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보고 ?” 추무랑이 어두운 저편을 이리저리 빠르게 눈으로 훑어보았다.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벽이 열려 있었다. 벽이? 열려 있어?
예전에 궁안에는 곳곳을 연결하는 비밀 통로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이런 옥사까지 연결한 곳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벽이 닫히고 문 뒤에서 나타난 사람이 둘인데 그중 하나가 이곳에서 결코 만나서는 안되는 태자 이환과 그의 호위 무사였다.
태자 이환이 추무랑을 보며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언제 오시나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습니다. 믿기기 힘든 그 사실은 사실이군요.”
추무랑이 추석랑을 돌아보았다.
“너가 고변한 것이 아니더냐?”
“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뿔사! 아들을 믿었어야 했거늘 그런데 태자가 어찌 모든 것을 알고 아들이 고변한 것처럼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태자는 이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오랫동안 기다렸을 것이다. 서로 만나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들의 비밀들이 하나하나 들추어 지니 잡혀 끌려간 자신의 아들이 고문에 못 이겨 말했다고 생각했거늘.....,추무랑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아들을 죽이려 했으니 자신 또한 못난 놈 이였다. 누가 누굴 죽이려 드는 것인가? 그리고 비상을 들고 있던 손을 자신의 입가로 가져가려 했는데 추석랑이 쇠창살 사이로 손을 뻣어 그것을 막았다. 그리고 그 약을 자신의 입에 가져가서 먹었다.
“석랑아!”
“아버지.! 크흡! 먹었습니다.! 전 아무것도! 헉헉헉 토설하지 않겠습니다. 비밀을 지킬 것 이옵니다!”
잠시 후 석랑은 눈을 뒤집히며 쓰러지고 숨을 거두었다.
“석랑아! 석랑아!!!!!!!!!!!!” 추무랑은 아들의 손을 잡고 오열을 쏟아 내었다.
못난 아들이라 구박도 많이 했었다. 딸보다도 멍청하다고 상처 주는 말도 했고 기대를 많이 해서 키우다 보니 기대보다 미치지 못하면 미친 듯이 화를 표현하기도 했었다. 자신의 관심을 얻기 위해서 삐뚤어진 행동을 주로 했지만 그래도 하나 밖에 없던 아들 이였다.
이환은 조용히 뒤에 서 있던 무천에게 말했다. “이제는 아들을 치우고 아비를 옥사에 넣거라.” 추무랑은 힘없이 옥사에 갇히고 추석랑은 들것에 실려 치워졌다. 추무랑은 아들의 손을 꼭 쥐었다가 놓았다. 자신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간 대비와 자신들을 사냥한 태자가 원망스러웠다.
실은 이 모든 것은 곽대주가 그간의 비밀을 얻어 알려준 정보들이고 서랑 덕분에 추석랑을 잡아 들여 심리전을 통해서 추무랑의 죄를 간접적으로 얻어냈으니 대비의 가장 큰 세력을 무너뜨렸다. 이제 별 볼일 없는 잔챙이들을 잡을 시간이다
이환은 옥사를 나오며 무천에게 말했다. “추무랑의 사병과 미약 재조처를 지금 당장 병사를 보내 모두 제압을 하러 직접가거라. 전 제산을 몰수하며 가족들은 모두 노비로 그집에 있던 노비들은 모두 노비문서를 태워서 양민으로 자유를 주거라. 나는 이곳에서 나머지 대비와 공모영을 처단하겠다. 지금 곽대주역을 하고 있는 최 결이 작업 중이니 내가 가서 마무리를 해야지. 오늘이 끝나면 세상이 바뀌어 있을 것이다.! ”
“존명!” 무천이 빠르게 명을 수행하러 나갔다.
이환이 대비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비전에는 장상궁이 추무랑이 언제 오나 목을 빼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중문에는 와야 할 추무랑이 오지를 않았다. 한식경이 지난 것 같은데..
그런데 기다리던 추무랑은 오지를 않고 저승사자처럼 자신을 옭아맬 것 같은 분위기를 뿜는 태자가 나타나자 장상궁이 놀라 당황하며 그의 앞으로 나왔다.
어찌 이리 불안한 것인지 장상궁은 떨리는 손을 당의 안으로 감추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태자마마 납시옵니까?”
“누굴 그리 기다리셨는가?"
"아닙니다. 태자마마..“ 장상궁은 목소리가 기어 들어가자 이환이 피식 웃었다.
“오랜만에 할마마마를 뵈러 왔으니 아뢰어 주게”
장상궁이 방안에 있는 인물들이 어서 다른 곳으로 피신해 주길 바라며 방을 향해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말했다 “태자마마 납시 었습니다”라고 말하자 태자가 장상궁을 보며 물었다.
“아니 여기서 말하면 들리겠는가? 할마마마 귀가 이제는 예전 같지 않으시거늘,, 답답한 사람 ! 방문 앞으로 가세!”
“아! 태자마마 방안에 이미 손님이 듭시어서....” 장상궁이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뻣어 막으려 하자 태자옆에 서 있던 홍내관이 눈을 치켜떴다.
“어느앞이라고 지금 길을 막으시는가? 물러나지 못하겠는가!”
이환이 껄껄 웃었다. “여기서 막을 섞지 마시게, 지금 뭘 숨기시려는지 이리 시간끌 일이 아닌 것을 아니 그런가 ? 할마마마 방인데 태자인 내가 못 들어갈 이유가 어디 있는가?”
이환이 씩 웃으며 장상궁을 밀어재끼고 성큼성큼 섬돌에 신발을 벗고 마루를 빠르게 지나 방문을 열어 젖혔다.
방안에는 대비 옆에 공모영이 바닥에 얼굴을 박듯이 엎드려 부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곽대주도 시립하여 서 있었다. 대비의 표정은 우물쭈물 하고 있었다.
실은 공모영이 빨리 나가려고 했으나 곽대주가 어영부영 같이 나간다고 하며 문앞을 가로 막았으니 오늘 따라 곽대주가 몸이 느려 공모영은 속이 뒤집어 졌다.
“다들 내가 오니 어쩔 줄 몰라하십니다. ”
“태!태자 왔는가? 우리 손주가 왔으니 이만들 물러 나시게!” 대비가 나가라고 하니 공모영이 빠르게 뒷걸음으로 사라졌고 곽대주도 조용히 물러났다.
태자가 대비의 바로 앞에 앉았다.
“할마마마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서 알려드리려고 왔습니다. ”
“무슨.....” 대비가 오늘 여러번 심장이 덜컥하여 손으로 가슴근처를 눌렀다.
“방금 제가 어디에서 오는 것 같습니까?”
“대전에서 온 것이 아닌가?”
“옥사에서 왔습니다.” 태자가 대비를 똑 바로 쳐다 보며 웃었다.
“!”
“추무랑이 추석랑과 매춘골에서 약을 팔아 돈을 받아 자신의 사병과 미약을 재조했다고 하더군요”
대비는 뒷목을 잡고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어! 어찌 그런일이!” 대비는 그런 사실까지 추석랑이 토설했다고 생각하니 빨리 죽였어야 했다고 생각을 하며 얼굴을 구겼다.
“그런데 추무랑이 그 돈은 자신 혼자 쓰지 않았다고 하더이다”
대비는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다. 추무랑 그자가 자신의 아들을 살리려고 고변한 것인가? 자신이 그리 단단히 일렀거늘. 자고로 서로 사리사욕으로 결탁한 자들은 한 가지 오해가 생기면 바로 무너지는 얇디 얇은 믿음 이였으니 작은 흠집에도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불신으로 바뀌는 것은 쉬웠다.
“그.. 그러더냐?” 대비는 태자가 점점 무서워 보이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자신에게 불안한 눈빛을 보냈던 아이가 어찌 저렇게 무섭게 자란 것 인지.
“그 돈의 출처를 캐다 보니 대비마마께서도 연관이 되어 있어서 허! 제가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어찌 대비마마를 위해하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그렇게 말도 되지도 않는 말을 지껄이다니! 좌상을 바로 처단하지 그러셨소? 난 돈 한푼 받은적이 없거늘 어찌 이 나를 무고하는가! 내가 그리 잘 대해주었건만 말도 되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죄를 남에게 뒤집어 씌우다니! 내가 직접 그자를 고신해야겠네. 태자!” 지금이라도 당장 추무랑을 잡으러갈 기세였다.
이 환이 그런 모습을 보며 실소를 머금었다.
“공모영도 연관되어 있다고 하던데.. 지금까지 함께 있으셨으니 소자는 의심스럽습니다.”
“공모영은 잠시 들러 문안을 여쭌 것 외엔 나와는 전혀 연관이 없소 태자. 믿어 주셔야지요. 어찌 혈연을 이리 믿지 못하고 저런 박쥐같은 자들의 말을 듣고 이리 달려온 것이요? 모함이오! 공모영 이자도 처단해야하오 내가 직접할 것이니 태자는 손에 피를 묻히지 말고...”
“할마마마! 참으로 쉽습니다. ” 이환이 그런 그녀의 말을 막았다.
“무엇이 말인가 태자?” 대비는 정신이 없었다 그의 쏟아지는 의심의 말들이 자신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어서 혼란스러웠다.
“어찌 자신의 충복들을 그리 쉽게 처단하라고 하는지요?”
“그자들은 나의 충복이 아니다!”
“공모영은 대비마마의 충복이니 오늘도 이곳에 있던 것 아닙니까?”
대비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충복이라고 하면 그도 매춘골에서 돈을 받은 일이 있어 대비도 같이 엮이게 되는 것 이였다.
이 환은 좀전에 방글방글 웃던 표정을 싸늘하게 굳혔다. 그의 평소의 주변을 쥐락펴락했던 그의 제압력이 대비에게 제대로 쏟아져 내렸다.
태자가 천천히 일어나며 문을 향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들이라!”
문이 열리고 곽대주가 공모영의 멱살을 잡고 들어왔다.
“허억!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대비가 사색이 되어서 소리를 질렀다.
이환이 공모영에게 다가가 그의 얼굴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미소지었다.
“공모영 들었는가? ”
공모영은 대비가 물러나라는 소리에 바로 퇴궐하려 했지만 문밖에 나오자 마자 곽대주가 평소의 힘이 아닌 엄청난 힘으로 자신의 손을 잡았다.
“잠시 기다리시지요. 대비마마께서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신 듯 했습니다”
“그럴 리가 이만 물러가라 했는데...”
“태자마마가 와서 우리의 이야기가 끊겼으니 기다려야지요. ”
그래서 공모영과 곽대주는 문밖에서 대비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전해 들은 것이다. 그런대 대비가 자신을 버리고 추무랑도 버리는 이야기를 듣자 공모영은 하늘이 노래졌다.
태자가 웃으며 공모영에게 말했다.
“사실을 말하면 그대는 빠져나가게 해주겠다.”
공모영은 대비를 바라보지 않고 태자 앞에 엎드렸다.
“소! 소신 태자마마께 충성을 다해 고변 하겠나이다!”
공모영의 말에 대비는 벌떡 일어나다가 쓰러졌고 그런 대비를 장상궁이 빠르게 다가가 안아 들었다.
“대비마마! 대비마마!”
“대비께서 많이 아프신 듯 하니 태의를 불러주도록 하지. 끝을 보시고 가셔야 하지 않겠는가?” 태자의 말에 공모영이 벌벌 떨었다.
그날 공모영은 태자의 무사들에 의해서 옥사에 들어갔고 추무랑이 없는 다른 옥사에 배정되어 두려움에 날밤을 세었다.
이환은 그날 밤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자신의 정적들을 단칼에 쳐내었다.
이 모든 것은 최결의 도움이 컸다.
이환은 그의 처소에서 최결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했다.
“고맙다. 그동안 그대의 정보로 이리 쉽게 일을 마무리 했으니.”
“아! 별말씀을 . 저의 부탁을 들어주시면 됩니다. ”
“알고 있다 만월의 신분을 다시 복원시켜 주마.”
“감사합니다. 그럼 전 바로 혼례식을 하고 태자께서는 하객으로 오셔서 축의금좀 넉넉해 주시고 가시지요.”
“하나를 주니 열을 더 달라고 할 놈 일세”
최결이 피식 웃었다.
“그건 그렇고 대비와 이솔 공주와 휘는 어찌 처리하실 껍니까?”
“대비를 대비전에 유폐하면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그때에도 나에게 찾아오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가만 있지 않을 것이야. 와서 사실대로 말할 기회를 줄 것이다. 이것이 나의 혈연에 대한 마지막 대우이다.”
최결이 한숨을 쉬었다. “휘는 그의 지식이 아까운 동무입니다. 저희가 같이 무예를 배우고 학문을 나누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조금 여지를 주시지요.”
이환도 한숨을 쉬며 그와 그 밤 내내 이야기를 나누었다.