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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소희유희
작가 : 미루하
작품등록일 : 2017.6.24

완벽쟁이 까탈스러운 상사/덜렁거리는 평범한 여직원 부하/
둘이 함께 이계 이동하는 로맨스판타지.

 
그 여자의 거래
작성일 : 17-07-20 11:20     조회 : 285     추천 : 0     분량 : 5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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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희는 다 읽고 두루마리를 덮었다. 낡은 두루마리가 바스락거렸다. 글의 무게가 무겁게 어깨를 짓눌렀다.

 

 오랜만에 본 고향의 글은 눈물나게 반가웠다. 방금 새로이 얻은 지식은 도움이 되었지만 동시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침드라마를 보면서 순이가 철수와 연애를 할 것인지 아닌지가 궁금한데 엉뚱하게 순이의 못된 직장 상사만 보여주는 격이 아닌가?

 

 아니, 그건 좋은 예가 아니다. 좋은 대학 가고 싶어요 하는데 수능 잘 봐! 라고 말하면서 교육방송이 필요하다고 하는 격이다. 그것도 텔레비전 없는 사람한테. 퀘스트는 있는데 키 아이템이 없다. 소희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걸 어쩔까 하고 앞을 바라보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낯익은 여자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기척 없이 들어와 있는 점이 기분나빴다.

 

 일주일에 두어번 와서 책을 읽어주던 여인, 지금은 누구인지 안다. 백작 부인이다. 소희는 불쾌감을 굳이 숨기지 않고 그녀를 지그시 응시했다.

 

 분명히 시녀에게 부탁한 것은 이 책이 아니었다. 자신은 분명히 <제국>에 대한 책을 요청했다. 이 책은 <왕국>에 대한 책이다. 이 여자가 이 책을 가져다준 건가? 도움이 되었으나 기분이 좋지 않았다. 손바닥 위에서 농락당하는 기분이다. 백작 부인이 입고 있는 옷조차도 불쾌했다. 다시 보면 시녀가 입은 옷보다 광택이 나고 장식이 많다. 귀에 걸고 있는 고리와 팔에 건 팔찌들도 거슬렸다.

 

 백작 부인은 소희가 노려보는 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

 “신의 사도께서는….

 

 저 여자가 손에 얹어 보여주던 머리카락 색깔이 아직도 선명하다. 말라붙은 붉은 핏자국은 피 한두 방울 정도가 아니었다. 그는 크게 다친 것이 분명하다. 이 여자는 그 사실을 이용해서 자신을 움직이려고 한다. 왕도, 이 여자도 똑같다. 아무도 믿을 사람은 없다.

 

 “나 신의 사도 아닌데.”

 

 소희는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창밖을 응시하며 말만 툭 던졌다. 퉁명스럽게 제일 천한 자를 대하는 듯, 네게 내 시선이 가는 것도 영광이라는 듯 거만하게 군다. 사실 백작 부인쯤 되면 소희도 예를 갖추어야 한다. 서로에게 맞는 예절을 주고받으며 평가하는 것이다. 목걸이가 알려주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백작 부인은 깊숙이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이제는 소희도 저것이 아무에게나 하는 예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왕비 후보자이자 공작의 양녀에게 하는 행동이 아니다. 신께서 보내신 유일한 분, 심장으로 모셔야 할 위대한 달에게 하는 태도다.

 

 원래 백작 부인은 지금 소희에게 부채를 펼쳐야 했다. 지금 가정 교사 역할로 와 있는 귀족가의 부인에게 이렇게 거만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사과하라고 타일러야 했다.

 

 “금일 밤 달이 제일 높은 시간 분수대 앞으로….”

 

 그분께서 부르십니다, 마지막 말을 속삭인다.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서 백작 부인은 물러났다. 짤랑거리는 팔찌가 서로 부딪혀 우아한 종처럼 울렸다.

 

 미리 지시해 두었던지 백작 부인이 나가자마자 바로 다른 시녀가 들어왔다. 양손에 가득 든 두루마리는 아까 것보다 훨씬 새것이었다. 시녀가 붉은 술이 달린 양피지 두루마리를 하나씩 하나씩 펼쳐 보이는데 집중할 수 없었다.

 

 소희는 손을 흔들어 보여 물리쳤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곧 공작의 시녀장이 들어왔다. 소희는 시녀장의 파란 드레스를 보자마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말이 통하니까 이게 나빴다. 전에는 적당히 좋게 좋게 해석해 주었던 것 같은데 이제 싫다고 말하니까 싫으면 안되는 이유를 설명하며 거부한다. 열 명이 넘는 과외 교사가 매달려 소희를 교육했다. 너희들은 열 명이니까 번갈아가서 쉬면 되지만 난 한 명이라고! 소희는 짜증스레 혀를 찼다.

 

 “지금 왕국의 역사에 대한 수업을 하실 시간입니다. 공작가의 영애답게 준비를 갖추시지요.”

 

 허리를 꼿꼿이 세운 시녀장은 미소를 칼처럼 휘두르며 소희를 재촉했다. 귀족가의 ‘부인다운 준비’라는 건 수없이 많은 천을 둘둘 감고 뭔가를 또 걸치는 걸 뜻한다. 소희는 이를 갈았다. 청바지 한 장과 티셔츠 하나만 입고 뛰쳐 나가고 싶다. 지금 입고 있는 사리와 비슷한 천쪼가리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은데 이 사람들은 아니라고 한다. 아니, 발목과 손목까지 전부 다 가렸는데 도대체 얼마나 더 껴입어야 하는 거야?

 

 “간략한 옷으로.”

 “안 됩니다.”

 

 그런 옷은 왕비가 되실 분의 품위를 해칩니다. 줄줄이 늘어놓는 그 말에 한기가 서려 있어서 소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뭘 입든 누가 뭐라고 떠들고 다니지 않는 이상 상관없잖아?”

 

 가정교사의 입을 다물게 하면 되지 않나. 내가 뭘 입고 누구랑 뭘 하는지 이야기하고 다닐 정도로 입이 가벼운 사람밖에 없나?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었는데 시녀장은 정색을 했다.

 

 “소희님!”

 

 뭔가 화를 내는 것 같다. 소희는 움찔했다.

 

 “소희님은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입으셔도 좋지만 채찍을 맞는 것은 저 아이들입니다.”

 

 시녀장은 부자연스럽게 눈을 깜빡이며 말을 이었다.

 

 “얼마전에 왕궁에 함께 갔던 아이들은 소희님을 믿고 따르며 충성을 맹세한 이들이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왕궁에서 벌어진 불행한 사고로 생명을 잃고 다시 돌아오지 못했지요.”

 

 시녀장이 한 말에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소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설마, 그런 이유로? 소희가 칼을 들고 날뛴 것을 보고 왕이 관대하게 용서한 게 아니었나? 공작 아버지의 말은 분명 그런 뜻이었다.

 

 아니, 자신이 멋대로 그렇게 이해한 것 뿐이었다. 왕은 그 일을 덮겠다고 했다. 공작은 더이상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했다. 사실은… 전부 죽어버린 것이다. 지하 통로를 나온 후에 안내하던 시녀나 맞이하던 기사들이 낯선 사람으로 바뀌어 있다고 눈치채긴 했다. 하지만 그 사실에 뭔가 다른 의미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시녀장이 눈가를 찌푸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니다. 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것일까. 시녀장이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소희는 입을 벌리고 시녀장을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훈련시킨 믿을만한 아이들이었습니다.”

 

 한 마디 덧붙이고 시녀장은 입을 다물었다. 소희는 머리에서 진주와 산호로 장식된 핀을 벗었다. 그것을 시녀장의 손에 쥐어 주었다. 시녀장은 눈을 크게 뜨며 소희를 평가하듯 훑어보았다.

 

 “저…미안해. 그런 줄은 몰랐어.”

 

 사람을 십수명이나 죽여놓고 그런 줄 몰랐다고 하다니, 정말로 나쁜 년이다. 소희는 제 얼굴도 감정에 일그러져 있으리라 생각했다. 진주 핀을 받아쥔 시녀장이 무어라 말하려는데 소희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 시녀들, 가족은? 여기는 업무상 재해 보험 같은 게 없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없는 개념은 번역되지도 않는 모양이다. 목걸이에 업그레이드 패치가 필요하다! 시녀장은 소희가 횡설수설 늘어놓는 말을 칼같이 잘랐다.

 

 “이 핀은 마음에 드시지 않는다면 치우겠습니다.”

 “아냐, 그게.”

 

 왕궁에 자기 따라왔다가 갑자기 입막음조로 죽어버린 시녀들의 인생은. 가족은. 삶은. 도대체 어떻게 배상해야 할지 모르겠다. 소희는 갑자기 패물함으로 달려가서 패물을 한껏 쓸어왔다. 산호 비녀와 알알이 엮어진 진주 베일, 이름모를 검은색 펜던트와 자개로 된 팔찌. 금색과 은색으로 알록달록하게 엮어진 머리 장식과 굵고 붉은 보석반지. 공작이나 왕에게 받은 것들이다. 너무 크고 무겁고 반짝거려 오히려 큐빅같이 느껴지는 장신구들을 양손에 가득 담아 내밀었다.

 

 “이거, 그 시녀들, 가족에게라도….”

 “그들이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이런 귀물을 얻어봤자 절도범으로 오해받아 죽거나 감옥에 갈 뿐이에요.”

 

 시녀장은 차갑게 말했다.

 

 “그들에게 정녕 진심으로 미안하시다면 훌륭한 왕비가 되어 주세요. 공작가의 영민들을 돕는 길입니다.”

 

 하지만 눈길은 조금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마치 학생 주임 선생님에게 야단맞았다가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왕비….”

 “공작가의 딸이 왕비가 되는 겁니다. 모두 자랑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틀에 갇힌 것 같이 숨이 답답했다. 소희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분수대가 예쁘다고 들었는데 가볼 수는 없어?”

 

 갑자기 딴 소리를 하는 여주인에게 시녀장이 대답해주었다.

 

 “왕국의 역사를 배우시고 난 후 들르실 수 있게 일러 두겠습니다.”

 “알겠어.”

 

 고맙다고 말하려다가 하지 않았다. 사용인에게 고맙다는 의사 표현은 하지 않게 되어 있다. 소희는 이곳의 예절을 하나하나 익혀 나가고 있었다. 방금 자신이 보석같은 걸 주려고 했던 행동은 정말로 파격이다. 소희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아직 늦은 오후다. 한밤중이라면 시간은 있다.

 

 “현명하게 행동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소희님.”

 

 혹시 백작 부인과 한 이야기를 들었나. 소희는 제발이 저려 고개를 숙였다. 이 일을 보상하기 위해 어떻게든 해야겠다. 이따가 공작 아버지가 오면 얘기를 꺼내봐야겠다고 그녀는 굳게 결심했다.

 

 . . .

 

 소희가 저 때문에 죽은 시녀와 기사의 가족들에게 배상해 주길 바란다던 말을 전해들은 왕은 코웃음을 쳤다. 벌집에 역청을 부어놓고 꿀을 뿌려보았자 이미 죽은 벌은 돌아오지 않는다. 애초에 그런 경솔한 짓을 저질러 놓아 수습하기 위해 발로 뛴 쪽은 이쪽이다. 감사를 하려면 여기에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자기 사람은 지독하게 아끼는군.”

 

 제가 그 ‘자기 사람’에 들어가게 된다면 어떨까. 문득 계산기를 두드려 보는 세르게이였다. 그는 항상 누군가를 지키기에 바빴지 그 반대의 일은 해본 적이 없었다. 마왕에게 잡혀간 공주처럼 구해지고 싶은 건 아니지만 이런 발상은 신선했다.

 

 공작은 웃으며 말했다.

 

 “법적으로 제도를 만들어 보상해야 한다고까지 하더군요.”

 “그래서 그대로 배상을 했는가?”

 “아니오,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할 수 없다. 죽어나간 시녀나 기사의 집에 일일이 배상금을 전달한다면 귀족이 뒤가 켕기는 짓을 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가족들은 일 년이나 이 년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자연스럽게 병사했다고 연락을 받을 것이다. 본래 지역이 멀어 자주 가지 못하는 이들이 많기에 일을 덮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귀족가의 자녀들도 섞인 기사들이다.

 장기 임무를 떠났다고 알려두었다. 이들도 나중에 임무 중 죽었다고 소식을 받게 될 것이다. 다행히 권세가의 자녀는 없었다.

 

 신의 사도이며 세르게이에게 신의 축복이 내렸음을 증거해 줄 왕비가 직접 칼을 들고 제 목에 가져다대는 것이 알려진다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왕비의 신성이 훼손되는 것은 물론이고 정말 신의 사도가 맞는지 의문이 피어날 것이다. 가짜 왕비라고 데려와 거짓 흉내를 냈다고 소문이라도 난다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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