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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워스트셀러 - 외설작가 아가씨
작가 : 미르지기
작품등록일 : 2017.6.20

사릴 카리즈 공작 영애, 제국에 단 두 개 뿐인 위세 높은 공작가의 외동딸.

그런 그녀에겐 남들과 다른 비밀이 하나 있다. 그녀가 작가라는 것이었다.

사릴 카리즈는 야한 소설을 쓰는 작가였다. 얼굴이 홧홧해질 정도로 달아오르는 문장과 전개. 그게 그녀의 자랑이자 특기였다.

 
10. 어쩌나 이 마음을? (2)
작성일 : 17-07-17 17:13     조회 : 291     추천 : 0     분량 : 4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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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진짜! 뭐냐고, 안테아!

 

 사릴은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아니, 사실 크게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날이 저물고 있었고 옆방엔 다른 학생들이 머물고 있었다. 사릴은 속으로 끙끙 앓았다. 화와 짜증은 진득하게 속에 들러붙는데, 밖으로 빠져나가질 못하니. 이게 말로만 듣던 화병인가 싶었다.

 

 그럼 나 혼자 착각해서 신경 쓰고. 저 인간은 전혀, 아무 감정도 없이 날 대했다는 거야? 철저하게 사용인과 고용주 관계로 남고 싶다 이거였어? 아니, 거기에 하나 더 추가인가. 작가와 애독자 사이.

 

 ‘좋아합니다.’

 

 사릴은 이를 갈았다. 그게 내 소설을 말하는 거였던 거지? 내가 아니라. 안테아의 말을 듣고 차근차근 머릿속을, 그리고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쭉 돌이켜보았다. 다시금 사릴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러고 보니, 좋아한다고는 했지만 뭘 좋아한다고는 안 했다. 그의 잘못이라면 말을 너무 애매모호하게 한 것, 그리고, 사릴의 마음을 흔들 만큼 잘났다는 것이었다.

 

 “하아, 내가 잘못한 거겠지.”

 

 사릴은 침대에서 굴러다니다가 벌떡 일어났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글을 써야 했다. 로디니 엘판과의 계약이 시급한 화두로 떠올랐다. 책상에 펼쳐진 노트를 보고, 이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의자에 앉아 펜을 들었다.

 

 안 돼. 안 써지잖아. 당연하다. 마음 상태가 이 지경인데 글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그 고통이 사릴을 엄습했다. 소설을 쓰는 것이 더 이상 취미가 아닌, 의무가 되고 노동이 되었을 때 찾아오는 극심한 슬럼프였다.

 

 ‘기사는 공작을 떠올렸다. 전장 한복판, 잔혹하게 쓸려나간 아군은 퇴각하면서 기사를 챙기지 않았다. 이미 오른쪽 다리가 박살나 있었다. 이 절체절명의 상황, 생사의 기로에서 기사가 떠올린 건......’

 

 떠올린 건? 당연히 공작이겠지. 그래서 그 다음은? 기사는 살아남나? 사릴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녀 소설 속 주인공이 떠올린 건 사랑하는 사람이었겠지만, 그녀가 지금 떠올리고 있는 건 안테아의 얼굴과, 로디니였다.

 

 로디니 엘판. 그 인간. 이번에 늦으면 독촉하러 오겠지. 그와 사릴이 맺은 계약상 어쩔 수 없는 필연일 터였다. 로디니가 쪽지를 남긴 범인을 찾아서 알려주는 것에 대한 댓가는, 사릴이 다시 연재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사릴은 펜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생각했다. 로디니가 자신만만하게 그 쪽지를 남긴 범인을 잡겠다고 나선 지 한참이 지났다. 그런데도 아직 답이 없으니까, 계약을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녀는 이내 그 논리가 억지인 걸 깨달았다. 그렇게 따지면 로디니가 내건 조건인 연재 재개를 해야 범인을 알려줄 거라고 나올 수도 있다. 로디니는 어떤 성격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으니까.

 

 그래, 모든 문제는 이것이었다. 그녀는 로디니의 성격을 모른다. 또한, 안테아의 성격도 모르겠다. 즉, 남자들의 심리를 도통 모르는 거였다. 그런데, 자신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두 명은 모두 남자였다.

 

 이것이 글이 안 써질 때 나오는 자기합리화라는 걸 의식적으로 억누르면서, 사릴은 몸을 일으키며 노트를 덮었다.

 

 “남자의, 마음이요?”

 

 사릴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앤이 난감한 듯 웃으며 대답했다.

 

 “아가씨. 그런 걸 저한테 물어보셔도, 연애 한 번 못해본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그런 건 그, 리란 도련님이나 안테아 경이 잘 알지 않겠습니까?”

 

 지당한 말씀입니다. 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우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고. 사릴은 한숨을 푹 쉬었다. 역시 앤은 충직하고 성실하고 좋은 시녀이자 친구였지만, 좋은 상담 상대는 결코 아니었다. 게다가 주제가 서로 모르는 분야여서야.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아가씨, 안테아 경과 다투셨나요?”

 

 사릴은 앤의 말에 눈을 치켜떴다. 표정이 너무 살벌했던지 앤은 겁먹은 듯 머리를 조아렸다.

 

 “제가 쓸데없는 말을. 죄송합니다.”

 “아니야.”

 

 쓸데없는 화풀이를 한 건 사릴 본인이다. 앤이 잘못한 건 없었다. 사릴은 다시 한숨을 쉬었다. 요즘 점점 더 어린 아이가 되어 가는 기분이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일이 이상하게 꼬여 버린 탓인데.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리란에게 가 보도록 할게.”

 “저도 같이 갈까요?”

 

 사릴은 무심코 그러자고 하려다가 멈추었다. 리란과 만나면 분명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가 앤이 들으면 부담스러울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안테아 경에 대한 뒷담화라던가. 동성애에 대한 농밀하고 끈적이는 대화라던가. 물론 리란은 아직 그녀가 무얼 쓰는지 모르기에 사릴도 자제할 생각이었지만, 이야기에 열을 내면 어찌 될지 모르는 거니까.

 

 “아니, 혼자 갈게.”

 “괜찮으시겠어요?”

 “별 일 있겠어?”

 

 앤의 걱정하는 눈빛에 사릴은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

 

 “뭐라고.”

 

 리란의 안색이 돌변했다. 사릴은 떨떠름하게 다시 말해 주었다.

 

 “남자의 마음이나 심리가 궁금하다고.”

 

 그녀가 재차 말해주었음에도 그는 대꾸 없이 고개를 숙였다. 분명 만날 때까지만 해도 해맑은 녀석이었는데, 갑자기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릴은 그의 병세가 갑작스럽게 심해졌나, 염려했다. 그 정도로, 리란의 피부는 창백했다. 한낮의 햇살을 고스란히 받고 있으니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사릴은 조심스럽게 그의 이마를 짚어보려 손을 뻗었다.

 

 “이야기가 길 것 같아?”

 

 겨우 진정되었는지, 리란이 느닷없이 고개를 쳐들었다. 사릴은 얼른 손을 거두었다.

 

 “으, 응. 아마?”

 “그래. 미안한데 내가 지금 상태가 안 좋아서, 나 먼저 갈테니, 조금 지난 후에 내 방으로 와 주겠어?”

 

 역시 몸이 안 좋아졌다고, 사릴은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생각해보니, 사방이 개방되어 있는 정원에서 동성애에 관련된 대화를 나누는 건 좋지 않아 보였다. 남들이 들을 수도 있고, 그, 망할 안테아가 어디선가 따라다닐 수도 있는 거니까.

 

 그처럼 불같이 화를 냈는데도 미행 중이라면 그건 정말 실망을 넘어서서 미워질 수도 있었다. 사릴은 부디 안테아가 근처에 없길 바라며, 리란의 초대에 응했다. 리란이 걷는 모습이 꼭 위태로운 절벽을 걷는 것처럼 휘청거려서, 사릴은 겁이 났다.

 

 --

 

 “리란?”

 

 응답이 없었다. 사릴은 방문을 두드려다가 설마 자나 싶어서 조용히 그의 이름을 다시 불렀다. 그제야 희미한 목소리로 대답이 들렸다. 너무 작은 목소리라 잘 듣진 못했지만, ‘들어와.’라는 말 같았다. 사릴은 문을 열었다. 그리고 코를 훅 치고 들어오는 술내음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방 곳곳에 술병이 널브러져 있었다. 무척이나 너저분했다. 문도 잘 열고 살지 않았던 듯 오래 묵은 공기 냄새가 술내음과 함께 지독한 악취를 풍겼다. 사릴은 리란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았다.

 

 리란은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진동하는 술냄새에 비해, 그는 아주 말짱해 보였다. 낮게 깔리는 촛불 조명에 비추어, 사릴은 걸음을 옮겼다.

 

 “남자의 마음을 알고 싶다고.”

 “응, 심리 상태나, 뭐 이것저것.”

 “누구 이야기인데?”

 

 사릴은 살짝 몸을 움츠렸다. 누구 이야기냐고 물으신다면 내 소설 속, 서로 사랑하는 두 남자 이야기라고 말해주어야 인지상정일까? 하지만 사릴은 아직 리란에게 그런 쪽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리란이 초조한 듯 그녀를 재촉했다.

 

 “응?”

 

 뭔가 리란의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촛불에 의한 조명 아래 보이는 그의 새하얀 피부는 정말 아파보였다. 사릴은 고개를 젓고는 떠나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몸 안 좋은 거 아냐? 다음에 다시 올게.”

 “아니, 아니야!”

 

 리란이 큰 소리로 외치자 그녀는 깜짝 놀라 발길을 멈추었다. 그는 어느 새 그녀의 바로 앞에 서 있었다. 병자의 행색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빠른 움직임이었다.

 

 “괜찮으니까, 누구 이야기인지나 말해줘.”

 

 그는 웃으며 사릴의 팔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뺴려고 했다. 그 웃음은 평소 리란이 보이는 온화한 미소가 아니었다.

 

 리란은 결코 그녀에게 힘을 준 적이 없었다. 늘 부드럽게 대해줬는데. 깡말라서 사릴이 농담조로 내가 너 이길 수도 있겠다, 라고 했었는데. 지금 그 완력은 감히 사릴이 대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말은 부드러웠으나 빠져나갈 수 없는, 거미줄에 쳐진 먹이를 잡고 있는 거미처럼.

 

 “누구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런 걸 묻는 건지 궁금해서 그래.”

 

 무슨 소리지. 이건 또.

 

 “누구일까? 누가 우리 사릴 경의 마음을 가져간 거야?”

 

 아, 그제야 사릴은 리란이 가지고 있는 터무니없는 오해를 깨달았다. 아마 그는 남자의 마음에 대해 알고 싶다는 사릴의 질문을, 잘 보이고 싶은 사람, 즉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는데 직접 물어보긴 좀 그러니 같은 성별이자 내 친구인 너에게 물어본다, 는 식으로 해석한 것이었다.

 

 사릴은 웃음을 지으려 했다. 그러나, 잘 되지 않았다. 호흡이 거칠었다. 그가 점점 그녀를 벽으로 밀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사릴은 등 뒤에 벽이 와 닿는 걸 느꼈다. 그래도 리란은 계속 접근했다. 그의 눈이 비정상적으로 들떠 있었다. 밀착되는 몸에 사릴은 힘을 짜내어 팔로 그를 거부했다.

 

 “잠깐, 너무 가까워!”

 “아, 미안.”

 

 리란은 사과했다. 그러나 말과 달리 행동은 전혀 바뀌질 않았다. 푸른 색 머리가 움직였다. 사릴은 얼굴을 바짝 들이민 그의 두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마치 어떤 짐승이나 악마가, 그녀가 아는 리란 펠의 얼굴을 뒤집어쓴 것 같은 생소한 느낌. 사릴은 호흡을 딱 멈추었다. 사내가 나직하게 말했다.

 

 “누구야?”

 

 귓가에 그 호흡이 닿으면서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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