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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문자의 아이들
작가 : 뉴레기
작품등록일 : 2017.7.8

첫 번째 암흑기를 주도했던 세 명의 사이먼 중 하나인 젤브로스는 두 번째 암흑기가 도래하려하는 전란의 시기인 300년대에 모든 인과관계를 끊고 가이아드 대륙을 방황한다. 그러던중 우연히 네지라는 자의 부탁을 들어주게된다. 부탁이란 최근 도시 펠리스를 둘러싼 영악한 괴물에 대한 퇴치 의뢰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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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18 21:38     조회 : 271     추천 : 0     분량 : 5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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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바람이 분다.

 겨우겨우 찾은 도토리 몇 줌과 나물 몇 줄기를 먹은 루브네는 아까 잠이 들었다.

 

 동물은 없었다. 당연하다, 이런 시기이니.

 

 젤브로스는 모닥불을 피워둔 곳 앞에 앉아 잠든 루브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 옆은 덥다고 뗑깡을 부린 루브네였지만 피곤한 나머지 금새 잠이들고 말았다.

 

 젤브로스는 입고있던 검은 옷을 벗었다. 속에 입고있는 갈색 셔츠가 드러났다. 그는 벗은 옷을 그대로 누워 자고 있는 루브네의 몸에 덮어주었다. 더운것은 알지만 이런 산속엔 모기가 드글거리는 법이었다. 두꺼운 가죽에 더해 징과 철이 덧대어 있어 모기가 쉽게 뚫지 못할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 만큼은 가려줄 수 없었다.

 

 젤브로스는 하늘을 우두커니 올려다보았다. 별이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다. 하나, 둘 셋..... 의미없는 셈을 반복해가지만 아무래도 시간은 가지 않는다.

 

 젤브로스는 잠들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 무슨일이 벌어져도 대처할 수 있게끔 두 귀와 두 눈을 열어두어야만 했다.

 

 오늘은 보름달이었다. 동그랗고 아름다운 노란색 알맹이가 검은 밤하늘 위에 구슬 처럼 박혀있었다. 이따금 구름이 달 앞을 지나가면서 아름다운 곡선에 오점을 남겼다.

 

 젤브로스는 바로 옆에서 자고있는 루브네의 머릿결을 어루만졌다. 허리 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 노란색에 가까운 금색의 머리.

 

 어쩐지 좋은 향이 나는 것만 같다. 성장하면 아주 아름다운 미인이 될 것이리라, 젤브로스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옷도 몇 벌 더 사줘야지, 다음부턴 여행중에도 먹을 수 있게끔 육포같은 것들도 좀 사두고. 운좋게 들짐승을 발견한다면 이제부턴 지나치지 말고 사냥해두자. 그리고 또......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는 이런 저런 것들이 뇌리를 스친다.

 

 그리고 또 무엇을 해주면.......

 

 사사삭!

 

 인기척.

 

 젤브로스의 푸른 두 눈동자와 감각이 예리하게 그것을 포착한다. 뒤쪽 풀숲에 뭔가가 있다. 괴물인가? 아니면 제국군? 아니, 제국군일리는 없어.

 

 젤브로스는 애써 모르는 척, 자연스러운 자세를 유지했다. 도대체 뭐하는 놈인지는 모르겠으나 상대는 마음먹고 도망친 자신을 추적해낸 인물이다. 방심해선 안된다.

 

 그런 생각을 하며 젤브로스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오랫동안 찾았어."

 

 상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예리한 남자 목소리였다.

 

 "설마 디엘노움 까지 진출했을 줄이야. 여전히 신출귀몰하구나 넌."

 

 익숙한 목소리에 젤브로스는 등 뒤를 돌아보았다. 언뜻 보면 30대 중반 같아 보이지만 그의 실제나이는 스물 아홉살이었다. 얼굴에 돋아난 무수한 흉터와 울긋불긋한 근육이 그를 더 늙어보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숫사자의 갈기같은 갈색 머리칼, 찢어져 있는 면바지, 양털로 만든 조끼. 그리고 등에 차고있는 거대한 바스타드 소드.

 

 젤브로스는 그의 이름을 알고있었다.

 

 "리드웨이, 네가 어떻게......"

 

 "흥."

 

 리드웨이 스테이튼은 젤브로스가 끊어냈던 무수한 인연들 중 하나였다. 그를 알게된건 한창 젤브로스가 용병일에 몸을 담고있었을 때였다. 명문가 출신의 귀족을 호위하는 임무를 하던 중 그를 처음 만났다. 괴팍하고 오만하며 섬세함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전형적인 용병 스타일.

 

 다이아 티어 클래스 중에서도 '이명'을 같고있는 몇 안되는 실력자들 중 하나.

 백야의 리드웨이란 바로 그를 두고 하는 말이다.

 

 "별거 없어, 망할놈의 전쟁통엔 용병 의뢰가 하늘만큼 쌓이기 마련이지.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개처럼 구르고, 지랄나게 많은 데릭실을 움켜쥐기 위해 평균 이상의 노력을 하는 중이야. 내가 생각해도 정말 기특해."

 

 젤브로스가 별말 하지 않자 리드웨이가 말을 이어나갔다.

 

 "아주 유명한 녀석을 찾고있어. 얼마나 빠꾸없는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플라버스 지역에선 모르는 놈이 없을 정도로 빠꾸 없는 녀석이지."

 

 "퇴치 의뢰인가?"

 

 그래.

 리드웨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 몇 개가 전멸했고 도시가 궤멸직전에 빠졌으며 그 녀석 때문에 공화국 본대가 이동루트를 다시 짤 정도였고 왕국의 경우엔 아예 진군을 멈췄지. 아주 위험한 놈이라고, 높으신 양반들이 결론을 내렸고 '백야'에게 의뢰하기 위해 날 찾아왔어."

 

 "여전하군."

 

 리드웨이는 껄껄 웃었다.

 

 "너도 여전한가?"

 

 "10년 전과 비교해서 말인가? 흠, 글쎄."

 

 "내 생각엔 많이 무뎌진것 같은데."

 

 리드웨이가 곤히 잠들어있는 꼬마 공주님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전귀' 라고 불렸던 네가 아이를 곁에 두고 다니다니."

 

 "그 이름은 이제 버렸네. 용병을 때려치운 지금은 전귀도 무엇도 아니야. 그저 방랑자 젤브로스일 뿐이지."

 

 리드웨이가 허리춤에 차고있던 호리병을 젤브로스에게 건넸다. 젤브로스는 그것을 받아들고는 단숨에 들이켰다.

 

 "도수가 높군. 십년전에 네가 즐겨마시던 아트리아 지역 특산 증류주는 아닌것 같은데."

 

 "요즘은 위스키가 끌리더군. 어때, 괜찮지?"

 

 젤브로스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보니 백야의 리드웨이가 대단한 애주가였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내가 한 번 맞춰보지. 퇴치 의뢰를 받은 괴물의 흔적을 쫒다가 디엘노움 지역에 발을 들이게 됐고, 우연히 내 모습을 봤는데 그 때 나는 루비와 함께 제국군에게 쫒기고 있었다. 그래서 너는 내가 무사히 그들의 그물망에서 빠져나간 것을 확인한 뒤 내가 남긴 흔적들을 쫒아 날 찾아왔다."

 

 "그정도 추리는 나도 할 수 있어."

 

 리드웨이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할줄 아는건 싸움밖에 없는 제국군이다 보니 흔적을 지우는데 게을리한것 같군. 만약 리드웨이가 날 쫒는 적이었다면 굉장히 위험했을거야."

 

 "내게 빚진줄 알아. 이곳에 올라오는 동안 페스트롭을 어찌나 많이 작살냈는지 내 검날이 무뎌지고 말았거든."

 

 리드웨이가 루브네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리드웨이는 이 산길을 밤중에 올라왔던 모양이다.

 

 "이름이 루비인가? 아주 귀여운 아이군. 어쩌다가 만나게 됐지? 흐음, 그건 그렇고 이 아이, 여러 의미로 아주 희긔한데."

 

 "눈독 들이지마."

 

 "푸하하! 내 취향이 유부녀라는거 자네도 잘 알지않은가."

 

 "늙은이 같은 말투군."

 

 젤브로스는 호리병 안에 남아있는 독한 위스키를 모두 들이키고는 빈병을 그에게 넘겼다.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인데 네 이야기나 좀 들려줘."

 

 리드웨이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괴물 이야기나 조금 더 들려주지. 사실 남겨진 흔적을 통해 그 녀석이 디엘노움 지역까지 진출했다는 것은 알아냈는데 그 이후로는 좀처럼 진행이 안되서 말이야."

 

 "내가 봤거나, 비슷한 단서를 목격했을지도 모른다는 건가. 좋아, 도와주지."

 

 리드웨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내가 생각하건데 녀석은 아주 영리해. 플라버스 지역에선 그 괴물을 목격한 녀석이 한 명도 없었어. 몸에 무수히 많은 발톱자국과 이빨자국을 남기고 죽은 시체만이 그 괴물의 모습을 보았겠지."

 

 "발톱과 이빨.......대부분의 괴물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들이지."

 

 "하지만 목격자를 만들지 않을 정도로 영리한 녀석이라면 범위가 좁혀지지. 게다가 녀석은 무리를 지어다니는 군부대 까지 습격해서 절멸시켜버릴 정도로 실력과 요령이 좋은 녀석이니까."

 

 "피해자들의 모습은 봤나?"

 

 "아, 그렇고 말고. 개같은 콥서들이 귀중한 데이터 덩어리들을 뼈까지 씹어먹기 전에 그 괴물에게 죽은 녀석들의 시체를 몇 번 확인하는데 성공했어. 완력이 강하지는 않더군. 가끔 손가락이 잘려나가거나 갈라진 뱃가죽에서 창자가 튀어나와 있는 녀석들은 있었지만 상반신과 하반신을 분리시켜 버릴 정도로 강력한 파워를 지닌 녀석은 아니었어. 적어도 웨어 울프는 아니란 소리지."

 

 "........?"

 

 젤브로스의 인상이 살짝 찡그러졌다.

 

 "하지만 확실히 그 녀석은 흔적을 만들어갔더군. 습격당한 마을의 시간대, 시체의 부패도 따위를 보며 녀석의 이동경로를 유추해내는데 성공했지. 결과적으로 놈이 마지막으로 습격한 곳이 디엘노움 지역의 리브던이란 마을이란 것을 알아냈어."

 

 "리브......?"

 

 불현듯 찾아오는 위화감.

 

 "뭐, 아마 왕국군이나 공화국군의 짓일테지만 제국군 몇 놈이 거기 죽어있었지. 아주 실력이 좋은 놈인것 같았어. 죽어있는 시체는 전부 제국놈들 뿐이었거든. 뭐, 내가 도착했을 땐 이미 콥서들이 인육파티를 벌이고 있던 중이었지만."

 

 리드웨이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녀석의 흔적을 콥서들이 지워버리진 않았더군. 마을 밖에 망가진 마차와 죽어있는 상인의 시체가 보였어. 사인은 똑같았지. 구더기가 말랑거리는 눈알과 혀를 파먹은 뒤더군. 일주일은 지났을까? 흠, 글쎄 잘 모르겠군. 콥서 두 마리가 신나게 시체의 뱃가죽을 뜯고있어서 말이야."

 

 "리드웨이....?"

 

 "일단 들어봐 이 친구야 내 말은 씨부랄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뭐, 하여튼 그래서 나는 최종적으로 산 속의 어떤 허름한 초가집에 도달하는데 성공했어. 어떤 개자식인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도 제국녀석들의 시체가 쌓여있더군. 보너스인지 뭔진 모르겠지만 콥서의 시체도 몇 구 놓여 있었어. 뭐, 내가 도착했을 땐 새로운 콥서들이 몰려와 지 동족의 시체와 제국군 시체를 놓고 연회를 벌이고 있었지만....... 대충 나는 거기서 일을 벌였던 놈이 리브던에서 제국군을 학살한 녀석과 동일인물이라고 단정했지."

 

 리드웨이는 호리병을 하나 더 꺼냈다. 자세히보니 허리에 달려있는 호리병의 수는 일곱 개가 넘었다.

 

 "네가 마신거랑은 색이 다른거야. 이 녀석은 깨끗하지."

 

 리드웨이는 흘리듯 말하고는.

 

 "휴우, 어쨌든 거기서 단서가 끊기고 말았어. 유추할 수 있는거라곤 답이던 오답이던 그 실력좋은 검사가 그 괴물과 어떠한 형태로든 엮여있을 거라는 것 뿐이었지."

 

 리드웨이가 그제서야 슥, 젤브로스를 바라보았다. 눈빛에 기묘한 감정이 담겨있었다.

 

 두근 두근.

 

 젤브로스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순간 가슴을 죄어오는 고통이 전신을 범람했기 때문이다.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움켜잡으며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흘리고 있는 젤브로스를 바라보며, 리드웨이는 태연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하네 친구. 이것도 일이라서. 알잖아? 우리들은 이런 놈이란거."

 

 ".....리, 리드....웨....."

 

 극독.

 

 타들어가 듯 온몸의 혈류를 타고 전해지는 이 느낌은 필시 신경독의 일종이 틀림없었다.

 

 털썩!

 

 젤브로스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엎어지고 말았다.

 

 "역시 무뎌졌어. 지금의 당신은 그때와는 달라."

 

 "....이, 이....자...식....."

 

 떨리는 손을 뻗자 리드웨이는 콧방귀를 뀌며 그의 손을 짓밟았다.

 

 "옛 정을 봐서 한 가지 굉장한 사실을 말해주지. 저 꼬마.....아니, 정혈 마녀였던가? 놈의 수배지가 지금 가이아드 대륙 전 지역에 배포될 예정이야. 이게 그 초본이고."

 

 품 속에서 꺼내는 두루마리를 펼치자 루브네의 모습이 세세하게 그려진 초상화가 젤브로스의 눈 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그 밑에는 말도 안되는 액수의 현상금이 매겨져 있었다. 마을은 고사하고 도시 하나 정돈 통째로 살 수 있을 정도의 값어치가 루브네의 작은 몸에 걸려있었던 것이다.

 

 젤브로스는 필사적으로 몸을 꿈틀거렸다. 극독이 안겨다주는 타들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안심해. 시체를 가져가면 반값 밖에 안쳐주거든. 난 이 녀석을 산채로 데려갈 예정이야. 제르키아 제국의 속내 따위 한낮 용병 나부랭이인 내가 알바는 아니지. 어쨌든 간에 현상금과 퇴치의뢰 보수를 동시에 받을 수 있다는건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야."

 

 리드웨이가 젤브로스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곧 이어 곤히 자고있는 루브네를 억지로 들춰메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루비....안돼 제발....'

 

 젤브로스는 몸을 일으키려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없는 노릇이었다.

 

 "미안해. 사이먼이자 마스터 티어 클래스 용병인 네게 정면으로 승부해봤자 이쪽만 개죽음이니까. 다소 비겁하지만........뭐, 비겁이란 단어를 용병에게 사용해도 좀 웃기지 안그래? 그 독, 아주 대단한 녀석이 조합해준 약이야. 듣기로는 사이먼이라 할지라도 단번에 요단강 보내버릴 정도로 강력하다더군, 뭐 사이먼들의 괴물같은 면역력 때문에 독이 퍼지는 속도는 굉장히 느린 모양이지만.....좀 참아, 못해도 12시간 안으로는 편해질거야."

 

 순간적으로 시야로 돌아온 리드웨이는 루브네를 거칠게 들춰메고 있었다. 젤브로스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그러나 그는 이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힘들었다.

 

 "잘가라고 나의 옛 친구야."

 

 그말만을 남기고.

 

 리드웨이는 젤브로스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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