 승진을 함으로써 딸의 역할을 해왔던 그녀다.

  즉, 승진에서 미끄러짐과 동시에 딸로서의 가치마저 절하된 것이다.

  게다가 결혼마저 파국에 이르렀으니 부모의 얼굴에 먹칠은 제대로 한 셈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몸뚱이."

 

  승완은 덜덜 떠는 손으로 파우치 안에서 눈썹칼을 꺼냈다.

  날카로운 눈썹칼은 그 어떤 칼보다 휴대하기 편해 그녀가 애용하는 도구였다.

  승완이 거침없이 왼팔 소매를 걷어 올렸다. 사라지고 새로 생기기를 반복하는 흔적들이 그녀를 맞았다.

  그때, 바람이 등 뒤로 스치며 이내 그녀의 몸을 감싸 안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그녀를 지켜주듯이.

 

 "지키기는 무슨."

 

  승완은 비릿한 조소를 흘렸다.

  이 세상에 그녀를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승완은 체면 때문에 이혼 대신 별거를 택한 제 부모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대학교수답게 명예가 중요한 사람이었다. 문제는 제 명예를 위해서는 가족도 도구가 된다는 점이었다.

  승완의 인생을 마구 휘둘렀고, 자신의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그녀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그래서 따돌림 문제를 부모와 상의하지 못한 건 물론이고, 남들은 다 해본다는 휴학, 해외여행 한 번 못 해본 승완이었다.

 

 "어머니도 크게 다르진 않지."

 

  평생 손에 물 한 방울 대보지 않은 어머니는 매주 갖는 고상한 티타임의 멤버 중에서도 자신이 가장 눈에 띄길 원했다.

  그녀를 돋보이게 할 제물은 단연 승완이었다. 최근에는 번듯한 집안으로 시집가는 커리어우먼 딸을 가진 여자 노릇에 재미 들려 있었다.

 

 "주완이는..."

 

  남동생은 딱히 말할 것도 없다.

  사춘기 이후로는 이렇다 할 대화도 나눠본 적 없으니까.

 

 "이번에는 진짜야. 정말 다 털어버리는 거야."

 

  승완은 이 일에 익숙하다. 일종의 습관이었다.

  성적이 떨어질 때마다, 아버지의 차가운 눈빛과 사람들의 비난이 자신을 향할 때마다 그녀는 숨어서 손목에 가는 선을 그렸다.

  그저 약간의 고통만 참으면 된다. 오늘은 전보다 딱 1g만큼만 더 힘을 주었다.

  체온을 머금은 물방울이 밖으로 나가며 순식간에 추위가 몰려올 것이고, 머릿속을 강타하는 심장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금세 눈앞이 핑그르르 돌며 나른함이 몸을 휘감는다.

 

 "응?"

 

  승완은 생각보다 빨리 눈을 떴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진한 꽃빛의 작은 웅덩이를 딛고 선 승완은 여전히 바닥에 누운 자신을 발견했다.

 

 "이건, 나?"

 

  정말 죽었구나.

  빠른 속도로 온기가 빠져나가고 있는 제 몸을 본 감상은 간결했다.

  오히려 완전무결한 백지를 가로지르는 선혈이 원형으로 가지를 뻗어가는 모양에 더 눈이 갔다.

  고요한 아름다움이었다.

 

 "맞아. 너야."

 

  그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목소리에 승완이 화들짝 놀라 뒤돌아봤다.

 

 "안녕? 또 만나네."

 

  허리선을 드러내는 매끈한 검정 와이셔츠와 발목을 살짝 덮는 검정 슬랙스가 참 잘 어울리는 남자가 싱긋, 웃었다.

  어젯밤 승완에게서 꽃으로 도시락을 사 간 신비한 남자였다. 그는 무려 공중에 떠 있었다.

 

 "뭘 그렇게 놀라? 악마 처음 봐?"

 

  당연히 처음 보지.

  승완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집어삼켰다. 죽어서도 습관이 이렇게 무섭다.

  한쪽 눈을 가린, 보랏빛이 감도는 앞머리가 인상적인 그는 악마라기보다는 스타일 좋은 모델에 가까웠다.

 

 "생명은 귀한 거야, 이 아가씨야."

 "... 악마인 댁이 할 말은 아닌 듯한데요."

 "오, 말을 하네. 충격으로 실어증이라도 걸린 줄 알았잖아."

 

  용기를 그러모아 한마디 하자, 그가 손가락을 퉁겼다.

  흥미로 한껏 커진 그의 눈에서 보라색 광선이 번쩍였다.

 

 "아가씨 얼굴이랑 몸매가 딱 내 취향이라 벙어리가 되면 살짝 아쉬울 뻔했어. 물론, 침대에서."

 

  승완은 그의 미의 기준에 심심한 유감을 표했다. 그저 하얗고 빼빼 마른 자신은 어디에 내놓아도 미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요리실력에 목소리도 내 타입이라니까.' 라고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당장 데리고 가서 여자친구 삼고 싶긴 한데..."

 "......"

 "안타깝게도 네 명이 아직 남아 있단 말이지."

 

  그녀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는 의미다.

 

 "난 필요 없어요. 원치도 않는 수명은 필요한 사람에게 갖다 주세요."

 "나도 그러고 싶다니까. 내가 보쌈해 가게."

 "......"

 "그런데 저 윗분이 워낙 융통성이 없으셔서 나도 어쩔 수 없어요."

 

  그가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했다. 누굴 가리키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만했다.

  그의 표정에는 진심으로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으나, 한편으로는 방글방글 미소가 가득했다.

  그 역설적인 표정에 승완은 의아했지만 입을 다물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습관은 어디 가지 않는다.

 

 "다만, 네 몸은 이미 영혼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으니..."

 "......"

 "내 재량으로 선택의 기회를 줄게."

 

  선택의 기회라는 말과 함께 그의 손끝에서 작은 보라색 불꽃이 피어올랐다.

  이윽고 불꽃은 그의 손을 떠나 동그란 공처럼 모양을 바꾸더니 승완의 얼굴 주변을 맴돌았다.

 

 "사람이 죽으면 가족이 49일 동안 기도를 드려준다지? 다음 생에 좋은 곳에서 사람으로 태어나도록 말이야."

 

  승완은 과연 저를 위해 기도드려 줄 이가 한 사람은 있을까, 의심했다.

 

 "그 49일간 잘 생각해봐. 정말 이 세상에 미련이 없는지."

 "난 미련 따위 없다니까요."

 

  승완의 단호한 대답에 자신을 악마라 칭한 남자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가 허공을 떠도는 보라색 물방울인지, 불방울인지를 제 손에 쥐었다.

 

 "물론, 지금은 그럴 수 있지."

 

  악마가 승완의 왼손을 잡아 올렸다. 그녀의 손목은 크고 작은 선들로 가득했다.

  그가 보랏빛 물체를 그녀의 손목에 내려놓자 손톱만 한 그것이 손목 안으로 녹아 들어갔다.

  처음에는 푸딩처럼 말캉한 느낌이 들더니 이내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몸 안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어. 그러면 마음이 싹 달라지지. 간사하게도 말이야."

 "......"

 "그러니 49일 동안 하고 싶은 건 뭐든 해봐. 단, 이런 짓은 금지야."

 

  승완은 제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손목에 가득했던 상처가 사라지고 티 없이 말끔해졌기 때문이다.

  커다래진 승완의 눈을 보며 빙긋 웃은 그가 허리를 숙여 보랏빛 물체가 사라진 자리로 얼굴을 내렸다.

  촉, 하고 스치듯 그의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잘 생각해봐."

 

  여전히 허리를 굽힌 채, 고개만 들어 그녀를 향해 웃어 보이는 그의 목에는 고고한 백조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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