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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패왕의 별
작가 : 강호풍
작품등록일 : 2016.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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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시대를 만드는가?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가?

전설로 내려오던 패왕의 별이 떴다.
사상 처음으로 구주팔황의 무림을 일통할 패왕(覇王)이 탄생하리라!

소년이 하늘을 가리키자 노인이 물었다.
“허허허. 네 꿈은 하늘이 되고 싶은 것이냐?”
“아니, 하늘을 부술 것입니다.”
그가 무림에 출도하고 펼치는 파격적이고 광오한 행보!
내 앞을 막는 것이 있다면 태산이라도 베리라!

스스로 패왕의 별이 되기를 꿈꾸는 무인들의 야망과 사랑.

“살다 살다 저런 자는 내 평생 처음일세. 대체 그는 누구냐?”
“쟁자수(爭子手:짐꾼)인데요.”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표국의 말단에서 일하는 가난한 청년.
그가 우연히 무림에 얽히면서 천하는 다시 요동친다.

거짓과 위선, 음모와 배신이 판치는 무림을 향한
사나이들의 통쾌하고 거친 반격.

결코 후회하지 않을 무협소설의 새로운 이정표.

강호풍 작가가 10년의 고심 끝에 부활시킨,
강호전쟁사의 위대한 영웅들의 새로운 발자취!

충분히 기대하고 마음껏 느껴라!
거친 사내들의 뜨거운 숨결과 그들이 꿈꿨던 세상을!"

 
제 17 화
작성일 : 16-08-18 14:52     조회 : 335     추천 : 0     분량 : 8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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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장-2

 

 

 

 

 천류영과 독고설 사이에 냉랭한 분위기가 연출되자 능운비가 끼어들었다.

 “오조장, 네 심정은 이해된다. 그러나 괜히 이 사람에게 네 초조함을 화로 풀지 마라. 이건 나뿐만 아니라 무적검 한 대협, 그리고 너희 부친께서도 좋은 계책이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인 거다.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은인에게 이 무슨 추태인가?”

 “단주님.”

 “믿고 따라라. 은인의 말대로 진행되고 있고, 더 확실해지면 말해 줄 것이니. 전황이 다르게 돌아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기하고 있으나 지금까지는 모두 순조롭다.”

 독고설이 한차례 신형을 바르르 떨었다.

 대체 천류영은 이곳으로 오면서 세 명의 수장들에게 무슨 말을 건넨 것일까?

 어쨌든 상관인 현무단주의 말인지라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물러섰다.

 그러자 조전후가 나섰다.

 “단주님, 그 계책을 이젠 얘기해 주시죠? 지금까지야 우리에게까지 말해 줄 시간이 없었다지만 이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더더군다나 예상대로 진행되고 있다면 말입니다.”

 그의 말에 능운비는 쓴웃음을 삼켰다.

 야차검 조전후.

 기실 그는 오조의 부조장이나 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다. 자신과 견주어도 떨어지지 않는 실력자.

 독고설의 호위란 임무가 없었다면 최소한 현무단 전체의 부단주가 되었어야 할 인물이었다.

 그때 천류영이 특유의 중저음으로 말했다.

 “만약 처음부터 우리가 모두 공격해 들어갔다면 많은 사상자를 피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포위를 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 양쪽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독고설과 조전후 그리고 대기하고 있는 무사들의 시선이 다시 천류영에게 향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사람의 심리란 복잡하면서도 급박한 처지가 되면 의외로 단순해집니다. 만약 남은 인원이 모두 한 대협과 함께 내려갔다면 적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

 “심각한 위기 의식을 느낄 겁니다. 쥐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 그들은 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 낼 겁니다. 즉, 그들은 상당한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독고세가를 돌파하려고 할 겁니다.”

 그 말에 독고설과 조전후가 침을 꼴깍 삼켰다. 죽기를 각오한 흑의인들이 모조리 독고세가로 달려든다면?

 독고세가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것이 자명했다.

 “물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현무단을 독고세가에 합류시키고, 곤륜도 전원으로 양쪽에서 공격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마찬가지로 큰 피해를 피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한쪽 방향을 뚫기 위해 날뛰게 될 뿐이지요. 역시 큰 피해를 피할 수 없어요.”

 “…….”

 “그렇게 한 번의 충격은 상대에게 독기를 품게 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나누면 사람의 심리는 달라집니다. 최초엔 힘겹겠지만 해볼 만하다는, 감당할 수 있는 충격을 줍니다. 그리고 잠시 후, 두 번째 충격이 잇달아 닥치면 사람은…… 그러니까 적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더 나아가 세 번째 충격까지 온다면?”

 “…….”

 “참았던, 꾹꾹 눌러 담았던 두려움이 수면으로 분출되면서 공황이 찾아옵니다. 결국 상당수가 포기를 하게 될 겁니다. 반대편 산으로 도망가는 자들이 나오겠지요. 왜냐하면 살아서 빠져나갈 수만 있으면 사천 분타엔 든든한 아군이 기다리고 있다는 희망이 있으니까. 생로를 찾아 도망가는 이들은 쫓지 마십시오. 그래야 더더욱 추가 탈주자들이 속출할 겁니다.”

 모두가 전장을 내려다보며 천류영의 말을 충격 받은 얼굴로 경청했다.

 다시 한 번 천류영이란 청년의 정체가 의심스러워졌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표국에서 쟁자수 따위로 일하고 있었단 말인가?

 저 밑에서는 고함과 비명이 난무했지만 이곳은 쥐죽은 듯한 정적만 맴돌았다.

 그 침묵 위로 감미로운 천류영의 중저음이 달렸다.

 “자, 무적검 한 대협이 조금씩 밀리고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부탁을 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나눠진 흑도인들의 거리를 벌리기 위해서죠. 독고세가도 지금 의식적으로 수비에 치중하며 물러서고 있는 겁니다.”

 사람들은 사실 독고세가가 조금씩 밀리는 판에 일백의 곤륜까지 밀리는 것을 보며 더 초조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천류영의 의도였단 말인가?

 천류영이 ‘짝!’하는 손뼉을 치고 웃었다.

 “자, 일각 정도면 흑도인들의 거리는 충분히 벌어질 것 같습니다. 잠시나마 힘을 비축하고 있던 여러분들이 나설 때가 다가온 거죠.”

 천류영이 전장에서 눈을 떼고 오십 대로 보이는 도사에게 말했다.

 “자! 태청당주님.”

 곤륜 태청당의 당주, 석현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섰다.

 “자네가 아까 말한 대로 본 파의 남은 삼백을 이백과 일백으로 나누었네.”

 “이백을 이끌고 조용히 내려가 산 중턱에 다다르면, 비어 있는 저들의 중앙을 향해 질주하십시오. 기질여풍(其疾如風)이라, 바람처럼 빠르게 내려가 장악하십시오. 거대한 함성과 함께!”

 천류영이 예고한 두 번째 충격파다.

 석현자가 결의를 다지는 눈빛으로 말했다.

 “맡겨 두시게.”

 “여러분이 내지르는 함성을 시점으로 독고세가와 곤륜은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할 겁니다. 적들은 지독한 혼란에 빠지며 짧은 순간 큰 피해를 입게 되겠지요.”

 천류영은 시선을 능운비에게 옮겼다.

 “현무단주께서는 남은 곤륜의 백 명, 현무단 세 개의 조를 이끌고 이쪽 길로 은밀히 그러나 빠르게 이동하십시오. 잠시 후 태청당주께서 함성을 지르며 내려가면 적들은 당황할 것입니다. 그러나 적들도 정예일 테니 쉽게 무너지지 않을 공산도 있습니다.”

 능운비는 이미 한 번 들었던 말이라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자신의 역할은 세 번째 충격파였다.

 “알고 있네. 숲이 끝나는 곳에 매복하고 있으면 독고세가를 공격하던 이들 중 절반 정도가 허리를 끊으려는 태청당주님을 막으려 움직이겠지.”

 수하들이 작전을 이해하라는 의미로 대꾸하는 것이다.

 입을 쩍 벌리고 듣던 조전후가 탄복하며 말했다.

 “아! 적들이 많은 인원으로 본 가와 맞설 것까지 예상했던 거군요.”

 능운비가 화답했다.

 “그렇다네. 아미파는 남은 수가 적을 것이니 적들도 인원을 맞춰 편성할 테니까. 당연히 전력이 많은, 독고세가를 상대하던 곳에서 중앙을 막기 위해 병력을 차출할 테지.”

 천류영이 무덤덤하게 말을 받았다.

 “차출된 병력이 이동할 때, 그러니까 현무단주님이 매복한 앞을 지나갈 때 함성을 지르며 독고세가를 도우러 달려가십시오. 그러면 중앙으로 달리던 자들은 태청당주님과 현무단주님의 사이에 끼게 됩니다.”

 전후의 포위망이 겹겹으로 되는 것이다.

 즉, 포위망이 완성되면 앞이건 뒤건, 하나의 포위를 뚫어도 또 하나의 포위망을 돌파해야 살 수 있다는 의미.

 능운비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우리와 태청당주님 사이에 끼게 된 자들에서, 결국 반대편 산을 향해 최초의 탈주자가 나올 공산이 크지. 두 개의 포위망에 갇힐 수 있다는 건 섬뜩할 테니까. 부대에서 도망자가 나오기 시작하면 싸움은 사실상 끝나네. 그렇게 저들은 스스로의 심리에 잇달아 세 번의 타격을 받고 결국 자멸의 늪으로 빠지게 될 것이야.”

 모두가 말문을 잃었다.

 이 무시무시한 책략이 그 짧은 시간 동안 천류영에게서 나왔단 말인가?

 계속 놀라다 보니 이젠 그가 과연 자신들과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천류영이 전장을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움직이십시오.”

 석현자와 능운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하들을 이끌고 출발했다.

 그러자 현무단의 사조와 오조가 천류영과 남았다.

 천류영이 전장을 훑다가 옆에 바짝 붙은 독고설을 보았다. 그는 묘한 웃음을 흘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왜 안 묻습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알고 계시군요.”

 “뭐, 그렇죠.”

 독고설은 속으로 ‘과연!’이라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당신이라면…… 숨은 뜻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내가 현무단주님과 함께 아버지를 도우러 가지 못하게 하는 무슨 이유가 반드시 있겠지요.”

 천류영이 다시 시선을 산 아래로 던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독고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세 가지나 되나요?”

 “첫째, 여기서 보는 것과 지척에서 독고가주님이 싸우는 것을 보는 것은 전혀 다를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독고가주께서 자칫 죽을 위기에 몰리면 매복해야 하는 당신이 못 참고 뛰어나갈 수 있지요.”

 독고설은 짙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여 인정했다.

 천류영이 말을 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독고가주님이나 한 대협 근처엔 반드시 뛰어난 고수를 배치하라고 이미 지시해 두었습니다. 아까 초반의 위기는 아마 전열이 자리를 잡지 못해서 생겼을 겁니다.”

 독고설은 천류영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안력을 높여 밑을 차분히 살피니 과연 본 가의 두 장로가 지척에서 마교도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아버지를 구할 수 있는 위치였다.

 그녀의 가슴에 드리운 먹구름이 걷히며 햇볕이 들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뭐죠?”

 “예비 병력입니다.”

 “……?”

 “우리와 마찬가지로 적에게서도 지원군이 어느 순간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무릇 전장에서는 언제 어떤 일이 터지더라도 최소한의 대비는 있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지요.”

 독고설 바로 뒤에 있던 조전후가 끼어들었다.

 “그 말은…… 마교의 지원군이 나타나면 우리가 막아야 한다는 건가? 음…… 고작 우리 육십으로 말인가?”

 “겁나십니까?”

 천류영의 물음에 조전후가 눈썹을 역팔자로 그렸다.

 “겁나다니! 나는 천마검이 사천 분타의 모든 인원을 끌고 와도 눈 하나 깜짝 않고 막아 낼 자신이 있어.”

 천류영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글쎄요. 어쨌거나 두려워하는 것보다는 훨씬 보기가 좋습니다.”

 “농담이 아닐세.”

 “예. 그러나 천마검은 기껏 뺏은 무적의 사천 분타를 지켜야 하니 그리 많은 지원군은 오지 못할 겁니다.”

 “그래? 듣고 보니 그렇군. 그것 참 아쉽네.”

 정말 아쉬운 표정을 짓는 그를 보면서 천류영은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정파인들은 천마검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 소문도 부풀린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천류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천마검이 예전의 그 백운회에서 변하지 않았다면…… 그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다.

 독고설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뭔가요?”

 천류영이 순간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뒤통수를 쓱쓱 긁어 대며 답했다.

 “사실 중요한 건 두 가지입니다. 세 번째는 들을 필요가 없어요.”

 “더 궁금한데요.”

 “음……. 하하하. 그러니까…… 저를 지켜야 할 사람도 좀 계셔야…… 하하하. 저는 힘없는 사람인지라.”

 그 말에 사람들이 모두 실소를 흘리다가 이내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정색했다.

 동료들이 지금 전장에 있는데 웃을 수 없었다.

 독고설은 기가 차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말했다.

 “당신이 약한 사람이라…… 저는 동의할 수 없군요. 어쨌든 내친 김에 궁금한 게 있는데. 그러니까…… 대체 천마검은 어떻게 사천 분타를 점령했을까요?”

 천류영이 별거 아니라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

 “빤한 것 아닙니까?”

 그의 말에 독고설과 조전후 그리고 사조와 오조의 모든 인원이 황당하다는 눈으로 천류영을 보았다.

 독고설은 부친에게서 시선을 떼고 천류영을 보며 말했다.

 “빤하다고요?”

 “내부에 조력자가 있었겠지요. 아니면 간자가 침입해 있었거나.”

 “…….”

 “싸움은 아주 빠르고 허망할 정도로 금방 끝났을 겁니다. 그래서 아미파나 독고세가에 전서구조차 날리지 못할 정도로. 그것이 가능한 방법은 내부에서 먼저 혼란을 조장하고, 그 혼돈의 정점에서 밖에서 치고 들어오는 거지요. 그런 방법…… 대충 생각해도 몇 개는 금방 떠오르는데요.”

 육십여 명은 순간 허탈한 심정이 들었다.

 지금까지 그들은 당최 어떻게 무적의 분타가 하룻밤 만에, 그것도 그리 많지도 않은 적들에게 빼앗겼을까 고심했었다.

 그러나 듣고 보니 정말 천류영의 말처럼 너무 빤한 것이 아닌가?

 모두가 왜 그 쉬운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라는 자책에 빠졌다.

 그러나 독고설만은 달랐다.

 빤하되 빤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머릿속에는 무림맹 사천 분타가 무적으로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점령될 수 없는 곳.

 그래서 거기에 생각이 멈춰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입견이 사람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인데, 이 천류영이란 사람은 그것에서 아주 자유로웠다.

 열린 사고라고 할까?

 사실 아미파로 변장한 간자를 간파하는 것도 그랬다.

 다급한 상황에 사천 분타와 아미파가 공격당한다는 말을 들으니 구하러 가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했다.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게 일반적인 사람들의 정상적인 반응이다.

 독고설은 천류영을 빤히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대체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죠?”

 “뭐가 말입니까?”

 “그러니까…… 뭐랄까? 당연한 거라고 하지만 사실 당신이 지금껏 보여 준 것은 결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에요. 우리들은 아미파의 간자부터 시작해서 지금 당신이 내놓은 계책까지 수도 없이 놀라고 있다고요.”

 “…….”

 “우리 모두가 바보란 말인가요? 아니면 당신이 대단한 천재일까요?”

 갑자기 천류영의 얼굴이 진중해졌다.

 그는 잠깐 고민하는 표정을 하다가 싱긋 웃었다.

 “바둑을 둘 줄 아십니까?”

 뜬금없는 천류영의 질문에 독고설은 당황했다.

 정말이지 이 사람은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재주만큼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예? 아, 아니요. 몇 번 배우려고 했는데 그 시간에 무공 수련을 하는 게 더 낫다 싶어서…….”

 “저도 잘 두는 건 아니지만, 바둑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당국자미(當局者迷) 방관자명(傍觀者明).”

 독고설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바둑을 두는 당사자보다 옆에 있는 사람이 더 대국을 잘 본다는 뜻이군요.”

 “예. 아마 제가 제삼자의 입장이라 조금 더 냉정하게 관찰하고 생각할 수 있는 거겠지요.”

 독고설은 도톰한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

 분명 천류영의 말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훈수 두는 사람도 분명 한계가 있는 법이다.

 오늘 천류영이 보여 준 것은 훈수를 두는 삼자의 입장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대단했다.

 “천류영, 당신은 모르고 있군요. 당신이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그녀의 나직한 말을 천류영은 듣지 못했다.

 왜냐하면 태청당주 석현자가 이끄는 곤륜이 거대한 함성을 지르며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내 정파인들의 본격적인 반격의 시작이었다.

 이는 천류영이 천재적 군사(軍師)로서의 가치를 세상에 드러내는 시작이기도 했다.

 문제는…… 천류영은 스스로 가진 책사로서의 재능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숨겨져 있는 무인으로서의 재능까지.

 아직까지는 말이다.

 천류영이 자신의 손을 비비며 말했다.

 “자,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제발 천마검 백운회가 끼어들지 않기를 기원하며 지켜보지요.”

 독고설도 초조한 기색으로 산 아래를 보다가 천류영의 말에 문뜩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천마검이 끼어든다면? 그에 대한 대책도 있겠죠?”

 그녀는 조전후처럼 천마검이 직접 이끄는 최정예를 자신들이 막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무인으로서의 패기와 자부심은 높았지만, 현실을 외면하는 무분별함은 없었다.

 잠시 막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잠시 이후의 대책이 필요했다.

 만에 하나 천마검에 관한, 약간 허무맹랑하게 들리는 풍문들이 전부 사실이라면 여기 있는 모두가 달려들어도 그를 상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그가 얼마만큼의 수하를 대동하느냐도 큰 관건일 터이고.

 천류영은 어깨를 으쓱하며 소리 없이 웃었다.

 묘한 미소.

 그런데 그 웃음이 독고설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이 사람.

 외모는 평범했지만 목소리와 웃음이 이상하게 사람을 끌었다.

 천류영, 이 사람을 믿어도 된다는 그런 신뢰가 독고설의 가슴에 똬리를 틀었다.

 그건…… 그녀가 본 고관대작의 그 어떤 잘생긴 청년들도, 훌륭한 인품과 고강한 무공 실력으로 많은 여인들을 애태우는 이름 높은 후기지수들도 주지 못한 감정이었다.

 독고설은 아버지에게 줄곧 시선이 가 있었지만, 종종 곁눈질로 천류영을 보는 자신이 곤혹스러웠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싸움을 앞두고 초조해하는 두근거림이 아니었다.

 그녀는 덜컹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손을 가슴에 조용히 댔다.

 그 순간, 그녀의 눈가가 확 일그러졌다.

 저 인간이 전날 밤에 내 가슴을!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잊고 있었던 수치심과 분노가 불끈하고 치솟았다. 머리 한쪽이 띵하며 두통이 일었다.

 ‘복수를 해야 하는데…….’

 대체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복수를 한단 말인가? 그냥 자신도 천류영의 가슴을 만져 버릴까?

 불현듯 든 어처구니없는 생각에 독고설은 쓴웃음을 지었다. 뜻 모를 한숨이 연방 그녀의 입술 사이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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