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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더 포저(The Pauser)
작가 : 송지음
작품등록일 : 2017.6.1

[범죄·추리·미스터리·판타지·로맨스]
일시 정지된 시공간, 멈춰진 세상에서 범죄의 비밀을 쫓는다.
시간을 일시 정지할 수 있는 현이우. 특수범죄사무국의 영업팀 김수호.
이우에게 도착하는 의문의 메시지로 인해 스치게 된 두 사람의 특별한 인연과 시즌별로 이어지는 크고 작은 범죄 사건들.
각 사건을 관통하고 있는 거대한 범죄조직의 최종 목표를 파헤치는 과정과, 이를 통해 발현되는 서로를 위한 헌신과 희생.
수호의 헌신을 통해 잠재된 능력을 깨워가는 이우의 성장을 중심으로 주인공들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시즌제 소설.

 
{ 더 포저 시즌 Ⅳ } 종전일의 기적 ... 12
작성일 : 17-07-18 15:41     조회 : 270     추천 : 3     분량 : 8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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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

 기웅은 핸드폰 벨소리를 다급하게 막아 쥐었다. 침대 위 수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집무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네, 저에요.”

 상대방 말을 듣던 기웅은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바로 갈게요.”

 전화를 끊은 기웅은 집무실 문을 살며시 돌려 열고 꼼짝없이 누워있는 수호를 들여다보았다. 조용히 문을 닫고 잰걸음으로 복도를 걸었다.

 

 의료센터를 통과해 병실로 들어서던 기웅의 걸음이 멈춰졌다. 고개를 무릎 위로 고꾸라뜨리고 앉아있는 이우를 잠시 보다가 천천히 들어섰다.

 침대 위 이우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흐느끼고 있었다.

 “고양아.”

 이우는 기웅을 쳐다보지 못했다. 거즈가 붙은 제 손등만 쳐다보며 막힌 숨으로 끅끅 흐느꼈다.

 이해할 수 없는 울음을 잠시 지켜보던 기웅은 침대 위로 걸터앉았다. 고개를 기울여 수그러진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시선이 맞춰지지 않았다. 빨갛게 젖은 눈동자가 허공을 맴돌았다. 정신없이 떨리는 몸이 가눠지지 못하고 휘적거리며 흔들렸다.

 “고양아.”

 기웅이 다시 목소리를 냈다. 이우는 흔들리는 눈동자를 움직여 기웅을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눈물이 와락 터져 나왔다.

 기웅이 차분한 목소리를 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

 “이제.”

 이우의 말문이 터졌다. 입이 열리자 막혔던 울음소리도 터졌다.

 엉엉 뱉어지는 울음소리가 조용하던 병실을 채웠다.

 “저, 이제 어떡, 해요. 저 이제.”

 더듬거리던 이우는 다시 고개를 무릎 위로 파묻었다.

 덜덜 떨리는 어깨를 물끄러미 보던 기웅은 마르는 입을 다셨다. 구부려진 등허리를 천천히 쓸어내리며 달랬다.

 “그만 울고, 일단 좀 누워봐. 응?”

 이우는 흐느낌을 멈추지 못했다. 눈물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너 이러다가 또 쓰러지겠어. 너 열 시간도 넘게 잔 거 알아?”

 “형,”

 이우는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었다.

 “죄송, 해요. 저, 저 때문에. 형, 죄송,”

 격한 흐느낌에 섞인 말이 자꾸 끊겼다.

 “저, 때문이에요, 저 때문에, 수호 형,”

 “응?”

 “저 때문에 그런 거예요. 형이, 도망치라고, 제가, 저,”

 “응? 천천히 말해 봐.”

 “저 땜에, 저 도망치라고 형이, 형이 죽, 죽었, 죽, 죽었.”

 말을 다 맺지 못한 목구멍에서 서러운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고개를 하늘로 치켜든 채 통곡했다.

 멍하게 이우를 쳐다보던 기웅의 몸이 떨려왔다.

 “혀, 형이, 저 때문에, 죽었어요, 저 이제, 저 어떡… 저 이제.”

 벌떡 일어선 기웅이 서둘러 병실을 나섰다.

 

 복도를 내달린 기웅은 집무실 문을 벌컥 열었다. 입구에 굳어 선 채 누운 몸을 숨죽이고 쳐다보았다.

 천천히 들어서며 문을 닫았다. 침대로 다가가 수호의 얼굴을 물끄러미 살폈다.

 손가락을 들어 코앞에 댔다. 낮게 흐르는 숨결은 일정했다.

 목동맥에 손등을 댔다. 차분하게 뛰는 맥박도 일정했다.

 기웅은 의자로 털썩 주저앉아 울리는 이마를 쥐어 잡았다. 무슨 소리였을까. 수호가 죽다니.

 기웅은 수호의 감긴 눈에 시선을 세웠다. 제 심장까지 옥죄던 통곡의 잔상이 귀에 남아 울렸다.

 이 두 사람을 떼어 놓을 수 있을까. 방법이 있기는 할까. 떼어놓지 않고 안전할 수 있을까. 노바디가 현이우를 왜 쫓고 있는 걸까. 현이우는, 과거에라도 노바디 관련자였을까.

 기웅은 이마를 찌푸렸다. 아니다. 틀렸다.

 데이터가 확실하지 않은 추측이지만, 이우는 관련자가 아니다. 수호의 감이 맞다. 아무리 눈을 씻고 다시 비비고 봐도.

 그럼 왜. 노바디는 현이우를 왜 이리도 맹렬하게 찾고 있을까. 수호의 현상금까지 백오십만 달러. 그 정도의 가치를 현이우가 가지고 있다. 그게 무엇일까.

 기웅은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괴어 받쳤다. 어떻게 하면 둘을 숨길 수 있을까.

 수호는 설득할 수 있다. 맹수 서너 마리를 완전히 재울 수 있는 양의 마취제를 맞은 상태로도 이우의 신변만 걱정하고 있었다. 분명히 설득이 가능하다.

 이우는 어째야 할까.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할 리 없는 이우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문득 기웅의 인상이 펴졌다. 이마를 짚고 있던 손을 내리며 멍한 시선으로 수호를 쳐다보았다.

 수호가 죽었다.

 죽었다면 만날 수 없다. 죽었다면, 노바디가 잡을 수 없다. 쫓을 이유가 없다.

 죽었다면 이우와도, 만날 수 없다. 떼어놓을 수 있다.

 기웅은 의자를 굴려 침대 머리맡으로 붙었다. 괜스레 떨리는 손을 들어 수호의 코끝 숨을 다시 확인했다.

 살아있다. 멀쩡하다. 약만 깨면 예전의 투견으로 돌아온다.

 기웅의 입술이 지그시 물렸다.

 이명처럼 귀에 남은 통곡소리를 떠올리다가 쓴웃음을 흘렸다. 악당.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벌떡 일어선 기웅은 빠른 걸음으로 집무실을 나섰다.

 

 “일급입니다. 현장에서 김수호 목격했던 인원들한테 기밀등급 완벽하게 인지시켜주시고 목격자 전체 명단 올려주세요. 네. 네. 발인은 내일모레죠. 네. 기밀유지가 생명입니다. 네. 네 고마워요.”

 기웅은 전화를 끊어 들었다. 이우의 병실 문을 잠시 쳐다보다가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이우는 팔을 둘러 눈을 가린 채 누워있었다. 마른 흐느낌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가려진 얼굴을 잠시 내려다보던 기웅이 입을 뗐다.

 “고양이 이제 다 울었어?”

 이우는 떨리는 몸을 움직여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부어터진 눈이 감겨있었다.

 “이러다 너도 큰일 나. 그만 기운 차려야지.”

 이우는 억지로 눈꺼풀을 떴다. 흐릿한 초점으로 기웅을 쳐다보다가 말라붙은 입술을 뗐다.

 “저 이제, 갈게요. 어디로 나가면 되는지.”

 마른 흐느낌이 말의 호흡을 자꾸 끊었다. 기웅은 대답을 미루며 혼이 나간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밖에, 지문인식 필요한 건지, 안 열려요.”

 “응? 어디 밖에?”

 “저 좀, 내보내주세요.”

 “너 아직 위험해서 혼자 못 다녀.”

 “갈래요 형.”

 “이러고 어딜 가려고. 답답해도 조금만 참아.”

 이우는 대꾸하지 않았다. 허공 어딘가로 멍한 시선만 흘렸다.

 “얘기 못 들었나 본데, 너 좀 위험해 지금. 나쁜 놈들이 너 쫓아다녀서”

 “형.”

 말을 자른 이우가 기웅을 올려다보았다.

 “위험할 거 없어요. 저.”

 “없긴 왜 없어. 있으니까 형이 이러지.”

 “위험할 것도 없고, 위험해도 상관없어요. 위험해 봐야, 죽기밖에 더 하겠어요?”

 기웅의 말문이 막혔다. 이우는 부들거리는 몸을 움직여 침대 아래로 내려섰다. 손등에 붙은 거즈를 잠시 쳐다보다가 떼어냈다.

 “그냥 둬. 상처 깊대.”

 이우는 안 들리는 듯 떼어낸 거즈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흔들리는 걸음을 떼자 기웅이 따라 움직였다. 이우의 팔을 잡아 세우며 말했다.

 “너 지금 못 나간다고. 여기 있어 며칠만. 형이 너 숨을 데 구하고 있으니까.”

 “집에 갈래요. 형.”

 기웅의 얕은 한숨이 흘렀다. 이우의 양어깨를 쥐고 눈동자를 맞췄다.

 “집 위험하다고. 농담 아니라 정말로 위험해. 일단 여기 좀 있어. 응?”

 “집에 갈래요. 우리, 집에.”

 이우의 입술이 꽉 물렸지만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이우는 손바닥으로 눈물을 쓸어 닦으며 중얼거렸다.

 “갈래요. 우리 집에 갈래요. 보내주세요.”

 숨죽이고 이우를 바라보던 기웅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의료센터 앞에 차량 대주세요. 현이우 자택으로 갑니다. 안내 한 명 붙어주시고요.”

 천천히 병실 문을 열고 나가는 이우를 기웅이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대문 앞에 선 이우는 비밀번호를 끝까지 누르지 못했다. 허공으로 흔들리는 손가락을 접어 쥐며 대문을 짚고 섰다.

 떨리는 몸을 가누며 한동안 서 있다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울음이 걸린 가슴을 내리쳤다. 꺽꺽 막힌 울음에 숨통까지 막히던 이우는 이내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

 불쑥 터져 나온 비명을 힘겹게 내지르며 바닥에 엎드려 통곡했다.

 

 

 *

 수호는 멍하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어둠, 희미하게 익숙한 냄새, 기웅의 공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골이 무겁게 울렸다. 저절로 이마로 향하던 오른손에 둘린 깁스를 쳐다보았다. 왼손에는 링거바늘이 꽂혀있었다.

 주사액을 올려다보던 수호는 눈을 끔뻑여 초점을 모으며 주위를 다시 둘러보았다.

 거대한 책상, 소파. 벽면 전체 모니터. 사무실인가.

 앉아있는 침대를 훑어보았다. 방인가. 여긴 어딜까. 이우는.

 수호의 정신이 퍼뜩 들어왔다. 핸드폰을 찾아 다급하게 시선을 돌리다가 짜증에 이를 악다물었다. 속옷 바람으로 묶여있던 상황이 떠올랐다.

 총에 무전기에 핸드폰까지 분실. 연락 두절이었을 테니, 이우는.

 눈을 다시 번쩍 뜬 수호는 허겁지겁 침대에서 내려섰다. 몇 발짝 걷자 링거 줄이 당겨졌다.

 “아이 씨.”

 수호는 짜증을 뱉으며 손등 위 링거 바늘을 노려보았다. 깁스를 두른 오른손 끝에 왼손등을 대고 손가락에 힘을 넣어보았다. 힘이 안 들어갔다.

 “아으, 진짜.”

 수호는 허리를 굽혀 링거 줄을 땅에 댔다. 줄을 발로 밟으며 바늘을 확 잡아 뺐다.

 갑작스러운 빛이 눈을 때렸다. 엉겁결에 깁스한 팔뚝으로 눈앞을 가리며 빛을 응시했다.

 안쪽 방에서 나서던 기웅이 깜짝 놀라 멈춰 섰다. 이내 환하게 웃으며 목소리를 키웠다.

 “쫄랑! 깼어?”

 “아, 형.”

 수호는 괜히 놀랐던 속을 가라앉혔다.

 방의 전등을 올린 기웅이 수호의 얼굴을 살피며 다가왔다. 바닥으로 팽개쳐진 주삿바늘을 쳐다보고는 수호를 째려보았다.

 “별걸 다 배운다. 아 빨랑 누워!”

 잠깐 멍해 있던 수호가 얼떨떨해서 입을 뗐다.

 “여긴 어딘데?”

 기웅은 수호를 붙들어 침대 위로 앉혔다.

 “누워 좀. 누구 마음대로 바늘 빼고 지랄이야. 기껏 살려놨더니.”

 “여기 어디냐고.”

 “어디긴 어디야, 형 방이지.”

 수호는 기웅을 빤히 쳐다보다가 방을 다시 둘러보았다. 어림잡아 사오십 평. 방음. 통신장비. 특범국 상황실에나 있음직한 모니터 월. 기웅은 도대체.

 수호는 문득 인상을 구기며 기웅을 노려보았다.

 “형 나한테 설명할 거 있지?”

 기웅은 피식 웃으며 수호의 머리카락을 헝클고 다시 쓰다듬어 정리했다.

 “일단 누울래? 바늘 다시 꽂고 설명하면 안 될까?”

 “이우는 어디 있어?”

 기웅은 대꾸를 늦추며 의자를 끌어다 침대 앞으로 마주 앉았다.

 “이우 어디 있냐고.”

 “잘 있어 인마.”

 “그러니까 잘 어디!”

 “니 애인 집에 가셨어.”

 “어?”

 수호의 눈이 커졌다.

 “집?”

 “그래 인마. 집에 곱게 모”

 “형 미쳤어!”

 수호는 이를 꽉 물고 기웅을 노려보다가 벌떡 일어섰다.

 “앉아!”

 기웅의 언성이 높아지자 수호가 이를 악물었다.

 “노바디 새끼들 쫙 깔린 집으로 이우 혼자 보내? 형 진짜 미친 거 아냐?”

 “앉아.”

 기웅이 낮게 말했다. 수호는 굳은 채 서서 기웅을 빤히 노려보았다.

 “설명할 테니까, 일단 앉으라고.”

 기웅이 몸을 일으켰다. 리모컨을 집어 벽면의 모니터들을 켰다.

 갑작스럽게 켜진 모니터를 수호가 엉겁결에 쳐다보았다. 이우의 집 앞 골목부터 정원과 현관, 거실, 침실, 서재까지 집안 곳곳의 채널들이 한꺼번에 열렸다.

 얼떨떨하게 화면을 훑던 수호는 침대에 엎드려있는 이우를 발견하고 눈을 번쩍 키웠다.

 “카메라 달았고, 가드 열두 명 붙였어. 실력 좋은 인원들만 골라서 열둘.”

 수호는 입을 멍하게 벌린 채 모니터만 보았다. 자는 걸까. 왜 꼼짝없이 엎드려만 있을까. 무사한 걸까.

 “혹시 해서 의료팀한테 보여줬는데 아무 문제없고 괜찮아. 니 애인 안녕하셔 인마.”

 수호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입이 헤벌어진 수호를 쳐다보던 기웅은 덤덤하게 말했다.

 “너 낼모레, 아니다, 이제 내일이지. 발인식이야. 너.”

 “응?”

 수호가 어리둥절하게 기웅을 쳐다보았다.

 “발인? 누구?”

 “너 인마 너. 너 죽었다고.”

 “어?”

 “그거 말고는 노바디 눈들 피할 방법 없어. 너 사망 처리했어. 발인하고 소문 흘리면 돼. 그럼 깨끗해.”

 수호는 멀뚱멀뚱 눈을 끔뻑였다.

 “아니, 뭐, 그런 게 가능, 아.”

 더듬거리던 수호는 문득 인상을 구기며 방안을 훑어보았다.

 “형 정체부터 설명해. 여기 어디야? 이거, 다 뭐야?”

 기웅은 흥, 웃음을 흘렸다. 수호를 붙들어 침대 위로 앉히며 대꾸했다.

 “절대 발설 안 할 거라고 약속해. 그럼 알려줄게, 형님의 어마어마하신 정체.”

 수호가 코웃음을 쳤다.

 “어마어마하다 진짜, 뭔데? 나 입 무거운 거 몰라?”

 “웃기시네, 고양이한테 별별 소리 다 털어놓는 주제에.”

 수호의 웃음기가 다시 지워졌다. 모니터를 돌아보았다. 엎드렸던 몸을 모로 돌려 누운 이우를 보며 헤벌쭉 입을 벌리다가는 인상을 팍 구겼다.

 “이걸 근데 왜 형이 보냐? 이우 자는 걸?”

 뜬금없는 소리에 기웅이 이를 악물었다.

 “이게 진짜 정신이 오락가락하나. 누군 보고 싶어서 보냐? 바쁜 시간에? 형님 정체 묻다가 왜 딴소린데?”

 “그러게 그 대단하신 정체가 뭐냐고!”

 “여기 아이에스씨유 아시아센터야.”

 “응?”

 “한국으로 지부 옮길 때 형도 같이 들어왔어.”

 수호는 멀뚱멀뚱하게 기웅과 시선을 맞췄다.

 “국제특범대 아시아지부라고요. 당신 누워 계신 데가.”

 수호가 푸식, 코웃음을 터뜨렸다.

 “총을 머리에 맞으셨나. 어깨 아니었어?”

 기웅은 헛웃음을 웃으며 침대 위로 나란히 걸터앉았다.

 “안 믿기면 말던가.”

 덤덤한 대꾸에 떨떠름하게 눈을 끔뻑이던 수호는 문득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형 이럴 때 보면 딱 이우 같다. 참 내, 나는 왜 이런 사람들만 좋아하냐.”

 수호는 실실 웃으며 모니터로 시선을 올렸다.

 모로 웅크린 채 두 손을 기도하듯 모아 쥐고 있는 이우의 몸은 미동이 없었다.

 수호의 손이 덩달아 모아 쥐어졌다. 이유 모르게 먹먹해지는 가슴에 한숨을 흘렸다.

 “어디가 아픈가… 왜 저렇게 기운이 없어 보이냐….”

 중얼거리는 소리에 기웅이 낮은 한숨을 흘리고 말했다.

 “고양이 포기해라. 그만 만나.”

 수호가 기웅을 돌아보았다. 멍하던 눈가가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붉어지는 눈을 물끄러미 보던 기웅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너 죽은 줄 알아. 이우.”

 “어?”

 수호의 눈이 커졌다. 멍한 눈으로 다시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너 사망신고 제대로 하려면 다른 방법 없어. 어차피 이우도 너랑 붙어있는 거 위험하고.”

 수호는 조용했다. 눈물을 꾸역꾸역 참으며 이우에게만 시선을 두고 있었다.

 “형 말 들어. 고양이 살려야지.”

 “그렇겠지? 그 방법 밖에,”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수호는 왼 손아귀를 펼쳐 두 눈을 가렸다. 울컥 고인 눈물을 삼키며 입술을 꽉 물었다.

 “인마. 그러게 형이 뭐랬냐. 어린애랑 그만 놀라고 했지?”

 수호는 헛웃음을 흘리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러게. 내가, 왜 그랬을까. 왜 이우를, 알아보고. 사내놈을.”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입술을 물고 삼켜도 울음이 넘겨지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는 수호를 보며 기웅이 말을 이었다.

 “사내고 뭐고 간에, 우리 같은 놈들은 원래 누구 좋아하면 안 돼. 소중한 사람일수록, 다치면 안 되는 사람일수록. 절대 좋아하면 안 돼.”

 수호는 한 손바닥으로 눈물을 문지르고 모니터를 응시했다.

 “너는 그나마 낫지. 형님처럼 높으신 분은.”

 말을 멈춘 기웅은 모니터만 쳐다보는 째진 눈을 잠시 보았다.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부활하실 새 이름도 생각하시고. 발인 끝나고 조용해질 때까지 여기서 지내. 다른 마땅한 데가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응?”

 수호가 기웅을 돌아보았다.

 “여기 어딘데?”

 기웅이 이를 악물었다.

 “이 자식이 근데, 사람 말을 왜 자꾸 띄엄띄엄 듣나, 어디긴 어디야 내 방이라니까!”

 수호는 얼떨떨하게 방을 다시 둘러보았다.

 

 

 이우는 서재 안으로 들어섰다. 창백하게 메마른 얼굴은 무표정했다.

 책상 위 책들을 천천히 집어 모으다가 멈칫했다. 메시지를 풀던 메모가 시야에 들어왔다. 입술이 지그시 물렸다.

 떨려오는 몸을 가누며 이우는 책상 앞으로 앉았다. 초점 없는 시선이 허공으로 망연히 흘렀다.

 전영인. 그 긴 시간을 한결같이, 믿어주고 아껴준 게 아니라 자신의 재주를 가지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리 탐이 났다 해도, 어떻게 그렇게까지. 아무 관련도 없는 수호를. 수호를.

 울컥 흐려진 시선이 연필꽂이에 세워졌다. 커터를 잠시 보다가 손을 뻗어 집었다. 날을 올려 번질거리는 칼날을 물끄러미 보았다.

 죽음. 그게 정말 끝일까. 어쩌면 그 끝에서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괴물은 처음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주변의 모두가 똑같았다. 누구든 알고 나면 이용하려 들고 의심하고 피하고 도망쳤다. 아버지마저도 멀리하고 외면했다. 그저 흘러넘치는 돈을 줄 뿐이었다.

 유일하게 끝까지 곁에 남아준 친구 영인. 그 이유가 시간능력이 탐이 나서, 단지 이용할 생각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모든 걸 다 보여주고 싶었던 수호가, 온 마음을 다해 좋아했던 사람이, 이까짓 시간능력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태어난 괴물 때문에, 죽었다.

 분명히 저주다. 존재 자체가 저주다.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우는 파란 핏줄이 비치는 손등을 물끄러미 보았다. 패인 상처에서는 아직도 진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천천히 손을 돌려 안쪽 손목에 시선을 세웠다. 서슬 퍼런 동맥. 뛰고 있을 자격이 있을까.

 세워진 커터 날이 손목 위에 얹어졌다.

 귀한 사람이라서 다치지 말라고 있는 거야 그 초능력. 혹시 너 천사 아니야? 수호의 천사.

 번질거리는 칼날을 응시하는 멍한 눈에 눈물이 툭 터졌다. 눈물방울이 책상 위로 떨어졌다.

 떨어진 눈물로 시선이 내려갔다. 물방울에 젖은 메모를 멍하게 보다가 이내 울컥 웃음을 흘렸다.

 [ … 수호 오빠. 김수호♡현이우]

 고개가 수그러졌다. 메모 위에 이마가 붙었다. 엎드린 몸이 흐느낌에 흔들렸다.

 수호의 목숨과 바꾼 목숨. 수호가 주고 간 시간. 함부로 할 수 없다.

 서러운 울음소리가 텅 빈 집안으로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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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 더 포저 시즌 Ⅳ } 종전일의 기적 ... 4 2017 / 7 / 10 278 3 6854   
38 { 더 포저 시즌 Ⅳ } 종전일의 기적 ... 3 2017 / 7 / 7 286 3 7879   
37 { 더 포저 시즌 Ⅳ } 종전일의 기적 ... 2 2017 / 7 / 6 302 3 8033   
36 { 더 포저 시즌 Ⅳ } 종전일의 기적 ... 1 2017 / 7 / 5 296 3 6492   
35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11 (완결) 2017 / 7 / 4 300 3 8147   
34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10 2017 / 7 / 3 294 3 7334   
33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9 2017 / 7 / 1 294 3 7110   
32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8 2017 / 6 / 30 296 3 6328   
31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7 2017 / 6 / 29 279 3 6536   
30 { 더 포저 시즌Ⅲ} 그들의 포커스 ... 6 2017 / 6 / 28 294 3 6688   
29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5 2017 / 6 / 26 333 3 4873   
28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4 2017 / 6 / 25 284 4 5613   
27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3 2017 / 6 / 24 284 4 5819   
26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2 (2) 2017 / 6 / 23 340 5 5239   
25 { 더 포저 시즌 Ⅲ} 그들의 포커스 ... 1 (2) 2017 / 6 / 22 409 5 5234   
24 { 더 포저 시즌 Ⅱ} 아담의 비밀 ... 9(완결) (2) 2017 / 6 / 21 328 5 6978   
23 { 더 포저 시즌 Ⅱ} 아담의 비밀 ... 8 (1) 2017 / 6 / 20 301 5 8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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